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의 나라 1 - 애장판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65



초능력이란 무엇일까

― 칠석의 나라 1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3.25.



  초능력이란 무엇일까요. 하늘을 날면 초능력일까요. 엄청나게 큰 바위를 들 수 있으면 초능력일까요. 눈을 감고 백 리 바깥을 내다보면 초능력일까요. 내 몸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갑자기 옮길 수 있으면 초능력일까요.


  초능력이 있으면 내 삶은 무엇이 좋을까요. 초능력이 있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초능력은 우리 삶을 얼마나 북돋우거나 가꿀까요. 초능력은 이 지구별을 얼마나 사랑스레 보듬거나 따사로이 품을까요.



- “마루카미산은, 고을 사람들에게 그, 특별한 산입니다. 말하자면, 마음의 지주로서 600년이나 대대로 지켜 온 곳이지요. 거기에, 괭이질을 하려 들면 고을 사람들의 격한 저항이 있을 것이 불을 보듯…….” “그러기에 ‘마루카미 고을’ 출신인 네놈에게 명하는 것이다. 같은 마을 사람들이니 어찌 다뤄야 하는지도 잘 알 터!” (9쪽)

- “어, 어리석은 것들. 이 작은 마을이, 시, 시마데라에 대들어 사, 살아남을 줄 알았더냐.” (21쪽)

- “푸하하하! 우리 군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군!” “더욱이 아녀자와 노인까지 있고, 거의 갑옷도 입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포진하고 있나? 항복하려는 것이 아니고?”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항복할 뜻은 없는 듯 보입니다.” (25쪽)





  초능력을 쓰는 사람이 나오는 만화나 영화가 꽤 많습니다. 나는 내 둘레에서 초능력을 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지만, 어쩌면 만났어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테지만, 초능력을 쓰는 사람들 이야기는 곧잘 듣습니다. 아마 지구별 곳곳에 초능력을 쓰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능력을 뛰어넘는대서 초능력이라 하는데, 그러면 능력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아니, 우리는 우리한테 주어진 힘(능력)을 제대로 쓰기나 하는지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뇌가 할 수 있는 일을 10퍼센트조차 제대로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조차 제대로 못하는 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훨씬 뛰어넘는 사람이 어떤 솜씨요 힘이며 슬기이자 빛인지 알아차릴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어요. 더 생각한다면, 뇌뿐 아니라 팔다리로 쓸 수 있는 힘을 끝까지 제대로 쓰는 사람도 거의 없지 싶어요. 마음을 움직여 쓸 수 있는 힘 또한 제대로 쓰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테고요.


  자꾸자꾸 더 생각해 봅니다. 사랑을 제대로 펼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내가 펼칠 수 있는 사랑을 마음껏 펼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내 마음에서 솟아날 사랑을 가득가득 펼쳐서 그야말로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초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우리가 스스로 쓸 수 있는 힘과 마음과 사랑’부터 제대로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살펴야지 싶어요.



- “그래, 뭐, 어쨌든 초능력이니까, 굉장한 건 인정하지만.” “하하하, 그래서 질렸냐?” “헤헤, 쬐끔요. 만날 이것밖엔 없으니까.” (48∼49쪽)

- “남마루 선배, 이제 4학년 아니에요? 취직은 어쩌려고 그래요?” (58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칠석의 나라》(학산문화사,2014) 첫째 권을 읽습니다. 멀고 먼 옛날부터 초능력을 쓰던 사람들이 살아온 마을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능력은 가볍게 비웃지만, 가볍게 비웃고 나서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목숨을 잃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능력을 아주 조용히 쓰면서 이녁 시골마을을 언제나 조용히 지킵니다.



- “다들 꿈을 갖고, 좀 여유롭게 살 순 없을까.” “맞아요. 세상도 이렇게 평화로운데.” (59쪽)



  문명 사회라고 하는 오늘날에는 초능력이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요. 구경거리일까요? 삶을 바꾸는 빛일까요? 가벼운 손재주일까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여는 꿈일까요?


  초능력이 없어도 되는 사회일까요? 초능력 아닌 능력이면 넉넉한 사회일까요? 또는, 능력조차 없어도 그저 사회 틀만 지키면 되는 셈일까요?


  능력이나 초능력이 없이도 돈을 벌거나 이름을 얻거나 힘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사람을 보면서 ‘이런 것도 능력이다’ 하고 말하지만, 참말 ‘능력 아닌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이나 많거나 이름이 높은 어버이한테서 태어나는 삶도 능력이라면 능력일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러니까, ‘손이 닿는 자’라는 게 대체.” “그, 쉽게 말하면 ‘초능력자’. 그리고 ‘창을 열고’ 심지어 ‘손이 닿는’ 사람만이, 마루카미산의 신관이 될 자격이 있죠.” (203쪽)

- “음, 그래도 근사하지 않아? 자기한테밖에 없는 능력이나 삶 말야.” “그래요. 평생 여기서 살며 마루카미산의 신관을 목표로 삼는다면 괜찮을지 모르죠. 무척 유니크한 인생이랍니다. 평생 마을 밖으로는 나갈 수 없지만.” (226쪽)



  해 떨어진 저녁에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살짝 마실을 다녀옵니다. 깜깜한 밤길을 자전거로 달리다가 길바닥에 무언가 있다고 느낍니다. 무엇일까 하고 바라보다가 ‘자동차에 치여 죽은 들짐승인 듯하다’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길바닥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밤뿐 아니라 낮에도 쉬 못 알아챕니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도 길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거의 안 알아챕니다.


