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5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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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89



언제나 배우고 새로 배우는

― 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5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9.7.25.



  배우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이 늙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우리 둘레를 새롭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우리 둘레를 새롭게 바라보지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을 짓는 사람입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을 짓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입니다.


  배우는 사람이어야 산 목숨입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죽은 목숨입니다.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야 사랑을 속삭일 수 있습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속삭이지 못합니다.



- “자네 논문에는 유감스럽게도 볼 만한 점이 하나도 없었네. 내가 생각하기에는. 자네는 대학이란 걸 오해하고 있는 거야.” (11쪽)

- “공부한 것은 인정하네. 하지만 이건 아직 케인즈 이론의 요약에 지나지 않아. 여기에는 자네 자신의 해석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군.” “그, 그럼 또 유급이란 말씀입니까?” “이건 유급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아니야. 난 단지, 이걸 논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걸세.” (15쪽)





  학생이기에 배우지 않습니다. 학교에 다니기에 배우지 않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학생이나 학교라는 굴레를 쓰지 않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그저 배울 뿐입니다. 잘 살펴보셔요.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붙였으나 안 배우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학교라는 데를 다니지만 안 배우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아끼고 사랑해서 즐겁게 지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배웁니다. 나이 여덟 살에 초등학교를 넣고, 나이 열네 살에 중학교를 넣는다고 해서 배우지 않아요.


  교과서 지식을 머릿속에 넣는 일은 배움이 아닙니다. 시험성적을 잘 받도록 하는 일은 배움이 아닙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도록 하는 일은 배움이 아닙니다. 배움은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되도록 스스로 가다듬는 일입니다.



- ‘이게 도서관이야 방이야? 무슨 어른이 공부를 하냐? 아버지란 건 원래 술 취해 들어와서 밥 먹고 방귀 뀌고 잠자는 건데. 뭐야, 이 아저씨는?’ (34쪽)

- “왜 동창회에 한 번도 안 나타났나?” “앞으로 전진하고 싶어서, 라고나 할까.” (65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학산문화사,2009) 다섯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는 늘 새롭게 배우려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배우고 다시 배우려는 사람입니다. 배우는 하루가 즐거우니 배웁니다. 배우는 하루가 즐겁기 때문에, 즐겁게 배운 이야기를 이웃과 동무한테 기꺼이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자면,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는 ‘배우면서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삶을 누리는 사람이요, 늘 삶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 “과거는 뒤돌아보지 않는 주의라고 하지 않았나?” “자에 부인은 예외야. 밝고 명랑하고, 내 서투른 바이올린 소리에 처음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지. 내가 아주 좋아했어.” (69쪽)

- “내가 여태 자네를 오해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감정 같은 건 없는 사람으로 말야. 내가 자네 부인한테 말했지. ‘그런 감정 없는 남자와 결혼하면 당신은 불행해집니다’라고 했더니.” “그랬더니?” “자네 부인 말이, ‘그 사람은 사실, 감정이 아주 풍부한 사람이에요. 표현이 조금 적을 뿐이지.’ 자네 부인이 사람을 훨씬 잘 본 거라구.” (72쪽)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가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나는 너한테서 배우고 싶다’입니다. 유택 교수는 사람을 재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사람은 오늘 이곳에서 어떤 넋으로 어떤 모습이 되어 내 앞에 있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오늘 이곳에서 어떤 넋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내 둘레를 밝히려 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바라보기에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알기에 제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생각하기에 제대로 삶을 지어 하루하루 기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한 가지도 배우지 못합니다. 언제나 제대로 바라보는 몸가짐부터 다스릴 노릇입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껴서, 제대로 삭힐 줄 아는 몸가짐을 추스를 노릇입니다.





