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33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14



마음을 읽는 너와 나 사이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3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12.11.25.



  눈빛으로 마음을 읽는 사이가 있습니다. 낯빛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있습니다. 입으로 말을 꺼내도 마음을 못 읽는 사이가 있습니다. 찬찬히 글로 길게 적어서 보여주어도 마음을 못 헤아리는 사이가 있습니다.


  왜 누구는 마음을 읽고, 왜 누구는 마음을 못 읽을까요. 왜 누구는 마음을 즐거이 읽으려 하지만, 왜 누구는 마음을 꽁꽁 닫아걸까요.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2) 서른셋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유택 교수가 누리는 삶을 그리는 만화책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는 셈일까요. 유택 교수는 머잖아 정년퇴직을 헤아릴 만한 나이로 접어듭니다. 유택 교수는 이제껏 겪거나 헤아리지 못하던 일도 겪을 수 있고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됩니다. 제때에 맞추어 움직이고, 제자리에 맞게 생각하는 삶이지만, 앞으로는 제때와 제자리가 모두 흔들리거나 어긋날 수 있다고 하나둘 느낍니다.





- “그런데 테라야마. 교실 안에서는 실내화를 신는 게 어떨까?” (7쪽)

- “테라야마. 너는 왜 언제나 웃고 있지?” “유택이한테는 안 통하는구나. 왜냐면, 모두에게서 사랑받는 것이, 내 일이니까.” (12쪽)

- ‘다음날 학교에서 다시 테라야마에게 물어 보려고 마음 먹었다. 너는 24시간 내내 일을 하고 있니?’ (17쪽)



  무엇이 궁금하면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는 유택 교수는, 궁금한 대목이 있으면 수수께끼를 풀 때까지 생각하고 거듭 생각합니다. 어느 때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실마리를 풀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기 때문에, 실마리가 어느새 살며시 찾아옵니다. 이를테면, 둘레에서 여러 가지 일이 터지면서 실마리를 깨닫습니다. 둘레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 저런 일에 부딪히면서 넌지시 실마리가 됩니다.


  ‘해님과 같은 웃음’이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 해님과 같은 웃음입니다. 해님과 같은 웃음이란 무엇일까요? 해님과 같이 웃는 사람은 이런 웃음을 스스로 느끼지 않아요. 그저 해님처럼 웃을 뿐입니다. 해님이 지구별을 골골샅샅 따사로이 어루만지듯이, 해님웃음을 짓는 사람은 둘레 사람 누구한테나 맑고 밝으면서 따스한 숨결을 베풉니다.





- “줄곧 물어 보려 했던 것이 있습니다.” “응? 뭐지?” “당신은 24시간 내내 일을 하고 있습니까?” “무슨 소린가 했더니.” “네?” “아마 당신하고 비슷할 거야. 당신은 인간을 연구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인간을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31쪽)

- “하나 물어 보세. 자네가 내 집에 오고 1주일 간, 이야기를 들으며 쭉 궁금하게 여긴 게 있었는데, 좋은 역이란 뭔가?” “좋은 역?” (73쪽)

- “어떻게 너는 그렇게 언제나 태양처럼 웃을 수 있지?” “응?” “가르쳐 줘! 네 웃음의 비밀을!” (82∼83쪽)



  웃음은 심리학으로든 무슨무슨 학문이나 과학으로든 풀 수 없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삶은 심리학이나 교육학이나 이런저런 학문이나 과학으로나 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기는 ‘연구 대상’이 아니라, ‘목숨’이요, ‘사랑을 받아 꿈을 키우는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지으며 흥얼흥얼 부르는 노래는 과학이나 학문으로 밑뿌리를 밝힐 수 없습니다. 왜 노래가 나오는지, 왜 어떤 노래가 어느 때에 흘러나오는지, 이런저런 것을 놓고 ‘사례 연구’는 할 수 있을 테지만, 막상 학문이나 과학을 하는 이는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밥을 짓거나 옷을 깁거나 집을 짓는 사람은 스스럼없이 언제나 노래를 불러요.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언제나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한테 밥을 차려 주는 어버이는 늘 기쁘게 노래를 부릅니다. 동무와 사이좋게 노는 아이들은 노상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 “아, 이를 어쩐다. 난 그런 골치 아픈 건 모르고, 그렇게 시들시들한 얼굴 하지 말고. 자! 이 당근이나 먹어 봐! 맛이 기차다고!” (84쪽)

