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너구리네 봄맞이 민들레 그림책 6
권정생 글, 송진헌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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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8

 


겨울에 떠오르는 봄
― 아기너구리네 봄맞이
 권정생 글
 송진헌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2001.12.1.

 


  겨울이 다가옵니다. 겨울을 앞두고 시골마을은 가을걷이와 콩털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마늘을 심을 곳은 마늘을 다 심고, 보리나 밀을 심을 데도 보리나 밀을 다 심었겠지요. 조금 더 일손을 놀리면 이제 가을일은 끝마치고 겨우내 폭 쉬는 일이 남습니다. 참말 겨우내 폭 쉬는 일을 해야 다시금 새봄에 기운내어 들일에 나설 수 있습니다.


  논에 마늘을 심지 않는 집에서는 유채씨를 뿌립니다. 요즈음은 시골마다 빈논에 유채씨를 뿌려 봄날에 노란 꽃물결 일렁이게 하는 바람이 곳곳에 붑니다. 봄날에 유채 꽃물결 노랗게 일렁이는 모습은 틀림없이 보기 좋습니다. 그런데 모든 지자체에서 유채씨를 뿌려 유채꽃잔치를 한다고 나서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기 않습니다.


  꽃잔치를 벌여 도시사람 관광객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즐거울까요. 시골마을에서 시골사람 아끼고 사랑하는 조촐한 봄잔치라면 모르되, 도시사람한테 구경거리 되도록 하는 관광축제로는 나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유채가 자라 꽃이 질 무렵 갈아엎으면 좋은 거름으로 된다 하는데, 씨앗도 못 맺은 유채밭을 갈아엎지 않고, 그러니까 빈논을 그대로 두어도 냉이며 민들레며 씀바귀며 고들빼기며 온갖 풀이 빈논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요. 이 들풀을 갈아엎어도 얼마든지 좋은 거름이 됩니다.


  봄날 유채꽃만 보기 좋지 않아요. 코딱지나물꽃도 보기 좋고 봄까지꽃도 보기 좋습니다. 냉이꽃도 민들레꽃도 모두 보기 좋습니다. 오히려 온갖 들꽃이 알록달록 피어난 빈논이 훨씬 보기 좋으며, 이렇게 온갖 들풀이 골고루 난 논을 갈아엎어서 논으로 삼을 적에 논흙은 더욱 기름집니다.


..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마을이 조그맣게 보였어요. 그렇게 먼 산 속에 너구리네 집이 있었지요 ..  (2쪽)

 


  무당벌레가 가랑잎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서 겨울잠을 자려 합니다. 꽃뱀과 풀뱀도 다 같이 풀숲 아늑한 자리를 찾아 포근한 흙땅에 구멍을 내어 깃들려 합니다. 풀개구리와 참개구리도 이제 더 춥기 앞서 배를 잔뜩 불려 풀숲 따사로운 흙땅에 구멍을 파고 한숨 쉬려 합니다.


  모두들 폭 쉬는 늦가을입니다. 겨울에는 땅이 얼어붙어 땅속에 깃들지 못하거든요. 어쩌면, 잠자리도 나비도 이 늦가을 알록달록 물드는 아름다운 잎빛을 조금 더 지켜보고는 잠들고 싶을 수 있어요. 뱀도 개구리도 무당벌레도, 저마다 아리따운 가을잎 무지개빛을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쉬고 싶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이 가을에 가을마실 다니거든요. 도시에서 아무리 일손이 바쁘더라도, 아무리 주머니가 가난하더라도, 그래서 멀리 가을마실 다니지 못한다 하더라도, 가까운 곳에 가을잎 눈부신 나무 한 그루 있기를 바라며 가을빛 누리고 싶습니다. 시골에서도 바쁜 가을 일손 놀리다가 살며시 허리를 펴고는 “아따, 곱구만.” 하고 웃음짓습니다.


  가을이 넉넉한 철이라 한다면, 겨울 지나 봄과 여름에, 다시 찾아올 가을까지, 모두들 배부르게 먹을 곡식을 얻으며 푸성귀와 열매를 얻는 철이기도 할 테지만, 곱게 물드는 가을빛이 온누리를 따사롭게 덮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 “얘들아, 우리끼리 한번 밖에 나가 볼까?” 오빠너구리가 물었어요. 언니너구리, 막내너구리는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  (10쪽)


  권정생 님이 쓴 글에 송진헌 님이 그림을 더한 그림책 《아기너구리네 봄맞이》(길벗어린이,2001)를 읽습니다. 따사로운 글에 포근한 그림이 어우러져 멧골짝 너구리네 여섯 식구가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는지 찬찬히 보여줍니다.


