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해돌이, 잘 먹고 잘 놀기 - 김둘 동화시집
김둘 지음, 이경연 그림 / 자연과생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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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74



숲을 노래하는 아이들로 자라기를 빌면서

― 다람쥐 해돌이, 잘 먹고 잘 놀기

 김둘 글

 이경연 그림

 자연과생태 펴냄, 2015.9.1. 9000원



  봄하고 여름에도 참새를 보지만, 가을하고 겨울에 참새를 훨씬 자주 봅니다. 봄하고 여름에는 시골자락에서 숲이나 들 곳곳에 참새한테 기쁜 먹이가 있어요. 여기를 보고 저기를 보아도 모두 먹이가 될 만합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로 접어들면 숲에도 들에도 참새처럼 작은 텃새가 누릴 만한 먹이가 부쩍 줄어듭니다. 이때에 참새나 여러 작은 텃새는 사람 사는 마을을 자주 들락거립니다.


  바야흐로 겨울이 코앞인 늦가을 아침에 부엌일을 하는데 마당에서 재잘거리는 참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이 아이들은 우리 집도 저희 먹이를 찾는 동안 거치는 곳 가운데 하나로 삼을 테지요. 작은 열매나 씨앗도 참새한테는 반가운 먹이가 되는 만큼, 나무가 있는 자리를 찾아서, 또 빈들을 훑으면서 바지런히 날갯짓을 합니다.



왕대나무가 물었어요. / “너희도 나무구나, 어디서들 왔니?” // 공책이 말했어요. / “나는 산에서 살았어. 내가 공책이 될 줄 꿈에도 몰랐어.” (나무와 나무와 나무)


바위가 웃으며 말했어요. / “하하, 넌 이미 예전에 멋진 바위였어. / 천 년도 넘게 우람했고 / 곧 더 잘게 쪼개져 수많은 생명을 키우게 될 거야.” (돌멩이와 바위)



  작은 동시집 《다람쥐 해돌이, 잘 먹고 잘 놀기》(자연과생태,2015)를 읽습니다. 이 동시집을 빚은 김둘 님은 숲을 노래합니다. 숲에서 사는 수많은 짐승과 나무와 풀과 흙과 돌과 바람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려고 합니다.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는 해님 목소리를 동시로 담고, 마음을 열면 알아차릴 수 있는 들풀 노랫소리를 동시로 엮습니다.



큰 나무는 말했어요. / “너희는 사람들에게 곧 그늘을 드리워줄 거야. /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거야. / 오, 이 나무 아래는 너무나 시원하구나!” (30쪽)


동생 민들레가 물었어요. / “언니, 사람들은 왜 딴 데서 이사 온 민들레들을 싫어해?” (풀숲의 민들레 자매)



  어른이 되면 들꽃 한 송이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까요? 어른이 된 뒤에는 나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할까요? ‘기적 같은 사과’, 그러니까 ‘놀라운 능금’을 가꾸는 일본 할배는 언제나 이녁 능금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요. 능금밭에 농약이나 비료나 항생제를 아무것도 안 줄 뿐 아니라, 능금나무가 ‘숲을 이룬 밭’에서 살도록 보살피면서 줄기를 어루만지고 잎을 쓰다듬으며 꽃을 보며 빙긋 웃는다고 합니다. 어느 한 나무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를 걸면서, 잘 잤느냐고 묻고 잘 자라 달라고 빌며 맛난 열매를 베풀어서 고맙다고 절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겨레는 아주 먼 옛날부터 한가위나 설뿐 아니라 절기와 철에 맞추어 숲과 들과 하늘과 땅에 대고 절을 하며 살았습니다. 아니, 새벽마다 맑은 물 한 그릇을 떠서 고이 절을 하면서 하루를 열지요. 다시 아침을 맞이하면서 하루를 지을 수 있으니 고마워서 절을 하고, 넉넉한 밥을 누리도록 열매와 푸성귀를 베푼 흙한테 절을 합니다. 비를 뿌리는 하늘에 절을 하고, 따사로운 볕을 베푸는 해님한테 절을 하지요.


  그러나, 이제 이런 절이 사라집니다. 흙을 아끼고 돌보는 손길이 아니라 마구 파헤치는 삽날이 되고 경제개발이 되고 맙니다. 자꾸 토목건설을 해야 한다고 여기고 맙니다. 하늘도 땅도 바람도 해님도 비도 눈도 바라거나 살피지 않습니다. 컴퓨터만 바라보고, 숫자와 통계와 돈에 따라 움직이는 톱니바퀴처럼 바뀌고 말아요.



할아버지 나무는 웃으면서 말씀하셨어요. /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마음의 힘을 얻는단다. / 그 힘으로 자신들의 꿈을 이루지.” (기도를 들어주는 할아버지 나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 이 작은 꽃들을 보지 못했지만 / 노란 꽃들은 / 언제나 방긋방긋 (기도하는 노란 꽃들)



