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사슬은 헌책방까지 짓밟는다
 - 나쁜법은 ‘나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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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사전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말을 찾아봅니다. 풀이를 읽으니,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하도록 제정한 법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행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한 나라 안전을 흔들거리게 한다는 ‘나라를 거스르는 짓’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을 안전하게 살아가게 하며 자유를 지키려고 하는 일이란 또 무엇일까요. 벌써 다섯 해가 지난 일입니다만, 미선이와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치여서 개죽음으로 사라져 버렸을 때 ‘국가보안법’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가녀린 어린 목숨이 꽃을 피우지 못했는데. 지금도 파주며 철원이며 군부대가 득시글거리는 시골마을 길가에서는, 미군 장갑차와 탱크가 군사훈련이라면서 논둑을 무너뜨리고 ‘말리는 곡식’을 죄 짓이겨 놓아도 ‘못 봤다’는 말 한 마디로 둘러대고 아무런 피해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적으면 수십 억, 으레 수백 억, 때때로 수천 억을 빼돌리는 어마어마한 ‘경제사범’들이 곧잘 언론매체에 이름을 올립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제사범이 얼마나 엄청난 돈을 빼돌렸어도 구속이 되어 심문을 받고 그동안 빼돌린 돈을 뱉어내는 일이란 볼 수 없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 또한 아직까지 추징금을 안 내고 있으나 국가보안법은 이 두 사람을 붙잡아 가두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나라살림을 엉터리로 꾸려 간다고 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을 헐뜯는 사람이 ‘나라를 거스르는’ 셈인가요,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나라를 거스르고’ 있으니 국가보안법에 따라 벌을 주어야 하는 셈인가요.

 자전거를 탈 때든 걸어서 다닐 때든 늘 겪는 일입니다만, 건널목 푸른불이 바뀌면 사람들이 다 건널 때까지 잘 기다려 줄 뿐 아니라, 걸음이 느린 아이나 어르신이 빨간불에도 미처 못 지나갔어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기다리면서 뒷차가 빵빵대는 소리를 고이 받아 주는 운전자가 퍽 많습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푸른불이 되어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 건너고 있는’ 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을 치건 말건 밀어붙이는 운전자도 꽤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운전자한테 손가락질을 하며 “야 임마! 그 따위로 운전하면 돼! 사람 죽이려고 해!” 하고 큰소리를 치면, 차 유리창을 내리며 “니가 뭔데 지랄이야?” 하면서 되받는 운전자를 쏠쏠히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릴 때면 95/100쯤 되는 운전자는 아무 말 없이 자전거 옆으로 멀찍이 떨어져서 안전하게 지나가 주지만, 5/100쯤 되는 운전자는 갑자기 밀어붙이거나(진짜로 칠 때도 있습니다) 골목길로 꺾어들거나 길가에 차를 댄다며 홱 앞으로 끼어들거나 귀따갑게 빵빵거리며 비키라고 합니다. 자전거를 괴롭히는 다섯 사람 말고, 자전거를 지켜주는 아흔다섯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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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때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과 함께 사라졌으나, 1950년대 끝무렵에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끄집어내어 날치기로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독재정권 몸부림이 하늘을 찌르던 그때, 자기를 반대하는 세력을 ‘합법이라는 올가미’로 씌우고자 만든 국가보안법이었던 만큼, 그때 야당을 비롯하여 모든 언론매체가 들고 일어나서 반대를 했지만, 이 법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맞이한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군사쿠테타. 1960년 4월 19일 학생혁명을 일으킨 우리들이지만, 젊은 피로 얻어낸 민주와 평화를 ‘장면 민주당 정권’은 제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골똘한 나머지 국가보안법이며 다른 나쁜법이며 쓰레기통에 던져넣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장면 민주당 정권은, 자기 정권이 능력없고 썩어문드러지는 꼴을 비판하며 집회하는 사람들을, 바로 이 ‘국가보안법’ 올가미로 묶어서 입을 막으려고 휘둘렀는지 몰라요. 이런 휘두름은 여태까지도 그치지 않고요. 이렇게 하여 2007년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우리들 생각과 움직임을 꽁꽁 붙들어 맨 국가보안법입니다. 이 법을 처음 만든 일본 제국주의자, 이 법을 살려낸 이승만 독재정권, 이 법을 마음껏 휘두르며 또다른 독재정권을 이어간 박정희 정부, 그 뒤로 이어진 군사독재자인 전두환과 노태우, 이들을 이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세 대통령, 모두들 국가보안법이 권력자한테 얼마나 훌륭한(?) 무기인 줄 잘 깨닫고 있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되는 국가보안법이거든요.

 《우승규-나절로 만필》(탐구당,1978)이라는 책을 보면, 〈동아일보〉에 오랫동안 주필로 글을 쓴 우승규 님이 1959년인가 1960년에 〈‘보안법’과 언론인의 분기〉라는 이름으로 실은 글이 있습니다.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 ‘새 국가보안법안’―자유당 정권은 이 법을 고쳐 만들려고 바둥바둥 애를 썼다. 자초의 목적은 딴 데 있었다. 그들이 표방한 것은 ­‘간첩죄의 개념’을 보다 명백히 정립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천만의 말이다. 그 속엔 그보다도 ‘언론규제’를 한층 철저하게 강화하겠다는 엉큼한 속셈이 숨어서였다. 북괴의 도발로 시국이 긴박한 준전시 상태도 아니었건만 이렇듯 흉물스런 낌새를 알아챈 신문ㆍ방송ㆍ잡지 등 매스컴과 야당에선 연합전선을 펴고 반대하는 횃불을 들었다. ‘신문편집인협회’가 앞장서서 들고 일어났다. “민주국가로서의 가장 큰 악법”이라고 규탄했다. 각 신문들의 공동성명에서 적극 배격한다는 의사를 명백히 했다. 그 성명에서 “6ㆍ25 뒤 언론계가 반공방첩을 위해 피눈물나는 동일보조의 투쟁공적은 추호도 계산에 넣지 않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노염에 가득찬 반박을 했다. 그것은 어느 날 자유당의 어떤 간부가 솔직하게 “국가보안법의 개정 의도는 뭣보다도 방종한 언론을 견제하고 단속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실토한 때부터 더욱 흥분들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더라도 자유당의 ‘새 군가보안법안’이란, 언론자유 봉쇄의 다섯 번째 시도였다. 앞섯번에도 수차나 말했듯이 ‘광무신문법’의 폐기 뒤를 이어 ‘출판물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만들려다가 움찔, 둘쨋번엔 ‘새 출판물법안’이 그러했고, 셋째번엔 ‘국정보호임시조치법안’이 또 그러했는가 하면, 넷째번엔 ‘협상선거법’ 중의 언론조항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번번 고개를 들다간 언론계로부터 되게 얻어맞고 수그러졌던 ‘고물단지’를 거듭 들고 나섰으니, 언론인들의 지탄을 안 받을 수 없었다 …… 그러나 이어서, “그렇던 자유당이 오늘엔 여론을 전혀 깔아뭉개고 ‘방공 철저’에 이름을 빌어 나라의 일년지계인 예산안의 심의마저 월년을 시키면서까지 ‘국가보안법안’을 기어이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은 무슨 소리냐”고 비난했다.
 신문들의 논조가 뜻밖으로 강경해지자 자유당은 어거지를 쓰면서 신문에 맞섰다. 매스컴에선 “언론억압 조항”만을 반대했건만, 마치 그 법 전체를 무시하는 것처럼 덮어씌우려 했다. 즉 “동법의 개정이나 강화를 방해하는 자는 결과적으로 그들(공산도배)의 간악한 계략과 술책에 빠지는 것”이라고, 우리 언론인들을 ‘간첩동조자’처럼 몰아쳤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젖내나는 억설이 아니던가 ..  〈550∼551쪽〉