  밤자전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까 본 무언가를 찬찬히 들여다보려고 자전거를 세웁니다. 내 느낌대로 들짐승이 한 마리 자동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길가에 돋은 쑥대를 한 포기 꺾습니다. 길바닥에 눌러붙은 깜다람쥐를 겨우 뗍니다. 얼마나 많이 밟혔으면 이렇게 길바닥에 눌러붙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깜다람쥐 주검을 알아차리지 않고 다시 밟고 또 밟았을까요.


  집으로 돌아가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보름달이 환한 밤이라 구름이 꽤 잘 보입니다. 보름달빛을 받는 밤구름 빛깔은 무척 아리땁습니다. 나도 모르게 “구름 참 이쁘네.” 하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하늘을 가리는 건물이 없고, 하늘을 가로막는 전봇대나 전깃줄이 없습니다. 그냥 고개를 들면 하늘이고, 굳이 고개를 안 들어도 하늘입니다.


  초능력은 무엇이고 능력은 무엇일까요. 초능력과 능력에 앞서 우리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초능력이나 능력에 앞서 우리 삶을 얼마나 꾸밈없이 들여다보는가요. 초능력이나 능력을 뽐내기 앞서, 우리는 내 이웃이 어떻게 지내는가를 어느 만큼 살피면서 어깨동무를 하는가요.


  사랑이 없을 때에는 초능력도 능력도 부질없으리라 느낍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비로소 초능력이나 능력이 제대로 빛을 낸다고 느낍니다. 4347.8.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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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 걸 3
야스다 히로유키 글.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4



쓸쓸한 사랑

― 스시걸 3

 야스다 히로유키 글·그림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8.15.



  짝사랑은 쓸쓸하지 않습니다. 한쪽이 외곬로 하는 사랑을 가리켜 짝사랑이라 하지만, 짝사랑에는 이녁을 헤아리는 따순 기운이 있습니다. 이 기운은 언제나 내 마음을 들뜨게 하고 즐겁게 이끕니다. 예쁜 사랑입니다.


  사랑이 아닌데 사랑이라고 잘못 생각할 때에 쓸쓸한 사랑입니다. 마음은 하나도 안 움직이지만 입으로는 사랑이라고 말할 적에 쓸쓸한 사랑입니다. 설레는 마음이나 기쁜 마음이나 따순 기운이나 고운 빛이 흐르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사랑인 척할 적에 쓸쓸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말로 하지 않아도 사랑입니다. 말로 떠들거나 글로 쓰기에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선물을 건네거나 잔치를 베푼다고 해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아낄 때에 사랑이 됩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손을 내밀 때에 사랑이 됩니다. 마음으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빙그레 웃음지을 때에 사랑이 됩니다.



- ‘똑같은 자랑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지만, 휴대폰도 검사하지만, 싸우다가 밤길에 날 혼자 버려두고 간 적도 있지만, 섹스도 10분만에 끝나지만, 그 사람이라 다행이다. 이런 날 선택해 줬으니까.’ (5쪽)

- ‘아마도 이 아이는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 하지만 이상한걸. 그날부터 난 계속 행복했는데?’ (12쪽)

- “넌 옛날부터 그랬었지. 툭하면 멍이 들거나 얼굴이 퉁퉁 부어서 학교에 왔는데도, 절대 아빠를 나쁘게 얘기하지 않았거든.” “아, 그거야 내가 잘못해서 맞은 거니까. 물론 좀 심할 때도 있었지만. 전부 날 위해서였는걸.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 “그 초밥 꼬마는 아마 거짓말쟁이인 너한테 가르쳐 주러 온 걸 거야. 네가 숨기고 있는 진짜 마음을.” (14∼15쪽)





  아이들을 입시지옥에 몰아넣으면서 이를 ‘아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어버이가 많습니다.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면서, 아이들 손에 참고서와 문제집만 쥐어 주면서, 아이들을 학원에 옭아매면서, 이를 사랑이라고 잘못 여기는 어버이가 많습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에서 건지지 않고 교과서 수업만 하면서 이를 ‘학생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많습니다. 아이들 머리카락 길이나 치마 길이를 따지면서 이를 사랑인 줄 아는 어른이 많습니다. 아이들한테 ‘하지 말 것’만 잔뜩 늘어놓으면서 이는 모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떠벌이는 어른이 많습니다.


  놀지 못하면서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요. 즐겁게 놀면서 노래하지 못하면서 몸이 커진 아이들은 어떤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요.