  김둘 님이 글을 쓰고, 이경연 님이 그림을 넣은 동시집 《다람쥐 해돌이, 잘 먹고 잘 놀기》는 어린이한테 들려주려는 ‘숲노래’입니다. 숲이 사람한테 기쁜 삶을 아름답게 누리면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렴, 하고 불러 주는 노래인 동시입니다. 어린이가 읽기를 바라면서 부르는 숲노래인 동시인데, 어쩌면 이런 동시야말로 어린이와 함께 어른이 읽고 듣고 새기고 생각할 일이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 어른들은 사랑과 꿈을 잊은 채 내달리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숲을 바라보지 못하고 잿빛 건물만 바라보는 어른이고 맙니다. 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속도로와 기찻길만 바라보는 어른이고 맙니다. 맑게 웃음짓는 아이들 눈망울을 바라보지 못하고 은행계좌만 바라보고 마는 어른이고 맙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하루에 한 시간 즈음 마음을 차분히 달래면서 숲을 헤아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땅바닥을 어루만질 수 있기를 빕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언제나 아이들을 따사로이 맞이하면서 도란도란 넉넉한 말을 들려주어, 이 아이들이 앞으로 의젓하고 슬기롭게 자라도록 북돋울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고 들길을 걷는 마음이 되고, 아이들을 곁에 두고 밭을 일구는 손길이 되며,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드디어 가을을 맞았을 때 / 열매 형제들은 / 간절하게 기도했어요. // 이 도시가 / 제발 / 조금만 조용해지도록. (도로변의 열매 형제)


어느 숲에 다람쥐 해돌이가 살았어요. / 해님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름이 해돌이예요. (다람쥐 해돌이, 잘 먹고 잘 놀기)



  아이들은 잘 먹고 잘 자며 잘 놀면 됩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꼭 다녀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자며 잘 놀면 되지요. 아이들은 하루 빨리 시험공부를 해서 대학교에 척 하니 붙어야 할 수험생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놀고 마음껏 뛰며 슬기롭게 생각을 키우면서 꿈하고 사랑을 가슴에 담을 숨결입니다.


  숲을 노래하는 아이들로 자랄 적에, 이 아이들은 이웃을 따사로이 사랑하리라 느낍니다. 숲을 아끼는 아이들로 자랄 적에, 이 아이들은 이웃을 넉넉히 껴안는 살림을 지으리라 느낍니다. 숲을 그리며 보살피는 아이들로 자랄 적에, 이 아이들은 이웃하고 손을 맞잡고 서로 도울 줄 아는 손길로 거듭나리라 느낍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기에 도시에서도 푸른 바람이 붑니다. 들꽃 한 송이가 피기에 도시 한복판에서도 고운 꽃내음이 향긋하게 퍼집니다. 햇살이 드리우고 햇볕이 포근하기에 도시이며 시골이며 누구나 따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겨울 문턱에 서며 동시 한 줄을 나긋나긋 읽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숲노래를 부르는 사랑을 가꿀 수 있기를 꿈꾸면서 동시집을 가슴에 품습니다. 4348.11.22.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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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 문학동네 동시집 32
서정홍 지음, 정가애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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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3



흙내음이 나는 동시를 쓰는 시골 아재

―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

 서정홍 글

 정가애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4.10.20. 9500원



  가을이 깊어 이제 보름쯤 뒤면 십이월입니다. 겨울이 코앞입니다. 우리 고장은 퍽 포근해서 이 늦가을과 겨울 문턱에도 들풀이 새로 돋습니다. 나는 두 아이하고 마당에서 새로 돋는 들풀을 훑습니다. 이 들풀은 밥을 끓일 적에 함께 넣기도 하고, 볶음이나 부침을 할 적에도 함께 넣습니다.


  모시풀은 잘게 썰어서 밥에 넣습니다. 쇠무릎이나 유채잎이나 갓잎은 볶음에 넣습니다. 갈퀴덩굴은 물로 헹구어 나물로 먹습니다. 손바닥만 하다 싶은 작은 땅뙈기에서도 네 식구가 먹을 풀은 넉넉히 자랍니다. 햇볕이란, 빗물이란, 바람이란, 흙이란, 참말 늘 우리를 살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어느 날 강원도 오대산에서 / 친구들과 나무를 벨 때였어. 나무 속에 아이들 새끼손가락만 한 / 총알이 박혀 있는 걸 보았지. (총알 안은 나무-목수 자중 삼촌)


할머니는 산새들이 안 볼 때 / 콩을 심어야 한다며 / 해도 뜨기 전에 콩을 심었다. //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 산새들은 할머니만 없으면 / 콩을 내먹는다. (힘겨루기)



  경상도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서정홍 님이 빚은 동시집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문학동네,2014)를 읽습니다. 흙을 만지는 서정홍 님이 쓰는 동시에는 흙내음이 흐릅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흙을 만지니 흙내음을 노래합니다. 흙을 만지기에 흙노래를 부르고, 흙을 아끼기에 흙사랑을 읊으며, 흙을 돌보기에 흙마음이 되어 글 한 줄을 씁니다.


  동시를 쓰는 어른은 저마다 하는 일에 따라서 동시를 씁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동시를 쓴다면 학교 이야기가 가득가득 흐릅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살림꾼 노릇을 하는 삶으로 동시를 쓴다면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 이야기가 넘실넘실 흐릅니다. 그리고, 문학창작으로 동시를 쓴다면 말놀이와 말솜씨를 부리는 말맛이 아기자기한 동시가 태어나지요.



할아버지 직업은? // 농부입니다. // 그럼 아버지는? // 농부입니다. // 농사지어 / 먹고살기 힘들 텐데? // 선생님, 오늘 아침밥 / 먹고 왔습니다. (학교에서)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얘, 넌 앞으로 농사꾼이 되렴.” 하고 이야기하거나 가르치거나 이끌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앞으로는 이 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어느 일거리보다 ‘시골지기(농사꾼)’라는 일거리를 맡아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아예 학교에서 어릴 적부터 ‘시골일을 해야 할 사람’을 뽑지요.


