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A 마나가 - comics artists' creative time
MANAGA 편집부 지음 / 거북이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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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08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

― MANAGA 1

 거북이북스 엮고 펴냄, 2014.10.15.



  생각을 꽃피울 수 있는 사람이 글을 씁니다. 생각을 꽃피우면서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림을 그립니다. 생각을 꽃피우면서 춤출 수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생각을 꽃피우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만화를 그립니다.


  새로 짓는 일은 늘 즐겁습니다. 새로 지을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한겨레는 ‘짓다’라는 낱말을 빌어 ‘밥을 짓다·옷을 짓다·집을 짓다’처럼 이야기했어요.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크게 다루거나 여길 ‘밥·옷·집’은 ‘지어야’ 누립니다.


  그리고, 예부터 한겨레는 밥과 옷과 집뿐 아니라, ‘이야기를 지으’면서 서로서로 주고받습니다. 어버이아 아이한테 이야기를 지어서 물려줍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새로 지은 이야기’를 물려받습니다.



.. 내 그림체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굉장히 허술하다. 그렇지만 그림체를 바꾸거나 작화의 밀도를 높일 생각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제일 적합하기 때문이다 ..  (주호민/21쪽)





  한겨레는 먼먼 옛날부터 ‘노래를 짓’습니다. 밥과 옷과 집에다가 이야기뿐 아니라, 노래를 지어서 부릅니다. 노래를 지어서 부르니, 춤도 지어서 추지요. 이뿐이 아닙니다. 한겨레는 웃음을 짓고 눈물을 짓습니다. 때로는 한숨을 지으며, 때로는 꿈을 짓습니다.


  언제나 짓습니다. 밥을 짓는 한편, 몸이 아플 적에는 약을 지어요. 그러니까, 한겨레는 ‘삶짓기’를 했다고 할 만합니다. 삶을 지어서 생각을 짓고, 생각을 지어서 사랑을 짓습니다.


  다만, 한겨레한테는 따로 글이 없었어요.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 나오기는 했으나, 훈민정음은 권력자와 지식인이 조금 건드리는 글일 뿐, 여느 사람한테는 너무 동떨어진 자리에 있었어요. 개화기를 지나고 일제강점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눈 밝은’ 이들이 훈민정음을 ‘한글’로 바꾸었어요. 한글로 바꾼 뒤부터, 이제 이 나라에는 ‘글짓기’가 새로 태어납니다.



.. 나이 먹고 눈이 어두워지니까, 그림이 안 되더라. ‘잘 그릴 나이에 왜 저렇게 그리나’ 하고 선배들에게 불평했던 나였는데. 만화는 눈과 손이야. 노안이 온 지금은 팔로 그려. 아직 몸으로 그리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  (백성민/74쪽)




  글짓기는 억지로 짓는 글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삶을 짓고 밥을 짓듯이, 이야기를 짓고 노래를 짓듯이, 아름다운 사랑을 짓는 글이 바로 ‘글짓기’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만화는 무엇일까요? 만화는 어떻게 한다고 해야 알맞을까요?


  글과 그림처럼, 이야기와 노래처럼, 사진과 만화도 즐겁게 ‘짓는다’고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엮어서 이야기를 펼치는 삶노래라 할 테니까요.




.. 어느 날 제 일기를 우연히 본 최호철 교수님이 ‘앙꼬, 너 자체가 바로 만화다’라고 하셨어요. 전 일기를 그리고 썼을 뿐인데, 최호철 교수님이 그렇게 얘기해 주시니까 좋았어요. 그 칭찬이 없었다면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만화는, 완성한 뒤에 느끼는 성취감이 정말 커요 ..  (앙꼬/100쪽)



  《MANAGA》(거북이북스 펴냄,2014) 첫째 권을 읽습니다. 《MANAGA》는 ‘만화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책이름을 알파벳으로 적은 뜻은, 이 만화잡지를 한국에서만 읽힐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라밖으로 한국만화를 알리려는 뜻입니다. 그래서 《MANAGA》는 한글과 영어 두 가지 글로 적습니다.



