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타 콩콩꼬마그림책
민정영 글.그림 / 길벗어린이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13

 


노래하는 아이들
― 내 기타
 민정영 글·그림
 천둥거인 펴냄, 2010.5.17.

 


  아이들은 할 수 없는 일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즐겁고 신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것이든 저것이든 느긋하게 하도록 지켜보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어른 눈높이로 아이들을 재거나 따지기 일쑤입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셔요. 우리 어른들 가운데 아이들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아이들이 놀듯이 놀 수 있는 어른은 몇이나 되는가요. 아이들이 노래하고 꿈꾸듯이 노래하거나 꿈꾸는 어른은 어디에 있는가요.


.. 아빠는 “너한테는 너무 커.” 하고 말하지만 ..  (3쪽)


  아이들은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가용을 몰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주식투자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전투기나 군함이나 탱크를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전쟁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웃이나 동무를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려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휴전선이나 파벌이나 학벌을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인종차별이나 계급차별을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입시지옥이나 교통지옥을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4대강사업을 하지도 않고, 대통령선거를 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은 음주운전을 하지도 않고, 술집이나 다방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은 공장을 짓거나 골프장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은 고속철도나 고속도로도 닦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요? 노래를 하지요. 아이들은 무엇을 하나요? 신나게 놀아요. 아이들은 무엇을 하는가요? 맛나게 밥을 먹고, 기쁘게 춤을 추며, 어버이 손을 이끌며 나들이를 다니고 싶어요.


  아이들은 밭에서 씨앗을 아주 잘 심습니다. 아이들은 호미질을 아주 잘 합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아주 잘 탑니다. 아이들은 먼길도 씩씩하게 잘 걷습니다. 아이들은 새와 벌레와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참 잘 듣습니다. 아이들은 바람소리와 바람내음을 잘 깨닫습니다. 아이들은 해와 달과 별이 어떤 빛인지 잘 읽습니다. 아이들은 따사로운 어버이 품을 아주 좋아합니다.


  이 아이들한테 무엇을 시키는 어른인가요.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도록 하는 어른인지요. 이 아이들을 어떻게 마주하는 어른입니까.

 

 


.. 나는 기타를 쳐요. 이렇게도 치고 ..  (6쪽)


  민정영 님 그림책 《내 기타》(천둥거인,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이 아이들 눈높이에서 그렸는지, 어른들 생각으로 그렸는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딱히 악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이든 악기입니다. 쿵쿵 소리 나는 마룻바닥도 아이들한테는 악기입니다. 아이들은 마루에서 뛰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뛰니까 좋고, 쿵쿵 소리 나서 좋으며, 쿵쿵 뛰며 마룻바닥이 덜덜 떨리는 결을 좋아합니다. 나도 아이였을 적에 이 느낌들 참으로 즐겼어요. 아이들이 대청마루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뛰는 모습을 어찌저찌 말릴 길 없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요 삶인데 말리겠어요. 너무 뛴다 싶으면 마당으로 내려가서 마당에서 뛰라고 얘기할 뿐입니다.


  아이들은 나무문도 즐겁습니다. 시골집 나무문은 창호종이 바른 빗살무늬 깃듭니다.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소리 나는 이 나무문을 열고 닫으며 놉니다. 참말 나무문이니, 아이들로서도 나무를 만지는 느낌이 있고, 되게 재미있습니다. 그만 하라 말하고 또 말해도 놀밖에 없습니다. 나도 아이였을 적에 이 나무문 여닫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밥을 먹으며 숟가락이 밥그릇에 닿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신을 발에 꿰고 골목을 거닐 적에 나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겨울날 두툼한 옷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뒤 몸을 뒤틀 적에 팔과 몸이 스치며 나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손바닥끼리 비비고, 손바닥으로 얼굴 비비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온 삶이 노래요, 온 하루가 노래입니다.


.. 우리 둘이 아주아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거예요 ..  (24쪽)


  아이들은 언제나 아름답게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커서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아름답게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무대에 서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겠다는 꿈을 키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노래를 부르니까요. 텔레비전에서 본 모습이 있으니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할 텐데, 이래서야 아이들 마음을 담은 그림책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모든 모습이 노래요, 모든 놀이가 노래인걸요.


