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교수의 생활 25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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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4



삶을 배우는 사람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5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07.6.25.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녀도 배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나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학교를 마치고 나면 더 배우지 않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학교를 다녀야 배우고, 학교를 안 다니면 안 배울까요. 왜 어떤 사람은 학교를 안 다녀도 배우고, 학교에 다녀도 안 배울까요.


  학교가 있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스스로 배운다면, 학교라는 곳은 왜 있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학교가 있을 때에만 배우고 학교가 없을 때에는 안 배운다면, 우리 삶은 무엇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 ‘불가사의하군. 저 둘은 그날의 운세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밤이 되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왜 검증도 하지 않고 믿을 생각부터 할까?’ (10쪽)

- ‘검증하는 것은 좋지만, 나에게 뭐가 좋은 일이고 뭐가 나쁜 일일까?’ (16쪽)

- “야단을 치지 않으면 리포트를 못 쓰나? 벌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건가? 그러면 뭣 때문에 대학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군. 대학이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찾아내기 위해 오는 거라네.” (84쪽)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살랑살랑 춤을 춥니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은 고즈넉하면서 싱그럽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숲에서 부는 바람은 우리 몸을 따사롭게 감쌉니다.


  바람은 아침저녁으로 다릅니다. 바람은 낮밤이 다릅니다. 뭍에서 부는 바람과 섬에서 부는 바람과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모두 다릅니다. 물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바람을 잘 읽어서 알아야 합니다. 들일이나 숲일을 하는 사람도 바람내음을 잘 헤아려서 알아야 합니다.


  물일을 하는 사람은 물빛을 읽습니다. 들일을 하는 사람은 들빛을 읽습니다. 물일을 하기에 물빛을 읽을 뿐 아니라, 흙내음을 함께 읽습니다. 냇물이나 바닷물은 물만 맑대서 맑지 않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나무가 우거지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골짝물이나 빗물 따라 고운 흙이 냇바닥이나 갯바닥으로 찬찬히 흐를 때에 비로소 냇물과 바다가 싱그럽습니다.


  한편, 들일이나 숲일을 하는 사람도 흙내음이나 풀내음뿐 아니라 빗소리와 바람결을 모두 읽습니다. 들과 숲은 풀과 나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쬐면서 들과 숲이 푸릅니다. 지구별을 이루는 모든 넋과 숨결을 읽을 때에 비로소 들도 숲도 물도 바다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런 불확실한 것에 왜 인간은 몇 천 년이나 좌우되고 있을까요?” “누구나 불안하니까 남의 입을 통해 보증을 받고 싶은 게 아닐까요?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만으로도 기쁘고요.” “현실감이 없어도 말입니까?” (24쪽)

- ‘당신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기쁘다. 그래.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은 수 천 년 전부터 내가 지금 느낀 기쁨, 그런 기쁨을 느끼기 위해, 아득히 먼 별들을 서로 이어 신화를 만들어 내고, 태양이나 달, 나무나 바람, 삼라만상에 의미를 부여해 왔는지도 모른다.’ (31∼32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그린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07) 스물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배움길을 멈추지 않는 유택 교수는 어릴 적부터 늘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이고, 젊은이였을 적에도 언제나 새롭게 배우려는 넋이며, 나이가 들어 손녀를 보는 때에도 한결같이 새롭게 배우려는 숨결입니다.


  그런데, 유택 교수네 아버지는 유택이라고 하는 사람한테 삶이나 살림이나 숲이나 들은 거의 못 보여주거나 안 보여주었지 싶어요. 아마, 유택 교수네 아버지도 몰랐으니 못 보여주거나 안 보여주었을 테며, 마음이나 눈길을 기울이지 않았으니 못 가르치거나 안 가르쳤겠지요.


  누군가 유택 교수한테 텃밭을 보여주거나 가르친다면 어떠할까요? 아마 유택 교수는 처음에는 여러모로 쓴맛을 보거나 잘 안 될 테지만, 어느새 흐름을 깨우치고는 즐겁게 밭일과 논일을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 “어린이도 빨간 불일 땐 기다려야지. 어른들도 빨간 불일 때 건너는 사람이 있단다. 아무리 행동이 어른스러워도 겉모양이 어린아이면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법이야.” (39쪽)

- “나는 어른이란 논리적인 두뇌를 갖추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어. 아버지가 전하려 했던 뜻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지금도 감정적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단다.” (62쪽)



  배우려는 사람은 언제나 배웁니다. 공부를 해야 하거나 학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밝히고 싶기 때문에 배웁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배웁니다. 시험성적이 잘 나오기를 바라면서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한결 아름답게 가꾸고 싶기에 배웁니다. 1등이나 2등이 되려는 뜻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따사롭게 보듬고 싶어서 배웁니다.


