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3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421



내 몸을 이루는 밥 한 그릇

―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 3

 야나하라 노조미 글·그림

 채다인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1.10.25.



  동그란 감알을 둘로 쪼갭니다. 꼭지를 칼로 뗍니다. 한입 석 베면 혀끝으로 감내음이 물씬 풍깁니다. 달디단 감알은 몸으로 스며들면서 즐거운 기운이 됩니다. 감알을 먹고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감알은 감나무가 맺은 열매입니다. 감알은 감꽃이 진 뒤에 맺는 열매입니다. 감꽃은 아이 손톱 크기만 하달 만큼 참으로 작습니다. 이와 달리 감알은 제법 굵습니다. 그 작은 꽃에서 어쩜 이리 큰 알이 맺나 싶도록 놀랍습니다.


  사람이 먹는 다른 나무열매도 알이 참 굵습니다. 능금꽃이나 배꽃을 보면, 능금알이나 배알이 어쩜 이리 굵나 싶어 놀랍니다. 모과꽃을 보면, 모과알은 또 어쩜 이리 굵나 싶어 깜짝 놀랍니다.



- “다카스기 선배, 어제 같이 일했잖아요. 언제 장을 본 거예요?” “그게 쿠루리가.” “좋겠어요. 이럴 때는 혼자 살면 불편하다니까요.” (11쪽)

- “편의점의 계절한정 도시락이라든가, 그러고 보니 상점가에도 도시락 집이 새로 생긴 것 같던데.” “지금 가면 슈퍼 저녁 5시 할인.” “네.” (24쪽)

- “특이점은 개성의 원석이거든. 나는 그렇게 생각해. 엄마랑 계속 싸우면서 지내온 청춘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31쪽)





  우리가 먹는 열매는 나무가 베푸는 숨결인데, 감알이든 능금알이든 배알이든, 속에는 씨앗이 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나무로 자라고 싶은 씨앗이 열매에 깃들어 새근새근 잡니다.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씨앗을 먹는 셈이요, 새롭게 자랄 숨결을 몸으로 받아들여야 새롭게 기운을 차리는 셈입니다.


  밥알도 열매입니다. 밀알을 가루로 내어 찌거나 굽는 빵도 열매에서 옵니다. 고기를 먹더라도 고기 또한 열매로 이루어진 몸입니다. 소이든 돼지이든 다른 숨결을 먹으면서 자라고, 물고기도 냇물이나 바다에서 다른 숨결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풀을 먹든 고기를 먹든 우리는 누구나 다른 목숨으로 내 목숨을 잇습니다. 다른 목숨은 내 몸으로 스며들어서 나를 튼튼하게 돌보고 나를 씩씩하게 이끕니다. 그러니 밥 한 그릇을 먹을 적마다 내 몸으로 어떤 숨결이 들어오는지 헤아립니다. 어떤 빛이 나한테 오고, 어떤 노래가 나한테 오며, 어떤 바람이 나한테 오는지 찬찬히 생각합니다.



- ‘오늘 저녁반찬 진짜로 꽁치였구나. 거기다가 왠지 숨겨둔 것 같고. 우와아, 뭔가 저질러 버린 느낌이.’ (55쪽)

- “근데 말이야, 매일 음식 만드는 거 귀찮지 않아?” “좋아하니까.” “음식 만드는 거? 아니면 다카스기 조교님이?” (63쪽)

- “몸의 재료는 우리가 먹는 것들이잖아? 쿠루리가 여기에 오고 나서 1년 반 동안 우리들은 거의 같은 걸 먹었고, 우리들의 몸은 지금 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지.” (89쪽)





  야나하라 노조미 님이 빚은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AK커뮤니케이션즈,2011) 셋째 권을 읽습니다. 날마다 도시락을 싸고, 날마다 아침저녁을 짓는, 어른과 아이가 어떤 삶을 누리는지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기운을 차리고, 밥 한 그릇을 나누면서 날마다 서로 따스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삶을 들려줍니다.


  수수한 밥이단 잔치마당 밥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밥자리이면 됩니다. 반찬 가짓수가 많아야 하지 않고, 풀밥이거나 고기밥이어야 하지 않아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밥자리이면 넉넉합니다.



- “참치 종류라든지, 생이라든지 해동이라든지, 어려워요.” “아이들은 그렇겠지. 어른한테도 그렇고. 참치는 다루는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지니까. 제일 좋은 건 감별사에게 물어 보는 거지. 신뢰할 수 있는. 그리고 이건 맛있어. 내가 보증하지. 500엔.” “살게요.” “아가씨, 맛있는 걸 먹고 싶으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두라고. 그러면 좋은 걸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어.” (152∼153쪽)

- “생선 이름은 잘 알고 있잖아.” “그건 시험에 안 나오잖아. 나는 빨리 독립하고 싶어. 빨리 일해서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158쪽)





  함께 밥을 먹는 두 사람은 ‘같은 숨결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한솥밥을 먹는 두 사람은 차츰 비슷한 얼굴이나 몸이 되고, 시나브로 비슷한 넋이나 얼이 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다른 고장에서 자랐고, 서로 다른 집안에서 자랐으며, 서로 다른 목숨을 받아들이며 살았어요. 짝을 지은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남남으로 살았지요. 그런데, 남남이던 두 사람은 한솥밥을 먹는 ‘한솥지기’가 되고 나서 여러모로 닮습니다. 한솥지기 삶으로 나아가면서 말씨와 마음씨가 모두 닮습니다.


