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소년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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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46



이야기가 태어나는 곳을 돌아보며

― 모험소년

 아다치 미츠루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07.9.15.



  이야기가 태어나는 곳은 마음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 마음에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글로든 그림으로든 만화로든 사진으로든 노래로든 춤으로든 영화나 연극으로든, 모두 우리 마음이 어떠한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어느 이야기이든 사람들 마음인 터라, 더 나은 이야기나 덜떨어지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높은 이야기나 낮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어느 이야기는 따분하거나 지겨울 수 있고, 어느 이야기는 새롭거나 새삼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어느 이야기를 따분하게 느낄까요. 왜 어떤 사람은 어느 이야기를 새롭다고 느낄까요. 따분함과 새로움을 가르는 자리는 무엇일까요. 지겨움과 새삼스러움을 나누는 금은 어디일까요.



- ‘그래, 내가 바라면, 어떤 일이라도.’ (6쪽)

- “질리지도 않고 신나게 뛰어놀았지. 오락실 하나 없는 이런 산 속에서.” (35쪽)






  아다치 미츠루 님이 빚은 짧은만화를 담은 《모험소년》(대원씨아이,2007)을 진작에 읽었으나 책꽂이에 모신 채 여러 해 흐릅니다. 다른 작품을 읽을 적에도 느꼈는데, 앞으로 이분 만화책은 더 읽을 일이 없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스스로 한 걸음씩 앞으로 걷는 매무새가 아니라, 언제나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을 하는 매무새라면, 이분 만화책에 흐르는 이야기는 더 볼 만하지 않구나 싶기 때문입니다.


  이녁은 만화를 왜 그리고 싶을까요. 이녁은 만화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이녁은 만화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이녁은 만화로 어떤 마음을 가꾸는 삶일까요. 만화책 《모험소년》을 읽으며 네 가지를 가만히 헤아리는데, 어느 한 가지도 또렷하게 안 잡힙니다. 청탁이 들어오니 그리고, 돈을 벌려고 그리고, 지면을 채우려고 그리고, 애독자가 있으니 그리고, 만화가라는 직업이니 그리고, 그저 그리고 그립니다.


  무엇이 모험이고, 무엇이 삶일까요. 무엇이 사랑이며, 무엇이 사람일까요.


  만화를 그리는 햇수가 늘어 붓질은 익숙하거나 매끄럽습니다. 그러나, 만화를 그리는 햇수만큼 삶을 지은 햇수가 모여서 이야기를 빚는 숨결이 환하게 드러나지는 않는구나 싶습니다.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아다치 미츠루 이름으로 책이 하나 새로 나왔으니까 장만해서 볼 만하다’일 뿐입니다.





- “언제였더라, 다이고가 도쿄에 왔을 때, 바빴다는 핑계로 바람맞힌 적이 있어.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인데도, 녀석은 정말로 아쉬워하며 돌아갔지.” “우린 커져 버린 몸과 함께, 쓸데없는 것까지 키워 버린 모양이군.” (56쪽)

- ‘싸움은 어린애나 하는 짓이다.’ (73쪽)



  훌륭한 만화나 재미난 만화는 따로 없습니다. 놀라운 만화도 신나는 만화는 따로 없습니다. 이야깃감을 무엇으로 삼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야기에 담는 삶을 스스로 짓고 가꾸어서 들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이야기로 펼칠 사랑을 사람들 사이에서 곱게 갈무리할 수 있으면 됩니다.




- “얘, 꼬마야. 아빠가 오카무라 부동산 사장님 맞지?” “응. 아저씨는 누구야?” “으음, 이 아저씨는 말이지, 몸값을 노린 유괴범이란다.” (118∼119쪽)

- “아까 몸값이 500만 엔이라며?” “200만 엔은 내가 여기저기서 마련했어. 저런 인간에게는 최소한의 힘만 빌리고 싶었거든.” “어째서, 그런 남자랑?” “그때, 나이도 서른이 훌쩍 넘었고, 왕자님을 기다리다 지쳐서 반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어.” (129쪽)



  첫마음이 있다면 첫마음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마음이 없다면 이제라도 아직 늦지 않으니 첫마음을 짓기를 바랍니다. 만화를 왜 그리고, 만화를 그려서 누구하고 볼 마음이며, 만화로 이루려는 꿈은 무엇인지 언제나 밝힐 수 있어야 비로소 ‘만화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작품을 들여다보든 이러한 이야기가 싱그러운 바람처럼 푸르게 흐를 때에 비로소 ‘만화책’이라고 생각합니다. 4348.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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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8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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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다카스기> 8권은 엉터리 편집 때문에 점수를 낮게 줄 수밖에 없다. 참으로 어이없다 ......