- ‘나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가족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였을까. 산타의 존재를 믿을 뻔했던 순간의 그 흥분 때문일까. 이유가 있는 답인지는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그무렵부터, 내 연구 대상에 사람의 마음이 추가되었다는 사실이다.’ (124쪽)

- “자네가 극복해야 할 문제는 아마 하나일 걸세. 이제 그 문제 자체에 대해 의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만. 왜냐하면 그토록 자존심이 강한 자네가, 이렇게 자신을 드러냈으니까.” (184쪽)



  마음을 읽는 너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허물이나 울타리가 없습니다. 마음을 안 읽는 너와 나 사이에는 온갖 허물이나 울타리가 있습니다. 마음을 읽기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을 안 읽기에 어깨동무를 안 합니다. 마음을 읽으면서 서로 삶을 북돋아 줍니다. 마음을 안 읽으면서 그예 등을 돌립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요. 낮에는 해와 파란 빛깔을 보고, 밤에는 별과 까만 빛깔을 보아요. 눈을 들어 멀리 살펴요. 낮에는 들과 숲을 보고, 밤에는 별자리와 밤구름을 보아요.


  우리 둘레에서 흐르는 바람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귀여겨들어요. 우리 둘레에서 날아다니는 새와 나비와 잠자리는 무슨 이야기를 밝히는지 눈여겨보아요. 이러면서 삶을 생각해요. 나는 어떤 목숨으로 태어났을까요. 내 이웃과 동무는 저마다 어떤 목숨으로 살아왔을까요. 이 실마리를 푸는 길에 슬기로운 사랑이 씨앗 한 톨로 자랍니다. 4347.11.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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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경의 가족관찰기
선현경 지음 / 뜨인돌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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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5



함께 놀아 한결 재미있는

― 선현경의 가족관찰기

 선현경 글·그림

 뜨인돌 펴냄, 2005.1.10.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놀기도 하고, 아이들이 달라붙어 놀기도 합니다. 새로운 놀이로 아이들을 이끌기도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새로운 놀이를 지어서 신나게 웃고 노래하기도 합니ㅃ다.


  놀이는 노는 사람이 새롭게 짓습니다. 누가 가르치기에 놀지 않습니다. 누가 알려주어서 놀지 않아요. 언제나 스스로 놉니다.


  나뭇가지를 써서 어떻게 놀 수 있다고 한 가지쯤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오로지 아이 몫입니다. 나뭇가지를 연필 삼아 흙바닥에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나뭇가지를 꼬챙이나 지팡이로 삼을 수 있으며, 나뭇가지를 다리로 여길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는 칼이 되기도 하지만, 하늘을 나는 날개가 될 수 있어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도 여행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어쩌면 한두 달 하다 보니 집에 가기 싫어졌고, 서너 달 다니다 보니 서울에 가기가 무서워졌고, 너덧 달 하다 보니 앞으로 먹고살 일이 걱정되어 길어졌는지도 모르겠다. (22쪽)

-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난 남자를 몰랐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그건 다 가짜다. 어째서 난 아빠나 집안에 널려 있는 남자를 보고 직감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내 남편만은 그들과 전혀 다를 거라 섣불리 단정지었을까? (35쪽)





  밥을 짓습니다. 함께 먹을 밥을 짓습니다. 날마다 똑같이 먹는 밥이지만, 날마다 다르게 짓습니다. 여느 밥으로 짓더라도 그릇에 다른 모양새로 풀 수 있고, 국그릇과 밥그릇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은 국을 듬뿍 담고, 어느 날은 밥을 듬뿍 담을 수 있어요. 당근과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볶을 수 있지만, 당근과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밥냄비에 넣어 함께 끓일 수 있습니다. 당근과 고구마와 감자와 양파를 알맞게 삶을 수도 있고, 떡볶이를 하거나 비빔국수를 할 수 있습니다.