- ‘기뻤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가 내게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늘 그 세계를 접하게 된다. 학문 탐구는 단지 책이나 학교를 통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로부터 새들로부터 대지로부터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류로부터 많은 발견을 하게 된다는 것을 그는 몸소 실천하고 있다. 산다는 것, 그것이 곧 학문이다.’ (144쪽)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는 틈틈이 시계를 봅니다만, 굳이 시계를 안 보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유택 교수는 스스로 몸에 ‘삶’을 새겼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즐겁게 배우는 삶이니, 군더더기가 한 가지도 없습니다. 기계처럼 움직이는 삶이 아니라, 늘 새롭게 바라보면서 배운다는 삶이기에, 스스로 바라볼 것만 바라봅니다. 스스로 바라볼 것만 바라보기 때문에, 유택 교수 앞에 허깨비가 나타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아니, 유택 교수한테는 허깨비가 보이지 않습니다. 허깨비는 삶이 아니니까요.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 해마다 다시금 씨앗을 심어 기를 수 있는 까닭은 해마다 즐겁게 삶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따스한 봄볕을 배웁니다. 더운 여름햇살을 배웁니다. 싱그러운 가을볕을 배웁니다. 포근한 겨울햇살을 배웁니다. 해마다 똑같은 땅에 심어도 해마다 다르게 돋으면서 즐거운 밥이 되는 남새와 열매를 만나서 배웁니다. 우리가 먹는 오이는 ‘오이’라는 이름으로는 똑같으나, 생김새나 맛이나 모양이 같은 오이는 하나도 없어요. 수박을 쪼갤 적에 수박씨가 똑같이 박히는 일이란 없어요. 들딸기가 똑같은 자리에 돋는 일이란 없어요. 똑같은 감나무에서 얻는 감알은 늘 모양새가 다른데, 해마다 또 다른 모양새로 열매를 맺어요.


  가만히 지켜보면 삶은 늘 새롭습니다. 늘 새로운 삶이니 언제나 환하게 웃으면서 배웁니다. 웃으면서 배우는 사람은 평화만 생각합니다. 평화만 생각하면서 삶을 짓는 사람은 오직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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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2
후지무라 마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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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88



오늘 내 마음은

―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2

 후지무라 마리 글·그림

 송수영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7.15.



  후지무라 마리 님 만화책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대원씨아이,2013) 둘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두 주인공은 서른세 살과 스물한 살입니다. 가시내는 서른세 살이고, 사내는 스물한 살입니다. 둘 사이에 피어나는 사랑을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그리는 만화책입니다. 열두 살이 벌어진 두 사람 사이인 만큼, 만화책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데, 이 만화책을 읽는 내 나이가 마흔 살이고 보니, 열두 살 벌어진 나이는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살짝 시큰둥합니다. 아마 쉰 살이나 예순 살 나이에 바라보아도 나이는 아무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한 살 두 살 살고 보면, 열두 살이건 스물네 살이건 대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나이를 놓고 사귀지 않아요. 우리는 오직 마음으로 만나면서 어깨동무를 하거나 사랑을 속삭입니다.



- ‘방 곳곳에 귀여운 소품이 여기저기. 하긴 얼마 전까지 여친이 있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이런 걸 신경 쓰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고.’ (15쪽)

- ‘예전 여친 같은 걸 신경 쓰면 어쩌자는 거야. 타노쿠라는 나랑은 달라. 그 애는 평범하게 연애를 하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17쪽)




  생각해 보셔요. 한 살이 벌어지면 어떠한가요. 두 살은 어떠한가요. 세 살은? 네 살은? 다섯 살은? 한 살씩 찬찬히 더해요. 이렇게 더하고 보면 한 살이 벌어질 때하고 열두 살이 벌어질 때에는 똑같습니다. 스물네 살뿐 아니라 서른여섯 살이 벌어지더라도 똑같아요. 나이는 그저 숫자입니다. 숫자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될 수 있으려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가 되자면 사랑이 피어야 합니다.