  배움이란 티가 없는 몸짓입니다. 가르침도 티가 없는 몸짓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말 한 마디를 배울 적에는 티가 없습니다. 어버이도 아이한테 말 한 마디를 가르치면서 티가 없습니다. 둘 사이에는 오직 사랑과 믿음이 감돕니다.





- “유택이는, 유택이는 어중간한 걸 이해 못해. 그러니까 그 사람의 말 ‘뒷면’에 있는 의미를 모르는 거야. 사람의 더러운 부분을 몰라. 열등감을 이해 못해. 보통 사람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걸 몰라.” (136∼137쪽)

- “글쎄, 너는 영리하지도 않고 요령도 없지만, 눈앞에 있는 문제에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맞서니까, 학교 공부를 넘어서, 언제나 평생,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계속하겠지.” (142∼143쪽)



  삶을 배우는 사람은 착합니다. 늘 배우기 때문에 착합니다. 늘 사랑을 배우기 때문에 착합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이에요. 그러니, 삶을 배우는 사람은 늘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손길로 하루를 지을 테니, 이녁은 늘 착하면서 참답고 아름답겠지요.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뿐 아니라, 우리 둘레 누구나 착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뿐 아니라, 우리 모두 착하면서 아름답게 삶을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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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희 11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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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3



삶과 죽음 사이

― 설희 11

 강경옥 글

 팝툰 펴냄, 2014.9.29.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죽지 않았으니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죽습니다. 살지 않으니 죽습니다. 그런데, 산 목숨으로 오늘을 맞이하지만, 산 목숨답게 하루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제 막 숨을 거두었으나 모든 것을 홀가분하게 내려놓고 즐겁게 새로운 곳으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산 목숨일 때에 얼마나 즐거운 산 목숨일까 궁금합니다. 휘둘릴 것도 붙잡을 것도 없이 홀가분하게 새로운 곳으로 넋이 날아갈 수 있다면, 이때에는 어떤 이야기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강경옥 님 만화책 《설희》(팝툰,2014) 열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느 연속극과 벌여야 한 실랑이 탓인지 모르나, 만화책 《설희》를 이루는 뼈대는 일찌감치 드러나야 했습니다. 이제 만화책 《설희》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은 ‘설희가 어떤 삶’인지 거의 알아챕니다. 오백 살 가까이 죽지 않고 살아온 나날을 어렴풋하게 읽습니다.





- ‘말이 힘을 가진다는 느낌. 정말로 죽을 수 있다는 순간 내가 정말 죽고 싶은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지.’ (10쪽)

- “너에겐 과거만 중요한 거 같아. 마치 과거만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처럼. 그래서 그 과거가 다 밝혀지고 해결되면?” (18쪽)



  스스로 오백 살 즈음 살지 않고서야 오백 해 동안 살아온 사람이 어떤 마음일는지 알기는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스스로 쉰 해나 백 해쯤 살다가 죽지 않고서야 쉰 해나 백 해 만에 숨을 거두어 사라지는 사람이 어떤 마음일는지 알기 어렵겠지요.


  오백 살을 살아온 사람은 쉰 해를 살다 죽을 사람이 어떤 마음일는지 읽기 어렵습니다. 쉰 해를 살다 죽을 사람은 오백 살을 살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 오백 살을 더 살 만한 사람이 어떤 마음일는지 읽기 어렵습니다.


  둘은 어떻게 만날까요. 둘은 서로 어떻게 사랑을 속삭일 수 있을까요. 둘은 어떻게 동무나 이웃이 될까요. 둘은 서로 어떻게 꿈을 키울 수 있을까요.





- “어쩌면 너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기억하려고는 하고 있어?” (35쪽)

- “세계까지 전쟁으로 들어갔어. 세상은 언제나 변해. 이 전쟁이 끝나도 또 언젠가 전쟁이 나겠지.” (109쪽)

- ‘작은 농담과 일상의 대화. 눈발이 날리는 강원도에서 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161쪽)



  삶과 죽음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면, 나 스스로 삶과 죽음 사이에 가야지 싶습니다. 꽃내음을 알려면 나 스스로 꽃내음을 맡아야 하고, 시냇물이 얼마나 싱그럽고 맛난지 알려면 맑게 흐르는 시냇물을 찾아서 두 손으로 떠서 마셔야 합니다.