  바람을 마십니다. 잠자리에 누워서 바람을 마시고, 천천히 거닐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마시고, 두 다리로 달리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놀면서 마실 수 있는 바람이고, 뒷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마실 수 있는 바람입니다. 늘 마시는 바람이지만 늘 다르게 마실 수 있는 바람입니다.



- 남편에겐 나의 친정이 나에게 시댁과 같은 느낌이겠지. 발 쭉 뻗고 누워 쉬고 있어도 다리가 아픈 불편한 장소 …… 명절이나 제사 때 친정에 가면 남편은 늘 뭔가를 하고 있다. 제사 음식을 나르기도 하고, 상을 닦기도 하며, 심지어 집안 어른들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평소엔 찾아볼 수 없는 참 바지런한 모습이다. (66쪽)

- 남자들이 모이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소재가 군대에 관한 것처럼, 우린 둘러앉아 아줌마들만이 경험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82쪽)





  《선현경의 가족관찰기》(뜨인돌,2005)를 읽습니다. 혼자 놀던 선현경 님이 둘이 노는 사이가 되다가, 어느새 셋이 노는 삶으로 달라지는 흐름을 찬찬히 글과 그림으로 엮습니다.


  혼자 놀면 혼자 노는 대로 재미있습니다. 함께 놀면 함께 노는 대로 재미있습니다. 혼자 먹으려고 짓는 밥은 혼자 먹으려고 짓는 대로 맛있습니다. 함께 먹으려고 짓는 밥은 함께 먹으려고 짓는 대로 맛있어요.


  어떤 밥을 먹든 우리가 누리는 밥입니다. 어떤 놀이를 하든 우리가 누리는 놀이입니다. 어떤 집에서 어떤 살림을 꾸리는 우리 삶이요 우리 꿈입니다.



- 이제는 그만 나를 나로서 인정해 주길 바라는데 말이다. 나란 인간이 조금은 덜렁대고, 조금은 잘 잊어버리고, 조금은 정신없다는 사실을 제발 기억해 주기를. 눈 한번 꼭 감고 그저 아무 말 없이 감싸 주기를. 우선 나부터 눈 한번 꼭 감고 감싸 줄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누구부터 감싸 주지? (186쪽)






  만화책 《선현경의 가족관찰기》는 선현경 님이 바로 이녁한테 스스로 주는 선물과 같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선현경 님을 둘러싼 곁님과 아이를 따사로이 바라보는 눈길을 담아, 오늘 하루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를 스스로 선물하고 스스로 받는 책이라고 느껴요.


  왜냐하면, 이 책은 하루하루 흐르면 흐를수록 누구보다 선현경 님한테 애틋할 테니까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이 책을 들여다보며 킥킥 웃을 수 있고, 선현경 님 곁님도 나중에 이 책을 되읽으며 하하 웃을 수 있지만, 누구보다 선현경 님 스스로 먼 뒷날 이 책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빙그레 웃음꽃을 피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글과 우리가 그리는 모든 그림과 우리가 찍는 모든 사진과 우리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바로 우리가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심는 따사롭고 알찬 씨앗입니다. 4347.11.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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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츄 Amanchu! 2
코즈에 아마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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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5

 


바라볼 수 있는 눈

― 아만츄 2

 아마노 코즈에 글·그림

 김유리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8.25.



  철마다 바닷물빛이 다릅니다. 못물빛도 철마다 다릅니다. 새파랗게 눈부실 적이 있고, 들과 숲처럼 푸르게 빛나는 때가 있습니다. 어쩌다가 바다나 못 옆을 스쳐서 지나간다면 어쩌다가 본 빛깔로 바다와 못을 읽을 수 있습니다.