.. 몽골의 그 시절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의 목표가 아니었던, 웅혼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시대였으니까. 작은 이익에 목숨을 거는 요즘과는 달랐던 그 시대를 그리고 싶었다 ..  (장태산/152쪽)





  한국에서는 어떤 만화가 태어날까요? 한국만화는 일본만화를 흉내내는 만화일까요?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이들은 일본 만화영화 밑그림을 그리는 일꾼 노릇일까요?


  만화잡지 《MANAGA》는 한국에서 즐겁고 씩씩하게 만화를 그려서 이야기를 꽃피우려는 사람들을 하나씩 보여줍니다. 도란도란 말을 섞고, 한국 만화가 작품 가운데 몇 점을 살며시 얹습니다.



..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낮에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 졸면서 만화를 그리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거의 누워서 그림을 그렸다. 삐딱하게 누워서 그림을 그리니까 턱이 그렇게 삐딱하게 빠진 거다. 누워서 그리니 뭔가 불균형한 게 당연한 거지 ..  (박소희/195쪽)



  만화가는 만화를 왜 그릴까요? 만화를 그리고 싶으니 그리겠지요. 만화가는 만화를 그리면서 무엇이 즐거울까요? 처음과 끝을 맺은 이야기가 즐거웁겠지요.


  만화가 한 사람이 빚는 이야기는 만화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입니다. 만화가 한 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만화가 한 사람이 부대낀 이웃들과 누린 사랑입니다.


  혼자 살면서 사회와 부딪힌 만화가는 이녁대로 이 이야기를 만화로 담습니다. 아이를 낳고 복닥인 만화가는 이녁대로 이 이야기를 만화로 담습니다. 회사를 다니든 여행을 다니든, 이녁은 이녁대로 이 이야기를 만화로 담습니다. 도시에서 살면 도시 이야기를 다루고, 시골에서 살면 시골 이야기를 다룹니다.





.. 여행 중에 생각이 참 많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신기한 걸 많이 보니까. 결국 다시 드는 생각은 ‘이야기 만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만화를 그려야죠. 죽여주는 걸로 ..  (김정기/220쪽)



  그러고 보니, 만화잡지 《MANAGA》를 보면서 아주 궁금한 한국 만화가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시골에서 아이 낳고 흙 만지는 즐거움이 더할 나위 없이 크다면서 만화 그리기를 살짝 뒷전으로 미루기도 한 박연 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앞으로 《MANAGA》에서는 시골 아지매 만화가인 박연 님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 만화가 이야기를 올망졸망 보여주리라 생각합니다.


  첫 걸음을 내딛은 만큼, 앞으로도 힘차고 씩씩하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내딛을 수 있기를 빕니다. 멋들어진 작품이나 그럴듯한 그림이 아닌, 아름다운 삶과 따사로운 사랑이 감도는 만화와 삶과 넋과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잡지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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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宮 23
박소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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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75



집을 찾는 길

― 궁宮 23

 박소희 글·그림

 서울문화사 펴냄, 2010.7.30.



- “그, 그런 게 어딨어요. 요즘 세상에. 나더러 수절하고 살라구요? 나, 나도 할 거예요, 결혼. 자긴 상궁 주제에 결혼할 거면서! (107쪽)

-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 인력 때문에 너와 나는 부딪혀 망가져버리고 말았겠지. 차라리 궤도를 이탈해 멀리 달아나자고. 그러면 조금은 덜 괴로울 것 같아, 라고. 너를 부서뜨리지 않기 위해. 내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 (137쪽)



  박소희 님 만화책 《궁宮》(서울문화사,2010) 스물셋째 권을 읽는다. 곰곰이 읽은 뒤 다시 읽어 본다. 이야기가 흐르는 무대는 ‘입헌군주제’이지만, 줄거리가 흐르는 자리는 ‘젊은 사내와 가시내’ 틈바구니이다.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대통령은 어떤 자리인가. 사람 사이에 계급이나 신분이란 무엇인가. 젊은 사내와 가시내는 사랑을 어떻게 나누는가. 서로 아끼거나 좋아하거나 기대거나 돕거나 보살피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처음 태어나서 스물 살이 될 무렵까지 이 나라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궁궐에 있든 도시 여느 아파트에 있든, 이 나라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교과서 지식이 아닌 사랑을 살가이 배우거나 마주하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 궁궐 밖으로 홀가분하게 나다니지 못하는 아이는 삶이나 사랑이나 사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여느 제도권 사회와 학교에 길들다가 고등학생 나이에 궁궐에 들어가서 지내는 아이한테 사랑이나 삶이나 사람이란 무엇일까.


