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 1
카이타니 시노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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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38



내 마음부터 읽지 못한다면

―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 1

 카이타니 시노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25.



  어릴 적에는 ‘초능력’이 아주 엄청난 힘인 줄 알았습니다. 몇몇 사람한테만 타고난 힘이 초능력이라고 여겼습니다. 차츰 나이를 먹고 곰곰이 삶을 배우는 동안 ‘초능력’은 새롭거나 남다른 힘이 아닌 줄 알아차립니다. 왜냐하면 여느 사람들이 여느 자리에서 여느 몸으로 지내는 모습은 ‘여느 힘(능력)’이고, 여느 사람 스스로 여느 자리에서 여느 몸을 키우고 살찌워서 ‘새롭게 내는 힘’을 내면, 바로 이 새롭게 내는 힘이 초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여느 사람이 여느 힘만 쓰는 까닭은 언제 어디에서나 여느 자리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내는 힘을 키우는 사람은 이녁 나름대로 언제나 새로운 삶으로 가꾸고 새로운 넋으로 북돋아 새로운 힘을 스스로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여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힘을 낸다면,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여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 새로운 힘을 못 낸다고 여기면 나도 새로운 힘을 못 냅니다. 수수께끼는 아주 쉽습니다.





- “그 수수께끼의 미녀에게 형은 지금 홀딱 빠져 있다, 그거지?” “우악!” “그 포스터 되게 귀한 거라며? 용케 손에 넣었네. 입 꾹 다물고 뒤로 호박씨 까는 데엔 뭐 있다니까.” “오, 오해하지 마. 난 그저 쿄코 씨가 섹시하고 어쩌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훌륭한 인품 때문이라고.” (8쪽)

- “그런 의미로 당신은 대단합니다. 역에서 화장하지 않은 쿄코 씨를 얼핏 보고 한눈에 본인이라는 걸 알아봤다죠? 내가 아는 한 그런 사람은, 사상 최초입니다.” (26쪽)



  타고난 재주가 있어서 ‘새로운 힘(초능력)’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한테는 타고난 재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한테는 몸 깊이 마음 깊이 타고난 재주가 잠잡니다. 사람들 스스로 이녁 몸과 마음에 타고난 재주를 키우지 않으니 자라지 않고 터지지 않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 깃든 씨앗을 깨워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힘을 깨우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힘을 쓸까요? 내 힘을 내가 깨울 때에 내 힘이 새롭습니다. 내 힘을 내가 안 깨우니까 내 힘은 언제나 흐리멍덩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면서 때때로 아주 놀라운 힘을 내듯이, 아버지가 아이를 아끼면서 곧잘 매우 눈부신 힘을 내듯이, 우리는 스스로 마음밭에 씨앗을 알뜰히 심어서 멋진 힘으로 곱게 키우면 됩니다.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바라보아 내 기운을 내가 북돋우면 됩니다.





- “당신의 계획을 위한 무의미한 추가시험이나 보충수업도, 그걸 치러야 한 학생들조차 모두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당신은 이 대학의 꽃이자, 학생들의 우상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그런 학생들에게 치한 행세를 하고, 대학생활에 공포를 줬어요! 당신은 어느새 대학교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은 거예요. 이제 이 대학에 있을 자격도 없어!” (46∼47쪽)

-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야. 자기 소개할 때 ‘회사를 경영합니다’가 아니라 ‘사장입니다’ 하는 놈은 재수없어. 성격 재수없는 건 둘째치고, 사람 마음이 약해졌을 때를 노려 접근하는 야비한 놈이기도 하지.” (74∼75쪽)



  카이타니 시노부 님이 빚은 만화책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학산문화사,2010) 첫째 권을 여러 차례 되읽습니다. 여러모로 남달리 끄는 기운이 있어서, 읽고 덮은 뒤 다시 읽고 덮다가 또 읽습니다.


