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속이 쓰리다. 졸립지는 않은데 눕고 싶다. 잠깐 숨을 멎고 그대로 누운 채로 눈을 뜨고 있어 본다. 내가 이대로 숨을 거두고 죽는다면? 내 삶은?

 몇 분이었을까, 아니 일 분쯤이었겠지. 이러고 있자니, 죽음이란 참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이대로 숨을 거둔들 무엇이 아깝겠으며, 여기에서 더 산다 한들 무엇이 더 넉넉하겠느냐 싶다. 나는 나대로 내 깜냥껏 하는 만큼 살면 되지 않겠느냐.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덜 바라느냐. 무엇이 더 있으면 좋고 무엇이 더 없으면 나으냐.

 얼마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일어난다. 옷을 하나씩 벗는다. 알몸뚱이가 되어 씻는방으로 들어간다. 빨래를 한다. 빨래 하나 마친 뒤 몸을 씻어야겠다고 느낀다. 몸을 씻는다. 찬물이 말 그대로 차갑게 살갗으로 와닿는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진다. 아직 날씨도 영상 십오륙 도쯤 되지 않는가? 십일월이 코앞인데 이런 날씨이다. 아직 보일러는 돌리지 않는다. 아니, 보일러는 고장이 나서 돌릴 수 없다. 올겨울은 보일러 없이 날 수 있을까? 보일러를 돌린다 해도 기름값이 걱정이다. 올겨울은 옷 두툼하게 껴입고, 바닥에는 깔개를 잔뜩 깔아 놓은 채 버틸 수 있을까?

 어쩌면, 어쩌면 버티리라. 해가 다르게 날이 따뜻해진다. 아니, 더워진다. 가게에서 사 온 비름나물에 곰팡이가 피었다. 부랴부랴 냉장고에 다시 돼지코를 꼽는다. 잠들 뻔하던 모기가 다시 깨어났다. 아직도 잠잘 때 모기장에서 자야 한다. 모기는 모기장 바깥이 온통 제 세상이다. 사람은 조그마한 모기장이 자기 집이다. 이제는 여름만이 아니라 봄가을도, 겨울마저도 사람이 모기장 신세를 져야 할 판이다.

 겨울이 따뜻하면 겨울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겨우나기를 하며 기름을 안 쓸 수 있겠지. 빨래를 할 때 조금 손이 차지만, 겨울 빨래처럼 손이 시리거나 얼어붙지 않는다. 한두 가지 빨래를 하고 나면 손에도 피가 몰려서 따뜻하다. 찬물이 따순 물처럼 느껴진다.

 빨래를 셋, 넷까지 하고 다섯까지 한 다음 하나를 남긴다. 저녁에 걸레를 빨거나 내일 아침에 씻을 때 빨려고. 씻을 때 빨아야 물을 덜 쓴다.

 빨래 두 가지는 빨래집게에 집어 마당으로 가지고 나와 널어 놓는다. 햇볕이 괜찮다. 이불 둘 들고 나와서 담벼락에 널어 놓는다. 저 멀리, 담벼락에 이불 널어 놓은 집, 빨래를 빨랫줄에 줄맞춰 널어 놓은 집이 보인다. 아파트라면 빨래 구경도 못할 테지.

 마당이 있어(옥상 마당이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을 느끼고 햇볕을 쬘 수 있어 좋다. 이웃집 옥상과 마당을 바라다볼 수 있어 좋다. 이웃집 창문으로 살림살이를 살며시 들여다보기도 하고, 우리 집 살림살이가 우리 집 창문을 거쳐 이웃집에 들여다보여지기도 한다.

