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근처
양현근 지음 / 문학의전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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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0



시와 밤낮

― 기다림 근처

 양현근 글

 문학의전당 펴냄, 2013.1.15. 8000원



  밤에 잠자리에서 아이가 ‘밤이 무서워서 싫다’고 말합니다. ‘밝고 환한 곳이 좋다’고 말합니다. 아이가 본 만화나 영화에서는 밤을 으레 무섭거나 무시무시하게 그리곤 합니다. 만화나 책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어른들은 밤을 무섭거나 무시무시하다는 투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아이하고 거의 똑같다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어릴 적에 나한테 밤이 안 무섭거나 안 무시무시한 까닭을 제대로 이야기해 주는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어린 나한테 밤이란 무엇인가를 슬기롭고 똑똑히 알려준 어른이 있을는지 모르나, 그무렵 내가 그 이야기를 못 알아들었을 수 있습니다.



붉은 줄무늬넥타이가 목을 휘감는다 오늘도 나는 어디론가 끌려가는 사막의 낙타, 암소의 눈망울처럼 순한 色의 아침은 없다 혼자 아무렇게나 붉어져도 좋을 버찌의 하루는 없나 (아침의 色)


내게 그리움이란 고작 담배를 꼬나물고 / 입안에 고인 말을 허공에 잠시 적어두는 일 / 봄볕에 젖은 오후를 끌어와 펼쳐보는 일 (감꽃 2)



  양현근 님이 빚은 시집 《기다림 근처》(문학의전당,2013)를 읽습니다. 아이들을 이끌고 읍내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군내버스에서 읽습니다. 두 아이는 한 주에 한 번쯤, 또는 열흘에 한 번쯤 군내버스를 탑니다. 읍내에 자주 드나들 일이 없으니 드물게 버스를 탑니다. 그러니까 자동차라고 하는 탈거리를 한 달에 대여섯 번쯤 타는 셈입니다.


  모처럼 타는 버스이기에 작은아이는 몹시 신납니다. 큰아이도 버스 타기를 좋아합니다. 다만, 큰아이는 버스를 타기 무섭게 코를 감싸쥡니다. 버스에서 나는 냄새가 고약하다고 말해요. 참말 모든 버스이며 자동차이며 택시이며 짐차이며 다들 냄새가 있어요. 플라스틱이랑 쇠붙이로 만들고 기름(석유)을 태우면서 달리니까, 또 아스팔트 찻길을 달리면서 고무바퀴가 닳으니까, 이런저런 것들이 섞인 냄새가 있거든요.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이 아이를 맞이하기 앞서 ‘버스 냄새’를 느꼈어요. 나도 어릴 적에 버스만 탔다 하면 속이 메스껍거나 울렁거렸어요. 우리 아이라고 해서 다를 수 없겠지요. 그런데 내가 어릴 적에 ‘버스 울렁거림’을 제대로 밝히거나 알려준 어른이 없었어요. 우리 어머니조차 버스 울렁거림 때문에 버스에서 아무 말씀을 안 하시고 이마를 한손으로 짚으면서 끙끙거리셨어요.



뒤엉킨 바람을 끊어내며 달리는 국도 / 삐-삐 과속하지 말라는 경고음이 울리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었다 / 굽은 길에서는 점점 더 바깥으로 밀린다 (오이도 근처)


폭탄주 몇 잔에 밤길을 오락가락하다가 / 새로 산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 /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캄캄하다 /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좀 받아라 (잘 가거라 나의 배후여)



  시집 《기다림 근처》는 회사원으로 무척 오랜 나날을 보내야 하면서도 이 회사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날을 기다리는 어느 한 삶 삶을 차분히 들려줍니다. 스스로 굴레라고 여기면서도 이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이야기가 조용히 흐릅니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를 몰면서 빠르기를 줄이지 않는 모습을 그냥 스스럼없이 시 한 줄로 적습니다. 늘 건물 안쪽에만 머물다가 모처럼 마주한 봄꽃하고 봄볕 이야기를 가만히 시 두 줄로 적습니다. 집에서 신문을 읽으며 투덜거릴 적에 이녁 곁님이 집일을 좀 거들라며 메추리알을 까라고 내민 그릇을 마주한 이야기를 넌지시 시 석 줄로 적습니다.


  참말 시는 여느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아주 대단한 생각을 머릿속으로 굴리고 굴려야 쓰는 시가 아닙니다. 우리가 저마다 여느 삶자리에서 부대끼거나 겪거나 마주한 이야기는 모두 아름다운 시 하나로 다시 태어납니다.