..


만화책 즐겨읽기 445



살림꾼과 살림꾼 아닌 사람

―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 8

 야나하라 노조미 글·그림

 채다인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4.12.25.



  야나하라 노조미 님이 빚은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AK커뮤니케이션즈,2014) 여덟째 권을 읽는데, 곳곳에 일본말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다가,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이러한 엮음새이다 보니, 이는 참 얄궂구나 싶어요. 아무래도 금이나 줄이나 톤 자리에 온통 ‘일본말로 느낌말이나 소리말’로 적은 만화책이라 도무지 손을 쓸 수 없구나 싶어서 그대로 둔 듯한데, 이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번역을 안 해야 마땅한 노릇입니다. 아니면 ‘한일대역’으로 읽으라는 뜻일까요?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은 글(대사)이 많아서 말풍선에 글이 깨알처럼 들어가는데, ‘한국말로 느낌말이나 소리말’을 적은 옆에 일본말이 고스란히 나오니, 책이 몹시 어수선합니다. 다른 만화책은 어쩌다가 한두 칸에 이런 잘못이 드러난다지만, 통째로 이렇게 한다면, 책을 읽는 사람(독자)을 바보로 아는 꼴이 됩니다.



- “맛있죠? 치킨 갈릭 소테예요.” “연락 받고 나서 만드신 건가요?” “금방 만들어요. 재워 두는 것이 포인트예요. 그런 의미에서는 시간이 걸리지만요.” (15∼16쪽)

- “시간이란 건 위대하죠. 음식도 맛있게 해 주고요. 멈춰버려 막히는 건 곤란하지만, 흐르는 시간은 많은 걸 씻겨 주니까요. 일그러짐이나 비뚤어진 마음을 흘려보내고, 진실한 마음만 남는 거죠.” (19∼20쪽)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에 나오는 쿠루리는 수학여행을 가는 날, ‘수학여행 가방 챙기기’보다 ‘수학여행을 가서 쿠루리가 집을 비우는 동안, 집에 남은 사람이 할 일 적기’에 마음을 쏟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쿠루리는 어엿한 살림꾼입니다. 아니, 쿠루리와 함께 사는 하루미가 서툴거나 어설픈 아저씨라고 할 만합니다. 미덥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쪽글을 남길 테니까요. 그러나, 미덥지 못한 한편 믿음직하기에 쪽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살림꾼이 못 되는 하루미이지만, 쪽글에 적은 대로 알뜰히 해낼 수 있으리라 믿으니 쪽글을 남기지요.



- “쿠루리(久留里)라는 이름은, 오랫동안(久) 마을(里)에 머무른다(留)고, 계속 있고 싶은 곳, 고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엄마가 지어 준 거야.” (41쪽)

- “먹는 것에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니 반대로 다른 사람보다 건강한 편이에요.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이랑 딱 맞는달까요? 편의점 신상품도 계절한정 과자와도 인연이 없는 생활을 하면 타인의 언동에 좌우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되죠.” (75쪽)





  살림을 잘 하기에 살림꾼입니다. 살림을 잘 못하기에 살림꾼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살림꾼일까요? 살림꾼은 누가 될까요? 처음부터 살림꾼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살림꾼이 안 될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살림에 마음을 기울여서 요모조모 살피고 다스리는 사람이 살림꾼입니다. 살림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 이것도 저것도 살피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안 살림꾼’입니다.