  아이와 누리는 삶을 알려면 아이를 낳거나 아이를 가까이 두고 돌봐야 합니다. 어느 책을 알거나 말하려면 어느 책을 읽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 까닭을 알자면 어떤 사람이 어제와 오늘 어떻게 살았는가를 찬찬히 헤아려야 합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한대서 알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면 겉모습은 훑겠으나 속내는 살피지 못해요. 살아야 압니다. 삶도 살아야 알고, 죽음도 살아야 알아요. 그러니까, 만화책 《설희》에 나오는 설희와 다른 아이들은 서로서로 눈앞에 마주하면서도 아주 딴 곳에서 동떨어진 채 사는 듯한 느낌이 될밖에 없습니다. 서로서로 손을 뻗어 살갗을 쓰다듬거나 입을 맞출 수도 있지만, 마음과 넋은 아주 다른 곳에 따로 있습니다.





- ‘누군가를 계속 미워하기에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걸. 이건 그저 되새김일 뿐.’ (187쪽)

- ‘내가 처음 죽었던 것은 언제였지?’ (194쪽)



  만화책 《설희》는 앞으로 열둘째 권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열둘째 권에 이르면 ‘앳된 스물 언저리 젊은이’가 삶과 죽음을 깊이 헤아리거나 돌아볼 수 있을까요?


  별에서 온 어떤 숨결이 설희라는 아이한테 ‘죽지 않는 삶’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른 별 숨결’한테 무엇을 줄 만할까요. 우리 지구별에서는 공해와 매연과 전쟁과 폭력과 입시지옥 따위를 다른 별에 퍼뜨릴 만할까요. 이 지구별에서 우리들은 서로 어떻게 어우러지면서 살아갈는지요. 앞으로 얼마나 더 살고, 앞으로 어떤 일을 얼마나 더 겪어야, 우리는 슬기롭거나 사랑스러운 넋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는지요.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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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 2
야마사키 주조 지음, 히로카네 겐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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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2



볼 마음이 사라진 만화책

― 꿈의 공장 2

 히로카네 켄시 그림

 야마사키 주조 글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4.7.25.



  ‘시마’ 사원과 계장과 부장과 이사와 사장, 이런저런 만화를 꾸준히 그리는 분이 그림을 맡은 《꿈의 공장》 첫째 권을 읽으면서 영화와 방송이 이렇게 허술하거나 허접한가 하고 생각했다. 그저 머리에 아무 생각이 없이 찍는가 하고 생각했다. 만화책 《꿈의 공장》 둘째 권을 읽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첫째 권만으로 섣불리 말할 수 없으리라 여겨, 둘째 권도 읽기로 한다. 그러나, 둘째 권을 읽다가 아무런 재미를 못 느낀다. 나로서는 재미도 못 느끼고 그예 헛웃음만 나왔다.



- “뭐야? 그 옷차림은.” “왜?” “별 상관은 없는데 네가 어딜 봐서 중1이냐? 요즘 꼬맹이들은 너무 도발적이라니까.” “흥분돼?” (35∼36쪽)

- “좋아. 그만 가 봐! 자넨 이 작품이 끝나는 대로 〈여탐정 마리〉에서 잘릴 줄 알아!” “그래요? 꼭 그렇게 해 주십시오.” “빌어먹을. 세컨드 조감독 주제에.” (59쪽)






  만화책 《꿈의 공장》 둘째 권에서는, 주인공 ‘히타케’가 첫째 권에서는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루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히타케는 무엇을 못 이루었는가? 바로 ‘아주 어린 여자’와 살을 섞는 일이다. 삯을 얻은 집에서 열네 살 가시내를 덮치려는 꿈을 꾸더니, 끝내 어느 시골에서 촬영을 마친 뒤 그곳 고등학생과 살을 섞는 이야기가 나온다. 《꿈의 공장》 첫째 권을 보면 술에 절어 넋이 나간 몸으로 ‘함께 일하는 여자 동료’를 덮치려고 하다가 헛물을 켜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참으로 그악스럽다.