  늘 지켜보는 사람은 늘 달라지는 빛깔을 바라봅니다. 살짝 스치는 사람은 살짝 스치는 빛깔을 바라봅니다. 저마다 두 눈으로 빛깔을 마주하고, 저마다 몸에 이야기를 새깁니다. 바라보는 만큼 알고, 바라보는 만큼 생각하며, 바라보는 만큼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늘 바라보더라도 생각으로 잇지 않으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늘 타고 다니는 버스라 하더라도 버스가 어떠한 얼거리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버스를 알 수 없습니다. 늘 바라보기 힘들고 살짝 바라보기조차 어려운 곳에 있지만, 꾸준히 생각하면서 꿈을 키우면 알 수 있습니다. 온마음으로 생각을 빚기 때문입니다.



-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해변길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날아갈 듯한 기분. 암스트롱 선장이 발을 내디딘 고요의 바다도,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을까?’ (5쪽)

- “여태까지 난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내가 먼저 움직일 수가 없었어. 늘 걱정만 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행동에 옮기지 못했지. 그래서 스스로도 신기해. 이번엔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12쪽)



  아마노 코즈에 님이 빚은 만화책 《아만츄》(학산문솨사,2010)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몸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닙니다. 하고 싶지 않으나 자꾸 몸이 끌린다면, 스스로 하려는 일입니다.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싶으면 바다로 가야 하고 헤엄을 쳐야 합니다.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해야 하는 종살이라면 이러한 종살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바다로 가지 않거나 바다에 가서도 헤엄을 치지 않는다면, 스스로 하고픈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쳇바퀴처럼 되풀이하는 종살이가 괴롭다면 스스로 이러한 종살이를 떨쳐야 합니다. 스스로 떨치지 않고서 푸념만 한다면, 새로운 푸념이 늘기만 할 뿐, 삶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 “하면 돼. 반드시 될 거야.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 (42∼43쪽)

- ‘푸른 빛에 살포시 감싸안긴 채, 내 몸이 공중을 떠다닌다.’ (48쪽)

- “왜 저렇게 즐거워 보일까? 바닷속 풍경이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이 시기는 말이다, ‘생명’이 시작되는 계절이란다. 산란 같은 것들로 바다에 영양이 그득하지. 이 시기에밖에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어. 바다에 가득한 식물성 플랑크톤을 작은 물고기들이 먹으러 오고, 그 작은 물고기들을 큰 물고기들이 먹지.” (74∼75쪽)



  시골 읍내에서도 밤에는 별을 못 봅니다. 시골 읍내조차 밤에는 전깃불이 밝기 때문입니다. 시골 읍내는 아주 조그맣지만 여느 도시와 똑같은 얼거리입니다. 시골 읍내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은 하루 내내 가게에 들어앉아야 하고, 가게 밖으로 나오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시골 학교도 도시 학교와 그리 다르지 않아요. 학생 숫자가 적고 학교 건물이 작더라도, 여느 도시와 똑같은 교과서를 쓰고, 여느 도시처럼 입시공부를 시킵니다. 시골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새로운 책을 쓸 수 없고, 시골살이를 누리는 기쁨을 학교 안팎에서 가르치거나 배우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시골에서 무엇을 바라볼까요. 우리는 도시에서 무엇을 바라보나요. 이웃과 동무를 바라볼까요. 찻길이나 들을 바라보나요. 아파트나 건물을 바라볼까요. 참새와 까치를 바라보나요.