  누구나 저마다 마음을 기울이는 일을 잘 합니다. 누구나 저마다 마음을 안 기울이는 일을 제대로 못합니다. 글쓰기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글을 잘 쓰고, 사진찍기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사진을 잘 찍습니다. 회사일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회사일을 잘 할 테고, 장사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장사를 잘 합니다. 텃밭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텃밭을 잘 가꾸고, 바느질에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바느질을 잘 해요.





- “그럼 이건 다른 분들이랑 나눠 먹어도 되죠?” “응.” “웬일로 귀여운 봉투에 담았네.” (122쪽)

- ‘쿠루리 손은 아직 이렇게 작잖니. 그러니까 아직 못하는 게 당연해. 괜찮아. 엄마만큼 커지면 뭐든지 할 수 있단다.’ (130쪽)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날마다 밥을 차려서 먹습니다. 내가 밥을 차리든 누군가 밥을 차려야 날마다 밥을 먹습니다. 날마다 밥을 차리는 사람은 밥 한 그릇에 사랑과 즐거움을 담을 수 있지만, 날마다 지겹거나 따분하다는 생각을 밥 한 그릇에 담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일터에 가는 사람은 날마다 즐거움과 사랑을 담아서 바깥일을 할 수 있지만, 날마다 지겹거나 따분하다는 생각으로 바깥일을 겨우겨우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어느 길에 서든 똑같습니다. 어느 길에 서든 마음을 기울이는 모습입니다. 마음을 즐거운 숨결로 다스리는 사람은 즐거운 숨결이 피어나는 하루가 됩니다. 마음을 지겨운 투정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지겨운 투정이 퍼지는 하루가 됩니다.


  처음부터 살림꾼인 사람은 없고, 처음부터 살림을 못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평화로운 지구별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전쟁무기가 가득하던 지구별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기울이는 데에 따라,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과 나라와 지구별이 모두 달라집니다.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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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알랭 3
카사이 스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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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43



함께 마음을 나누려면

― 지젤 알랭 3

 카사이 수이 글·그림

 우혜연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2.11.15.



  이틀 동안 꼼짝없이 앓느라 집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날마다 바지런히 찍던 아이들 사진을 거의 못 찍습니다. 그렇지만, 자리에 드러누워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두 아이가 마당을 가로지르고 뒤꼍을 오르내리면서 온몸에 땀이 나도록 뛰노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자리에 드러누워서 가만히 그림을 그립니다. 두 아이가 어떤 얼굴로 어떤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놀이를 할는지 그림을 그립니다. 여느 때와 달리 드러누워 끙끙 앓는 어버이가 있어도, 두 아이가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노는 하루는 참으로 예쁘면서 사랑스럽습니다.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도 하지만, 시골자락에 자리를 잡은 우리 집도 차근차근 터를 닦습니다. 처음에는 온갖 풀이 우거진 뒤꼍이었지만, 이제 차근차근 우리 식구 발길이 닿으면서 우리 땅으로 거듭납니다. 우리가 심은 나무가 제법 자라고, 우리 식구와 함께 크는 여러 나무도 해마다 그늘이 우거집니다.





- “그렇게 바로 늘어날 리 없잖아요! 성격이 왜 그렇게 급해요?” “윽.” “미안하구나, 지젤. 몸이 무거워지는 바람에 저런 무서운 사람이랑 일을 하게 해서.” (11쪽)

-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있는데, 크레이프에 쓸 수 있는 건 정말 조금밖에 없구나.’ (14쪽)



  아침저녁으로 나무를 돌아보면서 말을 겁니다. 낮에는 해와 인사를 하고 밤에는 별과 인사를 나눕니다. 나무는 우리한테 푸른 바람을 나누어 줄 뿐 아니라, 바람이 부는 날마다 촤르르촤르르 일렁이는 노래를 베풉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노래요, 시골에서는 언제나 기쁘게 마주하는 춤사위입니다.


  나무는 우리 손길을 얼마나 반길까요? 나무는 우리 손길을 얼마나 기다릴까요? 나뭇줄기에 볼을 가만히 대고 부비면 무척 부드럽습니다. 나뭇잎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 무척 향긋합니다. 꽃망울을 살살 어루만지면 아기 살갗처럼 매끈하면서 보들보들합니다. 이 나무가 있으니 삶터가 푸릅니다. 나무 곁에서 사람이 사랑을 나누기에 삶자리가 아름답습니다. 서로 마음으로 함께 살고,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바람과 햇볕을 함께 맞아들입니다.