  참말 너구리는 겨울에 멧골짝에서 어떻게 지내는가요. 오소리는 겨울에 멧골짝에서 어떻게 지낼까요. 박쥐와 참새는 저마다 겨울나기를 어떻게 할까요. 사슴이나 노루는, 고라니는, 토끼는, 다람쥐는, 삵은, 사람들 등쌀에 밀려 깊디깊은 숲속으로 숨지만 먹이가 없어 사람들 살아가는 마을로 조용히 내려오는 이 들짐승과 멧짐승과 숲짐승은 저마다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요.


  겨울 지나 봄이 오면 조금 살 만할까요. 겨울 지나 봄이 되면 사람들이 새 고속도로를 낸다고, 새 고속철도를 뚫는다고, 새 골프장을 짓는다고, 새 발전소를 세운다고, 새 관광단지와 경기장을 닦는다면서 북새통을 이루지는 않을까요. 해마다 겨울이 될 적마다 근심 한 바구니요, 다시금 봄이 찾아올 때마다 걱정 한 소쿠리가 되지는 않을까요.

 


.. “아이구, 저게 뭐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오빠너구리가 말했어요. “어마나! 하얀 찔레꽃잎이 마구마구 쏟아진다.” 언니너구리가 그랬어요. “에그, 꽃잎이 어째서 이렇게 차갑니?” 막내너구리가 입을 비쭉댔어요. “그럼, 대체 뭐야?” 모두모두 궁금해졌어요 ..  (14쪽)


  소복소복 내리는 겨울눈은 늦봄에 흩날리는 찔레꽃잎과 같습니다. 하얗디하얀 눈송이는 하얗디하얀 꽃송이하고 닮습니다. 아마 봄날에는 찔레꽃잎을 바라보며 ‘이야, 눈송이와 닮았구나!’ 하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오늘날 아이들은 찔레꽃을 보기 어렵습니다. 새봄에 새롭게 푸른 물이 오르는 찔레싹을 보지 못합니다. 오늘날 어른들도 찔레싹을 먹지 않고 찔레잎을 보지 못하며 찔레꽃을 노래하지 못합니다.


  찔레꽃도 못 보는 아이들이고 어른들이면서, 너구리하고 사귀지 못하는 아이들이며 어른들이에요. 개구리와 제비하고도 사귀지 못하는 오늘날 사람들입니다. 나비와 종달새하고도 뛰놀지 못하는 오늘날 사람들이에요.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는가요. 우리들은 누구와 사귀는가요.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일구는가요. 우리들은 어떤 사랑을 꽃피워 어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가요.

 


.. 눈보라가 그치고 바람이 조금씩 부드러워졌어요. 햇볕이 포근포근 쪼이고 쌓였던 눈이 녹았어요. 개울물이 조록조록 흐르는 기슭으로 버들강아지가 꽃을 피웠어요.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성큼 다가온 거예요 ..  (20쪽)


  겨울을 앞두고 봄을 떠올립니다. 다가올 겨울 휘휘 찬바람 몰아치면서 춥디춥게 지나가면 따사로운 바람 살랑이며 들과 숲마다 푸른 싹 돋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며 새봄이 반갑고, 새봄이 반가운 만큼 여름이 즐겁습니다. 여름이 즐거우니 가을이 기쁘고, 가을이 기쁜 터라 겨울이 재미있습니다.