뒤죽박죽인 뉴스를 보는데 아내가 신문을 휙 걷어내며 답도 없는 것에 머리 아파하지 말고 메추리알이나 까달라고 놓고 간다 속이 패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슬쩍 힌트를 던진다 (메추리알 쉽게 까는 법)


봉헌성가를 부르면서 모두 한 목소리로 집중하는데 / 한 신도 등에 업힌 어린 양의 칭얼대는 소리 / 잉잉-어-잉 / 후렴 한번 명징하다 (말씀)



  잠자리에서 큰아이한테 밤이랑 낮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해 줍니다. 벼리야, 꽃도 풀도 나무도 모두 밤에 잠을 자. 잠을 자지 않으면 꽃도 풀도 나무도 튼튼하게 살지 못해. 너희도 밤에 잠을 자야, 새롭게 기운을 얻어서 아침에 신나게 뛰놀 수 있어. 환한 낮만 있으면 모든 목숨이 괴로워서 죽고 말아. 해님이 하루 내내 비춘다고 하면 그야말로 모두 타죽거나 말라죽어 버리지. 그렇다고 밤만 있어야 하지 않아. 낮만 있어야 하지도 않아. 밤하고 낮은 사이좋게 어울려야 해. 잠을 잘 적에는 아주 새까맣게 어두워야 해. 그래야 잘 자거든. 잘 적에는 모두 잊고 꿈나라로 가서 새롭게 놀면서 우리 몸에 기운을 되찾도록 해 주고, 아침에 밝은 햇살을 보며 일어날 적에는 기쁘게 웃으면 돼. 밤낮은 늘 함께 있는 동무이고, 낮은 신나는 몸짓이고, 밤은 고요한 숨결이 잔잔히 물결치는 때이고, 씨앗이 캄캄한 흙에서 태어나듯이 밤이 있어야 우리는 꿈을 꿀 수 있어. 그러니까, 밤은 꿈이고 낮은 삶이야.



내 생의 팔 할은 서류 뭉치 속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 종일 붙잡힌 책상머리 주변에는 / 슬프도록 끝이 잘 깎인 연필이며 잡다한 서류와 / 층을 이루고 있는 계간지가 겉봉도 뜯지 못한 채 / 한 계절을 넘기고 있습니다 (고백)



  읍내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군내버스에서 시집을 살며시 덮고 큰아이를 가만히 안습니다. 이러면서 새롭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줍니다. 벼리야, 네 아버지도 얼마 앞서까지 버스 울렁거림 때문에 몹시 괴로웠어. 그런데 말이야, 버스를 타면서 버스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면 이 냄새 때문에 못 살아. 냄새가 나든 말든 우리는 우리가 갈 곳을 생각하고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하고 우리가 즐겁게 누릴 놀이를 생각하고 우리가 앞으로 가꿀 꿈을 생각하면, 냄새는 어느새 잊히고 우리 꿈과 사랑만 마음속에 남지. 정 냄새를 못 견디겠으면 겨울이니까 창문을 살짝 열면 되지. 그리고 네 마음속에 오늘 무엇을 하며 놀까 하는 생각을 심어 봐. 그러면 돼.


  집에 닿아 시집을 마저 읽습니다. 다 읽은 시집을 덮으며 새삼스레 어린 날을 그려 봅니다. 내 어릴 적에 나한테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준 어른은 없었지만, 어느덧 나는 새로운 어른이 되었고, 오늘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바로 나부터 이곳에서 새롭게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는 삶을 일구자고 생각합니다.


  굴레는 남이 만들어서 나한테 씌우지 않습니다. 모든 굴레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내 목에 씌웁니다. 시집 《기다림 근처》를 쓴 양현근 님은 머잖아 양현근 님 스스로 마음자리에 심은 꿈씨 같은 싯말에 따라서 새로운 삶길로 나아갈 테지요. 우리 삶과 꿈을 이루는 고운 밤낮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4349.1.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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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먹는 토끼 창비아동문고 105
김녹촌 지음 / 창비 / 198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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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5



괭이질을 못 해도 ‘야구 중계’는 잘 하는데

― 꽃을 먹는 토끼

 김녹촌 글

 송심이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8.9.25. 8000원



  김녹촌 님이 빚은 동시집 《꽃을 먹는 토끼》(창작과비평사,1988)를 가만히 읽습니다. 1988년에 처음 나온 동시집이니 어느덧 서른 해 가까이 되었습니다. 나는 1987년까지 국민학교를 다녔고 1988년에 중학교에 들어섰습니다. 이 동시집이 나올 무렵에는 이 동시집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 학교에서 배운 동시는 모두 글솜씨를 가다듬는 얼거리였다고 느낍니다. 삶이 드러나거나 묻어나는 동시는 배운 적이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그무렵 학교나 사회에서 흔히 쓰던 말은 ‘글짓기’였고, 억지로 쥐어짜서 멋있게 보이도록 뚝딱뚝딱 써야 비로소 ‘시나 동시가 된다(문학이 된다)’고 배웠어요.



이상한 일이다. / 도시 한복판 / 시멘트 발린 마당인데 / 마당 귀 어디에선가 / 철썩철썩 들려 오는 / 파도 소리. (은모래알 그놈들)


학교 오는 길에 / 강버들 꺾어서 만든 / 버들피리 / 자꾸만 불어 보고 싶다. // 선생님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 앵무새처럼 외워 대는 / 어머니 바둑이도 재미가 없어, (버들피리)



  〈버들피리〉나 〈지게〉 같은 동시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나도 어릴 적에 마을에서 버드나무는 흔히 보았습니다. 버들잎으로 멋지게 풀피리를 부는 동무를 보았습니다. 나도 따라서 해 보려 했지만 나는 잘 안 되었습니다.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마을에서 지게질을 하는 이웃 아저씨를 쉽게 보았습니다. 연탄을 나르든 짐을 나르든 지게를 많이 썼어요.