  나이는 서로 같지만, 서로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가 있습니다. 마음이 안 맞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위이지만, 이녁한테서 아무것도 못 배울 때가 있습니다. 나이만 위일 뿐 마음이나 생각이 너무 얕거나 좁기 때문입니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아래이지만, 이녁한테서 크게 배우면서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나이만 아래일 뿐 마음이나 생각이 아주 깊거나 넓기 때문입니다.



- “엊그제 일로 아직도 화났어요?” ‘아직도? 아직도라니. 난 네가 그날로 예전 여친 물건 다 정리하고 바로 연락 주지 않을까 해서 어제 온종일 기다렸다고.’ (26쪽)

- ‘타노쿠라마저도 한 순간 잊고 있었어. 이렇게 쉽게 잊혀지다니. 타노쿠라도 이럴 때가 있을까. 그런 건 좀 쓸쓸할 거 같아. 타노쿠라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43쪽)




  만화책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둘째 권을 읽다가 문득 하나 더 생각합니다. 언제나 집일을 도맡는 내 하루인데, ‘오늘은 밥을 쉬겠습니다’라든지 ‘오늘은 육아를 쉬겠습니다’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일곱 살 네 살 어린 아이들더러, ‘얘들아, 오늘은 아버지가 힘드니, 오늘 우리 모두 밥은 굶자’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이런 말은 못 하겠지요. 다만, ‘얘들아, 오늘은 아버지가 힘드니, 바깥에서 밥을 사다가 먹자’ 하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회사는 쉴 수 있습니다. 집일이나 아이키우기는 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쉴 수 없습니다. 쉬어 가는 사랑이란 없어요. 언제나 흐르는 사랑이고, 한결같이 따스한 사랑입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는 믿음직한 이웃하고도 이와 같아요. 언제나 흐르는 믿음이요, 한결같이 즐거운 만남입니다.



- ‘어느새 내 생활이 180도 달라졌다. 질투하고 상처 받고 상처 주고, 이런 식으로 누군가와 온힘을 다해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또 쓸쓸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어.’ (51∼52쪽)

- ‘연애라는 건 참 힘들지만, 그래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마음이 부드러워지는구나.’ (53쪽)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햇살을 맞이합니다. 아침햇살을 바라보면 온몸에 따순 기운이 감돕니다. 사랑스러운 사람과 함께 누리는 하루는 언제나 아침햇살과 같습니다. 믿음직한 사람과 함께 가꾸는 삶은 늘 따순 기운을 북돋웁니다.


  이녁이 나이가 많아서 나한테 넉넉한 언덕이 되지 않습니다. 이녁이 나이가 어려서 나한테 든든한 언덕이 못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언제나 넉넉합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이 언제나 좁습니다. 마음이 따스한 사람이 늘 따스하게 웃고 노래합니다.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 늘 웃지 못하고 늘 노래하지 못합니다.



- ‘오랜만에 만났더니 눈이 부셔서, 부끄러워서 눈을 못 마주치겠어.’ (61쪽)

- “미안해요. 저 양반이 괜히 이상한 소리만 해서. 하나에가 남자를 집에 데려온 게 오늘이 처음이라, 애 아빠가 좀 흥분한 거 같아요.” (113쪽)



  만화책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둘째 권 끝자락에 ‘지금 이 순간을 머릿속에 다 새겨두고 싶다(160쪽).’와 같은 속엣말이 흐릅니다. 그렇습니다. 즐거운 오늘 이 하루를 머릿속에 다 새기면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애써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즐거운 기운은 뼛속까지 깊이 스며듭니다. 이 즐거운 기운은 언제까지나 나한테 따사로운 숨결로 피어나서 흐릅니다.


  작은 씨앗 같은 사랑이 내 몸에 깃들어 천천히 자랍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씨앗이었을 사랑은 차츰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립니다.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요. 이윽고 열매를 맺고 새로운 씨앗을 맺는 사랑입니다.


