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뭐고? -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칠곡 인문학도시 총서
칠곡 할매들 지음, (사)인문사회연구소 기획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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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07



시가 뭐고? 삶노래요 사랑노래요

― 시가 뭐고?

 강금연 외 88명

 삶창 펴냄, 2015.10.26. 9000원



  아이들이 나한테 찾아오기 앞서까지 나는 ‘시’라고 하는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시라고 하는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아이들이 나한테 찾아오기 앞서까지 ‘시’라고 하는 글을 잘 읽지도 않았고, 잘 헤아리지도 못했으며, 잘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큰아이가 글을 알아차리고, 이러한 글을 읽어 달라 하고, 나중에 아이 스스로 글을 읽으려 하는 무렵부터 비로소 ‘시’라고 하는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아니, 아이가 글을 읽고 싶다고 할 적에 아이한테 어떤 글을 읽힐까 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손수 써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가 스스로 글을 읽겠다고 할 적에 무엇보다 ‘어버이가 쓴 글’을 읽히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태 시쓰기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읽기를 배운 적도 없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를 읽고 외우는 수업을 받았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시험 문제에 나오는 어른시를 읽고 외우는 수업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시쓰기이든 시읽기이든 모두 나하고 동떨어진 어느 머나먼 별나라나 달나라나 꿈나라 이야기로만 여겼어요.



비가 안 와서 / 노은 마르고 / 드래 가서 오지도 안는 영감 때무네 / 마음이 단다 / 하느님이 비를 주쓰면 조겠는데 / 비를 안 주니 / 콩 모종 들개 모종 해야 하는데 / 무러서 땡땡 마음도 가물다 (김기선-마른 땅)


참 따뜻하다 / 감나무밭 김을 멘다 // 꽃다지는 노랑꽃을 뽐내고 / 냉이꽃은 흰꽃을 뽐내고 / 된장꽃은 보라색으로 뽐내고 (김숙이-밭 김매기)



  경상도 칠곡 시골자락에서 사는 할머니 여든아홉 분이 쓴 시를 그러모은 《시가 뭐고?》(삶창,2015)를 읽습니다. 책이름에도 붙듯이, 시골 할매는 “시가 뭐고?” 하고 묻습니다. 시를 쓰라고 하니 시라고 하는 글을 써 보지만, 할매들 스스로 시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면서 쓰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시골 할매는 ‘할매 나이’에 이르고도 한참이 지난 오늘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글을 익혔습니다. 예순이든 일흔이든 여든이든, 이런 늘그막에 한글을 처음으로 익혔지요.


  이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시골 할매는 예순이나 일흔이나 여든이라는 나이에 이르도록 ‘한글로 된 책’은 읽은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한글로 된 신문’조차 읽은 적이 없다는 뜻이에요.


  재미있지요. 시골 할매가 한글을 익힌 적이 없어서 한글을 읽을 줄 몰랐다면,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는 어떻게 했을까요? 사람 이름도 읽지 못하셨을 텐데 그야말로 선거를 해야 할 적에 어떻게 하셨을까요?



감꽃이 피었다가 하얗게 떨어지면 / 지푸라기 홀겨메어 한층 두층 뀌다보면 / 목걸이 만들고 옛날 그 시절 생각난다 / 감은 어머니의 둥지에서 영양분을 흠북 먹으면서 / 잘 큰다 가을 돼면 즐경을 이루고 (박태분-감나무)


택배 주소도 쓸 줄 몰라 / 우체국 여직원 손 빌렸다. / 용기 내어 내 손으로 / 주소를 써 갔더니 / 여직원 둘이서 의아한 표정 (김옥순-고마운 한글 공부)



  시를 배운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글조차 배운 적이 없고, 책을 배운 적도 없는 할매한테는 문학이라고 하는 글도 처음입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도 시골 할매한테는 아무것이 아니기도 하고,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입니다. 시골 할매한테는 이녁 딸아들이랑 이녁 손자 이름이 대수롭고 사랑스러우며 가슴에 남지만,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 같은 사람들 이름은 안 대수롭고 안 사랑스러우며 가슴에 안 남지요.


  그렇지만 이 시골 할매들이 시를 씁니다. 처음으로 한글을 익히고, 처음으로 연필을 쥐면서, 처음으로 할매들 이야기를 이녁 손으로 스스로 씁니다. 이녁 이야기를 입으로 읊어서 지식인이나 연구원이 녹음기로 받아서 따로 옮겨서 나오는 글이 아니라, 늙은 할매가 스스로 연필을 쥐고 스스로 이녁 이야기를 시라고 하는 얼거리로 찬찬히 빚습니다.