  ‘임금 자리 물려받기’를 놓고 젊은 사내가 옥신각신할 수 있다. ‘임금이 되려는 꿈’을 품는 일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엮어서 보여주려는 뜻은 무엇일까 살짝 궁금하다. 임금 자리에 서면 나라를 아름답게 다스릴 수 있을까? 사랑다툼을 벌여 어느 한 사람을 혼자 차지할 수 있으면 기쁘게 웃을 수 있을까? 왜 사내와 가시내는 살을 섞어야 할까? 두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을 섞을 때에 서로 아끼거나 사랑하면서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줄거리가 빠르게 흐르지만, 삶을 드러내거나 사랑을 밝히거나 사람을 보여주는 실마리는 좀 가볍거나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듯하다.


  ‘궁宮’은 ‘궁궐’을 가리키기도 할 테지만, ‘집’도 가리킨다. 임금이라는 사람이 깃드는 곳이든 임금 아닌 사람이 깃드는 곳이든 모두 ‘집’이다. 집으로 가는 길이란 보금자리로 가는 길이다. 어느 곳에 깃들든 모두 같다. 임금‘님’이 되지 않고 ‘수수한 사람’이 되더라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꿈을 키울 수 있다.


  “상궁 주제에 결혼할 거면서”라는 말마디가 오래도록 안 잊힌다. 그래, 그렇구나.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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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 12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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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07



오늘 놀이는?

― 요츠바랑! 12

 아즈마 키요히코 글·그림

 금정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4.25.



  큰아이가 자다가 재채기를 합니다. 작은아이가 재채기 소리를 듣고는 따라합니다. 재채기가 나와서 재채기를 하기도 할 테지만, 재채기를 놀이처럼 자꾸 뱉습니다. 아이한테는 무엇이든 놀이입니다. 아이는 언제나 놀이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어른한테는 무엇이 놀이일까요. 우리 어른들은 무슨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보낼까요. 우리 어른한테 술과 담배를 빼고 다른 놀이가 있을까요. 우리 어른한테 텔레비전과 영화와 책과 살섞기를 빼고 놀이라 할 만한 놀이가 있을까요.



- “시계 가르치기, 나한텐 무리다.” “그래, 어렵긴 하지. 괜찮아, 괜찮아. 그럼 시계 말고 딴 거 가르쳐 줘!” (25쪽)

- “이건, 야단맞을 일입니까? 요츠바는, 이제 야단 맞습니까?” (61쪽)





  대나무를 벱니다. 대나무를 베려고 수레를 끌고 갑니다. 자른 대나무는 끈으로 엮어 수레에 단단히 조입니다. 아이들은 수레를 타면서 놉니다. 대나무밭에 가는 길에도 수레놀이요, 집으로 오는 길에도 수레놀이입니다. 대나무를 베면 두 아이는 서로 나르겠다면서 놀고, 대나무 잔가지를 꼬챙이나 젓가락으로 삼아서 놉니다.


  수레에 싣고 가져온 대나무는 마루에서 널나무가 됩니다. 평상에 대나무를 걸쳐서 낭창낭창 널놀이를 누립니다. 굵고 튼튼한 녀석을 골라 끝에 홈을 내고 바지랑대로 세우면, 이제 바지랑대를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면서 놉니다. 술래잡기입니다. 또는 그냥 잡기놀이입니다. 때로는 그냥 돌기놀이입니다.


  밥을 먹는 자리에서 오목하고 볼록한 숟가락을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숟가락놀이입니다. 숟가락을 국에 살며시 띄웁니다. 숟가락을 배로 삼고 국물을 바다나 냇물이나 못물로 삼습니다. 아이는 밥을 먹다가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를 몹니다.





