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난자몬자 5
이토 시즈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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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80



내 앞날을 스스로 그린다

― 수수께끼 난자몬자 5

 이토 시즈카 글·그림

 이지혜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8.21.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삶을 짓습니다. 기쁜 삶이든 슬픈 삶이든 스스로 지으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그러니 아침마다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내 삶을 제대로 짓지 못한다면, 내 하루는 그저 남들한테 휘둘리거나 휩쓸리기만 해요.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대로 그리지 않는다면, 내가 바라는 것이 없는 만큼 언제나 똑같은 일만 되풀이하면서 온몸이 고단하게 처집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오늘도 지겨운 하루로구나’ 하고 여깁니다. 똑같은 출퇴근길을 따분하게 여기고, 아침저녁으로 고단하게 집과 일터 사이를 오가야 하는 일을 끔찍하게 여깁니다. 늘 이런 생각을 되풀이하고, 늘 이런 삶을 되풀이합니다.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합니다. 다르게 생각할 줄 모릅니다. 새로운 생각을 품지 못합니다. 새롭게 생각할 줄 모릅니다. 쳇바퀴 같은 하루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열어야 하는데, 스스로 쳇바퀴에 갇힌 채 빠져나올 생각이 없어요.



- “그날 여행으로 이 섬에 온 사람들, 그 대부분이 가족이랑 헤어져서 절망하여 무기력하게 변했어.” (36쪽)

- ‘넌 진짜 강한 녀석이야. 네가 늘 당연하게 씩씩하게 혼자서 사니까 전혀 몰랐어. 가족이 없다는 게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거라니.’ (51쪽)





  쳇바퀴에서 누군가 건져내어 준다고 해서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쳇바퀴에 갇혀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버릇에 길들었기 때문에, 다른 삶이 있는 줄 몰라요. 스스로 다른 삶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쳇바퀴에 갇힌 사람은, 쳇바퀴 바깥에서도 새로운 쳇바퀴를 찾을 뿐입니다.


  종살이에서 풀려난 사람은 더는 종으로 지내지 않을까요? 한국 정부는 일제강점기 종살이에서 벗어난 뒤에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섰을까요?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한국 사회는 바야흐로 군사독재뿐 아니라 전쟁무기 굴레를 떨치고 홀가분하게 일어섰는가요?


  새로운 길을 배우지 않으면 새로운 길로 가지 못합니다. 새로운 길을 배울 때에는, 누가 이리로 가라고 해서 이 길을 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새로운 길을 살펴보고 찾아보며 바라볼 수 있는 눈매와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밥술을 떠서 밥을 먹듯이, 누구나 스스로 내 삶을 찾아야 합니다.



- “왠지 좋다. 좀 부러워. 난 한 번도 아빠랑 싸워 본 적이 없거든. 난 날 때부터 부모가 없었잖아.” (73쪽)

- “운명이란 건 그런 거니까. 생각대로 되는 일 같은 건 거의 없잖아. 그러니까 더더욱 소원이 이뤄지면 무척 기쁜 법이잖아.”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난 소원이 이뤄졌어. 뭐든 다 내 뜻대로 안 됐지만, 이제야 우리 아들이랑 겨우 함께 살게 됐잖아.” (134∼135쪽)





  이토 시즈카 님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삼양출판사,2014)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다섯째 권은 이야기가 살짝 느슨하게 퍼졌습니다. 막바지에 이르러 비로소 ‘생각줄기’ 한 가지가 흐릅니다. 기운을 잃고 풀까지 죽은 아이한테, 동무가 씩씩하게 한 마디를 해요. “우리 미래를 우리가 제대로 상상해야 하잖아!” 하고 외쳐요.



- “그게 무슨 약한 소리야! 포가 그렇게 목숨 걸고 우릴 지켜 줬잖아. ‘못 찾았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

- “있지, 타로. 이런 얘기 알아? 사람의 미래는 의외로 그 사람이 상상하기 쉬운 결과 쪽으로 움직인대. 그러면 우리가 제대로 상상해야 하잖아! 우리 미래를 말이지!” (183쪽)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새로운 꿈을 그리느냐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네, 그래요.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릴까요? 그러나, 살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립니다. 살고 싶은 모습을 그립니다. 살고 싶으며 사랑하고 싶은 모습을 꿈으로 그립니다.