  다만, 학교에서 억지로 ‘이 일만 하라’고 등을 미는 일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보람으로 삶을 짓는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칠 수 있어야지 싶어요.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에 나오는 〈학교에서〉라는 동시를 보면, 학교 교사는 아이더러 “농사지어 / 먹고살기 힘들 텐데?” 하고 묻습니다. 참말 교사가 물을 만하지 않은 바보스러운 물음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농사꾼이라는데, 어떻게 아이더러 “먹고살기 힘들 텐데?” 하고 물을까요?



아버지, 한창 자랄 때는 / 고기를 먹어야 키가 큰대요. // 아니다. / 풀만 먹는 기린도 키가 크다. (그게 아닌데)


이모부는 농촌에서 양계장을 합니다. / 하루도 빠짐없이 / 달걀이 삼천 개가 넘게 나옵니다. /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합니다. / 일요일도 국경일도 / 외할아버지 장례식 날에도 / 쉬지 못했습니다. / 날마다 달걀을 꺼내야 합니다. (달걀 삼천 개)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 가운데, 서울내기나 부산내기더러 “얘들아, 앞으로 너희들은 이 지구별과 한국을 아름답게 가꾸는 농사꾼으로 자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하고 씩씩하게 외치면서 농사꾼이 되려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거나 이끄는 분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고흥이나 합천 같은 시골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 가운데, 고흥내기나 합천내기더러 “얘들아, 너희는 도시로 떠날 생각만 하지 말고, 바로 이 고장, 이 시골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랑스러운 꿈을 키워 보면 아주 멋지리라 생각한다!” 하고 씩씩하게 노래하면서 농사꾼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분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터놓고 말하자면, 오늘날에는 도시에서 일하는 분들도 먹고살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공장 노동자이든 운전기사이든 청소부이든, 어느 누구도 먹고살기 느긋하다고 쉬 말하지 못합니다. 부자는 부자이면서 먹고사는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먹고사는 걱정을 떨치지 못해요.



장에 가려고 길을 나선 진주 할머니는 / 하루에 두 번 있는 마을버스를 놓쳤습니다. // 아이고, 택시라도 타고 가야지. / 아니지, 택시비가 오천 원이라던데……. // 조금만 걸어가다 타면 / 택시비가 사천 원만 나오겠지. / 아니지, 조금만 걸어가다 타면 / 택시비가 삼천 원만 나오겠지. (진주 할머니)



  삶이 노래가 되고, 노래는 사랑이 됩니다. 사랑은 다시 바람을 타고 흐르고 흘러서 삶이 됩니다. 노래할 수 있는 삶이 사랑스러운 삶이요, 사랑스러운 삶이라면 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삶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아끼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 때에 살림살이를 기쁘게 일구면서 활짝활짝 웃음꽃을 피웁니다.


  시골 아재 서정홍 님은 시골지기로 꾸리는 삶을 헤아리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바로 이녁 삶을 기쁘게 돌아보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시골지기 아재가 부르는 시골노래는 동시라는 옷을 입고서 아이들한테 나풀나풀 날아갑니다. 시골 어린이도 도시 어린이도 조그마한 동시집 한 권을 펼칠 적에 ‘시골지기 아재가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시골은 못사는 곳도 잘사는 곳도 아닙니다. 시골은 그저 사람 사는 곳입니다. 동시집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시골 할머니가 사는 이야기를, 시골 할아버지가 사는 이야기를, 시골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사는 이야기를, 시골 어린이가 사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노래합니다.



새미 마을에서 태어나 / 새미 마을에서 일흔 해 동안 / 농사지으며 살아온 새미 할머니는 // 호미로 풀 매고 / 호미로 북을 돋우고 / 호미로 감자와 고무라를 캐고 / 호미로 온갖 농사일을 다 하셨다. (호미 냉장고)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아재는 흙내음에서 사랑을 봅니다. 도시에서 펜대를 잡거나 셈틀 앞에 앉는 아재는 펜대와 셈틀에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몰며 사랑을 볼 수 있고, 자가용을 모는 동안에도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따사로운 숨결이 되면,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라도 사랑스러운 넋으로 거듭나면서 사랑이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흙내음 동시는 흙사랑을 노래합니다. 흙살림을 꿈꾸는 동시는 흙사랑으로 서로 어깨를 겯고 손을 맞잡으면서 즐겁게 춤추면서 웃을 수 있는 삶을 노래합니다. 대단한 자리가 아닌 수수한 자리에서 노래가 태어납니다. 문학창작을 하지 않기에 노래가 자랍니다. 글멋이나 글치레를 부리지 않으니 노래가 환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들바람을 쐬고 숲바람을 마시니 노래가 싱그럽습니다. 늦가을 바람이 곱게 불면서 햇볕이 내리쬐는 우리 집 마당에 멧새도 마을고양이도 마음껏 드나들면서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4348.11.15.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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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여인숙 민음의 시 105
이정록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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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05



시와 제비꽃

― 제비꽃 여인숙

 이정록 글

 민음사 펴냄, 2001.9.28. 8000원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찾아올 무렵, 우리 집 둘레로 온갖 봄꽃이 핍니다. 봄까지꽃이 피고, 코딱지나물꽃이 피며, 냉이꽃에 꽃다지꽃에 갓꽃이랑 유채꽃이랑 곰밤부리꽃이랑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집니다. 그런데, 이들 봄꽃은 한겨울에도 피어나기 일쑤이고,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도 피어납니다.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 곳곳에서 피는 제비꽃을 살피니, 이월에도 삼월에도 사월에도 피지만, 여름에도 한 차례 피고 지기도 하고, 구월과 시월과 십일월에도 피고 집니다. 그리고, 십이월과 일월에도 피고 집니다. 다만, 한 포기 사이에서 다달이 피고 지지는 않고, 한 포기 사이에서 해마다 두 차례씩 꽃하고 씨앗을 봅니다. 이 씩씩하면서 앙증맞도록 작은 꽃송이를 바라보는 동안 ‘보랏빛’이라는 빛깔을 ‘제비꽃빛’으로도 가리키면 더없이 곱겠네 하고 느껴요.



