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2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채다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409


우리 집 겨울이웃
―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 2
 야나하라 노조미 글·그림
 채다인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1.7.25.


  가을이 무르익을 즈음 올해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손님을 기다립니다. 이제 올 때쯤 되었는데 왜 안 오는가 하고 날마다 빼꼼빼꼼 살펴봅니다. 늦가을에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은 누구인가 하면, 딱새입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딱새 두 마리가 우리 집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에 들어와서 지냈습니다. 딱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이 사는 집 가까이에서 살아요. 이 아이들은 처마 밑 제비집으로 거침없이 들어와서 지난해에 겨울나기를 했습니다. 딱새가 겨울나기를 마치고 제비집을 떠난 사월 첫무렵에 제비가 돌아왔는데, 제비는 저희가 지난해에 지낸 둥지가 여러모로 망가진 모습을 보고는 한참 망설이더니 여러 날 걸쳐서 집을 손질하더군요.


-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뭐든지 사 줄게.” “음, 요리용 젓가락.” “그거야 있어야 되는 거니까, 지금 사 줄게.” “저기, 뭐, 가지고 싶어?” (32쪽)
- “마루는 아직 아사코 씨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네. 아빠랑 결혼한 지 벌써 5년이잖아.” “호칭이 무슨 상관이야. 그렇지? 쿠루링?” “신경쓴다고. 하루치도 신경쓰고 있더라고.쿠우는 하루치 이름을 아직 한 번도 안 불러 줬다며?” (35쪽)





  그제까지만 해도 딱새가 밤에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잔다고 못 느꼈는데, 어제 아침에 비로소 딱새 두 마리를 아침에 만납니다. 동이 틀 무렵 마루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서니, 이때에 딱새 두 마리가 휑 하면서 제비 둥지에서 나옵니다. 옳거니, 이제 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제비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겨우내 둥지가 비니, 이동안 딱새가 빌려서 써도 되리라 생각해요. 게다가, 우리 집 제비들이 지은 둥지는 모두 석 채입니다. 우리 집 제비들은 저희가 지내지 않으면서도 다른 둥지까지 모두 손질합니다. 세 채 가운데 한 채에서만 지내면서 다른 두 채도 손질해요.

  나중에 보니, 새끼 제비가 무럭무럭 커서, 둥지에 새끼랑 어미가 함께 깃들기 좁다 싶을 때에 비로소 다른 둥지로 어미 둘이 옮겨서 지내더군요.


- ‘달콤한 식사. 달콤한 디저트. 무엇보다 쿠루리도 기뻐하는 것 같고. 겉모습이라든가, 이름이라든가, 그런 게 그렇게나 중요할까.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46쪽)
- “나는 그냥 주먹밥이 좋은데. 다카스기는?” “저기, 이왕 아사코 씨가 싸준 건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67쪽)
- “보라고. 구운 주먹밥도 맛있어. 맛있지? 이거. 역시 제대로 만들면 시간이 지나도 맛있다고.” (73쪽)





  지난해 이맘때를 돌이킵니다. 딱새 두 마리가 우리 집 처마에 깃들고 나서 한 달 즈음 뒤 참새 두 마리도 우리 집 처마에 깃들었습니다. 제비집이 석 채이니, 다른 새도 이곳에 깃들 수 있어요.

  내가 지은 새집이 아니지만,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새집이니 괜히 내가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이 작은 새들은 우리 집 처마에 깃들면서 아침저녁으로 노래를 베푸니 여러모로 즐겁습니다. 처마에서 노래하고, 빨랫줄과 전깃줄에서 노래하며, 마당에 선 후박나무와 초피나무에 앉아서 노래해요.

  우리 집은 시골마을 다른 집과 참 다르게, 풀을 그대로 둡니다. 그래서 늦가을과 한겨울에도 우리 집 풀잎을 갉아먹는 애벌레가 있습니다. 우리 집 마당과 뒤꼍은 작은 새한테 겨울 먹이 얻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바지런히 살피고 찬찬히 돌아보면 포근한 보금자리에다가 먹이를 함께 누릴 만하다고 할까요.


