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의 시대 1 - 나쓰메 소세키 편 세미콜론 코믹스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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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40



너울치는 사회에서 흔들리는 ‘지식인’

― ‘도련님’의 시대 1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가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10.26. 11000원



  세키가와 나쓰오 님이 글을 쓰고, 다니구치 지로 님이 그림을 그린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세미콜론)는 일본 정치와 사회와 문화에서 크게 너울을 치던 무렵을 그립니다. 다만, 이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는 일본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크게 너울치던 때에 ‘글 쓰는 사람’으로 살던 여러 사람 이야기를 빌어서 ‘일본에 어떤 너울이 쳤는가’ 하는 실마리를 풉니다. ‘메이지’라고 하는 물결이 잠들면서 서양 문화와 문명으로 일본이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나쓰메 소세키나 모리 오가이나 이시카와 다쿠보쿠 같은 사람을 빌어서 그립니다.


  아마 한국에서도 ‘한국 사회 개화기’를 그무렵 ‘글 쓰는 사람’을 빌어서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 개화기에는 어떤 ‘글 쓰는 사람’을 빌어서 이야기를 빚을 수 있을까요? 최남선이나 이광수나 서정주 같은 사람을 빌어서 이야기를 빚을 만할까요? 심훈이나 윤동주나 김유정 같은 사람을 빌어서 이야기를 빚을 만할까요? 주시경이나 김두봉은? 이효석이나 김동인은? 모윤숙이나 나혜석은? 홍명희나 김교신은?



“무턱대고 서양 흉내를 내려고 해도 그게 그리 쉬운가. 흉내를 낸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13쪽)


‘일본인은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술을 좋아한다. 그 전통은 메이지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 (21쪽)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를 이끄는 일본 작가는 아무래도 ‘나쓰메 소세키’입니다. 〈도련님〉이라는 작품을 빚은 사람이 바로 나쓰메 소세키이고, 이 만화책을 이끄는 이름도 ‘도련님’입니다. 이제껏 일본은 도련님(메이지 시대) 같은 나라요 사회요 문화였으면, 앞으로는 도련님은 저만치 뒤로 물러서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으로는 샌님 같은 도련님이 아닌, 씩씩하고 밝으며 다부진 새로운 젊은이가 일어선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는 일본 사회에서 ‘저무는 메이지 시대’를 마지막으로 기리면서 고이 떠나 보내려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면서도 떠나 보내야 하는 옛 시대를 아쉽게 그리워하는 책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메이지’나 ‘근대’나 ‘개화’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라든지 조선 시대라고도 어느 한때를 나누곤 합니다만, 이렇게 ‘시대를 가르는 잣대’는 어떤 사람 눈길일는지 생각해 봅니다.


  집에 ‘하인’을 두면서 지내는 사람들로서는 ‘천황’이 바뀌거나 정치·사회 얼거리가 바뀔 적마다 여러모로 소용돌이를 겪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인 자리에서 사는 사람’은 천황이 바뀌든 서양 군인이 들어오든 식민지 사회가 되든 언제나 똑같이 ‘하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소작농은 조선 사회에서도 소작농이었고, 개화기에도 소작농이었으며, 식민지 사회에서도 소작농이었어요.


  바깥에서는 정치나 사회나 문화가 너울을 친다지만, 막상 ‘나라를 버티거나 받치는 바탕’이 되는 자리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는 어떠한 너울도 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는 ‘도련님’이 흔들거리는 모습을 살며시 보여준다고 할 텐데, 이와 달리 《오싱》 같은 이야기를 떠올린다면, 깊은 멧골에서 살다가 읍내로 식모살이를 나온 ‘오싱’한테는 ‘너울치는 사회’는 아무것도 아니며 느낄 수조차 없는 대목입니다.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기저귀를 빨아야 하는 어린 오싱한테 근대나 개화란 무엇일까요?



“소설은 말이야. 체념했던 일에 거창하게 미련을 부리거나, 머리로 뀌는 방귀 같은 거야.” “머리로 뀌는 방귀. 음,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피가 끓는 성격이라곤 하지만 교사니까 다소 지식은 갖추고 있고, 결말에선 악당을 던져버려야 속이 후련하겠지.” (46쪽)


‘소세키의 병은 근대사회에서 비로소 자아에 눈뜨게 된 일본인의 고민, 또는 서구를 증오하면서도 서구를 배워야 했던 일본 지식인의 딜레마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52쪽)




  너울치는 사회에서 흔들리는 ‘지식인’을 재미나게 보여준다고 할 만한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입니다. ‘도련님(지식인)’ 눈높이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도련님 자리에서 사회를 맞이하며, 도련님 걸음걸이로 새로운 사회로 접어듭니다.


