사전 짓기 (사진책도서관 2016.6.15.)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 주었습니다. 이제 막 새로 나온 책입니다. 그동안 새로운 책을 한 권씩 써낼 적마다 늘 반가우면서 기뻤는데, 이 도톰한 책은 새롭게 반가우면서 기쁩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부터 마음속으로 품은 ‘내가 쓰고 싶던 책’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아직 한국말사전다운 사전이 없다고 여긴 지 스물다섯 해 만에 이런 책을 내 손으로 쓸 수 있어서 더욱 기쁩니다.


  첫걸음처럼 선보이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손에 쥐고 읽을 이웃님들이 넉넉하면서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어 말·넋·삶을 살찌우는 길에 밑돌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책을 받자마자 먼저 ‘도서관 평생 지킴이’인 이웃님한테 책을 부치기로 합니다. 한평 지킴이와 두평 지킴이인 이웃님한테도 모두 책을 부치고 싶으나 모두한테 부치지는 못합니다. 너그러이 살펴 주실 테지요?


  도톰한 책을 봉투에 싸서 주소를 적고 테이프로 휘감습니다.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가져가서 부칩니다. 책을 싸느라, 나르느라, 또 부치느라 품이나 돈이 퍽 많이 듭니다. 만만하지 않은 택배삯을 치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책 한 권을 택배로 부치는 값이 ‘책값 가운데 1/5’이나 된다면, 다섯 권 부칠 값이면 한 사람한테 더 선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손수 봉투질을 해서 부치면 책 안쪽에 연필로 ‘아무개 님한테 드림’ 같은 글을 쓸 수 있는데, 이 글을 몇 줄 쓸 수 있는 값이 좀 비싸구나 싶어요. 다음에 이 책을 이웃님한테 선물할 적에는 인터넷책방 손을 빌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도서관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5743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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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u:Do 2016-06-1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사전을 손수 펴낸다는건 어떤 느낌일까요. 부럽고 대단하다 싶고 감사합니다. ㅎㅎ

숲노래 2016-06-17 10:55   좋아요 1 | URL
사전...이란 쉽게 내기 어려운 책이니
아무래도 쉽게 느끼기 어려운 뭔가가 있어요 ^^;;
그러나 이 사전이 나온 지
아직 며칠 안 되어서
아직은
˝그동안 고단했네. 이제 좀 쉬어야지.˝ 하는 생각만 듭니다 ^^;;;;

Clou:Do 2016-06-1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잘은 몰라도 상상이 갑니다. 달콤한 쉼을 누리세요.

숲노래 2016-06-17 16:13   좋아요 1 | URL
네, 독자님도 기자님도
모두 이 책을 장만해서 읽으시고는,
˝이야 멋지네!˝ 하고 웃음으로 노래하면서
즐겁고 새롭게 한국말을 생각하고
마음도 꿈도 사랑스레 살찌우실 수 있다면
그야말로 달콤하게 쉴 만하리라 하고 느껴요
^__^ 고맙습니다
 

시골도서관 풀내음

― 풀내음 맡는 흙에서 배우기



  마당에서 붓꽃이 노랗게 올라옵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오늘은 붓꽃이 몇 송이가 더 늘었나 하고 숫자를 셉니다. 어느 날 아침에 한 송이가 터진다 싶더니, 이내 두 송이가 더 벌어지고, 저녁에 새롭게 두 송이가 더 벌어집니다. 이튿날에도, 또 다음 날하고 다음다음 날에도 자꾸자꾸 더 벌어집니다.


  마당 한쪽에서 붓꽃이 봉오리를 열 즈음, 뒤꼍에서는 찔레꽃이 흐드러집니다. 찔레꽃이 달콤한 냄새를 퍼뜨리는 철에는 감나무에 올망졸망 감꽃이 달려요. 꽃내음을 맡으며 호미를 놀리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옮아 가는 철을 처음 겪지 않습니다. 해마다 겪지요. 그런데 해마다 겪고 만나고 누리고 맞이하는 이 오월꽃과 유월꽃이 더없이 싱그럽습니다. 해가 갈수록 한결 짙으면서 맑은 숨결로 우리한테 찾아오는구나 싶어요.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후박나무랑 초피나무를 살피다 보면, 반짝반짝 푸른 잎빛이 곱기 마련인데, 때때로 잔뜩 파인 잎이 보입니다. 어느새 애벌레가 이렇게 갉아먹었나 하고 갸우뚱하는데, 온통 푸른 잎물결 사이에서 푸른 빛깔 애벌레를 찾아내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애벌레를 찾기도 만만하지 않고, 번데기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 어느 날 갑작스레 나비가 쏘옥 하고 나타나요.