- “또 그래. 손이 파랄 때쯤이야 있지! 저 헬멧도 파랗잖아! 저것도!” (78쪽)

- “아빠, 날다람쥐는 별처럼 날아.” (103쪽)

- “요츠바는 과자가 더 좋은데.” “응, 그럼 장난치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128쪽)



  아즈마 키요히코 님이 빚은 만화책 《요츠바랑!》(대원씨아이,2013) 열둘째 권을 읽습니다. 예전에는 우리 집 큰아이가 이 만화책을 안 보았는데, 이제 이 만화책에 제법 눈길을 보냅니다. 눈을 반짝이면서 들여다봅니다. 일곱 살 어린이 눈에 요츠바는 어떻게 보일까요. 또래라 할 요츠바는, 어쩌면 동생일는지 모를 요츠바는, 우리 집 시골순이·놀이순이·꽃순이·자전거순이한테 어떤 아이로 비칠까요.





- “주머니 달린 집이라니! 요츠바는 장래에 이런 집에 살아야지!” (159쪽)

- “어때, 요츠바. 스스로 만든 카레, 맛있어?” “응! 진짜 같아! 비법양념 맛이 잘 배었어.” (180쪽)

- “좋겠다! 그렇게 멋진 거 요츠바는 생각도 못했어. 그래서 도토리 무지 않은데 그런 보석은 하나도 없어. 좋겠다! 요츠바도 그거 좋아! 요츠바도 그거 갖고 싶어! 부러워!” (188쪽)





  놀기에 하루가 즐겁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놀기에 하루가 즐겁습니다. 어른이 하는 일이란, 스스로 삶을 짓는 놀이와 같습니다. 손수 삶을 가꾸는 노래와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개구지게 뛰놀기에 새로운 놀이를 찾아서 일감을 헤아립니다. 어린 나날부터 신나게 뛰놀기에 다시금 놀이를 생각하면서 일머리를 잡습니다.


  풀을 베면서 노래합니다. 나무를 깎으면서 노래합니다. 씻고 씻기면서 노래합니다. 걸레를 빨면서 노래합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노래합니다. 비를 우산으로 받고 첨벙첨벙 달리면서 노래합니다. 뒤꼍에서 유자와 모과를 따면서 노래합니다. 수저를 들고 밥을 먹으면서 노래합니다.


  노래가 아닌 노래가 없습니다. 사랑이 아닌 사랑이 없습니다.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가 없습니다. 아침에 깨어나서 기쁘고, 저녁에 잠들어서 즐겁습니다. 아침에 해를 보니 반갑고, 저녁에 달과 별을 보아 살갑습니다.



- “오늘은 뭐하고 놀까?” (222쪽)



  우리, 오늘 무엇을 하며 놀까요? 우리, 오늘 무엇을 하며 사랑을 속삭일까요? 우리, 오늘 무엇을 하면서 삶을 아름답게 일굴까요?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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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24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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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06



피아노가 자란 숲

― 피아노의 숲 24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9.27.



  피아노라고 하는 악기는 나무로 만듭니다. 나무가 없다면 피아노도 없습니다. 요즈음은 전자건반이 나오기도 하는데, 전자건반은 건반만 똑같이 틀을 잡아서 만들기에 전자건반이기는 하지만 피아노는 아닙니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면서 ‘나무를 친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 싶어요. 노래를 치고 이야기를 친다는 데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을 테지만, 숲에서 자란 나무를 얻어서 새로운 소리로 태어나도록 손질한다는 대목을 헤아리는 사람은 퍽 드물지 싶습니다.



-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너무나도 따스하게 감싸 주는 듯해서, 피아노를, 피아노를 따르자! 이 피아노가 우릴 이끌어 줄 거야! 우린 하던 대로 최고의 연주만 하면 돼!’ (9∼11쪽)

- ‘아, 그렇구나. 이곳은, 이곳은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야!’ (18∼19쪽)