  그려야지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그려야지요. 종살이를 그대로 할 생각이라면 내 앞날을 안 그려도 되지만,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서 아름답게 살고 싶다면,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그릴 노릇입니다. 즐거운 삶을 그리고 기쁜 웃음을 그릴 노릇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리는 대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스스로 지겹거나 고단한 말만 되풀이하면, 참말 지겹거나 고단한 일만 되풀이하듯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맑게 웃고 환하게 노래하는 몸가짐으로 새 하루를 맞이한다면, 언제나 우리 스스로 삶을 새롭게 고쳐짓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저 먼 나라에서 누가 돈보따리를 던져 주어야 우리 살림이 펴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살림을 펴고 싶은가를 마음속에 그려서, 그 살림으로 나아가도록 하루를 가꾸면 됩니다. 대단한 교육부 장관이 나타나야 입시지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입시지옥하고 안 얽히는 삶을 짓고, 아이들과 하루를 아름답게 누리면, 입시지옥은 어느새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대통령이 바꾸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바꾸는 나라입니다. 대통령은 허울이 좋은 꼭둑각시입니다. 우리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는 꼭둑각시인 대통령입니다. 4347.9.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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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난자몬자 4
이토 시즈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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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79



서로 그리는 사람

― 수수께끼 난자몬자 4

 이토 시즈카 글·그림

 이지혜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3.24.



  손전화나 삐삐가 없던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으면 몇 시간쯤 기다리곤 했습니다. 오래 기다려야겠다 싶으면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챙기기도 합니다. 아예 책방에서 만나거나 기다리기로 한 뒤, 책방에 서서 책을 읽기도 하고, 책방에서 이런 책 저런 책을 살피면서 ‘곧 만나기로 한 사람한테 선물할 책’까지 고르기도 합니다.


  삐삐를 지나 손전화를 두루 쓰는 오늘날에는 누군가를 몇 시간쯤 기다리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누군가 찾아오기까지 여러 날 기다리는 일도 없지 싶어요. 왜냐하면, 기다릴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걸거나 쪽글을 보내면 돼요. 오늘날은 서로서로 곧바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만나고 다시 곧바로 헤어지는 오늘날에는 서로 어떻게 만난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기다릴 일이 없는 만큼, 만날 때뿐 아니라 헤어질 적에도 아쉬움이란 하나도 없겠지요. 아무리 멀리 떨어졌어도 손전화를 켜거나 인터넷을 열면 바로바로 닿을 수 있어요. 오늘날 이 지구별에서 만남과 헤어짐이란 무엇일까요.



- “아아아, 빌어먹을!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야! 그저 무사히 전쟁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사지 멀쩡하게 가족 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들을 이 손으로 안아 준다, 그것만을 바랐을 뿐인데.” (21쪽)

- “타로라면 어쩌겠나? 갑자기 사라진 사람을, 몇 십 년이나 변함없이 기다릴 수 있겠어?” “물론이죠! 소중한 사람이면 몇 십 년이건 기다릴 수 있어요!” (57쪽)





  이토 시즈카 님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삼양출판사,2014) 넷째 권을 읽습니다. 세 해 만에 넷째 권이 한국말로 나옵니다. 《수수께끼 난자몬자》 넷째 권에서는 작은 섬마을에 모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삶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넌지시 짚습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몸이 아주 작게 줄어들어 어디로도 못 가고 거의 숨다시피 지내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몸이 아주 작게 줄어들다 보니, 몸이 줄어들지 않은 사람은 이들대로 그동안 늘 마주하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다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그리거나 가슴에 아픔을 품은 채 지냅니다. 두 사람은, 그러니까 몸이 줄어든 사람하고 몸이 그대로인 사람은 어떤 삶이 될까요. 몸이 줄어든 사람은 먼발치에서 몸이 그대로인 사람을 지켜봅니다. 몸이 그대로인 사람은 몸이 줄어든 사람을 볼 길이 없고 알 길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 따로 떨어져서 저마다 살아가는데, 어떤 마음이 될까요.



- “허나 현실 세계에선, 그렇게 아름다운 일은 생기지 않아. 떠난 사람은 시간과 함께 잊혀지지. 나한테는, 이제 돌아갈 장소 따위 없다. 그래서 나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죽었다고 하면 마음도 없지. 이 땅의 흙이나 돌과 매한가지인 것, 그저 비바람을 맞으며 그저 맥박이 잠잠해지는 날을 기다리면 돼.” (58∼59쪽)




  사랑은 국경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별이나 졸업장이나 돈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만 바라봅니다. 사랑바라기를 하기에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볼 테지요. 이를테면 몸매를 본다든지 얼굴을 본다든지 돈을 본다든지 이름값을 본다든지 다른 것을 보겠지요.


  다른 것을 보는 사람한테는 사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을 보거든요. 사랑을 이루고 싶다면 참말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내려놓고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오로지 사랑을 보아야 사랑을 이루는데, 다른 것을 죄 움켜쥐고는 사랑이 안 이루어진다고 말해 본들 아주 부질없습니다.



