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며

 : 사진잔치 - 헌책방 이야기 9



 한 사람 손을 거친 책이 모여 새 사람 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 놓은 자리가 헌책방입니다.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새책방에서 사기도 하고, 비매품 회원자료로 엮어서 나누기도 합니다. 어떤 책은 꼼꼼히 다 읽고, 어떤 책은 미처 못 읽습니다. 오래오래 간직하고픈 책이 있는 한편, 이제는 짐더미가 되어 버린 책이 있습니다. 읽으며 밑줄을 긋기도 하고, 빈자리에 자기 생각을 적기도 합니다. 때때로 사진을 꽂아 놓다가 잊고, 돈이나 도서상품권이나 꽃잎을 끼워 놓기도 합니다. 책갈피 삼아 광고전단지를 쓰기도 하는데, 세월이 흐른 뒤 펼쳐보다가 ‘아, 예전에는!’ 되새기기도 합니다.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이 새책 못 사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주머니가 넉넉하지만 살림돈 아끼자고 찾아오기도 합니다. 도서관에도 없고 판끊어진 책을 찾아서 다리품을 팔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찾아서 쥐어들 수 있는 헌책은, 누군가 제 주머니 털어서 산 책이기에, 자기한테 보물이 되는 그 책을 선선히 내놓아 주어야 우리들이 만납니다.

 책을 사들여 책꽂이를 꾸밀 수 있습니다. 줄거리를 곰삭여 마음에 채울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옮겨내어 세상에 펼칠 수 있습니다. 어떤 이한테는 값싼 잡지를, 어떤 이한테는 교재와 참고서를, 어떤 이한테는 판끊어진 보기드문 책을, 어떤 이한테는 새책으로는 비쌌으나 헌책으로는 싼 책을, 어떤 이한테는 마음을 살찌우는 작은 책을, 어떤 이한테는 지식을 넘어선 슬기를 일깨우는 조촐한 책을, 어떤 이한테는 처세에 쓸 수 있는 책을 만나는 헌책방입니다.

 헌책은 값이 싸기도 하고, 값이 비싸기도 합니다. 헌책은 2007년 7월 15일에 펴낸 책이기도 하고, 200년 앞서 나온 책이기도 합니다. 모든 책은 헌책이자 새책입니다. 모두 같은 책입니다. 모든 책방은 헌책방이자, 새책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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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낮부터 전화기를 꺼 놓고 있다. 손전화 말이다. 오늘까지도 켜지 않고 있다. 굳이 손전화로 받아야 할 연락이 있을까 싶고, 내 소식이 궁금하면 집전화를 하든 인터넷편지를 하겠지. 이참에 아예 손전화를 없앨까 싶은 생각도 든다. 손전화를 없애면 내가 번거로울까, 내 둘레에 있는 사람이 번거로울까. 번거롭다면 무엇이 번거로울까. (4340.8.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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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3 09:32   좋아요 0 | URL
주변 사람이 괴롭겠죠 :)
연락이란 건 아무래도 급한 용무가 있을 때 하지 않나요?
기동성 면에서 필요한게 손전화니까요.
저도 전화를 어지간히 안하는 사람이라서 ^^ 없애고픈 심정도 동감은 합니다만...

참, 도서관에서 책 조금 읽어보았습니다. 헌책방과 함께한- 책 맞죠? ^^
의미있는 일 하신다 생각하고 있어요.
댓글은 매번 못달지만 자주 들여다 본답니다. :)

숲노래 2007-08-14 09:5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주변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될 것도 같은데...
아마, 저한테 문자를 보내는 분들은
이 녀석이 씹네... 하고 생각할 듯해서 ^^;;;;
 


 
 오른팔꿈치가 몹시 저립니다. 저린 지는 한참 되었습니다. 올 사월에 짐을 실어 옮기면서도 저렸지만, 지난해에 자전거 타며 돌아다닐 때에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너무 많이 타고다녀서 그러지 않느냐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책짐을 혼자서 다 꾸리고 나르느라 그러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몸을 쓰면서 제대로 쉬어 준 적이 없이 글쓰기를 하느라 도지고 덧나서 이렇게 되었지 싶고요.