  이리하여, 도련님은 늘 도련님으로 있습니다. 도련님은 하인이 어떤 삶을 꾸리는가를 하나도 모르고 조금도 알려 하지 않습니다. 도련님은 인력거꾼이 어떤 살림을 꾸리는가를 하나도 모르고 조금도 알려 하지 않습니다. 도련님은 소작농이나 시골 농사꾼이 어떤 마을을 꾸리는가를 하나도 모르고 조금도 알려 하지 않습니다.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에서 ‘소세키 마음’을 들어서 말하는 대목처럼, 너울치는 사회에서 일본 지식인은 “근대사회에서 비로소 자아에 눈뜨게 된 일본인의 고민, 또는 서구를 증오하면서도 서구를 배워야 했던 일본 지식인의 딜레마(52쪽)”를 품습니다. 너울치는 사회에 발맞추어 제자리(지식인 자리, 또는 도련님 자리)를 지키는 데에는 마음을 쓸 줄 알지만, 이웃이나 둘레를 살피는 눈길은 매우 얕습니다.



“보기 드문 권총을 소지하고 계신데 그 총은 매우 부정확한 물건입니다.” “네?” “회전식으로 하시죠. 아이버 존슨 사의 총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표적도 잘 골라야죠.” “뭐가요?” “작년에 조선국을 보호화, 대놓고 말해 속국화하려고 애쓴 건, 야마가타 님이 아니라 이토 님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174쪽)



  《‘도련님’의 시대》를 보면 ‘안중근’이라는 사람이 살몃살몃 나옵니다. 일본사람은 안중근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한국에서 바라보는 안중근 ‘의사’와 달리, 일본에서는 ‘암살자’나 ‘살인자’로 바라볼 수 있겠지요. 일본 사회에서 수많은 지식인은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며 군국주의로 뻗는 일을 기뻐했을 수 있고, 전쟁으로 얻어들인 재산(그러니까 이웃나라한테서 빼앗은 재산)으로 일본 사회를 북돋운다면서 반길 수 있습니다.


  만화책 《‘도련님’의 시대》는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듯이 여러 목소리를 골고루 들려주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이웃(남)’ 일에는 마음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너울치는 사회에서 스스로(도련님 스스로) 살아남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스스로 어떤 몸짓을 해야 하는가를 놓고 끙끙 앓을 뿐입니다.



‘소세키뿐만 아니라 메이지의 지식인들에게 아시아는 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구를 규범으로 삼은 근대화의 파란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요동치는 자아의 확보에 매달렸다.’ (176쪽)




  도련님은 못 이깁니다. 도련님은 시대에 질 수밖에 없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너울치는 사회에서 지식인은 아무것도 못 이기고 아무것도 못 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저 너울에 따라 흔들리면서도 안 넘어지려고 용을 쓸 뿐입니다.


  그러면, 도련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너울치는 사회에서 어떻게 안 넘어질 수 있을까요? 바로 도련님 둘레에서 도련님을 지켜 주는 수많은 하인과 소작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로 치자면 수많은 노동자가 사회와 나라와 정치와 경제를 떠받칩니다. 수많은 비정규직이 이 나라를 지켜 줍니다.


  커다란 기업이나 재벌이 이 나라를 버티거나 먹여살리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똑같이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와 농사꾼’이 이 나라를 버티거나 먹여살리지요. 다국적기업이 한국에서 잇속만 챙기고 빠져나간들, 몇몇 재벌기업이 수출을 못한들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회와 공장과 회사와 식량을 버티도록 밑바탕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다만, ‘밑바탕 사람들 목소리’를 귀여겨듣거나 눈여겨보는 도련님(지식인)이 매우 드물거나 거의 없을 뿐입니다. 너울치는 사회에서 도련님은 흔들리지만, 밑바탕 사람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면서 제몫을 씩씩하게 합니다. 전쟁이 터지든 식민지가 되든 농사꾼은 봄이면 씨앗을 심습니다. 농사꾼이 씨앗을 심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굶어서 죽어요. 전쟁이 터지든 식민지가 되든 어머니는 아기한테 젖을 물립니다. 어머니가 아기한테 젖을 물리지 않으면 새로운 어린이가 자라지 못하고, 새로운 어린이가 자라지 못하면 한 나라나 사회는 곧바로 무너져서 사라지겠지요.



“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시대라는 것에 질 수밖에.” (224쪽)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지식인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서 ‘밑바탕’을 볼 줄 알았다면, 또 이녁 스스로 밑바탕이 되는 삶을 조금이라도 가꾸어 보았다면, 그리고 이녁 스스로 손에 호미나 낫이나 기저귀를 쥐고서 ‘살림 가꾸기’를 해 보았다면, 사회가 아무리 너울치더라도 스스로 튼튼하게 서거나 씩씩하게 살아가는 길을 한결 슬기로이 헤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넘쳐나는 새 지식을 마주하면서 넘쳐나는 새 지식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놓고 망설이기만 하니까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넘쳐나는 새 문명을 맞닥뜨리면서 옛 문명을 차마 놓기 어려우니까 몸이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아기는 늘 아기이니, 어머니는 언제 어디에서나 아기를 살뜰히 보살핍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바뀌어도 농사꾼은 늘 봄에 씨앗을 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둡니다. 고이 흐르는 삶을 바라보는 사람은 흔들릴 일이 없습니다. 고이 흐르는 삶과 사람과 사랑을 바라보지 않는 ‘도련님(지식인)’ 자리에만 머문다면 언제나 흔들리면서 휩쓸리는 가랑잎 같은 모습이 됩니다. 4348.9.18.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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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린네 18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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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53