  피아노라는 악기를 처음 만든 날부터 얼마 앞서까지, 사람들은 손수 숲에서 나무를 베고, 손수 나무를 알맞게 손질하고, 손수 나무를 알맞게 말린 뒤에 비로소 악기로 쓸 틀을 짰습니다. 오늘날에는 피아노라는 악기도 공장에서 만들기 일쑤이지만, 제아무리 공장에서 피아노를 만든다 하더라도 숲이 있어야 나무를 얻고, 제대로 말려야 나무를 쓸 수 있으며, 마지막 소리 하나까지 나무결을 살려야 이 악기를 다룰 수 있습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겨울에 추위를 떠는 아이를 따뜻하게 하려고 피아노를 도끼로 찍어서 장작으로 쓰는 대목이 나옵니다. 너무 추운 나머지 피아노를 그만 도끼로 쩍쩍 찍는데, 막상 피아노를 찍어서 장작으로 쓰려고 해도 나무가 얼마 안 돼요. 피아노는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장작으로 삼을 만큼’ 나무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도록 나무를 많이 자르고 베고 켜고 손질해서 만드는 피아노이지만, 피아노를 다른 데에는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추우면 장작으로라도 쓸밖에 없을는지 모르나, 고작 하루나 한나절 땔감으로 쓰면 사라집니다.


  추운 겨울날 덜덜 떨면서 살 수 없겠지요. 추운 겨울날 피아노로 노래를 친다고 해서 추위기 사라지지 않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집을 뜯어서 장작으로 삼지 않습니다. 기둥도 지붕도 그대로 둡니다. 장작을 얻으려면 다른 데에서 얻어야 합니다.





- ‘바람이, 풀 향기를 몰고 왔어.’ ‘아니, 이건 나무의 향기다.’ ‘카이, 이곳은 숲이구나. 그리운 피아노의 숲이야.’ (31쪽)

- ‘그렇구나. 일일이 숲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숲의 피아노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어.’ (111쪽)



  이시키 마코토 님이 빚는 만화책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2014) 스물넷째 권을 읽습니다. 스물넷째 권에서 드디어 ‘이치노세 카이’가 피아노를 칩니다. 어린이에서 씩씩한 푸름이로 자란 카이가, 곧 어른이 될 카이가, ‘숲 피아노’를 칩니다.


  다만, 카이는 이제 ‘숲 피아노’에만 매이지 않습니다. 카이가 치는 피아노는 숲에서 태어났지만, 숲에서 자란 나무가 피아노로 바뀌어 여러 나라 골골샅샅으로 퍼지듯이, 숲에서 자란 나무가 걸상도 되고 책상도 되어 온갖 나라 구석구석으로 퍼지듯이, 숲에서 자란 나무가 종이로 바뀌고 책으로 다시 태어나서 지구별 이곳저곳으로 퍼져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숲 피아노’는 카이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한테 새로운 숨결로 퍼집니다.




- ‘그때 되선 선생님도 나도 불편한 감정을 품은 채 서로 대치하는 걸 그만두고, 현재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57쪽)

- “그러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 거야! 그래서 그걸 매일 반복할 거야!” (66쪽)



  카이는 ‘쇼팽 대회’에 가서 ‘쇼팽’을 피아노로 칩니다. 대회에 나갔으니 1등을 하려는 생각이 있을 수 있으나, 카이는 오직 피아노를 치려고 대회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대회에 나갔다기보다는 ‘피아노 치는 사람’으로 이웃들한테 인사를 하려고 그 자리에 섭니다.


  카이가 마음을 쓰는 대목은 오직 하나입니다. 숲에서 나고 자란 피아노가 카이를 비롯한 이웃들한테 아름다운 노래로 스며들어서 꿈과 사랑을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이 하나를 생각하면서 피아노를 칩니다.


  숲에서 부는 바람을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자라는 푸릇푸릇 새싹과 봄꽃을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 깃들어 살아가는 새와 벌레와 온갖 짐승들 살림살이를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올려다보는 구름과 무지개를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밤마다 흐르는 고즈넉하고 고요한 별빛을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솟아 들을 가로지른 뒤 바다로 나아가는 냇물을 피아노로 칩니다.




- ‘정신을 차리니, 내 곁을 지켜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깨닫고 보니, 마음 따뜻한 사람들에게 항상, 항상 둘러싸여 있었다.’ (140∼142쪽)



  숲에서 들리는 피아노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저마다 생각에 젖습니다. 저마다 그리운 생각에 젖습니다. 천천히 눈을 뜨고 천천히 웃음꽃을 피웁니다. 그래요. 숲은 모두를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숲은 푸른 바람을 일으켜 모두한테 고운 숨결을 베풉니다. 너와 내가 하나요, 네가 나와 함께 있어 즐거운 삶을 이야기해요.


