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더듬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1
유종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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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2



시와 주름살

― 얼굴을 더듬다

 유종인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2.9.19.



  아이들 손이나 볼을 살살 쓰다듬다가 문득 놀랍니다. 아이 손이나 볼이란 이렇게 보드랍구나 하고. 그렇다고 어른인 내 손이나 불은 꺼칠하거나 울퉁불퉁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근심이나 걱정을 담지 않으면서 밝게 웃으면서 삶을 짓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많이 들어도 살결이 보드랍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늘 물이나 흙을 만지는 할매나 할배여도 마음 가득 기쁨이 흐르는 웃음이라면, 주름살이 아닌 보드라운 살결이 되지 싶습니다.



하루는 눈물 글썽한 상거지가 다녀갔다 // 또 하루는 꽃도 없이 바위가 그늘졌다 / 오늘은 술이나 받게 (마음)


땅이야 나눈다지만 하늘을 나눌 순 없어 // 성북동 옛집 담장에 화분들이 올라 있다 (경계의 꽃밭)



  인천에서 나고 자라며 시를 쓰는 유종인 님이 빚은 《얼굴을 더듬다》(실천문학사,2012)를 읽습니다. 잠자리 이불깃을 여미면서 아이들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이 시집을 떠올리고, 밤에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찰 적에 주섬주섬 이불을 끌어모아 다시 덮어 주면서 이 시집을 돌아봅니다.


  ‘얼굴 더듬기’는 사람마다 달라요. 그냥 얼굴을 더듬어 볼 수 있고, 떠오르지 않는 모습을 더듬듯 그릴 수 있습니다. 따스한 손길로 살그마니 더듬을 수 있고, 아무 느낌이나 생각이 없이 그저 더듬을 수 있어요. 내가 내 얼굴을 문지르거나 비빌 적에도 아무 생각 없이 문지를 수 있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손길로 비빌 수 있습니다.



징검돌을 건너가는 여름 아이의 발뒤꿈치, / 바람에 멱을 감는 미루나무 휘인 허리를 / 저 해는 지지도 않고 첫날밤처럼 붉게 샜다 (이발소 그림을 보다)


꽃게에 물린 손가락 가만히 들여다보니 // 새만금 변산 앞바다 // 내 떠날 줄 미리 알고 // 썰물로 // 빠질 리 없는 // 이정표를 박았구나 (꽃게에 물린 자국)



  《얼굴을 더듬다》를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책에 깃든 노래는 ‘시조’라고 합니다. 《얼굴을 더듬다》는 시조집이라 하는군요. 문득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인들 시조인들 그리 대수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도 시조도 모두 우리 삶을 기쁨으로 노래하고 슬픔으로 달래면서 빚는 글일 테니까요. 글 한 줄에 웃음을 싣고, 글 두 줄에 슬픔을 담으면서, 글 석 줄에 이야기꽃이 피어나도록 하는 시요 노래라고 느낍니다.



싸락눈이 내리치니 // 겹처마가 떠올랐다 // 싸락눈이 쳐대니 // 나막신이 걸어왔다 (싸락눈)



  겨울에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을 때에는 손을 빠르게 문지릅니다. 아무래도 겨울에는 손이 곱기 때문입니다. 곱은 손을 비빔질로 녹인 뒤 불을 올리고 도마질을 합니다. 뜨거운 물을 틀어서 틈틈이 손을 녹이면서 푸성귀를 다듬고 국을 끓입니다. 행주로 밥상을 훔치고 수저를 올립니다. 바야흐로 밥을 다 차리면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부르지요.


  이제 아이들은 의젓하게 자라서 깔개도 스스로 놓고 손도 스스로 씻습니다. 한두 해 앞서까지만 해도 아이들 손이랑 낯을 모두 씻겨야 했으나, 이제는 말로만 타일러도 되어요.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아이들 몸짓을 바꿉니다. 내 손에서 태어나는 밥 한 그릇이 아이들 몸으로 스며듭니다.


  밥상맡에 다 같이 둘러앉은 뒤 국그릇을 두 손으로 고이 감쌉니다. 따스한 기운이 손바닥으로 들어와서 온몸으로 퍼집니다. 나는 이 두 손으로 일을 하고, 바람을 어루만지며, 기저귀를 빨았고, 이불을 건사하고, 살림을 돌봅니다. 귀가 간지럽다 하면 귀를 파 주고, 손톱이 자라면 손톱을 깎습니다. 나이에 따라 손에도 낯에도 몸에도 주름이 질는지 모르지만, 온누리 모든 어버이는 주름살마다 아이들하고 누린 삶이 사랑스러운 결로 깃들리라 느껴요.