삶을 이루는 바탕은

― 경계의 린네 18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8.25. 4500원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5) 열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을 이끄는 린네는 언제나처럼 가난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씩씩하게 부업을 하고, 꿋꿋하게 학교를 다니며, 야무지게 사신 일을 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돈과 얽혀 이런저런 꼬드김에 넘어갈 듯하기도 하지만, 린네는 끝까지 마음을 지킵니다. 다른 어느 것보다 린네한테는 제 마음을 튼튼하게 가다듬으면서 지키는 일이 대수롭습니다. 비록 피눈물이 흐를지라도 제 마음에 어긋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포획한 수와 먹힌 버섯의 가격을 따지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군.” “크윽. 제길! 머거머거버섯, 무서운 놈!” (22쪽)


영의 넋두리를 들어 주고 기분 좋게 성불시키는 것도 사신의 중요한 임무다. 하지만 말이 많은 영에게 붙들리면. (24쪽)



  린네를 둘러싼 적잖은 사람들은 린네하고 다릅니다. 린네처럼 제 마음을 튼튼하게 가다듬으면서 지키는 사람은 드뭅니다. 린네 아버지가 대표라 할 텐데, 린네 아버지는 돈을 얻는 길이라면 어떤 거짓이든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돈이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온갖 거짓말을 일삼습니다. 린네와 한 학교에 다니면서 바로 옆방에서 린네처럼 가난하게 지내는 렌게도 돈 앞에서 늘 무릎을 꿇습니다. 재주가 뛰어나고 머리는 좋으나 마음을 야무지게 다스리지 못해요. 이리하여 렌게는 늘 거짓말을 달고 살아야 하고, 린네 아버지도 언제나 거짓말로 삶을 잇습니다.


  그러면 린네는 어떻게 지낼까요? 린네는 끼니 걱정이 언제나 가장 크지만, 이밖에 다른 걱정은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거짓말을 다른 거짓말로 또 둘러댈 걱정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 허덕이지만, 돈에 얽매이거나 휘둘리지 않기 때문에 ‘돈을 거머쥔 거짓말쟁이’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몸은 가난하더라도 마음은 넉넉하다고 할 만한 린네입니다.



‘가난한 나의 방에 한 냄비 가득 어묵전골이! 아아, 꿈이라면 깨지 말기를!’ (44쪽)


“그걸 받으면, 너도 공범이라고!” “깨끗한 돈 따로 있고 더러운 돈 따로 있니?” (84∼85쪽)



  삶을 이루는 바탕은 무엇일까요. 우리 삶은 어떤 일을 하면서 환하게 빛날까요. 삶을 가꾸는 바탕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꿈을 키우면서 삶을 곱게 일굴 만할까요.


  겉치레로 얻는 이름은 언제나 겉치레일 뿐이기 때문에 겉을 더 치레하느라 바쁩니다. 겉치레를 하며 누리는 돈은 언제나 겉치레일 뿐이니 겉을 자꾸 치레하느라 돈을 더 벌어서 더 써야 합니다.


  마음을 가꾸는 사람은 마음을 가꾸는 데에 온 숨결을 들입니다. 마음을 사랑스레 가꾸며 하루를 보내기에 언제나 사랑이 흐르고, 언제나 사랑이 흐르는 삶이니, 나를 비롯해서 내 둘레 이웃들한테 한결같이 따사롭고 넉넉한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혹시 물건 못 버리는 성격 아니야?” “하지만 너랑 네 할아버지랑 같이 살던 즐거운 추억이 어린 가구인걸. 흠집 하나하나마저 애틋해서.” “그럼 원래대로 두는 수밖에 없네.” (125쪽)


“그럼 맡기고 올게요.” “잠깐. 하늘에서 준 선물, 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네요.” “이런 건 안 받으면 천벌 받겠지.” (173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 《경계의 린네》는 조금도 설교를 늘어놓지 않습니다. 청소년이라고 할 만한 아이들이 스스로 풋풋한 마음을 곱게 지키면서 살림을 가꾸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너무 어른스럽지 않으면서도 너무 철없지도 않은 모습을 곱게 보여줍니다. 삶을 하나씩 새로 배우는 아이들을 보여주고, 새로운 한 가지를 배우면서 날마다 거듭나는 몸짓을 천천히 보여줍니다.