  즐거움이나 꿈은 성적표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쁨이나 사랑은 은행계좌에 적히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이나 노래는 졸업장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따스함과 너그러움은 전쟁무기로 밝히지 못합니다.



- ‘종종 집안을 돌아다니던 파리잡이 거미가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게 귀여워서 몇 시간이나 쫓아다녔다. 엄마에게는 그냥 해충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이다.’ (40∼41쪽)

- ‘옆집 하야카와 할머니는 혼자 살고 있다. 할머니는 지렁이를 손으로 만져도 야단치지 않았고, 쪼글쪼글한 손을 질릴 때까지 만지게 해 줬다.’ (42∼43쪽)

- ‘사랑받고 있지만 나는 무척 쓸쓸하다. 평범한 가족의 지극히 평범한 평화로운 풍경. 그것을 남몰래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은 이 작디작은 할머니다.’ (54쪽)





  야스다 히로유키 님 만화책 《스시 걸》(대원씨아이,2014) 셋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만화책 《스시 걸》은 셋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야기를 더 잇지 않는구나 싶어 아쉽지만, 그동안 읽은 세 권으로 마음이 포근합니다. 힘겹거나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한테 조그맣게 빛이 되어 준 예쁜 벗님을 이야기하는 만화란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 ‘지금까지 한 번도 남자와 사귀어 본 적이 없다. 내가 이상한 걸까. 휴일에는 가끔 도시락을 싸들고 반나절 동안 신사에 놀러가거나, 한방약이나 수상한 화석을 구경하거나, 충동적으로 만두를 잔뜩 만들어서 아무에게도 나눠 주지 않고 혼자 먹어치우거나, 가오리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왜 다들 이러지 않는 걸까. 오히려 신기하다.’ (57∼59쪽)

- ‘나는 즐겁고 기분 좋은 일들만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61쪽)

- ‘여전히 남자에도 결혼에도 흥미는 없다.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꼭 인간만은 아니니까.’ (72쪽)



  입으로는 “괜찮다” 하고 말하더라도 누구나 얼굴에 “안 괜찮다”는 빛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입으로는 “좋아” 하고 말하더라도 누구나 얼굴에 “안 좋다”는 빛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렇잖아요. 한식구라면 낯빛을 보면서 다 알아요. 동무라면 낯빛을 읽으면서 다 압니다. 이웃이라면 낯빛을 헤아리면서 다 알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서로 마음으로 사귑니다. 우리는 서로 지식으로 사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졸업장이나 자격증으로 사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숨결로 사귑니다.





- ‘놀라웠다. 세상에 이렇게 온화한 남자가 있을 줄이야.’ (79쪽)

- ‘왠지 마음이 놓였다. 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들려주고 싶지 않은 것들이 이 집에는 넘쳐나니까.’ (82쪽)

- ‘그 접시에 담은 요리는 마치 마법이라도 건 것처럼 맛있어졌습니다. 오늘은 뭘 만들어서 그 접시에 담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117쪽)



  생각해 보셔요. 돈 때문에 사귀는 사이라면 얼마나 거북할까요. 이름값 때문에 가까이하는 사이라면 얼마나 못마땅할까요. 권력 때문에 눈치를 보아야 한다면 얼마나 고단할까요.


  신분이나 계급이 높기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면 얼마나 지칠까요. 주먹질 때문에 꼼짝을 못하면서 손바닥을 비벼야 한다면 얼마나 짜증스러울까요. 돈을 빌려주면서 마음에 생채기를 입힌다면 얼마나 쓰라릴까요.


  사랑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다치게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아프게 하지도 않고, 미움이나 따돌림을 불러들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로지 보드라운 산들바람과 같이 찾아옵니다. 사랑은 늘 오직 포근한 햇볕처럼 온누리를 비춥니다.





- “당연한 거야. 물고기는 살아 있으니까.” (136쪽)

- ‘전갱이 한 마리를 위해 우는 아이라. 이 녀석은 훌륭한 장인이 되겠구나.’ (138쪽)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골짜기를 다녀오는 길에 전깃줄에 앉은 제비를 두 마리 만납니다. 안타깝지만 꼭 두 마리입니다. 우리 마을에도 이웃 여러 마을에도 제비가 매우 드뭅니다. 해가 갈수록 제비가 줄어듭니다. 왜냐하면, 해가 갈수록 마을마다 할매와 할배 나이가 더 들면서 농약을 더 많이 치기 때문입니다. 마을마다 한동안 ‘친환경농업’ 바람이 불었습니다만, 새마을운동 때부터 오랫동안 길든 농약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에 엄청난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이 탓에 제비는 농약에 맞아 죽어요. 때로는 자동차에 부딪혀 숨을 거둡니다. 중국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한국까지 씩씩하게 찾아온 제비이지만, 애써 알을 낳아 새끼를 까고 날갯짓까지 가르쳐 주었으나, 이 제비들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일이란 너무 어렵습니다. 도시에는 아예 가지 못하는 제비요 시골에 드문드문 남은 제비입니다만, 즐겁고 힘차게 날갯짓을 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오늘날 이 나라에서 제비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제비가 이토록 고단한 나날을 누리다가 죽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 이 나라 도시에서는 제비가 까맣게 잊혔고, 시골에는 늙은 할매와 할배만 남으니 제비하고 동무를 삼을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제비가 이렇게 힘겹게 버티다가 죽는지 모릅니다.