아파트 육 층까지 비질 소리 올라온다 // 귀뚜리가 // 지구 위에 두 줄 수염을 내려놓고, // 뭘 쓸까 // 고민하다가 // 빈 마당에 // 소스라친다 (비질 소리)


누군가 내다 놓은 깨진 거울 속으로 // 문짝을 두드리듯 가만히 눈발 친다 (들판의 거울)



  새롭게 하루를 열면서 《얼굴을 더듬다》에 흐르는 노랫가락을 가만히 읊어 봅니다. 이제 겨울이 저물려 하고 봄이 오려 합니다. 아침에 마당에서 노는 작은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이제 봄이야?” “음, 아니. 아직 겨울이고, 봄이 오는 문턱이야.”


  아이한테 ‘봄이 오는 문턱’이라고 말하다가 불현듯이 놀랍니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오랜 옛날부터 들었다고 느껴요. 아마 내가 아기였을 무렵 둘레 어른들이, 또 우리 어버이가 ‘봄이 오는 문턱’이라고 말했을 테지요. 그냥 ‘봄이 온다’고 할 수 있는데, 누군가 ‘봄이 오는 문턱’이라 말했고, ‘봄이 문지방을 타고 넘는다’ 같은 말꽃을 피웁니다. ‘봄바람이 귀를 간질인다’라든지 ‘봄볕에 옷섶이 짧아진다’고도 해요.


  유종인 님이 아파트 육 층에서 비질 소리를 노랫소리로 듣듯이, 슥슥거리는 소리가 온 지구를 쩌렁쩌렁 울린다고 느끼듯이, 우리 삶자락은 온통 시로 태어날 소리요 결이요 무늬요 사랑이며 살림이지 싶습니다. 시골집 마루문을 때리는 눈발은 사라지고, 길게 드러눕던 겨울 그림자도 짧아집니다. 낮에는 처마 밑으로 햇볕이 들지 않아요. 해가 차츰 높아집니다. 나무마다 겨울눈이 봉긋봉긋 이쁘게 돋는 겨울 끝자락입니다. 4349.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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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애지시선 35
손병걸 지음 / 애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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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08



아이는 빛노래로 아빠를 키우고

―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손병걸 글

 애지 펴냄, 2011.3.19. 9000원



  시를 쓰는 손병걸 님은 서른 살 즈음에 눈을 잃었다고 합니다. 서른 살 즈음까지는 언제나 ‘두 눈으로 몸소 본 것’만 믿고 살았다는데, 두 눈을 잃고 난 뒤로는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믿고 살아야 하는 하루가 되었다고 해요.


  두 눈으로 보다가 두 눈을 쓸 수 없으면, 그야말로 삶이 뒤바뀌지요. 두 손을 쓰다가 두 손을 쓸 수 없어도, 또 두 다리를 쓰다가 두 다리를 쓸 수 없어도, 아니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삶은 뒤바뀌지 싶습니다.


  나는 두 눈으로 바라봅니다. 두 손을 쓰고 두 다리를 움직입니다. 빨래를 할 적에 빨래기계한테 맡기기도 하지만, 으레 두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굽니다. 두 손으로 밥을 짓고, 두 다리로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읍내로 저잣마실을 나가면 가방 가득 먹을거리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이 졸립거나 힘들다 하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한 아이를 한팔로 안고, 다른 아이도 다른 한팔로 안으며 걷기도 해요. 그런데 이렇게 눈이며 손이며 다리이며 온몸이며 쓰다가, 그만 어느 한 곳이 다치면 아무것도 못 하기 일쑤예요.



저수지 둑길을 걷는데 /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에 / 고인 물 일어나는 소리 / 천 년의 잠을 깨는 것 같아서 / 화들짝 귀가 열렸다 (소리를 보다)


들숨 날숨 몰아쉬며 / 숨이 넘어가도록 / 땀을 쏟는 일이겠지 (하모니카 소리)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애지,2011)를 읽으면서 가슴이 짠합니다. 손병걸 님은 처음 두 눈을 잃어야 하던 무렵, 그야말로 술로 하루를 보냈다고 털어놓아요. 하루 마시고 이틀 마셔도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겠지요. 한 주 마시고 두 주 마셔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겠지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내처 마셔도 쓰라림도 아픔도 가시지 않았겠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눈으로 보아야만 믿던 삶이었는데, 이제 두 눈으로는 볼 수 없다면, 오직 귀로 듣고 살갗으로 느껴야 하는 삶이라면, 그리고 두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삶이라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요?