  밥 한 그릇이 남남을 ‘우리’로 바꿉니다.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서로’ 아끼는 동무이자 곁님이 됩니다. 남남이던 두 사람이 낳은 아이는 두 사람한테서 피를 물려받아 새롭게 깨어나는 숨결로 자랍니다.



- ‘커다란 미래는 네가 바라는 대로, 작은 미래는 같이 말하고 같이 만든다. 원하는 건, 이런 일상을 쌓아 나가는 것.’ (167쪽)

- “지금 얘길 들으면 아빠는 또 울걸. 초조해 하지 말고 노력하렴. 리이나의 인생은 지금 막 시작됐으니까.” (175쪽)



  나는 바람을 먹습니다. 지구별에서 흐르는 바람을 먹습니다. 나는 해님을 먹습니다. 지구별을 비추는 햇빛과 햇볕과 햇살을 먹습니다. 나는 빗물을 먹습니다. 풀과 나무가 빨아들인 빗물을 풀열매와 나무열매를 거쳐서 먹습니다.


  내가 마시는 바람은 곁님과 우리 아이들이 마시는 바람입니다. 내가 먹는 해님은 곁님과 우리 아이들이 먹는 해님입니다. 함께 이곳에서 살며 함께 이곳에서 빙그레 웃는 밥입니다. 함께 이곳에서 노래하며 함께 이곳에서 재잘재잘 노래하는 잔치입니다.


  내 몸을 이루는 밥 한 그릇은, 곁님과 우리 아이들 몸을 이루는 밥 한 그릇입니다. 날마다 무엇을 보고, 누구와 이웃이 되며, 어떤 바람을 쐬는지 헤아립니다. 어떤 하늘을 등에 이고, 어떤 별빛을 등에 지는지 생각합니다. 우리 보금자리를 둘러싼 풀숲과 나무를 돌아봅니다. 사랑이 피어나도록 이끄는 밥을 그립니다. 4347.12.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조 액추얼리
코다마 유키 지음, 천강원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31



나한테 찾아온 새 한 마리

― 백조 액추얼리

 코다마 유키 글·그림

 천강원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08.12.20.



  봄과 여름에는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제비집이 복닥복닥합니다. 새끼 제비와 어미 제비는 날마다 싱그럽게 노래를 베풉니다. 가을이 깊으면 빈 제비집에 참새와 딱새가 찾아와서 깃듭니다. 참새와 딱새는 제비처럼 복닥복닥 부산스러우면서 싱그러운 노래를 베풀지 않지만, 아침저녁으로 포드득 날아오르는 날갯짓을 보여줍니다.


  우리 집 처마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참새와 딱새는 때때로 동무들을 잔뜩 데려옵니다. 마당에, 마당에 있는 나무에, 마당 위쪽으로 드리우는 전깃줄에, 참새떼와 딱새떼가 잔뜩 내려앉아서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이런 노랫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 ‘눈이야 어렸을 때부터 워낙 많이 봐 와서 익숙하지만, 그래도 첫눈만큼은 특별한 기분이 든다. 눈이 내리는 순간, 뭔가 다른 세계가 시작될 것 같은.’ (18쪽)

- ‘왠지 헛것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정말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30쪽)



  우리 살림집이 시골이 아닌 도시에 있을 적에도 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도시 한복판이 아닌 골목동네에 살림집을 두었기에 온갖 새들이 집 둘레를 날아다녔으리라 생각하는데, 도시에서 새를 만날 적마다 ‘너희가 이곳에서 먹이를 찾을 만하니?’ 하고 묻는데, ‘우리는 이곳에 도시가 서기 앞서부터 이곳에서 살았어요.’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오늘 이곳에 아파트가 있을는지 모르나, 서른 해나 쉰 해 앞서는 아파트가 아니었고 아스팔트 찻길도 아니었습니다. 백 해나 이백 해 앞서는 서울도 부산도 인천도 대구도 모두 시골스러운 마을이었습니다. 새가 깃들 나무가 있고, 새가 쉬는 풀숲이 있으며, 새가 보금자리를 트는 숲정이가 있었어요.


  오늘 이곳에 우뚝 선 잿빛 건물만 생각하면서 새를 바라보면 새가 왜 도시를 안 떠난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이곳을 뒤덮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만 생각하면서 새를 마주하면 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 ‘대단한 거구나.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건.’ (65쪽)

- ‘이토록 아름다운 눈물을 목격하고만 나는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67쪽)

- “요즘 네 최신 작품들 잘 봤다. 충분히 예쁘고 팔릴 만한 것들이지만, 아직 뭔가가 부족하단 말이야. 기술이나 센스 문제가 아니라, 좀더 뭐랄까, 사람을 끌어당기는,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람에 대한 애정 같은 게 결여돼 있다는 소리지.” (92∼93쪽)



  코다마 유키 님이 빚은 만화책 《백조 액추얼리》(애니북스,2008)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羽衣ミシン”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나온 만화책입니다. “날개옷 고니”라는 이름인 셈인데, 참말 이 만화책을 읽으면,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날개옷을 입고 가끔 사람으로 바뀌어서 사람하고 만나는 고니” 이야기가 흐릅니다. 고니는 하늘을 훨훨 날면서 사랑스럽거나 살가운 보금자리를 찾아다닙니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시골자락이 고니한테 사랑스럽거나 살갑습니다. 포근하면서 맑은 시골마을이 고니한테 기쁘거나 반갑습니다.