  여느 때에 제비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여느 때에 개구리나 뱀이나 사마귀를 헤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여느 때에 잠자리나 나비나 도룡뇽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무척 드뭅니다. 여느 때에 매나 소쩍새나 꾀꼬리를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드뭅니다.


  온통 쓸쓸한 나라입니다. 그예 쓸쓸한 사회입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저 쓸쓸하기만 하니, 내 이웃과 동무도 쓸쓸한 빛에 갇힐는지 모릅니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쓸쓸한 빛만 떠오르니, 아름답거나 즐거운 사랑하고는 자꾸 멀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요즈음 ‘도깨비’하고 놀 줄 아는 아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4347.8.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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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드롭스 10 - 번외편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60



옆에 있고 싶어

― 토끼 드롭스 10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4.5.2.



  아이들은 한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놉니다. 땀으로 젖은 옷을 벗기고 씻긴 뒤 새 옷으로 갈아입혀도, 아이들은 어느새 또 신나게 뛰놀면서 옷을 땀으로 적십니다. 참 대단하지요. 기운이 철철 넘쳐서 놀고 놀며 다시 놀아도 새롭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이에요. 노는 기운을 다시 뽑고 새로 끌어내며 거듭 길어올립니다.


  어른도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한다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빙그레 웃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른도 스스로 기쁜 일을 할 적에는, 땀을 비오듯이 흘려도 활짝 웃거나 노래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면 아이나 어른 모두 즐겁게 웃고 기쁘게 노래하며 아름답게 삶을 짓는 길로 나아간다고 느낍니다.



- “저기, 다이키치.” “왜?” “다이키치는 칙칙이로 벌레 죽이지? 다이키치는 괜찮아? 그건 죽여도 되는 벌레야?” (17∼18쪽)

- “벌레도 린이랑 똑같이 살아 있어. 죽으면 다시 못 돌아와. 그러니까 마구잡이로 죽이지는 말자.” “마구잡이로?” “최대한?” “최대한?” “되, 되도록?” “되도록!” (20쪽)




  낮잠을 거른 아이들이 저녁 아홉 시 반이 되도록 잠들지 않고 놉니다. 여섯 시에도 졸린 빛이 흐르고, 일곱 시에도 졸린 기운이 흐르며, 여덟 시에도 졸린 낌새가 흘렀는데, 아홉 시까지 버티고 버티면서 놉니다. 아이들을 재우려고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다가 두 손을 듭니다. 너희가 더 놀고 싶다면 놀고 싶은 대로 놀도록 해야 합니다.


  마루에 벌렁 드러눕습니다. 시골집에서는 대청마루가 가장 시원합니다. 귀로는 아이들이 노는 소리를 듣고, 눈은 살며시 감습니다. 한참 누워서 꿈나라로 접어들듯 말듯 한데, 문득 큰아이가 부릅니다. “아버지, 이제 자고 싶어요. 같이 자요.” 방에 들어가서 함께 눕잡니다. “이제 자고 싶니? 그러면 손하고 얼굴 씻고 와.” 큰아이가 부엌에 불을 켭니다. 씻는방으로 가서 두 아이가 손과 얼굴을 씻습니다.


  자리에 눕힙니다. 손과 얼굴을 아이들이 스스로 씻기는 했어도 땀내음이 납니다. 어쩔까. 아이들 옷을 다시 갈아입히고 몸을 새로 씻길까. 한동안 망설이다가 그대로 눕힙니다. 부채질을 하기로 합니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갈마들면서 부채질을 합니다. 머리를 쓸어넘기고 가슴을 토닥입니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면서 부채질을 합니다.


  노느라 달아올랐던 몸이 차분히 식었구나 싶을 무렵 부채질을 그칩니다. 아이들 사이에 누워 숨을 고릅니다. 팔을 쉰 뒤 더 부채질을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팔을 쉬고 더 부채질을 합니다. 밤 열 시를 넘어가고 열한 시 무렵이 되면, 이제 제법 선선하게 잘 수 있겠지요.