직접 보지 않으면 / 믿지 않고 살아왔다 //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까지 / 두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점자책을 펼치니 / 와르르 쏟아진다 /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 흩어진 점자를 더듬어 가는데 / 들려온다, 별들의 이야기 (빛의 경전)



  우리 집 아이들이 틈틈이 피아노를 치거나 피리를 불 적에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하고 마당에 서서 눈을 살며시 감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밤에 뒤꼍에 올라 별잔치를 올려다보면서 저 별에서 이 지구로 흘러오는 빛살뿐 아니라 소리는 무엇일까 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밥을 끓이면서 밥 끓는 소리를 듣고 밥 익는 냄새를 맡습니다. 밥상을 차리면서 이 밥을 맛나게 함께 먹을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우리 집에서 설거지하는 물’이 되어 주기까지 골짜기를 흐르던 물줄기를 헤아립니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면서 ‘옷가지를 보송보송 말려 주는 햇볕’에는 어떤 기운이 서렸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잊고 있었다 / 어둠 속에서도 숲은 / 묵묵히 자란다는 것을 / 모르고 있었다 / 왜, 저 빌딩들이 숲을 향해 /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지 (어느 숲)


깨진 유리컵에 베인 손가락 / 점자책을 더듬을 때 아파서 / 며칠째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못한 / 내 손가락 끝에 박힌 눈 (손가락 끝에 박힌 눈)



  손병걸 님은 시를 쓰면서 이녁 아이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시집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에는 두 눈을 잃은 아픔도 드러나지만, 두 눈을 잃고서 새롭게 뜬 ‘마음눈’ 이야기도 흐르고, 무엇보다도 손병걸 님 딸아이하고 얽힌 기쁜 사랑이 새삼스레 흘러요. 이제까지 느끼거나 헤아리지 못했다고도 할 만한 새로운 사랑이지요.



아빠 식사해요 / 밥때만 되면 / 아이의 목소리 들린다 // 자식이라고는 단 하나 / 고작, 초등학교 3학년 / 생일이 빨라서 3학년이지 / 이제 아홉 살짜리다 // 밥상에 앉으면 / 이건 김치, 빨개요 / 요건 된장찌개, 뜨거워요 / 두 눈이 안 보이는 아빠를 위해 / 제 입에 밥알이 어찌 되든지 말든지 / 오른쪽에 뭐 왼쪽에 뭐 / 아이의 입은 바쁘다 (아이가 아빠를 키운다)



  밥때만 되면 아빠를 챙기는 아홉 살 딸아이 목소리를 들으면서 손병걸 님은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지요. 아홉 살 딸아이도 이것저것 알려주느라 ‘입이 바쁘’고, 이런 딸아이 사랑을 받으면서 숟가락을 드는 손병걸 님도 밥을 먹는지 사랑을 먹는지 눈물을 먹는지 웃음을 먹는지 모르도록 ‘입이 바쁘’겠지요.


  이 깜찍하고 상냥하며 착하고 어여쁜 딸아이 몸짓과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클까요.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씨를 베푸는 딸아이 숨결과 넋을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클까요.



먹먹한 사연이 끝나고 / 이어지는 출연자 소녀가장 / 사회자 : 올겨울 추위를 어떻게 해요? / 소녀 : 연탄불 구멍을 열면 돼요. (생방송)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있을까요? 사랑은 마음으로 볼 수 있을까요? 모름지기 사랑은 눈으로도 보고 마음으로도 볼 텐데, 두 눈을 감으면 한결 환하면서 고요하게 드러나지 싶어요.


  코앞에 잔칫밥을 차려야 사랑이지 않아요. 눈앞에 값진 선물을 늘어놓아야 사랑이지 않아요. 비싼 밥집에 찾아가서 밥술을 들어야 사랑이지 않을 테지요? 아홉 살 아이가 이것저것 알려주는 목소리에 맞추어, 김치요 된장찌개요 밥이요 반찬이요 물이요 하고 느끼는 손길로 받아들이는 수수한 밥 한 그릇에서 따사로운 사랑을 알아차리겠지요?


  두 눈을 잃은 손병걸 님이지만, 마음에 있는 눈을 새로우면서 크게 뜨는 삶을 짓는 손병걸 님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두 눈을 한동안 고요히 감으면서, 마음에 깃든 열 가지 눈동자뿐 아니라 스무 가지 백 가지 천 가지 그윽한 눈동자를 기쁨으로 새롭게 뜨는 손병걸 님 발걸음이리라 생각해요.