어릴 적 / 산골짝에 남자아이들 / 학교 보내주고 여자들은 / 공부하면 남의 집에 간다고 / 보내주지 않았다 (박후불-한글 공부)


논에 들에 / 할 일도 많은데 / 공부시간이라고 / 일도 놓고 / 헛둥지둥 왔는데 / 시를 쓰라 하네 / 시가 뭐고 / 나는 시금치씨 / 배추씨만 아는데 (소화자-시가 뭐고)



  글을 모르고 책을 모르며 학교를 모르는 시골 할매입니다. 그렇지만 시골 할매는 다른 것을 알아요. 집짓기하고 밥짓기하고 옷짓기를 알지요. 시골 할매는 대학교뿐 아니라 학교 문턱조차 밟은 일이 없으나, 씨앗을 언제 심고 풀은 언제 베며 열매는 언제 거두는가를 압니다. 시골 할매는 박사도 석사도 연구원도 아니지만, 씨앗을 겨우내 어떻게 갈무리를 하고, 추운 겨울에 먹을 밥은 어떻게 건사해서 어떻게 다루는가를 압니다. 시골 할매는 보일러 같은 기계를 만들거나 다룰 줄 모르지만, 나무를 할 줄 알고, 아궁이에 불을 지필 줄 압니다. 시골 할매는 오븐이나 전자제품을 마음껏 다룰 줄 모르더라도, 전기 하나 없이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살림을 건사할 줄 알아요.



새벽 다섯 시 손자 자는 것 보고 / 자전거 타고 논밭에서 / 바쁘게 일을 하고 집에 온다 / 손자는 깨지 않고 있다 / 자는 모습이 예쁘고 고맙다 / 꽃나무에 물을 주고 또 문을 열어보면 / 일어나서 손을 빨고 놀고 있다 (김순덕-손자 규현)



  칠곡 할매 시집인 《시가 뭐고?》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합니다. 시골 할매더러 ‘씨앗’이라는 낱말을 글감으로 주어서 씨앗마다 언제 심고 어떻게 돌보아 어떻게 거두는가 하는 이야기를 시로 적어 보라고 하면 어떠했을까요? 시골 할매더러 ‘땅’이나 ‘밭’이나 ‘논’이라는 낱말을 글감으로 주어서 땅이나 밭이나 논을 어떻게 가꾸고 일구고 보듬으면서 삶을 짓는가 하는 이야기를 시로 적어 보라고 하면 어떠했을까요? 시골 할매더러 ‘아기’라는 낱말을 글감으로 주어서 아기를 집에서 어떻게 낳고 어떻게 돌보며 어떻게 키우는가 하는 이야기를 시로 적어 보라고 하면 어떠했을까요?



둘째딸이 쇠비름 무침이 먹고 싶답니다 / 온갖 좋은 것 다 먹고 살았을 텐데 / 딸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이종희-쇠비름)


나는 나무 타는 냄새가 좋다 불을 때면서 / 그을린 부뚜막에 눈을 지그시 감아본다 / 어린 시절 엄마가 나무를 아궁이에 넣던 모습 / 불을 꺼집어내어 감자를 굽던 모습이 / 생각난다 (한순길-추억)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시’라는 말을 안 씁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노래’라는 말을 씁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자, 우리 함께 부를 노래를 써 봤어’ 하고 글종이를 내밉니다. 그러면 큰아이가 이 글종이를 받아서 아이 나름대로 가락을 입혀서 나긋나긋 살가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노래처럼 글로 빚기에 이 글, 그러니까 ‘시’를 ‘삶노래’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서로 아끼고 보살피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노래처럼 글로 엮기에 이 글, 그러니까 ‘시’를 ‘사랑노래’라고 느낍니다.


  일하며 부르는 노래는 ‘일노래’입니다. 아기를 재우며 부르는 노래는 ‘자장노래’입니다. 아이들이 놀면서 마음껏 부르는 노래는 ‘놀이노래’입니다. 들일을 하며 부르는 노래는 ‘들노래’입니다. 숲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는 ‘숲노래’입니다. 그러니까, 따로 ‘시라고 하는 문학’을 모르더라도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될 수 있어요. 아니, 시인이 아닌 ‘삶노래님’이 되고 ‘사랑노래님’이 됩니다. ‘들노래님’이 되고 ‘숲노래님’이 됩니다. ‘자장노래님’이나 ‘놀이노래님’이 되어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누구나 다 다르게 아름다운 ‘노래님’입니다. 4348.12.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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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김천영 임덕연 2인 시집
김천영.임덕연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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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05



함께 나들이를 다니는 기쁨 누리기

― 산책

 김천영·임덕연 글

 삶이보이는창 펴냄, 2007.7.10. 7000원



  혼자 살던 때에는 혼자 가볍게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혼자이기에 두 다리로 걷기 마련이었고, 자전거로도 달렸으며, 버스를 가끔 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들이를 다니다 보면 애써 버스를 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며 무척 시원했고, 웬만하면 찬찬히 둘레를 살피며 걷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나들이라면, 또 마실이라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씩씩하게 이 땅을 밟아야 하는구나 싶어요.