  삶을 이루는 바탕이란 바로 사랑스레 배우는 손길이요 몸짓이며 꿈이라고 할 테지요. 너와 내가 오순도순 노래하고, 네가 나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합니다. 따사로운 마음이기에 즐겁게 어울리고, 넉넉한 사랑이기에 기쁘게 어우러집니다. 4348.9.1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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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 18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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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52



너는 왜 ‘무엇’이 되려고 하니?

― 강철의 연금술사 18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8.4.25.



  아침에 대문 앞과 마당 둘레 풀을 낫으로 베는데, 오른무릎이 꽤 욱씬거립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만큼 아프지는 않습니다. 천천히 낫질을 하고, 어느 만큼 풀을 베고서 큰아이를 불러 밥그릇 하나 가져 달라고 합니다. 잘 익은 까마중을 밥그릇에 훑습니다. 까마중풀을 남기고 웬만한 풀은 모두 벱니다. 이렇게 베어 주어도 풀은 잘 자랍니다. 그동안 이곳에 드리운 풀씨가 아주 많을 테니 곧 새로운 풀이 돋을 테지요. 까마중풀을 남기고 풀을 베니 아이들한테 까마중 열매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이제 두 아이는 이십 분 남짓 까마중을 둘러싸고 새까만 열매를 훑느라 바쁩니다.



“너, 킴블리를 너무 믿지 마.” “어? 왜? 신사답고 좋은 사람이던데? 우리 아빠 엄마한테도 호의적이었고.” “신사답다니, 저 녀석이 이슈발에서 무슨 짓을…….” (12쪽)


“이해하고 떠받쳐 주는 사람이란 결국 함께 싸웠던 전우들 중에서 나오는 거구나.” (29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 만화책 《강철의 연금술사》(학산문화사,2008) 열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권마다 새로운 삶과 시람이 나오고, 새롭게 부딪히는 일과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이도 어른도 꾸준하게 자라고, 한결 튼튼하거나 씩씩한 마음이 됩니다.


  참말 그래요. 아이만 자라지 않습니다. 어른도 자랍니다. 왜 어른도 자라는가 하면, 어른도 아이와 똑같이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기 때문에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른도 더욱 날렵하고 다부진 몸짓이 되고, 아이도 더욱 기운차며 단단한 몸놀림이 됩니다.



“무의미한 협박은 삼가 주시요? 지금 여기서 나를 죽여 봤자 그쪽에는 아무 이점도 없을 텐데요?” “잘 알고 있군요. 이 일을 입밖에 내면 어떻게 될지 알죠? 당신 동료나 머스탱 대령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나는 언제나 당신을 그림자로부터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53쪽)


“설마 사람을 죽일 각오도 없이 군의 개가 된 것은 아니겠죠?” “죽이지 않을 각오로 들어왔어!” (58쪽)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사람 아닌 ‘무엇’을 꿈꿀 때에 삶이 즐거울까요?


  죽지 않는 삶을 꿈꿀 만할까요? 나 혼자 안 죽고 다른 사람은 모두 죽어도 되는 삶을 꿈꿀 만할까요? 너와 내가 모두 아름답게 삶을 짓는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미움도 슬픔도 아닌 기쁨과 즐거움으로 누구하고든 넉넉히 어깨동무하는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앙갚음이나 되갚음이 아니라 사랑을 가슴속에서 끌어내어 따사로이 손을 맞잡는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윈리, 미안해. 우리 사정 때문에 돌아가신 아저씨, 아주머니를 이용하게 돼서.” “괜찮아. 지금은 살아 있는 너희들이 더 중요해.” (71쪽)


“착각하지 말아요. 옳지 않은 일을 용서하는 건 아니니까.” (126쪽)



  참다운 사랑일 때에 사랑입니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려면 참다운 숨결이 흘러야 합니다. 참다운 삶일 때에 삶입니다. 삶을 삶이라고 하려면 참다운 넋으로 흘러야 합니다. 참다운 사람일 때에 사람입니다. 겉모습만 사람이 아니라 속마음으로 오롯이 너그럽고 따사로운 마음일 때에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모험과 전투 장면을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만화책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전쟁과 평화가 엇갈리는 사회를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만화책에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슬기롭게 삶을 사랑하려는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하고 땀방울을 이 만화책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올려다보면 파란색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흑백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이렇게 인정을 베풀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144쪽)


“그러고 보니, 현자의 돌에 대해 더 이상 나에게 안 물어 보던데, 그래도 되니?” “그건,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희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171쪽)