- ‘같이 산 지 벌써 1년. 작은, 내가 지켜 줘야 하는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보다 어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쿠루리가 와서 헤매는 일도 많았지만, 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걸 하게 되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걸 생각하게 됐다. 인간으로서 굉장히 풍요로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84쪽)
- “먹을 때 맛있게 먹기 위해서 미리 버터를 바른다. 그 버터를 균등하게 바르기 위해 미리 실온에 놔둔다. 요리에 중요한 게 뭔지 알겠니?” “미리 알고 준비하는 거?” “그렇지. 앞날을 내다보고 상상력을 움직이는 힘, 요리를 하는 사람은 그게 기본이지.” (91쪽)





  야나하라 노조미 님이 빚은 만화책 《다카스기 家의 도시락》(AK커뮤니케이션즈,2011) 둘째 권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만화책 이름에 ‘도시락’이 나오지만, 막상 이 만화책에서 도시락 이야기는 얼마 안 나옵니다. 어쩌면 ‘도시락’이라는 먹을거리를 사이에 놓고 ‘집에서 짓는 밥’과 ‘집에서 짓는 이야기’와 ‘집에서 짓는 사랑’을 들려주는 만화라고 할 만합니다.

  도시락이란 그렇거든요. 도시락은 집에서 짓는 밥일 뿐 아니라, 집에서 짓는 이야기가 흐르는 밥이요, 집에서 짓는 사랑이 깃드는 밥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른 도시락이기에, 집집마다 다 다른 손맛을 느끼는 도시락입니다. 집집마다 다 다른 아이와 어른이 일구는 사랑과 숨결이 도시락에 서립니다. 학교급식으로서는 이러한 이야기도 사랑도 숨결도 생각도 주고받을 수 없어요.


- ‘농촌을 조사하다 보면 죽순이나 산나물 같은 꼐절의 산물을 도시에 간 아이들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계절의 산물은 기쁘지만 짧다. 그들은 계절을 놓치지 앟는다. 그렇게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 나간다.’ (111쪽)
- “나츠키는 어떠려나?” “나츠키는 지금쯤 할머니가 만든 걸 먹겠지.” “이걸 먹어 보면 뭐가 더 맛있다고 할까?” (116쪽)



  나는 단체급식을 아주 안 좋아합니다. 아니, 아주 안 좋아한다기보다 ‘단체급식은 사람이 먹을 것’이 못 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단체급식은 ‘급식’일 뿐, ‘밥’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고픈 배를 채우는 ‘급식’이기는 하지만 ‘밥’이 아닌데다가 ‘단체’로 먹이는 것이에요. 다 다른 아이들한테 다 다른 목숨으로 스며드는 먹을거리가 아닙니다.

  단체급식을 하는 곳은 단체교육을 합니다. 이른바 ‘집단’이요 ‘집체’입니다. ‘질서’와 ‘계급’이 흐릅니다. 단체급식은 아이들한테 ‘다 다른 여러 생각’을 풀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 같은 생각’으로 붙들어 놓는 얼거리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아름답게 사랑할 숨결이니, 우리가 배고프다 할 적에도 ‘밥’을 먹을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 ‘어제 평소처럼 저녁밥을 같이 먹었다면, 오늘 아침 평소처럼 제대로 얼굴을 봐 줬다면, 당연한 것들은 사실 당연한 게 아니라고, 몇 번을 실패해야 알게 되는 걸까.’ (164∼165쪽)


  제비와 딱새와 참새는 다릅니다. 모두 조그마한 새요, 애벌레도 먹고 곡식도 먹을 수 있지만, 제비는 제비대로 좋아하는 먹이가 있고 딱새는 딱새대로 좋아하는 먹이가 있으며 참새는 참새대로 좋아하는 먹이가 있어요. 이 아이들은 저마다 제 삶을 스스로 짓습니다.

  우리 집 겨울이웃을 올해에도 반가이 맞이하면서 생각합니다. 겨우내 우리한테 ‘겨울노래’를 들려주니 고맙습니다. 봄과 여름에는 한창 제비 노래로 하루를 짓고, 겨울에는 한창 딱새 노래로 하루를 짓습니다. 수많은 곳 가운데 우리 집을 겨울집으로 삼은 이웃이 반갑고, 새 이웃이 나와 아이들과 곁님한테 베풀 이야기가 기쁩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키x츠바사 8
타카하시 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13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 유키×츠바사 8

 타카하시 신 글·그림

 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9.30.



  타카하시 신 님이 빚은 만화책 《유키×츠바사》(대원씨아이,2014) 여덟째 권을 읽습니다. 거친 사회에 시달리면서 아프고 슬픈 아이들이 나오는 《유키×츠바사》입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 만든 모습입니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 만든 모습입니다. 나쁘다 좋다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 세워서 그대로 이어가는 모습입니다.