  고니는 날개옷이 있기에 사람 모습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고니는 날개옷이 있기에 다시 고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국경도 재산도 학력도 뭣도 따지지 않고 홀가분하게 하늘을 가르는 고니는, 가끔 사람 사는 나라로 찾아들어 알콩달콩 따사로운 이야기꽃을 주고받습니다. 사람들은 날개옷을 입고 찾아온 고니를 마주하면서 ‘꿈’인지 ‘꿈이 아닌’지 헷갈리지만, 어느새 이러한 삶을 스스럼없이 맞아들입니다.





- ‘나 지금, 처음으로, 여자가 사랑스럽다고 느낀 것 같아. 가슴 깊은 곳이 찌릿찌릿하고 따뜻해.’ (124∼125쪽)

- “이건 산 게 아니라, 물려받은 거예요.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에요.” (133쪽)



  고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고니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마 우리 스스로 이러한 일을 닥쳐야 알 수 있을 테지만, 고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람도 고니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비와 사람 사이에서도, 사람과 고래 사이에서도, 고양이와 사람 사이에서도, 사람과 북극별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따사로운 사랑이 곱게 흐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따스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따스한 숨결로 서로 아끼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즐거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게 추는 춤사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 ‘지금부터가 관건이야. 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온힘을 다해 노력해야 해. 내 꿈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미와 씨의 것이기도 하니까.’ (137∼138쪽)

- ‘왜 이리 괴로운 걸까.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 (163쪽)



  나한테 찾아온 새 한 마리가 곱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오들오들 떨면서 깃을 부푸는 새가 앙증맞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쉴새없이 몸을 씻고 목을 축이는 조그마한 새가 귀엽습니다. 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새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나한테 새가 찾아오듯이 내가 새한테 찾아갑니다. 나한테 어여쁜 이웃이 찾아오듯이 내가 어여쁜 이웃한테 찾아갑니다. 우리는 다 함께 아름다운 이웃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이웃입니다. 나는 새들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활짝 웃습니다. 새는 내가 아이들과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환하게 웃습니다. 4347.12.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젤 알랭 2
카사이 스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27



삶을 찾으려면

― 지젤 알랭 2

 카사이 수이 글·그림

 우혜연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1.11.15.



  겨울 들길을 걷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차갑지만 한낮에는 포근한 바람과 볕을 쐬면서 걷습니다. 나는 이 겨울에도 들풀과 들꽃을 보고 싶습니다. 들길을 걷는 동안에도 논둑에 올망졸망 돋는 봄풀과 봄꽃을 봅니다. 겨울이 끝날 즈음 신나게 돋는 봄풀이요 봄꽃이지만, 남녘 바다와 가까운 시골에서는 이 겨울에도 봄풀과 봄꽃이 마치 겨울풀이나 겨울꽃이라도 되는 양 돋습니다.


  노란 유채꽃과 갓꽃을 봅니다. 유채잎은 푸른 빛깔이지만 갓잎은 검붉습니다. 코딱지나물꽃을 봅니다. 볕이 잘 드는 논둑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돋습니다. 고들빼기와 소리쟁이가 잎을 벌리고, 쑥도 천천히 오릅니다.


  겨울들은 마냥 허전하거나 쓸쓸하지 않습니다. 겨울에도 들은 푸른 빛이 곱습니다. 겨울에도 들에는 푸른 바람이 붑니다. 겨울 시골빛은 푸릇푸릇 상큼합니다. 이 차가운 바람에 지지 않으면서 씩씩합니다.



- “방에 없다면 외출한 게 아닐까요. 아침 일찍 일어나니까요. 새처럼.” (12쪽)

- “어머, 예뻐라. 이런 할머니한테는 아깝구나.” “그렇지 않아요. 크레펠 아주머니가 파멜라 씨를 위해 고른걸요.” (52쪽)

- “악기점이 없어서 좀 헤맸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왜 ‘아미릴리스’를 연주했지?” “피아노 위에 악보가 있었어요.” “저도 그 곡을 좋아하고, 정원에도 잔뜩 피어 있기에.” (65쪽)





  겨울 들길을 걷다가 고단한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 앉힙니다. 야무진 큰아이는 기운차게 걷습니다. 면소재지에 들러 볼일을 보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자전거를 몹니다.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자고, 큰아이는 찬바람을 먹으면서 당차게 샛자전거를 구릅니다. 나는 앞에서 자전거를 이끌면서 영차영차 기운을 냅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숨이 가쁘더라도 노래를 부르려 하면 노래가 나옵니다. 숨이 가쁘다면서 노래를 안 부르려 하면 노래가 안 나옵니다.


  노래는 늘 마음으로 불러요. 노래는 언제나 마음에서 우러나와요. 마음에 사랑이 흐를 적에 노래가 나옵니다. 마음에 심은 사랑이 자랄 적에 노래가 꽃을 피웁니다.


  커다란 집에서 살더라도 마음이 넉넉하지 않으면 노래가 나오지 않습니다. 돈이 많더라도 사랑이 따스하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학교를 오래 다니거나 책을 많이 읽더라도 마음이 곱지 않으면 노래를 알지 못합니다. 동무를 많이 사귀지만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노래를 나누지 못합니다.



