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토끼 난다詩방 2
성미정 지음, 배재경 그림 / 난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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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58



아이하고 누리는 하루는 모두 노래

― 엄마의 토끼

 성미정 글

 배재경 그림

 난다 펴냄, 2015.2.15.



  아이는 노래를 반깁니다. 어떤 노래가 들려와도 아이는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대중노래이든 민중노래이든, 자장노래이든 놀이노래이든, 들노래이든 일노래이든, 아이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저 노래라면 모두 기쁘게 듣고는 재미나게 따라 부릅니다.


  아이는 노래를 짓습니다. 어른이 들려주는 노래를 아이 나름대로 고쳐서 부르기도 하고, 아무도 아이한테 안 들려준 노래를 아이가 처음으로 지어서 부르기도 합니다. 가락을 몰라도 노래를 부르고, 글만 덩그러니 있어도 새롭게 가락을 입혀서 부릅니다.


  노래하는 아이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노래하는 아이는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노래하는 아이는 맞고 틀림을 재지 않습니다. 그저 노래합니다. 마냥 웃으면서 노래하고, 여기에 춤을 곁들여서 온몸에 땀이 흐르도록 시원하게 놀 줄 압니다.



.. 이 몸은 이제 1학년이니까 / 초등학교 다니는 형이니까 // 친구들과 있을 때 엄마가 부르면 / 금방 대답하지 않습니다 ..  (1학년 형)



  나도 아이였을 적에 노래를 몹시 즐겼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러다가 둘레 어른한테서 꾸지람을 듣습니다. 버스라든지 기차 같은 데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다가는 꿀밤을 맞습니다. 다른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하니까요. 학교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없어요. 길을 걸어가면서도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노래는 언제 불러야 할까요? 학교에서 음악 시간이 되어야 노래를 불러야 할까요? 음악학원 같은 데를 나가야 비로소 노래를 부를 만할까요? 연예인이나 가수를 꿈꿀 때에 비로소 ‘노래 연습’을 해도 될까요? 아니면 노래방에 가서 돈을 내야 노래를 불러도 될까요?



.. 길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 요즘 애들은 혼자 자라서 / 저밖에 모른다 하셔 // 나는 친구들과 장난감도 / 과자도 사이좋게 나눠 먹는데 ..  (외둥이 1)



  동시집 《엄마의 토끼》(난다,2015)를 읽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성미정 님이 글을 쓰고, 아이 배재경 님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빚은 동시집이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동시를 씁니다. 아이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아이가 누리는 삶’을 동시로 담습니다. 아이는 어머니도 지켜보지만, 둘레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모습을 찬찬히 헤아린 뒤 그림에 담습니다.



.. 친구들한테 개새끼라고 했다가 / 선생님께 혼쭐난 다음부터 // 민이는 선생님 몰래 / 친구들 귀에 대고 / 개새끼라고 속삭였어 / 내 귀에도 개새끼를 넣어주었어 ..  (개새끼)



  아이와 함께 빚은 동시집 《엄마의 토끼》는 다른 여느 동시집하고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한집에서 함께 누리는 살내음이 흐르고, 두 사람이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흐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학교 안팎에서 겪는 이야기가 동시로 태어납니다. 아이가 집 언저리에서 마주치는 이야기가 동시로 거듭납니다.


  동시에 깃드는 이야기는 꼭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개새끼〉 같은 동시를 읽으면, 오늘날 초등학교에서조차 엿볼 수 있는 쓸쓸한 모습이 흐릅니다.


  참말 아이들은 왜 초등학교 다니는 나이에도 ‘개새끼’ 같은 거친 말을 입에 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어떤 어른이 아이한테 이런 거친 말을 들려주거나 물려주었을까 궁금합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아이들은 이런 거친 말을 아주 쉽게 내뱉습니다. 시골 군내버스에서도, 시골 면소재지 놀이터에서도, 시골 읍내나 면내 길거리에서도 아이들은 이런 거친 말을 참으로 쉽게 읊습니다.



.. 친구 따라서 피아노 학원 구경 간 날 / 피아노가 싫어졌다 // 친구가 건반을 잘못 누르면 선생님이 / 볼펜으로 친구 손가락을 때렸다 ..  (피아노)



  우리는 배우려고 학교에 갑니다. 우리는 삶을 배우려고 학교에 갑니다. 아이를 학교에 넣을 적에는 ‘더 높은 학교’에 ‘더 나은 성적’으로 들어가도록 하려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더 이름난 대학교’에 뽑히도록 어릴 적부터 길들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삶과 사랑과 꿈을 배워서, 날마다 새로운 기쁨을 스스로 길어올리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도록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아이가 씩씩하게 두 다리로 서서 두 손으로 모든 사랑과 꿈을 지어서 삶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가꾸기를 바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동시를 써서 아이하고 나눈다고 할 적에는, 어른하고 아이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새롭게 지을 삶을 담으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현실을 고스란히 담는 동시가 아니라, 삶을 새롭게 지으려는 꿈을 담는 동시일 때에 기쁘게 노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픈 사회와 슬픈 학교를 동시로도 보여줄 수 있습니다만, 아픔과 슬픔을 보여줄 적에도 이 아픔과 슬픔에 얽매이거나 맴도는 얼거리가 아니라, 아픔과 슬픔을 사랑과 꿈으로 삭이거나 녹이는 슬기로운 숨결을 들려줄 수 있을 때에 동시라고 하는 문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엄마가 되기 전의 엄마는 / 삐삐 롱스타킹이었어 / 닐슨 씨보다 나무를 잘 탔지 / 인어공주였던 적도 있어 / 왕자한테 메롱 / 지느러미 흔들며 바닷속으로 돌아갔지 ..  (엄마가 되기 전의 엄마)