 기차가 지나간다. 전철도 지나간다. 집이 옹옹옹 울린다. 옆지기가 예전에 말했다. 그렇게 옹옹옹거려도 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긴, 그렇겠지. 올해로 쉰 살을 먹은 이 집은 여태껏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는데. 이 집이 무너지면 이웃집들은 오죽하겠는가. (4340.10.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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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올리는 헌책방 발자취
: ‘추억’을 넘어 ‘현실’로 힘쓰는 헌책방 삶터




 저는 올 사월에 고향땅 인천으로 돌아와서 사진책 도서관을 조그맣게 열었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을 생각해서 ‘어린이책 도서관’을 열어야 한다고 외치는 분들이 드문드문 있고, 이렇게 외치는 분들 가운데 자기 집 한쪽 방을 트거나 따로 방을 얻어서 그동안 자기가 모아 온 어린이책으로 조그맣게 ‘지역 어린이책 도서관’을 여는 분들이 있습니다. 중앙 정부나 지역 정부 모두 이 조그마한 어린이책 도서관을 제대로 굽어살피지 않습니다. 도서관이라 한다면, 번듯한 건물이나 수십 수백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갖춘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가까이 찾아가며 책을 쉴 수 있는 곳이 도서관입니다.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갈 수 있고, 도서관에서만 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하게 돌아볼 대목은, 마을마다 다른 문화와 사회를 고이 지키고 가꾸면서 튼튼히 이어나갈 수 있는 터전입니다. 도서관 만든다며 수십 수백 억을 들여 새 건물을 지어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그 돈을 푼푼이 나누고 쪼개어, 마을마다 크고작은 ‘지역 사랑방’ 구실을 하는 터전이 달세 걱정 않도록 이어갈 수 있도록 돕기만 해도 넉넉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에는 어린이책 도서관도 드물지만, 어른책 도서관도 드뭅니다. 아이들이 쉴 곳도 없지만, 어른들도 쉴 곳이 없어요. 길을 거닐다가 다리쉼을 할 만한 나무걸상 하나 제대로 마련된 곳이 어디에 있을까요? 여름이라면 모르지만, 겨울에는 차가운 돌걸상에 앉을 수 없어요. 플라스틱 걸상도 그렇지요. 인천에도 서울에도 광주에도 대구에도 부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치르고 들어가야 하는 찻집과 밥집과 술집은 있어도, 손바닥만한 동네 쉼터가 없어요. 나무그늘을 느낄 수 있는 텃밭도 마당도 사랑방도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또 무엇이 없을까요? 제가 느끼기로는, 시골에서 마을길을 걸어가며 찾아갈 수 있는 헌책방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골목길을 걸어가며 찾아갈 수 있는 헌책방은 차츰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데 헌책방이 자취를 감추기 앞서, 동네 새책방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동네 헌책방은, 동네 새책방이 곳곳에 많이 있어서, 동네사람들이 자기 마음밭을 일구는 책을 부지런히 사서 보는 문화가 이루어져 있을 때 비로소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립니다. 한 사람이 자기 주머니돈을 털어서 사서 읽은 책을 기꺼이 내놓아 주어야 헌책방에 헌책 하나 깃들이거든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동네 새책방에서 책을 사지 않습니다. 동네 새책방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 참고서와 자습서만 살 뿐입니다. 참고서와 자습서는 책일까요? 학습지는 우리 마음밭을 고이 가꾸어 줄까요? 동네 새책방을 동네 책 문화로 이끌지 않거나 이끌지 못하는 우리들은, 우리가 살가운 보금자리로 여겨 살고 있는 동네를 메마르고 팍팍한 곳으로 나뒹굴게 합니다. 동네에 나무그늘 하나 제대로 없는데, 어찌 동네사람들이 시원한 바람을 느끼거나 맑은 바람을 마실 수 있을까요? 온통 씽씽 내달리는 자동차만 가득한데, 어찌 아이들이 뛰놀 수 있을 테며, 어른들이 막걸리 사발 주고받으며 세상 부대끼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요새 아이들은 방구석에 처박혀서 인터넷게임에만 빠진다고들 합니다만, 그래서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말이 ‘우리 말 문화를 망가뜨린다’고도 합니다만, 아이들을 방구석으로 내몰고, 아이들이 방구석에서 인터넷게임을 할 수밖에 없도록 닥달한 사람은 바로 우리 어른들 아닐까요? 아이들이 뛰놀 골목길이 없는걸요. 아이들이 자기 머리를 추스르고 더 넓은 세상을 헤아려 볼 책을 만날 수 있는 책쉼터인 동네 새책방과 동네 헌책방이 사라지고 있는걸요.