- “아줌마, 얼굴은 예쁜데 무지하게 나쁜 악당이었구나!” (121쪽)

- “어쩜 이렇게 심한 짓을 할 수 있어? 이 목걸이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걸려 있어! 이게 없으면 다들 소인이 돼 버린다구!” (134쪽)

- ‘엄마는 외로운 사람이야.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람 마음까진 살 수 없는데!’ (139쪽)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문득 되돌아봅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무렵, 군대에 끌려간 사람이나 군대에 휘말리지 않으려던 사람이 작고 외진 섬에 조용히 깃들었습니다. 전쟁이 얼른 끝나기를 기다렸어요. 불구덩이 전쟁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는데, 외려 몸뚱이가 작아지고 말았어요.


  몸이 안 작아진 사람은 아마 ‘전쟁통에 죽었겠거니’ 하고 여길 수 있습니다. 전쟁이란 참 모질고 끔찍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몸이 작아지지 않더라도 전쟁 불길에 휩쓸리면 그만 죽어요. 내가 일으킨 전쟁이 아니건만, 내가 깃든 나라에서 일으킨 전쟁은 나와 이웃 모두를 죽음 소용돌이에 몰아넣습니다.


  왜 정부는 전쟁을 일으켰을까요. 왜 정부는 군대를 키워서 전쟁을 벌이려 할까요. 왜 정부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다시 군대를 키워 전쟁무기를 잔뜩 갖출까요. 왜 평화로 나아가려는 정부는 없을까요. 왜 전쟁무기와 군대 모두를 버리거나 내려놓는 정부는 없을까요. 평화하고 동떨어진 군대와 전쟁무기를 잔뜩 갖추기 때문에 평화가 안 찾아오는 줄 깨닫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 “이렇게 작아질 운명이라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한텐 작은 친구들이 잔뜩 생겼잖아!” (180쪽)




  손전화와 삐삐가 없던 지난날을 가만히 그립니다. 집전화만 있던 지난날, 동무네 집에 전화를 걸며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어디에서 놀자고 말을 하면 어디로 달려갑니다. 몇 시 몇 분에 만나자는 말이 없이 그냥 ‘어느 곳’을 말하는데, ‘어느 곳’조차 ‘거기’라고 할 뿐, 딱히 어느 곳이라고 짚지 않습니다. ‘이따 놀자’고 하면 ‘이따’가 언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따’가 되도록 혼자 놀거나 다른 동무하고 놉니다. ‘낮에 보자’라든지 ‘아침에 보자’고 하면 몇 시인지 모르지만, 그냥 서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조용히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기다리면서 사람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골목집을 구경하거나 하늘을 구경합니다. 바람내음을 맡고, 골목 어디에선가 흐르는 꽃내음을 맡습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함께 놀면 얼마나 즐거울까를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놀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는 마음이 있으니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사랑스럽습니다. 마음밭에 꿈을 담고, 마음자리에 이야기를 심습니다. 서로서로 마음으로 따사롭게 그리기에 즐겁게 만납니다. 서로서로 마음으로 따뜻하게 그리기에 즐겁게 만난 뒤 아쉬움을 듬뿍 안고 헤어지면서도 두근두근 북돋우는 가슴에 끝없이 샘솟는 예쁜 이야기가 있습니다. 4347.9.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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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 별 아래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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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78



나도 여기 있는데

― 풀밭 위 별 아래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4.8.15.



  가을볕이 내리쬐는 구월 아침에 마당을 빗자루로 씁니다. 두 아이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마당에 놓은 동그란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서 놉니다. 처음에는 물총놀이를 하고, 이윽고 물쏟기 놀이를 하다가, 어느새 옷에 물을 부어 적시는 놀이를 합니다.


  마당에 아이들이 놀면서 드나들라고 놓은 천막 바닥에까지 물이 고입니다. 부랴부랴 천막을 치웁니다. 깔개와 천막을 말리다가, 이 물로 마당을 쓸자고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마른비질을 했고, 낮에는 물비질을 합니다.


  마당에 꽤 오랫동안 풀포기를 쌓은 채 지냈습니다. 커다란 고무통도 마당에 그대로 놓았지요. 평상 밑에는 풀잎과 나뭇잎이 삭으면서 흙으로 바뀌었고, 웃밭에서 흘러내린 흙까지 고여서 꽤 두꺼운 ‘새 흙땅’이 되었어요.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흙을 긁습니다. 흙을 긁을 때마다 지렁이가 꼬물꼬물 나옵니다. 지렁이는 마당 가장자리 꽃밭으로 던집니다. 1센티미터나 2센티미터쯤 될까 싶은 흙땅에서 새끼를 낳으면서 지내는 지렁이는 그곳이 좋았을까요. 깊은 흙이 아니더라도 지렁이한테는 포근한 보금자리였을까요.