  글을 쓴 이와 그림을 그린 이는 ‘영화’와 ‘방송’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모두 일곱째 권까지 있는 《꿈의 공장》이니 막판 뒤집기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막판 뒤집기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면 구지레하게 엮는 이 만화는 그야말로 볼 값어치조차 없으리라 느낀다.


  돈에 종이 되고, 이름값에 종이 되며, 여자 몸을 장삿속으로 훑다가 덮쳐서 정자를 뱉어내려고 하는 얼거리로 엮는 만화로 어떻게 ‘영화’를 “꿈의 공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여줄 만한지 도무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이라고 보여주는 만화일 수도 있겠지. 도시에서 사람들이 이룬 문명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밝히는 만화일 수도 있겠지. 대학교도 마치고 지식 좀 있다는 이들이 보여주는 방송밭 뒷모습이란 바로 이러하다고 까뒤집는 만화일 수도 있겠지. 사람들이 아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더럽고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얼룩진 영화판과 방송밭을 샅샅이 드러내려는 만화일 수도 있겠지.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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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 1
야마사키 주조 지음, 히로카네 겐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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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1



술과 여자를 끼고 도는 영화판?

― 꿈의 공장 1

 히로카네 켄시 그림

 야마사키 주조 글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4.5.25.



  《시마 사원》부터 《시마 사장》까지 그렸다고 하는 ‘히로카네 켄시’라는 분이 그림을 맡은 《꿈의 공장》(서울문화사,2004)이라는 만화책을 읽는다. 일본에서는 1997년에 처음 나왔다고 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꿈과 사랑이 담긴 만화책이라고 하기에,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읽는다. 그런데, 첫째 권부터 영 아리송하다. 이 만화가 책이름처럼 “꿈의 공장”을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책이름에 나오듯이 “꿈”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공장과 같이” 메마르거나 딱딱하게 기계를 척척 뽑아내는 얼거리를 보여주려고 하는 이야기인가?



- “히타케 군, 몸은 건강한가?” “아, 네. 몸은 튼튼한 편입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조감독 일엔 머리가 필요없지. 첫째는 다리 힘, 둘째는 팔 힘!” (14쪽)

- “레이카! 어디서 찡알대고 있어! 네 양다리 스케줄 때문에 다들 밥도 굶고 일하는 거 몰라? 빨리 스텐바이 해!” “네.” “그리고 조감독을 또 돌머리라고 불렀다간 죽을 줄 알아!” (57쪽)




  만화책 《꿈의 공장》을 보니, 내 느낌으로는 ‘꿈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든지 ‘꿈을 찾는 길’은 영 보이지 않는다. 만화책 주인공인 ‘히타케’라고 하는 젊은 사내더러 이녁 어버이가 제발 영화판이나 방송밭 같은 데에 있지 말라고 편지를 띄우는 까닭을 알 만하다.


  만화책에 나오는 절반쯤 되는 이야기는 ‘술을 꼭지가 돌도록 퍼 마시면서 해롱거리는’ 모습이다. 나머지 가운데 절반쯤 되는 이야기는 여배우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거나 힘과 돈 있는 사람한테 몸을 잘 바치는가 하는 모습이다. 또 나머지 가운데 절반쯤 되는 이야기는 맨 윗자리에 있는 방송밭이나 영화판 사람들이 얼마나 짜증스럽거나 얼간이 같은 짓을 하는가 하는 모습이다.





- “쯧쯧. 하여간 나카 씨는 선수라니까.” “신인 킬러로 유명하잖아.” “쟤도 먹히겠는걸.” (83쪽)

- “안 되겠어. 현장을 완전 물로 보고 있잖아! 그 망할 놈의 영감탱이!” “무라키 씨, 설마!” “걱정 마, 하타케!  자네 가죽 점퍼 값 정돈 받아내 줄 테니까!” (105쪽)



  어찌 보면, 영화를 만들거나 연속극을 찍는 이들은 이 만화책에 나오듯이 술과 돈과 살곶이와 이름값과 콧대 따위만 알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만화는 이런 어이없는 모습을 살살 비꼬려고 그렸을는지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만화책을 빚으려고 글을 맡고 그림을 맡은 사람들이 영화나 방송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겉훑기로 ‘만화 독자 눈길을 끌려’고 얄팍한 장삿속을 부린다고 할는지 모른다. 꿈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라, 꿈을 좀먹으면서 부리는 바보짓을 보여준다고 할까.