- “여보. 겨우 찾아온 손님이에요. 크레이프도 둘이서 열심히 생각한 메뉴잖아요.” (31쪽)

- “소, 소중히 다뤄 주세요!” “응? 소중한 책이야?” “매우.” “알았어.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할게.” (47쪽)

-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소중히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언젠가 전부 잃어버리게 돼!” (49쪽)



  카사이 수이 님이 그린 만화책 《지젤 알랭》(대원씨아이,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지젤 알랭》 셋째 권에서 ‘에릭’은 지젤 알랭이 돌보는 집에서 나와 대필작가 노릇을 합니다. 지젤 알랭은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만능해결사’ 일을 합니다. 지젤 알랭이 모든 일을 술술 풀 수 있기에 하는 ‘만능해결사’라기보다는, 지젤 알랭 스스로 온갖 일을 찬찬히 겪거나 부딪히면서 삶을 사랑하고 싶어서 하는 ‘만능해결사’입니다.


  새로운 크레이프를 빚도록 이끈다든지,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꿈꾸게 한다든지, 살가운 동무한테 기운을 불어넣는다든지, 지젤 알랭은 이웃과 동무 곁에서 따순 눈길로 바라보고 고운 손길을 내밉니다.




- “나도 에릭을 좋아해. 에릭은 나의 첫 친구니까. 떨어져 있어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73쪽)

- “사람 얘기를 들어요! 어째서 자기 일을 하지 않으려는 거죠? 사람들이 당신을 필요로 하는데!” “너랑 무슨 상관인데? 뱃사람이냐?” “전 만능해결사예요. 만능해결사인 지젤 알랭.” (171쪽)



  함께 마음을 나누려면 함께 살아야 합니다. 같은 집에 깃들 때에 함께 산다고 할 수도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더라도 늘 그리고 생각할 때에 함께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얼굴을 보면서 함께 살 수 있으며, 마음으로 떠올리고 그리면서 사랑하면서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늘 얼굴을 마주하지만 서로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함께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주 얼굴을 마주할 뿐 아니라 말도 오래 섞는다지만 서로 따사로운 마음이 흐르지 않는다면, 함께 산다고 할 수 없어요.




- “그러고 보니 주인 아가씨의 용건은?” “도서관이었지만, 뭐, 다음에 가면 돼요!” (207쪽)



  재미난 책을 읽거나 신나는 영화를 보아야 함께 웃지 않습니다. 대단한 노래를 듣거나 놀라운 노래잔치를 보아야 함께 춤추지 않습니다. 작고 수수한 놀이 한 가지로도 웃습니다. 투박하고 조그마한 들꽃 한 송이로도 노래하고 춤춥니다.


  삶은 사랑을 바탕으로 삼아서 흐릅니다. 하루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엮으면서 새로 찾아옵니다. 삶은 사랑을 가꾸려는 뜻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루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면서 환하게 피어납니다.


  내가 너한테 사랑을 주기에 네가 나한테 사랑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너한테 믿음을 베풀기에 네가 나한테 믿음을 베풀지 않습니다. 나무를 함께 바라보아요.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고, 숲길을 함께 걸어요. 이 땅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이 보금자리를 씩씩하게 차근차근 함께 일구어요. 4347.12.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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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마을 고양이마을 1
카나코 나나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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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42



이 겨울에 고양이는

― 항구마을 고양이마을 1

 나나마키 카나코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2.3.15.



  옛날에는 집마다 아궁이가 있고 대청마루가 있습니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집이 따스합니다. 불기운은 집을 덥힐 뿐 아니라, 대청마루 아래쪽도 포근하게 감쌉니다. 비나 바람을 그을 수 있는 대청마루 아래쪽에서 벽과 맞닿은 자리는 따스하면서 아늑한 자리라 할 만합니다. 옛날에는 따로 개집을 만들지 않아도 개가 대청마루 밑에서 지냅니다. 집에 개를 두지 않으면 마을고양이가 슬금슬금 찾아와서 대청마루 밑에서 지냅니다. 때로는 굴뚝 둘레에서 지내고, 나무를 쌓은 곳에서 잠자리를 찾지요.