  오늘 하루도 아이들하고 기쁨으로 살림을 짓는 하루를 누리면서 이 보금자리를 돌아봅니다. 사랑은 우리 눈앞에 있다는 대목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먼발치가 아니라 우리 곁에, 저 먼 별나라가 아닌 우리 살림살이마다 고운 사랑이 흐른다는 대목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눈을 떠야지요.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떠야지요. 사랑으로 하루를 누리려는 눈을 번쩍 떠야지요. 434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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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뼈들 삶창시선 42
김수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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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1



시와 말뼈

― 사랑의 뼈들

 김수상 글

 삶창 펴냄, 2015.3.25. 8000원



  한국말사전에서 ‘말뼈’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성질이 고분고분하지 못하고 거세어 뻣뻣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다만, ‘말뼈다귀’라는 낱말은 올림말로 나오지 않아요. 문득 궁금해서 일본말사전까지 찾아보니, 일본말 가운데 ‘うまのほね(馬の骨)’가 있고, 이 낱말을 “말뼈다귀, 내력을 잘 모르는 시시한 자”로 풀이합니다. 일본말사전에 실린 보기글에는 “どこの馬うまの骨ほねだかわからない”가 있고, 이 글월을 “어디서 굴러먹던 말뼈다귄지 모르겠다”로 풀이해 놓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말뼈다귀’는 일본말에서 슬그머니 넘어온 말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일제강점기에 살그마니 건너온 말투일 수 있겠지요.



인생 한 방이면 돼, 홍콩 느와르 같은 대사를 몇 번이나 혼자서 씨부리는 저 여자, 한쪽 무릎 세우니 흘러내린 치마 밑엔 허연 허벅지 (폐경)


징을 만드는 장인을 만났다 / 손톱엔 쇳물 때가 새까맸다 / 이가리를 만들고 사개질을 하고 / 한밤엔 담금질을 했다 (풋울음)



  김수상 님이 선보인 시집 《사랑의 뼈들》(삶창,2015)을 읽으면서 문득 ‘말뼈’라는 낱말이 떠오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뼈’를 생각하면서 말로 집을 짓는 이야기가 흐르는 시집이기에 저절로 ‘뼈 + 말’이 떠오르고, ‘뼈가 되는 말’이나 ‘말이 되는 뼈’가 떠올라요. 단단한 얼음판을 지치면서 놀듯이 시를 쓰지는 못하고, 아슬아슬하다 싶은 살얼음판을 살금살금 걷듯이 시를 쓴다고 하는 김수상 님인데, 살얼음판을 걷는 말이란, 말뼈란, 뼛속으로 스미는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라오는데 비누 냄새가 났다 얼마 전 새로 단장한 놀이터에 아이와 엄마가 비눗방울 놀이를 한다 크고 작은 방울들이 공중에 떠다녔다 까르르까르르, 했다 (얇은 막)


막내놈 가방을 모조리 비우니 코발트색 튜브물감 하나가 찌그러져 책이며 공책이며 가방에 푸른 떡칠을 해놓았다 게임할 시간은 있고 가방 정리할 시간은 없냐고 등교하는 아침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냈다 보내놓고 젖은 걸레로 책이며 공책을 닦는데 (구름의 문장)



  어떤 말이 내 몸을 이루는 뼈로 단단하게 굳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말에 뼈가 있다’는 말처럼, 이웃한테 들려주는 말에 어떤 마음을 싣는 삶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시인 김수상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말)에는 어떤 뼈가 깃들어 이 사회와 나라와 삶을 돌아보도록 북돋우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단단한 뼈처럼 단단한 말이 있습니다. 무른 뼈처럼 무른 말이 있어요. 뼈다귀 같은 말이라고 해서 꼭 단단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단단한 뼈가 있으면 무른 뼈가 있고, 억센 뼈가 있으면 말랑말랑한 뼈가 있어요. 단단한 뼈가 있어서 살점을 받친다면, 물렁한 뼈가 있어서 뼈랑 뼈가 이어져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삶이란 ‘단단뼈’하고 ‘물렁뼈’가 맞물리는 이야기꾸러미라고 할 만합니다. 어느 때에는 단단하지만 어느 때에는 물렁하기도 하는 삶이라 할 만하고, 이러한 삶을 어느 때에는 다부지거나 야무진 말마디로 그릴 수 있지만, 어느 때에는 말랑말랑 물컹물컹 부드러이 그릴 수 있어요. 누군가는 그야말로 씩씩하고 힘차게 한길을 걷고, 누군가는 그야말로 흔들흔들 비틀거리면서 이 길 저 길 들쑤시면서 걸어요.