  동시집 《엄마의 토끼》는 살가운 손길로 또박또박 쓴 씩씩한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다만, 아이가 스스로 짓거나 가꾸는 사랑이나 꿈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동시는 어른이 쓰니까 아무래도 어른 눈길이나 눈높이가 될 수밖에 없는지 모르나, 《엄마의 토끼》에 실린 동시는 사회현실과 학교현실은 흘러도, 이러한 현실을 씩씩하게 맞아들이면서 기쁘게 노래하는 이야기까지 뻗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수학 공부하는 일요일엔〉이나 〈팬지〉나 〈까닭이라는 닭을 본 적이 있니〉나 〈무지개 점수〉나 〈문제지 풀 때마다〉 같은 작품을 보면, 고작 초등학교 1학년 모습인데에도 학교와 집에서 아이가 짓눌리는 ‘시험공부’나 ‘입시공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 문제지 풀 때마다 / 곁에 앉아 있는 / 엄마 얼굴을 살피는 / 내게 // 엄마는 / 이 녀석아 / 답이 네 머릿속에 있지 / 엄마 얼굴에 써 있냐 / 핀잔을 주지만 ..  (문제지 풀 때마다)



  모든 동시가 언제나 노래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어떤 동시이든 아이들이 읽을 적에 가락을 입혀서 흥얼흥얼 기쁘게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무리 사회현실이나 학교현실이, 게다가 집이나 마을이나 학원에서도 으레 ‘시험공부’와 ‘입시공부’에 얽매여야 한다고 하더라도, 늘 이런 공부 이야기만 동시로 쓴다면, 아이들이 너무 힘들고 따분해 하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이 꿈을 꾸고 사랑을 헤아릴 수 있는 동시를 쓴다면, 아이하고 함께 어른도 언제나 꿈을 꾸고 사랑을 빛낼 동시를 노래한다면, 삶도 집도 마을도 학교도 모두 아름답게 새로 태어나는 바탕이 튼튼히 서리라 생각합니다. 4348.5.29.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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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남자 시코쿠 문학과지성 시인선 R 3
황병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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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95



시와 하룻밤

― 여장남자 시코쿠

 황병승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2.11.30.



  새벽바람을 느끼면서 문득 눈을 뜹니다. 시골에서는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설렁합니다. 설렁설렁 파고드는 바람을 느끼면서, 옆에 누운 아이들이 이불을 잘 덮고 자는가 하고 살핍니다. 이불을 뻥 걷어차고 자다가 새우처럼 옹크린 아이를 보면 반듯하게 눕힌 뒤 이불을 고이 여밉니다. 이불을 고이 여미어 주면 새우처럼 옹크린 아이는 기지개를 켜면서 이불을 두 손으로 꼭 쥡니다. 밤새 수없이 잠을 깨면서 이불깃을 여미어 준 뒤, 조용한 새벽에 씩씩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아침을 지으려고 부엌으로 갑니다.



.. 나는 입의 나라에 한번씩 다녀올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침묵의 식탁을 향해 / ‘제발 그 입 좀 닥쳐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  (주치의 h)


..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어요 / 어머니 빗소리가 좋아요 ..  (이파리의 저녁 식사)



  황병승 님이 빚은 시를 엮은 《여장남자 시코쿠》(문학과지성사,2012)를 읽습니다. 황병승 님이 쓰는 시를 놓고 ‘실험시’나 ‘현대시’라고 하는 문학비평이 있고, 이녁을 가리켜 ‘문제적 시인’이라고도 말하는 듯합니다. 나는 실험시나 현대시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나는 문학비평도 잘 모릅니다. 시집을 바라보면 시집을 읽고, 수필책을 마주하면 수필책을 읽으며, 동시집을 손에 쥐면 동시집을 읽습니다.


  곰곰이 보면, 아이들이 쓰는 글이야말로 ‘실험정신’이 가득하고, 언제나 새롭구나(현대시)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떤 굴레에도 안 갇히면서 글을 쓰니까 모든 글이 실험정신이 가득하다고 할 만하며, 아이들은 어른들 흉내를 낼 까닭이 없으니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글에 담는다고 할 만합니다.