- ‘옛날부터 줄곧 쭉 전하고 싶었던 말도, 잊어버리고 싶은 일도, 눈처럼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 (5쪽)

- ‘하찮은 우리에게 정신 팔리는 법조차 없이 우리의 한숨도, 모습도 요란한 소음 속에 너무도 쉽게 사라져서 돌아갈 곳 잃은 강아지처럼 나는 선배의 손을 잡고 계속 달렸다.’ (49쪽)




  아이는 어떤 목숨일까 생각합니다. 아이는 왜 태어났을까 돌아봅니다. 아이는 수험생이 되려는 목숨일까요, 아니면 아이는 입시준비생으로 살아야 할 목숨일까요. 아이는 입시지옥을 뚫고서 취업지옥도 가로질러야 할 목숨일까요.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생각합니다. 어른은 아이를 왜 낳았을까 돌아봅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입시지식을 알려주려고 낳았을까요, 아니면 어른은 아이가 대학생이 되기를 바라면서 낳았을까요. 어른은 아이를 예비 대학생이 되기를 바라면서 바라볼까요.


  만화책 《유키×츠바사》에 나오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는 몹쓸 짓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른한테 노리개가 되어야 합니다. 겉차림은 고등학생이지만, 알맹이는 ‘아이다움’을 건사하거나 지키기 어렵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떤 힘으로 사회에 맞서야 할까요. 이 아이들은 어떤 기운을 내어 사회에 부딪혀야 할까요. 이 아이들은 앞으로 자라 어른이 되면 이 사회에 그대로 녹아들어 다른 어른들이 저희한테 했듯이 새로운 아이들을 똑같이 길들이거나 짓누르면서 괴롭혀야 할까요.





- ‘그렇구나. 이게, 아픔과 억울함과 외로움과 함께, 괴롭힘 당하는 시간이면 언제나 고등학교 옥상에서 들려왔던 만신창이의 노래.’ (66∼67쪽)

- ‘물장사 하는 여자? 근데 저 사람 거의 우리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츠바사. 저 녀석 이런 데서 알바 하고 있나? 그래서 늘 학교에도 지각하고.’ (84∼85쪽)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아이는 할 것이 없습니다. 어른이 다 짠 사회에서 아이는 할 일이 없습니다. 어른이 다 이룩한 사회에서 아이는 할 놀이가 없습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담임이나 수업을 고르지 못합니다. 아이는 학원에 갈는지 말는지, 학원에 간다면 어떤 학원에 갈는지 고르지 못합니다. 아이는 제 삶을 고르지 못하고, 제 길을 고르지 못합니다. 오늘날 같은 제도권 사회에서 아이는 이곳에도 저곳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르지 못합니다. 아이는 책을 읽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르지 못합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시키는 대로 따릅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차리는 밥을 먹습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입히는 옷을 입습니다.


  아이는 어떤 목숨인가요. 아이는 어떤 숨결인가요.






- “다 알아! 보나마나 미성년자지? 난 경찰이니까 친하게 지내 두면, 상당히 이득일걸?” (106∼107쪽)

- ‘어느새 당연한 일처럼 아침이 돌아왔다. 눈 속에 파묻힌 안쪽 하구레 온천의 여명은 비록 산에 가려져 다소 늦지만, 아침햇살이 비추지 않는 날은 없다는 걸, 바보처럼 곧 중학교도 졸업하는 이제야 깨달았다.’ (136∼137쪽)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아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사랑’이 되려면, 이 사회는 없어져야 합니다. 어른이 만든 사회와 제도와 교육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에서 아이는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회와 제도와 교육과 문화와 정치와 경제를 걷어치워야 아이는 비로소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육도 복지도 아이를 낳지 못해요. 정치도 경제도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문화나 예술은 아이를 낳을까요? 아닙니다. 그 어느 것도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는 힘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만나서 사랑을 속삭일 때에 비로소 아이가 태어납니다.


  대통령이 아이를 낳아 주지 않습니다. 시장이나 군수나 국회의원이 아이를 낳아 주지 않습니다. 교사나 교수나 기자나 지식인이 아이를 낳아 주지 않습니다. 이 지구별을 아름답게 가꿀 아이들은, 여느 수수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으로 만나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속삭일 때에 태어납니다.