- “지젤 양은 확실히 터무니없지만, 그래도 지젤 양 나름대로 많은 걸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어요.” (69쪽)

- “할 수 없지. 난 언니처럼 착한 애가 아니니까.” “지젤은 착한 아이야.” (88쪽)






  카사이 수이 님이 빚은 만화책 《지젤 알랭》(대원씨아이,2011) 둘째 권을 읽습니다. 《지젤 알랭》 둘째 권에서는 ‘지젤 알랭’이 왜 아버지 곁을 떠나서 혼자 ‘작은 아파트’ 관리인 노릇을 하면서 ‘사무소’까지 열어 새로운 일을 벌이는지 알려줍니다. 지젤 알랭이라는 아이는 꿈을 키우고 싶으나, 이 아이 아버지는 꿈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지젤 알랭이라는 아이는 즐겁게 노래하는 사랑을 키우고 싶지만, 이 아이 아버지는 즐겁게 노래하는 사랑은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젤 알랭은 나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어린 나이보다는 아직 생각을 키울 힘이 없습니다. 생각을 키울 힘이 아직 모자라기도 하지만, 둘레 사람하고 어떻게 마주하거나 맞서면서 스스로 삶을 가꾸어야 할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 아이가 아버지와 한집에서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몰래 마련한 다락방에 숨기’입니다. 아무 눈에도 뜨이고 싶지 않고,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겉치레를 하고 싶지 않으며,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지젤 알랭한테 마음을 툭 털어놓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 “‘아니에스, 넌 그렇게나 아름답고 현명한데 어째서 그런 삶을 사는 거지.’ 자유를 위해서야!” (97쪽)

- “어머 멋진 비밀기지네. 나한테 있지. 어머니께 받은 아파트가 있어. 시가지에 있는 작은 아파트야. 지금 집주인을 모집 중인데, 해 볼래? 지젤.” “어, 어?” “후후. 여기도 멋지지만, 좀 좁고 어둡잖니. 좀더 밝고 넓은 장소에 가려무나.” (110∼111쪽)





  커다란 도시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을이 띄엄띄엄 있고, 마을에서도 집이 몇 채 없는 시골에는 사람이 적습니다. 커다란 도시에는 사람이 많지만,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고, ‘아는 사람’ 가운데 마음을 열고 사귈 수 있는 사람을 손에 꼽기도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많지만, 서로 즐겁게 웃거나 노래할 만한 동무는 참으로 적은 도시입니다.


  시골은 도시처럼 사람이 북적대지 않지만, 이웃이나 동무로 사귈 만한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사람이 적습니다. 그러나 시골은 사람이 적어도 다른 님이 있습니다. 나무가 있고 풀이 있으며 꽃이 있습니다. 꽃집이 없어도 꽃이 가득합니다. 공원이나 수목원이 없어도 나무가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 집 마당’을 누릴 수 있고, 우리 집 마당에 나무를 심을 수 있으며, 여러 가지 들꽃과 들풀을 벗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는 온갖 멧새와 풀벌레와 개구리와 뱀이 찾아와서 함께 어우러집니다.



- “돌려줘. 네겐 어려운 일이니까.” “싫어. 착각했다고 해도 내가 수락했으니, 내 일이야!” (132쪽)

- “물론 기이의 일도 존경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일은 안 할래.” (214∼215쪽)





  어린 지젤 알랭은 삶을 찾고 싶습니다. 이제껏 날마다 살았지만, 아직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도 하고, 삶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는지 모르기도 합니다. 삶이 언제 어떻게 빛나는지 모르기도 하며, 삶을 어떻게 가꾸는지 모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젤 알랭은 온몸으로 사람들과 부대끼려고 합니다. 지젤 알랭은 스스로 삶을 찾고 싶어서 온갖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젤 알랭한테는 무엇이든 새로운 하루를 찾고 누리면서 언제나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을 짓고 싶습니다.


  그런데, 만화책 《지젤 알랭》이 아닌 한국 사회라면, 열두 살이든 열다섯 살이든 열여덟 살이든 학교에 얽매입니다. 학교에 얽매이는 어린이와 푸름이한테는 삶이 없습니다. 학교에 얽매이고 마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대학입시에 짓눌린 채 삶을 생각하지 못하고 찾지 못하며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리는 아이들이 어떤 길을 걷도록 이끌어야 할까요. 이녁은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내 삶을 어떻게 누리는가요.