 우리 어른들은 어릴 적에 헌책방을 왜, 어떻게, 언제, 얼마나 자주 다녔을까요? 헌책방만이 아니라 동네 새책방에는 얼마나 자주 찾아갔을까요? 우리는 동네 새책방이나 헌책방을 찾아가면서 어떤 책을 만났고, 어떤 책으로 우리 가슴을 적셨으며, 어떤 책으로 여태껏 느끼지 못한 새로움을 맛보며 세상 톺아보는 눈길을 가다듬었을까요?

 제 어린 날을 뒤돌아봅니다. 제 어린 날은 책하고는 담을 쌓은, 아니 책이 무엇인지 모르던 나날입니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있었으나, 월부 책장사한테 사들인 전집 몇 가지가 있었을 뿐이고, 이 책은 우리 형이 보라고 들여놓았습니다. 저는 마냥 골목길 놀이가 좋았고, 골목길 동무들하고 온갖 놀이를 하며, 대나무로 낚싯대 만들어 갯벌로 낚시하러 가기를 즐겼습니다(제 어릴 적까지는 망둥이 낚시를 곧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나가 낮에 밥 먹으로 잠깐 돌아온 뒤 다시 저녁까지 뛰어놀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숨바꼭질을 하며 박쥐하고 벗삼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노라면, 집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전집 책이 불쌍해 보여서, 또 어머니 꾸지람을 듣기도 해서, 또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내야 하기도 했고, 독서부장 맡은 계집아이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까지 조금 있어서, 더듬더듬 몇 가지 책을 읽었습니다.

 어릴 적 동네 헌책방 추억을 떠올리자니, 그냥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헌책방이 참 많았다”는 것뿐. 어린아이한테는 책이고 뭐고는 눈에 안 들어오고 온통 놀잇감만 눈에 들어오니까요.

 머리통이 조금 굵어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 눈을 뜹니다. 참고서와 교재를 값싸게 사고팔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 아니었음을, 참고서 팔이로 돈을 버는 분들도 틀림없이 있지만, 우리 눈길이 학습지에서 풀려날 때 바야흐로 책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짐을 처음 살갗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독일말 참고서 하나를 사고 책값을 셈하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뒷통수를 자꾸 긁어대는 무엇인가 있어서 슬쩍 뒤를 돌아보니, ‘학습지 아닌 여느 인문사회과학책’들이 책시렁에서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군요. 흠칫 놀랍니다. 아, 지금 내가 셈치르는 이 녀석은 책이 아니구나, 진짜 책이 저기 있구나.

 고개를 떨구고 참고서를 가방에 쑤셔넣습니다. 한 달 뒤, 보충수업을 땡땡이치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찾아와, 여섯 시간 남짓 안쪽 구석에 박혀서 ‘책’을 보았습니다. ‘책’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후비는 책, 내 가슴을 파고드는 책, 내 모자라고 못난 눈길을 나무라면서 한손을 내밀어 붙잡아 일으켜 주는 책,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날마다 한 그릇씩 고운 목숨을 선사해 주는 책.

 추억이 어릴 틈 없이 현실로 찾아온 헌책방입니다. 그래도 추억 하나 끄집어내 본다면, “좋은 책 하나 손님들한테 건네줄 수 있으면 저희들 보람이지요. 뭐, 우리들이 세상에 이름을 내려고 헌책 파나요?” 하고 살며시 웃던 헌책방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문 사회면 한 줄짜리 기사 ‘궂긴 소식’으로도 실리지 못한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나시고, 간판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손전화 가게며 빵집이며 술집이며 닭집이며 들어서던 일들 …… 이랄까요.