  자라고 자라는 사랑입니다. 크고 또 크는 사랑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은 언제나 기쁘게 웃겠지요. 4347.10.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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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수의 정원 1
사노 미오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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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87



마음을 지키는 이웃

― 귀수의 정원 1

 사노 미오코 글·그림

 정효진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1.9.30.



  귀를 기울여요. 이웃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요. 이웃은 옆집에 사는 사람일 수 있고, 풀밭에서 노래하는 벌레일 수 있습니다. 이웃은 옆마을에서 흙을 일구는 할매일 수 있고, 밀양과 청도에서 송전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 할배일 수 있으며, 하늘을 흐르는 구름일 수 있습니다.


  내 이웃은 누구일까요? 내 이웃은 무엇을 할까요? 내 이웃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요? 내 이웃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꿈을 꾸며, 어떤 사랑을 가꾸고 싶을까요?



- ‘이 세상은 의외로 재미있구나.’ (4쪽)

- “ 생사의 문턱은 몇 번이나 넘나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해서, 이 세상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그리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 마음을 가져서 이 저택에 간단히 들어온 게야.” (17쪽)




  사노 미오코 님이 그린 만화책 《귀수의 정원》(서울문화사,2011)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는 ‘귀수’가 나오고 ‘정원’이 나옵니다. 사람이 아닌 넋이 나오고 온갖 풀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뜰이 나옵니다.


  귀수는 귀수끼리 이웃이면서 벗님입니다. 사람은 사람끼리 이웃이면서 벗님입니다. 그런데, 귀수 가운데에는 풀과 나무를 이웃과 벗님으로 삼는 넋이 있습니다. 사람 가운데에도 풀과 나무를 이웃과 벗님으로 삼는 숨결이 있습니다. 여기에, 귀수 가운데 사람을 이웃과 벗님으로 여기는 넋이 있고, 사람 가운데 귀수를 따사로운 이웃과 벗님으로 생각하는 숨결이 있습니다.



- “나는 백화초목을 보살피는 능력밖에 없는 운무의 정령. 능력이라곤 이 아담한 정원을 윤택하게 만드는 게 고작. 허나, 수고를 아끼워 않고 자비를 베풀면 반드시 윤택하게 자라나지. 천계도, 인간계도 마찬가지야. 하늘의 마음은 작은 것 안에서 더더욱 잘 나타나는 법이다.” (27쪽)

- “어떤 모습이건 나는 유일하다. 이 세상이 이루어진 이후로 쭉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28쪽)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지만,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짓을 누구보다 잘 알아채기도 합니다. 사람인 탓에 사람을 가엾게 여기거나 사랑하기도 하지만, 사람인 탓에 사람이 싫거나 미울 수 있어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전쟁무기를 만드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군인이 되어 이웃을 죽이거나 해코지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들도 우리 이웃이 될까요.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든지 전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도 우리한테 이웃이나 벗님이 될 만할까요.


  어떤 아이도 전쟁을 생각하며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도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지구별에 자꾸 전쟁을 터뜨립니다. 어른들은 지구별에 자꾸 전쟁무기를 늘립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려는 생각일까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려는 생각일까요?



- “잡초가 이런 데까지 나다니. 뽑아 버리자.” “잠깐, 무라이. 그대로 둬. 그건 잡초가 아니라 이삭여뀌라는 풀꽃이야.” (45쪽)

-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카후.” “이, 인간 말씀이신가요?” “그래, 인간이다. 숭배받는 걸 당연타 여기는 천계의 신들보다 말이다.” (67쪽)

- “꽃이야 매년 피는 것! 꺾어도 무에 하나 아까울 것 없는 목숨이다, 꽃도 사람도!” “올해의 꽃과 내년의 꽃은 달라. 인간도, 아무리 환생을 반복하는 중생이라 해도 그 생은 단 한 번뿐, 꺾어도 아깝지 않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소.” (80쪽)




  만화책 《귀수의 정원》을 차근차근 되읽습니다. 사람이라는 껍데기를 썼어도 사람답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귀수라는 옷을 입었어도 사람다운 이들이 있습니다. 풀과 나무라는 껍데기를 썼지만 사람다운 숨결이 가득하기도 하고, 사람이라는 옷을 뒤집어쓰기만 할 뿐, 아무것도 안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겉도 속도 사람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넋을 가꾸려는 이들이 있어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꿀 삶은 어떠할 때에 아름다울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눌 사랑은 어떻게 보듬으면서 어깨동무할 적에 서로 기쁘게 웃을 만할까 생각합니다.