-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좋잖아? 난 요시하루가 좋아. 좋아하는 사람과 이렇게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그걸로 충분하잖아. 즐겁고 충실하고, 나 정말 만족스러워.” (12쪽)

- “엄마랑 아빠는 걱정하면서도 언니랑 같이 있는 게 엄청 좋은가 봐. 옛날부터 우리 집은 언니 중심이었거든.” “헤에.” “아침에도 갑자기 언니를 위해서라며 밥이랑 된장국을.” “뭐 어때. 맛있겠네.” “그런 게 아니라.” (27쪽)




  아이들이 놀면서 흘린 물로 마당을 쓸다가, 물을 더 받고 뿌려서 마당을 신나게 씁니다. 흙물을 꽃밭으로 던지면서 쓸고 보니 등허리가 결립니다. 아이들은 몇 시간째 물놀이를 했으니 슬슬 춥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늘 이렇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덥다’거나 ‘춥다’고 느낄 때까지 놉니다. 어른이 느끼기에 덥거나 추워도 아이들 스스로 아직 안 덥거나 안 추우면 더 놀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이럴 때에는 물끄러미 지켜볼밖에 없습니다.


  다만, 집이 아닌 바깥에서 놀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요. 집에서는 곧바로 씻겨서 옷을 갈이입힐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지치면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힌 뒤 샛밥을 주고는 자리에 눕힐 수 있어요. 바깥에서는 이렇게 하기 힘들기에, 아이들이 한창 잘 논다 싶을 무렵에 놀이를 끊어야 합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래, 아버지도 마당을 치우느라 허리가 아팠어. 너희들이 그만 논다고 하니 아버지도 고맙구나. 이제 들어가서 쉬자.



- ‘언니는 어릴 적 몸이 약해서 엄마도 아빠도 늘 언니에게 붙어 있었다. 하얗고 작은 꽃 같아서, 누구나 언니를 지켜 주고 싶어 했다. 언니가 울지 않기를, 언니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나도 여기 있는데.’ (28쪽)

- “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건 나는! 나는 아사코를 계속 좋아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나한텐 오직 너뿐이야. 소중해서 견딜 수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한테 사과해. 내 사랑에 사과해!” (50쪽)




  아이들이 샛밥을 먹는 사이에 빨래를 합니다. 물놀이를 하면서 적신 옷이지만, 물놀이도 하고 마당을 한창 뒹굴었으니 비누를 묻혀서 복복 비빕니다. 마지막으로 헹군 뒤 물기를 쪽쪽 짜고 탁탁 털면서 허리를 폅니다. 아이고 고되라, 그렇지만 개운해라.


  마당을 쓸면서 매미 주검을 보았습니다. 매미 주검은 머리와 몸통이 없이 몸 껍데기랑 날개만 있었습니다. 개미가 모두 파먹었나 봐요. 개미는 주검을 무척 알뜰히 먹는데, 왜 몸 껍데기랑 날개를 남겼을까요. 아니, 먼저 가장 맛난 데를 갉아서 먹은 뒤, 몸 껍데기랑 날개는 맨 마지막에 먹을 생각이었을는지 모릅니다.


  잠자리가 날면서 맥문동 잎사귀에 앉습니다. 풀개구리 한 마리가 후박나무 잎사귀에 달라붙어서 쉽니다. 저 아이는 언제 저기까지 올라갔을까요. 풀개구리가 풀숲뿐 아니라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먹이를 찾고 쉬기도 하는 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까요. 개구리라면 으레 논가나 못가에서만 볼 수 있다고 여기리라 느낍니다.


  부전나비가 한 마리 부추꽃에 앉습니다. 범나비가 팔랑거리면서 부추꽃밭에서 춤을 춥니다. 한창 비질을 하다가 하염없이 범나비를 바라봅니다. 범나비는 언제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범나비가 팔랑거리며 지나가면 으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범나비가 내 눈에서 벗어날 때까지 한참 쳐다봅니다.



- ‘하느님. 언니가 행복해지기를.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언니의 꿈에 나타나지 않기를, 언니의 소중한 사람이 언니를 웃게 해 줄 수 있기를.’ (64∼65쪽)

- “미안해요. 지금껏 요모기다 씨가 살아온 인생까지 전부, 전부 합쳐서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까 함께 있어 줘요.” (106∼197쪽)




  타니카와 후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풀밭 위 별 아래》(대원씨아이,2014)는 몹시 포근하면서 보드랍습니다. 가시내와 사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틋한 사랑이 흐르는 만화인데, 말마디 하나와 그림 하나가 모두 살갑습니다. 무엇보다 ‘사랑만화’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얽매이거나 붙잡는 사랑이 아닌, 누군가한테 사로잡히거나 끄달리는 사랑이 아닌,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내 곁에서 함께 웃고 노래할 님을 찾는 사랑을 반갑게 읽을 수 있습니다.