 이 책에서 우승규 님은 “문제는 ‘인심을 혹란케 하여 적을 이롭게’라는 점에 있었다. 그것은 귀걸이 코걸이 식으로 언론인들의 숨통을 틀어막자는 것이었다. 중앙과 호흡을 같이하려는 지방 언론동지들의 분기는 당연했다. 특히 시골서 고립무원한 그들에게 만일 ‘언론규제’의 그 조항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가뜩이나 푸대접받는 그들은 손과 발을 결박당하게 되므로 안 그럴 수 없는 절박한 문제점이었다. 다른 한편, 지방 각처로부터 “동법의 빠른 통과를 촉진토록 진정한다”는 연판장이 각 신문사로도 날아들었다. 이것은 묻지 않아도 부산에서 정치파동 때에 있었던 ‘우의마의’ 따위의 조작된 민의다. 나는 두 번째로 〈인권옹호가 구두선에 그치지 말라〉는 사설로 언론조항의 삭제를 극력 주장했다.”고 덧붙입니다.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국가보안법입니다. 그리하여, 헌책방 일꾼을 붙잡아 가두려는 공안 경찰들은 ‘자기 스스로 읽어 보지도 않은 책(그래서 줄거리가 어떤 줄 모르면서 딱지만 붙어제낍니다. 공안 경찰이 불온이념도서라고 한 책에는 《노자와 21세기》조차 들어 있으니까요)’에 빨간딱지를 붙이며 ‘불온 이념도서’라고 못박습니다. ‘불온 이념도서’란 “나쁜 생각을 품고 나라를 뒤엎으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독재정권을 뒤엎던 젊은이들이 읽던 책, 썩은 나라를 뒤엎으려고 한 그분들이 읽던 책도 ‘나쁜 책’인가요. 나라(일제 식민지)를 뒤엎으려고 했던 분들 책이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가 쓴 글을 담은 책과 장지연 님이 쓴 글을 담은 책마저도 ‘불온 이념도서’ 목록으로 집어넣는가요?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그래서 나라 안팎 경제학과 대학교수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파헤친 보고서나 학습자료나 연구결과서’를 책으로 묶어냅니다. 공안 경찰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이 썼다는 자본론’을 나쁜 책으로 삼는데, 이 두 사람이 쓴 책이 들어간 ‘자본’하고는 아주 다른 ‘자본’을 이야기하는 책까지 ‘불온 이념도서’ 목록에 넣은 모습을 보노라면, 그저 겉핥기로 대충 수사를 하며 공무원 실적을 올리려는 꾐수로만 느껴집니다. 아니, 겉핥기 꾐수 수사만이 아니라, ‘민중을 지키는 지팡이’로 일할 경찰이 아닌 ‘민중을 때려잡아 자기들 쇠밥그릇만 지키면 된다는 못된 몽둥이’로 백성을 짓밟고 올라탄 나쁜 놈들입니다.

 헌책방 일꾼은 책을 팔아 장사를 할 뿐입니다. 공안 경찰이 말하는 ‘불온 사상 유포죄’라면, ‘공안 경찰 당신들이 빼앗아 간 책으로 대학교 경제학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붙잡아 갈 일이 아닐까요. 이 일이 먼저가 아닐까요. 그보다는 이런 책을 써내는 사람들과 펴내는 사람을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요(그런데 이렇게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나라이니까요. 그 어떤 사상과 철학과 믿음까지도 자유롭게 펼치고 나눌 수 있어야 하는 나라니까요.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 불교를 믿는다고 해서 기독교 믿는 이는 다 죽어야 합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서 이슬람교 믿는 사람은 다 없어져야 합니까?).

 헌책방에 들어와서 팔리는 사회과학책은 몇 권 안 됩니다. 2003년 여름부터 장사를 한 〈가자헌책방〉은 네 해가 조금 못 되는 동안 16000권이 넘는 책을 팔았고, 이 가운데 500권이 채 안 되는 책이 ‘불온 이념도서’ 딱지를 받았습니다. 딱지를 받을 만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책을 ‘불온 이념도서’라고 쳐 봅시다. 그러면 1만6천 권 가운데 500권이면 몇 %입니까. 5/160이면 %로 얼마입니까?

 %로 치면 거의 안 팔렸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책, 실제 새책으로도 첫판 3000권은커녕 1000권도 잘 안 팔리는 이 책들입니다. 그동안 헌책방에서 이런 책이 팔렸다고 해 보아야 몇 권이나 팔렸을까요. 헌책방 일꾼들도 ‘사회과학 책들은 요새 안 팔리기 때문에, 중간상인이 팔러 와도 잘 안 사고 그냥 버린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다 사 놓고 책꽂이에 갖추어 놓아도 오래도록 먼지만 먹고 있기 때문에 틈틈이 갈무리해서 폐휴지로 버립니다. 팔리는 부수나 가짓수로 따진다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를 따를 수 없겠지요. 그런데 왜 헌책방 일꾼이 붙잡히고 구속이 되고 구속적부심을 받아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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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은 이름만 좋은(?) 법이라고 느낍니다.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자’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이름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다면 이 법으로 지키겠다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나라는 어떻게 있어야 ‘안전하게 지켜지’는가요.