냉장고가 운다 내일이 입춘이라는데 한밤에 혼자 깨어 냉장고가 울고 있다 반쯤 남은 소주병이 울고 젖은 시래기가 울고 아버지가 먹다 남기고 간 간처녑도 벌겋게 울고 있다 (생활의 발견)



  삶이 여기에 있고, 시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뼈 같은 시가 있고, 소뼈나 닭뼈 같은 시가 있습니다. 양뼈나 개뼈 같은 시가 있고, 참새뼈나 박새뼈 같은 시가 있어요. 커다란 짐승을 받치던 뼈 같은 시여야 더 크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새가 하늘을 가볍게 날도록 받치던 뼈 같은 시이기에 하염없이 작지 않습니다.


  사회를 비평할 적에도 시가 되고, 삶을 바라볼 적에도 시가 됩니다. 사회와 부딪힐 적에도 시가 태어나고, 살림을 가꿀 적에도 시가 태어나요. 그러니까, 《사랑의 뼈들》을 쓴 김수상 님이 이녁 막내아이를 꾸짖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문득 이녁 모습을 되새기며 시가 태어나고, 파란 물감으로 젖은 가방을 조용히 닦으며 시가 새롭게 흐릅니다.


  냉장고를 열다가 시가 태어나지요. 냉장고를 다시 닫으면서 시가 태어나요. 쌀을 씻거나 밥을 지으면서 시가 태어나고, 설거지를 하거나 그릇을 떨어뜨려 깨면서 시가 태어나요. 언제 어디에서나 삶이 흐르기에, 이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고이 껴안을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되어 기쁨과 슬픔을 골고루 노래할 수 있습니다.



척추도 지느러미도 없이 지식만 빨다가 얼마 전에 죽은 내 친구 시간강사는 죽어서도 대가리에 먹물만 잔뜩 넣고 응급실 시트에 널브러져 있었다 먹물 제대로 한 번 쏘지도 못하고 (어느 쭈꾸미의 죽음)



  쭈꾸미는 죽어서 바다로 돌아가기도 하고, 쭈꾸미는 죽지 않고 산 채로 잡혀서 사람들한테 먹히기도 합니다. 쭈꾸미가 죽은 바다에서 사람들은 헤엄도 치고 낚시도 하며 여행도 해요. 쭈꾸미를 먹은 사람은 쭈꾸미 숨결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새롭게 기운을 내요.


  시집 《사랑의 뼈들》에 흐르는 사랑이란 뼈란 노래란 삶이란 꿈이란 말이란 머나먼 별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김수상 님 삶자리에 있습니다. 김수상 님이 바라보는 대로 삶이 흐르면서 시가 흐릅니다. 김수상 님이 스스로 새롭게 가꾸려 하는 삶처럼 시가 한 줄 두 줄 흐릅니다.


  나는 두 아이를 밤에 살뜰히 재우면서 이마를 쓸어넘기고 볼에 뽀뽀를 하고 이불깃을 여미고 자장노래를 부르고 가슴을 살며시 토닥이고는 시집을 조용히 펼칩니다. 등불을 켤 수 없어서 촛불을 켜고 시집을 고요히 읽습니다. 고단하면서도 즐겁게 누린 하루를 마무리하기 앞서 두 아이하고 누린 살림 이야기를 짤막하게 수첩에 적어 봅니다. 내가 우리 보금자리에서 아이들하고 나누는 말마디도 날마다 새삼스레 노래가 되어 새롭게 거듭나겠지요.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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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괭이 앞발 권법 - 박경희 동시집 담쟁이 동시집
박경희 지음, 이휘재 그림 / 실천문학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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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8



동시에 욕만 잔뜩 쓰는 아이

― 도둑괭이 앞발 권법

 박경희 글

 이희재 그림

 실천문학사 펴냄, 2015.12.30. 12000원



  충남 보령에서 지내며 아이들한테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박경희 님이 쓴 동시를 묶은 《도둑괭이 앞발 권법》(실천문학사,2015)을 읽습니다. 박경희 님은 시골에서 살며 시골 아이하고 느끼는 하루를 조곤조곤 동시로 묶어요. 시골 아이하고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쓰고, 시골 할매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쓰고, 시골 아지매나 아재하고 부대낀 이야기를 써요.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사는 나도 이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는 하루를 곧잘 짤막하게 간추려 보곤 합니다. 이를테면, 두 아이가 서로 달리기 놀이를 하면서 겨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바람을 가르듯이 신나게 달리려 하는데 아무래도 키나 몸집에서 큰아이가 더 크니 작은아이가 뒤로 처져요. 이때에 작은아이는 누나더러 저보다 앞서 달리지 말라고 하기 일쑤인데, 어느 날 배시시 웃으면서 누나 신을 신겠다고 해요. 왜 그러한가 했더니 누나 신을 신으면 저도 누나처럼 잘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더군요.