  참말 생각할 노릇입니다. 내 아이를 돌보면서 아이한테 일삯을 달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내 아이한테 밥 한 그릇 차려 주면서 밥값을 내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한테 밥 한 그릇 차려 준 뒤에 밥값 내놓으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한테서 밥값을 받을까요? 우리는 누구한테서 ‘돌봄 일삯’을 받을까요?



- “그 소나무는 그리지 마! 카후! 마을사람들 모두 ‘객사 소나무’라고 부른다고. 얼마 전에도 노인이 죽었대. 불길한 소나무야.” “그런 말은 소나무에게 실례잖아.” (117∼118쪽)

- “질투도 소중한 마음의 일부. 연모하는 마음 뒤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는 벌레인 게지요.” (168쪽)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요. 참으로 그렇지요. 그러면,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인데, 우리는 서로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어떻게 돌보거나 아끼는지 궁금합니다.


  꼭 돈이 있어야 할까요? 누구도 누구한테도 돈을 주거나 받지 않으면서 삶을 가꿀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돈이란 없이 오직 사랑으로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면서 삶을 북돋울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내 아이한테 밥값이나 일삯을 받지 않듯이, 내 이웃과 동무한테 밥값이나 일삯을 바라지 않듯이, 우리가 서로한테 돈을 바라지 않으면서 사랑스레 살아간다면, 이때에 비로소 아름다운 길을 열 수 있으리라 느껴요. 평등도 민주도 평화도 통일도 자유도 바로 서로를 사랑하는 자리에서 태어나리라 느껴요.



-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데.” (178쪽)

- “그 소나무를 그리자. 그 가지 하나하나, 솔잎 한 가닥 한 가닥까지. 이 그림을 완성할 즈음, 형형색색의 봄이 찾아오리라.” (181∼182쪽)



  그림을 그립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쟁이는 이녁대로 용을 그립니다. 나는 나대로 내 마음을 지키는 살가운 이웃을 그립니다. 내가 내 이웃을 사랑스레 아끼고 보살필 수 있는 길을 천천히 그립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나를 아끼고 돌보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길을 가만히 그립니다.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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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좀 안 될까요 3
아소우 미코토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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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86



법이 너무 많은 이 나라에서

― 어떻게 좀 안 될까요 3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3.25.



  법은 나날이 늘어납니다. 온갖 법이 나날이 새로 생깁니다. 이 나라를 가만히 살펴봅니다. 법이 늘어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보다, 끔찍하거나 슬픈 이야기가 자꾸 불거집니다. 법이 늘면 늘수록 온갖 말썽이 새로 터진다는 뜻이요, 법을 자꾸 만든다고 할 적에는 사람 사이에 아름다움이나 사랑이 덜 흐르거나 사라진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은 하루 빨리 국회를 거쳐야겠지요. 그런데, 세월호 사고를 놓고 특별법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온 까닭을 살펴보면, 법이 있건 없건 정치와 사회가 모두 엉터리이기 때문입니다. 법 테두리를 벗어나서 불법으로 돈을 거머쥐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세월호 사고가 터졌으며, 사고가 터진 뒤에도 법 테두리를 벗어나면서 요리조리 얼토당토않다 싶은 짓이 터집니다. 게다가 특별법을 만들려는 움직임마저 가로막거나 헤살을 놓기 일쑤입니다.