- “그렇게 현실 속의 난 집안이 정해 놓은 레일 위에서 살기로 결심했지만, 난, 좀더 속도감 있는 삶을 살고 싶어.” (175쪽)

- “매일 매일 정말 매일, 울면서 강해지고 싶다고 기도했지. 그래서 싸움 잘 하는 사람을 동경해.” (188∼189쪽)

- “싸움은 아무리 실력 차이가 나도 고통을 느낀다는 게 중요하거든. 누구나 얻어맞으면 아프고, 때린 사람도 훨씬 아프니까. 그 아픔을 서로 느끼는 거지. 그런 마음이 없으면 싸움은 아무 의미도 없어.” (214쪽)



  만화책 《유키×츠바사》에 나오는 아이들이 노래를 듣습니다. 사회가 지은 노래가 아닌, 아이들이 지은 노래를 듣고, 어른들이 만든 노래가 아닌 사랑으로 태어난 노래를 듣습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기쁘게 악기를 켜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웃으면서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악기를 들고 다니면서 신나게 노래를 나누고 싶습니다.


  가수가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노래가 아니라, 우리가 바로 오늘 이곳에서 불러서 함께 누리는 노래입니다.


  이제 ‘사회제도’는 멈출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정치와 경제와 교육 모두 그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삶을 바라보고 사랑을 키우는 꿈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실한 시간 1
세이케 유키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10



내 삶과 네 죽음

― 성실한 시간 1

 세이케 유키코 글·그림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8.30.



  난데없이 목숨을 잃으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잘못이 없이 목숨을 잃어 삶을 더 이을 수 없으면 어떤 마음이 될까 곱씹어 봅니다. 아직 꿈을 꾸지 못한 젊음을 어처구니없이 잃어야 한다면 어떤 마음일까 헤아려 봅니다.


  세이케 유키코 님이 빚은 만화책 《성실한 시간》(대원씨아이,2014) 첫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첫머리에, 갑작스레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고등학생이 나옵니다. 이 아이는 목숨을 잃을 까닭이 없습니다. 길을 가다가 그냥 차에 치입니다. 이 아이는 목숨을 잃을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해코지하거나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습니다. 갑작스레 몸을 잃은 넋은 하늘로 붕 떠올라 ‘넋이 깃들던 몸이 목숨을 잃고 난 뒤 일어나는 일’을 고스란히 지켜봅니다.



- “저 사람이 날 죽인 거잖아요. 근데 저 사람은 이미 죽어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죄 같은 건.” “뭐, 무죄겠지.” “그럼 그냥 단순하게 내가 더럽게 재수가 없었다. 그게 다네요?” (15쪽)

- “어휴. 의미를 모르겠네. 친구 장례식 날 노래방이니 게임이니, 정녕 이래도 되는 거야?” (31쪽)





  목숨을 잃어야 한 아이도 어처구니없지만, 아이를 잃은 어버이도 어처구니없습니다. 아이를 잃은 어버이뿐 아니라, 누나를 잃은 동생도, 동무를 잃은 동무도 어처구니없습니다. 다들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다들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몸에서 빠져나온 넋은 왜 하늘나라로 가지 않고 이 땅에 남아 ‘뒷일’을 지켜보아야 할까요. 몸에서 빠져나온 넋은 무엇이 아쉽거나 안타깝기에 이 땅에 남아 ‘다른 사람’을 멀거니 지켜보아야 할까요.



- “넌 외가도, 친가도 둘 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멀쩡히 살아 계시잖아. 니이가타에 계신 외삼촌도, 도쿄에 있는 고모도, 말하자면 엄마도 아빠도 같이 살던 부모형제를 잃어 본 경험이 없는 거야. 그런데 갑자기 자식을 잃은 거지.” (66∼67쪽)

- “너 뭐 하는 거니? 귀신 같은 짓 하지 마!” “그럼, 어떡해요. 열 받는걸.” “열 받긴 뭘 열 받아.” “열 받아요! 죽고 싶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죽고! 다들 잠깐 슬퍼하더니 벌써 잊어버리고 평범하게 잘만 살고!” (78∼79쪽)