 서울 청계천과 인천 배다리와 부산 보수동과 전주 홍지서림 골목과 대전 원동 저잣거리와 청주 중앙로 들에는 아직 크고작은 헌책방거리가 드문드문 남았습니다. 서울 골목골목에서 적잖은 헌책방들이 허리띠 졸라매며 애쓰고 있습니다. 서울 신촌을 중심으로 열 군데 남짓 헌책방이 점점이 모였습니다. 모두들, ‘추억’으로 끝날 수 없는 ‘현실’로, 우리 삶으로 헌책방 문화를 지키며 가꾸고자 낮은 자리에서 말없이, 다소곳이 힘쓰고들 있습니다. (4340.10.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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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잠이 깨어 일어납니다. 새벽바람이 서늘해 좀더 드러누울까 싶었으나 그냥 일어납니다. 꿈에서 저는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갓 올라간 학생입니다. 얼굴에는 아무런 빛깔이 없고 그저 무뚝뚝함만 흐릅니다. 저뿐 아니라 동무들도 마찬가지. 모두들 대학교 들어가기만을 생각하고, 3학년 담임이 된 사람도 처음 교실에 들어와서 우리들한테 하는 말이 ‘너희들 어느 대학교에 가고 싶은지 손을 들어 보라’입니다.

 아이들한테 쪽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기에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세 가지 주의사항이 적혔고, 세 번째 것은 담임선생이 들어와서 말할 때는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다른 것도 하지 말고 자기만 바라보며 조용히 하라는 것. 속으로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생각하며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이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니, 이야기라 할 수 없는 중얼거림을 듣습니다. “너희들이 어느 대학교에 가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맨 처음에는 의대를 써라. 그 다음에는 ……” 꿈에서도, 꿈을 깬 뒤로도, 이 소리가 무슨 생각으로 하는 말인지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담임이라는 사람은 한참 중얼중얼 떠들더니, “자, 그러면 묻자. 너희들 가운데 혹시 대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느냐?” 하고 묻습니다. 맨 앞에 앉은 녀석이 손을 듭니다. 뒤따라 저도 손을 듭니다. “하나, 그리고 둘이냐?” 하는 중얼거림을 듣다가 잠이 깨었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지, 또 그 뒤로 고3 교실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모르겠습니다. 꿈이기는 하지만 다시 꾸기 싫고, 꿈이 아니라면 몹시 끔찍하겠구나 싶습니다. 남자만 다니는 학교에서 1학년 2학년 3학년 내내 남자 선생만 담임으로 보내야 하는 학교. 현실에서도 제 고등학교 3학년은 남자 선생 담임뿐이었고, 학교도 남학교였습니다. 지난날 칙칙함이 꿈에서도 똑같이 살아나 진저리가 쳐지기도 합니다.

 콩물 한 잔 마시고 마당으로 나옵니다. 담벼락에 책을 올려놓고 기지개를 켭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별이 제법 많이 보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인 듯하네요. 새벽에 신문을 돌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 소리가 들립니다. 예전에는 밤하늘 별이 훨씬 많았겠지요. 이 도시에서도.

 그러고 보니, 이 나라에서 고등학교 3학년 자리에 있는 아이들은 곧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겠네요. 대학교에 가려는 아이들도, 대학교에 갈 마음이 없는 아이들도.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을 치를 준비를 시키고, 내신성적이라는 이름으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르고, 틈틈이 모의고사를 치러서 ‘교과서 지식을 얼마나 머리속에 잘 간수하고 있는가’를 살핍니다. 아이들은 머리속에 잘 간수하고 있는 교과서 지식에 따라 차례가 매겨지고, 이 차례에 따라 모범생과 문제아이가 갈립니다.

 아이들은 ‘무슨무슨 대학교에 가려 하는가’로 ‘장래희망’을 상담하게 될 뿐입니다.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을 아이라든지, 공장에서 일하려는 아이라든지, 출판사에 들어가 일하려는 아이라든지,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자기 예술을 가다듬으려는 아이라든지, 온몸을 바쳐 사회봉사나 사회운동을 하고픈 아이라든지, 다 다른 생각과 몸짓을 다 다른 방법으로 펼쳐 나가고자 하는 몸짓과 매무새를 추스르려면 어떻게 하면 더 나을지를 담임 교사와 상담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들이 ‘개성 넘치는 아이들 모두한테 걸맞게 세상 경험을 들려줄 만한’ 깊이나 너비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시인으로 살고픈 아이한테 ‘그렇구나, 네가 시인으로 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머리 맞대며 헤아릴 교사가 있을까요. 버스기사가 되고 싶은 아이한테 ‘그래, 네가 뜻있고 멋진 버스기사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골똘히 헤아리며 함께 길찾기에 나서 줄 교사가 있을까요.