  사람으로 태어난 아이는 사람으로 자랄 때에 아름답습니다. 사람인 아기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를 사람으로 돌보며 키울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살인기계와 같은 군인으로 키워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살인기계하고 비슷한 입시지옥 병정으로 길들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는 아이다운 삶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는 초등학생 때에만 또래동무를 사귄 뒤, 중학생 때부터는 온통 입시경쟁자한테 둘러싸인 입시지옥에서 허덕여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회를 보면 ‘또래동무’라는 허울을 붙인 채 아이들이 서로서로 미워하거나 시샘하면서 다투기만 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아이들을 모질게 괴롭히니까요. ‘현자의 돌’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 목숨을 빼앗아 제 배를 채우려고 하는 짓이랑, 입시지옥에서 ‘우리 아이만 서울권 일류대에 뽑히도록 닦달하는 짓’은 그저 똑같을 뿐입니다. 함께 사는 길을 생각하고 찾을 때에 비로소 함께 사는 길이 열립니다. 함께 사는 길을 생각하지 않고 찾지 않는다면, 함께 사는 길은 앞으로 조금도 열리지 않습니다. 4348.9.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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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프랑세즈 - 유월의 폭풍
이렌 네미로프스키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에마뉘엘 모아노 그림 / 이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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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551



아무도 군대에 끌려가야 하지 않아

― 스위트 프랑세즈, 유월의 폭풍

 이렌 네미로프스키 글

 에마뉘엘 모아노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이숲 펴냄, 2015.9.10. 15000원



  1903년에 키예프에서 태어난 뒤, 1917년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삶터를 옮긴 이렌 네미로프스키라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독일이 두 번째로 전쟁을 일으켜서 프랑스를 차지한 뒤에는 프랑스에서 책을 펴내는 길이 모두 막혔다고 하는데, 전쟁이 삶과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소설로 쓰다가 프랑스 헌병한테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고, 수용소에서 한 달 만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분 곁님도 수용소로 끌려가서 죽었는데, 어린 두 딸은 살아남았고, 두 딸 가운데 동생이 1996년에 죽자, 맏이은 드니스는 어머니가 수용소로 끌려가기 앞서 아버지가 저한테 맡기면서 꼭 건사하라고 했던 가방을 처음으로 열었다고 해요.


  어머니 가방에서 나온 것은 5부작으로 쓰려고 했던 소설 가운데 2부였고, ‘할머니 나이로 늙은 어린 맏딸’은 어머니가 미처 마무리짓지 못하고 남긴 소설 원고를 정리해서 책으로 내기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스위트 프랑세즈, 유월의 폭풍》(이숲,2015)은 바로 이렌 네미로프스키 님이 남긴 소설을 바탕으로 엮은 만화책입니다.



“엄마! 전쟁 중인데 아직 거리에 오가는 남자들은 뭐죠? 16세부터 60세 사이 남자는 모두 전쟁터로 가야 하잖아요!” “그런 건 어른들한테 맡기고 넌 가서 손이나 씻고 오렴. 곧 저녁 먹을 거야.” (19쪽)


“아빠, 저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여기에 함께 있을래요! 뜻있는 동지들을 만나면 저항군을 조직할 수도 있어요! 할 수 있다고요!” “너무 늦은 것 같구나.” “에? 뭐예요? 전쟁에 진 거예요?” (23쪽)



  나는 군대라는 곳에 1995년부터 1997년 사이에 있었습니다. 강원도 양구 깊은 멧골짝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냈습니다. 그무렵 육군 보병으로 무엇을 느꼈는가 하면,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나 하사관을 비롯한 간부를 비롯해서 대대장이든 연대장이든 하는 사람들은 우리 ‘육군 보병’을 ‘총알받이’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합니다. 나라에서 세운 군사작전에서 육군 보병은 ‘총알받이’입니다. 전방이나 최전방에 수십만 젊은이가 바글바글 몰려야 하는 까닭도 남녘이나 북녘 모두 젊은 사내를 총알받이로 써서 ‘웃사람’은 3분이라도 틈을 내어 뒤로 내빼려는 뜻이거든요.


  언제나 3분만 버티면 된다고 하지만, 3분 동안 어떻게 버틸까요? 남녘이든 북녘이든 저마다 온갖 미사일을 끝없이 쏘아댈 텐데요. 그저 남북이 모두 잿더미가 되면서 젊은 사내 수십만이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전쟁이란 그렇지요. 젊은 사내는 그저 잿더미에 갇혀서 주검도 못 건지도록 하고, 웃사람은 전쟁공로를 거머쥐면서 더 많은 돈과 이름을 얻도록 할 뿐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전쟁이란 없고, 평화를 지키려는 전쟁이란 없습니다.




“가브리엘! 다행히 방을 구했는데, 대체 왜 그래요?” “다행? 저런 쥐구멍이 다행이야? 빈대에다 하수구 냄새 진동하는 끔찍한 다락방이야! 내가 누군지 몰라? 나 코르트 가브리엘이야! 나보고 저런 방에 있으라고?” (51쪽)


‘왜 죽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까. 저들은 전쟁이나 죽음하곤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지만, 똑똑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몰라.’ (70∼71쪽)



  만화책 《스위트 프랑세즈, 유월의 폭풍》을 보면, 첫 대목에서 어머니한테 ‘열여섯 살∼예순 살’ 사내 가운데 전쟁터에 안 간 사람이 왜 이리 많으냐 하고 묻는 열여덟 살 아이가 나옵니다. 이 아이도 스스로 잘 모릅니다. 저도 열여덟 살이니까 군대에 가야 하지만, 아버지 권력으로 군대에서 아예 안 부릅니다. 이 아이네 집안에서 일하는 집사며 요리사며 시중꾼이며, 게다가 ‘아버지’조차 전쟁터에 갈 마음이 아예 없습니다.