  겨울에는 우리 무얼 하며 놀까요. 너구리가 잠들고 다람쥐도 잠자는 이 겨울에 우리 무얼 하며 놀까요. 겨울에 소복소복 내리는 눈은 우리 보금자리와 마을에 어떤 빛이 되어 드리울까요. 겨울눈은 자동차 다니기 힘들게 하니 염화칼슘 뿌려 녹이고 얼른 치워야 하나요. 겨울눈은 아이와 어른 모두 까르르 웃음 터뜨리며 눈놀이를 하라고 부르는 하늘노래는 아닐까요. 겨울에도 여름과 똑같은 회사와 공장에서 네 철 내내 똑같은 일을 쳇바퀴 돌듯 해야만 하나요. 겨울에는 겨울일과 겨울살림을 일굴 수 없나요. 우리 아이들이 겨울에 ‘겨울아이’ 되고, 우리 어른들은 겨울에 ‘겨울어른’ 되어 저마다 가장 빛나고 환한 사랑꽃이 이 땅에 찾아오도록 할 수 있을까요. 4346.1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한 가지, 그림에서 아쉬운 대목 있는데, 멧골짝 나무들이 '모두 똑같은 모습'이에요. 권정생 님 글에는 '다 다른 나무 이름'이 나오지만, 막상 송진헌 님은 이 다 다른 나무를 다 다른 겨울나무로 그리지는 못하셨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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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그야, 잘 가 눈높이 그림상자 12
주디스 커 글 그림, 박향주 옮김 / 대교출판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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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7

 


우리 가슴속에서 숨쉬는 하늘님
― 모그야, 잘 가
 주디스 커 글·그림
 박향주 옮김
 대교출판 펴냄, 2005.1.25.

 


  시골집 마당으로 찾아온 새들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마을 어르신들 들일 하시려고 경운기 몰고 지나가면 참새와 딱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 감기지만, 경운기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우리 집 마당에서 놀며 열매를 따먹는 새들은 언제나 즐겁게 노래합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우리 집 둘레 풀숲에서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전라남도와 고흥군에서는 우리 시골마을까지 주암댐 수돗물 먹이겠다면서 고샅길 파헤쳐서 수도관 파묻는 일을 벌입니다. 커다란 기계 드나들며 귀가 아프도록 시끄럽지만, 풀숲 풀벌레는 큰 기계 드나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풀벌레는 풀내음 나는 노래를 신나게 들려줍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옵니다. 군내버스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커서 아이들과 도란도란 속삭이기 어려운데, 그래도 아이들 말소리를 듣고, 이웃마을 어디에서나 길바닥에 널어 말리는 나락이 바짝바짝 마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저 높은 하늘 가로지르면서 비행기가 날더라도, 우리 집 마당에서 개구지게 뛰노는 아이들 말소리와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밥이 끓는 소리를 듣고, 손빨래 하면서 복복 비비는 소리를 스스로 빚어서 스스로 듣습니다. 아이들이 작은 수저를 놀려 작은 밥그릇 삭삭 비우는 소리를 기쁘게 듣습니다.


.. 모그는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너무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죠. 머리가 지쳐서 죽을 것 같았어요. 발도 지쳐서 죽을 것 같았어요. 꼬리까지 지쳐서 죽을 것 같았어요. 모그는 생각했어요. ‘영원히 잠들고 싶어.’ 그래서 모그는 그렇게 했어요. 하지만 잠든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조금은 깨어 있었죠 ..  (1쪽)

 


  시골 읍내에도 아파트가 있습니다. 시골 읍내에도 빈터와 논과 밭을 밀어 새 아파트를 올립니다. 가끔 읍내나 면소재지로 마실을 나와 돌아다니고 보면, 읍내와 면소재지는 시골 아닌 도시하고 똑같구나 하고 느낍니다. 읍내와 면소재지 불빛도 어둡지 않습니다. 가게들 줄지어 있는 곳은 모두 똑같이 밤에도 환해, 하늘에 뜨는 별을 못 보도록 가로막습니다.


  전깃불로 환한 도시 한복판입니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저 하늘에는 틀림없이 별이 있습니다. 온누리 별들은 우리 지구별을 포근하게 내려다봅니다. 온누리 별들은 우리 지구별에 맑은 빛줄기 살가이 베풉니다. 전깃불빛과 매캐한 배기가스 따위로 하늘이 흐리다 하더라도, 눈을 감고서 헤아립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으며 밝은 별빛이 우리 머리 위에서 초롱초롱 빛난다고 마음속으로 느끼고 읽으면서 받아들입니다.