  지구별 곳곳에서 전쟁이 터집니다. 갑작스레 죽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착하게 조용히 살던 마을에 갑자기 폭탄이 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총도 칼도 탱크도 비행기도 없는 외딴 마을에 탱크를 밀어붙여 수십 수백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는 짓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 아닌 한국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은 그저 티없이 태어나지만 입시지옥에 휘말립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제대로 뛰놀지도 못한 채 학원에 얽매이고 입시공부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는 수많은 다른 목숨, 이를테면 풀벌레나 숲짐승은 온갖 개발과 공사 때문에 끙끙 앓으며 삶터를 빼앗깁니다. 멧돼지와 고라니는 먹을것이 없어, 마을 밭에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멧새는 나무열매와 애벌레를 찾을 길이 없으니, 마을 밭에 심은 콩알을 죄 파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지저분한 물이나 매캐한 바람을 마시려고 이 나라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풀벌레와 숲짐승과 새는 사람한테서 미움을 받거나 난데없이 떼죽음으로 사라지도록 이 땅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체르노빌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이 죽었습니다. 후쿠시마에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슬프게 죽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지은 잿더미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 죽습니다.


  온갖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바로 사람입니다. 이웃을 종으로 부리며 괴롭힌 이도 바로 사람입니다.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을 저지르는 이도 바로 사람입니다. 내 삶이 대단하다면 내 이웃 삶도 대단할 텐데, 지구별 곳곳에서 아픈 일이 자꾸 불거집니다.




- “하지만 죽은 인간한테까지 이래라, 저래라. 아저씨가 결정할 권리나 있나요? 원령이 되면 되는 거지. 그거야 사람 맘이죠.” (84쪽)

- “원령이라는 건 이성을 잃고 원한을 사방에 뿌리고 다니는 존재야. 아프다 괴롭다 밉다 원망스럽다,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끝도 없이 계속 영혼이 배배 꼬이는 거지. 난 자신의 잘못으로 생전에 집사람을 고통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사후에도 그런 존재로 만들어 버린 거야.” (98쪽)



  전쟁무기가 아니라 호미와 낫과 삽을 만들면 지구별 어디에나 평화가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핵무기나 핵발전소를 만든다면서 지구별 여러 나라에서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돈을 쏟아붓는데, 작은 마을과 작은 살림집마다 에너지와 전기를 스스로 지어서 쓰도록 한다면, 얼마 안 되는 돈으로도 지구별에 평화를 이룰 만합니다.


  작은 마을과 작은 살림집마다 에너지와 전기를 손수 지어서 즐겁게 누릴 수 있다면, 우리들은 굳이 입시지옥이나 취업지옥에 휘둘리지 않아도 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지어서 누리면, 애써 도시로 가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경제개발이나 경제성장이 아닌, 삶짓기와 사랑짓기로 나아가면, 애먼 데에 돈을 안 쓸 뿐 아니라, 돈 때문에 터지는 사건·사고는 모조리 사라질 테며, 차별도 계급도 신분도 모두 자취를 감추리라 생각합니다.




- “못된 마음이 커지면 연기가 나는구나. 알아보기 쉽네.” (115쪽)

- “내가 이기적인 건가? 저렇게 노래하고 그리워해 주는 게 너무 고마운 일이라는 건 아는데, 자꾸만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요. 평범하게 밥 먹고 웃고 얘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내 죽음 따위 그 정도 영향밖에 안 주는구나, 라고. 좀더 온몸으로 슬퍼해 줬으면 하고 바라게 돼요.” (118∼119쪽)

- ‘엄마가 평범한 상태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엄마도 날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126쪽)



  그래요. 즐거운 웃음과 노래가 있는 곳에서는 ‘자동차 사고’란 없습니다. 기쁜 웃음과 노래가 있는 곳에서는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즐겁게 힘껏 누릴 노릇입니다. 착한 마음을 가꾸고 참다운 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즐겁게 하루를 누릴 노릇이요, 기쁘게 삶을 지을 노릇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한결같이 노래할 하루이고, 나와 네가 한마음이 되어 어깨동무를 할 삶입니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계의 린네 14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03



보름달빛은 구름을 비추고

― 경계의 린네 14

 타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9.25.



  보름달이 뜹니다. 보름달은 보름날 뜨는 달입니다. 그믐에는 그믐달이 뜹니다. 그믐달은 우리 눈으로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으로 알아보기 어려울 뿐, 그믐에 뜨는 그믐달은 틀림없이 하늘에 있어요. 온누리를 그믐빛으로 밝힙니다. 보름달에는 보름빛으로 밝혀요.