  피아노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걸상이나 책상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옷장이나 책꽂이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빗자루나 젓가락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부챗살이나 연살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연필이나 붓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호밋자루나 삽자루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모두들 우리 곁에서 어떤 숲노래를 들려줄까요? 귀를 기울이면 모든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면 우리 몸을 타고 흐르는 푸른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4347.10.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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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2014-11-0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에요....


카이가 우승 했어요. ㅠㅠ. 팡웨이가 2위 레프가 4위 안창수창우 형제가 6,8위..

이제 아지노는 카이 곁을 떠나련가.. ㅠㅠ

숲노래 2014-11-04 06:13   좋아요 0 | URL
스포일러를 달지 않으셔도
결과는 뻔하게 다 나왔는걸요 ^^

25권 마지막에 `이변`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나중 결과도 다 보이지요 ^^

일본책으로 보셨나 보네요~

아지노는 카이 옆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늘 마음으로 가르치리라 생각합니다 ^^

고맙습니다~
 
천국으로의 계단 1
무츠 도시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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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05



내 마음도 네 마음도 하늘

― 천국으로의 계단 1

 무츠 토시유키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03.7.25.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로 마실을 나옵니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면소재지 초등학교로 돌려서 운동장으로 들어서니, 두 아이는 아주 좋아합니다. 놀이터에 가는구나, 하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닿은 두 아이는 맨발이 됩니다. 이 가을에 맨발로 운동장을 휘젓습니다. 이 놀이기구를 타고, 저 놀이기구에 매달립니다. 누나가 앞장서서 달리며 동생을 이끌고, 동생은 누나와 함께 이 놀이를 하다가 저 놀이를 합니다.


  포근하게 햇볕이 내리쬡니다. 바람이 싱그럽게 붑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은 살랑살랑 흔들리고, 풀내음과 꽃내음이 상큼하게 퍼집니다.



- ‘이, 이건 말도 안 돼! 느닷없이 이런 일이 어딨어? 내 인생은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잖아. 앞으로도 더욱더 즐거운 일들이 많이 있는데! 죽기 싫어. 장난하지 말란 말야!’ (10쪽)

- “너는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자신이란? 타인이란? 인간이란? 삶이란? 죽음이란?” (17쪽)

- “너 자신을 믿어 봐. 최선을 다해서 앞으로의 인생을 사는 거야. 너, 너는 그렇게 나쁜 인간이 아니야.” (29쪽)





  일곱 살 큰아이가 문득 작은 꽃송이를 알아봅니다. 조그마한 꽃이 노랗게 폈다고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그래서 아이한테 이 꽃한테는 괭이밥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아이는 아버지한테서 들꽃 이름 한 가지를 듣습니다. 다만, 이 들꽃 이름을 이제까지 꽤 자주 들려주었지 싶어요. 아이는 꽃이름을 머릿속에 잘 담아 노래하듯이 읊을 때가 있지만, 그만 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집 둘레에서 뜯어서 먹는 풀을 놓고도, 이름을 잘 떠올리는 날이 있지만 이름을 영 모르는 날이 있어요. 한두 번, 또는 열 번이나 스무 번, 또는 백 번이나 이백 번 듣는다고 해서 잘 알 수 있지는 않구나 싶습니다.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까닭이라면, 이 똑같은 일이 재미있거나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면서, 이 똑같은 일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마음으로 삭히지 못할 적에는 알지 못합니다. 아는 듯할 적에는 알지 못합니다. 알 때에 압니다.


  맨발로 노는 즐거움을 아니 맨발로 놉니다. 작은 풀꽃이 곱다고 느끼니 어느 곳에 가든 작은 풀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어느새 몸에 배거나 익었기 때문에 달갑잖은 몸짓이 톡 튀어나옵니다.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지만 별빛이 무엇인지 깊이 돌아보지 않으니 별숨을 마시지 못합니다.