  그렇지만 이런 버들피리 이야기나 지게 이야기를 다룬 동시가 1980년대 교과서에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무렵 교과서에서 ‘학교 공부(‘어머니 바둑이’를 읊는 교과서 공부)는 재미가 없고 버들피리를 불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룬 동시를 실어 줄 만했는지 궁금합니다만, 또 ‘지게 지고 일하는 시골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 동시가 참말 그무렵 교과서에 나올 만한지 아닌지 모릅니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나 동화는 읽지 못한 채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갔습니다.



사과를 먹는다. / 아이들이 / 주렁주렁 익은 / 햇빛덩이를 먹는다. (사과)


우리 아버진 / 이 세상 처음 나실 때부터 / 지게 지고 / 태어나신 것일까? // 전라도 어느 산골 / 어려서부터 / 지게 지고 / 남의 집을 살다가, (지게)



  어릴 적에는 방학을 맞이하면 곧잘 어머니 시골집에 찾아가곤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 시골집에서는 담배 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담배밭 사이를 지나가면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담뱃잎을 말리는 담뱃간 옆에서도 냄새가 어질어질했어요. 그때에는 〈땀냄새〉 같은 동시를 알지 못했어도, 담배밭 일이 얼마나 고되겠는가 하는 대목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서 소한테 여물을 끓여 주고 틈틈이 꼴을 베어 주는 살림을 사촌 형이나 누나가 의젓하게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삶을 꾸리고 짓는 손길’이 도시랑 시골이 이렇게 다르네 하고 새삼스레 느끼곤 했어요. ‘먹고 사는 일’은 하나도 모르는 채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삶은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노릇이 아닌가 하고도 느꼈어요.


  그러나 외가마실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오면 어느새 이런 일을 까맣게 잊습니다. 삶자리에서 늘 느끼거나 살피거나 겪거나 바라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노릇이요 배울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참말로 지난날 학교에서 어린이한테 가르친 동시는 너무 삶하고 멀어졌다고 할까요. 오늘날 학교에서는 어린이한테 ‘삶하고 얼마나 가까운 동시’를 가르치는지 모르겠는데, 예나 이제나 ‘먹고 사는 일’을 어른이 아이한테 똑똑히 보여주고 슬기롭게 이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날마다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면서 지내는데, 늘 집에서 쉬고 자고 하는데, 밥이랑 옷이랑 집하고 얽힌 삶을 교과서나 동시나 문학에서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가르치지 못한다면 아이는 살갗으로 깨달아서 느낄 만한 이야기가 거의 없을 듯해요.



담배잎 따서 지고 오신 / 아버지도 형님도 / 비지땀으로 / 흥건히 옷이 젖었고, // 콩밭 매고 오신 / 어머니도 누나도 / 진땀으로 함초롬히 / 적삼이 젖었습니다. (땀냄새)


씨앗 하나 뿌릴 줄도 모르고 / 괭이질도 하나 옳게 할 줄 모르면서 / 밥만 먹으면 만날 야구나 / 해먹고 사는 사람들. // 어느 편이 / 지고 이기면 뭘 하며 / 누가 홈런을 쳐서 / 몇 점을 더 따면 뭘 하나? (야구 중계)



  김녹촌 님은 동시집 《꽃을 먹는 토끼》에 〈야구 중계〉라는 동시를 실으며 ‘텔레비전 스포츠 중계’를 매섭게 나무랍니다.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가뭄이 들어 땅을 치는 농사꾼이 있으나, 우리 사회 다른 쪽에서는 야구 중계이니 축구 중계이니 하면서 사람들이 잔뜩 몰려서 소리치고 떠든다고 해요. 괭이질도 모르고 씨앗 한 톨 뿌리지도 않으면서 도시 사람들이 스포츠 중계에 지나치게 목을 맨다고 나무라요.


  더군다나 1988년이라면 서울 올림픽을 치르던 해입니다. 이때에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스포츠 관람’에 더 마음을 기울이도록 정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엄청난 경기장을 무척 많이 짓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면 전두환이라는 분이 대통령 자리를 맡던 무렵인 1982년에 프로야구를, 1983년에 프로축구를, 잇달아 다른 여러 가지 운동경기를 널리 퍼뜨리려고 했습니다. 민주바람을 스포츠바람으로 잠재우려는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동시집 《꽃을 먹는 토끼》에 나오는 〈야구 중계〉 같은 동시를 2016년 오늘 이곳에서 어린이나 어른은 어떻게 받아들일 만할까요? 너무 지나치다고 여길 만할까요? 스포츠 중계가 뭐가 나쁘다고 여길 만할까요? 이제는 야구나 축구뿐 아니라 지구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스포츠 중계를 안방뿐 아니라 손전화로도 아주 손쉽게 볼 수 있으니, 이런 동시는 그야말로 낡은 훈계쯤으로 여길 만할까요?