  곁님을 만나고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는 혼자 나들이를 하는 일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굳이 혼자 나들이를 해야 할 까닭이 없기도 하고, 어쩌다가 혼자 바깥일을 보려고 돌아다니다 보면 곁이 허전합니다. 좋은 길이건 궂은 길이건 이 길에 온 식구가 함께 있으면서 삶을 누릴 적에 비로소 즐거운 노릇이네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서울 같은 곳으로 바깥일을 보러 나올 때가 아니라면 으레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서 나들이를 하거나, 함께 논둑길을 달리면서 나들이를 하거나, 때때로 시골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아들은 산책 가잔 말을 했다. 어린 애가 산책이란 말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신기하여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저도 답답한 아파트가 싫은 것이다. (산책 1)


난생 처음 텃밭을 맨발로 밟아 본다. 흙의 기운이 발밑에서 머리로 올라 정신이 다 맑아진다. (텃밭 가꾸기 1)



  교사이면서 시를 쓰는 어른인 김천영 님과 임덕연 님이 빚은 시집 《산책》(삶이보이는창,2007)을 찬찬히 읽습니다. 책이름에 붙은 말처럼 가볍게 나들이를 하듯이 시를 읽습니다. 어린 아들하고 홀가분하게 나들이를 다니던 어버이 넋을 돌아보면서 시를 읽습니다.


  시집 《산책》을 내놓은 두 어른은 교사이지만 ‘교사가 되는 길’을 걸으면서 ‘텃밭 일구기’라든지 ‘흙 밟기’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교육대학교 같은 곳에서 교육과정 수업진도는 있을 터이나, ‘흙을 만지는 교육과정’은 없을 테니까요. 대학교에 있는 교수 가운데 대학생한테 ‘밭일 좀 해 보렴’이라든지 ‘맨발로 흙 좀 밟아 보렴’ 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느껴요.



아내는 왜 아파트는 안 되냐고 했다. 나는 꽃을 보고 싶다고 했다. // 아내는 화분에 꽃을 심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땅에 나무를 심고 싶다고 했다. (나의 소망)



  꽃은 꽃그릇에 심어 마루나 방 한쪽에 놓을 수 있습니다. 작은 나무를 집안에 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풀이나 꽃이나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릴 적에 비로소 풀답고 꽃다우며 나무답습니다. 하늘을 우러르고 바람을 마시며 빗물하고 눈송이하고 동무할 수 있을 적에 풀도 꽃도 나무도 싱그럽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떠할까요? 사람은 어느 때에 사람다운 삶을 누릴까요? 우리는 어떤 터전에서 어떤 이야기를 짓는 사람으로 지낼 때에 비로소 맑거나 밝거나 곱거나 사랑스러운 숨결이 될 만할까요?



아이들이 돌아갔다. / 돌아간 자리마다 돌미나리 냄새가 났다. / 늦은 햇볕이 창문을 통해 길게 들어왔다. / 나는 새삼스레 내 나이를 가늠했다. (마흔, 교실에서)


― 아빠 그런데 옛날에는 껌 씹다가 벽에 붙여 놓았다가 씹고 또 씹고 그랬어? / ― 그럼, 그런데 느이 작은아버지가 어느새 그 껌을 몰래 떼어 먹어 싸우기도 했지. (상주 남장사 가는 길 돌장승)



  아이들한테서 돌미나리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어른들한테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내 몸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가요? 그대 몸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가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루는 우리 모두한테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가요?


  꽃내음이 나는가요, 풀내음이 나는가요? 숲내음이나 바다내음이나 흙내음이 나는가요? 아니면, 쇳내음이나 돈내음이 나는가요? 플라스틱이나 석유에서 흐르는 내음이 우리 몸에서 나는가요?


  사랑스러운 내음이 날까요? 곱거나 푸른 꿈 같은 내음이 날까요? 해님 같은 내음이나 달님 같은 내음이 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면, 미움이나 시샘이나 짜증 같은 내음이 날까요? 윽박지르는 내음이나 바보스러운 내음이나 어리석은 내음이나 그악스러운 내음이 나지는 않나요?



한 세상 / 더도 말고 / 시만 쓰면서 살 수 있을 거라 / 믿었는데 / 시도 못 쓰고 / 시골만 내려와서 / 개울물이랑 이야기가 길어졌다. (시골 밥)


시골로 살러 와 / 솥단지며 농을 풀어 놓은 곳이 / 범실이다, 아랫범실이다. (호랑이굴을 찾아)



  숲길을 걷는 사람은 숲을 가슴으로 품습니다. 들길을 걷는 사람은 들을 가슴으로 담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걷는 사람은 바다를 가슴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찻길을 걷는 사람은 자동차에서 퍼지는 숨결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테고, 골목길을 걷는 사람은 골목에서 흐르는 숨결을 가슴으로 안겠지요.


  시집 《산책》을 함께 쓴 두 사람은 도시 아닌 시골에서 조용히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면서 노래를 짓고 싶습니다. 시를 쓰고 삶을 노래하려는 두 사람은 아이들이 싱그러운 눈짓으로 흙을 밟고 이 땅을 누비면서 온누리에 고운 사랑을 퍼뜨리는 튼튼한 씨앗이 되기를 바라지 싶습니다.