빨간 휴지 줄까? / 파란 휴지 줄까? // 똥꼬에 불났네 / 내 꽁지에 불났네 (뒷간 귀신,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아무리 쳐 봐야 대답 안 해유.” // 수박 장사 아저씨 심드렁 심드렁 // 아까부터 수박 머리 두드리는 / 아줌마가 못마땅하다 (수박)



  어버이는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아이한테 말을 처음으로 터뜨려서 보여주는 어버이는 언제나 시인이 됩니다. 어버이한테서 말을 처음으로 배우는 아이도 시인이 됩니다. 늘 새롭게 배우는 말로 언제나 즐겁게 말을 터뜨리는 아이는 그야말로 시인이 되어요.


  박경희 님이 쓴 〈빨간 금붕어〉 같은 노래는 박경희 님을 고모로 둔 아이가 어느 날 문득 터뜨린 말일 테지요? 박경희 님은 아이가 터뜨리는 멋지고 사랑스러운 말을 고스란히 옮겨적으면서 새로운 노래로 짓습니다. 아니, 아이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지요.


  여느 날 수수하게 아이하고 어우러져서 놀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아이하고 손을 맞잡고 노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금붕어를 보다가, 매미 울음소리를 듣다가, 바람소리를 듣다가, 또 빗물을 맞고 눈송이를 맞으면서 새삼스레 노래를 부릅니다.



둥치에서 뜨릅매미 / 뜨름 따름 뜨름 따름 // 가지에서 각시매미 / 쯔응 쓰루응 즈응 쯔루응 (매미)


고모! / 내가 자꾸 쳐다보니까 / 물고기가 / 부끄러운가 봐! (빨간 금붕어)



  이 땅에 새로 태어난 아이는 외양간도 소도 처음 마주하기 마련입니다. 눈을 끔뻑거리는 소를 마주보는 아이는 소하고 아마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리라 생각해요.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은 소랑 아이가 이루는 삶과 놀이를 가만히 마음으로 담아서 새삼스레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밥찌꺼기를 땅에 묻고 나서 만난 멋진 새싹(참외 싹)을 본 날에도 놀랍고 반가운 노래를 불러요.



외양간에 소를 처음 본 아이가 / 입김을 씩씩 불더니 / 소 눈을 들여다본다 (눈싸움)


음식물을 / 땅에 묻고 돌아선 지 / 일주일 만에 / 우둘투둘 씩씩하게 / 햇빛 뚫고 / 참외 싹이 났다 (참외 싹이 쑤욱!)



  《도둑괭이 앞발 권법》을 읽다 보면, 동시를 쓴 박경희 님이 만난 시골마을 아이들 삶이 찬찬히 함께 흐릅니다. 박경희 님한테서 글쓰기를 배우는 아이들이 ‘동시 쓰기’를 할 적에 욕만 잔뜩 쓰는 삶이 흐르고, 한국으로 시집온 이웃나라 사람들 삶이 흐릅니다.


  시골 아이는 왜 동시 쓰기를 할 적에 욕만 쓸까요? 아무래도 이 아이는 집이나 마을에서 늘 욕만 들었기 때문일 테지요. 이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이 늘 욕을 해대니 아이 마음속에 어느새 욕이 잔뜩 들어왔을 테고, 이 아이는 이 욕을 얼른 털어내고 싶으니 동시 쓰기를 할 적에 이 욕꾸러미를 몽땅 뱉어낼는지 모릅니다. 그야말로 욕 빼고는 들은 소리가 없으니 욕꾸러미만 동시로 쓰는 아이일 텐데, 이 아이가 욕꾸러미를 다 뱉어내고 난 자리에 기쁜 노래가 한 가락이라도 스며들 수 있으면, 다음에는 이 조그마한 기쁜 노래를 동시에 쓸 수 있겠지요.


  한국으로 시집을 온 분들은 한국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한국 아이’가 됩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시집을 온 이웃나라 사람들은 아직 ‘한국 어른’으로 대접을 받지 못해요. “그냥 우리 동네 사람”일 텐데,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학교에서도 ‘이주 여성’이라는 눈길로만 바라봅니다.



동시를 쓰는데 / 용석이가 자꾸 욕을 쓴다 / 욕 쓰면 혼난다고 해도 / 자꾸 욕을 쓴다 // 그림도 게임에서 싸우는 / 그림만 그린다 / 칼을 들고 / 불을 내뿜는 용도 그린다 (동시 쓰기)


창준이도 / 배숙이도 / 윤진이도 / 성진이도 / 세환이도 / 다 엄마가 / 다른 나라 사람이다 (그냥 우리 동네 사람)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씨앗 한 톨을 손수 심어 볼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박경희 님한테서 글쓰기를 배우는 아이들이 새봄에 저마다 씨앗 한 톨씩, 또는 두 톨씩, 또는 밭고랑 한 줄씩, 또는 밭뙈기 한 가득, 손수 씨앗을 심고서 이 씨앗을 손수 돌보는 여름을 누리고 가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동시 쓰기를 할 적에 욕만 쓰는 아이도 씨앗 한 톨을 손수 심어서 ‘관찰일기’를 동시로 써 볼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작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꽃이 피고 새로운 씨앗을 품은 열매를 맺어요. 아이들 가슴에 고운 씨앗이 사랑스레 자라서 웃음꽃이 피고 이야기꽃이 흐드러질 수 있기를 빌어요.