 대학교를 바라는 아이들한테는 어떠할는지요. 지구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벌레(곤충) 한삶을 헤아리고 싶은 아이가 생물학과에 가고 싶다고 한다면, 이 아이가 생물학과라는 곳에 가기에 알맞도록 차근차근 도와줄 만한 깊이를 갖춘 교사가 몇 사람쯤 있을까요. 잠자리를 연구하고 싶은 아이한테, 물방개를 연구하고 싶은 아이한테, 가문비나무를 연구하고 싶은 아이한테, 삵을 연구하고 싶은 아이한테, 우리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들은 무슨 도움말을 건네고 어떤 도움책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그림을 그리고픈 아이한테 입시미술이 아닌 생활미술을 일러 주면서, 스스로 자기 그림감을 찾아나서도록 이끌고, 학원미술이 아닌 자기 그림결을 찾는 그림그리기로 나아가도록 붙잡아 줄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가 있을까요. 사진을 찍고픈 아이한테, ‘오호라, 사진을 찍고 싶다고? 그렇다면 지금 네가 있는 이 학교에서 사진을 찍어 보지 않으련?’ 하고 먼저 나서서, 교실 풍경과 학교 삶을 두루 사진에 담도록 마음을 써 줄 만한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가 있을까요. 아니, 초중고등학교 아이들 삶과 교사들 삶을 사진으로 담아내어 보여주는 교사는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우리들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느끼고 보았던 모습을 꾸밈과 거짓과 숨김과 감춤이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고 힘쓰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진 찍는 교사’란 참말 있기나 할까요. 교사 스스로 더 넓은 세상을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부모 스스로 더 깊은 세상을 느끼려 하지 않으니까, 아이들은 오로지 대학바라기만을 하면서 그 풋풋하고 싱그럽고 살가운 젊음을 형광등 불빛만 쬐며 허여멀건 얼굴로 늙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생각해 보니, 대학교에서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도 자기들이 다니는 대학교 모습이나 대학생 삶이나 대학교 둘레 사람들 발자취를 사진으로 더듬거나 헤아리는 일은 안 하고 있네요.

 지난밤에 《전태일 통신》(후마니타스,2006)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짤막하게 쓴 글을 그러모은 책입니다. 이 가운데 민종덕이라는 분이 쓴 글을 읽으니, ‘국민학교 졸업장도 없는 전태일한테 명예졸업장(초등학교)을 주려고 하던 뜻깊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글 끝에 ‘졸업장 하나 없이 살아간 전태일’한테 ‘졸업장이 꼭 있어야 했을까?’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는 왜 이리 졸업장 열병에 물들어 있을까를 놓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합니다. 대학교에 돈 많이 바친 어느 재벌총수한테 명예박사학위를 주려 하니 학생들이 반대하더라는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졸업장이 많다고 농사를 잘 짓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차를 얌전하게 잘 몰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사기공갈 안 친다는 법이 없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가난하고 힘겨운 이웃을 알뜰히 사랑하거나 보살피도록 마음을 더 기울이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주정뱅이가 안 되지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자기가 땀흘려 번 돈을 사회에 돌려주며 값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다고 동화책을 잘 쓰지 않으며, 사진을 더 잘 찍지도 않고, 만화를 더 잘 그리지도 않습니다. 졸업장이 많은 사람이 인문학 책을 더 잘 써내지 않는 한편, 종교를 다룬 책이든 문화를 다룬 책이든 철학을 다룬 책이든 경제를 다룬 책이든, 더욱 속속들이 헤아리며 짚어낼 수 있는 눈길이나 눈높이가 있지 않습니다.