  몸피만 아이가 된 어른 눈길로 보여주는 그림책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마음도 몸도 오롯이 아이가 되어 삶빛 들려주는 그림책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다섯 살 아이 마음으로, 여섯 살 아이 넋으로, 일곱 살 아이 눈빛으로, 어른 삶이나 어른 사회나 어른 굴레나 어른 눈높이 아닌, 온통 아이다운 사랑과 꿈으로 즐겁게 뛰노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서움이 없어요. ‘무섭다’라는 말은 어른들이 가르치거나 보여줘서 알지요. 아이들은 밤은 밤대로 즐겨요. 아이들은 우주를 날고 별 사이를 다니며 해랑 달하고 동무합니다. 기타를 벗삼아 하늘을 날 테지요. 기타와 나란히 바닷속을 노닐 테지요. 기타와 함께 땅밑으로 마실을 다니고, 기타하고 둘이서 너른 숲속에서 온갖 동무를 사귈 테지요.


  그림책 《내 기타》가 조금 더 아이들 마음빛으로 다가서면서 한결 너르며 깊은 꿈날개를 키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4346.11.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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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비부비 몽이 분홍 꼬마 몽이 이야기 1
토요타 카즈히코 지음, 하늘여우 옮김 / 넥서스주니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12

 


포근하게 안는 손길은
― 부비부비 몽이
 토요타 카즈히코 글·그림
 하늘여우 옮김
 넥서스주니어 펴냄, 2006.3.25.

 


  새근새근 자는 아이가 어느새 몸을 돌려 달라붙습니다. 아이는 어버이 손이나 몸을 만지면서 꿈나라를 누리고 싶습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굴리며 잡니다. 이불만 덮는다고 잘 자지 않습니다. 손을 살며시 잡고 싶습니다. 얼굴을 살살 쓰다듬고 싶습니다.


  아이들 재우며 작은아이와 큰아이를 살살 쓰다듬습니다. 아이들은 작은 입을 놀려 잠자리에서도 종알거리고, 작은 손을 움직이고 작은 발을 차면서 이불을 이리저리 흐트립니다. 아이들은 잠자리에서도 놀고 싶습니다. 이 아이들한테 보드랍게 자장노래 불러 줍니다. 이 아이들한테 한손씩 뻗아 이마를 쓰다듬습니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깁니다. 가슴을 토닥토닥 눌러 줍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뛰놀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기쁘게 꿈날개 펼치기를 바랍니다.


.. 삐악삐악 병아리가 몽이 뺨을 부비부비. 와, 몽이의 좋은 냄새 ..  (3쪽)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냄새를 맡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들 냄새를 맡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손길을 느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 손길을 느낍니다. 두 사람은 함께 웃고 함께 먹으며 함께 노래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자고 함께 입으며 함께 살아갑니다.


  가까운 마실을 가든 먼 나들이를 가든, 서로 손을 잡습니다. 가다가 졸리면 등에 업혀 잡니다. 품에 안겨 잠듭니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멀리멀리 길을 떠날 적에는 작은 발로 걸상을 밟고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노는 아이들입니다. 개구지게 놀다가 기운이 빠지면 스르르 눈이 감기고, 어느새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은 다른 걱정이 없이 잠듭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곯아떨어진 나를 살포시 안아 재우며 아끼리라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곯아떨어져 잠든 몸으로 저를 다독다독 품는 어버이 손길을 느낍니다. 어버이 살내음을 맡습니다. 투박한 손마디로 안더라도 따사롭다고 느낍니다. 거친 손바닥으로 쓰다듬더라도 포근하다고 느낍니다. 투박한 손마디와 거친 손바닥에 애틋한 사랑이 흐르거든요.


.. 아파도 꾹 참자. 몽이야, 참자 ..  (18쪽)

 

 


  포근하게 안는 손길은 사랑입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아이가 어버이를, 서로 사랑으로 마주합니다. 서로 아끼는 옆지기가 사랑으로 만납니다. 아이와 아이가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습니다. 어른과 어른도 어깨동무를 하면서 두레와 품앗이를 합니다.