  두 손을 모아서 씨앗을 품을 수 있다면, 이 두 손을 모아서 짓는 노랫가락에도 사랑스러운 숨결이 흐를 수 있을 테지요. 두 손 가득 고운 꿈을 품을 수 있다면, 이 두 손을 새롭게 펼쳐서 기쁨으로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지을 수 있을 테지요. 《도둑괭이 앞발 권법》을 빚은 박경희 님이 보령 시골마을에서 앞으로도 새로운 이야기꾸러미를 기쁨으로 지어서 나누어 주시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4349.1.2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동시 읽기/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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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옆 탱자나무 - 한혜영 동시집 푸른사상 동시선 4
한혜영 지음 / 푸른사상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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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7



할머니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조촐한 노래

― 닭장 옆 탱자나무

 한혜영 글

 푸른사상 펴냄, 2012.3.25. 9000원



  할머니 한혜영 님은 동시도 쓰고 동화도 씁니다. 이러한 글은 어린이문학을 하려는 글이기 앞서 이녁 손주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보다 이녁 손주가 스스로 손에 쥘 첫째 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서 들려주려는 이야기예요.


  동시를 쓰는 할머니는 이녁 손주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동시를 쓰는 할머니는 이녁 손주를 낳아서 돌보는 이녁 딸아들이나 며느리나 사위한테 어떤 이야기를 물려주고 싶을까요? 아무래도 사랑을 이야기로 들려주고 싶을 테지요? 무엇보다 사랑을 차근차근 물려주고 싶을 테지요?


  옛날부터 내려오고 옛적부터 흘러온 이야기는 모두 어버이가 아이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녁 손주한테 물려주고픈 가장 슬기롭고 따사로운 사랑이리라 생각합니다. 재산이나 학력이나 이름값이 아니라, 삶을 스스로 짓는 사랑을 물려주고 싶으리라 생각해요.



바람 한 차례 옥상으로 불어오자 / 블라우스와 와이셔츠 / 큰 빨래들은 / 어미 두루미처럼 날개를 활짝 펼쳤다. (빨래)


늦잠 자는 / 씨앗은 일어나라고 // 은지팡이로 / 토독! / 톡! / 톡톡! // 두들기며 비 옵니다 (봄비)



  아침에 잠을 깨는 아이들은 언제나 빙긋빙긋 웃으면서 나한테 다가옵니다. 저녁에 잠들기까지 이 아이들은 언제나 내 둘레에서 방긋방긋 웃으면서 나한테 달라붙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놀자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움직이자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몸짓을 지켜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말씨를 헤아립니다.


  빙긋빙긋 웃는 아이한테 나도 웃음을 짓습니다. 방긋방긋 웃으며 놀자 하는 아이들한테 나도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밉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한 가지는 언제나 놀이입니다. 다만 억지스럽거나 고단한 놀이는 아닙니다. 학습 놀이나 체험 놀이를 바라지 않습니다. 교육 놀이라든지 사회 놀이를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은 늘 따사로운 사랑으로 놀자고 웃음으로 말을 겁니다. 아이들은 늘 즐거운 사랑으로 놀자면서 노래하듯이 말을 해요. 이때에 어버이는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저 그대로 놀 수 있어요. 다음으로, 바쁘거나 다른 할 일이 있다면서 같이 안 놀 수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종이는 / 이제 막 한글을 배우는 / 꼬맹이의 삐뚤빼뚤한 / 이름을 받아 적는 종이다. (종이)


곰이랑 사자가 사람을 만났을 때 / 발톱부터 세우는 건 말이 안 통해서 그럴 거다 // 영어, 일어, 불어, 한문 학원 같은 / 간판 사이에 동물의 말을 가르쳐준다는 / 간판도 하나쯤 끼어 있으면 (이런 학원 어디에 없나요?)



  동시집 《닭장 옆 탱자나무》에 흐르는 이야기는 두 갈래로 살필 만합니다. 첫째는 할머니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포근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둘째는 아이가 집이나 마을이나 학교 안팎에서 겪거나 부대끼는 삶을 놓고 사랑으로 마주하자고 손짓하는 이야기예요.