  다만, 글쓰기 학원을 다닌다거나 학교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정형 틀에 짜맞추도록 길들이면, 아이들 글에서도 실험정신이나 현대시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 산에 들에 진달래 개나리 피거나 말거나 / 봄을 선언하고 나는 봄 속에 갇혔습니다 ..  (사성장군협주곡)


.. 어느 날 누군가 내 필통에 빨간 글씨로 똥이라고 썼던 적이 있다 ..  (여장남자 시코쿠)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는 황병승 님 이야기입니다. 황병승 님이 스스로 겪는 삶을 들려주는 이야기요, 황병승 님을 둘러싼 수많은 이웃과 동무가 살아가는 하루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황병승 님이 두 다리를 딛고 선 이 땅에서 짓는 하룻밤을 갈무리한 이야기가 시집 하나에서 찬찬히 드러납니다.


  시는 글잣수를 착착 맞추어서 쓸 수도 있습니다. 시는 줄을 알맞게 띄어서 쓸 수도 있습니다. 시는 쉽게 맑은 낱말을 골라서 쓸 수도 있습니다. 시는 숲이나 들이나 바다를 노래하는 가락에 실어서 쓸 수도 있습니다. 시는 사회를 나무라거나 정치를 꾸짖거나 진보를 외치려는 뜻을 담아서 쓸 수도 있습니다. 아픈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내가 너무 괴로워서 죽겠노라 하는 마음을 시로 쓸 수도 있습니다.


  시로 쓰지 말아야 하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시로 쓸 수 없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시로 써서는 안 될 이야기는 없습니다.



.. 항상 떼쓰는 사람 이제 다른 시간이에요 당신의 붉은 뺨이 무서워요 새 사람을 만나세요 그만 그만해요 난 죽은 년이잖아요! 단 한 번뿐인 날이에요 날 잊기 위해서 모두들 몰려올 거라구요 ..  (그 여자의 장례식)


.. 나는 일어나지 않았네 꿈이겠거니 했지 자네도 알지 않나 생크림을 한 스푼 떠먹고 잠드는 습관 달콤한 입술을 혀로 핥으며 나는 계속 잤지 뭐야 잠결에 다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번엔 사부로였지 ..  (혼다의 오·세계五·世界 살인 사건)



  우리 집 다섯 살 작은아이는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놀다가, 자동차끼리 쿵 부딪히게 해서 ‘사고가 났다!’ 하고 외칩니다. 그러나 여느 어른이 보기에 장난감 자동차는 깨지지도 망가지지도 부서지지도 않습니다. 아이 마음속에서는 두 장난감 자동차가 와장창 깨지거나 망가지거나 부서졌습니다. 아이는 이내 두 장난감 자동차를 한손에 쥐고 하늘로 날립니다. 사고가 난 자동차는 곧바로 말끔해졌고, 어떤 추진동력장치도 없이 하늘을 멋지게 납니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이가 누리는 하루를 헤아립니다. 노는 아이들은 저마다 새롭게 이야기를 꾸밉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신나게 놀면서 온갖 이야기를 마음껏 짓습니다.


  아이들 놀이짓은 모두 ‘실험정신’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은 낡은 옛 틀에 맞추어서 놀지 않습니다. 언제나 ‘바로 오늘 이곳(현대)’에 맞추어 즐겁게 놉니다.


  문학평론을 하는 분들은 어느 시는 서정시요 어느 시는 실험시라고 금을 긋지만, 굳이 금을 그어야 하지 않습니다. 평론을 해야 하니 금을 그을 테지만, 평론이 아닌 ‘시를 쓴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헤아리고 ‘시를 쓴 사람이 지은 삶’을 돌아본다면, 어떤 시이든 제 삶을 찬찬히 아로새기려고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작년 겨울의 일이었네 우리는 그 뒤로 두 번 다시 그때의 감정으로 연주할 수 없었다, 라고 말하면 너희는 오우, 약간 과장된 표정을 지을 수도 있겠지 ..  (밍따오 익스프레스 C코스 밴드의 변)


.. 뒤뜰의 작은 창고에서 처음으로 코밑의 솜털을 밀었고 / 처음으로 누이의 작은 치마를 훔쳐 입었다. 생각해보면 / 차라리 쥐고 되고 싶었다 / 꼬리도 없이 늘 그 모양인게 싫어 ..  (너무 작은 처녀들)



  황병승 님은 ‘여장 남자’일까요? 황병승 님을 둘러싼 이웃이나 동무는 ‘여장 남자’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여자처럼 꾸미는 남자’가 있고, ‘남자처럼 꾸미는 여자’가 있습니다. ‘나는 여자이고 싶은데 왜 남자로 태어났을까?’ 하고 끝없이 물으면서 괴로운 사람이 있고, ‘나는 왜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났는가?’ 하고 가없이 되물으면서 고단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이러한 뜻이 있습니다. 남자가 아닌 여자로 태어났으면, 어김없이 어떤 뜻이 있습니다. 괴롭거나 고단하지만, 아프거나 슬프지만, 이 삶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뜻을 찾고 길을 헤아립니다. 이 삶이 온통 가시밭길이지만, 이 가시밭길을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한 걸음씩 새롭게 내딛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태어난 새 목숨일까요? 무엇을 하면서 즐거운 보람을 누릴 새 숨결일까요? 어디에서 어떻게 살면서 어떤 곳을 바라보아야 내 마음에 기쁜 노래가 흐를 만할까요?