 저는 이달 6월 1일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사진책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개인 도서관입니다. 한 자리를 마련해 책꽂이를 착착 들여놓고 책도 갈래에 따라 나누어 꽂아 놓는 동안 ‘도서관등록’을 신나게 알아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도 뒤지고 구청과 문화관광부 서식과 알림글도 꼼꼼이 챙겨 읽었습니다. 그리하여 얻은 것은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나와 사서자격증을 따고, 열 사람이 넘는 도서관위원회를 꾸미고 도서관 크기와 시설을 어떠어떠하게 갖추고 이밖에도 여러 가지 조건을 채워서 허가를 받지 않는다’면 ‘도서관 등록’이 안 될 뿐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이름’조차 쓸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조항들. 이름은 ‘도서관과 독서를 진흥한다는 법’입니다. 그러나 실제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2006년 여름까지 도서관으로 등록한 곳들이 나라에서 뒷배(돈 얼마쯤)를 독차지하고자, 그 뒤로 새로 문을 열 도서관을 막아 주는 장치, 이른바 쇠밥그릇이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이었습니다. 참 웃기는구나 싶고, 저는 나라나 지역정부에서 제 도서관에 어떤 뒷배를 안 해 주어도 상관없기 때문에 한 푼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 책과 힘과 돈으로 여는 사진책 도서관은 ‘도서관’으로 등록할 수도 없지만 ‘도서관’ 이름조차 쓰면 안 되도록 못박혀 있습니다. 그래, 하는 수 없이 등록은 ‘출판사 등록’을 했습니다.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있습니다. 이 법을 보면, 15조 1항에 “자전거의 운전자는 도로교통에 관한 법령을 준수하여 자동차의 통행에 방해가 되거나 보행자에게 위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2항에는 “자전거의 운전자는 자전거도로를 통행하여야 한다. 다만, 자전거도로가 설치되지 아니한 도로에서는 다른 법령에 통행방법이 따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행자에 주의하면서 도로(차도와 보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차도를 말한다)의 우측가장자리 부분으로 통행하여야 한다”라고 적혀 있고, 3항에는 “자전거운전자가 자전거에 탑승한 채로 도로를 횡단하고자 할 때에는 자전거횡단도를 이용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자전거이용 활성화’라고 하지만, 자전거는 ‘자동차 통행에 방해되는 물건’으로 여겨집니다. 정작 ‘활성화’를 할 어떤 조항도 들어 있지 않은 법령이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입니다.

 자전거는 자전거길로 다니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 나라 ‘정식 자전거길’ 가운데 98% 넘는 길은 ‘일반 거님길을 반으로 뚝 갈라서 돌을 다른 빛깔로 깔고 페인트 죽 그은 길’입니다. 지금도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에서 ‘자전거길을 만든다’면서 수십 수백 수천억 원까지 들여서 짓는다는 자전거길은 ‘사람들 다니는 거님길’을 반으로 뚝 자르는 것으로 잡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타고는 건널목도 건널 수 없지요. 찻길을 달리면서도 네거리 신호에 따라 달릴 수도 없지요. 건널목이나 네거리에 ‘자전거횡단도’가 페인트로 그려진 길은 눈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을 만큼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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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을 괴롭히는 여러 가지 가운데 지금도 아주 사라지지는 않은 일로 ‘헌책방 일꾼을 장물아비로 보는 경찰들 눈길’이 있습니다. 열 해 스무 해 넘게 헌책방 살림을 꾸려 온 분들은 몸으로 익혀서 ‘훔쳐 와서 팔려는 책’을 가려보는 눈이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훔친 책’을 솎아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때때로 ‘훔쳐 온 책을 멋모르고 사들였다’가 ‘책을 도둑맞았다는 임자가 신고해서 붙들려 가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어이없이 장물아비로 몰려서 더러더러 경찰서에 끌려가서 하루 동안 장사를 못하는 일, 그리고 몰래 사전이며 비싼 책을 훔쳐가는 책도둑한테 시달리는 일, 여기에 헌책방 일꾼은 ‘재주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밑바닥 인생이나 하는 모자란 일감’으로 여기는 사회 눈길, 거기에 국가보안법 위반 딱지까지.

 이렇게 해 놓고 헌책방 일꾼보고 어떻게 일하라는 소리일까요. 헌책방은 이 땅 이 나라에서 죄다 사라져 버려야 속이 시원합니까? (4340.6.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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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는 재미를 모르니 세탁기를 쓰지요.
 밥하는 재미를 모르니 바깥밥 사먹지요.
 집 가꾸는 재미를 모르니 아파트 사서 살지요.
 걷는 재미를 모르니 자가용을 끌려고 하고요.
 골목길 누비는 재미를 모르니 자전거를 안 타게 되네요.
 배우고 나누는 재미를 모르니 책을 안 읽어요.
 사랑하는 재미를 모르니 치고받고 싸우며 제 욕심만 채우더군요.
 아름답게 사는 재미를 모르니 겉모습 매만지며 나이를 안 먹으려고 해요.
 늙어가는 재미를 모르니 죽음을 두려워하고 제 중심을 못 세우네요.
 웃는 재미를 모르니 자꾸 서양바라기, TV바라기가 되며.
 우는 재미를 모르니 이웃사랑 아픔에 등돌리더라구요. (4340.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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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 정보뿐 아니라, 책으로 세상을 보는 눈길을 가다듬을 때 늘 도움을 많이 주고받는 선배네 ㅇ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다가, 이래저래 가지를 친 다른 사람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본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예전에, 그러니까 2004년에 낸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책을 읽으며 내 문장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책소개 글을 썼던 사람이 쓴 글이다. 이분 글에 내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잠깐이 아닌가? ^^;;;;;;;). 죄송스럽지만, 이분 글 뒤에 묶음표()를 치며 짤막짤막 내 느낌을 달아 보고 싶다.