  삶을 짓는 사람은 웃습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웃음을 퍼뜨립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웃음을 심어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늘 새롭게 이야기를 엮어서 이야기꽃잔치를 엽니다. 4347.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도 권리가 있어! 뚝딱뚝딱 인권 짓기 1
인권교육센터 ‘들’ 지음, 윤정주 그림 / 책읽는곰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내가 나한테 선물하는 이야기

― 뚝딱뚝딱 인권짓기

 인권운동사랑방 글

 윤정주 그림

 야간비행 펴냄, 2005.4.13

 (‘책읽는곰’에서 2011∼2012년에 두 권으로 다시 펴냈다)



  2005년에 《뚝딱뚝딱 인권짓기》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오고, 2011∼2012년에 《나도 권리가 있어!》와 《우리가 바꿀 수 있어!》로 나누어 다시 나온 이야기책은 초등학교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서 이 나라에서 가장 푸대접을 받거나 내동댕이쳐지기도 하거나 짓밟히기도 하는 ‘인권’을 다룹니다. 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고, 내 생각을 밝히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다루고, 깨끗하고 즐거운 곳에서 살고 싶은 꿈을 이야기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따로 없이 아름다운 삶을 이야기하고, 서로 어깨동무하는 삶을 이야기하며, 그늘진 곳이 없기를 바라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전쟁 아닌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들려주며, 위아래가 따로 없기를 바라는 목소리를 들려주고, 너와 내가 걷고 싶은 길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겨야 내가 산다’는 생각이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들어요.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학교도 상황은 마찬가지예요. 운동장이 없는 학교에서부터, 교실은 공부만을 위한 공간일 뿐, 아이들이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  (104∼105쪽)



  오늘날 한국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엄청나게 시달립니다. 집에서도 시달립니다. 동무끼리 어울려서 놀 만한 마당이나 빈터 하나 없습니다. 빈터나 마당이나 놀이터가 있어도 어울릴 동무가 없습니다. 학교와 집과 학원을 오가며 뼛골이 빠지게 공부만 해야 하고, 어쩌다 틈이 나서 놀고 싶어도 다른 동무를 못 만납니다. 내가 빈틈이 나도 다른 동무는 집·학교·학원이라는 굴레에 갇히니 그저 혼자만 남기 일쑤입니다. 논다고 하더라도 몸을 신나게 움직이면서 밝은 햇볕과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너른 터에서 놀지 못합니다. 갈 곳은 책상맡이요, 할 것은 컴퓨터놀이입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한테 공부는 무엇이고 학교는 무엇일까요. 놀 수 없는 아이들한테 꿈은 무엇이고 사회는 무엇일까요. 놀지 못하는 아이는 무엇을 배울까요. 놀이와 사귀지 못하는 아이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는 앞으로 어른이 되면 일만 해야 할까요. 아이나 어른이 즐길 만한 놀이는 무엇일까요.



..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윽박지르고 야단치는 어른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고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어른이에요. 공포심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아이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  (187쪽)



  시골이 사라지면서 도시가 커집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는 아주 드뭅니다. 거의 모두 도시에서 나고 자랍니다. 어쩌다가 시골 어버이를 만나 태어났어도 시골아이는 이내 도시로 떠납니다. 시골에서 자라더라도 시골스러운 기운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시골학교에서 시골을 가르치거나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골학교에서 시골일을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시골학교에서 아이들이 시골지기가 되도록 이끌거나 북돋우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을 모르지만, 도시에서도 도시내기를 시골아이로 가르치거나 키울 뜻이 없습니다.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도감을 아이한테 보여주면서 ‘자연’이나 ‘동식물’을 지식으로 가르치기는 하더라도, 아이와 어른 모두 손으로 흙을 만지거나 발로 흙을 디디면서 살도록 이끌지 않아요.


  고등학교는 대학입시와 취업으로 바쁩니다. 중학교는 대학입시와 취업을 잘 하도록 몰아붙입니다. 초등학교는 대학입시와 취업만 헤아리도록 다그칩니다. 어디에서나 참다운 배움이나 가르침은 없고, 어느 곳에서도 사랑이나 꿈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도 ‘인권’은 없습니다.



.. “… 이게 뭐야. 난 정말 동무들한테 필요한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고……, 동무들은 모두 도덕책에만 나오는 얘기만 하고…….” “동무들을 위해서 뽑은 대표라고 하면서 왜 모두 선생님들을 위한 일만 하는 걸까?” ..  (143∼145쪽)



  아이가 어떤 일을 잘못할 적에 매를 드는 어른은 ‘체벌’이나 ‘사랑의 매’라는 이름을 쓰지만, 낱낱이 들여다보면 이도 저도 아닌 ‘폭력’이라고 해야 옳다고 느낍니다. 어른은 윽박지르고 주먹을 휘두릅니다. 어른은 거친 말을 일삼고 무섭게 꾸짖습니다. 


  어른도 어떤 일을 잘못할 때가 있는데, 어른은 ‘체벌’도 ‘사랑의 매’도 받지 않습니다. 잘못한 어른을 아이가 윽박지르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일은 없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는 어른한테서 ‘폭력’을 물려받습니다. 어른이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몸짓은 오로지 폭력이기에, ‘어른으로 자라는 아이’는 동무나 이웃한테 쉽게 폭력을 저지릅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사귀는 삶이 아니라, 폭력으로 서로 윽박지르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짓을 하고 맙니다.


  입시지옥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입시지옥을 없앤다면, 온갖 차별과 계급이 사라진다면, 우리 스스로 차별과 계급을 지울 수 있다면, 아이와 어른 모두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삶을 깊이 헤아리거나 배우는 대학교가 된다면, 취업이 잘되도록 들어가려는 대학교가 아니라 삶을 아름다이 가꾸는 슬기를 갈고닦는 대학교가 된다면, 이때에 비로소 아이는 마음껏 놀 수 있고 어른은 기쁘게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즐겁게 놀고 기쁘게 일하는 아이와 어른이 어우러지는 곳에서 인권이 튼튼히 뿌리를 내리리라 생각합니다.