.. 이봐, 이 글은 지옥에서 적는 글. / 너는 끝까지 나의 손을 붙잡으려 했다고 우기지만, 입술을 쫑긋거렸을 뿐 / 너는 너무 많은 술과 알약에 빠져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  (How does it feel?)


.. 우리는 이상하게 예쁘게 지구에 남아 / 밤 풍경을 바라보는 쓸쓸한 궤도에서 ..  (앨리스 맵map으로 읽는 고양이좌座)



  내가 스스로 지옥이라고 생각하면 내 삶은 날마다 지옥입니다. 내가 스스로 천국이라고 여기면 내 하루는 언제나 천국입니다. 내가 스스로 즐겁다고 생각하면, 김치 한 조각이랑 찬밥을 먹으며 잔칫밥입니다. 내가 스스로 지겹다고 여기면, 잔칫상을 번듯하게 차렸어도 더없이 짜증스럽고 싫습니다.


  내 마음에 하느님이 있습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삶을 짓도록 북돋우는 하느님이 곱게 웃으면서 나를 쳐다봅니다. 네 마음에 하느님이 있습니다. 네가 이 지구별에 태어나서 사랑을 짓도록 도와주는 하느님이 맑게 노래하면서 너를 바라봅니다.


  내 하느님과 네 하느님이 만납니다. 아침에 흐르는 멧새 노랫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두 하느님이 만납니다. 저녁에 퍼지는 개구리 노랫소리를 같이 누리면서 두 하느님이 춤을 춥니다.


  시골에서 울려퍼지는 시골노래가 도시로 흩어집니다. 도시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시골로 번집니다. 하늘이 매캐하거나 뿌옇더라도 온누리를 가득 채우는 밤별은 눈부시게 빛납니다. 이곳에 앓아누운 할아버지가 있으면, 저곳에 새로 태어나는 아기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숨을 거둔 슬픈 이웃 할머니가 있으면, 저곳에 새로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는 기쁜 이웃 아이가 있습니다.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를 차근차근 읽으면서 삶노래와 사랑노래와 꿈노래를 가만히 부릅니다. 4348.5.1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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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6-11-04 17:46   좋아요 0 |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879993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8&aid=0003667793

황병승이라는 사람을 놓고 이런 대자보가 나왔다고 합니다.
별점을 1점으로 바꾸려다가
그래도 2점을 주는 쪽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늑한 얼굴 랜덤 시선 12
한영옥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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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94



시와 입술

― 아늑한 얼굴

 한영옥 글

 랜덤하우스 펴냄, 2006.4.10.



  아이가 어버이 볼에 입을 맞춥니다. 어버이도 아이도 볼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릅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어른과 어른이 입을 맞춥니다. 두 어른은 새로운 마음이 되어 볼이 발갛게 달아오릅니다. 입술은 그냥 입술일 뿐이지만, 이 입술과 저 입술이 만나서 새로운 숨결이 흐릅니다. 바람을 받아들이는 입은 언제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서 둘레에 따사롭거나 차갑거나 포근하거나 매몰찬 기운을 퍼뜨립니다.



.. 들나물꽃은 봄에 피네 / 산나물꽃은 여름에 피네 // 더러는 늦어져 / 여름에도 들나물꽃은 피지 / 가을에도 산나물꽃은 피지 ..  (꽃피는데)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입술이요, 미움을 외칠 수 있는 입술입니다. 꿈을 노래할 수 있는 입술이요, 아픔을 터뜨릴 수 있는 입술입니다. 참말을 할 수 있는 입술이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입술입니다.


  어떤 입술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입술이 되어 하루를 여는가요? 서로서로 어떤 입술로 마주할 때에 기쁘거나 즐겁거나 서운하거나 섭섭할까요?



.. 보슬비 마알갛게 얼비치고서 / 국수나무 순 소복소복해지면 / 국수나무 순 삶아 먹고 / 내처 장대비 쏟아지고서 / 국수버섯 소복소복해지면 / 버섯국 끓여 먹으며 ..  (봄비로, 가을비로)



  한영옥 님 시집 《아늑한 얼굴》(랜덤하우스,2006)을 읽습니다. 조곤조곤 흐르는 삶노래를 읽으면서 내 얼굴은 내가 보기에 어떠한가 하고 헤아립니다. 집에 거울을 두지 않고, 어디 가서도 거울을 보지 않기에 내 낯빛이 어떠한지 잘 모릅니다. 다만,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내 낯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쁠 때에는 기쁜 낯빛이 될 테고 슬플 때에는 슬픈 낯빛이 되겠지요. 아플 때에는 아픈 낯빛이 되다가는 고단할 때에는 고단한 낯빛이 될 테고요.


  반가운 사람하고 있으면 반가운 낯빛이 됩니다. 거북한 사람이랑 있으면 거북한 낯빛이 됩니다.


  문득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반갑게 여길 사람은 나를 반갑게 맞이할까요? 내가 거북하게 여길 사람도 나를 거북하게 마주할까요? 나를 마주해야 하는 이웃이나 동무는 내가 반가울까요, 거북할까요?