- ‘정말로 나 같은 건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이구나. 그치만 난 ‘거기’가 아니야.’ (120쪽)

-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건 굉장한 일이에요. 기적 같은 거죠. 함께 산다는 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전부 포함해서 함께 헤쳐 나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잖아요? 정말 굉장한 일인데, 그렇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요.” (142쪽)



  나도 여기 있습니다. 아니, 나는 여기 있습니다. 언니와 나를 견줄 일이란 없습니다. 동생과 나를 견줄 까닭이란 없습니다. 동무나 이웃하고 나를 견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한몸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나요? 그러면, 내가 뭇사람한테서 사랑받고 내 동생이나 언니는 눈길 한 번 못 받는다면 어떠할까요? 


  나는 오직 나일 뿐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나는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저 티없이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예 가없이 내 삶을 사랑할 뿐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 누군가 나를 그리면서 따사로운 마음을 보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 나처럼 누군가 이녁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서로서로 마음이 맞는 까닭은 서로서로 스스로를 참다이 아낄 줄 알고, 스스로를 참다이 아낄 줄 알기에, 서로를 슬기롭게 어루만지면서 착하게 보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나같이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시시한 아이는, 이걸 돌려주면 선생님과 연결점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어요. 지켜보기만 해도 좋았어요. 수업 시간에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지만 졸업하면 그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3년 동안 첫 수업 시간부터 계속 지켜봤어요.” (148∼149쪽)



  시시한 아이란 없습니다. 멋진 아이란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어른이란 없습니다. 훌륭한 어른이란 없습니다. 모두 그대로입니다. 모두 사랑입니다. 모두 따사로운 숨결이고, 모두 싱그러운 바람입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만화책에 붙인 이름이 “풀밭 위 별 아래”라니,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풀밭과 별 사이에 사랑이 있습니다. 풀밭과 별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풀밭과 별 사이에 삶이 있습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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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9-1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추석인사가 늦었습니다.^^;;

이 만화 재밌어 보입니다.^^

숲노래 2014-09-11 17:07   좋아요 0 | URL
이분이 그린 다른 만화도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오랫동안 활동한 작가라서
절판된 숨은 진주도 많지요~

요즈음 이분 작품이 여러 권 번역되어
무척 반갑게 모두 장만해서 읽었어요~

한가위 지난 구월빛 즐겁게 누리셔요~~~ ^^
 
동물의 왕국 14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77



듣는 목소리·내는 목소리

― 동물의 왕국 14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8.25.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우리는 어떠한 소리이든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 듣는 소리가 있다면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쏟아 귀를 기울이면 어떠한 소리이든 듣지만, 마음을 쏟지 않으니 못 듣는 소리가 많습니다.


  아무리 북새통이어도 어버이는 아이 목소리를 알아차립니다. 수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있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봅니다. 자동차 소리로 귀를 찢더라도 아이가 읊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고, 우당당탕 어수선한 곳에서도 내 이웃과 동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나무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마음을 기울이기에 꽃과 풀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마음을 기울인다면 벌과 나비와 잠자리가 어떤 목소리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 “이제 이 별은 폭발해 사라질 거야!” “그만해!!” (64∼65쪽)

- “가장 사랑하는 인간을 그 손으로 죽인 죄인이, 과연 살아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일레인. 기라의 말 따위 듣지 마. 사는 게 쿠오우의 바람이었잖아? 그렇지? 일레인은 기라에게 조종당한 것뿐이야. 아마 네 손은 앞으로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지킬 거야. 빼앗는 것이 아닌, 지키고, 키우는, 그런 손으로 만들자. 모두와 함께 살자. 네 뒤를 돌아봐.” (71쪽)





  냇물은 언제나 노래합니다. 냇물 곁에서 냇물노래를 듣는 사람은 냇물을 망가뜨리거나 허물지 않습니다. 냇물 곁에 있어도 냇물노래를 안 듣거나 못 듣는 사람은 냇물을 까뒤집습니다. 냇물노래를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은 냇바닥에 시멘트를 퍼붓습니다.


  행정 관료만 책상행정을 하지 않아요. 냇물노래를 안 듣기 때문에 책상행정으로 4대강사업 따위를 저지릅니다. 냇물노래를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토목건설 일자리를 받아들이고, 냇물노래에 귀를 닫기 때문에 4대강사업 홍보를 하면서 돈과 이름을 거머쥐려는 짓을 저질러요.


  시골마을에 송전탑을 박는 한국전력 일꾼은 숲노래를 듣지 않습니다. 마을노래도 듣지 않습니다. 한국전력 일꾼을 돌보는 경찰과 전경 또한 숲노래와 마을노래를 듣지 않아요. 이들은 ‘위에서 시키는 소리’만 듣습니다. 위계질서에 갇힌 공무원과 군인은 ‘이웃과 동무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안 듣습니다. 게다가 공무원과 군인은 이녁한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될 사람들이 들려주는 목소리조차 귀를 닫아요.