- “근데 다이키치, 익충이 뭐야?” “착, 착한 벌레를 말하는 거야!” “왜 착한 벌레야?” “으으음.” (곤충도감을 꺼낸다) “우와아, 이 벌레 예쁘다.” “린이 커서도 볼 책이니까 살살 넘겨.” “응!” (22쪽)

- ‘애들은 왜 이렇게 옷이며 신발에 모래를 넣어 오는 거냐?’ (41쪽)

- ‘우리 집이야 (모래를) 마당에 털면 되지만, 아파트 같은 데선 남자애 키우면서 어떻게 사나?’ (49쪽)



  아이들은 아버지 곁에서 놀고 싶습니다. 골짜기로 나들이를 갈 적에도, 두 아이가 잘 노는구나 싶어 살짝 위쪽으로 올라가서 골짝물에 몸을 담근다든지 바위에 드러누우면, 두 아이는 어느새 바위를 타고 위쪽으로 올라와서 아버지 둘레에서 얼쩡거리면서 놉니다. 집에서도 아버지가 부엌에서 밥을 지으면 부엌으로 하나씩 찾아와서 놉니다. 마당으로 내려가 평상에 앉아 책을 보면 어느새 쪼르르 마당으로 내려와 평상 둘레에서 놉니다. 뒤꼍 풀밭을 헤치며 풀을 뜯으면 또 두 아이는 풀밭으로 다가와서 같이 풀밭을 헤치면서 노래를 합니다.


  찰싹순이요 찰싹돌이라고 할 만합니다. 보이는 데에 있고 싶은 마음이지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데 있더라도 늘 이곳에 함께 있지만, 아이들은 어버이가 저희한테 잘 보이는 데에 있어야 마음을 놓고 신나게 놀 수 있지 싶어요.


  거꾸로, 나도 이런 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을 시골집에 놓고 혼자 볼일을 보러 나가야 한다면 어쩐지 거북하거나 쓸쓸합니다. 늘 함께 다니던 아이들을 집에 두고 혼자 자전거를 몰면 어쩐지 심심하거나 허전합니다.





- ‘이 정도야 귀엽네. 정말 린은, 모래도 덜 묻혀 오고, 조심성이 많아서 어이없이 다치는 일도 없고. 효녀로세.’ (66쪽)

- “이제 부모님도 챙겨야 하는 나이인데, 여전히 제 일만으로도 벅차서, 아버지 어머니한테 걱정만 끼치고 있어요. 한심하죠.” “엑, 한심하다뇨. 니타니 씨는 그렇지 않아요!” ‘으아, 우리 부모님은 아직 팔팔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네.’ (97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14) 열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토끼 드롭스》 열째 권은 번외편입니다. 만화책 《토끼 드롭스》는 아홉째 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어요. 열째 권에서는 ‘린’이라는 아이가 처음 ‘다이키치’ 집에 왔을 적에 둘이 아직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던 모습이라든지, 어린 아이들이 밖에서 한참 뛰놀다 들어오면 온 집안에 모래가 굴러다닌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린’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넌지시 보여줍니다. 또한, 린이나 다이키치뿐 아니라,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마음빛인지를 가만히 밝혀요.



- “그거 어쩌다 다친 거예요?” “애 낳은 것뿐이야. 아이를 버리고, 만화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123쪽)

- ‘난 그저 린 옆에 있고 싶었던 거구나.’ (158쪽)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림을 이룰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한 집안을 이룰까요.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마음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어떻게 아끼거나 어떻게 보살피는 몸짓이 될까요.


  식구들이 꼭 어디로 나들이를 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식구들이 꼭 대단한 요리를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식구들이 꼭 눈부신 옷을 차려입어야 하지 않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마주보아도 즐겁습니다. 볼을 살살 어루만지고 등을 가볍게 토닥여도 즐겁습니다. 잠자리에서든 밥상머리에서든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하루를 누릴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자전거를 함께 타고 시원한 바람을 쐬어도 즐겁습니다.




- “다이키치.” “응?” “가끔은 술, 밖에서 먹고 와도 돼.” “엥? 무슨 소리냐? 갑자기.” “다이키치. 나 오고 나서 쭉 그랬잖아. 밖에서 술 안 먹는 거. 그전에는 안 그랬을 텐데.” “음, 그랬던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나, 다이키치가 그런 데 들렀다 온 기억이 전혀 없어. 어릴 때부터.” (188∼190쪽)



  옆에 있고 싶습니다. 아무것을 하지 않더라도 옆에 있고 싶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옆에 있고 싶습니다. 파랗게 환한 하늘을 함께 누리면서 옆에 있고 싶습니다. 시원한 산들바람을 함께 쐬면서 옆에 있고 싶고, 맑은 햇볕을 함께 쬐면서 옆에 있고 싶습니다.


  번외편인 《토끼 드롭스》 열째 권은 서로 아끼는 옆지기가 어떤 마음인가를 다시금 조용히 보여주면서 참말로 끝맺습니다. 서로 보살피는 따사로운 마음으로 지내는 곁님이 어떤 눈빛인가를 곱게 드러내면서 차분히 마무리짓습니다. 4347.7.3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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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의 개 - 타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8



죽으면 다시

― 전무의 개,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타카하시 루미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7.4.25.



  삶을 새롭게 지을 줄 아는 사람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삶을 새롭게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은 날마다 따분합니다. 삶을 새롭게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아침마다 상큼하게 일어나서 기운차게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합니다. 삶을 새롭게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은 아침마다 지겹고 고단하며 졸음이 넘칩니다.