.. 아이들에게 창피를 주는 행동이나 때리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세계 많은 나라들이 약속하고 있어요. 또한 아동복지법에서도 아이들을 때리거나 해를 끼친 어른에 대해서 법적으로 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를 소중하게 대해 주는 만큼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에요. 노래를 잘하는 것도 ‘나’고, 운동을 못하는 것도 ‘나’예요. 내가 나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할 때 다른 사람도 존중해 줄 수 있는 거예요 ..  (197쪽)



  만화책 《뚝딱뚝딱 인권짓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책이름 그대로 ‘인권을 짓자’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른들이 아이한테 지켜 주지 않는 인권을 어린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짓자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른들이 안 지켜 주는 인권을 어린이가 지킬 수 있을까요? 어른들이 가꾸거나 돌보지 않는 인권을 어린이 손으로 가꾸거나 돌볼 수 있을까요?


  네, 어른은 못 하거나 안 하더라도 아이는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은 눈길을 안 두더라도 어린이가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힘차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어린이는 곧 어른이 됩니다. 어릴 적부터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자라야, 어른이 될 적에 삶을 제대로 가꿉니다. 어린 나날부터 사랑을 따스히 품어야, 어른이 되고 나서 사랑을 따스히 나눕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입시공부만 한다면, 어른이 되고 나서 아무것도 못 바꿉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대학입시에 얽매인 나날이라면, 어른이 되고 나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채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이러한 법들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정말 그림 한 점이, 노래 한 곡이 나라를 위험하고 만들까요? 하지만 정말 위험한 건 사람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거예요. 표현의 자유가 없다면 다양한 목소리들은 당연히 사라지겠죠? 그리고 국가와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서 소리내어 얘기하지도 못할 거예요 ..  (44쪽)



  오늘 이곳에 인권이 없기 때문에 인권을 새로 짓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어른들은 인권을 지을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어린이가 스스로 인권을 새로 짓습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어른한테서 인권을 생각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찾기 어려우니까, 바로 어린이가 기운차게 일어나서 인권을 새로 짓습니다.


  내 목소리는 내가 냅니다. 우리 목소리는 우리가 냅니다. 내 권리는 내가 지킵니다. 우리 권리는 우리가 지킵니다. 내가 나를 지키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돕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을 스스로 가꾸면서 우리 이웃하고 살가이 어깨동무를 합니다.


  학교에 매이지 않기를 바라요. 꼭 학교에 가야 하지 않아요. 학교에 다니더라도 교과서 지식에만 파묻히지 말아요. 교과서에 없는 이웃과 동무를 생각해요. 놀이를 생각하고 놀이를 함께 해요. 놀이를 물려줄 언니 오빠가 없으면 내가 스스로 놀이를 지어요. 맨손으로 놀고, 공으로 놀며, 연필로 놀아요. 뛰고 달리면서 놀고, 뒹굴거나 구르면서 놀아요. 놀면서 노래하고 놀면서 웃어요. 놀면서 손을 잡고 놀면서 어깨를 겯어요.



.. 우리는 빠르고, 크고, 높은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제는 낮게, 그리고 느리게, 작은 걸음을 장애인 동무들과 함께 옮겨 봐요. 아마 우리가 빠르게 지나가서 못 들었던 바람의 소리를, 높이 있어서 지나쳤던 작은 꽃들의 움직임을 보게 될 거예요 ..  (90쪽)



  참다운 학교라 한다면 아이한테 지식을 차근차근 알려주면서 슬기를 기쁘게 익히도록 도와주는 곳이라고 느낍니다. 아이가 차근차근 배울 지식이란, 모든 아이가 똑같이 머릿속에 똑같은 크기와 줄거리로 집어넣어야 하는 교과서 시험문제가 아닙니다. 저마다 제 삶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이끌면서 제 삶을 스스로 가꾸도록 이끄는 이야기일 때에 참다운 지식입니다.


  학교교육은 달라져야 합니다. 집과 마을도 달라져야 합니다. 여느 어른과 어버이도 달라져야 합니다. 학교나 학원에 아이를 맡기는 삶이 아니라, 아이와 어른이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그리며 함께 사랑해야 합니다. 삶을 함께 짓고 놀이와 일을 함께 나누며 꿈으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숲을 가꾸어야 합니다.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흙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 불행하게도 우리는 실제 생활에서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거나 의견이 무시당한 적이 많이 있어요. 이럴 땐 어떤 기분이 드나요? 이런 말 외에도 자기 의견이 무시당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의견이 무시당하는 건 기분 나쁜 일이에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 자신과 관련된 일이에요. 어른들이 우리의 의견을 들어 보지도 않고 결정을 한다는 거예요 ..  (37쪽)



  내가 나한테 사랑을 선물합니다. 내가 나한테 꿈을 선물합니다. 내가 나한테 책을 선물합니다. 즐겁게 노는 아이는 즐거움과 놀이를 스스로 선물하는 셈입니다. 기쁘게 일하는 어른은 기쁨과 일을 스스로 선물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람된 권리란 무엇이겠습니까. 나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거룩한 목숨인지 깨달을 때에 내 둘레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도 아름다우면서 거룩한 목숨인지 깨닫습니다. 내가 나를 아낄 적에 내 둘레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을 아낍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 날마다 나한테 웃음과 노래를 선물한다면, 나는 내 둘레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한테 웃음과 노래를 선물합니다.