- ‘이렇게 하면 핸드폰을 볼 때마다 언제라도 소중한 것들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그 순간의 감각. 언제 어디서라도 떠올릴 수 있는,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보물들.’ (144쪽)



  가을에 비가 옵니다. 가을비입니다. 길이 막히게 하는 비가 아닙니다. 봄에 비가 옵니다. 봄비입니다. 가을비는 겨울을 부르고, 봄비는 새싹을 부릅니다. 겨울비는 추위를 부르고, 여름비는 풀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북돋웁니다. 철마다 빗물이 다릅니다. 달마다 빗소리가 다릅니다. 언제나 새로운 비가 내리고, 늘 새롭게 풀이 돋고 눈이 트며 잎이 납니다.


  만화책 《아만츄》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직 제 길을 걷지 못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 길을 걷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누릴 수 있는지 잘 모르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오늘 하루를 즐겁게 누리는 길을 스스로 찾고 싶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고, 어디에서 살아야 할는지 모르며, 사랑이나 삶이나 꿈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하나씩 배울 수 있으며, 아직 모르기 때문에 차근차근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4347.11.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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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1 토성 맨션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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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2



위에 있으니 즐겁니?

― 토성 맨션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오지은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08.7.15.



  내가 어릴 적에는 ‘우리 집’ 아닌 ‘다른 집’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 어버이는 나를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에서 낳아서 키우셨다고 하는데, 나는 골목동네 조그마한 집이 어떠했는지 아주 어렴풋하게만 그립니다.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일곱 살 즈음부터 지낸 다섯 층짜리 아파트는 여러모로 많이 떠오릅니다. 이무렵 나는 이 집이 ‘집’이라고 여겼습니다. 작은아버지 사는 집을 찾아가고, 고모님이나 이모님 댁을 찾아가고 나서야 ‘다른 집’이 있는 줄 알았고, 집마다 살림살이가 다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우리 집하고 견줄 수 없이 커다란 집을 보았고, 우리 집보다 더 작은 집을 보았습니다. 방과 마루가 따로 없이 한 칸짜리로 이룬 그야말로 조그마한 집을 보았고, 두 층으로 지은 집을 보았어요.



- 지구를 따라 도는 상·중·하층 3개로 구분된 거대한 링 시스템 맨션. 우리들은 그 거대한 맨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구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이 되어, 내려가는 것 자체가 허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6쪽)

-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아버지가 내려선 장소를 찾고 싶다고.’ (34쪽)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른 집에서 삽니다. 그런데, 왜 누구는 조그마한 집에서 옹송그리면서 살고, 왜 누구는 커다란 집에서 널널하게 살까요. 왜 누구는 햇볕이 안 드는 집에서 살고, 왜 누구는 마당이 있는 커다란 집에서 살까요.


  나를 낳은 어버이와 지내면서 우리 집과 다른 집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왜 우리 어버이한테서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웃과 동무는 왜 크고작은 집에서 태어났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집을 모릅니다. 아기는 커다란 집이든 자그마한 집이든 살피지 않습니다. 아기는 오직 어버이 사랑을 헤아립니다. 오로지 어버이 사랑을 바라봅니다.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 혼자 서고 걸음마를 익히며 뛰놀 적에도 그저 어버이 사랑을 마주합니다. 아이들은 집이나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는 살피지 않습니다.



-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살고 있는 링 시스템 높이가 고도 35000미터나 되는데 그 벽을 닦는 거잖아요.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험도 있어요. 실제로 떨어진 사람도 있고 …… 목숨 보장, 작업복 관리에 꽤 비용이 들어서, 의뢰인에게 청구하는 금액도 커지고, 그래서 언제나 의뢰하는 쪽은 정부나 상층에 사는 고소득자들뿐이에요. 누나는 창문 닦는 일을 왜 의뢰했어요? 누나는 우리랑 같은 하층 주민이잖아요?” (45∼46쪽)

- “조금 닦인 틈새로 바깥을 봤어. 얼굴 딱 붙이고 말이야. 살짝 보인 풍경이 잊혀지지 않아. 진짜 하늘과 땅. 하층이면 인공 빛밖에 없잖아. 초등학생이 돼서 중간층에 갈 수 있기 전엔, 자연광이 좋은 이유를 잘 모르지.” (47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빚은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08) 첫째 권을 읽습니다. 지구별에서 사람들이 더는 살 수 없어 지구 바깥에 띠 같은 집을 길게 두른 뒤, ‘위·가운데·아래’ 세 층으로 나누어서 지낸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지구별 바깥으로 떠나야 한 사람들은 ‘세 계급’으로 나눈 셈입니다. 사람들은 세 가지 신분으로 갈리는 셈입니다.