봄햇살이 하도 눈부시고 / 따사로와 / 새싹 돋는 보리밭을 / 여기저기 구경다닌다. (봄 고양이)


토끼의 맑은 눈과 / 아이들의 까만 눈이 / 반짝 마주쳤다. // 반짝 서로 / 씽긋 웃었다. (꽃을 먹는 토끼)



  운동 선수는 운동 한 가지만 잘 하면 돈을 만집니다. 그런데 운동 한 가지만 잘 하는 운동 선수는 서른 살이 넘기까지 운동을 하는 일이 드물고, 마흔 살이 넘기까지 운동을 하는 일은 더욱 드뭅니다.


  나이 서른이나 마흔은 ‘한창 꽃을 피우는 나이’라고 해요. 시골에서는 서른이나 마흔 살 나이가 ‘일을 솜씨 좋게 잘 해내는 나이’라고 할 만합니다. 스무 살 언저리부터 서른 살 사이는 젊은 일꾼이라면, 마흔 살 언저리는 듬직한 일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중계를 하는 운동경기를 하는 사람은 서른이나 마흔이라는 나이에 ‘은퇴’를 하지요. 그 나이가 지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일쑤예요.


  김녹촌 님은 이러한 대목도 살피면서 〈야구 중계〉라고 하는 동시를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른 사회에서 무엇을 보고 배우면서 삶을 짓는 슬기를 얻을 만한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짚으려고 했다고 느낍니다.



노란 벼도 고개를 / 숙였습니다. / 수숫대도 고개를 / 숙였습니다. // 알알이 익어 가는 / 열매를 안고 / 깊고 깊은 생각에 / 잠겼습니다. (익을수록)



  동시집 《꽃을 먹는 토끼》를 읽으면, 이 동시집에 넓고 깊게 흐르는 시골살이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나오는 거의 모든 동시집은 도시살이 이야기를 다루지요. 오늘날은 아무래도 거의 모든 어른과 아이가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도시살이 이야기가 아니라면 동시로도 쓰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나락이 고개를 숙이고 수숫대가 고개를 숙이는 이야기를 쓸 만한 동시인은 얼마쯤 될까요. 아이한테 나락을 이야기하고 보리를 이야기하며, 봄햇살이랑 겨울바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은 얼마쯤 될까요.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사랑하면서 의젓하게 가꾸는 길을 밝히려는 마음이 가득한 《꽃을 먹는 토끼》를 기쁘게 읽을 어른과 아이를 기다립니다. 4349.1.5.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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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붉은 꽃잎 창비시선 81
송기원 지음 / 창비 / 199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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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05



겨울밤에 버스를 기다리며 춤을 추다가

― 마음속 붉은 꽃잎

 송기원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0.2.10. 4000원



  추운 날에는 춥다고 웅크리기만 하면 더욱 춥습니다. 그렇지만 춥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몸을 움직이면서 일하거나 놀면 추위를 잊어요. 춥기 때문에 일하기 어렵지 않고, 추운 탓에 놀기 어렵지 않아요. 추워서 못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아무리 춥더라도 스스로 좋아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일을 한다면 추위쯤 얼마든지 떨칠 만해요. 아무리 춥더라도 스스로 즐길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하고 놀이를 한다면 추위 따위는 곧바로 사라질 만해요.



처음에는 노랫소리인 줄도 몰랐습니다. / 끊일 듯 말 듯 가냘픈 소리 하나가 / 다른 소리에 잇대어지고, 그렇게 / 또 다른 소리에 닿더니 (안개)



  겨울 한복판에 아이들하고 읍내로 마실을 나간 뒤에 저녁 늦게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들어가서 기다릴 데도 없습니다. 이십 분 남짓 한길에서 군내버스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동안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저기로 달리고, 이쪽에 있는 울타리에 매달리고, 이 걸상을 기어오르더니 저쪽으로 폴짝 뛰어내립니다.


  아이들이 노는 양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아이들은 춥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오직 ‘놀이’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아이들한테 두툼한 겉옷을 입히려 하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은 마음껏 몸을 움직이면서 땀을 냅니다. 아이들한테 두툼한 겉옷을 입히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정작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할 ‘일’이란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신나게 뛰놀면서 온몸을 움직여서 땀을 내고 기쁘게 웃도록 북돋우는 한 가지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십 년을 넘어 사글셋방으로 전전하다가 / 서울에서도 동쪽 끄트머리 고덕으로 옮겨와 / 금년에는 빚도 좀 얻고 하여 겨우겨우 / 아파트 전세값 천만 원을 마련했습니다. / 아내는 아르바이트로 피아노를 가르치고 / 국민학교 4학년과 1학년짜리 두 딸년도 /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자라서 (고덕에서)



  송기원 님 시집 《마음속 붉은 꽃잎》(창작과비평사,1990)을 읽습니다. 판이 끊어진 지 한참 된 시집을 읽습니다. 해묵은 시집이라고도 할 만하지만, 1947년에 태어난 송기원 님 나이를 헤아리자면 1990년은 한창 ‘젊은’ 나이입니다. 스무 살에 대거나 서른 살에 대면 ‘안 젊은’ 나이일 테지만, 쉰 살이나 예순 살에 대면, 또 일흔 살에 대려고 하면 ‘젊은’ 나이예요. 책으로 치자면 1990년에 나온 시집은 2016년에 돌아보기에 스물여섯 해나 묵은 책입니다만, ‘시인 한 사람’이 마흔 살을 살짝 넘긴 나이에 쓴 이야기라는 대목을 생각한다면 묵거나 오래된 시집이 아니라, ‘어느 젊은 한때에 누린 삶이 깃든 목소리’가 흐르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갯벌, 물결, 섬, 갈매기 등이 작은 제목이었습니다. 그런 시라도 쓰지 않으면 정말이지 옆방의 늙은 여자보다도 제가 / 먼저 죽어버릴 것 같았습니다. (여수 앞바다)