  책이름에 그대로 나오듯이, 만화책에 나오는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는 거짓말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다기리 쿄코’라는 사람은 ‘영능력’을 선보이지 않으니, ‘영능력을 펼친다고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오다기리 쿄코’는 영능력이 아닌 머리를 씁니다. 머리를 빠르게 돌립니다. 머리를 신나게 씁니다. 그러면, 오다기리 쿄코라는 사람이 쓰는 ‘머리힘’은 왜 ‘영능력’처럼 보일까요? 여느 자리에 있는 여느 사람은 여느 힘조차 안 쓸 뿐 아니라 ‘여느 머리힘’조차 제대로 안 쓰기 때문입니다.




- “나는 방송에서 심령수사를 곧잘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나쁜 놈을 잡아 없애자는 게 아니에요. 내 일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구하는 것이죠.” (53∼54쪽)

- “진짜 효도는, 본인이 행복해지는 거죠. 어떤 부모라도, 자식의 행복이 첫째 가는 기쁨이니까요. 부모를 위해라고 하면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참으면, 그거야말로 최대의 불효예요.” (88쪽)



  우리 머리를 제대로 쓸 수 있으면, 여느 자리에서는 알아채지 못할 이야기를 숨김없이 알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 머리를 제대로 쓰고 또 쓰면, 어느새 ‘머리힘 쓰기’를 넘어서서 ‘새로운 힘 쓰기(초능력이나 영능력 쓰기)’에 닿을 수 있습니다. 다만, 머리만 써서는 새로운 힘이 솟지 않습니다. 머리를 쓰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갈고닦아야지요. 머리를 깨우면서 마음과 몸을 함께 깨워야지요.


  머리는 쓸 줄 알지만 마음과 몸을 깨우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힘’을 내지 못해요. 이때에는 ‘꾀 부리기’만 합니다. 마음을 맑게 깨우고 몸을 튼튼하게 깨우는 동안 머리를 슬기롭게 깨우면, 이때에 비로소 새로운 힘이 싱그럽게 터져나옵니다.




- “당신, 지금 오다기리 쿄코 씨가 왜 이렇게 인기인지 알아요? 그 사람의 예언이 번번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니에요.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 약한 사람들이 그 사람의 상냥한 말 한 마디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기 때문이죠.” (109쪽)

- “당신이 옳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아요. 난 그저 당신이, 당신이 걱정돼서 죽겠다구요!” (110쪽)



  내 마음부터 먼저 읽어야 합니다. 내 마음부터 못 읽는다면, 이웃이나 동무가 어떤 마음인지 하나도 못 읽습니다. 내 마음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짜증인지 노래인지 웃음인지 눈물인지 고단함인지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시샘인지 제대로 읽지 않으면,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머리를 키우지 못할 뿐 아니라, 어느 일도 제대로 못하고, 어느 놀이도 제대로 즐기지 못합니다.


  새로운 힘을 쓰는 까닭은 ‘지구별 우두머리 되기(지구 정복)’ 때문이 아닙니다. 새로운 힘을 쓰면 스스로 기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힘을 쓰면 내 보금자리를 내가 손수 아름답게 가꿀 수 있습니다. 새로운 힘을 쓰면 내 하루가 언제나 새로우면서 웃음으로 가득합니다. 만화책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은 바로 이 대목을 살살 건드립니다. 내가 내 마음부터 제대로 못 읽는 바보가 아닌지 살그머니 건드립니다. 내가 이웃과 동무뿐 아니라 우리 집 살붙이가 어떤 마음인지 제대로 읽으려면, 바로 내 마음부터 옳게 읽고 아름답게 북돋우는 길을 걸어야 하는 줄 넌지시 건드립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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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년
김성희 지음 / 수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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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39



귀에 딱지가 앉는 만화

― 몹쓸 년

 김성희 글·그림

 수다 펴냄, 2010.4.27.