주걱은 / 생을 마친 나무의 혀다 / 나무라면, 나도 / 주걱으로 마무리되고 싶다 / 나를 패서 나로 지은 / 그 뼈저린 밥솥에 온몸을 묻고 / 눈물 흘려보는 것 (주걱)


고목이 쓰러진 뒤에 / 보았다, 까치집 속에 / 옷걸이가 박혀 있었다 / 빨래집게 같은 까치의 부리가 / 바람을 가르며 끌어올렸으리라 (아름다운 녹)



  이정록 님이 빚은 시집 《제비꽃 여인숙》(민음사,2001)을 읽습니다. 어른이 읽는 시도, 어린이가 읽는 시도, 또 어린이가 읽을 동화도 쓰는 이정록 님이 서른 한복판 나이를 가로지를 무렵 내놓은 시집입니다. 이제 쉰 살 나이를 지나가는 이정록 님인데, 서른다섯 살 무렵 바라보는 서른다섯이라는 나이하고, 쉰 살 무렵 바라보는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앞으로 예순 살이나 일흔 살에 이르면,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어떻게 돌아볼 만할까요.



요구르트 빈 병에 작은 풀꽃을 심으려고) 밭두둑에 나가 제비꽃 옆에 앉았다) 나잇살이나 먹었는지 꽃대도 제법이고, 뿌리도 여러 가닥이다) 그런데 아니, 뿌리 사이에 굼벵이 한 마리 모로 누워 있다) 아기부처님처럼 주무시고 있다 (제비꽃 아래)



  우리한테는 모든 나이가 꼭 한 번씩입니다. 서른다섯 살도 한 번이고, 마흔다섯 살이나 쉰다섯 살도 한 번입니다. 스물다섯 살하고 열다섯 살도 오직 한 번뿐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나이를 거치는 동안 느끼거나 겪을 수 있는 삶도 오직 한 번뿐입니다.


  때로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한때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슬픔과 괴로움이 얼룩지는 한때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바보스러울 수 있고, 때로는 훌륭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웃음꽃이요, 때로는 눈물꽃일 수 있어요.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저마다 꼭 한 번 누리는 ‘나이’를 거치면서 차근차근 자랍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라지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몸이랑 마음이 함께 자라지요. 아이는 키가 크고 몸이 불어납니다. 어른은 키나 몸이 더 불지 않는다고 여길 만한데, 힘살이나 아귀힘이나 굳은살이나 여러 가지 모습이 새롭게 바뀌거나 거듭나요.



올해 나는 서른일곱이 되었다 이제 나는 무엇과 무엇으로 딱히 가르지 않는다 덤덤해졌다 내 아랫배처럼 두루뭉실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두 아이의 이름이 섞이고 어머니와 아내가 섞이고 새끼토끼들의 고모와 이모가 섞이고 풀과 나무와 땔감이 섞이고 귀여운 토끼와 토끼탕이 섞이고 (토끼)



  시집 《제비꽃 여인숙》을 쓴 이정록 님이 읊은 서른일곱이 된 나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토끼처럼 자라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눈빛을 헤아립니다. 이제 이 토끼 같은 아이들은 어떤 숨결로 이곳에 설까요. 토끼 같은 아이들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 ‘새로운 토끼’를 찾는 사랑을 꿈꿀까요.


  아침에 감알을 썰어 아이들한테 건네면, 아이들은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사랑해.” 하고 감알을 보며 외칩니다. 나도 감 한 알을 집어서 함께 먹습니다. 나는 한 알을 먹고 아이들은 두 알씩 먹습니다. 나는 한 알로도 넉넉한데, 아이들은 두 알로도 모자랍니다. 다 먹고 더 달라 하면 더 줍니다. 몸뚱이로 보자면 어른인 내가 훨씬 크고 힘도 세지만, 먹고 싶은 밥그릇으로 대자면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습니다.


  아마 이러한 삶은 스스로 누리지 않는다면 모를 만합니다. 스스로 아이를 낳고, 스스로 아이를 사랑하면서, 스스로 꿈을 새로 낳으면서, 스스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길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누나하고 부르면 / 내 가슴속에 / 붉은풍금새 한 마리 /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린다 (붉은풍금새)


새벽 이슬에 / 손마디가 /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새벽 이슬)



  아침 낮 저녁으로 뒤꼍으로 오르면 십일월이 무르익는 요즈음은 유자 익는 냄새가 물씬 퍼집니다. 고닥 뒤꼍에 설 뿐이지만 내 코는 유자 냄새를 큼큼 맡으면서 즐겁습니다.


  봄에 뒤꼍에 서면 매화꽃 내음이 가득 퍼집니다. 매화꽃이 질 무렵에는 모과꽃 내음이 고루 퍼지고,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에는 찔레꽃이랑 감꽃이 온몸을 따사로이 어루만져 줍니다.