  가만히 보면 그렇습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언제나 귀를 닫습니다. 모진 짓을 일삼는 사람은 늘 귀를 막습니다. 둘레에서 흐르는 소리에 귀를 꽁꽁 틀어막습니다. 함께 노래를 부를 생각이 없고,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할 뜻이 없어요.



- “모두를, 죽게 놔두지 않아. 살아서, 새로운 세상을.” (138쪽)

- “초목의 기분에 좀더 귀 기울여. 초목과 어울려 공존할 수 있을 거야. 물고기도 조만간 울음소리를 내게 되겠지. 재밌겠다, 그럴 수도 있겠는걸!” “그래도 악은 사라지지 않아! 먹지 않고도, 죽이는 놈은 사라지지 않아!” “그래,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 점은 타로우자도 전부 선이 되라고는 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동물 각자에겐 의지가 있어. 선도, 악도 있지. 하지만 선도, 악도 서로 목소리를 내고 귀 기울임으로써, 언젠가 악은 얌전해질 거야. 시간은 걸리겠지만.” (147∼148쪽)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교육정책이 없습니다. 정책이라고 할 것이 없어요. 모두 위계질서에 따라 내리는 ‘명령·지시’일 뿐입니다. 소리가 없습니다. 목소리가 없어요. 아이들 목소리를 듣지 않고 정책을 세우지요. 아이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입시지옥을 만들지요. 아이들 목소리를 마음에 담지 않으니, 언제나 아이들이 고단하지요.


  앳된 젊은이가 군대에서 주먹질이나 발길질에 목숨을 잃습니다. 앳된 젊은이가 가녀린 동무를 두들겨패서 죽입니다. 죽인 녀석이나 죽은 아이나 모두 앳된 젊은이인데, 서로 이야기가 흐르지 못합니다. 온통 위계질서만 있기 때문입니다. 따사로운 목소리가 흐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군대라는 곳은 전쟁무기를 손에 쥐어 사람 죽이는 짓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면회나 휴가를 늘린대서 군대가 나아질 턱이 없습니다. 면회나 휴가를 늘려 보았자, ‘사람 죽이는 짓을 가르쳐서 길들이는 얼거리’는 하나도 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서로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삶’이 아니라 ‘위계질서에 따라 시키거나 부리거나 휘두르는 얼거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 이야기를 들을까요. 누가 누구한테 이야기를 할까요. 어떤 목소리를 듣습니까. 어떤 목소리를 들려줍니까.



- “기라, 넌 울음소리를 얼마나 들었지? 나보다 많은 동물과 얘기했냐? 귀를 막고 몇 안 되는 인간의 몇 마디 말 속에서 살아왔던 건 아니고? 귀도 기울이지 않은 네가, 어떻게 동물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지?” (152∼153쪽)





  라이쿠 마코토 님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4) 열넷째 권을 읽습니다. 이제 열넷째 권으로 《동물의 왕국》은 마무리를 짓습니다. 지구별에 끔찍한 죽음과 죽음과 죽음만 낳으려고 하는 ‘기라’라고 하는 불쌍한 아이에 맞서서 ‘타로우자’라는 아이는 온몸과 온마음을 바쳐서 “얘야, 우리 같이 살자.” 하고 말합니다. 이웃을 이웃으로 안 보고 모두 죽이려 하는 기라인데, 동무를 동무로 삼지 않고 모두 죽이려고만 하는 기라인데, 타로우자는 이런 기라한테도, 너 말이야 스스로 죽을 생각을 하지 말고 함께 살자,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라는 손사래칩니다. 기라는 살아갈 뜻이 없습니다. 기라는 ‘하늘나라’가 죽음 뒤에 찾아온다고 여깁니다. 기라는 갓 태어날 적에 ‘하늘나라를 삶 바깥에서 보았다’고 말합니다.


  기라라고 하는 아이는, 온통 죽음만 생각하는 아이는, 참말 하늘나라를 보았을까요? 아마 보았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그 하늘나라는 죽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싶어요.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지었을 때에 몸뚱이를 내려놓고 넋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 싶어요.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짓지 않은 사람은 몸뚱이를 내려놓더라도 갈 수 없는 곳이지 싶어요.


  그러면, 기라는 어떻게 될까요? 다시 지구별에서 태어나겠지요. 아마 앞으로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생각하는 숨결로 새로 태어나겠지요. 그래야, 기라 스스로 바라는 ‘하늘나라’에 갈 테니까요.