나이가 마흔이 넘응께 / 이런 징헌 디도 정이 들어라우. / 열여덟살짜리 처녀가 / 남자가 뭔지도 몰르고 들어와 / 오매, 이십 년이 넘었구만이라우. (살붙이)



  이제 일흔 줄 나이에 접어들 시인으로서는 1990년에 선보인 《마음속 붉은 꽃잎》에 흐르는 이야기 같은 삶을 마주하기에는 만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시집을 선보일 무렵 송기원 님은 섬마을이나 바닷마을이나 시골마을로 찾아가면서 그곳에서 ‘술과 몸을 파는 늙은 가시내’가 읊는 하소연을 고스란히 들으면서 함께 술자리를 했다고 합니다. 이 시집에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고향마을’을 그리는 ‘술과 몸을 파는 늙은 가시내’ 목소리가 고스란히 흐릅니다. 술잔으로 눈물을 달래는 외롭고 아픈 우리 이웃들 숨결이 고스란히 흘러요.


  시 한 줄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 만할까요? 시 한 줄에는 어떤 노래를 엮을 만할까요? 우리 곁에는 어떤 이웃이 있을까요? 우리 둘레에는 어떤 동무가 있을까요?



전라도 땅끝 흙부뚜막에 / 된장 뚝배기 끓던 고향집을 / 나라고 차마 잊을 수야 있나요. / 자, 우리 나가요, / 빠다냄새 나는 돈으로 한잔 살 테니. / 어디 해장집 가서 소주병 까면서 / 이미자 노래나 오지게 불러요. (이미자 노래나)



  찬바람이 싱싱 부는 겨울 저녁에 읍내 한쪽에서 아이들하고 춤을 춥니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가방은 내려놓고서 가벼운 몸으로 두 아이하고 버스터 한쪽에서 신나게 땀을 흘립니다. 읍내 고등학생 아이들이 지나가건 말건, 시골 아지매가 지나가건 말건, 나는 두 아이만 바라보면서 ‘우리 마을로 돌아가는 버스’가 들어올 때까지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함께 춤을 춥니다. 아이들은 그저 ‘노는 마음’이 되고, 나는 ‘아이들하고 노는 마음’이 됩니다. 아이들도 다른 사람 눈치를 안 보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추위를 잊습니다. 나도 어른이나 어버이라는 옷을 벗고서 다른 사람 눈치가 아니라 내 삶을 헤아리면서 깔깔깔 웃으면서 춤을 춥니다. 이렇게 춤추는 동안 오늘이 겨울인지 여름인지 생각할 일이 없고, 오늘이 얼마나 춥거나 더운지 따질 일이 없습니다.



꽃값 오천 원으로 당신이 나를 사면 / 내 고향 들샘 복사꽃으로 나는 당신을 사요. (꽃값)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붉은 꽃잎을 건사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크거나 작거나 향긋하거나 밋밋하거나 새빨간 꽃잎을 건사합니다.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구나 싶은 붉은 꽃잎이 흐드러지기도 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스러지면서 땅바닥에 뒹굴고 마는 바싹 마르고 마는 잎사귀이기도 한 꽃잎을 건사합니다.


  해가 넘어가면서 십이월에서 일월로 접어드는 날인데, 마을 논둑에 봄까지꽃이 조그맣게 보랏빛 꽃송이를 살그마니 터뜨립니다. 마을 어귀 빨래터에도, 우리 집 뒤꼍하고 마당에도, 또 볕이 잘 드는 곳마다 앙증맞도록 작은 제비꽃이 봄까지꽃처럼 환한 보랏빛 꽃송이를 가만히 터뜨립니다.


  꽃은 봄에도 피지만 겨울에도 핍니다. 꽃은 여름과 가을에도 곱게 피지만, 한겨울에도 씩씩하게 핍니다. 늙은 꽃이 있고 젊은 꽃이 있습니다. 고향을 떠난 씨앗 한 톨이 새로운 고장에서 야무지게 뿌리를 내리기도 합니다. 차마 고향을 떠나기 싫은 씨앗은 어미꽃 곁에 톡 떨어져서 함께 피어나려 하기도 합니다.