  철마다 다른 꽃과 열매가 철마다 다른 숨결로 스며듭니다. 철마다 다른 풀과 꽃이 돋으면서 철마다 새로운 노래와 이야기가 퍼집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 이 아이들은 꼭 한 번 지나가는 한 살 두 살 다섯 살 여섯 살 모두 새로운 모습입니다. 아홉 살 열 살도, 열네 살 열다섯 살도 새로운 몸짓이에요. 어른한테도 서른일곱 살이랑 마흔일곱 살이란 그야말로 새로우면서 재미난 삶자락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머니는 목이 부러진 / 내 알루미늄 숟가락을 버리지 않으셨다 / 부뚜막 작은 간장종지 아래에다 놔두셨는데 / 따뜻해서 갖고 놀기도 좋았다 눈두덩에도 대보고 / 배꼽 뚜껑을 만들기도 했다 / 둥근 조각칼처럼 생겼던 손잡이는 / 아끼기까지 하셨다 고구마나 감자를 삶을 때 / 외길로 둟고 간 벌레의 길을 파내시는 데 /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이 부러진 숟가락)



  시 한 줄을 읽으면서 노래 한 가락을 읊습니다. 시 두 줄을 읽으면서 노래 두 가락을 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사랑을 짓고,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사람들은 이러한 삶결대로 새로운 사랑을 짓습니다.


  이정록 님을 낳은 어머님이 건사한 ‘목이 부러진 숟가락’은 어떠한 사랑이었을까요. 언뜻 보자면 그냥 ‘목이 부러진 숟가락’이지만, 이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무럭무럭 자란 오랜 이야기가 깃든 노래주머니일 수 있습니다. 쓰레기통에 던지면 쓰레기이지만, 살강에 가만히 얹으면 알뜰살뜰 누리는 살림살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 먼 길, 내 책가방 속에는 / 돌멩이 가득했다 (돌의 이마를 짚다)



  삶을 노래하기에 시 한 줄입니다. 삶을 꿈꾸기에 시 두 줄입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시 석 줄입니다. 삶을 노래하지 못하면 시가 태어나지 못하고, 삶을 꿈꾸지 않으면 시가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시를 씁니다. 아픔도 시로 쓰고 슬픔도 시로 쓸 뿐 아니라, 기쁨과 보람과 자랑과 꿈과 이야기와 웃음 모두 시로 씁니다.


  오늘도 아침에 마당 한쪽에 쪼그려앉아서 제비꽃을 들여다봅니다. 어제그제 찬비가 내려서 마당 한쪽 제비꽃은 꽃송이를 야무지게 닫습니다. 꽃송이를 벌린 제비꽃도 곱고, 꽃송이를 꼭 닫은 제비꽃도 곱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운 숨결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입니다. 4348.1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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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꽃게 문학동네 동시집 4
박성우 지음, 신철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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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8



꿈을 키울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기

― 불량 꽃게

 박성우 글

 신철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08.11.24. 8500원



  키가 1미터하고 30센티미터 가까이 큰 여덟 살 큰아이를 다독다독 하면서 재운 뒤 예전 사진을 돌아봅니다. 작은아이는 일찌감치 잠들었습니다. 큰아이가 갓 태어나던 날 찍은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조그맣습니다. 키가 1미터하고 30센티미터라 하더라도 어른 몸집에 대면 그리 크다 할 수 없으나, 한손에도 안을 수 있을 만큼 조그맣고 가볍던 숨결이 이만큼 컸으니 그야말로 크다고 느낍니다. 큰아이가 대여섯 살 무렵에는 두 아이를 한팔씩 감싸서 안고 걸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두 아이를 한팔씩 안고서 걷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갓 태어나던 무렵, 또 어머니젖을 물면서 자라던 무렵, 막 걸음마를 떼려고 하던 무렵 사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나는 이제껏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대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한다거나 ‘연봉 많이 받는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생각은 할 일이 없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들한테 바라는 한 가지라면, 부디 어버이 사랑을 듬뿍 물려받으면서 너희 나름대로 새로운 꿈을 키우렴, 하는 마음입니다.



도대체 고추잠자리는 무얼 그릴까 // 고추잠자리가 그리는 그림은 / 동생이 그린 그림처럼 / 무엇을 그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고추잠자리)



  박성우 님이 빚은 동시집 《불량 꽃게》(문학동네,2008)를 읽습니다. 책이름으로도 붙은 〈불량 꽃게〉는 “수평선을 찰카닥찰카닥 / 지 맘대로 자르며 노는 불량 꽃게”라고 합니다. “어깨를 으쓱 들고 / 건들건들 건들대다 / 잽싸게 도망치는 불량 꽃게”라고 해요.


  동시를 쓴 박성우 님 눈에는 꽃게가 ‘불량스럽게’ 보였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불량하지 않은’ 꽃게도 있을까요? 불량하지 않다면 ‘우량 꽃게’일까요, 아니면 ‘범생이 꽃게’일까요, 아니면 ‘얌전이 꽃게’일까요?


  가만히 보면 이 동시집에 나오는 이야기는 거의 다 학교와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룹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불량·우량(모범)’으로 가릅니다. 시험성적으로 이를 가르고, 말씨와 몸짓을 놓고 이렇게 갈라요.



마당에서 노는데 / 할머니가 부른다 // 우리 똥강아지 어디 갔냐? // 강아지도 뛰어가고 나도 뛰어간다 (누굴 부른 걸까)



  동시는 아이들한테 재미난 말놀이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동시는 낱말 하나와 글월 하나를 알뜰히 엮어서 말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동시는 어른들이 지은 이 마을에서 아이들이 어른한테서 무엇을 물려받으면서 자랄 때에 즐거운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박성우 님은 《불량 꽃게》라는 동시집에서 여러모로 말놀이를 잘 보여줍니다. 집하고 얽힌 이야기는 으레 할머니를 불러서 아이가 할머니한테서 새로운 모습을 느끼는 실타래를 풀어요.