  김성희 님이 빚은 만화책 《몹쓸 년》(수다,2010)을 읽다 보니 내 예전 일이 문득 떠오릅니다. 나도 서른 언저리에 ‘언제 장가 가느냐?’ 하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둘레 어른은 ‘언제 공부 하느냐?’부터 해서 ‘언제 대학교 가느냐?’를 거치고 ‘언제 회사 가느냐?’를 지나서 ‘언제 애인 사귀느냐?’와 ‘언제 시집·장가 가느냐?’를 입에 달고 사는데, 이 다음에는 ‘언제 아기 낳느냐?’와 ‘언제 집 장만하느냐?’를 내내 캐묻습니다. 그냥 건네는 인사말이 아니라 캐묻는 말입니다.


  나는 이제 이런 말을 더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둘레 어른들이 이런 말을 우리 아이한테 하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큰아이가 여덟 살을 코앞에 두니 ‘언제 학교 가느냐?’ 하는 말을 끝없이 들려줍니다. 아이를 꼭 학교에 보내야 할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여덟 살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에 가야 하는 줄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모르는 채, 아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 어떤 삶이 될는지 모르는 채, 그저 쳇바퀴처럼 빙빙 돌리려 합니다.



- 두 번의 여행 사이에 나는 서른이 되었고, 서른을 넘었다. (8쪽)

- 보는 사람마다 하는 소리에 귀에 딱지가 생길 지경이다. (13쪽)

- 친구의 남편이자 동창은 우리를 가리켜 ‘진짜 재미난 친구들’이라 거듭 말하고,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되지 않으려는 사무실 노총각은 오버스럽게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28쪽)





  곰곰이 돌아보면, 한국 사회에서 바보스러운 쳇바퀴짓을 한 지 그리 오랜 나날이 흐르지는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쉰 해 즈음 될 테지요. 남녘과 북녘이 갈라진 뒤 어수선한 틈바구니에서 군사쿠테타가 일어나고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이라는 허울좋은 독재정권이 불길처럼 일어날 무렵부터 이런 바보스러운 캐묻기와 쳇바퀴가 불거졌습니다.


  한국사람은 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달삯을 받아야 할까요? 한국사람은 왜 도시에 가서 ‘성공’해야 할까요? 한국사람은 왜 몽땅 대학생이 되어야 할까요?


  ‘언제 시집·장가 가느냐?’ 하는 말만 뚝 잘라서 안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바보스러운 캐묻기가 모조리 사라져야 합니다. 아니, 온갖 바보스러운 말과 생각과 지식을 죄다 걷어내야 합니다. 삶을 짓는 길을 찾아야 하고, 삶을 가꾸는 사랑을 북돋아야 하며, 삶을 누리는 꿈을 지어야 합니다.



- 이해받고 싶다. 아니, 이해하게 하는 게 힘인 거 같다. (35쪽)

- 저 노인은 밭에서도, 산에서도 놓여났을 것이다. 저 노인의 실업에는 아무런 불안이 없다. 내 어울리지 않는 여유보다 자연스럽다. (83쪽)

- 우리가 바라는 건 다르지 않아.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데 이렇게도 서로 쉽지가 않아. (118쪽)





  삶이 있을 때에 사랑이 싹틉니다. 삶이 없기에 쳇바퀴짓을 하면서 오직 돈만 모아서 밥벌이를 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삶이 있을 때에 노래를 부르고 웃습니다. 삶이 없기에 쳇바퀴짓에 얽매여 노래도 없고 웃음도 없습니다.


  만화책 《몹쓸 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웃는 사람’도 ‘노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살림이 고단해서 못 웃거나 못 노래할까요? 아닙니다. 돈이 없더라도 웃고 노래하는 사람은 많아요. 노닥거리느라 웃거나 노래하지 않아요. 스스로 즐거움과 기쁨을 불러들여서 삶을 환하게 빛내거나 밝힐 적에 웃거나 노래합니다.


  아이들이 왜 웃거나 노래할까요? 즐겁고 기쁘기 때문에 웃거나 노래합니다. 혼자서 놀더라도 새롭게 놀기에 즐겁고, 동무와 뛰놀면서 새롭고 신이 나니까 기쁩니다.