  만화에만 나오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지구별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반지하와 옥탑에서 사는 사람이 있고, 한뎃잠을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삯이 밀려 괴로운 사람이 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에도 벅찬 사람이 있습니다. 한 달 집삯뿐 아니라 한 해 집삯에 이르는 돈으로 하룻밤을 묵는 호텔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한 달 동안 쓰는 밥값을 어떤 사람은 한 끼니 먹는 데에 쓰기도 합니다.


  먼 앞날, 지구별이 아주 망가져서 더는 사람이 발을 붙일 수 없는 때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이곳에서 신분과 계급으로 층이 갈립니다. 위와 아래가 갈립니다. 누군가는 위와 아래에 있고, 누군가는 위로 가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 ‘나에게 지금 밝은 방 같은 건 없지만 외롭지도 않아.’ (75쪽)

- “나는 결국 날 위해서 하는 거다. 이 일이 좋아졌으니까. 일단은 좋아하게 되는 게 우선. 그 다음은 스스로 생각해라.” (184쪽)




  위에 있는 사람은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위에 있는 사람은 흐뭇할까 궁금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슬플까 궁금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은 사랑이 없이 메마르거나 캄캄할까 궁금합니다.


  아니, 그리 궁금하지 않습니다. 위에 있다 한들 ‘위’라는 자리는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따로 없는 ‘위’라는 자리에 있더라도, 즐겁지 않고 사랑을 모르며 갑갑한 굴레에 갇혀 쳇바퀴질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로 없는 ‘아래’라는 자리에 있으나, 늘 웃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꽃피우는 사람도 많아요.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즐거울까요?


  스스로 노래하는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웃는 곳에서 즐겁습니다. 스스로 춤추고 꿈꾸는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어깨동무를 하고 이야기를 짓는 곳에서 즐겁습니다. ‘토성 맨션’이라는 곳에서 아래층에 있는 이들이 ‘위층 유리창’을 닦아 주지 않으면, 위층 사람은 늘 어둡고 퀴퀴하면서 차디찬 삶을 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4347.11.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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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알랭 1
카사이 스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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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11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 지젤 알랭 1

 카사이 수이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1.8.15.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합니다. 먹고 싶으면 먹어야 합니다.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해야 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는 까닭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사람은 언제나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뿐 아니라, 무엇을 하겠노라 생각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못 하는 채 하루하루 흐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기쁘게 해야 하고, 하려는 대로 즐겁게 해야 해요.



- “간판을 달았어요.” “어머, 그런 건, 에릭한테 시키면 될 것을.” “아뇨. 제 일인걸요.” (7쪽)

- “적어도 누군가에게 상당이라도 하자구요. 경찰이라든가.” “경찰? 이런 흥미진진한 일을 눈앞에 두고?” (29쪽)





  밤에 마당에 서서 별을 올려다봅니다. 아침에는 바람이 꽤 드세게 불더니, 낮이 되며 차츰 가라앉고, 저녁이 되니 조용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니 그리 춥지 않습니다. 별이 한결 또렷하게 빛납니다. 마당에서 빙글빙글 거닐면서 별을 봅니다. 아이들을 불러 함께 별을 봅니다. 두 아이를 한꺼번에 번쩍 안아 후박나무 밑에서 춤을 추다가, 다시 별을 봅니다. 처음 마당에 내려설 적에는 총총 빛나는 별이로구나 싶더니, 어둠이 눈에 익으면서 미리내를 차츰 알아봅니다. 시골에서 살며 별을 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합니다.