- ‘어둡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스스로 나아가 불을 밝히자.’ (13쪽)

- “아카보시는 입은 거칠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 (18쪽)




  한국에는 참다운 자유나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가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에 걸고 목에 걸며 입과 눈과 손에 거는 무시무시한 법이 어엿하게 있기 때문에, 이 법은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평화를 모두 짓밟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끔찍한 법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을 손에 쥔 이들한테는 국가보안법이 아주 ‘부리기 좋은 전쟁무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앞세워서 정치권력을 더 튼튼히 지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학교에는 교칙이 있습니다. 교칙은 학생과 교사가 서로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게 배우고 가르치려는 삶을 북돋우지 않습니다. 교칙은 학생을 다그치고 어른을 감옥 간수 노릇을 하도록 내몹니다. 교칙은 참다운 배움과 동떨어질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하고 등집니다.


  머리카락이 1센티미터 더 길면 시험공부를 못 하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할까요? 머리카락이 1센티미터 더 짧으면 시험공부를 잘 하거나 바보스러운 짓을 안 할까요? 학교에서 어른이 아이한테 할 일이란, 교칙이나 규칙으로 삶을 얽매거나 가두는 짓이 아닌, 아이 스스로 삶을 가꾸도록 돕거나 북돋우는 일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 “(애완견) 콜리가 일어섰다는 이유만으로 노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진다. 요컨대 그만큼 주인에게는 동물을 관리할 책임이 요구되는 겁니다.” (56쪽)

-“자네가 소리내 웃는 게 신선해서 그래.” “그런가요?” “이 사무소에서 자네의 ‘씨익’ 외의 미소를 보게 될 때가 오다니! ‘아하하’까지 이제 멀지 않았어!” “웃을 일이 없잖아요. 원래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 랏코가 온 뒤로야. 자네 표정이 풍부해진 건.” (62∼63쪽)





  아소우 미코토 님이 그린 만화책 《어떻게 좀 안 될까요》(시리얼,2011) 셋째 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에서도 법에 매달리려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법이 아니고는 도무지 매달릴 끈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에서 살지만 이웃이 아닌 사람 때문에 괴롭기 때문에 법에 매달립니다. 가까이에서 살지만 서로 이웃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법을 붙잡으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나라에도 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마을을 조그맣게 이루어 오순도순 살던 지난날에는 법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따로 규칙을 세우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믿고 사랑하며 아끼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규칙이 없습니다. 서로 믿기 때문에 가만히 지켜봅니다. 서로 아끼기 때문에 조용히 기다립니다.


  서로 못 믿을 때에 법이나 규칙이 생깁니다. 서로 안 믿거나 등돌리거나 따돌리거나 괴롭히기 때문에 법이나 규칙이 생깁니다. 서로 다투기 때문에 자꾸 법이나 규칙을 세웁니다.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은 규칙을 세우지 않습니다. 놀다가 자꾸 싸우거나 부딪히기 때문에 그만 놀이에 규칙을 세웁니다. 즐겁게 놀기보다는 어느 아이가 혼자서 엇나가려 하니, 규칙을 세우지요. 그런데, 엇나가려는 아이가 있어도 더 따스하게 보듬으면서 ‘깍뚜기’를 시키면 규칙이 없어도 돼요. 그냥 즐겁게 놀 수 있습니다.



-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린단 말이야. 개를 보거나 소리만 들어도.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공포를 잊을 수가 없어. 게다가 내가 겁먹은 걸 아는지 유난히 개들이 모여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럼 저희 집 주소를 아셨던 건?” “부근에 개를 키우는 집은 전부 파악해 두고 있거든. 무서우니까.” “저야말로 부끄럽습니다. 개가 너무 좋은 나머지 ‘싫다’는 마음에 ‘무섭다’가 포함되어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하고.” (83쪽)




  규칙은 늘 새로운 규칙을 낳습니다. 전쟁무기는 늘 새로운 전쟁무기를 낳습니다. 주먹다짐은 늘 새로운 주먹다짐을 낳습니다. 거친 말은 늘 새로운 거친 말을 낳아요.