.. 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헌 책방에 관해 쓴 어떤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리면서 부터다 책 리뷰에 대해서는 굉장히 솔직한 편이고 내가 주례사 비평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작가한테 잘 보일 아무런 의무도 없기 때문에 작가 생각에 반대하거나 특히 작가의 문장력이 떨어질 때는 가감없이 비판하는 편이다(저도 독자한테 잘 보일 마음 없어요 ㅋㅋㅋ 그리고 독자들 생각에 굳이 반대를 하거나 꼭 동의를 할 까닭도 없구요 ㅋㅋ). 내가 보기에 그 책의 저자는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저도 잘 압니다. 죄송하옵니다). 솔직히 책 내용도 상당히 지루했고 뭐랄까, 수필을 쓰기엔 상당히 글 쓰는 능력이 부족한 편이었다(저는 늘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하니까요. 더구나 저는 수필을 쓴 게 아니걸랑요. 수필 아닌 글을 수필로 읽으셨다니 너무 황송스럽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사람 독자가 많았는지, 어떤 사람이 댓글로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그런 일이 있었나요? 제 글 독자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는데). 내가 문제삼은 것은 작가의 문장 실력이었는데, 그 사람은 내 글을 제대로 안 읽었는지 헌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본주의에 경도된, 뭐, 어쩌고 하면서 책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아, 어떤 분이 어떤 글을 썼는지 저로서는 모르는 일이라서 이것 참 죄송하게 되었군요. 뜻하지 않게 피해를 입으셨네요). 책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도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나는 늘 지나치게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문제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공격이 어처구니가 없었다(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몸에 안 좋습니다. 햇볕을 보고 사셔야지요 ^^;;;;;). 또 웃긴 건 책을 좋아하면 그게 헌 책이든 새 책이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맞습니다. 부디 헌책방도 있는 그대로 봐주셔요) 더군다나 나는 한 번도 헌 책방 문화에 대한 비판을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다문화주의에 입각해 여러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특히 소수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문화가 많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데 내가 미쳤다고 헌 책방 문화를 비난하겠는가(근데, 헌책방은 소수자 문화가 아니걸랑요? 그리고 띄어쓰기를 엉터리로 하지는 말아 주셔요. ‘헌 책방’이 아니라 ‘헌책방’입니다. 책방이 ‘헐어서’ ‘헌 책방’인가요?)? 더 재밌는 건 그 책의 저자가 내 리뷰에 대해 길고 긴 댓글을 달았다는 점이다(죄송하게 되었네요). 저자가 댓글을 달면 감동해야 하는데도,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저런, 어째서 그랬을까요. 근데, 저는 독자가 감동하라고 댓글 달지는 않아요. 글쓴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껴서 댓글을 달 뿐입니다). 과연 저자가 인터넷 리뷰에 대해서 자기 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거기에 대해 리뷰어를 반박하는 댓글을 다는 게 옳은 일일까(저는 제 책을 비판했다고 댓글을 달지 않아요. 섣부른 칭찬을 해 주어도 댓글을 달아요. 의사소통이잖아요. 글쓰는 사람은 의사소통을 하면 안 되나요?)? 그렇게 되면 리뷰어 역시 이 글을 쓰면 저자가 기분나빠 하겠구나, 자제해야지 하면서 자기 검열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리뷰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지나친 생각이시네요)? 저자의 댓글은, 처음에 댓글 단 사람과는 달리 예의를 갖춘 (당연히 그래야 하겠지만) 글이라 기분나쁘지 않게 잘 마무리 됐으나 솔직히 그 저자에게도 실망스러운 점은 있었다(실망스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예의 갖추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예의를 안 갖추었으면 사고가 날 뻔했네요 ^^;;;;). 그 사람 역시 내가 헌책방 문화를 경시했다고 생각한 것이다(글쎄요, 저는 님께서 ‘헌책방이라는 곳을 가 보지 않고 헌책방을 책으로만, 또는 글로만 읽고 말하는구나’ 하고 느껴서, ‘부디 헌책방에 한 번이라도 몸소 나들이를 해 주셔요’ 하고 말씀드렸을 뿐인걸요. 이 댓글을 달면서 예전 글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님께서 ‘제발 헌책방에 가 본 다음 이야기를 해 주셔요’ 하고 적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지 세 해가 지났는데, 님께서는 아직 헌책방 나들이는 안 해 보셨나 보네요 ^^;;;;;). 책의 수준과 책의 주제는 엄연히 다른 얘기인데 그 사람도 자기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부정적인 이유를, 본인의 글솜씨에서 찾은 게 아니라, 내가 헌책방 문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쁘게 평가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저는 제 책이 나쁘게 평가되건 좋게 평가되건 마음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헌책방이라는 곳을 편견으로 보느냐, 편견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느냐로 살필 뿐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헌책방 문화를 사랑해 마지 않는 사람은 모두 그 책을 훌륭하다고 평가해야 하는 건가(그건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 그럴 수 없는 법임은 님께서 잘 알잖아요? 그쵸?)? 그 저자와는 별 다른 감정 없이 잘 끝났지만, 처음에 댓글 단 사람과는 계속 논쟁을 하다가 정말 기분이 확 상해서 리뷰 자체를 안 쓸 정도로 잠시 알라딘을 떠났었다(누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참 죄송합니다). 회의가 들어서 내 일기장에 쓰고 말자, 내가 미쳤다고 이런 곳에 리뷰를 올려서 이런 얼토당토 않는 비난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기가 막혀서였다. 지금 같으면 그런 공격적이고 비난적인 댓글에는 가볍게 농담으로 받아치고 넘어가 버릴텐데 그 때만 해도 인터넷 악플에 별로 당해 본 적이 없어서 일일이 대응하다 보니 나중에는 쌍욕이 오가는 것이다. 하여튼 그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서 상대적으로 페이퍼는 잘 안 쓰게 되고, 설사 비판적인 리뷰를 쓰더라도 아예 알라딘에는 올리질 않거나 아니면 좀 순화시켜서 개제하게 됐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는, 주제가 옳다고 해서 좋은 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백 번 옳으신 말씀입니다) ..  〈어느 분 ㅇ블로그에 올라온 글에서 따옴〉


 책을 낸 사람으로서, 내 책을 읽는 이가 내 마음을 모두 다 받아들인다거나 헤아린다고 느끼지 않는다. 또한 내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적는 이 마음을 내가 다 헤아리거나 살필 수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다. 헌책방을 한 번이라도 몸소 찾아가서 즐겨 보지 않고서 ‘헌책방 문화’를 어찌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


 뭐, 나는 일본에 딱 한 번 겨우 가 보았지만, 일본책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한다. 일본말을 읽을 줄도 모르면서(읽기는 하지만 번역은 못한다. 그래도 사전 보면서 번역하면 초벌 번역은 할 수 있다) 그런다. 내가 사는 모습을 보더라도, 어떻게 보면 ‘헌책방을 안 가더라도 헌책방 문화를 생각하거나 걱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헌책방을 말하는 일’을 달가이 여기지 않는다. 덧붙여 나는 ‘헌책방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헌책방 삶을 꾸리는 사람’, ‘헌책방으로 사는 사람’, ‘헌책방과 함께 있는 사람’이다.