  풀은 뿌리가 얼키고설킵니다. 풀은 잎사귀도 얼키고설킵니다. 풀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온갖 풀이 아주 조그마한 틈에서 함께 돋아 함께 자랍니다. 뿌리도 하나요 줄기와 꽃도 하나입니다. 민들레꽃 옆에 씀바귀꽃 있어요. 꽃다지꽃 옆에 꽃마리꽃 있어요. 냉이꽃 곁에 봄까지꽃 있어요. 별꽃 둘레에 코딱지나물꽃 있어요.


  함께 살아가며 아름답게 빛납니다. 함께 사랑하며 즐거이 노래합니다. 우리 삶은 아름다운 웃음빛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 지구별은 즐거운 사랑으로 환합니다.


.. 몽이가 엄마 뺨을 부비부비. 와, 엄마의 좋은 냄새 ..  (24쪽)

 


  토요타 카즈히코 님 그림책 《부비부비 몽이》(넥서스주니어,2006)를 읽습니다. 복숭아 아이 ‘몽이’는 혼자서 조용히 흙놀이를 합니다. 이동안 몽이 동무들이 하나둘 찾아와 몽이 뺨을 살살 부빕니다. 저마다 몽이 뺨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아마 몽이도 동무들한테서 좋은 냄새를 맡을 테지요.


  그런데, 가만히 헤아리면, 몽이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는 까닭은 바로 몽이 어머니와 아버지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니, 아이도 이 좋은 냄새를 물려받습니다. 몽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 몽이가 낳는 아이도 몽이한테서 좋은 냄새를 물려받을 테지요.


  먼먼 옛날부터, 아스라히 먼먼 옛날부터, 범도 사람도 담배 피며 함께 살던 까마득히 먼먼 옛날부터,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풍기는 좋은 냄새를 물려받은 아이들이 이 땅에서 씩씩하고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좋은 냄새를 맡으며 싱그러운 빛을 노래합니다. 어버이는 좋은 냄새를 베풀면서 포근한 꿈을 일굽니다.


  예쁜 그림책을 아이들과 기쁘게 누리다가, 꼭 한 가지에서 걸립니다. 이 그림책에는 “몽이의 좋은 냄새”와 “엄마의 좋은 냄새”라 나오는데, 일본책에서는 ‘の’를 썼을 테지만, 우리 아이들한테 읽히는 한국책에는 ‘-한테서’를 넣어야 올바릅니다. 냄새는 몽이한테서 나고 엄마한테서 납니다. 또는 “몽이 냄새”나 “엄마 냄새”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좋은 말로 좋은 이야기를 엮어 내놓는 그림책 되어, 아이들도 어른들도 좋은 말로 좋은 삶 일구는 밑바탕 되기를 빕니다. 4346.11.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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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17 18:24   좋아요 0 | URL
앗, 이 그림속의 꼬마 이름이 몽이군요!
저번에 사진도서관 책꽂이에 있던 일본그림책,
온천물 속에 들어가 있는 그 꼬마, 이야기네요~~

숲노래 2013-11-18 02:2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아아, 눈이 좋으시군요!
@.@

처음에는 '만두'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일본말사전 보니 '복숭아'더라구요.

생각해 보니, 이 아이는 '몽이' 아닌 '복이'로 옮겨야
더 맞겠구나 싶네요.
 
난 좋아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하비에르 소브리노 글, 배상희 옮김 / 행복한아이들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11

 


좋은 마음으로 함께 놀자
― 난 좋아
 노에미 비야무사 그림
 하비에르 소브리노 글
 행복한아이들 펴냄, 2005.5.19.

 


  여름날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시원합니다. 가방이 젖고 옷이 옴팡 젖지만, 바로 이렇게 온몸을 적시기에 시원하면서 즐겁습니다. 소나기 지나가면 언제 그랬느냐는듯이 활짝 갭니다. 구름이 사라집니다. 파랗게 하늘이 빛납니다. 우산 없이 놀다가 비를 쫄딱 맞고서 머리카락을 텁니다. 다시 하하 웃으며 길을 걷고, 젖은 몸과 옷이 마를 때까지 동무들과 뛰어놉니다.