- “괜찮아. 겁먹을 거 없어. 사람들 시선보다 고양이 시선이 편해서 온 것뿐이니까.” (9쪽)

- “난 꿈을 이루었는데 이게 진짜 내가 바라던 삶이었을까?” (14쪽)

- “고마워, 위로해 줘서.” “위로? 그런가? 근데 나도 따뜻한 게 좋아.” (15쪽)





  오늘날 도시에서는 고양이가 깃들 만한 데가 없다시피 합니다. 골목집이라면 보일러가 있는 헛간 둘레에서 잠을 잔다지만, 아파트만 있는 곳에서는 어느 곳에도 깃들이기 어렵습니다. 높다란 건물만 가득한 시내 한복판에서도 고양이가 쉴 곳이 없습니다.


  골목동네는 살림이 가난한 사람이 모이는 동네라고도 하지만, 들고양이가 동네고양이나 골목고양이가 되어 함께 지낼 만한 동네이기도 합니다. 사람과 고양이에다가 참새와 박새와 직박구리도 쉴 자리를 얻거나 먹이를 얻을 만한 삶자리이기도 합니다.



- “난 이제 어떡하면 좋아? 넌 아니?” “글쎄? 나도 마녀와 살아 본 적이 없어서. 하지만 어쨌든 넌 무척 외로워 보이니까 내가 여기 있어 줄게.” (36쪽)

- ‘딱 한 번이었대.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칸나는 마음에도 없는 방법으로 빵을 구한 거야.’ (63쪽)





  우리 집에 깃드는 마을고양이가 꽤 많습니다. 어미 고양이도 새끼 고양이도 우리 집 이곳저곳에서 잠을 잡니다.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는 여름 내내 제비가 살지만,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참새와 딱새가 깃듭니다. 참으로 조그마한 시골집이지만, 이 시골집을 둘러싸고 여러 목숨이 옹기종기 모여서 지냅니다.


  볕이 좋은 어느 날에는 마을고양이가 섬돌에 앉아서 꾸벅꾸벅 잡니다. 마당으로 나가다가 그만 고양이를 밟을 뻔하기 일쑤입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 마을고양이를 낳은 어미와 그 어미와 그 어미와 그 어미를 찬찬히 헤아리면 아주 먼 옛날부터 이 마을에서 살았을 수 있습니다. 먹이가 있고 보금자리로 삼을 만한 터가 된다 싶어서 우리 집에 머물 수 있지만, 참말 먼 옛날부터 이곳이 저희 고향일 수 있어요.


  지난해에도 그렇고 지지난해에도 그렇고 올해에도 그렇지만, 마을고양이가 하루 내내 우리 집에서 얼쩡거리니, 들쥐나 생쥐가 천장을 기어다니는 소리는 뚝 끊어집니다. 마을에서 쥐를 구경하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개구리나 뱀도 고양이 냄새를 맡고 쉽사리 가까이에 안 올는지 모릅니다.



- “잠깐만. 왜 내가 당신한테 내 노래에 대한 비판을 들어야 하지? 돈을 받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옛날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젠 노래 같은 거 안 불러. 목소리도 안 나오고, 지금은 그저 볼품없는 호텔의 오너일 뿐.” (95쪽)

- “쥐떼는 도망 나온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지.” (112쪽)





  나나마키 카나코 님이 빚은 만화책 《항구마을 고양이마을》(대원씨아이,2012) 첫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고양이는 ‘가시내’한테만 달라붙습니다. 항구마을에서 사는 고양이는 꼭 한 사람만 골라서 이 사람이 숨을 거두는 날까지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하루를 누립니다. 이 사람이 숨을 거두면 다시 새로운 ‘사람 짝’을 찾아서 기다립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로는 고양이가 사람보다 짧게 살다 죽습니다만, 이 만화책에 나오는 고양이한테는 ‘아홉 목숨’이 있습니다. 무척 오랫동안 ‘사람이 살아가는 흐름’을 지켜봅니다. 사람이 가꾸는 문화를 들여다보고, 사람이 어우러지는 마을을 바라봅니다.