 늘 우러르고 섬기지만, 꼭 우러르거나 섬기지 않는 다짐이 한 가지 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뒤에서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 맞는 소리이다. 옳은 소리이다. 그이를 내가 얼마나 잘 알기에 어디에서 주워들은 뒷이야기 한두 가지를 놓고 함부로 호박씨를 깔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호박씨를 깔 자유는 있다. 호박씨를 까며 일어나는 모든 책임을 자기 스스로 짊어질 수 있다면. 호박씨를 까되, 엉터리 소문이나 잘못된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그래, 이 글을 쓰신 분은, 여러 가지를 잘못 짚고 있다.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지만, 이분은 ‘책을 늘 가까이하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자기가 가까이하는 책을 얼마나 자기 마음으로 곰삭이고 받아들이면서 자기 삶을 가꾸는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내 느낌이라는 소리다. 이분은 서울에 살지 않는다고 했으며 어느 지역에 산다고 했으나 어디인지는 모른다. 시골(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에 세 해 남짓 살면서 느꼈는데, 웬만한 지역도시에서조차 헌책방 문화를 맛보거나 즐기기란 참 어렵다. 충주 시내에는 헌책방이 하나 있지만 참고서와 가벼운 연애소설만 가득할 뿐이다. 더욱이 충주 산골에 있던 내가 시내로 가는 시간보다는 서울로 고속버스 타고 나가는 시간이 더 짧으니 원……. 어쨌거나, 자기가 마음을 쓰고 몸을 움직일 줄 안다면, 헌책방 문화 맛보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 나라는 모든 것이 서울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하루쯤 짬을 내어 서울 나들이를 하면 ‘적어도 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몇 군데 훌륭한(?) 헌책방’을 찾아가며 ‘헌책방이 이렇구나’, ‘헌책방에 이런 책이 있구나’, ‘헌책방에서는 이런 책을 만날 수 있구나’ 하고 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나는 책 많이 읽는 사람을 썩 좋아하지 않고, 반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머리에 수많은 지식을 담아 놓기는 하되, 그 지식을 제대로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다 그렇지는 않으나, 으레 그런 편이라 참 힘들다. 말하기 힘들고, 술을 마셔도 괴롭기 일쑤다. 지식을 제대로 못 쓰기도 하지만, 자기 몸으로 곰삭여서 그 좋은 책에서 펼쳐 선사해 준 슬기를 자기 나름대로 가다듬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태ㆍ환경 책을 많이 읽고, 아이들한테 좋은 책을 읽히는 사람들이 ‘강남-일산-분당-성남-용인’ 같은 아파트마을에 산다는 일은 얼마나 뒤틀린 모습, 모순인가? 이런 아파트마을은 부산과 대구와 인천과 대전에도 엄청나게 있다. 같은 아파트라고 해도 허물없이 살가운 이웃마음을 느끼고 나누는 곳이 있지만, 세콤 경비원이 지키며 카드를 대야 문이 열리는 메마른 아파트도 있다. 요새 아파트는 거의 모두 메마른 아파트 아닌가?


 나는 내 책을 비평하든 비판하든 누구나 자유라고 생각한다. 또, 이런 일은 반드시 아주 홀가분하게, 언제 어디서라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느낀다. 한편, 내 책을 읽고 든 느낌을 펼치는 사람한테, ‘책을 쓴 사람으로서 내 책을 읽어 준 사람한테 드리는 말’을 적는 일 또한 자유이며, 한편으로는 의무나 책임이라고 느낀다. 첫째, 내 책을 기꺼이 사거나 빌려서 읽으며 자기 시간을 써 준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가.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둘째, 사람마다 읽는 눈길이나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최종규는 〈아〉라고 말했으나 읽는이는 〈어〉라고 읽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대목은 찬찬히 짚으며 서로 다르게 보던 눈길과 눈높이를 맞추며 ‘글에 담은 뜻과 줄거리와 마음’을 깊이 살피도록 맞추어야 한다고 본다. 셋째, 물건 하나를 사도 ‘A/S’라고 해서 품질보장을 해 주는데, 책을 쓴 사람이나 만든 사람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느껴서 읽는이가 느끼거나 생각한 대목에 댓글을 달아주어야지. 넷째, 의사소통이요 이야기나눔이다. 이 세상 수많은 책이 있는데 똑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을 나누며 좀더 나은 쪽으로 생각을 추스르거나 가꿀 수 있지 않을까. 다섯째, 글쓴이가 읽은이한테 쓰는 댓글은 ‘글쓴이로서는 지난번 책에 미처 못 느끼거나 몰라서 제대로 못 담은 대목을 깨달아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되는 만큼, 더 애쓰거나 힘써서 다가서야 할 대목이라고 느낀다.


 아무튼, 이분이 쓴 글을 어찌어찌하여 읽게 되면서 새삼스러운 벽을 또다시 느낀다. 늘 되뇌이기도 하고 글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나는 내 ‘글솜씨(문장력)’ 키울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다. 나는 못난쟁이로 살고플 뿐이다. 낱말 하나, 말투 하나까지도 가장 낮은 자리로 맞추고플 뿐이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대로 글을 쓸 뿐이다. 나를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느끼지만, 내가 쓰는 글은 내 말 그대로일 뿐이다. 말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이 말을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속으로 말을 한다. 입으로 말하면 침이 너무 말라서 힘드니까 속으로 말한다. 속으로 말을 하며 높낮이를 주기도 하고, 짧게 끊기도 하며, 때때로 잠깐 숨을 돌리기도 한다. 글을 쓰며 줄을 바꿀 때는 숨을 돌릴 때이다. 줄을 바꾸지 않고도 잠깐 자판 치기를 멈추며 히유 한숨을 쉬기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람을 쐬기도 한다.
 