  함께 걸어요. 두 손에는 아무것도 쥐지 말고 홀가분하게 함께 걸어요. 맨몸으로 가볍게 걸어요. 풀을 느끼고 흙과 나무를 느끼면서 걸어요. 하늘을 올려다보고 구름을 살피면서 걸어요.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걸어요. 바람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어요. 바람이 우리더러 기쁘게 이 길에 서서 어깨동무하며 놀자고 부르는 소리를 들어요. 4348.12.10.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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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의 깊이 애지시선 45
한양명 지음 / 애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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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09



시와 빈 그릇

― 허공의 깊이

 한양명 글

 애지 펴냄, 2012.11.15. 9000원



  기름기 있는 그릇을 수세미에 비누를 묻혀서 씻으려면 잘 안 닦입니다. 괜히 손자국이 더 묻을 뿐 아니라 미끌미끌한 기운이 벗겨지지 않습니다. 기름기 있는 그릇을 잘 부시려면 뜨거운 물이나 끓는 물을 부어 주어야 합니다. 고기를 구운 부침판도 뜨거운 물을 부은 뒤 두꺼운 종이로 살살 문지르면 기름기가 말끔히 닦입니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 처음에 기저귀를 댈 적에도 이러한 손길을 느꼈습니다. 오줌기저귀뿐 아니라 똥기저귀도 비누질만으로는 오줌 기운이나 똥 기운을 빼내지 못합니다. 아무리 비누를 많이 써도 똥오줌 기운을 말끔히 털지 못해요. 물을 펄펄 끓여서 이 물에 담근 뒤 나뭇가지로 잘 저으면 비누를 안 써도 똥오줌 기운이 잘 빠집니다. 이렇게 삶은 기저귀를 찬물로 잘 헹군 뒤 마당에 널어서 해바라기를 시키면 마치 새 천처럼 돌아가서 보송보송하고 냄새마저 향긋합니다.



겨우 토끼 한 마리 지날 정도의 / 좁디좁은 벼랑길 / 나이 스물, 아직 가진 게 없을 때 /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 성큼성큼 걸어갔다 (토끼벼리길)


꽃을 꽃으로만 보고 싶다 / 색깔이니 향기니 자태니 / 허튼 생각 않고 / 그냥 꽃으로만 보고 싶다 (그냥 보고 싶다)



  겨울 저녁에 방바닥을 덥힙니다. 아이들을 자리에 눕히고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두 아이를 잘 재우고 나서 부엌으로 갑니다. 뜨거운 물이 나오겠네 싶어서 기름기 있는 그릇을 뒤늦게 설거지합니다. 아이들을 재우기 앞서 이를 닦이고 손발을 씻기면서 설거지를 한 빈 그릇은 벌써 물기가 말랐습니다.


  밥찌꺼기는 고양이밥이 되도록 마당 한쪽에 붓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밤별을 올려다보면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춥니다. 딱히 춤을 출 일이 없을 수 있지만, 오늘 하루도 아이들하고 즐거이 삶을 누렸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별밤에 혼자 마당에서 가볍게 춤을 추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한양명 님 시집 《허공의 깊이》(애지,2012)를 호젓하게 촛불맡에서 읽습니다.



과음을 할 때 또는 / 내가 나란 걸 잊을 때 /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어쩌다 활짝 핀 소년들 보면 / 부러울 때가 있다 / 내가 다시 저 나이라면 /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을 텐데 (소년들 보면)



  한자말 ‘허공’은 “텅 빈 공중”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공중’이라는 한자말은 “하늘과 땅 사이에 빈 곳”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러한 말뜻을 살피면, ‘허공’을 풀이한 한국말사전은 좀 엉뚱합니다. “텅 빈 빈 하늘”로 풀이한 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헤아리면, “빈 하늘”이라는 한국말을 쓰면 이 같은 겹말풀이를 안 했을 터이나,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말을 제대로 살피는 사람이 너무 드뭅니다. 왜 “빈 하늘”이나 “하늘”이라 말하지 않고 ‘허공·공중’ 같은 한자말을 빌어야 할까요? ‘하늘’이라 말하기보다 ‘스카이’라 말할 적에 어쩐지 남다르거나 새롭다고 느끼는 마음일까요?



농사짓는 일을 / 시적 대상으로 보기 일쑤인 / 삼류시인 지아비를 믿을 수 없어 / 과수원집 넷째 따님, 아내는 홀로 / 늦봄을 뒤적이고 또 뒤적이며 / 두 마지기 반, 작지 않은 산밭에 / 고추며 참깨, 콩팥을 심는다 (아내는 시인이다)



  시집을 읽다가 사전을 읽던 손길을 살짝 멈춥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십니다. 우리 마을 뒤쪽에 있는 멧자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입니다. 우리 집은 시골집이요, 흐르는 냇물을 마실 수 있는 보금자리입니다. 도시에서 살 적에는 먹는샘물을 사다가 마셔야 하면서 으레 빈 페트병이 잔뜩 나와야 했고, 시골에서 사는 동안 흐르는 골짝물을 마시기에 빈 페트병을 걱정할 일이 없을 뿐더러, 언제나 싱그러운 물맛을 누립니다.