  아름다운 삶터를 이루려면 아름다운 생각을 지어야 합니다. 사랑스러운 마을로 가꾸려면 사랑스러운 마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꿈은 꿈을 낳습니다. 웃음은 웃음을 낳으며,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아요.


  미움은 미움을 낳아요. 손찌검은 손찌검을 낳습니다. 그래서,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민다고 했어요. 폭력은 다른 폭력으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끊는 길은 오직 하나,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이루려면 서로 전쟁무기를 내려놓아야 해요. ‘너부터 내려놓아!’ 하고 바라면 서로 못 내려놓습니다. 남한테 바라지 말고 나부터 내려놓을 노릇입니다. 나부터 전쟁무기를 내려놓고 즐겁게 삶을 가꾸면서 지어야 합니다.



- “게다가, 이건 사카가미 씨에겐 별 거 아닐지 모르겠지만, 만일 재판 결과 인지된다면, ‘인지 재판 확정일’이 기재됩니다. 아이의 호적에. 언젠가 아이가 자신의 호적을 보고, 친부가 자신의 인지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친부가 원치 않은 아이였다는 걸 알게 되겠죠.” (109∼110쪽)

- “초등학생 요리 콩쿠르에 나가는 게 목표라고.” “세상에! 실익을 겸한 취미! 효자네요!” “하지만, 그걸 취미로 만든 건, 지금의 양육 환경인 셈이죠.” (148쪽)



  법이 너무 많은 이 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맞이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법을 얼마나 알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법을 잘 지키기를 바라나요? 아니면, 아이들이 법을 하나도 모르면서도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나요?


  법이 있어야 아름다운 나라가 되지 않습니다. 법이 없어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삶을 지으면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법이 있어도 아름다움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을 나누지 않으며 꿈을 짓지 않으면, 조금도 안 아름답고 말아요.


  하루 빨리 모든 법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하루 빨리 모든 전쟁무기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하루 빨리 모든 불평등과 전쟁과 다툼이 사라지도록,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고 꿈이 자라기를 바랍니다. 4347.9.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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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덟 1
타케모토 유지 지음, 고현진 옮김 / 시공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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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84



재미있는 만화와 씁쓸한 만화

― 여덟 1

 타케모토 유지 글·그림

 고현진 옮김

 시공사 펴냄, 2013.7.15.



  타케모토 유지 님이 빚은 만화책 《여덟》(시공사,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은 ‘재미있는’ 만화라는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어떤 만화일 때에 ‘재미있는’ 만화가 될는지 궁금한테, 《여덟》을 찬찬히 읽으니, 이 만화책은 ‘재미있는’ 만화라기보다 ‘사회 풍자’ 만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사회가 엇나가거나 엉뚱하거나 어설프기 때문에, 이렇게 엇나가거나 엉뚱하거나 어설픈 사회를 살며시 비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여덟》이라고 할 만해요. 스스로 재미있게 살면서 웃음이 쏟아지는 만화가 아니라, 뒤틀린 사회를 다시 뒤틀어 보여주면서 씁쓸하게 웃도록 이끄는 만화라 한다면 ‘사회 풍자’라고 느낍니다.