.. 목화 송이인 양 굴뚝에 들어가서 / 저녁 연기로 보송보송 다시 피는 / 그런 마알간 날은 만나는 얼굴마다 / 볼수록 목화솜처럼 푸근하여라 ..  (그런 마알간 날)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기에 낯빛을 잘 알지 않습니다. 낯빛은 ‘살갗 빛깔’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낯빛은 ‘마음 빛깔’을 나타냅니다.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은 환한 낯빛입니다. 마음이 아픔으로 얼룩진 사람은 파리한 낯빛입니다. 마음이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은 발그스름하게 따스한 낯빛입니다. 마음이 어둠으로 그득한 사람은 새까만 낯빛입니다.


  어느 곳에 깃들든 따사로운 보금자리라고 느끼는 마음이라면, 어느 곳에 깃들더라도 환한 낯빛이 됩니다. 어느 곳에 머물든 갑갑한 감옥이라고 여기는 마음이라면, 어느 곳에 머물든 새까만 낯빛이 됩니다.


  우리 낯빛은 마음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 낯빛은 마음을 스스로 바꾸면서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기에 감추거나 숨기거나 바꾸는 낯빛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려 할 때에 비로소 바꿀 수 있는 낯빛입니다.



.. 눈 비비며 일어나 몇 걸음 하면 / 큰엄마 계시고 작은엄마 계셨다 / 사촌 언니랑 메뿌리 캐어가면 / 큰엄마 메떡 쪄주시고 / 사촌 동생이랑 소루쟁이 뜯어가면 / 작은엄마 소루쟁잇국 끓여주셨다 / 큰집 사시는 할머니는 쇠죽가마에서 / 뜨끈한 감자알 수북이 골라주셨다 ..  (홍초 잎사귀)



  시집 《아늑한 얼굴》을 생각합니다. 시를 쓴 한영옥 님은 이녁한테 아름답거나 즐거웠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포근한 말씨로 삶을 노래합니다. 시를 쓴 한영옥 님 스스로 아프거나 고되거나 벅차거나 까마득한 이야기를 되새길 적에는 그야말로 아프거나 고되거나 벅차거나 까마득한 말씨로 바뀌어 삶을 풀어놓습니다.


  싯말 하나는 억지로 꾸밀 수 없습니다. 이런 낱말과 저런 말투로 싯말을 엮더라도 속내를 감출 수 없습니다. 시는 문장기교나 수사법이 아닙니다. 시는 문예사조나 유행이나 흐름이 아닙니다. 시는 오로지 마음입니다. 싯말 한 마디는 언제나 마음빛이요 마음결이며 마음씨입니다.



.. 그가 없는 지금, /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는다 / 아랫입술과 윗입술이 / 서로를 말아들이며 / 얼굴 속에 집어넣으려 애쓰고 있다 ..  (아슬아슬한 몸)



  그를 만나는 나는 그이 때문에 시를 쓰지 않습니다. 그를 만나는 ‘내’가 있기에, 나 스스로 생각을 가다듬고 마음을 추슬러서 시를 씁니다. 그를 만나기에 새롭게 노래하는 몸과 머리와 마음이 될 테지만, 그를 만나든 만나지 않든, 바뀌거나 달라지는 것은 바로 ‘내’ 몸이요 머리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 시를 바꾸어 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마주하는 ‘내(글쓴이)’가 스스로 시를 바꿉니다. 그 사람을 떠올리거나 되새기는 ‘내(글쓴이)’가 바로 시를 새롭게 쓰는 숨결이고 손길입니다.


  사랑에 입을 맞추고, 삶에 입을 맞춥니다. 꿈자락에 입을 맞추고, 노랫가락에 입을 맞춥니다. ‘내(글쓴이)’ 입술은 사랑과 삶과 꿈을 노래와 같이 맞추면서 춤을 추고 싶은 마음입니다. 4348.5.1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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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에 아픈 사람 민음의 시 120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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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4



어머니가 물려주는 노래

― 해질녘에 아픈 사람

 신현림 글

 민음사 펴냄, 2004.7.10.



  말은 어머니가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랄 적에 아기는 어머니가 여느 때에 하는 말을 고스란히 듣습니다. 아기는 어머니 뱃속에서 느긋하게 자라고 나서 이 땅에 태어난 뒤에는 어머니 품에서 젖을 먹으면서 새롭게 자라는데, 이동안 어머니가 아기한테 들려주는 말을 새삼스레 듣습니다.


  아기한테는 어머니 뱃속에서 지낼 무렵과 어머니 젖을 빨며 자라는 동안에 배우는 말이 새롭습니다. 아기는 어머니 뱃속에서 어머니 목소리랑 손길을 나란히 누리면서 말을 노래처럼 듣다가, 이 땅에 태어난 뒤에는 어머니 눈길이랑 몸짓을 나란히 지켜보면서 말을 춤사위처럼 익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어머니한테서 말을 물려받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한테서 말을 물려받았고, 우리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를 낳은 어머니한테서 말을 물려받았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어머니가 아이를 낳아 온 사랑으로 말을 물려줍니다.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쓰는 말은 아스라히 먼 옛날부터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면서 물려준 말입니다.