  지구와 아주 가까운 자리에 있는 달은 무척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달은 온누리에 있는 수많은 별 가운데 지구에 가장 밝다 싶은 별빛을 비춥니다. 온누리 숱한 별을 놓고는 그냥 별이라고만 하는데, 달한테만큼은 따로 ‘달’이라는 이름이 있어요.


  지구가 있는 누리에는 해가 있습니다. 해는 빛과 볕과 살을 베풉니다. 달은 그저 달빛이지만, 해는 햇빛과 햇볕과 햇살이 있어요. 햇빛으로 그림을 그리고, 햇볕으로 숨결을 살찌우며, 햇살로 따사롭게 보듬습니다. 이리하여, 해는 해님이요, 하얗다는 빛깔을 낳았으며, 해사한 웃음을 보여줍니다.



- “쥬몬지 네가 어떻게 좀 해 봐.” “그보다 피자나 시켜 먹을까? 분명히 말하는데 넌 안 사 준다.” ‘아아, 그래도 꿈만 같다. 따뜻한 이불에서 뒹굴거리며 피자를.’ (23쪽)

- “하지만 왜일까? 상자에서 어쩐지 익숙한 냄새가.” “싸온 것은 캣푸드뿐인가.” ‘아, 린네 님의 가난내구나.’ (42쪽)

- “로쿠도, 아이들을 위해 싸우는 거지? 잠시 콩을 주워 먹으러 왔나 했지만.” “터무니없는 오히야, 마미야 사쿠라.” (52쪽)





  타카하시 루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경계의 린네》(학산문화사,2014) 열넷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을 이루는 주인공은 모두 고등학생 또래입니다. 린네는 하늘나라에서 땅나라로 와서 ‘사신’ 노릇을 하고, 린네와 짝꿍처럼 어울리는 사쿠라는 땅나라 여느 사람이지만 ‘귀신’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쿠라는 귀신을 알아볼 수 있어도 두렵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귀신을 알아볼 뿐입니다.


  린네도 귀신을 두렵게 여기지 않습니다. 악령을 쫓는 일을 하고, 땅나라를 떠들며 하늘나라로 못 가는 넋을 찾아서 하늘나라로 보내는 일을 할 뿐, 따로 마음이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더없이 차분하고, 그지없이 맑습니다.


  멋진 아이들이라 할 텐데, 어른이라면 어떠할까요? 어른들도 귀신을 두렵게 안 여길까요? 어른들도 제 할 일을 씩씩하거나 꿋꿋하게 할까요? 어른들도 삶을 옳게 바라보면서 곱게 여미는가요?





- “하지만 100년 전에 여우를 퇴치했다면, 할머닌 대체 몇 살이야?” “얘는, 그런 걸 어떻게 아니?” (75쪽)

- “쥬몬지, 너. 혹시 여우 핑계로 평소의 원한을 풀고 있는 것 아니냐?” “무슨 소리냐?” (91쪽)

- “훗. 남자들이 마치 꽃에 덤벼드는 벌레 같구나. 저것에 이 페로몬 향수를 잔뜩 뿌려 뒀거든.” “저 영은 가짜지?” (126쪽)



  보름달빛은 구름을 비춥니다. 구름은 낮에도 밤에도 하얗습니다. 낮에는 햇빛을 받으면서 하얗고, 밤에는 달빛을 받으면서 하얗습니다. 쌀쌀한 늦가을 바람을 쐬면서 마당에 서서 하늘바라기를 하다가, 뒤꼍 무화과나무를 바라봅니다. 한가을에 실컷 무화과알을 따먹었어요. 무화과나무는 우리가 따먹은 무화과알 말고도 더 알을 베풀려고 애씁니다. 늦가을로 접어들었는데 아직 잎을 다 떨구지 않았고, 가지 끝에 올망졸망 무화과 봉오리가 봉긋봉긋 굵습니다.


  뒤꼍 무화과나무 둘레에는 가을풀이 돋습니다. 무화과나무 둘레에 돋는 가을풀은 날마다 즐겁게 뜯어서 된장이나 양념으로 버무려 먹습니다. 나도 곁님도 아이들도 기쁘게 먹습니다. 봄에는 봄풀을 먹고, 여름에는 여름풀을 먹으며, 가을에는 가을풀을 먹어요. 얼마나 고마우면서 반가운지 모릅니다. 한겨울에도 갓과 유채는 돋습니다. 전라남도 바닷가와 가까운 시골에서는 한겨울에도 유채가 꽃대를 올리고, 겨울이 저물고 새봄이 찾아올 무렵 빈 들마다 노란 꽃물결을 이뤄요. 이즈음에는 겨울을 난 배추도 꽃을 피우지요. 이곳저곳 노란 꽃밭입니다.