  삶을 새롭게 짓기에 오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웃음이 넘칩니다. 웃음은 어느새 노래가 되고, 노래는 천천히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삶을 새롭게 짓지 않기에 오늘 하루도 어제와 똑같으리라 여기면서 웃음이 안 나옵니다. 웃음이 없으니 낯을 찌푸리고, 낯을 찌푸리니 노래가 흐르지 않으며, 아무런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피어나지 않습니다.



- “나참, 왜 딱부러지게 거절을 못 해?” “아아, 또 원형탈모증이.” “개도 아니고. 허구헌날 시키면 네! 네!” (19쪽)

- “후. 마음쓰지 마. 마츠리다. 너를 위해 한 거짓말이 아니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서야. 이 집은 나의 성이니까.” (32∼33쪽)





  죽으면 다시 살아야 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죽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삶은 없다고 느낍니다. 어려운 말로 ‘윤회’ 같은 낱말을 쓰기도 하는데, 삶을 누릴 적에 ‘삶짓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쳇바퀴 돌기’를 했을 테니, ‘살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나날’로만 나아가리라 느껴요. 삶을 누릴 적에 말 그대로 삶을 누렸다면, 그러니까 삶짓기를 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여 웃고 노래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새로운 빛이 되리라 느껴요.


  다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내 삶이 앞으로 어느 길로 나아갈지는 아직 모릅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기에 나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짓는 삶이라 한다면, 나는 새로운 빛이 되는 길로 갈 테고, 내가 나를 바라보기에 나 스스로 쳇바퀴를 되풀이하는 지겹거나 따분한 하루라 한다면, 나는 언제나 ‘살고 죽고 살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수렁’에 갇힌 채 예전 생각(기억)은 모조리 잊어버리리라 느낍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깨어나지 못하는 목숨은 어떻게 살까요. 깨어나지 못한 채 밥을 먹고 똥을 누기만 하는 몸뚱이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목숨이 있기에 모두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넋이란 없이 몸뚱이만 있다면, 내 넋을 스스로 다스리거나 가꿀 줄 모르는 채, 몸뚱이만 움직이는 나날이라 한다면,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 ‘이젠 틀림없어. 돈을 펑펑 쓰고. 좋아하는 걸 원없이 하고. 그 다음엔 일가 동반자살. 잠들면 위험해.’ (42쪽)

- ‘안 돼. 내가 도망치면, 엄마 아빠는 둘이서만이라도 죽고 말지도 몰라.’ (46쪽)





  죽으면 다시 죽으리라 느낍니다. 살면 다시 살리라 느낍니다. 죽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죽음과 맞닿습니다. 삶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삶과 이어집니다.


  사랑을 하려 하기에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할 마음이 없으면 사랑을 안 하거나 못 합니다. 꿈을 꾸려 하기에 꿈을 꿉니다. 꿈을 꿀 마음이 없으면 꿈을 안 꾸거나 못 꿉니다.


  아이들이 뛰놀면서 노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뛰놀면서 기쁘고, 기쁘기에 노래가 샘솟습니다. 어른들은 술에 절다가 더러 노래를 읊기도 하지만, 기뻐서 읊는 노래가 아니라, 넋이 풀려서 해롱거리는 바보짓이기 일쑤입니다. 어른들도 스스로 삶이 기쁘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늘 노래가 흐를 수 있어야 합니다. 웃고 노래하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빛이 될 때에 비로소 삶입니다. 웃고 노래하는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지으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꿈을 키울 때에 바야흐로 삶이지 싶습니다.



- “아빤 바보야! 아빠 미워! 집에 가요! 죽으면 우리 다시 못 만나잖아!” (63쪽)

- “힘드시겠어요. 저, 과장님이 손수 음식을?” “아아, 이거 참 쑥스러운 꼴을 보였구먼.” “하하. 식당 밥이나 편의점 도시락에도 이제 질려서 말이지.” (107쪽)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가운데 한 권으로 나온 《전무의 개》(학산문화사,2007)를 읽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타카하시 루미코 님은 예전부터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그리곤 했습니다.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를 곰곰이 살피면, 어느 작품이든 으레 ‘삶과 죽음’을 물었구나 싶습니다.


  짧게 그린 만화를 모은 《전무의 개》에서도 작품마다 삶이 흐르고 죽음이 흐릅니다.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삶을 생각하는 사람은 낯빛에 웃음과 노래가 흐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낯빛이 늘 죽음빛입니다.