.. 가난에 갇힌 것보다 / 힘없는 나라에 사는 일보다 / 체념에 익숙해지는 것이 더 서러워 / 슬픈 눈을 땅에 떨어뜨리며 ..  (흐느껴라, 노래하라, 타올라라)


.. 무섭게 흐르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 시간 / 달리는 바다는 달리지 않는 바다 / 시간이란 아예 없는 겁니다 최대의 재산인 꿈이 있을 뿐이죠 ..  (우울한 로맨스-휘말려 가다)



  말은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찬찬히 물려줍니다. 어머니는 따사로운 사랑노래를 물려주고, 아버지는 슬기로운 삶노래를 물려줍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따사롭게 흐르는 사랑으로 노래와 같은 말을 물려주고, 아버지는 언제나 한결같이 기쁜 삶으로 웃음짓는 말을 물려줍니다.


  아기를 낳으려 한다면, 어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이녁 삶을 새롭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기를 낳으려 하는 어버이는 돈만 많이 벌어서는 안 됩니다. 아기는 돈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사랑을 바랍니다. 아기가 바라는 사랑을 물려줄 수 있게끔,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사랑을 한결같이 물려줄 수 있을 만한 너른 가슴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기 눈망울을 바라보셔요. 아기 눈망울은 오직 어버이 사랑을 바랍니다. 아기가 피자나 케익을 바랄까요? 아기가 떡이나 밥을 바랄까요? 아기는 오직 어머니 젖이랑 물을 조금씩 받아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젖이랑 물이랑 바람,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아기 몸은 씩씩하게 큽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어야지요. 바로 사랑스러운 말입니다. 노래로 불러서 물려주는 사랑스러운 말이 있어야 합니다.



.. 오래된 꿈과 비밀을 간직한 부드러운 사람이고 싶어 / 부드러움은 / 망가진 것을 소생시킬 마지막 에너지라 믿어 ..  (해질녘에 아픈 사람-세월아,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를 더 아프게 해라)



  갓난쟁이한테 그림책이나 동화를 읽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갓난쟁이는 이야기책을 받아먹지 않습니다. 갓난쟁이는 책을 읽어 주는 ‘목소리’만 받아먹습니다. 그러니까, 아기를 옆에 누이고 영어 그림책이나 영어 동화책을 읽어 준다면, 아기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어버이는 아기가 일찌감치 영어를 잘 배우기를 바랄는지 모르나, 아기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아요. 아기는 오직 한 가지 목소리만 듣고 싶습니다. 저를 이 땅으로 부른 어버이가 얼마나 깊고 너른 사랑으로 저를 바라보는가 하는 대목을 알고 싶습니다.


  일하면서 부르는 모든 노래는 삶노래이면서 자장노래이고, 일노래이면서 놀이노래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여느 때에 흔히 부르는 일노래를 귀여겨들은 뒤 저희끼리 놀면서 이 일노래를 놀이노래로 삼아서 부릅니다. 나중에는 일노래를 조금씩 바꾸어요. 노랫가락과 노랫말을 아이 나름대로 바꾸어 새로운 놀이노래를 짓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곁이나 둘레에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모든 말을 다 받아먹으니까요. 아이들이 기쁜 눈망울로 아름답게 받아먹을 만한 가장 사랑스럽고 착하면서 참다운 말을 하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어른 스스로 가장 사랑스러운 숨결이 되어야 하고, 어버이라면 누구나 가장 착하고 참다우면서 고운 넋이어야 합니다.



.. 나는 나를 깨워 이렇게 말하겠죠 / “내가 나를 가질 수 없는데 /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져서 뭐 하냐”고요 ..  (가질 수 없는 건 상처랬죠?)


.. 사랑 안에 들어가 살고 싶어 / 사랑으로 이승을 건너고 싶어 .. (사랑)



  신현림 님 시집 《해질녘에 아픈 사람》(민음사,2004)을 읽습니다. 사랑을 바라고, 사랑을 찾으며, 사랑을 노래하고 싶은 신현림 님이 젊은 날에 쓴 시를 그러모은 책입니다(그렇다고 신현림 님이 이제는 ‘안 젊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해질녘에 아픈 사람은, 해뜰녘에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해질녘에만 아프고, 해뜰녘에는 안 아플까요. 해질녘뿐 아니라 해뜰녘에도 아플까요.



.. 전쟁이나 대구 참사처럼 사람이 만든 재앙은 / 어미가 막을 순 없지만 / 네가 그린 코끼리를 하늘로 띄울 수 있고 / 어미의 눈물로 한 사발 밥을 만들 수 있고 / 어미의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 희망의 폭동을 일으킬 수 있지 / 고향 저수지를 보면 나는 멋진 쏘가리가 되고 / 너를 보면 섬이 된단다 / 너라는 근사한 바다를 헤엄치는 섬 ..  (싱글 맘-엄마는 너를 업고 자전거 탄단다)



  시집 《해질녘에 아픈 사람》을 읽으면 ‘싱글 맘’ 이야기가 흐릅니다. 신현림 님은 가시내를 낳아 씩씩하게 이 아이와 살아간다고 합니다. 아이가 받아먹을 삶노래를 언제나 싱그러이 부르고, 아이와 함께 어른도 함께 누릴 사랑노래를 늘 해맑게 부릅니다.