 나한테 중요한 대목은 ‘글솜씨’가 아니니까. 나한테 중요한 대목은 ‘내가 얼마나 내 삶을 나 스스로한테 즐겁고 신나면서 아름다울 수 있게, 그러는 가운데 내 이웃들한테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느냐’에 있으니까. 이 나라에 ‘헌책방’이라는 곳이 생긴 뒤로 여태까지 제대로 대접 한 번 못 받아 온 헌책방 일꾼들이 스스로 보람을 느끼며 좀더 힘차게 일해 주실 수 있기를 바라는 게 내 글이니까. 내 글솜씨 자랑이 아니라, 헌책방 일꾼들과 헌책방 책손과 헌책방 책시렁에 묻히는 책이 좀더 잘 드러나 보이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게 내 글이니까. 되도록 ‘최종규’라고 하는 개인은 드러나지 않고 묻힐 수 있도록, ‘헌책방 어느 곳’하고 ‘헌책방 어느 곳을 찾아가는 책손’하고 ‘헌책방 어느 곳에 묻혀 있는 어떤 책’이 앞에 드러나면서 사람들한테 환히 보이도록 해 주는 게 내 몫이라고 느끼니까.


 나는 헌책방 일꾼들 이야기를 할 때, 헌책방 책손 이야기를 할 때, 헌책방 헌책 이야기를 할 때 기쁘다. 하루하루 새로운 이야기를 배운다. 언제나 내 자신이 새로워지고 내 눈길은 새로 태어나며 내 마음은 밭갈이가 된다. 그러고 보니, 내 책 때문에 마음앓이를 한 그분은 지난번이나 이번이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헌책방은 ‘헌책방’이지 ‘헌 책방’이 아니다. 왜 ‘헌 책방’이라고 쓰는가? 책방이 헐었는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이런 낱말 하나하나가 헌책방을 잘못 받아들이고 잘못 보는 첫 단추가 됨을 생각하지 못하나?


 뭐, 어쩔 수 없지. 기자들도 거의 똑같으니까. 적어도 ‘국어사전에서 헌책방이라는 낱말을 한 번이라도 찾아보았다’면 이 따위 어이없는 글잘못을 저지르는 법은 없다. 기자들한테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셨어요? 헌책방은 띄어서 ‘헌 책방’이 아니라 ‘헌책방’ 한 낱말입니다. 헌책방에서는 ‘헌책’을 다루지요? 헌책을 다루니까 ‘헌책방’이잖아요. 새책을 다루면 ‘새책방’이고요. 새책방은 ‘새 책방’이라고 쓰실 겁니까? 굳이 띄어서 쓰고 싶으시다면 ‘헌책 방’으로 쓰셔야지요. 이렇게 쓰는 낱말에 헌책방을 바라보고 느끼는 속깊은 편견과 선입관이 있다는 걸 부디 느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말한다. 하지만, 여태껏, 내가 헌책방 이야기로 200번 넘게 취재를 당해(?) 온 1995년부터 이날 이때까지, 어느 한 번도 이런 말에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고칠게요’ 하고 말해 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뭐, 이분은 “소수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문화가 많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데 내가 미쳤다고 헌 책방 문화를 비난하겠는가?” 하고 말한다. 헌책방은 ‘소수자들에 의해 공유되는 문화’일까? 글쎄, 그렇게 본다면 더 할 말이 없다. 그저 슬플 뿐이다.


 “책의 수준과 책의 주제는 엄연히 다른 얘기인데 그 사람도 자기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부정적인 이유를, 본인의 글솜씨에서 찾은 게 아니라, 내가 헌책방 문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쁘게 평가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고 말하는 그분. 누가 뭐라든가. 나는 그 책을 낼 때 ‘나는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이요!’ 하고 내세울 마음도 없었지만, 내 문장력을 보여줄 목적 또한 없었고, 내 책을 읽으며 내 문장력을 보라는 소리를 ‘머리말이든 꼬리말이든 그 어느 대목에서건 안 적었’으며(이 따위 짓을 하려면 책을 내지 말아야지) ‘내 문장력이 아닌 “제발 헌책방에 가서 헌책방 좀 있는 그대로 봐 주셔요!!!!!!” 하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뿐’이다. “그렇게 따지면 헌책방 문화를 사랑해 마지 않는 사람은 모두 그 책을 훌륭하다고 평가해야 하는 건가?”라는 말을 보면 기운이 다 빠지고 어깨가 축 처진다. 나는 내 책 《모든 책은 헌책이다》에서 ‘최종규라는 사람이 헌책방을 다니고 헌책방을 이야기하면서 헌책방을 잘못 보거나 잘못 이야기하거나 잘못 느낀 대목을 알려주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내 글솜씨가 모자라다는 도움말은 언제나 고맙다. 이런 소리는 예나 이제나 늘 듣고 있으니까. 또한, 내 글솜씨가 모자람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 주니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남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내 글을 며칠 지난 뒤 다시 읽어도 부끄럽다. 한두 해 흐른 뒤 읽으면 얼굴이 붉어진다. 대여섯 해 지난 뒤 읽으면 다 찢어버리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나는 이 대목을 허투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 깊이깊이 되새기고 곱씹을 노릇이다. 날마다 헌책방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사람으로서, 늘 똑같은 목소리와 줄거리로 주절주절 떠든다면 어느 누가 내 이야기를 좋다고 들어 주겠는가. 헌책방 삶과 헌책방 일꾼들 모습이 얼마나 있는 그대로 사람들한테 다가갈 수 있겠는가.


 나는 ‘헌책방을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헌책방으로 아무런 편견과 선입관 없이 찾아가서 스스럼없이 즐기기를 바라는 한편, ‘헌책방을 오래도록 다니고 있는 내 자신’부터 곧은 중심을 잡아서 흔들림없이 살아가면서 나를 꾸준히 가꾸어야 한다. 가꾸고 또 가꾸어도 언제나 모자란 내 자신을 돌보고 닦아세워야 한다.