  우리 집 나무에 기대어 알을 낳고 애벌레로 자라다가 번데기로 잠을 잔 뒤에, 바야흐로 곱게 깨어난 나비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어요. “얘, 넌 언제 여기에서 깨어났니? 네 번데기는 어디에 있었니?”


  무늬가 몹시 고운 나비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 님이 쓴 《은하철도 저 너머에》(너머,2016)라는 책을 읽습니다. 갓 깨어난 나비는 날개를 말리느라, 또 날갯짓에 힘을 주느라, 두 시간 가까이 마당에서 이리 걷다가 저리 날아오르려다가 톡 떨어지다가를 되풀이합니다.


  “조반니는 자신을 격려하듯 말했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아빠와 엄마를 추억하는 일이 아니야.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하는지를 아는 일이야.” (179쪽)


  나비가 깨어날 수 있는 까닭은 ‘어제(지난날·과거)’가 아닌 ‘오늘(오늘날·현재)’을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앞으로 새롭게 살아갈 ‘모레(앞날·미래)’를 생각하고 온몸으로 꿈을 꾸기 때문에 ‘알→애벌레→번데기→나비’라는 놀라운 거듭나기를 보여주는 셈 아닌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큰아이는 ‘우리 집 나비’를 보다가 나비 그림책이나 나비 도감을 들고 나와서 어떤 이름인가를 알아보려고 애씁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애벌레를 마당에서 보고는, 나뭇가지에 애벌레를 옮기고는 다시 그림책이나 도감을 펼쳐서 어떤 이름인가를 찾아내려고 용씁니다.


  풀밭에서 풀밥을 먹고 풀벌레가 살아요. 나무에 깃들어 나뭇잎을 먹으며 애벌레가 살아요. 사람은 풀도 먹고 나무 열매도 먹어요. 사람은 풀씨를 갈무리하고 가꾸어서 남새로 키우고, 나무를 집이나 마을 둘레에 심어서 숲정이를 짓습니다. 수백 해를 고이 돌본 나무는 먼 앞날에 이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태어나서 살아갈 ‘앞날 아이(미래 아이)’가 집을 지을 적에 기둥이 되고 도리가 되겠지요. 나무를 심어서 돌보는 동안, 오늘 우리는 그늘과 바람과 열매를 얻고, 먼 앞날 아이는 집을 얻어요.


  김준 님이 쓴 《섬: 살이》(가지,2016)를 읽습니다. 뒤꼍에서 호미 한 자루로 밭을 일구다가 커다란 돌을 캐내고는 등허리를 펴면서 읽습니다. 커다란 돌은 아이들이 딛고 뛰어내리는 놀잇감이 되다가는, 내가 밭일을 쉬며 앉아서 쉬는 ‘쉼돌’ 구실을 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도와서 씨앗을 함께 심기도 하고, 풀밭에 폭 엎드려서 무당벌레를 그림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어른이란 ‘한몫’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몫을 맡아서 할 만큼 자랐다는 의미이다 … 한몫은 다른 말로 ‘한짓’이다. ‘온짓’이라고도 한다. 품앗이를 할 때 보통은 일대일로 품을 교환하지만 일손이 부족하면 ‘반짓’도 필요하다.” (266쪽)


  사진이 아닌 두 눈으로 무당벌레를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책이나 도감에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손바닥에 올려놓거나 민들레 꽃씨에 앉아서 짝짓기를 하는 노린재를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려요.


  풀밭에 엎드리거나 앉으면서 풀내음을 맡지요. 호미로 밭을 갈면서 흙내음을 맡고, 흙결을 온몸으로 맞이해요. 아이들은 꽃삽으로 땅을 파며 흙놀이를 하다가 “아이 참!” 하면서 뭔가를 성가셔 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고 지켜보니 모기 때문입니다. 그렇구나, 모기가 깨어날 철이지.


  그동안 미리 뽑아서 잘 말린 쑥하고 짚을 그러모아서 모깃불을 피웁니다. 올들어 첫 모깃불을 구경하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여기는 듯했지만, 어느새 불가에 다가섭니다. 작은 모깃불을 둘러싸고 불씨랑 불티랑 불꽃이랑 불길을 바라보다가 “땔감!” 하면서 땔거리를 찾는다며 바지런을 떱니다.


  곧 대숲에서 대를 베어다가 짚보다 훨씬 오래 타는 땔거리를 마련하자고 생각합니다. 뒤꼍에서도 마당에서도 저녁마다 모깃불을 태운다면, 아이들은 이 모깃불을 둘러싸고 노래하며 춤추는 저녁놀이를 누릴 테지요. 이동안 나는 곁님하고 이야기꽃을 즐길 만하리라 느껴요. 해를 바라보면서 풀바람을 쐬는 흙일을 하고, 달을 바라보면서 모깃불 연기를 쐬는 저녁놀이를 하는 셈일까요.