  때로는 아픔이 사무쳐서 슬픈 노래를 부르지만, 아이 얼굴을 바라보면서 새삼스레 빙그레 웃음짓고는 씩씩하게 기쁜 노래로 고쳐서 부릅니다. 이 지구별에서 살아갈 기쁜 숨결로 거듭나려고 스스로 애씁니다. 이 땅에서 꿈꾸며 노래하는 예쁜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 온힘을 기울입니다.



.. 만화는 단추만한 구멍을 뚫어 여유로운 바람을 불어넣는군. ‘내가 좋아하는 건 너뿐’이란 말에 사랑 받는 기분에 휩싸여 오전 열한 시에 쏟아지는 햇살같이 따뜻하고, 창밖 행인들이 아름다워 뵈는군. 시냇물엔 하얀 벚꽃잎이 쌓여 흐르고 봄바람에 보들보들 길이 미끄러지는군 ..  (순정 만화에 중독되겠네)


.. 벨벳처럼 부드러운 어둠 속에 내가 있고 / 여자의 몸보다 사람의 몸이길 바라는 내가 있소 ..  (우울한 육체의 시-생각이 많은 몸)



  어머니랑 아버지가 들려주는 노래를 물려받은 아이는 새로운 어른으로 자랍니다. 새로운 어른이 된 아이들은 이 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다시금 새로운 노래를 부르면서 새로운 아이를 낳습니다.


  어제만 바라본다면 슬픔만 가득할 수 있습니다. 오늘만 바라본다면 까마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에 이어 찬찬히 찾아올 모레를 바라본다면, 이 앞날을 눈물이나 슬픔으로만 채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발 새롭게 내딛을 모레에는 기쁜 웃음이 넘치도록 맑은 노래를 불러야지요.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웃음꽃을 피우는 노래를 불러야지요.


  사람이 되는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이 되는 노래를 부릅니다. 삶이 되는 노래를 부릅니다. 말 한 마디는 사람노래이면서 사랑노래이고 삶노래입니다. 너와 나 사이를 가르는 쇠가시울타리가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아름답게 흐르는 무지개가 되도록 노래를 부릅니다.



.. 나무마저 없다면 이곳은 딱딱한 피자 한 덩이요 / 삭막하오 요즘 사람들은 폭탄 같소 성이 나 있소 ..  (한잔의 서울을 들이마시오)


..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스스로 노래가 됩니다. 꽃씨를 심는 사람은 스스로 꽃이 됩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파란 숨결로 웃는 사람은 스스로 바람이 됩니다.


  무엇이 되든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무엇이 되든 저마다 이루는 꿈입니다. 이리하여,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삶을 짓는 어버이나 어른이라면, 가슴에 고운 꿈씨를 심기 마련입니다. 너와 내가 한넋이 되어 따사로이 손을 맞잡는 삶을 이루고 싶은 꿈씨를 심습니다. 우리가 함께 큰 사랑이 되어 넉넉하게 웃음짓는 하루를 짓고 싶은 노랫말을 씨앗으로 심습니다.


  어머니가 물려준 사랑스러운 말을 물려받은 나는 어느새 새로운 어머니가 됩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아름다운 말을 이어받은 나는 어느덧 새로운 아버지가 됩니다. 너와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활짝 웃음짓습니다. 4348.5.10.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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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는 부끄럼쟁이
오장환 지음, 도종환 엮음, 곽명주 그림 / 실천문학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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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를 사랑하는 시 57



포근한 마음을 꿈꾸는 노랫가락

― 부엉이는 부끄럼쟁이

 오장환 글

 도종환 엮음

 곽명주 그림

 실천문학사 펴냄, 2014.9.15.



  어버이가 밥을 지으면서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밥 익는 냄새를 큼큼 맡으면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가 빨래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면서 조잘조잘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가 밥을 지으면서 투덜거리거나 골을 부리면, 아이들은 밥을 먹는 자리에서 주눅이 들거나 쭈뼛거립니다. 어버이가 빨래나 청소를 하면서 잔소리만 잔뜩 늘어놓으면, 아이들은 어버이가 내쏘는 잔소리를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 빨래 합니다. / 빨래 합니다. // 엄마는 내 옷, / 나는 풀각시 / 시집가는 때때옷 ..  (빨래)



  오장환 님 동시집 《부엉이는 부끄럼쟁이》(실천문학사,2014)를 가만히 읽습니다. 동시집인 만큼 어린이가 읽도록 쓴 시입니다. 누구보다 어린이가 즐겁게 읽으면서 마음밭에 생각 씨앗을 곱게 심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쓴 시입니다.