  이밖에 은행장이나 미술관장이나 예술가나 부자는 저마다 ‘뭔가 줄을 대었는’지 소집영장을 아예 안 받습니다. 그리고 귀중품을 자가용에 가득 싣고 ‘여느 사람들은 모르는 일곱 정보’를 일찍 건네받은 다음 피난길에 올라요.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마 한국에서도 이 만화책과 똑같은 얼거리대로 흐르리라 느낍니다. ‘멋모르는 착하고 앳된 젊은 사내’만 ‘나라를 지킨다는 거룩한 뜻’에 불타올라서 총을 쥐려 하겠지요. 그러고는 며칠 만에 총알받이로 죽어 버리겠지요. 돈과 이름과 권력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할까요? 미리 고급정보를 손에 쥐었을 테니 언제 어디로 피난길을 떠나면 되는 줄 압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젊은 사내’한테 군인이 되라는 선전을 목청 높이 외칠 테고, ‘사회 양극화’는 더 깊게 벌어지리라 느낍니다.



마을 사람들은 피난민들을 동정했지만, 내심 자신들 처지가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57쪽)


“알린은 피죽도 못 먹었는데, 그놈들이 음식 바구니를 들고 시시덕거리는 꼴을 보니 눈이 확 뒤집히더라고!” “정중하게 부탁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오르탕스?”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저런 사람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아. 개처럼 굶어죽게 내버려뒀을 거야.” (91쪽)




  나는 한국 군대에서 육군 보병으로 있으면서, 백예순다섯 사람에 이르는 한 내무반 사람들 가운데 ‘부잣집 사람’이나 ‘이름 있는 집안 사람’이나 ‘힘이나 뒷줄 있는 사람’을 아무도 못 보았습니다.


  나는 강원도 양구 깊은 멧골짝에 있는 군대에서 총알받이로 스물여섯 달을 지내는 동안, 시골 농사꾼이던 젊은이, 공장 노동자이던 젊은이, 안경 수공업자인 젊은이, 조폭이나 건달로 놀다가 끌려온 젊은이, 학교 성적이 그리 좋지 않던 고만고만한 대학생, 학교 성적이 괜찮으나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대학생, 열아홉 살에 혼인도 안 했으면서 벌써 두 아이를 여자친구가 낳게 하고 끌려온 젊은이, …… 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바탕을 이루지만 제대로 두드러진 적이 없고 드러나 보인 적이 없으며 알려진 적조차 없는 ‘수수한 한겨레 이웃’하고만 지냈습니다.


  부산에서 조폭이었다는 아이나 봉화에서 주먹깨나 썼다는 아이도 육군 보병이 되어 줄맞춰 세우면 똑같은 총알받이입니다. 나이도 어린 하사관한테 반말과 막말을 마구 들으면서, 이를테면 ‘네가 그렇게 주먹을 잘 쓰면 나 좀 때려 봐?’ 같은 이죽거림을 으레 들으며 바보가 되어야 하는 곳이 군대입니다.



그렇다! 모두 여기 있었다. 전직 장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부터 거물 실업가, 출판인, 신문 편집장, 상원의원, 극작가에 이르기까지. 한곳에 모여 있는 유명 인사들을 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모두 한배에 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전보다도 훨씬 잘 지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자 코르트는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들은 자기네 세상이 절대 사라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신전심으로 서로 확인해 주었다. 이들 지배 계층은 무너진 과거 체제의 잔해 위에 세워질 새로운 체제 역시 단숨에 장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81쪽)




  만화책 《스위트 프랑세즈, 유월의 폭풍》은 소설책을 바탕으로 합니다. 소설책을 쓴 분은 ‘독일 점령군’이 아닌 ‘프랑스 과도 정부’한테서 모든 활동을 못 하도록 가로막혔고, 바로 ‘프랑스 헌병’이 이분을 붙잡아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아는 참모습은 무엇일까요? 점령군은 무엇이고, 지배자는 누구일까요?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한테 식민지가 되어야 하던 때에도 ‘한국을 아낀 일본사람’은 틀림없이 있었고, ‘한국을 저버린 한국사람’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모두들 말하지요. 제 한몸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제 한몸 살아야 하니까 다른 사람은 죽거나 말거나 쳐다보지 않는다고.


  전쟁이란 이렇습니다. 전쟁이란 사람됨을 모두 망가뜨립니다. 착한 사람을 바보로 망가뜨리는 전쟁입니다. 고운 사람이 다치게 하거나 그예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전쟁입니다.