  고양이가 바라보기에 사람은 어떠한 목숨이라 할 만할까요. 전쟁을 일으키거나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저마다 어떻게 보일까요. 집을 짓거나 글을 쓰거나 밥을 짓는 사람은 저마다 어떻게 보일까요.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낚거나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저마다 어떻게 보일까요. 양복을 차려입거나 수수한 옷차림으로 지내거나 겉멋을 뽐내거나 마음을 착하게 가꾸는 사람은 저마다 어떻게 보일까요.



- “‘굴뚝청소부’를 만지면 그날 하루는 행복해진다는 게 진짜예요?” “그래, 맞아. 왜냐하면 ‘굴뚝청소부’는 마을에서 하늘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니까.” (123∼124쪽)

- “앞으로도 계속 꽃을 가꿀 거예요. 내년에도 또 내후년에도 또 행복이 찾아올 수 있게.” (186쪽)



  겨울바람은 차갑고, 차가운 겨울바람은 사람한테나 고양이한테나 똑같이 차갑습니다. 이 겨울에 고양이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주는 사람이 있을 테고, 이 겨울에 ‘사람 이웃’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은 어떠한 모습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노래하고 꿈꾸는 길은 어떠한 모습으로 빛날까 헤아려 봅니다. 마음에 따사로운 사랑을 씨앗으로 심는 사람은 고양이하고 말을 섞습니다. 마음에 맑은 이야기를 품는 사람은 고양이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양이하고 말을 섞는 사람이라면 나무하고도 말을 섞을 테지요. 고양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라면 들꽃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테지요. 나무와 들꽃하고도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라면, 이웃하고 즐거이 어깨동무할 수 있을 테지요. 4347.12.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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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맨션 3 토성 맨션 3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박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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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41



해를 먹는 사람과 나무

― 토성 맨션 3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박지선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2.10.8.



  해는 언제나 내리쬡니다. 다만, 지구별은 해를 따라 천천히 돌기 때문에 하루 내내 해가 비추지는 않습니다. 지구별 어느 곳이든 낮과 밤이 있어서, 낮 동안에는 해가 비추고 밤 사이에는 해가 저뭅니다. 낮에는 햇볕을 쬐고 햇빛을 받으면서 움직이고, 밤에는 달빛과 별빛을 고루 헤아리면서 느긋하게 몸을 쉽니다.


  사람이든 풀이든 벌레이든 새이든 모두 낮에 일어나서 움직입니다. 해질 무렵 살며시 봉오리를 벌리는 꽃이 더러 있으나, 저녁이 되어 봉오리를 벌리더라도 낮에 잎사귀로 햇볕을 받아들여야 기운을 얻습니다. 사람은 지하상가를 만들고 높다란 건물을 지어서, 한낮에 일한다 하더라도 햇볕 한 조각조차 없이 지내기도 하는데, 아무리 햇볕이 없이 일한다 하더라도 햇볕이 머금은 밥을 먹으면서 새롭게 기운을 얻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살갗으로도 햇볕을 안 쬘 뿐 아니라, 밥으로도 햇볕을 못 쬔 먹을거리를 먹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닭공장에서 자란 닭은 햇볕이 아닌 등불을 쬐며 자랍니다. 쌀은 맨땅에서 햇볕을 먹으면서 자라지만, 쌀이 아닌 웬만한 푸성귀는 비닐집에서 농약과 비료와 수돗물을 먹으면서 자라요.



- “여기서 같이 살지 않을래?” “예?” “돈이라면 얼마든 줄 수 있는데.” (7쪽)

- “나랑 같이 살자. 정 안 되면 잠들 때 손이라도 잡아 줘. 손. 이상하지? 돈이라면 넘치도록 있고, 목적도 이룬 셈인데 기쁘지가 않으니. 이상해.” (13쪽)





  사람은 해를 먹기에 해처럼 환하게 웃습니다. 나무는 해를 먹기에 해처럼 포근한 품으로 숲을 이룹니다. 사람은 해를 먹기에 해처럼 맑게 노래합니다. 나무는 해를 먹기에 해처럼 너그럽게 푸른 숨결을 베풉니다.