어머니, 당신이 손수 물 주어 기르신 앵두나무, 사과나무, 배나무는 이 봄에도 어김없이 꽃을 피웠습니다. (꽃 피는 봄날 1)



  아이들이 이 겨울 한복판에 “씨앗 심고 싶어요!” 하고 외치면서 꽃삽을 들고 마당 한쪽에서 저희끼리 텃밭을 일굽니다. 이 어여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음이 터지고, 이 살뜰한 몸짓을 찬찬히 지켜보다가 삶이란 시란 노래란 이야기란 이렇게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즐겁게 심는 씨앗처럼 곱게 뿌리를 내리고 환하게 떡잎이 돋아서 자라기를 꿈꿀 적에 태어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알아차립니다. 4349.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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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의 봄
조호진 지음 / 삼인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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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08



봄볕은 소년원에도 깃들 수 있을까

― 소년원의 봄

 조호진 글

 삼인 펴냄, 2015.12.9. 8000원



  조호진 님이 빚은 시집 《소년원의 봄》(삼인,2015)은 소년원에도 소년원 바깥에서와 똑같이 봄날이 찾아오고 봄볕이 찾아들지만, 막상 따스한 숨결이나 기운은 흐르지 못하는구나 싶은 사회 모습을 시로 찬찬히 그립니다. 날씨는 봄이지만 마음은 봄이기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를 시로 그리고, 햇볕은 따사롭게 내리쬐지만 따사롭다 싶은 사랑이 깃들지 못하는 구석진 삶자리 이야기를 시로 그려요.



가난한 이들 덕에 칭찬받은 그대여 / 가난한 이들 덕에 유명해진 그대여 / 가난한 이들 덕에 훈장 받아 놓고서 / 어찌하여 그대 안에 가난함이 없나요 (무료급식소에서 5)


아내는 호박죽을 좋아하고 저는 그 샛노란 빛깔을 좋아해서 / 팔 아픈 아내 대신해 호박죽이 타니 않도록 잘 저었습니다. (묵정밭 늙은 호박)



  한겨울이지만 포근한 날씨인 전남 시골마을에서 시를 한 줄 읽다가 아이들하고 마실을 나옵니다. 이틀쯤 드센 바람이 불었지만 이 바람이 가라앉으면서 한겨울이 무척 포근합니다. 아마 이 고장뿐 아니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고장도 제법 포근하리라 생각합니다. 한겨울에도 바람이 자는 날이라면 어디에도 봄볕 같은 기운이 퍼지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마음이 포근하지 못하면 포근한 겨울바람이 찾아와도 몸이며 살림이며 집이며 포근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포근할 적에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도 몸이나 살림이나 집이나 포근하게 지키거나 건사할 수 있어요.


  이 같은 대목을 예전에도 알았는지 몰랐는지 가만히 돌아보면, 아마 예전에도 알았을는지 모르나 똑똑히 못 깨달았구나 싶습니다. 아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모르면서도 새롭게 알려고 나서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따뜻한 집일 적에도 따뜻할 수 있으나 마음이 따뜻하지 못하면 난방이 잘 되는 집이어도 따뜻하지 못하다는 대목을 나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추운 집일 적에는 그야말로 추울 테지만 마음이 따뜻할 적에는 추위를 잊거나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는 대목을 나 스스로 똑똑히 알아차리려 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가난한 시인을 위해 / 아내를 특별한 선물로 주셨다. (임무)


목숨 걸고 / 지켜야 할 것은 / 이따위 조국이 아니라 / 내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다. // 어린 목숨들 죽이는 / 이따위 조국은 조국 아니다. / 우리들의 자식 빼앗아 가는 / 이따위 조국은 조국 아니다. (당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한 가지라면 바로 삶이지 싶습니다. 목숨을 바쳐 살려야 하는 한 가지라면 바로 사랑이지 싶습니다. 아이들을 바닷속에 가두어 버리는 나라라든지, 군부대를 새로 짓는다며 땅과 바다를 모두 망가뜨리는 나라라든지, 경제성장율만 바라보면서 쌀이며 곡식이며 끝없이 수입하려는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나라라든지,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를 놓지 않으려는 나라라든지, 평화로운 학교가 아닌 입시지옥 학교로 가는 교육정책을 바꾸지 않으려는 나라를 지킬 노릇이 아닙니다. 삶이 삶답고 사랑이 사랑다울 수 있는 길로 나아갈 노릇이요, 우리 아이들부터 삶과 사랑을 배우도록 할 노릇입니다. 이러면서 어른인 나도 삶과 사랑을 새롭게 배워야지요. 아이와 어른이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과 사랑을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가르치며 배워야지요.



잡혀 가는 거리의 소년아 / 너의 죄는 얼마만큼 무겁기에 / 고개도 못 든 채 울기만 하느냐 (자복)


소년들이 예수를 알겠느냐 구원을 알겠느냐 / 사랑을 알겠느냐 은혜를 알겠느냐 그냥 둬라 / 받아본 적도 맛본 적도 없는데 어찌 알겠느냐 / 어린 나이에 죄의 진흙탕에 빠진 게 누구 죄냐 (소년원 예수)



  조호진 님은 시 한 줄로 사회를 바라봅니다. 아이들한테 죄를 들씌우는 사회가 아닌, 아이들한테 사랑을 보여줄 사회를 바라면서 시를 한 줄 씁니다. 아이들한테 차가운 감방을 안기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들을 포근하게 감싸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어른들이 아름답게 일굴 사회를 꿈꾸면서 시를 한 줄 씁니다.