- ‘이 재수없는 아저씨가 그 코이치 씨란 말이지. 내 아름다운 추억의 만화를 만들어 준 에니메이터였을 줄이야.’ (47쪽)

- “지로가 이루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이렇게 손가락을 치켜들고 딱 소리를 내면!” (59쪽)





  무츠 토시유키 님이 빚은 만화책 《천국으로의 계단》(학산문화사,200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주인공 아이는 아직 스물이 안 됩니다. 따로 학교를 다니지 않으며, 아버지한테서 절집을 물려받아 스님 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절집 일에는 마음을 안 쏟습니다. 바깥에서 노닥거리는 데에 온마음을 쏟습니다. 이러던 어느 날 그만 저도 모르게 목숨을 잃고 하늘나라에 갑니다.


  하늘나라에 간 주인공 아이는 어리둥절합니다.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 처음 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한 적 없고, 죽은 뒤 어찌 되는가를 헤아린 적 없습니다. 막상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니 비로소 두려움과 무서움이 겹칩니다.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줄 알아차립니다.



- “뭐가, 뭐가 운명이야! 그런 게 운명이라면, 여기서 내려다보는 당신들 눈엔 우리가 얼마나 하찮게 보이겠어! 인간을 만들어 놓구선! 책임도 안 지고! 내가 보기엔 당신들이 더 쓰레기야! 사람 마음의 아픔도 모르는 인정머리 없는 쓰레기들이라고! 수명이라면 얼마든지 내 수명을 줄 수 있어!” (84쪽)

- “인간의 눈물에는, 그것 말고도 ‘무언가’가 더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소.“ (91쪽)





  죽고 나서야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 넋은 어떻게 될까요. 죽지 않고 아직 씩씩하게 살 적에 삶을 생각할 수 있으면 우리 넋은 어떻게 흐를까요.


  사는 동안 삶을 즐겁게 돌아보면서 아름답게 가꾸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삶을 아끼고 돌보면서 하루하루 씩씩하게 살림을 보듬는 길은 누가 찾을 수 있을까요.


  하루가 흘러 밤이 되다가는 다시 아침이 됩니다. 아침에 동이 튼 뒤 밝고 따스한 낮이 됩니다. 차츰 해가 기울어 저녁이 되고 별이 돋는 밤이 됩니다. 하루는 언제나 흐릅니다. 삶은 언제나 흐릅니다. 내 삶은 한 자리에 고이지 않습니다. 늘 흐르면서 달라지고, 언제나 흐르면서 새 모습이 됩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사람은 바로 나요, 즐거움을 모르는 채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기쁘게 웃는 사람은 바로 나요, 기쁨을 모르는 채 눈물조차 없이 메마른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 “회사는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어! 하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아! 아버지도, 아마 그걸 바라고 계실 거야!” (157쪽)

- “저런 악마는 아니지만, 나도 가끔 인간이란 참 바보 같단 생각을 하곤 해. 하찮은 이유로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죽고, 돈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는 사람도 있어.” (191쪽)





  내 마음이 하늘인 줄 안다면, 네 마음이 하늘인 줄 압니다. 내 마음이 사랑인 줄 안다면, 네 마음이 사랑인 줄 압니다. 내 마음이 하늘인 줄 모르기에, 네 마음이 하늘인 줄 모릅니다. 내 마음이 사랑인 줄 모르니, 네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 “초능력 따위 빌리지 않겠어! 엄마는, 내가 내 힘으로 구할 거야!” (200쪽)

- ‘마음속까지 벚꽃이 피었다.’ (109쪽)



  만화책 《천국으로의 계단》은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삶을 가꾸는 길은 바로 이곳에 늘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나 스스로 찾는 삶이 나 스스로 가꾸는 삶입니다. 나 스스로 사랑할 하루가 나 스스로 누리는 하루입니다.


  새벽에 큰아이가 잠에서 깹니다. 쉬가 마렵답니다. 쉬를 누이고 들어가는 길에 미역을 끊어서 불립니다. 동이 트고 멧새가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와 노래를 부르면, 천천히 일어나 새롭게 미역국을 끓여야지요. 국물이 잘 우러나도록 끓이는 미역국은 우리 집 네 사람이 모두 맛나게 먹으면서 몸에 새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4347.10.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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