  가을밤 쏟아지는 별빛을 올려다보며 눈을 맑게 틔웁니다. 이처럼 많은 별들처럼 지구도 우주에서 빛나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기쁩니다. 저 먼 별나라에서는 지구를 어떤 별자리에 넣어 이야기할까요. 저 멀디먼 별누리에서는 지구를 어떤 별빛으로 맞아들일까요.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풀과 나무와 내와 바다와 마을이 한데 어우러진 빛이 되어 우주를 밝히겠지요.


  봄날 찾아오는 풀바람이 싱그러워 고맙습니다. 추위가 한풀 꺾이며 온갖 봄풀이 돋고 봄꽃이 핍니다. 겨우내 그립던 푸른 잎사귀를 톡톡 뜯어서 먹습니다. 냉이와 달래를 캐고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새로 뜯습니다. 유채도 민들레도 갈퀴덩굴도 맛난 봄나물 됩니다. 딸기잎 돋는 모습을 보며 늦봄과 첫여름 딸기를 그립니다. 딸기알 맺힐 무렵 피어날 찔레꽃을 그립니다. 반짝반짝 아리따운 봄은 모든 목숨을 깨우는 아침해와 같습니다.


  겨울날 내리는 눈송이는 차가우면서도 해맑아 반갑습니다. 어른이 된 나도 눈놀이를 하고, 아직 어린 아이들도 눈놀이를 합니다. 입을 헤 벌려 눈을 받아먹습니다. 눈이 쌓이면 뭉칩니다. 눈송이 내려앉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한겨울에 따순 볕 며칠 이어지면 일찌감치 봉오리 터뜨리는 동백꽃에 살포시 앉은 눈을 호호 붑니다. 춥지? 춥지만 너는 이 추위를 타고 깨어나지? 추위가 너를 부르고, 추위가 너를 한결 야무지며 튼튼하게 돌보지?

 


.. 난 사는 게 좋아. 얼굴엔 시원한 공기와 등 뒤엔 네 웃음소리와 함께 ..  (2쪽)


  밥을 끓입니다. 밥내음 솔솔 집안에 퍼집니다. 국을 끓입니다. 국내음 살살 마당으로 번집니다. 밥과 국을 끓이는 동안 아이들은 ‘아하, 이제 곧 밥이 다 되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한결 신나게 놀고, 언제쯤 ‘자, 배고픈 사람은 이리 와서 밥 먹자!’ 하고 부를까 하고 기다립니다.


  빨래를 합니다. 충청북도 멧골집에서 지낼 적에는 시월 끝무렵부터 손이 매우 시려서 따순물을 써야 했는데, 전라남도 시골집에서 지내는 요즈음은 십일월 한복판이지만 시린 손으로도 씩씩하게 빨래를 비비고 헹굽니다. 다만, 새벽이나 밤에는 빨래를 못 합니다. 새벽과 밤에는 물이 너무 차갑습니다. 해가 꼭대기에 오른 한낮에 비로소 빨래를 척척 비비고 헹굽니다.


  다 마친 빨래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서면서 해를 올려다봅니다. 나도 웃고 해도 웃습니다. 늦가을 되어 시든 풀도 웃고, 가을바람 선들선들 웃습니다. 늦가을에는 봄이나 여름처럼 빨래가 잘 마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해가 하늘에 걸린 동안 말리고 집안으로 들이면, 밤새 보송보송 잘 말라요. 곧 겨울이 닥치면, 겨울에는 아주 짤막히 밖에 널었다가 다시 들여요. 때로는 아예 밖에 널지 못해요. 두꺼운 겉옷이나 이불을 빨 적에만 바깥에 널지만, 너무 추운 날에는 옷이 꽁꽁 얼어붙습니다.