  그러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이 나라 거의 모든 사람들은 ‘흐르는 물’을 마셨습니다. 빗물을 마셨고, 냇물을 마셨어요. 우물물을 마셨고, 골짝물을 마셨지요. 샘물을 마셨고, 깨끗하며 정갈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어요. 옛날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싱그러운 물로 싱그러운 몸이 되도록 북돋았어요.



외가에서 자라던 일곱 살의 어느 날 / 낯선 사내가 불현듯 찾아와 / 내가 네 아비란다, 뜬금없이 말하고는 / 읍내 반점으로 데려가 비벼줬던 자장면 / 그때의 아릿한 추억까지 올올이 배인 / 수타면이 나는 좋다 (수타면, 안동 청반점에서)



  씨앗 한 톨을 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입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입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입니다. 별을 노래하고 해님을 반기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입니다. 풀잎을 훑고 나무를 돌보는 사람은 누구나 시입니다.


  그러면, 대형마트를 찾는 사람은 시인일까요, 아닐까요.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시인일까요, 아닐까요. 큰 회사 대표라든지, 대통령이라든지, 의사나 판사 같은 사람은 시인일까요, 아닐까요.


  시골에서 맑은 냇물을 마시는 삶을 짓는 사람만 시인일 수 없습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시인이지요. 시골에서 씨앗을 심는 사람만 시인이지 않습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변호사도 택시 일꾼도 시인이에요.



풀도 꽃도 바람도 그네들끼리 / 뭐라 뭐라고 얘기들 하지만 / 나는 통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해 / 하릴없이 눈만 끔적일 뿐이다 (마침내 그들이 나를 버렸다)



  삶을 노래하는 마음이기에 시인입니다. 삶을 노래할 줄 모르는 텅 빈 그릇이라면 시인이 되지 못합니다. 삶을 노래하면서 넉넉한 밥그릇을 넉넉하게 이웃하고 나누는 숨결이라면 시인입니다. 삶을 노래할 마음이 없이 제 밥그릇만 단단히 움켜쥐려고 하는 사람은 시인이 되지 못하지요.



내가 돌아오자 그대가 진다 / 가장 아름다운 날 봄볕에 목을 매어 / 툭 하고 미련 없이 붉은 마음 진다 (동백 지다)



  시집 《허공의 깊이》를 생각합니다. 한밤에 시골자락 뭇별을 생각합니다. 시 한 줄이 태어나는 곳을 돌아봅니다. 이 시골집에서 우리 아이들하고 늘 마시는 싱그러운 물 한 모금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 겨울 십이월에 어느 고장은 눈이 펑펑 내려서 길도 집도 하얗게 바뀝니다. 이 겨울 십이월에 어느 고장은 눈송이 하나 내리지 않는 포근한 바람이 불면서 동백나무에 새빨간 봉오리가 터질 듯 말 듯 춤을 춥니다.


  우리 집 동백나무는 아직 붉은 꽃송이를 안 터뜨리지만, 이웃집이나 다른 마을에서는 어느새 동백꽃이 핀 십이월입니다. 새파란 하늘을 온 가슴으로 담으면서 찬바람을 씩씩하게 맞아들이는 십이월입니다. 두툼한 장갑을 끼고 털모자를 쓰면서 자전거를 달리는 십이월입니다. 밥그릇에 따순 밥을 소복하게 채워서 아이들한테 내미는 십이월이요, 마음그릇에 너른 사랑을 알뜰히 심어서 이웃하고 나누는 십이월입니다. 4348.12.5.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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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길 문학동네 동시집 28
김철순 지음, 구은선 그림, 이지선 북디자이너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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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2



맛있는 열매를 먹고 싶은 마음으로

― 사과의 길

 김철순 글

 구은선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4.4.30. 9500원



  우리 집은 가을이 깊을 무렵부터 겨울까지 날마다 감알을 즐깁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으레 감알을 썰어서 아이도 어른도 즐겁게 먹습니다. 다만, 이 감알은 봄이 다가오면 거의 떨어지고, 봄으로 접어든 뒤에는 더 구경하지 못합니다.


  봄하고 여름에는 감알을 구경하지 않기도 하고 딱히 먹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커다란 가게에 감알을 덩그러니 놓겠지요. 도시에 있는 커다란 가게에서는 한겨울에도 수박이 있고 딸기가 있으니까요. 바나나 같은 열매는 네 철 언제나 놓여요. 더구나 바나나는 시골에서조차 네 철 언제나 구경할 수 있습니다.



봄볕을 / 접었다 폈다 하면서 / 나비 날아간다 / 나비 겨드랑이에 들어갔던 / 봄볕이 / 납작 접혀서 나온다 (나비)


이제 감나무 밑 동네가 환해질 거야 / 왕관을 쓴 베짱이 노랫소리에 / 모두들 흥이 나서 일을 할 거야 (감꽃 왕관)



  그리 멀지 않은 옛일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우리 집 큰아이가 2015년에 여덟 살인데, 내가 여덟 살이던 1982년을 헤아리니, 그무렵에는 겨울로 접어들 무렵 비로소 맛본 열매가 몇 가지 있습니다. 감이나 능금이나 귤 같은 열매는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될 즈음 널리 먹습니다. 이러다가 봄을 맞이하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여름에도 구경하지 못해요. 그러나 봄이나 여름에는 이즈음 만날 수 있는 다른 열매가 있습니다. 살구와 오얏이 무리익는 봄을 한껏 북돋우고, 복숭아랑 포도랑 참외가 잇따르지요.