  다시 말하자면, 만화책 《몹쓸 년》은 한국 사회가 엇나갈 뿐 아니라 뒤틀리거나 비꼬인 슬픈 얼굴을 비춘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 사회가 언제까지 이토록 엇나가거나 뒤틀리거나 비꼬여야 할까 하고 묻는다고 할 만합니다.



- “저기 술집들, 문학적이지 않아? 이름들이?” (155쪽)

- 스스로 유일한 취미가 텃밭을 가꾸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족을 가꾸는 일이 유일한 취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192쪽)

- 그와 나에게 있는 건 이 시간이다. 그와 나에게 있는 이 거리는 서로를 위한 것이다. 이 거리를 자유라고 말해도 될까. 생이 다하지 않는 한, 그의 진심이 소중할 뿐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216∼217쪽)





  엇나가는 사회 얼거리를 바로잡는 길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 비로소 사회 얼거리를 바로잡습니다. 내가 내 삶을 바로잡고 씩씩하게 일으켜세울 적에 비로소 사회 얼거리가 바로섭니다.


  다만, 사회를 바로세우려고 나를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내 삶을 지어서 스스로 웃고 노래하려는 기쁨을 누리려고 나를 사랑합니다. 웃음꽃을 피우려는 사랑이요, 노래잔치를 이루려는 사랑입니다.


  《몹쓸 년》을 그린 김성희 님은 이녁 삶과 살붙이를 돌아보면서, 끝끝내 ‘사랑’ 한 마디를 길어올려서 붙잡으려 합니다. 이녁이 다시 기운을 내어 만화를 그리는 힘과 바탕은 바로 ‘사랑’에 있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서로 헤아리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사랑은 말로 그릴 수 없을까요. 사랑은 그림으로 보여줄 수 없을까요.


  겉으로 깔깔 호호 하하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웃음이 아닙니다. 포근한 기운이 흐르면서 마음을 따사롭게 어루만질 때에 비로소 웃음이고, 이러한 웃음에서 사랑이 자랍니다. 악을 쓰든 고래고래 거친 말을 내뱉든, 사랑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맞서야 할까요. 왜 자꾸 부딪히거나 다투어야 할까요.


  씨앗에서 싹이 트려면 햇볕과 빗물과 바람과 흙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네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싹이 트지 않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어야 하니, 네 가지를 아우르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씨앗 한 톨은 모두 다섯 가지 기운을 받아서 깨어납니다.


  사람이 먹는 밥이나 능금이든, 새로운 목숨으로 태어나는 사람이든, 우리 마음속에서 자라는 사랑이라는 씨앗이든, 모두 다섯 가지 기운을 받아서 깨어납니다. 만화책 《몹쓸 년》에는 다섯 가지 기운 가운데 어떤 기운이 흐를는지 궁금합니다. ‘사랑이라는 씨앗’도 사랑을 받으면서 깨어납니다. 4347.12.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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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시간 2
세이케 유키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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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37



오붓하게 누리는 하루

― 성실한 시간 2

 세이케 유키코 글·그림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9.30.



  내 땅이 있을 적에는 삶이 참으로 다릅니다. 재산이라든지 땅문서로 가지는 땅이 아니라, 내 손으로 돌보고 내 발로 디딜 수 있는 땅이 있을 적에는 하루가 참으로 다릅니다. 풀이 자라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고, 풀꽃이 피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는 모습을 꾸준히 바라볼 수 있고,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서 심을 수 있습니다.


  내 땅에서 자라는 나무가 있으면, 이 나무로 찾아오는 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온갖 멧새가 날마다 사뿐히 내려앉아서 놀다가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며, 나무열매를 따먹는 모습이나 풀벌레를 잡아서 먹는 모습까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내 땅’을 누렸고, 누구나 내 땅을 누렸기에 내 땅에서 아이를 낳고 돌볼 적에 으레 모든 이야기를 내 땅에서 길어올렸겠다고 느낍니다. 개미 한 마리부터 나무 한 그루까지, 바람 한 점부터 구름 한 점까지, 햇살 한 조각부터 별빛 한 조각까지, 골고루 살피고 맞아들이면서 하루를 누렸으리라 느낍니다.