  겨우내 얼어붙는 빨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도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는 짙푸른 잎사귀를 달아요. 겨울에도 푸른 빛을 나누어 줍니다. 너희 참 대견하구나, 아주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두꺼운 줄기를 어루만집니다. 너희는 이 겨울 이렇게 씩씩하게 나니, 새봄에 더 싱그러우며 푸른 빛을 나누어 주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 난 맡는 게 좋아. 장미향 떠도는 공기와 비 온 뒤 촉촉한 흙 냄새를 ..  (6쪽)


  아침밥 맛나게 먹은 우리 집 두 아이가 마당에서 놉니다. 찬바람 불며 딱딱한 흙바닥을 호미와 괭이로 콕콕 쪼면서 놉니다. 아이들이 흙연장 갖고 놀기에 부러 처마 밑 잘 보이는 자리에 호미와 괭이를 놓습니다. 언제라도 들여다보고, 언제라도 손에 쥐어 갖고 놀도록 합니다.


  내 어버이가 모두 시골 흙일꾼이었으면 나도 흙일을 하고 놀면서 자랐겠지요. 내 어버이가 늘 시골 흙밭에서 흙빛 되어 일하는 사람이었으면, 나도 어린 날부터 흙내음 맡고 흙바람 쐬면서 컸겠지요.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모두 흙을 먹습니다. 흙에서 난 것을 먹습니다. 흙에서 난 것으로 지은 옷을 입습니다. 흙에서 자란 것으로 집을 지어 살아갑니다. 흙이 있어야 마을이 있고, 흙이 있어야 사람이 있습니다. 흙이 있어야 숲이 있으며, 흙이 있어야 이 지구별이 있어요.


  아이들은 흙을 갖고 놀면서 흙기운을 받아먹어요. 어른들은 흙을 갖고 일하면서 흙숨을 쉬어요. 흙하고 동떨어지거나 흙하고 멀어지거나 흙을 잊을 때에는, 삶하고 동떨어지거나 멀어집니다. 흙하고 사귀지 않거나 흙을 못 배우거나 흙을 안 사랑할 적에는, 흙을 잊다가는 삶을 잊고 맙니다.

 


.. 난 심는 게 좋아. 여기엔 꽃 한 송이, 저기엔 나무 한 그루, 아무데나 ..  (20쪽)


  노에미 비야무사 님 그림과 하비에르 소브리노 님 글이 어우러진 《난 좋아》(행복한아이들,2005)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좋아 좋아 노래를 하는 그림책입니다. 어머니 품이 좋고, 동무들과 노는 하루가 좋습니다. 무엇보다, 바람이 좋고 하늘이 좋으며 나무가 좋아요.


  조곤조곤 좋은 삶 노래하는 그림책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래요, 좋아요. 좋은 마음으로 함께 놀기에 즐거워요. 좋은 마음으로 함께 일하기에 아름다워요. 좋은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기에 사랑스러워요. 삶은 늘 좋은 마음에서 자랍니다. 사랑은 늘 좋은 생각에서 싱그럽습니다. 이야기 한 자락은 늘 좋은 눈빛에서 태어납니다.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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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물감 상자 미래그림책 48
카를로스 펠리세르 로페스 글.그림, 김상희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10

 


아름다운 그림
― 줄리엣과 물감 상자
 카를로스 펠리세르 로페스 글·그림
 김상희 옮김
 미래M&B 펴냄, 2006.9.20.

 


  아이들은 누구나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쥐면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이 글씨를 쓸 적에도, 이 글씨는 꼭 그림을 닮습니다. 아니, 그림이지요. 아이들한테 글을 가르쳐 보셔요. 또박또박 그리는 글씨가 얼마나 고운지 모릅니다. 글을 배우지 못한 늙은 할매한테 글을 가르쳐 보셔요. 할매들 처음 익혀 쓰는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지 모릅니다.