  이 동시집에 깃든 동시는 일제강점기에 썼겠지요. 이웃나라 군홧발에 짓밟힌 아이들한테 새로운 꿈을 심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썼겠지요.


  아픈 아이들한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총칼을 앞세워 쳐들어온 사람들하고 총칼로 맞서서 싸우자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아니면, 총칼을 모두 내려놓고 사이좋게 이웃이나 동무가 될 수 있는 길을 밝혀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 봉사 씨는 / 톡, 톡, 튀어 / 땅으로 떨어졌었어요. / 올여름에 / 빨간 꽃이 다시 피려고 / 한겨울을 / 땅속에서 지냈답니다 ..  (봉사꽃)



  사랑은 언제나 사랑을 낳습니다. 꿈은 언제나 꿈을 낳습니다. 콩씨를 심으니 콩이 자라고, 팥씨를 심으니 팥이 자랍니다. 민들레씨가 퍼지면 민들레가 새로 돋고, 봉숭아씨가 퍼지면 봉숭아가 새로 돋지요. 그러니까, 미움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미움이 자랍니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따돌림이나 괴로움이 자라요. 전쟁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마땅히 전쟁이 불거지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이라는 씨앗을 심으면, 아이들 마음에는 입시지옥에 얽매이는 이야기가 자랍니다.



.. 개똥불은 / 초롱에 불을 밝히고 / 메뚜기 새끼, 불빛 찾아 나온다. / 올챙이는 헤엄 배우고 / 어린 개구리가 / 이 논, 저 논, 건너뛰어도 / 개굴개굴, 점잖은 개구리는 / 울기만 한다 ..  (여름밤)



  스스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추위나 더위도 스스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기쁨이나 슬픔도 스스로 겪을 때에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웃음이나 눈물도 스스로 겪기에 비로소 알 수 있어요.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눈부신 별빛은 우리가 스스로 바라볼 때에 알 수 있습니다. 깜깜한 밤이 없는 하늘도 스스로 바라볼 때에 알 수 있습니다. 조용하게 부는 산들바람도 스스로 쐬어야 알 수 있고,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도 스스로 맞아야 알 수 있습니다. 번갯불을 보지 않고서 번갯불을 알 수 없고, 개똥불을 만나지 않고서 개똥불을 알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이 스스로 겪거나 만나거나 마주할 만한 삶을 헤아려서 동시라는 이야기를 엮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스스로 가꾸거나 일굴 만한 아름다운 삶을 헤아려서 동시라는 노래를 엮습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동시를 쓰고, 미움이 아닌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동시를 씁니다.



.. 돌이는 숨바꼭질 하느라고 화초밭에 엎드렸다가 벌한테 쏘여도 아무 소리도 안 했습니다. 그렇지만 순이가 찾아내니까 으애― 하고 울었습니다 ..  (숨바꼭질)



  일제강점기에 동시를 쓴 오장환 님은 ‘으애―’라든지 ‘조―그마하게’처럼 글을 씁니다. 이런 글투는 일본 글투입니다. 한국사람은 이렇게 글을 쓰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라면 ‘으애―’가 아닌 ‘으앵’이나 ‘으애앵’이라고 말을 하면서 글을 쓰고, ‘조―그마하게’가 아닌 ‘조그마하게’나 ‘조오그마하게’라고 말을 하면서 글을 씁니다.


  아무래도 예전에는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으로서 씩씩하게 서기 어려웠으니 이 같은 말투가 동시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구나 싶습니다. 《부엉이는 부끄럼쟁이》는 자료집으로 내는 책이 아닌, 오늘날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새로 엮어서 내놓은 책인 만큼, 이 같은 대목은 손질하거나 꼬리말을 붙여서 알려주어야지 싶습니다.



.. 누나야, 편지를 쓴다. / 뜨락에 살구나무 올라갔더니 / 웃수머리 둥구나무, / 조―그만하게 보였다. / 누나가 타고 간 붉은 가마는 / 둥구나무 샅으로 돌아갔지 ..  (편지)



  포근한 마음을 꿈꾸는 노랫가락으로 동시를 씁니다. 따스한 마음을 바라는 노랫가락으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도, 아이가 어버이한테 알려주는 말도, 언제나 포근하거나 따사롭게 흐릅니다.


  어버이는 사랑을 물려주려는 뜻으로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는 사랑을 물려받으려는 뜻으로 태어납니다. 어버이는 사랑을 베풀며 아이를 돌봅니다. 아이는 사랑을 고이 받으며 씩씩하게 자랍니다.


  쓸쓸하거나 슬프거나 아픈 아이들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손길은 바로 사랑입니다. 배고프거나 고단하거나 힘겨운 아이들 몸을 보살필 수 있는 손길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사랑스레 말 한 마디를 들려주고, 사랑스러운 몸짓으로 밥을 차립니다.


  말치레로 꾸미는 거짓스러운 사랑이 아닌, 가슴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사랑이 되어 함께 누리는 동시를 쓸 때에 즐겁습니다. 우리는 시인이 아니어도 시를 써서 아이와 함께 나누는 어버이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시를 쓰듯이 말을 하는 어른입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노래하듯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4348.5.8.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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