-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요! 카즈사! 살아 있는 사람에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고.” (19쪽)

- “진짜로 더 이상 아무것도 못하게 되면 어쩔 건데요?”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30쪽)



  오늘날에는 ‘내 땅’을 누리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도시에는 아파트나 건물을 손에 쥔 사람이 꽤 많지만, 이들은 아파트나 건물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가졌을 뿐입니다. 나무를 심는다든지 새와 노닌다고 하는 땅을 가지지 않습니다. 몇 억이나 몇 조에 이르는 땅을 가졌어도, 이 땅을 홀가분하게 누리지 못하는 도시 얼거리입니다. 삶터로 누리는 땅이 아닌 재산으로 거머쥔 땅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면 즐거울까요? 아니에요. 돈을 많이 가진대서 즐겁지 않습니다. 삶을 가꾸거나 일굴 수 있는 돈을 가져야 즐겁습니다. 잔뜩 거머쥐기에 즐겁지 않아요. 기쁘게 쓰면서 나눌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이야기를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지을 수 있는 삶과 살림일 때에 즐겁습니다.





- “난 유령 같은 것들이 보이는 게 너무 싫어 미칠 것만 같았어. 정신병인가 싶어서 부모님한테 말도 못하고. 그런데 네가 날 의지해 주고 네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난생 처음으로 귀신이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49쪽)

- “생판 모르는 타인을 의지해서라도 어머니께 기운 내시라고 전달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그래! 카즈사가 지금의 널 보면 정신 차려, 그러면서 화낼걸? 틀림없이.” (100쪽)



  세이케 유키코 님이 그린 만화책 《성실한 시간》(대원씨아이,2014) 둘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살아서 이 땅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루를 누릴 때에 웃거나 노래하거나 즐거울까요. 죽어서 이 땅에 묻힌 사람은 어떻게 삶을 마감하거나 앞으로 새로운 삶을 맞이하려고 할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언제 웃을까요. 우리는 어느 곳에서 노래할까요. 우리는 누구와 사랑을 나눌까요. 우리는 왜 밥을 먹고 왜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할까요.



-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 아직은 극복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아마도 평생 무리겠지. 그래도, 어떻게든 잘 살아 볼게.” (129∼130쪽)





  설거지를 하다가 수세미에서 수세미 씨앗이 한 톨 뿅 나옵니다. 잘 마른 수세미 열매는 설거지를 하기에 좋은데, 수세미 씨앗 한 톨을 보고 나서 속을 들여다보니, 참말 수세미 씨앗이 여럿 더 있습니다. 수세미란 수세미풀에서 피어난 꽃이 시들고 나서 맺은 열매입니다. 이 열매를 말려서 설거지를 할 적에 씁니다. 잘 마른 수세미 사이에는 씨앗이 깃듭니다. 이 씨앗을 흙한테 돌려주면 수세미풀은 새롭게 자랄 수 있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 삶인지 돌아봅니다. 무엇을 하면서 하루를 맞이하고 싶은지 생각합니다. 내가 내 삶을 돌아보아야 내 삶을 읽습니다. 내가 내 하루를 생각해야 동이 트는 아침에 아이들과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만화책 《성실한 시간》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저마다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삶을 빚을 때에 곱게 빛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죽음 뒤’를 조금 건드리기는 하지만, ‘죽음 뒤’를 슬기롭거나 또렷하게 밝히지는 못하는데, ‘사는 동안’을 찬찬히 짚으니, ‘사는 동안’ 어떻게 살면서 웃고 노래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책을 덮습니다. 4347.12.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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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32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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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35



걸어온 길을 돌아보다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2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12.9.25.