- “당신, 내가 있는 게 그렇게 거슬려?” “아니.” “흥. 미련 같은 건 없어. 굳이 말하자면, 심술 나서!” (120쪽)

- “여보. 우린 중매로 결혼해서, 저렇게 간질간질한 추억은 하나도 없지?” “자야지.” “여보. 나중에 거실 장식장 맨 아랫서랍을 봐.” (128쪽)



  살아야 사랑을 합니다. 살아야 꿈을 꿉니다. 살아야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살아야 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합니다. 살아야 신나게 놀고, 살아야 마음껏 하늘을 가르며 콩콩 뜁니다. 살아야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리고, 살아야 들길이나 숲길을 거닐며 푸른 바람을 쐽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면, 죽음입니다. 어느 것도 마음에 담지 못한다면, 죽음이지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죽음일밖에 없습니다. 어느 것에도 마음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그예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죽으려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나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삶을 꽃피우려고 날마다 새로 맞이합니다. 삶을 깨달아 참답게 눈을 뜨고 사랑으로 피어나고 싶기에 아침을 다시금 맞아들입니다. 4347.7.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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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Puzzle - 강경옥 Special 단편집 이미지 퍼즐
강경옥 지음 / 반디출판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6



별빛과 함께

― 이미지 퍼즐

 강경옥 글·그림

 반디 펴냄, 2005.7.15.



  요 며칠, 밤마다 별을 봅니다. 나는 눈이 썩 좋지 않아 안경을 끼어야 별을 제대로 보는데, 밤에 마당에 나올 때에 ‘아차, 안경을 또 깜빡했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안경을 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안경을 끼고 별빛 가득한 밤을 누려도 즐겁고, 안경이 없는 채로도 뭇별을 올려다보면서 별내음을 맡아도 즐겁습니다.


  2014년 올여름에는 칠월 이십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별을 보았습니다. 유월 끝무렵부터 전남 고흥에 비가 내리더니 칠월 십구일까지 비가 멎지 않았어요. 이른 장마라고 해야 할는지, 날씨가 뒤틀렸다고 해야 할는지, 스무 날 남짓 언제나 구름이 가득 끼고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는 스무 날 남짓, 그저 ‘비야 비야 알맞게 내리고 멈추어 주렴. 여러 날 해가 난 뒤 비가 한 차례 오고, 다시 해가 여러 날 나고, 또 비가 한 차례 오고, 이렇게 예쁜 날씨로 돌아가 주렴.’ 하고 빌었습니다. 고속도로는 끝없이 늘어나고, 공장과 아파트도 줄어들 줄 모르며, 도시는 자꾸 커지기만 하지만, 게다가 밀양에는 송전탑을 우악스럽게 밀어붙이고, 제주에도 해군기지를 억척스레 지으려고 하지요. 숲과 들과 시골을 와장창 짓밟는 짓만 이어집니다. 4대강사업이라 하면서 온 나라 냇바닥을 시멘트로 뒤덮은 짓은 또 얼마나 끔찍한가요.



- ‘E.T.를 보았다. 개봉관에서 볼 당시엔 그와 함께 갔었는데, 그는 자고 나는 울었었다. 둔감한 인간 같으니. 두 번째로 〈코러스라인〉을 보려는데 3TV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방영하고 있었다. 앞이 많이 지나갔지만 잊을 수 없는 향수로 보게 되었다. 첫째 딸의 애인이 독일군에게 그들을 알렸을 때의 배반감이 크게 느껴졌다. 옛날에도 이랬었나? (10∼11쪽)





  밤에 별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나와 곁님과 아이들은 밤별을 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가 깃든 이 마을에 있는 할매와 할배는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가로등을 더 많이 놓아서 밤에 ‘어둡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 봤자, 할매와 할배는 저녁 여덟 시면 불을 다 끄고 주무시면서, 왜 이렇게 ‘밝은 밤’을 바라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도시에서는 별을 잃어버린 지 참말 한참 되었는데, 시골에서는 별을 잊어버린 지 똑같이 한참 되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와 건물과 자동차와 가게와 술집과 공장 따위로 별을 잃고, 시골에서는 새마을운동과 농약과 도시화와 텔레비전 때문에 별을 잊습니다.


  참말 그래요. 시골에서조차 밤에 별빛을 누리기 힘들 뿐 아니라, 농약 냄새와 비닐쓰레기 태우는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웃집에서 빨래를 널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농약을 뿌립니다.



- ‘차 한 대, 사람 하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이곳은 마치 사람 없는 놀이동산. 이상한 세계의 앨리스. 현실 세트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기분. 낮 1시에 지나다닌 이 길과 부산한 저녁 8시의 이 길과 새벽 3시의 이 길은 아주 다른 세계.’ (20쪽)

- ‘한 손엔 아버지께 선물할 담배 한 갑. 동생 줄 과자 하나. 나와 동생을 위한 잡지 한 권. 오늘 밤의 여행의 선물. 기분 좋은 산책. 기분 좋은 밤이었어. 오늘은.’ (24쪽)




  강경옥 님 만화책 《이미지퍼즐》(반디,2005)을 읽습니다. 짤막하게 그린 만화를 모은 책입니다. 짧게 그린 만화를 엮은 책에 붙인 이름은 ‘이미지퍼즐’인데, 하나하나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별빛과 함께 내가 있다’는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 ‘살아야 할 이유가 있으면 행복하겠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자신이 알 수 있으면,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도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자신이 알 수 있으면.’ (74쪽)