.. 물감 상자를 선물로 받은 날, 줄리엣은 앞으로 어떤 신나는 일이 일어나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  (5쪽)


  글은 작가만 쓰지 않습니다. 글은 모든 사람이 씁니다. 그림은 작가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림은 모든 사람이 그립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지구별에서는 작가 아니라면 글도 그림도 못 하는 줄 잘못 여깁니다. 학교가, 사회가, 문화가, 제도가, 정치가, 경제가, 글이나 그림을 하는 사람을 따로 ‘작가·예술가’로 몰아넣습니다. 이리하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삶하고 동떨어진 채 ‘글 만들기·그림 만들기’가 되고 말아요.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까지,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작가이면서 예술가였고 살림꾼이었습니다. 짚 한 오라기로 엮는 예술품이었습니다. 나무토막 하나로 깎는 예술품이었어요. 겨를 벗기려고 하는 절구질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예술’인가요. 도리깨를 들고 콩을 터는 어깻짓이란 얼마나 아리따운 ‘행위예술’인지요. 겨를 벗긴 쌀을 키로 까부르며 잔 부스러기를 날립니다. 쌀을 물로 헹구면서 조리로 돌을 입니다. 솥에 쌀을 안치면서 장작을 때어 불을 지핍니다. 밥물을 맞추어 고들고들 보들보들 고소고소한 새 밥을 짓습니다. 밥짓기란 날마다 이루어지는 멋진 ‘창작’이요 ‘창조’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창작과 창조가 어느 때부터 모조리 사라졌어요. 가게에서 쌀을 사지요. 겨를 벗길 일이 없고, 돌을 일 까닭이 없습니다. 키를 까부르는 사람조차 없지만, 키가 무언지조차 몰라요. 조리가 뭔지 아려나요. 한 해 끝물에 사고파는 복조리는 알아도, 조리가 언제 어떻게 쓰는 살림살이인 줄 깨닫는 사람이 없어요. 더구나, 조리가 되든 복조리가 되든, 누구나 손수 짚으로 엮어서 썼지, 돈을 주고 사다 쓰지 않았어요.

 

 


.. 줄리엣은 물감 상자를 가지고 노는 게 점점 좋아졌어요. 이제 물감 상자만 있으면 도화지 위에서 무엇이든 볼 수 있다고 믿었지요 ..  (13쪽)


  살아가는 하루가 모두 그림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이 언제나 글입니다. 프랑스인지 어느 유럽인지, 또 네덜란드인지 어느 유럽인지, 밀레가 고흐가, 들녘 들사람 이야기를 들빛 묻어나도록 들숨 담아 들노래로 그렸습니다. 밀레는 한겨울에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밀레네 식구들도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살았습니다. 고흐네 형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 그림값이 얼마나 되었든 말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밀레도 고흐도 어디 먼 나라에서 똑 떨어진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는 사람을 그렸고, 살아서 숨쉬는 싱그러운 시골사람 시골빛을 그림으로 되살렸습니다.


  이제 시골에서 살아가는 화가도 작가도 거의 없다 할 테지만, 그림이나 글은 화가와 작가만 이루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 모습을 그리고 쓰면 됩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자장노래 부르는 어버이 모습을 그리고 쓰면 됩니다. 자전거를 타든 자가용을 몰든, 여느 삶을 즐거이 누리면서 그리고 쓰면 됩니다.


  언제나 스스로 즐기면서 아름답게 태어나는 삶입니다. 늘 스스로 가꾸면서 환하게 빛나는 하루입니다. 내 아이가 없으면 이웃 아이를 그려요. 모두 우리 아이들입니다. 내 동무가 없으면 이웃 동무를 그려요. 모두 우리 동무요 이웃입니다.


  나무를 그리고 풀을 그리며 꽃을 그려요. 마음속에 곱게 빛나는 숨결 자라도록,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고 이웃 삶을 사랑하며 옆지기와 아이들 삶을 사랑하는 넋으로 그림을 그려요.

 


.. 줄리엣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물감 상자를 꺼냈어요. 그리고 아침에 들었던 새들의 노랫소리를 상상해 보았어요. 그래, 새들의 노랫소리는 바로 이런 색깔이야 ..  (21쪽)


  카를로스 펠리세르 로페스 님이 빚은 그림책 《줄리엣과 물감 상자》(미래M&B,2006)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줄리엣이라는 아이는 물감 상자를 받고서 언제나 즐겁게 그림을 그립니다. 누가 시켜서 그리는 그림이 아닙니다. 예술품 되라며 그리는 그림이 아닙니다.