- “우와, 엄마. 이게 인간 전자레인지구나!” “응, 이게 음식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인간 전자레인지야.” (5쪽)

- “바로 그거야! 이유는 그거라고! 어째서 내 이름만 그렇게 이상한 거냐고!” “왜 이상하다고 생각해? 엄마는 좋기만 한걸.” “그럼 엄마가 나랑 이름 바꿀래?” (40∼41쪽)




  만화책 《여덟》 첫째 권 첫머리에는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서 ‘마음이 따뜻해진 뒤 나오는’ 전자레인지가 나옵니다. 놀랍지요. 사람은 이런 기계를 따로 만들어서 써야 할 만큼 마음이 차갑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전자레인지가 어떤 기계인지 안다면 느낄 테지만, 전자레인지로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얼마 뒤에 다시 식습니다. 게다가, 같은 밥을 자꾸 전자레인지로 돌리면 맛이 없어지지요. 식었다고 해서 자꾸 전자레인지로 돌릴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는 전자레인지’는 1회용품입니다. 밑바탕을 고치거나 바꾸지 못합니다. 겉모습만 살짝 한동안 가려 줄 뿐입니다.


  우리 사회를 생각해 봐요. 우리 사회에서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마음을 숨겨야 합니다. 거짓스러운 마음을 앞에 내세워야 합니다. 참다운 마음이 자리잡을 곳이 없습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돈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마음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닦달합니다.



- ‘바보처럼 완고하고, 바보처럼 멋있다. 나는 그런 그들이 정말 좋다. 잠깐, 나는 지킬 수 있을까.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빠졌을 때, 모든 것을 던지며 프라이드를 지킬 용기가 나에게 과연 있을까?’ (47쪽)

- “그대들은 대체 어쩔 셈인가?” “나는 유카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다.” “응?” “앞으로는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모을 거야. 그래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할게.” (79쪽)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사람다울까요? 자존심을 지키면 사람다울까요? 자존심은 지키면서 사랑은 못 지킨다면 어떠한가요? 자존심은 지키지만, 평화와 꿈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떠한가요?


  지구별 모든 나라에 있는 전쟁무기는 무엇을 지킬까 궁금합니다.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갖춘 전쟁무기는 참말 그 나라에 평화를 지켜 줄까요?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자꾸 전쟁이 터지고 폭력이 불거지면서 평등과 평화가 짓밟히지 않나요?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쳐들어갑니다.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서로 괴롭히거나 죽입니다.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전쟁무기 만들고 건사하느라 엄청난 돈을 쏟아붓습니다. 전쟁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배를 곯고, 전쟁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프며 슬픕니다.



- ‘나는 출연자가 아니더냐. 왜 시청률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냐고. 그래,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그런데 TV 앞에서는 빵조각이나 씹어대면서 희희낙락 시청하는 녀석들이 있다. 시청률은 개뿔! 까불지 말라고.’ (100쪽)

- “그런데, 할아버지.” “뭐냐?” “그 말이에요, 하느님이.” “또 뭐야? 하느님이 어떻다고? 어서 말해 봐!” “부, 분명히, 모두의 마음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왠지 눈물이 났다.’ (141∼142쪽)





  하느님이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은 참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러한 참을 참으로 느끼지 못하기에 마음이 가난하거나 야위지 싶습니다. 내 마음에도 네 마음에도, 그러니까 우리 모두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으면, 서로서로 아주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삶을 가꿀 때에 즐겁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를 밟고 올라설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너한테 이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할 때에 즐겁습니다. 우리는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돕고 아낄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예배당이 늘어나고 커지지만, 지구별에 평화와 사랑과 꿈이 퍼지지는 못합니다. 커다란 예배당은 더욱더 커지지만, 정작 지구별에 아름다운 숨결과 사랑스러운 노래가 퍼지지는 못합니다. 예배당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직 예배당 신도가 아닌 사람’을 예배당에 데려가려는 움직임만 커집니다.


  종교란 무엇일까요. 사회란 무엇일까요. 정치와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모두 제자리를 잃고 어지럽게 헤매지 않나요. 그러니, 이런 사회를 살며시 비꼬는 만화가 나올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이 사회에서 즐겁게 웃을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사회를 비꼬는 웃음밖에 얻을 길이 없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여덟》이라는 작품은 ‘재미있는’ 만화책이 아니라 ‘씁쓸하고 슬픈’ 만화책이지 싶습니다. 4347.9.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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