독일군이 침공하자 그는 예비역 장교로 다시 군에 입대했다. 그의 병력은 거의 전부가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살아남을 기회가 있었고,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비록 패전 장교였지만, 부인과 귀여운 딸들이 기다리는 저택으로 돌아와 편히 지낼 수 있었다. (192쪽)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모습을 참모습으로 알면서 살까요? 왜 집권자는 평화를 가꾸는 데에는 돈을 아주 조금만 쓰고, 전쟁무기와 군대를 거느리는데에는 아낌없이 펑펑 쓸까요? 게다가 우리는 집권자가 전쟁무기와 군대에 돈을 펑펑 쓰는 일에 왜 찬성표를 던지고 마는가요? 한국 사회에 평화가 없는 까닭은 ‘북한 탓’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엄청난 전쟁무기와 군대를 끌어안고서 스스로 ‘총알받이 구실’에 길든 탓은 아닐까요?


  왜 우리 세금은 새만금을 메우는 데에 바쳐야 했을까요? 왜 우리 세금은 독재자가 엄청난 돈을 빼돌리는 데에 빼앗겨야 했을까요? 왜 우리 세금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짓는 데에 쓰여야 할까요? 왜 우리 세금은 사대강이나 제주해군기지 같은 곳에 퍼부어야 할까요?


  ‘프랑스 이웃’ 손에 붙들려서 죽음길로 가야 한 ‘프랑스 작가’ 한 사람이 남긴 이야기는 이 대목을 우리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풀어내기를 바라지 싶습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 전쟁무기와 군대를 꽉 끌어안고서 ‘입으로만 평화’를 외칠까요? 4348.9.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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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9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50



우리 마을 ‘지킴이’는 모두 어디 갔을까?

― 은여우 9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5.7.31. 5000원



  우리 집에는 아이들이 있어서 시끌시끌합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둘이 있는 보금자리는 두 아이가 내는 노래가 가득 흐르면서 북적입니다. 아이들은 얌전하게 놀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들은 조용히 놀지 않습니다. 언제나 마루를 쿵쿵 울리면서 뛰고 마음껏 소리를 지르면서 놉니다. 마당에서도 마루에서도 고샅에서도 그야말로 온몸으로 외치고 노래하면서 놀아요.


  그러고 보면, 마을마다 아이들이 넘치던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노는 소리로도 언제나 시끌시끌했습니다. 도시도 시골도 똑같아요.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골목을 가득 메우면서 놀고, 시골에서도 들이나 숲이나 냇가나 고샅을 가득 메우면서 놉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골목이나 마당에서 일합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어른들은 흥얼흥얼 일노래를 부르면서 빙그레 웃음을 지어요.



‘예전에는 긴타로밖에 없어서 조용했는데! 지금은 하루도 있고, 많이 시끌벅적해졌지. 긴타로는 조용한 게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전보다 덜 쓸쓸해 보이는 것 같아. 훨씬 더 전에는 어땠을까?’ (22쪽)


“나는 깨달았어. ‘본산은 모두의 것이지 내 신사가 아니다. 그리고 산의 바깥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지금의 인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이대로 산과 하나가 되어 버려도 괜찮은 걸까’ 하고 말이야. 나는 본산을 떠나 내 신사를 찾으면서, 세상을 두루두루 돌아보기로 했어.” (28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대원씨아이,2015) 아홉째 권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조용한 삶터는 조용한 대로 아름답습니다. 시끌벅적한 삶터는 시끌벅적한 대로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뛰노는 모습이 성가시거나 싫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어른이 된 사람’은 누구나 아기 적이나 아이 적에 신나게 뒹굴거나 뛰놀았기 마련입니다. 무서운 어버이가 매섭게 다그친 탓에 제대로 뛰놀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텐데, 어버이가 따스하고 보드랍게 어루만지면서 돌보면, 어떤 아이라도 신나게 뒹굴거나 뛰놀아요. 아이는 모름지기 실컷 뛰고 달리고 뒹굴고 날면서 온몸이 튼튼하게 자라니까요.


  그러고 보면, 시골은 아이들이 없어서 조용합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없으니 시골은 너무도 조용합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도 사람 목소리로 와글거리지 않기 일쑤예요. 도시 아이들은 뛰놀 빈터가 없거나 학원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에는 아이들이 많아도 빈터마다 자동차가 차지합니다. 자동차가 빈터에 서지 않더라도 찻길을 싱싱 달리는 자동차가 워낙 많아서 아슬아슬합니다. 연을 날릴 만한 빈터는커녕, 딱지를 치거나 팽이를 돌릴 만한 빈터조차 찾기 어려워요.