  그러면, 해를 먹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지낼까요? 해를 등지면서 차디찬 교실에서 등불만 바라보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거쳐 회사원이나 공장 일꾼이 되는데 이곳에서도 해하고는 동떨어진 채 돈만 벌어야 하는 어른들은, 저마다 어떤 몸과 마음이 되어 지낼까요? 해를 모르면서 지내는데 해님처럼 웃거나 노래할 수 있을까요? 해를 먹지 않는데 해처럼 따뜻하거나 포근한 넋이나 얼이 될 수 있을까요? 해를 알지 못하는데 이웃한테 해처럼 사랑스러운 손길을 건넬 수 있을까요? 해를 사귀지 않았는데 짝꿍한테 슬기로운 눈빛으로 아름다운 꿈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 “진수성찬? 그런 건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먹는 거잖아? 오늘같이 아무 소득도 성과도 없는 쓰잘데기 없는 날에 그런 걸 먹으면 안 될 텐데 왜 하필 그런.” “말이 많다! 가끔은 좋잖아, 이런 날도!” (34쪽)

- “누군 곱빼기 식단을 짜고 싶어 안달 날 지경인데 먹어 주지도 않고. 복수로다가 식사 명단에서 빼 버릴까 보다.” (54쪽)



  이와오카 히사에 님이 빚은 만화책 《토성 맨션》(세미콜론,2012) 셋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햇빛도 햇볕도 제대로 쬐지 못하는 자리에서 살며 말없이 ‘주어진 일’을 하는 신분이나 계급인 사람한테는 무엇이 보람이 될까 궁금합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만 ‘중간 계층’ 자리에 구경하듯이 올라가서 살그마니 햇볕과 햇빛을 처음 만나고는, 학교를 마치면 다시 아래 계층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또 위쪽 계층에 있다가 중간 계층에 살짝 머문 뒤 다시 위쪽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니, 우리 삶에서 위와 아래를 따질 수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사람들은 억지스레 위와 아래를 가르고, 신분과 계급을 나누는데, 어디가 어디한테 위가 될까요? 어디가 어디한테 아래가 될까요? 지구별에서 위쪽과 아래쪽이 있을까요? 남반구와 북반구로 가르기는 하는데, 참말 남반구는 아래이고 북반구는 위일까요? 우주에서 지구별을 바라볼 적에 어디가 위가 되거나 아래가 될까요? 별에 위와 아래가 있을 수 있을까요? 별에 왼쪽이나 오른쪽이 따로 있을까요?





- “검문에 대한 요청은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규정 상 다른 목적의 돈은 받을 수도 없고, 전 창문닦이로 온 거니까요. 그렇게 걱정이시면 직접 확인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상층 주민은 하층 출입 제한도 없지 않습니까.” (110쪽)

- “하층의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일입니다. 전 역시 창문 닦는 일이 좋아요.” (121쪽)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살랑입니다. 바람을 받은 나뭇가지는 바람결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데,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바람노래를 부릅니다. 햇볕을 머금는 나무는 따사로운 햇볕을 맞아들이면서 햇볕노래를 부릅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노래를 부르는 나무요, 구름이 가득한 날에는 구름노래를 부르는 나무입니다.


  우리들 사람도 철 따라 노래를 부르며 살았습니다. 우리들 사람도 날 따라 다른 노래를 부르던 숨결입니다. 민들레를 먹을 적에는 민들레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도라지를 먹을 적에는 도라지와 같은 노래를 불러요. 보리밥을 먹을 적에는 보리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옥수수를 먹을 적에는 옥수수와 같은 노래를 부르지요.


  능금알처럼 웃는 아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배꽃처럼 하얀 아이들이 믿음직합니다. 포도씨처럼 야무진 아이들이 수더분합니다. 감꽃처럼 싱그러운 아이들이 듬직합니다. 우리는 가슴에 꽃씨를 품고 자라는 예쁜 목숨입니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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