- ‘로쿠도의 아버지를 정점으로 에헤라 데헤라 하는 사기신들과는 전혀 달라! 근면해. 정말 부지런한 아이야!’ (145쪽)

- “렌게, 하나만 물어 보자. 죽을 때가 안 된 혼을 부당하게 저승으로 보내는 사기신의 업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나는, 어떤 환경에서도 톱을 노릴 뿐이야.” (162쪽)



  즐거울 적에 놀이입니다. 기쁠 적에 일입니다. 만화책 《경계의 린네》 열넷째 권에는 ‘렌게’라는 아이가 새롭게 나옵니다. 아마 이 아이는 앞으로도 곧잘 나오겠구나 싶습니다. ‘린네’ 아버지가 차린 ‘거짓말쟁이 회사(사기신 컴퍼니)’에서 일하는 렌게는 생각이 없이 일을 합니다. 그저 1등을 바라면서 일을 합니다. 어떤 일이든 살피지 않고, 그저 1등을 바랍니다.


  이런 마음이니 ‘거짓말쟁이 회사’에서 일할 만하겠구나 싶어요. 솜씨가 뛰어나고 재주가 좋으나, 생각이 없거나 마음이 없으면, 사랑도 없고 꿈도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니 1등으로 치달립니다. 꿈이 없으니 1등을 좇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1등이 되면 무엇을 할까요? 1등을 지키려고 또 치달릴 테지요. 다른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삶을 그리지 못합니다.


  린네라는 아이와 사쿠라라는 아이는 ‘1등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삶을 생각합’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생각하기에 꿈을 그릴 수 있습니다.



- “렌게, 너는 첫 단계에서 실수를 범했다.” “?” “너는 로쿠몬을 조종해서 우리에게 노비차를 먹이도록 꾸몄지. 하지만! 로쿠몬은 몸에 속속들이 밴 생활습관 때문에 찻잎을 정량의 10분의 1밖에 넣지 않았던 거야!” “훗, 어쩐지 차가 묽다 했더니.” “과연 로쿠몬이야.” ‘윽, 혼은 조종해도, 뼛속까지 밴 가난뱅이 근성은 고칠 수 없다는 건가!’ (187∼188쪽)



  늦가을에 보름달을 올려다보면서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듭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 밑에 서서 빙글빙글 춤을 춥니다. 달빛이 좋아서 달춤을 추고, 달내음이 고우니 달노래를 부릅니다. 달빛은 우리 집 지붕을 비추고, 달내음은 우리 집 나무마다 곱게 스며듭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하늘바라기를 하고 먼산바라기를 합니다. 풀밥을 먹고 풀잎을 읽습니다.


  만화책 《경계의 린네》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하루하루 새롭게 지으면서 이야기를 쌓습니다. 나는 시골집에서 우리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하루하루 새삼스럽게 지으면서 이야기를 이룹니다. 조그마한 종잇조각에 그리는 그림도 이야기입니다. 소꿉놀이도 이야기입니다. 밥 한 그릇도 이야기입니다. 빨래 한 점도 이야기입니다. 잠든 아이들 이마를 쓰다듬고 이불깃을 여미는 손길도 이야기입니다. 작은 삶조각이 모여 웃음꽃으로 핍니다. 4347.1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와 나의 발자취 - 요시즈키 쿠미치 단편집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96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 너와 나의 발자취 (단편집)

 요시즈키 쿠미치 글 ·그림

 정은서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3.8.30.



  나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어른이 됩니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새로운 숨결을 얻어 이곳에서 하루하루 자랍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철이 들고 생각을 깨치면서 어른이 됩니다. 그러니까, 나는 ‘어른이 되는’ 사람이지 ‘어른이 된’ 사람은 아닙니다. ‘어른이 되려는’ 사람이요,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어른 나이가 되어 짝을 지은 뒤 아이를 낳습니다. 짝을 짓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시집이나 장가를 가야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마음이 맞는 짝을 찾아서 사랑을 속삭일 때에 비로소 아이를 낳습니다.