‘조용한 신사도, 즐거운 신사도, 나는 좋아. 정말로, 신의 사자가 보여서 행복해.’ (38∼39쪽)


“우리 가게를 이어가는 게 꿈이니까, 일부러 멀리 돌아갈 필요 없잖아.” (69쪽)



  만화책 《은여우》는 ‘일본 신사’를 물려받은 두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끕니다. ‘일본 신사’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시달린 ‘신사 참배’가 떠오릅니다. 제국주의 권력은 이웃나라를 총칼로 쳐들어가면서 ‘일본 문화와 역사와 사회와 종교’를 억지로 심으려고 했습니다. 한국 곳곳에 일본 신사가 섰고, 퍽 오랫동안 한국 어린이와 어른은 신사에 가서 억지로 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제국주의 권력은 일본에서도 모든 일본사람이 신사에 가서 절을 하도록 시켰을 테지요. 일본에서도 ‘신사 참배’를 안 하다가 따돌림받거나 시달린 사람이 꽤 많겠지요.


  제국주의 권력이 총칼을 앞세울 적에는 언제나 제 나라부터 윽박질러서 길들입니다. 이윽고 이웃나라로 총부리를 돌리면서 ‘거짓 충성’에 사람들이 휩쓸리도록 내몹니다. ‘일본 신사’는 바로 사람들이 ‘거짓 충성’에 휩쓸리도록 북돋운 구실을 톡톡히 맡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일본 신사를 물려받는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책이 한국말로 나옵니다. 한국하고 일본 사이에 앙금이 모두 풀렸기 때문이라기보다, 권력에 빌붙는 이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이 권력에 빌붙고, 수수하게 삶을 짓는 이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수수하게 삶을 지어요.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먼 옛날부터 제 고장(고향마을)에서 조용하게 삶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일군 어버이’를 사랑합니다. 종교나 강요로 말하는 ‘일본 신사’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과 같은 숨결을 헤아리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괜찮여, 괜찮여, 둘 다 잘못 없당께!” “그려, 그려, 모처럼 만났는디.” “착하구먼. 둘 다 참말로 착혀.” “오늘은 좋은 날이여. 이렇게 좋은 아이를 둘이나 만났응께.” “참말로 좋은 날이여.” (161쪽)


“한 가지만 여쭤 봐도 될까요? 어째서 궁사님은 신이나 신의 사자가 보이지 않는데도 믿으실 수 있죠?” “글쎄요,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과 없는 건 다르니까요.” (173쪽)



  곰곰이 돌아보면, 한국에서는 서낭당이 거의 모두 무너졌습니다. 예부터 한국에서도 마을마다 ‘마을 지킴이’가 있고, 집집마다 ‘집 지킴이’가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지킴이는 싸그리 무너지거나 내쫓기거나 사라져야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모질게 짓밟히기도 했지만, 이보다는 한국전쟁을 거치고 새마을운동 바람이 휩쓸면서 그야말로 몽땅 무너졌다고 할 만합니다.


  만화책 《은여우》에서 ‘수백 해에 걸쳐서 작은 절집(신사)을 지켜 주는 은여우’가 나온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크고작은 고장에 크고작은 마을마다 두고두고 우리 고장이랑 마을을 돌보던 지킴이가 있고 도깨비가 있을 테지요.


  우리는 어떤 지킴이를 섬기면서 이웃을 어떤 마음으로 아꼈을까요? 우리는 어떤 하느님을 마음속으로 품으면서 이웃을 어떤 사랑으로 보살폈을까요?



“그건 그것대로 그때마다 배워 나가면 되는겨. 남은 인생도 아직 길잖여. 우리는 배우고자 하는 사람 편잉께.” (177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끌시끌하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어버이는 이 아이들한테 따사로운 지킴이 구실을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를 마음으로 따르고, 어버이는 아이들을 마음으로 아낍니다. 우리가 사는 조촐한 시골집에는 수많은 풀벌레가 하루 내내 노래하고, 온갖 멧새가 꾸준히 찾아듭니다. 철 따라 드나들던 많은 새들은 이제 찬바람이 썰렁하니까 자취를 감춥니다. 나락이 천천히 익고, 들바람 결이 바뀝니다.


  우리 마을 지킴이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집을 지키고 곳간을 지키며 뒷간을 지키고 문간을 지키며 부엌이랑 밭자락을 지키던 넋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서낭당은 사라져야 했어도, 우리 마을을 지키는 숨결은 사라지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깊은 밤에도 밝은 낮에도, 우리가 이곳에서 즐겁고 씩씩하게 살림을 가꿀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흐뭇하게 웃으리라 느낍니다. 늦여름에 그야말로 느즈막하게 깨어난 나비들이 우리 집 호박꽃이며 고들빼기꽃이며 모시꽃이며 부추꽃이며 쇠무릎꽃이며 바삐 드나듭니다. 나비 한 마디도 따사로운 지킴이일 테지요? 나도 이 작은 나비를 따사로이 바라보는 지킴이로 이곳에 있습니다. 4348.8.3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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