  인권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삶을 짓기를 바랍니다. 학교를 참답게 새로 짓고, 마을을 슬기롭게 새로 지으며,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새로 짓기를 바랍니다. 4338.5.4.물/4347.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수저 Silver Spoon 12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429



농업은 숲을 망가뜨린다

― 은수저 12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11.25.



  시골에서 흙을 가꾸는 사람은 흙을 살립니다. 왜냐하면 ‘가꾸기’를 하니까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 농업을 하는 사람은 흙을 죽입니다. 왜냐하면 ‘농업’을 하니까요.


  흙을 가꾸는 사람은 손수 삶을 지어서 일구는 사람입니다. 손수 삶을 지어서 일구니, 흙이 언제나 기름지게 살도록 돌봅니다. 농업을 하는 사람은 땅에서 거둔 곡식과 열매를 도시로 내다 파는 사람입니다. 농업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이 거두어서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하기에 흙을 괴롭힙니다. 비닐을 묻고 농약을 뿌리며 비료를 퍼붓지요.


  도시라는 곳이 나타나기 앞서 누구나 손수 흙을 가꾸었습니다. 도시라는 곳이 나타나면서 한쪽에서는 흙과 등지는 삶이 되고, 한쪽에서는 끝없이 흙을 파헤쳐서 곡식과 열매를 더 많이 끌어내는 삶이 됩니다.




- “자본도 없이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까 일단은 아버지한테서 돈을 빌려서.” “땅만 해도 일반인이 쉽게 살 수 있는 게 아니고.” “아니,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어. 미카게네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거지.” (7쪽)

- “부모님 얘기 같은 건 신경쓰지 마! 나도 비슷한 처지였지만 일이 힘든 건 익숙해지면 되고! 한 번 쓰러져 보면 자기 한계도 알 수 있고! 게다가, 처음부터 전문가가 어딨어?” (16쪽)



  흙을 가꿀 적에는 풀벌레와 개구리와 지렁이가 흙에 잔뜩 있습니다. 흙에서 곡식과 열매를 잔뜩 뽑아내려고 하면 풀벌레도 개구리도 지렁이도 살지 못합니다. 흙을 가꾸는 사람은 흙에 온갖 숨결이 깃들도록 합니다. 흙에서 곡식과 열매를 잔뜩 뽑아내려는 농업일 적에는 다른 숨결이 흙에 깃드는 일을 바라지 않습니다. 흙이 싱그럽게 살아날 적에는 멧새가 날마다 찾아와서 노래를 합니다. 흙이 죽은 곳에는 새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런 곳에는 기계 소리만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흙’을 생각하면서 ‘가꾸’려는 길은 새마을운동 때문에 모질게 짓밟혔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시골살이를 갈기갈기 찢으면서 시골내기가 도시로 떠나서 공장 일꾼이 되도록 몰아세웠습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야 한 시골내기는 공장에서 값싼 부속품 대접을 받으면서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에서 어른과 아이가 모두 어우러져서 들일을 하고 숲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가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시골에 늙은 사람만 남고 농기계만 춤추면서 어떤 노래도 이야기도 깃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새마을운동은 농약과 비료와 비닐과 농기계로 몰려들면서 논밭에 남새 말고는 어떠한 풀도 돋지 못하도록 다그칩니다. 모든 풀은 나물이나면서 약풀이지만, 모든 풀을 잡풀로 여겨 짓밟거나 태우거나 뽑아야 한다고 여기도록 길들입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풀을 잘 알고 다룰 줄 알았으나, 이제는 몇몇 ‘전문가’가 다른 돈벌이로 삼으면서 약풀을 잔뜩 기릅니다. 약풀이 약풀일 수 있던 까닭은 흙이 싱그러이 숨쉬면서 온갖 풀이 얼크러지기 때문이지만, 한 가지 남새나 풀만 잔뜩 심으니 이제는 약풀도 약풀다울 수 없습니다.




- “골치라니! 난 쉽게 맛난 돼지고기를 먹고 싶을 뿐인데!” “맛있는 걸 먹고 싶으면 그만한 수고는 해야죠!” “그냥 확 놓아 먹이면 어때?” “방목돼지! 그거 좋은데요!” (35쪽)

- “이상한 문장 없나?” “봐도 돼?” “…….” “같은 말이 지나치게 반복됨.” “글자 수를 조금이라도 늘려 보려고.” “우유에 물을 타서 출하하면?” “죽는 거죠. 네. 다시 쓸게요.” (51쪽)



  아라카와 히로무 님이 빚은 만화책 《은수저》(학산문화사,2014) 열두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은수저》에 나오는 안경잡이는 시골일이나 들일이나 짐승치기가 무엇인지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하나도 생각하지 않던 아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짧다면 짧을 두세 해 사이에 온몸으로 날마다 흙을 마주하고 짐승을 돌보면서 생각과 마음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손수 흙을 가꾸면서 눈을 뜹니다. 손수 풀을 만지면서 생각을 틔웁니다. 손수 짐승을 보살피면서 마음을 함께 보살핍니다.


  아마 시골로 와서 학교를 다니기 앞서까지는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 밥맛이 무엇인지 헤아린 적이 없을 테지요. 이제껏 남이 차려 준 밥만 받으면서 그냥 끼니를 때울 뿐이었을 테지요. 때로는 돈을 내고 가게에서 주전부리를 사먹으면서 노닥거릴 뿐이었을 테지요.