 그래서 주절주절 이런 글 하나를 써갈기고 있다. 첫째, 내 자신을 가다듬으며 뒤돌아보려고. 둘째, 제발 헌책방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찾아간 다음 헌책방 이야기를 해 달라고. 그러고 보니, 딱 한 마디만 적으면 되었을 글인데, 참말 길게 늘어뜨리고 말았네. (4340.6.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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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6-16 09:56   좋아요 0 | URL
최종규님, 이런 식으로 또 댓글을 달게 되서 매우 유감입니다 정말 님과 논쟁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이런 식으로 제가 쓴 글의 문장을 저도 모르게 퍼오는 것, 유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님이 평범한 알라딘 서재인이라면 나와 감정이 상한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건 좀 다른 문제 같아요 지난 번 "프리챌" 에서인가? 님이 운영하는 동호회에 제 리뷰를 제 동의도 없이 퍼서 올려 놓은 걸 보고 기분이 적잖이 상했지만 그냥 넘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님은 작가이고 저는 독자입니다 어쨌든 님은 파급력을 가진 사람이고 이런 식으로 제 글을 퍼 나르는 건 저로서는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님이 원하는 의사소통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왜 독자가 본인이 쓴 리뷰에 대하여 일일이 해명을 해야 하는지 솔직히 좀 의문스럽습니다 어쨌든 님과 논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제 글을 저도 모르게 퍼 가시는 건 저로서는 불쾌한 일이고 예의도 아니라는 걸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숲노래 2007-06-16 17:56   좋아요 0 | URL
논쟁을 하려고 쓴 글이라면, 이 자리에 이렇게 쓰지 않았을 테지요.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려고 이 글을 썼을 뿐입니다.
글을 따와서 쓰는 것은 제 이야기를 펼치는 데에 도움을 삼으려고 따올 뿐이지,
누군가를 해코지한다거나 논쟁을 하고자 따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 쓴 어디에 있는 글이냐 하는 서지사항 또는 판권사항이라 할 것을
일부러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또한, 이 글은 `논쟁'이나 `의사소통'을 하고자 쓴 글조차도 아닌 한편,
저는 제 자신이 `파급력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이 글에 붙인 제목부터 "나는 작가가 아니다"인걸요.
(군더더기로 붙이면, 제 알라딘 서재 방문자 평균은 하루 4~5사람입니다.
오늘은 무슨 일에서인지 벌써 40명이 넘어서 깜짝 놀랐습니다만.
평균 방문자 숫자가 4~5명이 채 안 되는 사람이
어쩌다가 한두 번 글 올리는 서재 글에 무슨 파급력이 있을까요?)

한 마디 덧붙여 보면, 제가 "평범한 알라딘 서재인"이 아니라고 하시는데,
`평범'이라는 잣대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제가 쓴 이 글은 `해명'할 목적이 없는 글입니다.

한편으로, 제가 어떤 글에 해명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엄연한 제 자유이지 누가 뭐라고 할 대목이 아닌 줄 압니다.
해명을 하건 말건, 해명을 할 사람 자유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나귀'라고 하는 사람이 쓴 글을 따와서
"나는 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한다"라든지,
"나는 그 대목에서는 이렇게 느낀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해명'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글이 어떻게 `논쟁'이 될까요?

marine 2007-06-16 20:54   좋아요 0 | URL
OK~~ 님의 의견이 그렇다면 뭐~~ 다만 제 리뷰를 동호회 같은데 가져가서 올리지는 말아주세요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함 자기 글이 자기도 모른 곳에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호의적이지 않은 곳에서 말이죠)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숲노래 2007-06-17 15:53   좋아요 0 | URL
님께서 그런 생각이라면, "자기와 다른 자리에서 다른 생각으로 살면서 다른 글을 쓰며 다른 책을 읽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참과 다르게 풀어내면서 비틀지 않아 주실 수 있어야겠지요. 영화나 만화를 안 보는 사람도 영화나 만화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영화나 만화를 안 보면서 펼치거나 생각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속깊이 살피며 참맛을 즐기는 가운데 서로한테 도움이 되도록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헌책방 이야기와 문화는, 책 몇 권 읽는 것으로는 겉핥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마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헌책방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가 하루하루 줄어들지 않으니까요. 그럼, 이만.

marine 2007-06-17 22:50   좋아요 0 | URL
제가 원하는 것은, 제가 쓴 글을 다른 곳에 옮기지 말아달라는 겁니다 동호회에 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올린 리뷰는 삭제해 주세요 답변주세요

숲노래 2007-11-06 10:04   좋아요 0 | URL
안티 댓글 부지런히 올려 주시는 분들 참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
올렸다가 지우고, 다시 와서 다시 올렸다고 또 지우시고...
 

<인천일보>에 보낸 글입니다. 아마 6월 12일에 실릴 듯합니다.


 《작가들》이라는 잡지 2007년 여름호를 보면, 1991년에 했던 이야기나눔(좌담)이 다시 실렸습니다. 이야기나눔 주제는 ‘인천문화의 재건을 위하여’. “서울이 문화적 활동무대를 제공해 주면, 인천은 언제든지 저버릴 수 있는 하나의 ‘대합실’과도 같은 존재로 격하되기 일쑤였지요 …… 인천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서울 등지로 이주하는 게 하나의 변함없는 유행으로 굳어진 게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247쪽)”라 말하는 대목이 보입니다.