  한낮에 뒤꼍으로 가서 복숭아나무를 들여다보려 하니, 복숭아나무 옆에 마을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우리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아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뒤꼍에서 자라는 복숭아나무는 볕을 아주 잘 받습니다. 볕이 아주 잘 드는 자리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복숭아나무는 무럭무럭 큽니다. 마을고양이도 이 자리가 겨울볕이 아주 좋은 줄 잘 아는 듯합니다. 날마다 아침과 낮과 저녁으로 복숭아나무를 들여다보는데, 오늘 낮에는 마을고양이 낮잠을 깨우고 싶지 않습니다.


  며칠 앞서 장미나무 한 그루를 옮겨심었습니다. 꼭 옮겨심으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우리 집 뒤꼍 장미나무 한 그루가 그만 뚝 끊어졌습니다. 내 손가락 굵기만 한 여린 장미나무가 끊어진 모습이 애처롭기에 마당 한쪽 꽃밭에 심었지요. 잘 자라렴, 이곳에서는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않는단다 하고 속삭였습니다. 이 아이가 뿌리를 잘 내리기를 바라면서 틈틈이 들여다보면서 말을 건넵니다. 옮겨심은 아이는 돌울타리를 따라 몸을 기대면서 겨울볕을 살짝살짝 받습니다.



- “요모하라 선생은 재미있군요. 보통 유학생이 일본어를 배우는데, 요모하라 선생이 유학생보다 훨씬 열심히 언어를 공부하시니. 하지만, 이러면 학생을 너무 봐주게 되지 않습니까?” “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재미있어서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16쪽)

- “이제야 떠올랐습니다. 요모하라 선생의 얼굴과 말이.” ‘유택 씨. 그 친구들과 두 번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언어로 이어져 있고 싶지 않겠습니까.” (31∼32쪽)





  오늘 아침에는 뒤꼍에서 우리 집 감나무를 한참 올려다보았습니다. 우리가 시골마을에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얻은 지 이듬해에 다섯 해째입니다. 며칠 뒤면 새해가 되니, 어느새 다섯 해째 우리와 지내는 감나무라 할 만합니다. 우리가 이곳에 깃들이기 앞서까지 퍽 오랫동안 빈집이었다고 하니, 감나무는 이웃사람 손길을 탔을 만합니다. 예전에는 이 집에서 살던 사람들 손길을 탔을 테지요.


  마을에 있는 다른 감나무를 보면 키가 작습니다. 키가 큰 감나무가 드뭅니다. 감알을 따기 좋도록 가지를 뭉텅뭉텅 자르기 때문입니다. 가지를 잘라야 이듬해에 알을 더 많이 맺고, 따기에도 수월하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만큼은 가지치기는 좀처럼 안 합니다. 아예 안 하지는 않으나, 쭉쭉 뻗는 가지를 일부러 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나무답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올라가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우리 집 뒤꼍 감나무를 가만히 살피니, 곳곳에 생채기가 있습니다. 생채기가 아물면서 마디가 꽤 굵습니다. 얼마나 자주 가지치기를 겪었으면 이렇게 되었나 싶습니다. 도시마다 찻길 한켠에서 자라는 거리나무도 줄기 한쪽이 뭉툭합니다. 하도 가지치기를 겪어서 아파하고 아물고 아파하고 아물기를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 “여기는 카즈히코 이모부가 정신을 집중하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성한 곳이다. 하나코가 아무리 열성적인 팬이라 해도 이 자리를 더럽히는 것은 허락할 수 없구나.” (56쪽)

- “에도 사나이라면 패기가 있어야지” “좀 어렵군요. 아니, 저는 에도 출신이 아니라서, 지역의 관습은 존중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부분도 있으니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108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2) 서른둘째 권을 읽습니다. 서른둘째 권에서도 유택 교수가 지난날을 곰곰이 더듬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유택 교수 나름대로 걸어온 길을 차분하게 되새기면서, 이녁이 어릴 적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이녁이 어른으로 사는 오늘 보고 듣고 겪는 이야기와 맞물립니다. 어릴 적부터 곧게 흐르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릴 적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어른인 오늘 새롭게 깨닫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하지만, 나는 당신과 달리 아직도 세계의 관찰자입니다.” (135쪽)