- ‘이렇게 조용한 달밤과 조용한 이상한 나라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이 꿈속이라도 상관없어.’ (79∼80쪽)



  옛날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별을 보며 살았습니다. 옛날부터 흙을 만지고 풀과 나무를 아끼던 사람들은 모두 별을 읽으며 살았습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고 하는 말이든, 개미가 집을 옮기면 큰비가 온다고 하는 말이든, 빛을 읽으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들빛을 읽고 숲빛을 읽으며 별빛과 햇빛과 달빛을 읽는 우리 삶이었습니다. 물빛을 읽고 하늘빛을 읽었어요. 구름빛과 무지개빛과 흙빛을 읽었지요.


  이리하여, 지난날 시골사람은 서로서로 낯빛을 읽습니다. 얼굴빛만 보아도 이녁 몸이 어떠한가를 알고, 이녁 마음이 어떠한가를 짚습니다. 종이로 만든 책은 읽지 않았으나 얼마든지 아름다운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이 없더라도 서로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 아니라, 숨길 것이 없습니다. 얼굴에 모든 이야기가 훤히 드러나니까요.


  삶에 흐르는 빛을 서로 읽습니다. 쌀이 떨어져서 그저 아궁이에 불만 때며 연기를 피우는지, 제대로 끼니를 이으려고 쌀로 밥을 짓는지 모두 읽습니다. 예부터 시골에서는 이웃이 모두 살붙이(사촌)입니다. 한 마을에서 모두 이웃이면서 동무로 지냈습니다.





- “굉장해요. 이 가게 참 멋있어요. 밤에 열어야 할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그래요? 와, 고마워요. 별이 정말로 예쁘지요?” “예, 그대로 똑똑 떨어질 것 같아요. 왓. 탁자에도 별이 비치고 있어요. 별들이 모두 이 탁자에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저 건물 뒤로 떨어져 버리면 찾을 수가 없잖아요.” (118쪽)

- “어떤 것을 원하니? 자, 뭐든지 말해 보렴!” “2천 년 전의 세상도 볼 수 있을까요?” “글쎄. 2천 년 전의 세상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데. 음, 하지만 세상의 반은 보여줄 수 있다.” “세상의 반이요?” “그래. 하늘과 땅. 그 중에 반인 하늘을 보여주마. 2천 년 전의 하늘을.” (124∼125쪽)



  별을 읽지 않으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빛을 잃습니다. 해와 달하고 등을 지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넋을 잊습니다. 풀과 나무를 짓밟으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삶을 잃습니다. 흙과 하늘과 물을 어지럽히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꿈을 잊습니다.


  오늘날 우리 도시와 문명은 무엇을 읽을까요? 무엇을 말할까요? 무엇을 보여줄까요? 무엇을 나눌까요?


  밤에 별이 없는 이 나라에는 무엇이 있나요? 낮에 해를 누리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 되나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낮에는 해를 모르고 밤에는 별을 모릅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어른들도 낮에는 해를 모르고 밤에는 별을 모릅니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은 쳇바퀴에 갇힙니다.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수렁에 갇히고 굴레를 뒤집어씁니다.





- ‘아마도 우리가 나갈 사회란 이런 거겠지. 능력 없으면 빠져라 하는 양육강식이 움직인다는 사회.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 학교 학생이지만, 선생님들에게 이 학교가 우리가 아는 벌어먹고 사는 사회임을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안 됐다, 너무하다, 라는 느낌은 들어도 우리는 단지 그뿐인 것이다. 하긴, 우리가 뭘 할 건가.’ (165쪽)



  서른 해쯤 앞서 강경옥 님 만화를 처음 보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무렵에 ‘별’을 자주 이야기하는 강경옥 님 만화를 보면서 ‘서울에서는 별을 보기 힘든가 보네’ 하고만 느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강경옥 님 만화를 처음 만난 그무렵에, 열 살 언저리인 나이였는데, 내 고향인 인천에서 별똥을 처음으로 보았어요. 5초쯤이었나, 무척 길고 큰 별똥을 보았어요. 별똥을 처음으로 본 그때, 심부름 가던 길에 우뚝 멈추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활활 타오른다고 느꼈어요. 별이란 무엇이고, 별을 보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오래도록 헤아렸어요. 도시나 문명을 이루어 별을 잊거나 잃을 적에 우리들은 누구나 무엇인가 아주 크고 아름다운 빛을 잃거나 잊는다고 느꼈어요.


  별빛과 함께 삶이 빛날 수 있습니다. 별빛이 스러지면서 삶이 함께 스러질 수 있습니다. 별빛이랑 어깨동무하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별빛과 등지면서 이웃하고도 등질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가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농약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도시에서는 나무가 우거지는 공원이 늘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풀밭과 숲이 늘기를 바랍니다. 별이 빛나는 밤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햇볕과 함께 다 같이 까무잡잡한 흙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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