 《김광식의 민주기행, 김광식의 아시아기행》이라는 책에, ‘상실의 시대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인천’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가는 대학생과 택시기사하고 나눈 이야기가 실렸군요. “대기업의 소유자들과 임원들은 거의 다 서울에 삽니다. 그러니까 인천에 화이트칼라인 사무직노동자와 생산직노동자들, 그리고 학생들이 대종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니까 교통시설은 잘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침을 짜증으로 시작합니다. 계속 타면 익숙해져서 덜 할지는 몰라도 짜증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283쪽)” 하는 이야기와 “예전 삼미슈퍼스타가 잘하니까 인기가 대단했습니다만, 김진영 감독을 쉽게 구속시켜 버렸습니다. 그게 만약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 팀이었다면 가능한 일입니까? 지방 방송국도 없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화점도 없었어요. 서울 가서 쇼핑하고 서울 텔레비전만 보니까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극장식 스탠드바는 잘되고 자꾸자꾸 생겨납니다.(287쪽)” 하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1975년에 인천 중구 송월동 3가 3번지에서 태어나 신흥동 안국아파트에서 고1 때까지 지냈고, 고2부터는 연수동에서 보냈습니다. 대학교 1년은 인천에서 다녔으나 날마다 네 시간 반을 길에서 버리니 고달프고 텔레비전 소리 시끄러운 집에 있기 싫어서, 2학년이 되던 해에 집에서 나와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자취를 합니다. 그러고는 인천에 돌아오지 않고 서울에서 삽니다.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 썩은 뒤 사회로 돌아온 다음, 대학교 교육도 초중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제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에 홀로 안타까워하다가 그만둡니다. 1999년부터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 들어가서 일하다가 2003년에 충주로 옮겨 이오덕 님 유고 갈무리를 하며 지냈어요. 이 일을 마친 다음 한 해 동안 자전거로 전국 나들이를 하며 지냈고, 시골에서 마을도서관을 꾸릴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배다리 헌책방골목 〈아벨서점〉 아주머니한테, ‘그런 도서관이라면 인천에 있으면 더 좋을 텐데’ 하는 말씀을 듣고 모든 계획을 바꿔 고향인 인천에 오기로 마음먹고, 지난 4월 창영동으로 살림을 옮기고 6월 1일에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를 열었습니다.

 인천으로 돌아온 저를 반긴(?) 소식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유치. 중ㆍ동구를 싹 뜯어없애고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세운다는 계획. 너비 50m 산업도로가 송림동과 금창동을 싹뚝 잘라버린다는 움직임. 열두 해 만에 돌아온 인천 길이 낯설어 1:5000 정밀지도를 사서 보노라니, 중ㆍ동구는 어디를 보아도 ‘재개발-환경정비 지구’입니다. 그래, 제 도서관은 끽해야 2013년까지 배다리 한켠에서 버티면 다행이겠더군요. 더구나 아시아경기대회 관광객한테 ‘지금 인천 모습’을 안 보이고픈 인천시장 정책까지 붙었으니.

 재개발이 모두 나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공동뒷간 한두 칸 덩그러니 있는 만석동과 인현동에 좀더 넓고 아늑한 공동뒷간 마련해 주는 공사는 반갑습니다. 다만, 새로 올린다 해도 스무 해를 못 버티고 허물어 다시 지어야 하는 아파트 재개발 때문에, 50년, 100년도 넘은 지붕낮은 골목집을 죄 쓸어내야 할까요. 제 도서관이 깃든 건물은 1958년에 지은 것이나 아직도 멀쩡할 뿐 아니라 무척 튼튼합니다. 역사가 무엇이고 문화가 무엇일까요. 이처럼 한 자리에 고이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과 마을 삶터가 역사요 문화가 아닐는지요. 지금 배다리는 첫째, 이웃과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고, 둘째 골목길을 걷는 즐거움이 있고, 셋째 함부로 버리는 쓰레기가 없는 깨끗함이 있으며, 넷째 서로 조용하고 알뜰히 골목길을 가꾸며 텃밭과 스티로폼 농사를 일구는 재미가 있는 한편, 다섯째 사람 냄새가 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여섯째 자동차가 씽씽 달릴 수 없어 아이들도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고 어르신도 걱정없이 마실할 수 있는 싱그러움이 있습니다. (4340.6.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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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6-11 17:15   좋아요 0 | URL
인천에서 대학생활을 한 저로서도 동인천-신도림 구간의 국철은 지옥철이라는 말이 딱 맞았죠. 강릉-인천간 버스가 개통되기 전까지의 국철 타기는 실로 끔찍한 기억이네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저녁나절, 아무리 몸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빨래를 한다. 한 가지라도. 아니, 한 가지 빨래 말고 무엇이 더 있으랴. 입는 옷가지가 많지 않고, 입는 옷가지들은 단출한 녀석들인데. 오늘 몸이 고단하다고 빨래를 미루면 내일 일을 마친 뒤에는 몸이 안 고단할까. 오늘은 내일과 같고 모레는 글피와 같을 텐데, 그날 입은 옷을 그날 빨지 않으면 하루하루 쌓이며 늘어나는 빨래를 어떻게 짐지워 낼까.

 내 몫으로 주어진 빨래를 그날그날 하노라면 하루나 이틀 걸러 빨래감이 없는 때가 있다. 같은 옷을 이틀이나 사흘 내리 입을 때도 있으니까. 이럴 때면 머리 감으며 나오는 물을 빨래할 때에 쓰지 못하니 물이 아깝다. 걸레라도 함께 빤다. 그렇지만 걸레도 깨끗하여 안 빨아 주어도 될 때에는, 그냥 흘려버리는 물이 아쉽다. 어딘가 써 주면 좋을 텐데.

 함께 사는 식구가 한 사람 늘며 빨래감이 새로 생긴다. 이제는 날마다 한 가지 빨래쯤은 꼬박꼬박 나온다. 아침에, 또는 저녁에 빨래를 하면서 ‘이렇게 손을 놀리고 움직여 주면 몸이 굳을 일이란 없고, 죽는 날까지 이렇게 조물락조물락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내 몸 어디에 병이 깃들겠는가?’ 싶은 생각. 몸을 놀리지 않으니까,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때그때 할 몫을 다하려 하지 않고 미뤄 두거나 남한테 맡기기만 하니까, 자꾸자꾸 마음이 지치면서 깎여나가고, 마음이 지치거나 깎여나가면서 몸도 무너지거나 흐물흐물거리지 않을까.

 새 식구가 된 이가 내놓게 되는 빨래감을 큰 대야에 담고 물을 받는다. 적잖은 빨래감을 보며, ‘저 빨래 언제 다 하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느긋하게 하나하나 빨면서, ‘그렇구나. 빨래란, 잔뜩 밀린 것을 치워내는 게 아니구나’ 하고 새삼 느끼다. 빨래란, ‘한 벌 두 벌 깨끗해지는 옷을 보며 내 마음도 빨래 따라 깨끗해지는 일’이구나 싶다. 깨끗이 빨린 옷이 한 벌 두 벌 늘면서 내 마음이 차츰차츰 깨끗해지고, 깨끗해지는 빨래만큼 집구석이 환해지는 일이 빨래로구나. (4340.6.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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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소 2007-06-07 19:13   좋아요 0 | URL
예전엔 몸과맘이 우울하면 부러 손빨래를 하곤 했어요..ㅎㅎ 요즘엔 귀찮고 피곤해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