  마음을 그립니다. 꿈을 그립니다. 사랑을 그립니다. 생각을 그립니다.


  우리 아이들은 작가나 화가나 사진가 되어야 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어야 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은 가수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되어야 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은 그예 아이들로 자라서 ‘사람’이 되면 되어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는 예쁜 ‘어른’이 되면 되어요.


  즐겁게 그릴 그림은 바로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서 다 다르면서 다 같은 빛으로 곱게 자랍니다. 4346.11.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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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부채 파란 부채 네버랜드 우리 옛이야기 16
이상교 지음, 심은숙 그림 / 시공주니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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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9

 


어리석은 이한테 벼락돈이란
― 빨간 부채 파란 부채
 심은숙 그림
 이상교 글
 시공주니어 펴냄, 2006.6.1.

 


  이상교 님이 글을 쓰고 심은숙 님이 그림을 그린 《빨간 부채 파란 부채》(시공주니어,2006)를 읽습니다. 우리 겨레에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되살려 빚은 그림책입니다. 나는 어릴 적에 “빨간 부채 파란 부채” 이야기를 곧잘 들었습니다. 어른들은 이 옛이야기가 재미나다며 들려주었고, 나도 퍽 재미나다 느끼며 들었습니다. 그런데, “빨간 부채 파란 부채” 이야기가 아주 재미나지는 않았어요. 어딘가 꺼림칙했습니다. 부채 하나로 코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이야기는 재미나기는 했는데, 이런 부채로 큰돈을 거머쥐고 나서는, 스스로 할 일이 없어 제 코를 자꾸 늘리기만 하는 모습이 더없이 어리석구나, 이렇게 할 짓이 없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어릴 적에는 이런 얘기를 쉬 꺼내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저 듣기만 해야지, 무어라 토를 달지 못해요.


.. 김 서방은 부채를 손에 들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어. ‘이 부채를 써서 부자가 될 좋은 방법이 없을까?’ ..  (8쪽)

 

 


  나는 어느덧 어린이에서 어른이 됩니다. 어른들한테서 옛이야기를 듣다가, 이제는 이 옛이야기를 새 글과 그림으로 엮은 그림책을 장만해서 우리 집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펼쳐 읽다가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무척 가난하다는 김 서방네는 왜 땅바닥에 무언가 떨어진 것 있는가 살피며 길을 걸었을까요. 옛날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하는 일 없이 길바닥 보며 거닐’ 만큼 한갓진 사람이 있었을까요. 김 서방은 틀림없이 흙을 일구는 시골사람일 텐데,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겨울이건 일손을 쉴 틈이 거의 없습니다.


  따스한 봄부터 가을까지 바지런히 나무를 하지요. 봄부터 가을까지 들일을 할 뿐더러, 틈틈이 짚을 꼬아 신을 삼고, 새끼를 엮습니다. 바구니와 둥구미와 돗자리를 엮습니다. 가을걷이를 마치면 지붕을 새로 잇느라 부산할 뿐 아니라, 콩을 털랴 곡식을 까부르랴 밤 늦도록 일손을 붙잡습니다. 봄에는 보리를 거두랴, 논과 밭을 갈아엎으랴, 거름을 내랴 노상 일입니다. 김 서방이 무척 가난하다 하다면, 어쩌면 시골사람으로서 시골일에 게으르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기를, 아니 옛날에는 돈이 그리 흔하지 않았으니, 하늘에서 금이니 은이니 뚝뚝 떨어지기를 빌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흙을 파며 살던 사람이 이런 게으른 생각을 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나물을 뜯고 방아를 찧고 절구를 빻고 아침저녁으로 온갖 일을 했을 텐데 싶어요. 옛날 사람은 오늘날 사람처럼 돈으로 이것을 사거나 저것을 얻지 않아요. 모든 집과 옷과 밥을 스스로 흙을 일구고 숲에서 캐내어 얻습니다.