  가게에서 먹을거리를 돈을 주고 사서 집에서 끓이고 볶고 삶고 지져서 먹어도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을거리를 모두 손수 길러서 다시금 손수 끓이고 볶고 삶고 지져서 먹으면 어떤 맛을 낼까요. 내 몸을 살리는 가장 즐거운 맛은 무엇이고, 내 마음을 가꾸는 가장 빛나는 맛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 “이걸 주마. 해체해서 마음대로 써라.” “어. 이, 이걸 어떻게 부숴요? 소중한 마구간이잖아요.” “하지만 이제 말도 없고, 그냥 두면 어쩌겠어.” (93쪽)

- “돼지는 땅을 파길 좋아하잖아? 풀뿌리를 다 헤집어 버리기 때문에 넓은 땅을 몇 구역으로 나눠서 순환식으로 방목해야 해.” “정말이네. 잔디가 모두 들떠 있어.” “이 녀석들을 출하하면 이 구역은 한동안 휴식을 시켜 줘야 해. 다음엔 저쪽 언덕에서 방목하겠지.” “이렇게 땅이 넓어도 자연과 공생하긴 어렵군요.” “농업이 원래 그래. 자연에 없는 고밀도로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투입하는 사업이잖아. 본질이 자연 파괴지.” (156∼157쪽)



  농업은 숲을 망가뜨립니다. ‘산업’이기 때문에 숲을 망가뜨립니다. 사람한테만 도움이 된다는 일을 하려니, 숲 얼거리나 흐름을 일그러뜨릴밖에 없습니다. 요즈음처럼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살고 도시에서 안 벗어나는 때에는 사람들 스스로 못 깨달을 테지만, 싱그럽게 살아서 숨쉬는 흙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 폴폴 김이 납니다. 김이 나는 흙에서 풍기는 내음은 무척 구수합니다. 싱그럽게 살아서 숨쉬는 흙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싱그러운 흙은 보송보송합니다. 싱그러운 흙빛은 까무잡잡한 살빛과 같습니다.


  풀은 빈틈이 있는 아스팔트나 시멘트를 뚫고도 돋지만, 딱딱한 땅에서는 돋기 어렵습니다. 딱딱해진 땅에서는 이 땅을 부드럽게 풀어 줄 풀이 먼저 퍼집니다. 이를테면 비름이나 망초가 딱딱한 땅에서 우거집니다. 이러한 풀이 한두 해나 여러 해 나고 죽기를 되풀이하면서 딱딱한 땅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땅에는 차츰 다른 씨앗이 깃들어 더욱 보드랍게 흙기운을 바꾸어 줍니다. 보드라우면서 기름진 흙이 될 때에 비로소 사람이 먹을 만한 남새를 심어서 거둡니다.




- “난 있지, 어릴 때 저 산을 넘어가면 큰 도시가 있을 줄 알았다? 휘황찬란하고 놀이공원도 있고! 그래서 모아 놓은 용돈을 꼭 쥐고 혼자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적이 있어. 당연히 산 너머엔 산밖에 없어서 실망만 하고 집에 돌아와선 엄마한테 호되게 혼났지. 그래서 이번엔 이쪽 산에 올라갔다가, 또 산 너머 산이라서 실망하고, 그 다음엔 또 저쪽 산에.” (122∼123쪽)



  땅바닥이 딱딱하면 자동차가 다니기 좋습니다. 땅바닥이 딱딱한 곳에 건물을 세웁니다. 땅바닥이 딱딱한 곳에서는 풀이나 나무가 자라지 못합니다. 땅바닥이 딱딱한 곳이 늘면 늘수록 도시가 커진다는 뜻이요, 풀과 나무는 하나조차 없이 잿빛이 퍼진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잿빛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살아서 숨쉬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도 마실거리도 없지만, 푸른 바람도 없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죽는 목숨인 사람일 뿐 아니라, 아주 살짝이라도 바람을 안 마시면 그냥 죽는 사람입니다. 흙이 살아서 온갖 풀과 나무가 흐드러져야 살 수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온갖 풀과 나무가 푸른 바람을 내뿜어야 바야흐로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입니다.


  돈이 있으면 다른 나라에서 곡식이나 열매를 사들일 만하겠지요. 그러나 푸른 바람은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지 못합니다. 국가경쟁력을 내세워 무역과 경제개발을 하면 나라살림이 나아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 살림살이는 나아질 수 없습니다. 한입으로는 ‘국산’이 몸에 좋다고 하면서, 다른 한입으로는 자유무역협정이나 쌀개방 따위만 하는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도 몸이 튼튼할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유기농 곡식이나 열매만 먹으면 될까요? 맑은 물이 아니라 수돗물을 마시고, 맑은 바람이 아닌 매캐한 바람을 마시는데, 밥만 유기농이면 될까요? 만화책 《은수저》는 이러한 실타래를 슬기롭게 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맛난 밥 한 그릇’ 얻는 길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삶을 스스로 지으려는 푸름이’가 마음으로 품는 꿈을 즐겁게 보여줍니다. 도시에서는 찾지 못한 빛과 삶과 꿈을 시골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차근차근 가꾸는 어여쁜 땀방울을 알뜰히 보여줍니다. 4347.1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