- “산이 으르렁거린다. 대지가 울고 있어. 물이 소리를 내고 있어. 난생 처음 보는 하늘빛이다.” (166쪽)

- “하나타, 또 꽃을 주워 왔네.” “부럽다. 나도 꽃이나 풀과 얘기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얘기까진 못 해. 그냥 마음만 아는 거지.” “그래도 하나타가 심은 꽃이나 작물은 절대 시들지 않는걸!” (176쪽)

- “진심으로 이 광경이 기뻐. 과학도 논리도 아니야. 진짜 답은 마음이 알고 있는걸.” (185쪽)





  만화책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아이 ‘타로우자’는 두려움이나 근심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사랑하려는 마음을 짓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울 일도 근심할 일도 없습니다. 사랑을 마음에 담았으니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을 담은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지으니 근심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이웃을 생각합니다. 따사로운 동무를 생각합니다. 모든 삶을 즐겁게 짓습니다. 모든 하루를 아름답게 짓습니다.


  어떤 소리를 듣겠습니까? 어떤 소리를 내겠습니까? 풀과 꽃과 나무가 내는 소리를 듣겠습니까? 풀과 꽃과 나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어떻게 살겠습니까? 미움과 따돌림과 밥그릇에 얽매인 종살이로 나아가겠습니까? 사랑과 꿈과 믿음과 노래와 이야기가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겠습니까? 길은 두 갈래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 길을 가느냐 안 가느냐일 뿐입니다. 4347.9.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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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커피 2
기선 지음 / 애니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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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75



즐겁게 커피 한 잔

― 오늘의 커피 2

 기선 글·그림

 애니북스 펴냄, 2009.7.24.



  어버이가 차리는 밥을 아이들이 받아서 먹습니다. 아이들은 잘 먹기도 하지만, 잘 안 먹기도 합니다. 잘 먹는 날 왜 잘 먹는가 하고 가만히 보면, 배가 고프기도 하고, 한창 신나면서 즐겁게 뛰놀았습니다. 잘 안 먹는 왜 잘 안 먹는가 하고 곰곰이 보면, 배가 안 고프기도 하며, 제대로 못 놀거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똑같은 밥 한 그릇이지만, 아이와 어른 모두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밥맛을 달리 느낍니다. 어른이라면 배가 제법 불렀어도 ‘차린 이 손길’을 헤아리며 더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이 대목까지 헤아리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배가 고플 적에 잘 먹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익숙한 것을 잘 먹습니다. 어버이가 즐겁게 먹는 것을 으레 보기 마련이니, 입뿐 아니라 눈과 코와 귀에 익숙한 것을 한결 잘 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것을 먹든 그리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밥을 먹을 적에 영양소만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양소를 고루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만, 영양소를 살피느라 밥 한 그릇에 담을 마음을 놓친다면 어떡할까요. 마음이 깃들지 않은 밥을 먹으면 어떤 기운을 얻을까요.





- “제가 직접 숯불에 볶은 원두입니다.” “손으로 직접 갈다니!” “우와, 절에서 커피를. 특이하다!” “해림 스님, 물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벌써? 아니다. 아직 익으려면 좀더 있어야 돼.” ‘물이 익는다고? 게다가 온도계도 없이 적정온도를 어떻게 알아내지?’ (39쪽)

- “스님, 대체 이 맛의 비결은 뭔가요?” “비결이라.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는 그저 대자연이 베푸는 자비를 고이 받았을 뿐이지요. 아침 일찍 산 정상에서 맑은 물을 길어와, 수행하는 마음으로 보살피고 익혀, 불심으로 볶은 커피콩에 흘려보냈을 뿐입니다.” (42쪽)



  기선 님 만화책 《오늘의 커피》(애니북스,2009)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커피 한 잔은 맛있게 마시면 참으로 좋을 텐데, 맛있을 뿐 아니라 즐겁게 마시면 더없이 좋습니다. 아니, 맛있기만 한 커피일 때에는 어딘가 모자라요.


  생각해 봐요. 가시바늘 같은 곳에서 맛만 있는 커피를 마실 적에 즐거울까요? 느긋한 곳에서 맛은 좀 떨어지는 커피를 마실 적에 즐거울까요? 거북한 곳에서 맛만 있는 커피를 마실 적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어나는 곳에서 맛은 좀 떨어지는 커피를 마실 적하고, 어느 쪽이 즐겁게 마시는 커피가 될까요?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한 곳이라면, 몸도 마음도 안 즐겁습니다. 입으로 마실 뿐 아니라 온몸을 확 깨우는구나 하고 느낄 만한 곳에서 마실 때에 즐겁습니다.


  더 생각할 수 있어요. 시멘트를 퍼부어 만든 청계천 한켠에서 마시는 커피하고, 골짝물이 싱그럽게 흐르는 숲속에서 마시는 커피를 생각해 봐요. 고속도로 옆에서 마시는 커피하고, 우람하게 잘 자란 나무그늘에서 마시는 커피를 생각해 봐요. 핵발전소를 코앞에 두고 마시는 커피하고, 너른 바다가 파랗게 눈부신 곳에서 햇볕을 따사롭게 받으며 마시는 커피를 생각해 봐요.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갇힌 학교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하고, 아이들이 하하호호 웃고 뛰노는 골목에서 마시는 커피를 생각해 봐요.