토끼풀은 토끼풀 / 염소가 먹어도 토끼풀 / 토끼풀은 토끼풀 / 암소가 먹어도 토끼풀 / 토끼풀은 토끼풀 / 할머니가 먹일 때만 퇴깽이풀 (토끼풀)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어른도 어른 나름대로 지켜보면서 가르칩니다. 아이는 좋고 싫거나 밉거나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배웁니다. 어른은 좋고 싫거나 밉거나 나쁜 것을 가리려 하면서 알맞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동시를 쓸 적에는 어떤 마음이 될 때에 즐거울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은 어떤 동시를 읽으면서 꿈을 키울 만할까요? 아이들은 말놀이가 가득한 동시를 읽으며 말놀이는 배울 텐데, 말놀이 다음에는 무엇을 보거나 느껴서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말놀이 동시를 읽는 아이들은 어떤 꿈을 스스로 키우는 힘을 얻을 만할까요?



엄마가 마른 미역을 / 그릇에 담는 모습 / 지켜본 뒤에야 알았어 (미역)


아침에 보니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원래 눈을 감고 있어서 잠자는 줄 알았는데 만져 보니 땅땅하게 굳은 찰흙 뭉치 같았다 (새끼 강아지)



  어떤 사물을 좀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로 동시를 쓰기에 말놀이 동시가 됩니다. 그런데, 말놀이 동시는 어떤 사물을 좀 다르게 바라보는 눈길은 되지만, 한결 깊거나 넓게 들여다보거나 어루만지는 손길이나 품까지 이르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아이들한테는 ‘사실 알려주기’나 ‘사실 보여주기’에서 그치는 동시가 아니라, ‘삶을 사랑으로 가꾸는 꿈’을 함께 나누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밝히는 동시로 나아갈 일이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동시는 어른시하고 다르게 ‘문학’으로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시는 여러 실험시도 나오고 아주 어려운 철학이나 사상을 담는 작품도 나올 만하지만, 동시에서는 실험시도 어려운 철학이나 사상도 섣불리 담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동시에 철학이나 사상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라, 동시는 철학이나 사상을 어린이 눈높이와 삶자락에 맞추어서 부드럽고 쉬우면서 아름답게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어, 밴드가 다 어디 갔지?” 망치질하다 손가락을 다친 아빠가 / 약통에서 일회용 밴드를 찾았다 / 나는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 아침에 일어나니까 / 책상 위에 예쁜 브래지어가 놓여 있었다 // 쪽지를 펴 보니까 아빠였다 (일회용 밴드)



  우리 어른들이 밥을 차려서 아이들한테 아침저녁을 먹일 적에는 영양소만 먹이지 않습니다. 영양소만 입에 집어넣는 몸짓은 밥먹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밥상맡에 들러앉은 어른하고 아이는 사랑을 나누지요. 밥 한 그릇으로도 사랑을 나누고, 반찬 한 점으로도 사랑을 나누어요.


  아이들은 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도 신나게 떠듭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만 이야기를 더 터뜨리고 싶어서 밥풀을 튀기면서 밥상맡에서 노래합니다.


  나들이를 다닐 적에도 아이들은 더 먼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하고 신나게 뛰놀 수 있으면 어디이든 기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여겨요. 아무리 대단한 놀이기구가 있다 한들, 아무리 멋진 자연 풍경이 흐르는 곳이라 한들, 제 어버이가 저하고 신나게 놀아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지겨워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동시에서도 말놀이로 재미나게 이야기를 빚으려고 하는 글쓰기가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말놀이 동시로만 그치면 아이들이 받아먹을 ‘마음밥’이 너무 적거나 없다는 뜻입니다.



메미와 귀뚜라미는 / 이어달리기 선수다 (매미와 귀뚜라미)


올챙이들은 / 쉼표를 마구마구 찍어 / 봄더러 천천히 가라 하지요 (올챙이)


새싹들이 / 햇살의 엉덩이에 / 봄 똥침을 놓는다 (봄 똥침)


내가 찍은 발자국은 / 과학자가 될까 선생님이 될까 (발자국)



  매미와 귀뚜라미가 “이어달리기 선수”라면, 그 다음에는 무엇일까요. “이어달리기 선수”라고 하는 어른들 눈높이로 바라보는 운동경기(스포츠) 이야기를 굳이 엮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어른시라면 “올챙이들은 쉼표를 마구마구 찍어” 같은 말놀이가 재미있을 만하지만, 동시에서 이러한 말놀이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궁금합니다. 새싹은 참말 “엉덩이 똥침”을 놓을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발자국은 “과학자나 선생님” 사이에서 더 나아가기 어려울까요? 아이들은 청소부가 되어도 아름답고, 농사꾼이 되어도 아름다우며, 가정주부가 되어도 아름답습니다. 어떤 일을 앞으로 찾아서 누리든, 아이들은 꿈을 키울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처음부터 어떤 주어진 틀로 이야기를 빚는 동시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키우는 힘을 북돋우는 슬기를 글 한 줄에 실을 수 있다면, 오늘날 한국 동시는 사랑꽃을 활짝 피우리라 봅니다. 재미있는 동시를 쓰려면 쓰되, 재미와 함께 있을 꿈이랑 사랑이 삶으로 녹아드는 이야기를 가만가만 헤아린다면 더욱 즐거우리라 봅니다. 4348.11.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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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 세계사 시인선 143
김영승 지음 / 세계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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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노래하는 시 101