- “사람은 ‘꿈’조차 살아갈 양분으로 삼을 수 있죠. 난 그렇게 생각해요.” (16쪽)

- “어머니는 지난달에 과로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럼,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돼서 힘드시겠네요.” “글쎄요. 솔직히, 괴로운 것도 같고, 마음이 놓인 것도 같고, 복잡한 심정이에요.” (52∼53쪽)



  아이를 낳는 두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면, 이때에는 어버이입니다. 어버이가 된 사람이기에 어른이지는 않습니다. 어버이가 될 뿐입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사람을 어른과 아이로 나누었습니다.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은 나이가 많아도 아이라 했고, 철이 든 사람은 나이가 어려도 어른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이값으로 사람을 잴 수 없고 따지지 않습니다. 나이값을 앞세워 높임말을 쓰라고 윽박지른다면 철없는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철든 사람은 둘레 사람한테 ‘자네가 나한테 높임말을 쓰면서 나를 섬기거나 우러러야지’ 하고 말하지 않아요. 철든 사람은 슬기롭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고루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줄 압니다. 높이려면 서로 높일 노릇인 줄 알기에 철이 있어요. 아끼려면 서로 아낄 노릇인 줄 알아서 철이 있어요.



-“제발, 엄마! 나도 언젠가 엄마가 된다고요! 나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줘요!” (66쪽)

- 알아차린 분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히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히나에게만 보이는 세계, 남보다 무언가가 적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없는 무언가가 많은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89쪽)



  요시즈키 쿠미치 님이 빚은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 (단편집)》(서울문화사,2013)를 읽습니다. 《너와 나의 발자취》는 ‘단편집’이 따로 있고, 여러 권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따로 있습니다. ‘단편집’에서는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 바라보는 발자취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어머니로 걷는 하루를 보여주고, 아버지로 거니는 하루를 보여줍니다.



- “저기, 어, 어떤 곳이야? 내가 모레부터 살게 되는 도시는.” “척 보니 넌 가면 물에 뜬 기름처럼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 거야. 마치, 내가 이 섬에서 겉도는 것처럼.” (99쪽)

- “어때? 마음에 들어? 그 차림.” “놀라서 고추가 쪼그라든 것 같아. 하지만, 나에게는 역시 안경과 이 섬이 제격인 것 같아.” (105쪽)

- “그거 입고 내 몫까지 잘 살아. 익숙해지면 아마 도쿄 생활이 엄청 즐거울 거야. ……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 수 없는 걸까?∥ (106∼107쪽)



  나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요? 오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 새 길을 걷는 우리는 어떤 발자취를 우리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물려줄까요?


  나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녁 삶을 아름답게 누렸을까요? 내가 낳은 아이들은 내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어느 자리에나 그예 물음표입니다. 그러나, 즐겁게 물음표를 찍습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가 걷는 길을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바라볼는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즐겁게 가꿀 적에 나는 웃고 노래합니다. 웃고 노래하는 내 삶이면, 내 어버이와 내 아이들 모두 즐겁게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 ‘맞아. ‘나’는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의 나로 있고 싶어.’ (111쪽)

- “헤헤, 아주 어릴 적에 교통사고로 나 덜렁이거든.” “힘들었겠다. 그러면.” “음, 좀 불편하긴 해. 어른들은 배려해 주지만, 아이들은 이상한 눈으로 보거든. 오늘 사촌오빠네 집에 묵기로 했는데, 그 오빠는 처음 만난 날 내 손목을 보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어. 그 다음부터는 나도 만나기 좀 거북하더라. 이번에도 그 오빠 만날 걸 생각하니 너무 우울해서, 여기 온 건 좋은데 마음이 울적해서 산책 중이었어.” (151∼152쪽)



  밥을 짓습니다. 나도 먹고 아이들도 먹습니다. 밥을 차립니다. 내 어버이도 먹고 나도 먹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가 차린 밥을 먹으면서 목숨을 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차리는 밥을 먹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서로 즐겁게 어우러집니다. 함께 기쁘게 웃습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내 가슴에 조그맣게 씨앗으로 심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나한테서 물려받는 사랑을 저희 가슴에 자그맣게 씨앗으로 심어요.


  씨앗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씨앗입니다. 아이와 어버이는 사랑이라는 끈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이어받는 사랑을 가슴에 곱게 씨앗으로 심어서 천천히 자라 어른이 됩니다. 철이 들고 생각을 깨쳐 슬기롭게 삶을 짓고 싶은 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