  김철순 님이 빚은 동시집 《사과의 길》(문학동네,2014)을 읽으면서 제철에 먹는 열매가 하나둘 떠오릅니다. 요즈음 우리 집 아이들이 신나게 먹는 열매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다른 집에서는 어떠한지 모르나, 우리 집 아이들은 감이랑 바나나가 있으면 감을 먹습니다. 감이랑 능금이 있어도 감을 먹습니다. 감이랑 배가 있어도 감을 먹어요. 감을 다 먹고 나서야 바나나나 능금이나 배를 쳐다봅니다.


  그런데, 무화과하고 감이 함께 있으면 언제나 무화과에 먼저 손이 가요. 무화과 옆에 다른 어떤 열매가 있어도 무화과보다 앞서지 못합니다. 무화과하고 수박을 함께 놓는다면 달라질는지 모르나, 무화과하고 수박은 서로 익는 철이 달라서 밥상에 함께 놓일 일이 없습니다.



엄마는 / 착한 일을 할 때마다 / 반짝이 스티커를 / 붙여 주신다 (별)


아이들은 / 학원 가고 / 숙제하고 / 텔레비전 보느라 // 무궁화꽃이 핀 줄도 모르고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심심해서 / 무궁화 혼자 꽃을 피웠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버이한테서 모든 것을 물려받습니다. 어버이한테서 피와 뼈와 살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마음결도 말씨도 물려받습니다. 꿈이랑 사랑도 물려받는데다가, 눈썰미랑 손길이랑 몸짓도 고스란히 물려받아요.


  아이들만 학원에 넣거나 학교에 보낸다고 해서 아이들이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어버이도 함께 배울 때에 아이들이 똑똑하게 자랍니다. 아이들만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슬기롭게 거듭나지 않아요. 어버이도 함께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키우고 넓힐 때에 비로소 아이도 어른도 함께 슬기롭게 거듭납니다.


  아이들이 먹는 밥을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차려서 주는 밥을 어릴 적부터 먹어요. 어버이(어른)가 스스로 즐기는 밥을 아이들한테 차려서 주기 마련이요, 아이하고 둘러앉은 밥상도 ‘아이 입맛’에 앞서 ‘어른 입맛’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어머니 손맛이든 할머니 손맛이든, 모두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주는 밥맛이에요. 그러니, 어른 스스로 밥을 새롭게 지어서 새로운 맛을 찾을 적에는 아이도 새로운 맛을 차근차근 익힙니다. 어른 스스로 삶을 새롭게 가꾸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빚을 적에는 아이도 꿈을 새롭게 품으면서 새로운 하루를 즐겁게 북돋울 만합니다.



엄마가 깎아 놓은 사과는 / 아주 달고 맛이 있어요 (사과의 길)


해님이 나오니까 / 입을 / 꼭 다물고 있다 (우산)



  동시집 《사과의 길》에 흐르는 이야기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김철순 님이 빚은 이 동시집에 흐르는 이야기는 요즈음 나오는 수많은 다른 동시집하고 비슷하게 ‘아이가 학교에서 겪는 삶’하고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집에서 어머니하고 부대끼는 삶’을 큰 줄거리로 삼습니다. 아무래도 오늘날 거의 모든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면 학교에 들어가고, 학교에 들기 앞서 학원을 다니기 마련이니, 이런 이야기를 동시로도 널리 쓸 만합니다.


  그런데, 《사과의 길》을 비롯한 오늘날 한국 동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학교와 학원과 집안 이야기는 있되, 아이와 어른이 삶을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성적이나 시험이나 숙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는다든지 고달픈 이야기는 어김없이 있지만, 아이와 어른이 저마나 가슴속에 꿈이나 사랑 같은 씨앗을 심어서 새로운 길을 걷는 이야기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습니다.


  재미난 말잔치나 돋보이는 말놀이는 있되, 말 한 마디에서 사랑을 길어올린다거나 글 한 줄에서 꿈을 키우는 웃음이나 노래는 아무래도 동시로 그리지 못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람들에게 / 시원한 그늘 만들어 주느라 / 오래 팔 벌리고 있는 / 느티나무 / 아무도 없는 / 캄캄한 밤에는 / 슬쩍, / 팔을 내릴지도 몰라 (그럴지도 몰라)


“이것도 몰라?” // 수학 시험 40점 맞았다고 / 우리 엄마 / 열 받았다 (수학은 정말 싫어)



  우리 어른들은 어떤 동시를 써서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줄 적에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쁘게 웃거나 노래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시험이나 성적이나 공부나 숙제나 학원을 놓고서 ‘어머니 마음에 잘 들 만큼 뭐든지 잘 해야’ 비로소 웃거나 노래할 만할까요?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학원이나 공부를 더 시키지 않을까요?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학원이나 공부는 더 끝없이 이어지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괴롭거나 고단하기 때문에 ‘현실을 잊도록 도와줄 만한’ 재미나거나 남다른 놀이를 찾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괴롭거나 고단할 줄 알면서도 정작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고단하게 내모는 틀’을 치우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재미나거나 남다른 놀이를 장난감이나 인터넷이나 컴퓨터나 손전화나 놀이기구 따위로 내주려고 합니다.