 꿈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새벽까지 꾼 꿈을 깬 뒤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그때 꿈속 고3 담임 교사한테 이렇게 읊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가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사진을 찍으며 살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동무들 공부하는 데 거슬리지 않게 있고, 없는 사람인 듯 조용히 지낼 테니, 교실에서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이 학교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10년쯤 뒤에 사진책 하나 내고 싶습니다.” (4340.10.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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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가을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젯밤, 그리고 오늘낮, 집에 있는 온도계를 보니 16∼17도입니다.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은 20도를 넘길까요? 오늘은 며칠 만에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어서 부랴부랴 이불을 걷어서 담벼락에 널어 놓습니다. 그러고는 머리를 감고 웃도리와 수건 빨래를 합니다. 온도계로는 가을이라 그런지 이른새벽이나 이른아침에는 머리감기 힘듭니다. 이제 막 가을 문턱을 넘어서서 그럴 텐데, 조금 지나면 익숙해지겠지요. 한겨울에도 찬물로 머리를 잘만 감아 왔으니까요.

 빨래는 집안에 널어 놓은 다음, 머리카락 물기를 조금 털어내고 마당으로 나와 해바라기를 합니다. 갈비뼈처럼 보이는 양털구름이 좋아 보여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앞집 하나 건너에 있는 기찻길로 전철이 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요새는 전철길을 따라 길게 울타리가 놓여서 시끄러운 소리를 조금이나마 막아 줍니다. 이 울타리조차 없던 지난날에는 기찻길 옆 사람들은 우예 살았을까요. 아니, 지난날에는 기찻길 옆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리 공해’에 시달린다는 생각을 아예 안 했겠지요. 생각해 보면, 기찻길이든 넓은 찻길이든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을 밀어내고 죽 밀어붙였어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 모여살던 마을은 그예 두 동강이 나서 얼결에 남북, 또는 동서로 갈린 채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처럼 되고 맙니다. 때때로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이 고속도로 왼편과 오른편으로 갈린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오갈 수 있을까 싶어 가슴이 짠합니다. 어쩌면, 두 마을 분들은 서로 오갈 일이 없을지 모르겠고, 고속도로로 나뉜 지 오래되어서 서로 오갈 일도 사라졌는지 모르겠어요.

 잠깐 동안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데에도 머리카락 물기가 거의 다 마릅니다. 웃도리를 들고 도서관으로 내려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4340.10.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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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ㅈ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방 하나를 조용히 꾸려가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적어 놓은 글을 읽고 댓글을 하나 남겨 보았습니다. 이분은 말합니다. “내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하고 있는 ‘사교육(과외)’으로 쉽게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으로서 가장 쉽고 깨끗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거고, 나를 위해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좀더 몸을 쓰면서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고. 이 마음을 앞으로도 고이 이어나갈 수 있다면, 나날이 추스르고 북돋우며 살뜰히 가꿀 수 있다면, 우리 삶터는 한결 아름다울 수 있겠지요.

 저는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희망도 없고 꿈도 없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러니? 네 곁에는 내가 있는걸.’ 하고 한 마디 해 줄 수 있겠네요. 〈한겨레〉에 시험 치고 들어가실 수 있다면, 들어가셔서 힘껏 싸워 주셔도 좋겠구나 싶습니다. 다만, 저는 〈한겨레〉가 ‘학력제한 없음’을 내걸고는 있지만, 여태까지 어느 한 사람도 학력제한에 상관없이, 그러니까 대졸자가 아니면서도 이곳에 취직한 사람이 없다는 대목에 슬프고, 학력제한이 없으면서 토익점수를 내라고 하는 입사자격제한이 슬퍼서, 예전에 특채로 뽑아 주겠다고 하는 제의를 거절하고, 토익점수 내라는 자격제한을 풀면 공채로 들어가겠다고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1998년과 1999년 사이에. 생각해 보면, 글은 길게 쓰거나 짧게 쓰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자기 마음을 제대로 담아냈느냐, 자기 마음이 아닌 헛소리나 딴사람생각 짜깁기를 늘어놓고 있느냐가 중요해요. 자기 삶을 찬찬히 담고 있다면,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좋고, 긴 글은 긴 글대로 좋습니다. 지금 세상은 짧거나 길거나 제대로 자기 삶을 담아서 적바림하고 있는 글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고 느낍니다.” (4340.10.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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