 어제 낮, 낡은 책꽂이를 손질하며 쫄대못을 박울 때입니다. 망치질할 때에도 쩌릿쩌릿하기에, 망치를 왼손으로 들고 못을 박아 봅니다. 처음에는 퍽 서툴어 어려웠지만, 하다 보니 왼손 망치질도 할 만합니다. 빨래는 진작 왼손빨래를 연습해 오고 있었기에, 이제는 제법 익숙합니다. 젓가락질과 숟가락질도 수월하고요. 다만, 공을 던지거나 글씨를 쓰기는 쉽지 않아요. 앞으로는 틈틈이 왼손 글쓰기를 익혀 두려고 합니다. 오른손이 그동안 참 애 많이 썼어요. (4340.8.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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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7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07-08-08 07:40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참말로, 병원에라도 가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저는 의료보험카드가 없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돈을 많이 내야 하지만,
아는 의사한테 이야기를 해서 어떻게든 진료를 받아야지 싶던데 ^^;;;;
양의사가 아니더라도 한의사 하는 분이라도 만나 보아야겠어요.
에구구구 ^^;;
 


 1980년대와 1970년대에 나온 낡은 노래테이프를 헌책방에서 열 나문 사들였습니다. 스무 해나 서른 해가 묵은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돌아가나 알아보려고 하나씩 카세트에 넣고 돌립니다. 몇 가지는 소리가 잘 안 나오거나 지지직거립니다. 그렇지만 그럭저럭 들을 만하기에 아침저녁으로 틈틈이 들으면서 일을 합니다.

 묵은 노래테이프를 들을 때면, 테이프가 끝나는 자리에 꼭 ‘건전가요’가 하나씩 끼어듭니다. 때로는 군인노래(군가)가 끼어듭니다. 군대에 있을 적 죽어라 불러야 했던 그 노래를 묵은 테이프에서 들으니 새삼스럽습니다. 새삼스럽게 소름이 돋습니다. 군대에서 벗어난 지 벌써 열 해가 넘었건만, 아직도 그 군인노래들이 제 귓가와 입가에 맴돌고 있네요.

 지난날 박정희 정권 때, 군인노래를 짓고 건전가요를 짓던 사람들은 어떤 대가와 보람을 얻었을까요. 지난날 군인노래와 건건가요를 짓던 사람들은 높은 이름과 많은 돈과 노래판 힘을 얻었을까요. 그 돈과 이름과 힘은 여태까지도 고이고이 이어오고 있을까요. 문득, 그때 그 사람들이 군인노래와 건전가요가 아닌 다른 노래, 여느 대중노래를 지었다면 어떠했을까, 자기 창작욕이나 상상힘을 불태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쎄, 그 사람들한테는 자기 창작과 상상을 한껏 불사르기보다는 손쉽고 값싸게 돈과 이름과 힘을 얻는 쪽으로 갔을까요. 자유와 평화와 평등과 통일이 넘실넘실거리는 터전이었다고 했어도. (4340.7.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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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였다. 아내가 어릴 적부터 다닌 일산 탄현동 성당에서 구역장을 맡고 계신 분이 나를 보더니, “그런데, 성당에 오실 때는 긴바지 입으셔야 돼요.” 하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런가요? 인천에 있는 성당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없던걸요. 일산만 그런가요, 다른 성당도 그런가요?’ 하고 되물으려다가 그만둔다. 인천에 있는 답동성당이며 송림동성당이며 찾아갈 때에, “반바지 입고 오면 안 됩니다.”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신부님한테도, 수녀님한테도. 미사를 함께하러 오는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 신자들한테도. 어젯저녁에는 구역미사에 갔다. 이 자리에서도 신부님과 수녀님을 비롯하여 동네 어르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내 옷차림을 놓고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한 마디, “젊은 친구니까 많이 먹어야지. 많이 드세요.” 하는 말은 듣다. 저녁 여덟 시부터 이루어진 미사가 한 시간 십 분쯤 걸려 끝났고, 미사가 끝난 뒤 위층으로 올라가서, 동네 신자 아주머니들이 차려 주는 저녁을 다 함께 먹었다. 저녁자리에는 신부님도 수녀님도 모두들 허물없이 어울렸고, 나이 지긋한 수녀님은 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하고 손뼉치기 놀이도 하신다. 오늘 새벽, 아내는 답동성당에 새벽 미사를 드리러 나들이를 갔다 왔고, 집으로 온 뒤 곧바로 길을 나서서 일산으로 온다. 용산급행 전철이 신도림역을 지날께, 탄현동 구역장님이 아내한테 손전화 문자를 보낸다. “성당 올 때 긴바지 입어야 한다”는 줄거리를 담은. 아내가 몸담은 탄현동 성당에 내가 갈 수 있는 때는 한겨울뿐이겠다. (4340.6.28.나무.ㅎㄲㅅㄱ)

 


(2007년 1월, 서울발바리 잔치에 나갔을 때 찍힌 사진.

 나는 이 사진에서 보듯이, 12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긴바지를 입는다. 2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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