- “고양이 처음 만져 봐.” “네엣?” “털가죽이 참 부드럽네.” (37쪽)

- “지젤 양, 충동적으로 결정하면 안 돼요.” “충동적? 왜? 난 이 아이가 마음에 들고, 이 아이도 날 마음에 들어하는 걸.” (40쪽)

- “에밀리는 머리색이 밝아서 좋겠다. 꼭 해님 같아.” (50쪽)



  카사이 수이 님이 빚은 만화책 《지젤 알랭》(대원씨아이,2011)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지젤 알랭》에 나오는 ‘지젤 알랭’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아이입니다. 그러나 아직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어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하고 지내면서 언제나 가슴이 턱턱 막히기만 합니다. 이러다가 혼자 숨을 곳을 자꾸 찾으면서 지내고, 어느 날 언니가 이 아이를 이끌면서 이야기합니다. 네가 하고 싶은 길을 스스로 찾아보라고, 너(동생)한테 내(언니) 몫으로 있는 집을 맡길 테니,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집을 돌보면서 그곳에서 꿈과 생각을 키우라고 이야기합니다. 만화책 《지젤 알랭》은 ‘지젤 알랭’이라는 아이가 홀로서기를 하는 나날을 그립니다.






- “그런 얘기가 아니라,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거냐고 묻는 거잖아. 어린애나 부잣집이 무슨 상관인데!” (58쪽)

- “이건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130쪽)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처음에는 어버이가 손을 잡아 걸음마를 이끌지만, 아이는 어느새 어버이 손을 물리치면서 혼자 걷습니다. 아이는 걸음마를 뗀 뒤 콩콩콩 달리려고 애씁니다. 아이는 어버이보다 앞장서서 걸으려 합니다.


  이윽고 어버이가 아이한테 글을 가르칩니다. 또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낫질이나 호미질을 가르칩니다. 또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헤엄치기나 나물뜯기를 가르칩니다. 아이는 처음에 어버이 곁에서 어깨너머로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흉내를 내고, 한 해 두 해 흐르는 동안 몸이 자라고 힘이 붙으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합니다. 글도 혼자 써서 읽고, 호미도 혼자 쥐어서 땅을 쪼고, 혼자 물놀이를 하며, 혼자 나물을 뜯습니다.





- “난 공부하는 거 제법 좋아했어. 집 안에 언제나 어둡고 지루해서, 책을 읽고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웠거든.” (145쪽)

- “지금이 가장 즐거워!” “굴뚝 안에서 재투성이가 되는 게요?” “응! 풀을 밟으면 의외로 콕콕 찌르는데, 그게 시원해서 기분 좋아.” (146쪽)

- “나, 부모님과 헤어진 후로 누구랑 같이 뭔가를 먹는 건 처음이야.” (182쪽)



  홀로서기를 할 적에 돈이 어느 만큼 있으면 좋겠지만, 돈이 없대서 홀로서기를 못하지 않습니다. 돈이 넉넉해도 홀로서기를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홀로서기를 하자면,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혼자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하려는 생각이 있어야, 비로소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어요.


  만화책 《지젤 알랭》에 나오는 아이한테는 무엇이 있을까요? 집이 있습니다. 네, 집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 아이한테는 집하고 견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손수 삶을 짓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아직 어떤 삶을 지어야 할는지 잘 모르지만, 삶을 짓겠노라 다부지게 외치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한테는 어떤 꿈이 있을까요. 오늘 이 땅에서 살림을 꾸리는 우리한테는 어떤 꿈이 피어날까요.


  나와 이웃 모두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꿈을 지필 수 있기를 빕니다. 나도 이웃도 저마다 즐겁게 삶을 짓고 꿈을 노래하는 하루를 누리기를 빕니다. 아침마다 해가 빙긋 웃고 저녁마다 별이 방긋 노래합니다. 해와 별을 품에 안으면서 가슴에 씨앗을 심습니다. 4347.11.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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