- “마침 동생 분도 오셨으니 이참에 하산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하, 하지만 전 아직 번뇌를 떨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집착하는 것 또한 번뇌입니다. 깨달음의 길은 장소와 상관없는 것이지요. 보살님은 아직 속세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53쪽)

-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맛있는 걸 먹었던 게 언제였더라? 이거,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죽도록 맛있어.’ (157쪽)



  마음이 즐겁다면 어디에서라도 즐겁습니다. 여러 시간 달리는 시외버스에 있건, 사람들이 빼곡한 전철에 있건,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가득한 공장 옆에 있건, 마음이 즐겁다면 어디에서라도 즐겁습니다. 마음이 즐겁지 않다면 어디에서라도 즐겁지 않습니다. 푸른 바람이 부는 곳에 있든, 멧꼭대기에 있든, 무지개 드리운 들판에 있든, 마음이 즐겁지 않다면 어디에서라도 안 즐겁습니다.


  누군가 새벽에 길어 놓은 물도 정갈합니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길어 온 물도 정갈합니다. 누군가 새벽에 어떤 마음으로 물을 길었을까 떠올리면서 물 한 그릇 즐겁게 씁니다. 내가 스스로 새벽에 길어 온 물을 그리면서 물 한 그릇 알뜰히 씁니다. 반가운 동무한테 건넬 웃음을 떠올리면서 차 한 잔 끓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곱게 다스리려고 차 한 잔 끓입니다.


  물 한 잔을 앞에 놓고 삶을 생각합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사랑을 생각합니다. 물 한 접시를 떠서 바라보면서 꿈을 생각합니다. 그저 배가 고파서 짓는 밥일까요. 그저 아이들을 먹이려고 짓는 밥일까요. 밥을 먹어 얻는 기운으로 무엇을 할까요. 오늘 하루는 어떻게 맞아들여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삶을 지을 때에 즐거울까요.




- “직원도 몇 명 늘렸다면서?” “네, 파티시에와 바리스타가 한 명씩 늘었더군요.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많이 밝아졌습니다.” “분위기가 많이 밝아져? 어떻게?” (167쪽)

- “물론 저처럼 해외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다수 있구요! 그런 사람들 중에서 최고를 가리는 신성한 대회입니다! 혹시 바리스타 자격시험 정도로 착각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 “현장경험, 해외유학, 물론 중요합니다. 저도 분명 그런 과정을 몇 년씩 거쳐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지만 난지 씨는 그런 제가 인정한 사람입니다. 아직 익혀야 할 게 태산 같긴 하지만, 전 이 친구의 카푸치노에서 이론과 상식을 뛰어넘는 재능을 봤습니다.” (182∼183쪽)



  세 권짜리로 나온 만화책 《오늘의 커피》 가운데 둘째 권에서는 ‘으뜸 커피지기’를 뽑는 대회에 나가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서울에서 커피집을 꾸리는 주인공 하나는 이녁 커피집이 어딘가 우중충하면서 장사가 잘 안 되는 줄 깨닫습니다. 무엇인가 바꾸려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나이가 어린 탓에 잘 모르지 않습니다.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직 잘 모릅니다.


  가게에 있는 걸상도, 가게를 꾸민 살림도, 딱히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커피를 갖추고, 커피와 곁들일 입가심을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커피집을 꾸린다면, 어떤 마음으로 꾸려야 할까요. 밥집을 꾸리거나 술집을 꾸리거나 옷집을 꾸린다면, 어떤 마음으로 꾸려야 할까요. 책방을 꾸리거나 빵집을 꾸린다면, 어떤 마음이 되어 꾸릴 때에 우리 삶을 즐겁게 북돋울 만할까요.


  그나저나 만화책 《오늘의 커피》는 세 권으로 ‘커피’ 이야기를 간추리려 하다 보니 줄거리가 갑작스레 너무 빨리 흐릅니다. 조금 더 찬찬히 지켜보고, 조금 더 느긋하게 바라보면서 커피맛과 커피내음을 즐겨도 되었을 텐데 싶습니다. 휙휙 빨리 건너뛰거나 달려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굳이 맞수를 두거나 여럿이 부딪히거나 다투는 얼거리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으뜸 커피맛과 버금 커피맛은 없습니다. 즐거움은 숫자로 가르지 못합니다. 아름다운 삶은 등수로 줄을 세우지 못합니다. 보여줄 이야기나 들려줄 웃음이 훨씬 많았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움을 접고 둘째 권을 덮습니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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