  바람이 불어 빨래를 날리고, 비가 내리며 새싹이 자라도록 합니다. 아이들은 새하얀 종이에 글씨를 그리거나 그림을 그립니다. 해님이 움직이면서 그림자가 져요. 벌이나 나비가 집이나 교실로 들어왔다가 나가지요. 이를 모두 포근한 사랑이라는 눈길로 바라보면서 아이한테 이야기로 들려줄 수 있으면, 아이는 제 이웃하고 동무를 따사로우면서 너그러운 몸짓으로 맞아들이는 슬기를 배워요.


  학원으로 바쁘거나 공부로 힘들다면, 바쁘거나 힘든 아이들을 북돋울 만한 이야기를 짓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을 열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 나라를, 너른 지구별을, 가없는 우주를 고이 품에 안을 수 있도록 생각을 여는 이야기를 짓습니다.



강이 아프단다. / 암처럼 딱딱한 / 시멘트 덩어리가 / 가슴께서 만져진단다. (아픈 강)


바람은 보이지 않으니까 소리를 내는 거야 / 안 그러면 제가 찾아온 걸 아무도 모르잖아 (바람은 소리를 좋아해)



  찬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아이들을 이끌고 들길을 걸어 봅니다. 한겨울이기에 찬바람을 함께 맞으면서 겨울이란 어떤 철인가 하는 대목을 고스란히 느낍니다. 바람이 차니 아이들이 봄은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바람이 잔잔하고 볕이 포근한 한겨울에 아이들하고 마당에서 달리면서 함께 땀을 흘립니다. 바람이 안 불어 포근한 날씨이니 아이들은 겨울이 왜 이리 덥냐고 묻습니다.


  별빛으로 가득한 한밤에 아이들을 데리고 마당에 서서 별바라기를 하다가 서로 손을 맞잡고 삼십 분 남짓 밤마실을 합니다. 아버지 손을 꼬옥 잡고 별바라기 밤마실을 하는 동안 풀섶에서 마른 잎을 헤치는 들쥐 소리를 듣고, 족제비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멧비둘기가 자다가 우리 발자국을 듣고 깜짝 놀라 하는 소리도 듣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손을 꼬옥 잡고 걷는 아버지가 있어서 밤소리를 들으면서도 재미나게 놀 수 있습니다.



손가락 까딱하는 것까지도 따라하는 / 그림자 때문에 / 청년은 결국 도둑질을 포기했대요 // 제 그림자가 빤히 지켜보는데 / 어떻게 도둑질을 할 수가 있겠어요? (무서운 그림자)



  할머니는 조촐하게 이야기를 엮어서 동시집 《닭장 옆 탱자나무》에 담습니다.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다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동시집에 담습니다. 그림자가 늘 우리 곁에 있다는 대목을 넌지시 알려주려고 동시를 살그마니 씁니다. 벌레 한 마리도 무척 아름다운 목숨일 뿐 아니라, 어머니도 아버지도 있는 우리랑 똑같은 이웃이라는 대목을 동시로 가만히 보여줍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그림자는 우리가 하는 모든 몸짓을 똑같이 따라한다는 대목을 일깨우면서 아이들 스스로 씩씩하고 의젓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속삭여요.


  곰곰이 돌아보면 먼먼 옛날부터 온누리 모든 어버이는 저마다 시인이 되어 아이들한테 사랑을 노래해 주었으리라 봅니다. 문단에 오르거나 시집을 내놓았기에 시인이 아니라, 어버이 자리는 언제나 삶을 노래하는 자리이지 싶어요. 아이들이 사랑을 배우도록 북돋우는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시인입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사랑을 가슴으로 가다듬어 속삭이기에 시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즐겁게 놀도록 북돋우고, 언제나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으며 함박웃음으로 놀 수 있기에 시인입니다.



“그 벌 죽이지 말고 살려서 보내줘라 / 누구의 아버지일지도 모르지 않니?” // 공책을 말아들고, 불끈! 솟구쳤던 팔뚝이 스르르 떨어졌다 (‘아버지’라는 말)



  오늘도 새 하루를 맞이하기 앞서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어 봅니다. 어제하고는 다른 새로운 아침에 아이들하고 무엇을 하며 놀는지, 아이들한테 어떤 놀이를 보여줄는지, 이 아이들하고 누리는 살림은 어떤 사랑으로 새롭게 피어날 만한지를 새벽녘에 고요히 헤아립니다. 나도 늘 노래(동시) 한 가락을 마음자리에 두면서 조촐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침을 맞이해야겠습니다. 4349.1.13.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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