.. 모그는 생각했어요. ‘저런 고양이는 아무 데서나 살아도 돼.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지.’ 그때 갑자기 어떤 소리가 들렸어요. 아기고양이 소리였어요. ‘저런.’ 모그는 생각했어요. ‘밖에 나가지 않았네. 여기서 뭐 해?’ 아기고양이는 모그를 보았어요. 아기고양이는 모그에게 기어왔어요. 아기고양이는 가르랑거렸어요. 모그는 생각했어요. ‘이 아기고양이는 나를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어쩌면 얘는 멍청이가 아닐지도 몰라.’ (18∼19쪽)

 


  주디스 커 님이 빚은 그림책 《모그야, 잘 가》(대교출판,2005)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리 귀에 곧바로 들리지 않더라도, 숱한 소리와 노래가 늘 흐릅니다. 우리 눈에 막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온갖 빛과 볕과 살과 무늬가 노상 감돕니다. 우리들이 살갗으로 제대로 느끼지 않더라도, 따사로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고운 넋과 기운은 언제나 우리 둘레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름다운 눈빛이 이 마을과 저 마을에 있습니다. 어여쁜 아이들 어여쁜 목소리와 몸짓이 이곳과 저곳에 있습니다.


  자, 눈을 뜨고 더 또렷하게 들여다보셔요. 자, 눈을 감고 더 환하게 느껴요. 우리 둘레에 무엇이 있나요? 우리 곁에 누가 있나요? 풀잎 하나에 무엇이 깃들었나요? 꽃송이 하나에 어떤 숨결이 방긋 웃는가요?


.. 모그가 폴짝 뛰었어요. 아기고양이도 폴짝 뛰었어요. 모그가 발을 핥았어요. 아기고양이도 발을 핥았어요. 모그가 신문지 밑에 숨었어요. 아기고양이는 모그를 보았어요. 모그가 싱긋 웃었어요 ..  (20쪽)

 


  그림책 《모그야, 잘 가》는 ‘고양이 모그’가 나이를 많이 먹으며 조용히 죽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첫머리를 엽니다. 모그하고 함께 살아온 네 식구는 모그가 숨을 거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아픕니다. 늘 모그하고 함께 놀고 먹고 자고 이야기했는데, 이제 식구들 곁에 모그가 없으니 너무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그런데 말예요, 고양이 모그는 ‘몸은 죽어서 사라졌’지만, ‘마음은 그대로 남아’서 저를 아끼고 사랑하던 네 식구 곁에서 늘 맴돌며 지켜봅니다. 네 식구 지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하늘님은 모든 사람들 가슴속에 있습니다. 바람님도, 해님도, 별님도, 꽃님도, 풀님도, 바다님도, 숲님도, 냇물님과 빗물님도, 모두 우리 가슴속에서 싱그럽게 빛납니다. 느끼려는 가슴이 있으면 느낍니다. 느끼려는 가슴이 있으면 못 느끼고 못 봅니다.


  가슴속 하늘님 빛노래를 함께 느껴요. 가슴속 하늘님 사랑씨앗 듬뿍 받아 차근차근 심어요. 가슴속 하늘님 푸른 숨결을 즐겁게 마셔요. 우리는 모두 한몸이면서 한마음이랍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 아끼며 기대면서 삶을 밝히는 빛님이랍니다. 4346.10.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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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21 10:05   좋아요 0 | URL
<모그야, 잘 가>의 느낌글이 참 조용하면서도 보드랍고 환한 빛으로
마음을 비추어 주는 좋은 아침이네요~
그렇치 않아도 이 책,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10-21 20:06   좋아요 0 | URL
부산에서 이 글을 쓰느라 사진을 못 붙였어요.
고흥으로 돌아왔으니
사진을 붙일 수 있을 텐데,
내일쯤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
 
집 근처의 벌레들 - 가만히 앉아서 찾아보자 과학은 내친구 21
고바야시 토시키 지음, 다카하시 기요시 그림,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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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6

 


집 곁에 무엇이 있나요
― 집 근처의 벌레들
 다카하시 키요시 그림
 고바야시 토시키 글
 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5.11.5.

 


  일본사람 다카하시 키요시 님이 그리고 고바야시 토시키 님이 글을 쓴 그림책 《집 근처의 벌레들》(한림출판사,2005)을 읽습니다. 일본에서는 1980년에 나왔다고 합니다. 참 어여쁜 책이로구나 하고 느끼며 찬찬히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집 둘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조그마한 벌레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움직한 이야기라 할 수 있으나, 오랜 옛날부터 집과 마을에서 늘 마주하면서 어릴 적부터 익숙하게 사귀는 ‘놀이동무와 같은’ 벌레들 이야기입니다.