  풀내음을 맡으며 풀한테서 배웁니다. 흙내음을 맡으면서 흙한테서 배웁니다. 철이 바뀌는 숲바람을 쐬면서 바람한테서, 또 숲한테서 배웁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늘 새롭게 배우는 싱그러운 봄 끝자락이요 여름 첫머리입니다. 2016.5.18.물.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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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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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만지며 (사진책도서관 2016.6.5.)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흙을 만지면서 흙일을 합니다. 책을 만지면서 책일을 합니다. 부엌칼을 만지면서 부엌일을 합니다. 아이 살갗을 만지면서 집살림을 합니다. 나는 내가 만지는 대로 내 일거리를 찾습니다. 무엇을 만지든, 어떤 연장을 쥐든, 늘 스스로 내 설 곳과 길 길을 찾습니다.


  호미 한 자루로도 땅을 갈아 씨앗을 심을 만합니다. 연필 한 자루로도 글을 써서 책을 지을 만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못할 만한 일은 없습니다. 그저 하면 되고, 차근차근 나아가면 됩니다.


  오늘 하루도 흙이며 책이며 부엌칼이며 아이 살갗이며 골고루 만지면서 엽니다. 오늘 하루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살가이 어루만지자는 마음으로 열면서 빙그레 웃음을 짓자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이룹니다. ㅅㄴㄹ


(‘도서관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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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교 (사진책도서관 2016.6.4.)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출판사에서 두 번째 가제본을 묶어서 보내 주었습니다. 거의 마무리가 된 겉그림을 살펴보고 차례와 찾아보기를 헤아립니다. 몸글 손질은 이제 끝이라 할 만한데 차례하고 찾아보기에 올린 낱말하고 쪽수가 제대로 맞는가를 다시금 돌아봅니다. 바야흐로 17교째인데 문득 예전 일이 떠오릅니다. 2001년 무렵인데 그즈음 《보리 국어사전》을 엮으려고 처음 실마리나 틀을 잡고서 바탕을 짤 적에 ‘사전 원고를 마무리하려면 한 사람마다 17교는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모임자리에서 ‘네 사람이 저마다 17교씩 모두 68교를 보면 빠진 데나 틀린 데가 거의 없겠지요’ 같은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열대여섯 해 앞서 문득 입에서 나온 말이 오늘 내 삶자리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셈이니 놀랍구나 싶으면서, 우리 살림은 우리가 문득문득 생각을 지어서 말로 내놓는 대로 이루는 셈이겠구나 하고 새롭게 깨닫습니다. 어쨌든 17교를 씩씩하게 끝내야겠습니다. ㅅㄴㄹ


(‘도서관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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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시안 (사진책도서관 2016.6.1.)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월요일에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책을 놓고서 가제본 원고 교정을 시외버스에서 마쳤습니다. 출판사 대표님하고 디자인회사에 가서, 디자인을 맡아 주시는 분까지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여섯 시간에 걸쳐서 디자인 교정까지 했습니다. 자정이 넘어 일을 마친 뒤 아주 늦게 저녁을 먹었고, 피시방에서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낮에 고흥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를 탈 즈음 갑자기 엄청나게 졸음이 쏟아지면서 고속버스역에서 가방에 기댄 채 한참 잤고, 버스에 오른 뒤에도 한참 잤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고흥 가는 버스길은 매우 긴 터라, 한참 잤어도 틈틈이 잠에서 깨어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고흥으로 돌아온 이튿날 표지 시안이 나왔습니다. 아침에 네 가지 시안이 나왔고 낮에 두 가지 시안이 더 나왔어요. 출판사에서 곧 표지를 확정하고 세부 디자인까지 마치리라 느낍니다. 고단함하고 졸음이 덜 풀린 몸으로 최종교정 피디에프파일을 살피면서 미처 못 잡아챈 오탈자가 있는가 하고 헤아렸습니다. 이제껏 선보인 어느 책보다 글손질을 많이 했고, 원고도 참으로 많이 읽었습니다. 글쓴이로서 이 원고를 읽은 횟수는 아마 200번쯤 되지 싶고, 글손질을 한 횟수도 이만큼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제 하루만 더 살피고 글손질을 하면 이 원고는 마침내 제 손을 떠나서 책이라는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아름다운 책 하나가 이 땅에 새롭게 씨앗처럼 드리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제는 제 손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 손에서 새롭게 읽히고 되새겨지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도서관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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