  나는 내 어릴 적을 돌아보아도 알 수 있고, 시골에서 늘 새롭게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아도 알 수 있는데, 아이들한테 이 놀이나 저 놀이를 가르쳐 주어야 아이들이 잘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장난감을 많이 사 주거나 선물해야 아이들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놀 겨를’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놀 곳’이 있어야 합니다. 놀 겨를을 주고, 놀 곳을 마련할 적에, 아이들은 누구나 스스로 놀이를 생각해 내어 기쁘게 즐겨요. 놀 겨를이 없거나 놀 곳이 없는 아이들은 골방에 스스로 갇혀서 손전화나 인터넷만 붙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농사짓는 우리 할머니 /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 학교 끝나자마자 / 집으로 뛰었다 // 송글송글 / 등에 땀이 솟아난다 / 땀이 마르자 / 삐죽삐죽 풀이 돋아난다 (내 등에 풀을 뽑는 할머니)



  맛있는 열매를 먹고 싶은 마음으로 씨앗을 심습니다. 맛있는 열매를 먹고 싶은 마음으로 나무를 언제나 곱게 돌봅니다. 맛있는 열매는 제철에 나는 열매인 줄 한 번 느낀 아이들은 ‘제철이 새로 돌아오는 날’까지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사월에 비로소 ‘제철 꽃’이 피고 오뉴월에 바야흐로 ‘제철 열매’를 맺는 딸기를 십이월이나 일월이나 이월에 아이들한테 먹이려고 애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제대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지요. 햇볕과 바람과 비를 즐겁게 먹고 흙에 뿌리를 내려서 자라는 ‘제철 열매’가 가장 맛있을 뿐 아니라 우리 몸에 가장 좋다고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줄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제철 열매처럼, 아이도 어른도 제대로 철이 드는 제대로 아름다운 삶을 지을 수 있어야지 싶어요.


  능금 한 알을 바라보면서, 감 한 알을 손에 쥐면서, 복숭아 한 알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랑스러운 길을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삶을 가꾸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동시가 되어야지 싶고, 시험공부나 입시나 숙제는 좀 옆으로 밀어놓고는, 아이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하루에 다문 한두 시간이라도 마음껏 놀 수 있는 넉넉하고 따사로운 보금자리와 마을과 학교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2.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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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갈 사람 창비시선 388
김중일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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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06



시와 눈송이

― 내가 살아갈 사람

 김중일 글

 창비 펴냄, 2015.5.8. 8000원



  낮에 마당에서 톱질을 합니다. 두 아이가 아버지 곁에 달라붙어서 톱질을 지켜봅니다. 바람이 꽤 드세기에 늦가을 한낮이어도 바람이 차갑습니다. 그렇지만 두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톱질을 재미나다는듯이 지켜봅니다. 한참 톱질을 하다가 빙그레 웃은 뒤 “도와줄래? 그 끝을 잡아 주라.” 하고 말합니다. 두 아이는 얼른 손을 내밀어 나무판 끝자락을 꼭 잡습니다. 추워서 장갑을 낀 손으로 붙잡습니다. 나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톱질을 합니다. 바람이 훅 불어서 톱밥을 날립니다. 톱밥이 날리니 두 아이는 눈을 질끈 감습니다. 그래도 나무판을 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어쩜 이리 대견하고 씩씩할까 하고 생각하며 톱질을 잇습니다.


  한참 톱질을 하니 큰아이는 춥다며 먼저 안으로 들어갑니다. 작은아이는 찬바람이 휭휭 불어도 톱질 구경을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혼자서 일을 더 할 수 있지만 작은아이를 꽁꽁 얼릴 수 있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고 함께 안으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해변에 떨어진 초록 샌들을 주워와 네게 주었다. 너는 내가 건넨 호박을 잘게 잘라 넣고 찌개를 끓였다. 곧 식탁 위에는 검은 물웅덩이 하나가 올라왔다. (평생)



  김중일 님이 빚은 시집 《내가 살아갈 사람》(창비,2015)을 읽습니다. 시집에 붙은 이름처럼, 시인 김중일 님은 이녁이 살아갈 사람 이야기를 나긋나긋 들려줍니다. 이제껏 함께 살아온 사람이 누구인가를 이야기하고,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사람은 어떠한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문득 우리 집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이 아이들은 이제껏 저희 어버이하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저희 어버이하고 살아갈 테지요. 이 아이들은 어버이 살림하고 함께 시골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고, 앞으로도 이 시골에서 새 하루를 아침저녁으로 맞이할 테지요.