- “역시 유택 씨였군요. 발소리로 금방 알았습니다.” “발소리?” “자기 뜻에 따라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제멋대로인 사람, 우유부단인 사람, 발소리는 성격에 따라 각각 다르죠.” “나는 어떤 발소리입니까?” “언제나 규칙적이고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죠.” (168쪽)



  유택 교수는 홀가분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합니다. 이녁은 ‘온누리를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가만히 이야기합니다. 누구보다 유택 교수 스스로 돌아볼 테고 지켜봅니다. 유택 교수를 둘러싼 사람들을 가만히 돌아보거나 지켜봅니다. 사람들이 두 발을 딛고 지내는 이 땅을 찬찬히 돌아보거나 지켜봅니다. 궁금하면 묻거나 스스로 생각합니다. 궁금하기에 책을 찾고 자료를 뒤집니다. 궁금함을 풀려고 책과 자료를 모아서 건사합니다. 수수께끼를 풀면서 웃고, 수수께끼를 내면서 노래합니다. 삶은 언제나 아름다운 수수께끼투성이요, 사랑은 늘 재미난 수수께끼꾸러미입니다.



- “물방울을 떨어뜨려 악기 같은 소리를 내는 장치죠. 이 소리를 만들어 내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저녁바람이 불면 절의 대나무 숲에서 댓잎이 사각거리죠. 대숲 소리를 들으면 까마귀가 둥지로 돌아가는 소리도 신경쓰이지 않습니다. 이제 단풍잎도 물이 들기 시작하는군요. 돌 위에 잎사귀가 하느적 떨어지는 소리가 좋습니다.” (183쪽)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은 구름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꽃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이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어떤 소리를 듣고 싶은가요? 어떤 소리로 내 가슴을 감싸고 싶은가요? 어떤 소리를 나누고 싶은가요? 어떤 소리를 스스로 밝혀서 이 땅에 이야기 한 자락 심고 싶은가요?


  겨울볕이 포근합니다. 그러나 겨울인 만큼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밤에는 제법 춥습니다. 아니, 우리 집이 깃든 전남 고흥이니 낮에는 포근하고 아침저녁에는 쌀쌀할 수 있어요. 다른 고장에서는 한낮에도 무척 추울 테고, 어느 고장에서는 겨우내 눈이 가득 쌓여서 옴쭉달싹 못할 수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고장에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 손길을 타면서 태어납니다. 저마다 다른 마을에서 저마다 다른 노래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 마음을 적시면서 흐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우리 이야기를 씨앗으로 심는 하루입니다. 내가 걷는 길은 내 삶을 웃음꽃으로 피우려는 꿈입니다. 4347.12.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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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12-2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재 유교수의 생활, 나 대학다닐때 후배가 만화방에서 늘 보던 만화였던거 같은데요. 한 20년 전에 나왔던 그 만화 맞나요?

숲노래 2014-12-24 05:56   좋아요 1 | URL
아주 오랫동안 그리는 만화입니다 ^^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을 놓고

열 권째 느낌글을 모두 마무리짓는다.

아쉽게도 이 책은 '열 권 꾸러미'로는 다루지 않아

이렇게 따로 글을 모두어 본다.


2012년 3월 13일에 첫 느낌글을 썼고

2014년 12월 22일에 7권 느낌글을 뒤늦게 쓰면서

비로소 끝을 맺는다.


<푸르게 물드는 눈> 2권은 언제 한국말로 나올까?

손가락을 빨기는 쉽지 않다 @.@



1. 오줌 싸 주니 이불 빨래 (2012.3.13.)


2. 밤에는 밖에 못 나가지 싶다 (2012.4.3.)



4. 즐거이 살아가는 넋 (2012.6.4.)

http://blog.aladin.co.kr/hbooks/5656617 


5. 삶이란 (2014.8.19.)



7. 눈송이 같은 마음 (2014.12.22.)


8.사랑을 아끼는 마음 (2014.6.22.)


9. 삶과 삶과 삶 (2012.12.3.)


10. 옆에 있고 싶어 (201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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