맑은 마음이 되어 살림을 꾸리는 밑힘

― 화창

 김영승 글

 세계사 펴냄, 2008.6.30. 6000원



  어제는 낮부터 집안을 신나게 치웠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집안을 새로 꾸미려고 합니다. 그제는 겨울옷을 꺼내어 마당에 말렸고, 오늘은 깔개 하나만 마당에 말리고는 뚝딱뚝딱 책꽂이하고 피아노 자리를 바꾸었습니다. 이동안 두 아이는 어딘가에서 흙을 퍼 와서 마당에 쏟아부으면서 놉니다. 어쩌다가 누구한테 잡혀서 죽고 만 범나비 애벌레 곁에서 무덤도 살짝 덮어 주면서 흙놀이를 합니다.


  끝방에서 피아노를 빼내어 컴퓨터 있는 방으로 나를 즈음 큰아이가 묻습니다. “도와줄까?” 그렇지만 너는 이 피아노를 밀지도 못하는걸. 큰아이는 몸을 피아노에 붙이고 영차영차 용을 씁니다. “이 무거운 걸 어떻게 옮겨?” 그러게 말야. 피아노는 두 사람이서 날라야 하는데 혼자서 하자니 아주 죽겠는걸.


  온통 나무조각으로 이루어진 피아노이니 무거울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끝끝내 옮기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면서, 피아노를 톡톡 쓰다듬으면서, 새롭게 기운을 내 봅니다. 얘 피아노야, 마루를 살살 굴러서 옆방으로 가 보자. 우리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곧바로 피아노를 보며 ‘아침에 즐겁게 노래 한 가락 치면서 열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해 주렴, 하고 속삭입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무렵 큰아이한테 말합니다. “오늘은 이만큼만 하고 이튿날 마저 해야겠네.” “그럼요. 오늘 아버지 피아노 나르느라 힘들었잖아요. 다 알아요.”



사진은 / 오래된 사진첩 속에서 영정이고 / 權威를 획득하게 된다 (사진)


미친 개나리인 줄 알았더니 / 개나리 비슷한 안 미친 식물이었다 / 그 식물께 미안했다 // 남녘 어딘가에 개나리가 피었다는데 // 내 나이가 47인지 48인지 몰라 / 물어보았다 (미친 개나리)



  맑은 마음이 되어 살림을 꾸리는 밑힘이라면 언제나 ‘우리 아이들’이지 싶습니다. 예부터 집집마다 아이들이 참으로 많았어요. 예부터 집집마다 손수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지었어요. 그 많은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어떻게 옷이며 밥이며 집이며 손수 지었을까 하고 생각하면 잘 알 수 없습니다. 이제 문화와 삶터가 모두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스스로 건사하면서 살림을 꾸리는 동안 어렴풋하게 깨닫습니다. 아이들은 ‘몸을 쓰는 힘’으로 살림을 거들지 않아도 언제나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쓰는 마음이야말로 어버이나 어른이 새롭게 기운을 내도록 북돋우는 밑바탕이 됩니다.


  김영승 님 시집 《화창》(세계사,200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하늘이 맑게 개고, 사람들 마음속이 맑게 갭니다. 하늘이 맑게 갠다는 말은, 구름이 가득 끼어 찌푸리던 하늘이 새롭게 열린다는 뜻입니다. 사람들 마음속이 맑게 갠다는 말은, 온갖 근심에 걱정에 시름에 짜증에 골부림이 가득하던 마음속이 새롭게 트인다는 뜻입니다.



어디로 없어질까 // 천국이니 지옥이니 / 무인도니 // 관념의 공간들은 이미 / 가득 차 // 갈 곳도 없구나 (병술 대보름)


大地는 地雷를 大洋은 / 魚雷를 // 수용한 적도 / 생산한 적도 / 없다 地雷는 (지뢰밭의 괴뢰)



  시를 쓰는 김영승 님은 시를 쓰면서 이녁 마음속에 깃들던 구름(근심이든 걱정이든 짜증이든 골부림이든)을 하나씩 걷어냅니다. 구름 하나를 걷어내도 다른 구름이 아직 남고, 이 구름을 걷어내니 저 구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름 걷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다른 구름이 자꾸 찾아들면 그때그때 다시 구름을 걷어내면 되어요. 맑은 하늘을 바라면서 구름을 걷어냅니다. 맑은 마음이 되기를 꿈꾸면서 시름이며 아픔을 걷어냅니다.


  언제나 스스로 거듭나려고 애씁니다. 언제나 스스로 노래하려고 목청을 틔웁니다. 남이 해 줄 수 없는 일입니다. 스스로 할 일입니다. 남이 불러 줄 수 없는 삶노래입니다. 스스로 부르면서 살림을 짓고 삶을 가꾸는 노래입니다.



아들이 갖고 놀던 / 노란색 반투명 플라스틱 물총 // 기관단총 같은 물총도 있었고 / 물총은 수십 개였으나 // 다 버리고 하나 남은 물총 // 이제 이 물총은 / 나의 취미 (물총)


할머니들은 / 여기가 어디예요? / 잘 묻는다 // 그 불안한 표정은 / 어머니다 (지게)



  작은아이가 자다가 발로 아버지를 걷어찹니다. 끄응 하고 잠을 깨며 손을 뻗습니다. 틀림없이 이불도 걷어찼을 테지. 맞습니다. 작은아이는 잠꼬대를 하며 까르르 웃습니다. 뭔 놀이를 하는데 잠자리에서도 이렇게 날아다닐꼬. 제 이불을 걷어찬 작은아이는 아버지 이불을 빼앗으려 합니다. 아니, 이러면 안 되지. 너 말이야, 말로 차고 이불도 뺏으면 어떡하니.