  곰곰이 돌아보니, 《시마 사원》을 조금 읽다가 집어던졌고, 《시마 사장》도 한두 권 읽다가 나머지 책을 모두 집어치웠다. ‘시마’라는 사람이 평사원부터 사장으로 가는 길에 보여주는 모습은 ‘씩씩하고 바지런하게 일해서 한 단계씩 거듭나는 삶’이 아니라, 권력과 술수와 여자를 옆구리에 끼면서 꼭대기에 오르려는 바보짓일 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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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안의 작은 행복 - 삶을 이끄는 누군가 있다는 것 박시백이 그리는 삶과 세상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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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0



오늘을 사는 기쁨

― 둥지 안의 작은 행복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펴냄, 2014.4.7.



  나는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아갈 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안 낳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 앞날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앞날이 어떠하든 오늘 하루를 제대로 맞이해서 누리자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가꾸거나 일꿀까요? 아마 아이들 스스로 알는지 모르고 모를는지 모릅니다. 다만,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오늘 이 아이들은 씩씩하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꿈을 키우든 오늘 이 아이들은 모두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나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여밉니다. 쉬가 마렵다면 함께 일어나서 쉬를 누입니다. 큰아이가 이를 갈면 번쩍 눈을 뜨고는 얼른 손을 뻗어 토닥토닥 다독이면서 이를 그만 갈라고 이릅니다.


  아이들이 듣는 풀벌레 노랫소리는 나도 함께 듣습니다. 내가 듣는 풀벌레 노랫소리는 아이들도 함께 듣습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시골집에서 함께 삽니다. 참으로 조그마한 집입니다. 예전에는 이 작은 집에 여덟 사람이 복닥거리기도 했다는데, 어쩌면 더 많은 아이와 어른이 복닥복닥 와글와글 얼크러지기도 했으리라 느낍니다.





- ‘봄을 맞는다는 건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다.’ (13쪽)

- ‘재산은 별로 없지만 큰 부채도 없고 오손도손 모두가 건강한 가족들이 있는 오늘이 좋다.’ (37쪽)



  땀으로 젖고 흙내음이 가득 묻은 옷을 벗깁니다. 따뜻한 물로 씻깁니다. 새 옷을 입힙니다. 아이들이 벗은 옷을 복복 비벼서 빨래합니다. 다 빨아서 헹구고 물을 짠 옷가지를 마당에 넙니다. 햇볕은 언제나 포근하게 내리쬐면서 옷가지를 바싹바싹 말려 줍니다. 바람은 우리 아이들 옷가지에 푸른 숲내음을 실어 날라 줍니다.


  올가을에는 무화과를 이럭저럭 즐깁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까마중을 실컷 즐겼습니다. 지지난해 가을에는 따순 바람을 듬뿍 즐겼고, 겨울부터 피어나는 동백꽃을 반갑게 즐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뿌리를 내리는 곳에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하는 일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말을 익히고 사랑을 속삭이며 꿈을 키웁니다. 어버이가 보는 것을 아이들이 봅니다. 어버이가 만지는 것을 아이들이 만집니다. 어버이가 아끼며 보살피는 것을 아이들이 아끼면서 보살핍니다.


  해가 기울어 어둑살이 내린 시골마을에서 개똥벌레를 곧잘 만납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 개똥벌레이지만, 요새는 시골에서도 웬만해서는 볼 수 없습니다. 냇바닥을 시멘트로 덮으면 개똥벌레가 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농약을 뿌려 다슬기가 모조리 죽으면 개똥벌레는 먹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개똥벌레를 만나기를 바라면, 개똥벌레가 나오는 그림책이나 사진책이나 영화를 보여줄 노릇이 아니라, 개똥벌레가 살 만한 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노릇입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아이들이 착한 꿈을 참답게 키우기를 바란다면, 착한 꿈과 참다운 삶이 흐르는 동화책이나 시집이나 영화를 보여줄 노릇이 아니라, 어버이부터 스스로 착한 꿈을 가꾸고 참다운 삶을 일구면 됩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 “방송이 온통 미국 쪽 정보뿐이니 제대로 판단하기가 힘들잖아.” “이 책을 읽어 봐. 라덴이나 탈레반 쪽에 대한 정보들이 꽤 많아.” “이 책도 미국 측 시각에서 쓰인 책이네 뭐.” “그렇긴 하지만 정보는 풍부하니까 80년대 신문 보던 방법으로 읽으면 쓸 만해.” (75쪽)

- ‘자나 깨나 남편 생각 애들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 이렇게 늙다간 혼자 외톨이가 될 수도 있어.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설계도 많이 해야 해. 나 자신에 대한 생각? 근데 뭘 생각하지? 아내, 엄마 말고 난 누구지?’ (101쪽)



  우리는 누구나 오늘을 삽니다. 우리는 누구나 오늘 하루를 스스로 지어서 삽니다. 기쁨도 스스로 짓고, 슬픔도 스스로 짓습니다. 아름다움도 스스로 짓고, 미움도 스스로 짓습니다.