  아주 마땅한 일인데 더 나은 복지가 되어야 아이들이 즐겁지 않습니다. 더 나은 복지를 정책으로도 꾸릴 노릇이지만, 이에 앞서 어른들 스스로 사랑과 평화와 평등으로 삶을 슬기롭게 가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사랑과 평화와 평등이 없이 복지 정책만 꾸리려 한다면, 복지 정책조차 제대로 서지 못해요. 사랑을 모르면서 무슨 복지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평화와 평등을 모르고서 어떤 복지를 살필 수 있겠습니까. 따스한 기운이 없는 제도나 규칙이나 법이 아니라, 언제나 따스한 기운으로 삶을 북돋울 수 있는 사회가 된 뒤에 비로소 제도나 규칙이나 법을 살필 수 있어야지요.



눈물도 사랑도 없는 / 저것은 죽은 십자가다 / 저것은 탐욕의 십자가다 / 저것은 허위의 십자가다 (벽면예배)



  봄볕은 소년원에도 깃들 수 있을까요? 네, 틀림없이 소년원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봄볕은 청와대에도 시청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봄볕은 공장에도 발전소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봄볕은 겨울 빈들에도 깃들 수 있고, 봄볕은 낙동강이나 영산강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봄볕은 우리 가슴에 깃들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지을 하루이고, 사랑으로 닦을 살림입니다. 사랑으로 찾을 꿈이요, 사랑으로 누릴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눈물을 바라보면서 쓰는 시는 눈물을 씻으려는 시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씻고 나서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손길로 쓰는 시입니다. 이 눈물이 돋은 자리에 새롭게 웃음이 자라기를 바라는 손으로 시를 찬찬히 쓰고, 한 걸음 두 걸음 씩씩하게 나아갑니다. 이 땅에, 온누리 모든 곳에, 아이들이 겨울볕도 포근히 누리고 봄볕도 따사로이 맞이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서기를 빕니다. 죄도 잘못도 아닌 기쁜 사랑이 새싹처럼 터져나올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2.3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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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파로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387
김영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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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08



시와 지우개

― 가을 파로호

 김영남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1.2.28. 7000원



  글씨를 쓰다가 틀리는 아이들은 지우개로 틀린 글씨를 지웁니다. 슥슥 지우개질을 마친 뒤 찬찬히 새 글씨를 넣습니다. 아이들은 글씨를 힘껏 눌러서 쓰기에 지우개로 연필 자국을 지워도 까만 글씨만 지울 뿐 꾸욱 눌린 자리까지 없애지 못합니다.


  볼펜으로 글씨를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지우지 못해서 까맣게 덧입히곤 합니다. 까맣게 덧입힌 글씨 뒤나 둘레에 새 글씨를 넣습니다. 틀린 글씨 자국이 고스란히 남으니 얼룩덜룩합니다. 이 얼룩덜룩한 자국만 보면 얼룩덜룩이만 보일 텐데, 얼룩덜룩한 자국은 건너뛰면, 종이에 어떤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우물가 집 뒤란의 누나 방에 // 굴러다니는 피임약이여, 그걸 // 영양제로 주워 먹고 건강한 오늘날이여 (앵두가 뒹굴면)


바람이 차고 푸르다 // 창밖에선 삐거덕삐거덕거리는 소리 // 청둥오리들 감나무 사이 무더기로 날 때 // 오리들은 누구의 집에 들러 // 대문 저리 슬프게 열며 지나가는 걸까 (성에꽃)



  김영남 님이 빚은 시집 《가을 파로호》(문학과지성사,2011)를 읽습니다. 가을과 파로호를 노래하면서 삶을 북돋우는 사랑이 어디에서 흘러와서 어디로 흐르는가 하는 대목을 찬찬히 건드리는 시를 읽습니다.


  앵두하고 누나 방하고 영양제하고 피임약이 서로 얼크러지는 시를 읽고, 바람이 찬 날 성에꽃을 보다가 문득 창밖으로 감나무 사이로 청둥오리를 바라보는 시를 읽습니다. 딸기에서 퍼지는 냄새에서 짧은치마 아가씨를 떠올리다가 다시 딸기 상자를 바라보는 시를 읽습니다.



그 딸기들 향기 따라가보면 /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들이 앉아 있다 / 팔과 다리 드러난 피부가 토실토실하고 / 잘 익은 것들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위태롭고 (상자 안에 갇혀)


우울하면 명동으로 오세요 / 신데렐라 만화 보고 있으면 즐거워져요 (하이힐 하이힐)



  시집 《가을 파로호》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삶이 있을까요? 지우개로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는 삶이 있을까요? 지우개로 지우면 말끔히 사라져서 하나도 안 떠올릴 만한 삶이 될까요?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워도 다시 돋아나거나 드러나서 언제까지나 자꾸 떠오르는 삶은 아닐까요?


  가만히 보면 우리 삶은 지우개로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틀리게 쓰든 잘못 적든 그냥 그대로 두고 바라보면 외려 마음속에서 잊히기도 합니다. 지우개로 지우기에 고칠 수 있거나 바꿀 수 있는 삶이 아니라, 생채기를 생채기 그대로 마주하면서 껴안을 적에 새롭게 거듭나거나 피어나는 삶이 아닌가 싶어요.