  부시시 일어나서 작은아이 이불을 찾아서 덮어 줍니다. 작은아이는 제 이불이 몸에 덮이자 이 이불을 꼭 끌어당깁니다. 네 이불 찾았지?


  얼마쯤 지나니 큰아이가 두 발을 내 몸에 올립니다. 너는 또 무슨 잠꼬대를 하느냐. 너는 네 꿈나라에서 어떤 신나는 놀이를 하느냐. 아이들이 발로 차든, 아니면 저희 발을 내 몸에 올리든 대수로울 일이 없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손을 뻗어서 이 아이들이 이불을 잘 덮는지 살핍니다. 누운 채 팔만 뻗어서 이불깃을 여밀 수 있으면 이렇게 하고, 누운 채 할 수 없으면 부시시 일어나서 깜깜한 방을 밤눈을 밝혀서 이불을 찾아냅니다.



옛날 술 한창 마실 때 / 하도 잘 부러뜨리고 깨뜨리어 / 제일 싼 걸로 고른 것인데 // 아들은 그 안경을 멋있어 한다 자기도 / 똑같은 것을 썼다 (안경)


총이 있으면 쏘고 싶어진다 / 자지가 있으면 // 그러니까 없애야 한다. // 자지를 가지고 장난한 세월이 / 벌써 몇 년이냐 / 질리지도 않냐 (‘동전’으로 가지 말자)



  김영승 님이 노래하는 이야기에는 김영승 님이 나고 자란 삶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젊은 날 모습이 드러나고,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삶이 드러나며, 곁님하고 어깨동무하는 나날이 드러납니다. 숨길 것도 가릴 것도 없어요. 은유나 비유를 쓰지 않아도 돼요. 한자말을 쓰든 영어를 쓰든 대단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더라도 모두 ‘노래하는 사람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말마디입니다.


  아마, 말만 번드레레하게 시를 쓰려고 한다면, 이러한 시는 시조차 못 되리라 느낍니다. 겉보기로 번드레레하게 꾸미려고 한다면, 이러한 글은 글조차 못 되리라 느껴요.


  꾸며서 부르는 노래는 귀가 따갑습니다. 억지로 꾸며서 추는 춤은 눈이 아픕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라면 가락이 틀리거나 셈여림이 어긋나더라도 마음을 찡하게 울릴 만합니다.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눈물이나 웃음을 부르는 노래라면 엇박자가 되더라도 가슴을 쩌렁쩌렁 울릴 만해요.



여고생들은 참 너무 예쁘다 / 가장 예쁜 나이이다 / 내가 예수라면 / 저 전철에 앉아 있는 / 여고생들을 보라 / 그렇게 말하겠다 (三美神)



  문득 생각해 보니, 1982년에 인천에서 첫발을 뗀 야구단 이름인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삼미’는 한자로 ‘三美’로 적었습니다. 이 야구단이 경기를 벌인 곳은 도원야구장(또는 숭의야구장)이었고, 이 야구장 옆에는 중앙여상이라는 여고가 있고, 이 여고 옆에는 광성고라는 남고가 있습니다. 나는 이 학교들하고 야구장하고 퍽 가까운 신광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거의 날마다 야구장에 걸어가서 놀았습니다.


  어릴 적을 떠올리니, 남고생이 무리지어 지나갈 때면 무서워서 다른 골목을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무렵 국민학생한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은 거의 다 깡패처럼 보였고, 국민학생 주머니를 터는 중·고등학생이 몹시 많았어요. 어떤 동무는 야구장으로 놀러가다가 야구장갑이나 야구공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국민학생인 동무들은 남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하고는 눈조차 안 마주치려고 했습니다. 이와 달리 여중생이나 여고생이 지나가면 마음을 놓고 그 골목을 걸어갔습니다. 여중생이나 여고생 가운데에도 국민학생 주머니를 털던 깡패가 있었을 테지만, 나는 여중생이나 여고생 깡패를 마주친 적이 없고, 내 동무들도 이런 깡패는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된 남학생도 국민학생이던 무렵 똑같이 주머니가 털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어 예전에 받은 아픔을 똑같이 되풀이할는지 모르지요. 예쁜 나이를 살면서 스스로 예쁜 줄 모르는 셈이라 할 테고, 아름다운 나이를 누리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줄 모르는 셈이라 할 만합니다.



밤 버스는 // 내려줄 데를 내려주고 // 별로 진다. (밤 버스)



  날마다 별이 돋고 집니다. 날마다 해가 뜨고 집니다. 어제도 오늘도 밤별이 잘 보입니다. 구름이 거의 없습니다. 낮에는 시골자락 가을들이 가을볕에 잘 익고 잘 마릅니다.


  맑으면서 밝게 갠 가을 하늘처럼 내 마음도 맑으면서 밝은 숨결로 흐르도록 건사하자고 생각합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몸짓으로 밥을 짓고, 기쁘게 춤추는 손짓으로 우리 아이들하고 신나게 어우러져서 놀자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집을 살며시 덮습니다. 시집을 덮고 두 손에 그림책을 쥡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즐길 예쁜 그림책을 펼칩니다. 고운 그림에 고운 이야기가 어우러져서 새롭게 흐르는 사랑을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4348.10.21.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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