.. 지렁이의 먹이는 가랑잎입니다. 햇빛을 싫어하는 지렁이는 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 먹이가 있는 장소를 찾습니다. 손도 발도 없는데 어떻게 흙을 파고 들어갈까요 ..  (8쪽)


  모두 흙을 일구고 만지면서 살던 지난날에는 이런 그림책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런 그림책 없어도 어린이 모두 지렁이를 알고 달팽이를 알아요. 학교에서 지렁이나 달팽이를 안 가르치고 안 보여주어도, 아이들 누구나 집과 마을에서 지렁이를 보고 달팽이를 보았어요.


  어른들이 시골을 떠나고, 아이들이 흙을 만질 수 없는 때부터 《집 근처의 벌레들》 같은 그림책이 태어납니다. 아이들이 적어도 이 그림책에 나오는 벌레들만큼은 알고 사귀며 함께 놀 줄 알아야 한다고, 어른들 나름대로 생각했지 싶습니다. 적어도 이런 벌레쯤은 알아야 살아갈 수 있고, 이렇게 작은 벌레를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지 못한다면, 사람살이에서도 내 여린 이웃과 동무를 살가이 마주할 수 없다고 느끼리라 봅니다.


  참말 하찮은 벌레란 없습니다. 어느 벌레이든 모두 대수롭습니다. 개미도 거미도 쇠똥구리도 달팽이도 지렁이도 지네도 모두 대수롭습니다.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지구별을 이룹니다. 모두 함께 사이좋게 지내면서 지구별에 푸른 숨결 가득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어느 벌레 한 가지 지구별에서 사라지면 어찌 될까요. 개미가 없으면? 지렁이가 없으면? 파리가 없으면? 지네가 없으면? 달팽이가 없으면?


  오늘날 시골 흙지기는 논이며 밭이며 고샅이며 농약을 너무 함부로 뿌립니다. 논밭에 심은 곡식과 푸성귀 아니면 모조리 죽이려 합니다. 중앙정부 산림청 일꾼과 토목 부서 일꾼은 틈틈이 숲나무를 밀고 자릅니다. 숲에 길을 내고 숲에 시멘트를 덮어 큰물이 나도 멧자락이 안 무너지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숲에서 나무를 함부로 베고 숲과 멧자락에 시멘트 함부로 들이붓기 때문에 멧자락이 무너지지요. 온 나라 냇물줄기에 온통 시멘트 퍼붓는 4대강사업은 이 나라 냇물과 마을과 숲을 얼마나 망가뜨린 짓이었을까요. 이런 끔찍한 짓을 한 나라는 지구별에 어디에도 없어요. 미국조차 안 하고, 일본이나 중국이나 인도나 독일이나 프랑스나 영국이나 네덜란드나 모두 안 합니다. 독일은 갯벌을 메꾼 땅을 다시 갯벌로 돌려놓으려고 진작부터 애썼어요. 바다를 메워 뭍으로 만든 네덜란드도 앞으로 이 뭍을 다시 바다로 돌리려고 찬찬히 애씁니다. 한국만 지구별에서 남달리 땅을 망가뜨리고 숲을 무너뜨립니다. 한국만 지구별에도 도드라지게 도시에서도 흙이 사라지고 시골에서도 흙길을 온통 시멘트길로 바꿉니다. 게다가 싱그러운 냇물과 골짝물 흐르는 두멧자락에까지 댐에 가둔 수돗물 마시게 한다면서 법석을 떨어요.

 

 


.. 집 근처의 정원이나 공원 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벌레를 찾아봅시다. 돌이나 낙엽을 치우면 이런 벌레가 보일지도 모릅니다 ..  (24쪽)


  오늘날 도시 아이들은 벌레를 거의 모릅니다. 숲에서 살거나 들에서 살아가는 벌레를 제대로 아는 도시 아이란 거의 없습니다. 더 따지면, 도시 어른부터 벌레를 거의 모릅니다. 벌레가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새가 무엇이요 짐승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알아듣거나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찬찬히 살필 줄 아는 어른은 몇이나 있을까요. 오늘날 시골에서도, 시골 어른들은 숲바람과 들바람을 얼마나 잘 알까요. 새를 알거나 풀을 알거나 나무를 아는 시골 어른은 앞으로 모조리 사라지고 말까요.