  깔깔거리며 고샅을 달리다가 철퍼덕 넘어지는 아이들이 일어섭니다. 처음에는 씩씩하게 일어서는데, 피를 보고 으앙 울기도 합니다. 피를 보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놀기도 하고, 넘어져서 아프다며 더 못 놀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든 모두 아이들 하기 나름입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어도 씩씩하게 새로 놀 수 있습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살짝 벗겨졌기에 이제 더 놀 마음이 사라질 수 있어요.


  어른들 삶에서도 아프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힘겨운 일이 있어서 그만 삶을 접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아프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힘겨운 일이 있기에 다시금 기운을 차리면서 한결 의젓하게 일어설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보내온 감 상자는 한 바퀴 빙 돈 테이프를 억세게 뜯어내도 어머니이고 상자 속 상자를 살짝 열어봐도 어머니입니다. (지독)



  감 상자에는 어머니 손길이 그대로 흐릅니다. 상자를 테이프로 감싼 자국에도 어머니 손길이 흐르고, 감알에도 감나무를 돌본 어머니 손길이 흐릅니다. 택배 상자에 적은 글씨에도 어머니 손길이 흐를 테지요.


  사랑을 읽으려 하면 언제나 사랑을 읽는 삶입니다. 아픔을 읽으려 하면 언제나 아픔을 읽는 삶입니다. 꿈을 읽으려 하면 언제나 꿈을 읽는 삶이요, 미움을 읽으려 하면 언제나 미움을 읽는 삶입니다.



하숙집 앞집 뒤란은 언제나 신비한 것들이 널려 있곤 했다 / 세수하다 건너다보는데, 그때 핀 목련은 끙끙 소리가 났다 (목련의 고통)


지우개란 이럴 때 자기 위해 / 갈매기 향기롭게 띄우는 것이겠지요 / 바다도 누가 던지는 조약돌 / 얌얌 하는 표정으로 받아먹다가 / 저렇게 퍼렇게 멍드는 것이겠고 (설리 폐선)



  시 한 줄로 삶을 노래합니다. 시 한 줄에 내 삶을 내 나름대로 실어서 띄웁니다. 나는 너한테 노래를 띄우고, 너는 나한테 노래를 보냅니다. 나는 너한테 노래를 읊어 주고, 너는 나한테 노래를 불러 줍니다.


  시 한 줄로 사랑을 적습니다. 시 한 줄에 내 사랑을 내 깜냥껏 적어서 덮습니다. 이제껏 살아오며 누린 사랑을 시로 적고, 오늘 살면서 누리려는 사랑을 시로 적으며, 앞으로 살아갈 길에 새롭게 펼치고픈 사랑을 시로 적습니다.


  장난감이 있어야 놀 수 있는 아이가 아니듯이, 연필하고 지우개가 있어야 시를 쓰는 어른이 아닙니다. 맨손으로도 얼마든지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듯이, 맨손으로도 마음자락에 고운 숨결이 흐르는 시를 노래로 적고 읊고 새길 수 있는 어른입니다.



경석아, 빨리 학교 가자 // 내가 그 창을 뒤로하고 있으면 / 우산 높이 들고 곰이 찾아오고 / 청개구리가 달팽이에게로 마중 나가고 / 나뭇잎 타고 Roca란 말도 찾아오고 (봄밤)


그중 제일 위태로운 것 / 엉덩이에서 / 청색 팬티 하나 골라 입고 / 운동장 한가운데로 가 엎드린다 / 엎드려 친구의 고것을 / 가랑이 사이로 만진다 / 만지다가 훑어버린다 / 그러면 텀블렁 탑은 / 함성과 함께 무너지고 / 하늘은 오색 종이로 흩어지고 (좌판에 쌓인 홍옥은)



  지우개를 집어 지우려다가 문득 그만둡니다. 잘 쓴 글이라고 여기지만 문득 지우개로 깨끗이 지웁니다. 지우개를 집어서 지우다가 괜히 지웠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즐겁게 쓰고 나서 즐겁게 지우개질을 합니다.


  삶은 마음에 따라 바뀝니다. 가난한 살림이어도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하면 기쁜 살림입니다. 넉넉한 살림이어도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하면 슬픈 살림입니다. 밥을 두 그릇 먹어야 배부르지 않아요. 기쁘게 먹는 밥 한 그릇일 적에 배불러요. 기쁘게 먹는 밥이라면 반 그릇이나 한 숟갈로도 얼마든지 배불러요.


  파로호는 왜 파로호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처음에는 못이 아니었다가 못으로 바뀌고, 게다가 그 못물에 수많은 사람이 빠져죽었다는 일을 생각하다가, 그 못물을 둘러싸고 남북녘 수많은 젊은이가 아직도 총칼을 움켜쥐고 서로 노려보는 오늘 이 나라를 생각하다가 시집을 조용히 덮습니다. 가을은 저 멀리 가고 겨울 한복판에 들어선 시골집에서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며 노는 하루를 새롭게 열면서 내 마음속에 아로새길 시를 생각합니다. 여덟 살 큰아이가 ‘된장국’을 어떻게 끓이는가를 궁금하게 여기기에, 된장국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시로 써서 아이하고 읽어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낮에 아이들하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 능금 몇 알 장만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4348.12.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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