  큰아이가 세 살이던 때까지 지낸 고장에서는 눈이 많이 내렸지만, 그 뒤로는 눈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고장에서 지냅니다. 큰아이는 눈을 보고 싶고 눈사람을 굴리고 싶다는 노래를 부릅니다만, 우리 고장에서는 눈을 구경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나는 장미처럼 새빨간 석양을 온통 주름투성이 얼굴로 모두 받으며 서 있다. 주름이 얼마나 깊어야 꽃잎이 되는가. (장미가 지자 장맛비가)



  십이월을 코앞에 둔 오늘 저녁, 우리 고장에도 처음으로 눈발이 날립니다. 다만 펑펑 쏟아붓는 눈송이는 아닙니다. 싸락눈이 가늘게 흩날립니다. 그래도 이 눈송이를 맞겠다면서 보름달이 환한 마당에서 두 아이는 춤을 춥니다.


  밤새 눈이 조금이나마 쌓일 만할까요. 전라남도 끝자락에 깃든 이 고장에 모처럼 눈이 소복히 쌓인 모습을 보여줄 만할까요.


  아이들은 눈을 바랍니다. 나는 눈보다는 빨래가 잘 마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눈놀이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가을비가 자꾸 내려서 빨래를 말리기 힘든 요즈막 날씨를 헤아리면서, 부디 햇볕이 쨍쨍 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눈을 뜰 적에 눈이 소복히 쌓인 마당을 바랍니다. 나는 찬바람이 사그라들어 포근한 볕이 고운 하루를 바랍니다. 이러다가 생각을 좀 바꾸기로 합니다. 한낮까지 눈을 누릴 수 있은 뒤에는 빨래도 잘 마르도록 해가 잘 나 주면 고맙겠네 하고 생각합니다.



어느새 잃어버린 책이 있네. 그럴 때가 있네. 그런 밤이 있네. 책장을 한장 넘기면 벌써 그런 새벽, 또 한장 넘기면 이미 그런 아침이 있네. (사랑이라는 상실)


노래할 수 있다면. / 입 크게 벌리고 이마에 주름 깊이 잡아가며 / 노래할 수 있다면. (노래할 수 있다면)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꿈을 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적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즐겁게 지을 삶을 꿈으로 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모르거나 찾지 못했다면, 앞으로 만날 누군가를 그리면서 새롭게 일구고 싶은 삶을 꿈으로 꾸어요.


  꿈을 노래로 부릅니다. 내가 이루려는 꿈을 노래로 부릅니다. 내가 가려는 길을 꿈으로 지어서 노래로 부릅니다. 내가 나누려는 사랑을 바로 이 길에서 이루려는 꿈으로 가슴에 품으면서 노래로 부릅니다.



흐린 책을 읽고 나는 계절이 뒤바뀌는 소리를 듣지 과연 밤낮은 무엇인가 흐린 책을 읽는 밤엔 고대하던 깊은 잠을 잘 수 있지 비는 밤새 이불로 조금씩 스며들어 대낮의 꿈속으로 뚝뚝 떨어지고 (흐린 책)


단식하는 그와 과힉하는 나 사이. 굴뚝과 굴뚝 사이. 철탑과 철탑 사이. 무덤과 무덤 사이. 지구 저편 폭격과 폭격 사이에 내걸린 부재자의 잿빛 외투 속에서. 오늘은 우주선이 솟구쳐오르는 마술이 상연되었다. (성간 공간)



  차갑게 부는 바람이 창호종이로 댄 문을 흔듭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마을고양이 여러 마리는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서 웅크립니다. 자전거 밑에서 두어 마리가 웅크리고, 섬돌 옆에 쌓인 종이상자 귀퉁이에서 두어 마리가 웅크립니다. 광에서 두어 마리가 웅크리고, 손수레 밑에서 또 두어 마리가 웅크립니다.


  바람 찬 오늘은 빨래가 다 안 말라서 마루로 들였으나 마루에서도 마를 낌새가 보이지 않아 방으로 다시 들입니다. 밤새 잘 말라 주렴 하고 자꾸 만져 봅니다. 깊이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고, 이마를 쓸어넘기며, 볼에 쪽쪽 뽀뽀를 합니다. 부엌하고 방바닥을 치우고, 비질도 하다가는, 흩어진 장난감을 주섬주섬 모아서 갈무리합니다.


  시집 《내가 살아갈 사람》을 쓴 시인은 이녁한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님하고 이 겨울에 새로운 살림을 즐겁게 가꿀 테지요. 그리고 시인은 시인대로 스스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님이 되어 이녁 둘레에 있는 사람한테 즐거운 웃음을 나누어 줄 테고요.


  이제 두 아이 사이로 파고들어 함께 잠들기 앞서 조용히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부터 내다볼 테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밥을 지어서 맛나게 함께 먹을까 하고 바지런을 떨 테지요. 4348.11.26.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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