.. 부자가 된 김 서방은 하루 종일 빈둥거렸어 ..  (20쪽)

 


  일하는 사람은 갑작스레 부자가 된다 하더라도 일손을 하루아침에 버리지 못합니다. 몸에 익은 일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지요. 늘 익은 대로 몸을 놀리지 않으면 외려 견디지 못합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흙을 만지고, 저녁에 해 떨어진 뒤에는 짚을 엮으면서 온갖 살림살이를 빚어요.


  그림책 《빨간 부채 파란 부채》에 나오는 김 서방이 부자가 된 뒤 하루 내내 빈둥거렸다 하면, 이녁은 여느 때에도 일하기를 귀찮거나 싫어한 사람이지 싶어요. 그러니 무척 가난에 찌든 삶이었을 테고, 어쩌다가 벼락부자 되었다지만, 무엇을 하며 삶을 누려야 할는지 하나도 모르는 삶이었구나 싶어요.


  스스로 땀흘려서 얻은 돈과 집이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과 집을 갑자기 얻어 빈둥거리는 삶이 된 김 서방은 참말 할 일이 없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요. 스스로 꿈을 키우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꿈이 없고, 살아가는 뜻이 없어요. 이러니, 김 서방한테 벼락돈이 찾아와도 이를 건사하거나 다스릴 재주가 없습니다. 무척 가난하게 살았다면 가난한 살림이 얼마나 고달픈가를 알 테니, 다른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을 할 만해요. 그렇지만 김 서방은 이러한 길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여느 때에도 이웃사랑을 헤아리지 못했을 테니, 마냥 빈둥거리다가 제 코를 늘리는 놀이를 일삼지요.


.. “코끝이 서늘하고 축축한 걸 보니 구름 속을 지나는 모양이군.” 그래도 김 서방은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어. 코는 하늘나라 옥황상제님이 사는 집의 부엌까지 닿았어 ..  (24쪽)

 


  바보스럽게 살아가면, 어떠한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주어지더라도 슬기롭게 못 씁니다. 슬기롭게 살아가면, 어떠한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없더라도 즐겁게 살아갑니다. 바보스럽게 살아가면, 돈이고 이름이고 힘이고 넉넉하다 하더라도 아름답게 다스리지 못합니다. 슬기롭게 살아가면, 스스로 삶과 꿈과 사랑을 즐겁게 지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책을 덮으려다가, 이 그림책에 깃든 글월이 아이들한테 좀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우리들은 “부채질을 한다”고 말하는데, 그림책에는 자꾸 “부채질을 시작(始作)했다”와 같은 말이 나옵니다. 또, “코가 자꾸 늘어나” 하면 될 텐데, “코가 계속 늘어나는 거야”와 같은 말이 나와요.

 

 김 서방은 부채질을 시작했어 → 김 서방은 부채질을 했어
 다시 부채질을 시작했지 → 다시 부채질을 했지
 코가 계속 늘어나는 거야 → 코가 자꾸 늘어나
 코가 도로 줄어드는 거야 → 코가 도로 줄어들어
 한 번 시험해 볼까 → 한 번 해 볼까
 얼마나 늘어나는지 시험해 보아야겠다 → 얼마나 늘어나는지 보아야겠다
 한참이나 궁리를 했지 → 한참이나 생각을 했지

 

  옛이야기를 되살리거나 오늘 새 이야기를 짓거나,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슬기로운 넋을 담을 뿐 아니라, 슬기로운 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옛이야기는 줄거리로만 아이들을 일깨우지 않아요. 예부터 옛이야기를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들려주면서 한국말을 옳고 바르며 아름답고 알맞게 가르칩니다. 곧, 그림책에 깃드는 말은 아이들이 즐겁게 배워서 사랑스레 쓸 말이 되어야 합니다. ‘시험(試驗)하다’나 ‘궁리(窮理)’ 같은 한자말을 아이들 그림책에 꼭 넣어야 했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더 생각해 보면, 옛이야기 “빨간 부채 파란 부채”를 오늘날 삶에 맞추거나 지난날 삶을 더 살피면서, 가난한 김 서방이 얼마나 어리석었고 게을렀던가를, 또 시골사람 시골일이 어떠한가를 차근차근 살을 붙여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대물림하면서 새로운 빛을 더 담고, 두고두고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보여주는 꿈이기도 합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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