  무엇을 짓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뿐 아니라, 이 땅 모든 이웃과 함께 어떤 삶과 사랑과 꿈을 짓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박시백 님이 한참 예전에 그린 만화를 그러모은 《둥지 안의 작은 행복》(휴머니스트,2014)을 읽습니다. 박시백 님은 〈한겨레〉에 만화를 그린 일보다 《조선왕조실록》 스무 권을 만화로 그린 일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만화로 그린 《조선왕조실록》은 초등학생뿐 아니라 여느 어른한테도 널리 사랑받습니다. 마치 《삼국지》가 많이 팔리고 읽히듯이 만화책 《조선왕조실록》도 불티나게 팔리면서 읽힙니다.





- “할 게 뭐 있어야지.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눈싸움·숨바꼭질·고무줄놀이·땅따먹기, 이런 걸 하며 온종일 보내고, 저녁엔 방구석에 이불 덮고 앉아 수다 떠는 게 고작이었지. 그에 비하면 요즘 니들은 …….” “너무너무 불쌍해. 피아노 학원·수학 학원·영어 학원·한자 공부·학습지·숙제…… 이런 걸로 하루가 다 가잖아.” (187쪽)

- ‘사랑하는 사람끼린 닮아 갑니다.’ (210쪽)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오백 해를 이었다고 하는 조선 나라 임금님 이야기가 흐르겠지요.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만화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수수한 여느 이웃들 이야기가 흐르겠지요.


  두 가지 만화책이 우리 앞에 있다면, 오늘날 한국사람은 어느 만화책을 고를까요? 《조선왕조실록》을 고를까요,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을 고를까요? 대학입시에서는 어떤 책을 다룰까요?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이나 국공립 여러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갖춘다면 어느 책을 장만해서 갖출까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에는 정치와 역사와 사회와 경제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학문과 사상과 철학과 문학과 문화 같은 이야기도 흐릅니다.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만화책에는 수수한 여느 이웃이 호호 하하 히히 웃는 조그마한 즐거움이 흐릅니다.


  다만, 학교 교과서에서는 ‘조선왕조실록’ 이야기를 다룰 테지만, 수많은 사람들 조촐한 삶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집살림 맡은 어버이가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아기 돌보는 삶을 다루는 교과서는 없습니다. 아기를 낳아 아끼고 사랑하면서 보살피는 삶자락을 묻는 시험문제는 없습니다. 내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일구면서 시골에서 흙을 만져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얻으려고 힘쓰는 수수한 시골지기 이야기를 가르치는 학교나 행정이나 문화단체나 인문책은 없습니다.





- “내게 엄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싶어.” (214쪽)

- ‘자율학습 시간은 말 그대로 자율학습 시간이다. 필요한 정보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267쪽)



  박시백 님이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만화책에서 ‘도시 소시민’을 다루었다면, 이 다음으로는 ‘작은 시골지기’를 다룰 수 있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작은 만화책으로 선보인 뒤에는, 시골에서 씩씩하고 아름답게 사랑을 일구며 숲을 지키는 사람들 이야기를 ‘더 작은’ 만화책으로 선보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놀라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릴 수 있겠지요. 이제 ‘조선왕조실록’ 만화책을 스무 권으로 끝내셨으니, 참말로 작고 수수한 자리로 돌아와서 작고 수수한 이웃과 동무를 살피는 따사롭고 예쁜 만화를 그릴 수 있겠지요. 큰 이야기 아닌 작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를 바랍니다. 정치 이야기 아닌 삶 이야기를 그리고, 경제나 역사 이야기 아닌 사랑과 꿈 이야기를 그리며, 지식인과 학자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가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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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0-0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4-10-08 07:21   좋아요 0 | URL
저는 신문과 잡지에서 거의 다 오려서 모았기에 새삼스럽지 않았는데,
이와 같은 수수한 만화가 책으로 나오면서
만화를 바라보는 문화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