  그림책 《집 근처의 벌레들》은 아주 조그마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먼 데 찾아가지 않더라도, 흙이 있고 풀이 있는 데에서 ‘놀이동무와 같은’ 벌레들을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이웃인 벌레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 목숨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몫을 맡는지 곰곰이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모든 일은 우리 집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일도 슬픈 일도 우리 집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지구별을 살리고 우리 나라 살리는 첫 걸음도 바로 우리 집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을 돌아봐요. 어떤 벌레가 있나요? 어떤 새가 사나요? 개구리나 매미가 있나요? 나무는 얼마나 있고, 어떤 나무가 어떻게 살아가나요? 어떤 풀이 자라고, 어떤 꽃이 풀밭에서 피고 지나요?


  작은 벌레 알아보는 눈썰미라면, 작은 이웃 사랑할 수 있습니다. 힘이 여리거나 살림이 어려운 작은 이웃을 사랑하는 슬기롭고 넉넉한 품은, 바로 우리 곁 작은 벌레 한 마리를 살가이 마주하며 곱게 아끼는 몸짓에서 비롯합니다.


  그런데, 이 번역그림책에서 번역말이 아쉽습니다. 일본사람은 글을 쓸 적에 으레 ‘の’를 붙입니다. 이 그림책은 “집 근처의 벌레들”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집 둘레 벌레들”이나 “집과 가까운 벌레들”이나 “집 가까이 사는 벌레들”처럼 옮겨야 알맞습니다. 우리 집 아이하고 이 그림책을 읽기 앞서, 나는 다음처럼 몇 가지 글월을 손질합니다. 우리 둘레 작은 이웃들을 사랑스레 바라보고 싶은 마음처럼, 아이들과 주고받을 말과 글을 아름답게 돌보고 싶습니다.


화분에 은빛 줄이 붙어 있습니다 → 화분에 은빛 줄이 있습니다
은빛 선을 발견했습니다 → 은빛 줄을 보았습니다
달팽이가 붙어서 기어다닌 자국인 것입니다 → 달팽이가 붙어서 기어다닌 자국입니다
달팽이는 육지에 살고 있지만 → 달팽이는 뭍에 살지만
습기 찬 곳을 → 축축한 곳을
작은 껍데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 작은 껍데기가 있습니다
껍데기가 붙어 있는 부분에 있습니다 → 껍데기가 붙은 곳에 있습니다
자기 집을 알고 있는 걸까요 → 제 집을 알까요
뿔의 역할도 → 뿔이 하는 일도
알이 10개에서 60개 정도 들어 있는데 → 알이 10개에서 60개쯤 있는데
머리가 있는 앞부분에서 → 머리가 있는 앞쪽에서
지렁이의 먹이는 가랑잎입니다 → 지렁이 먹이는 가랑잎입니다
돌이나 낙엽을 살짝 치우면 → 돌이나 가랑잎을 살짝 치우면
지네의 몸에는 많은 마디가 있어 → 지네 몸에는 마디가 많이 있어
이렇게 해서 알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 이렇게 해서 알을 지킵니다
봄이 오는 것을 기다립니다 → 봄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짙은 녹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벌레 → 짙푸르게 빛나는 아름다운 벌레
목에는 광택이 있어 빛나 보입니다 → 목은 반들반들 빛나 보입니다


  ‘줄’이라고 잘 쓰다가 왜 ‘선(線)’이라고 적을까요. ‘가랑잎’이라 잘 쓰다가 왜 ‘낙엽(落葉)’이라고 적을까요. 쉽고 고운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어른도 어린이도 즐겁고 쉽게 읽으면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마음 북돋울 수 있도록 글을 쓰면 됩니다. 한국말다운 말투를 찾고, 한국말다운 낱말을 알뜰살뜰 여미는 책이 싱그러이 태어나기를 빕니다. 4346.10.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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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뽀뽀괴물
김별지 지음, 정인현 그림 / 달과소나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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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4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 엄마는 뽀뽀괴물
 정인현 그림
 김별지 글
 달과소나무 펴냄, 2013.9.10. 9000원

 


  우리 집에는 두 아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첫째로 태어난 아이는 외할머니한테서 첫 뽀뽀를 받았습니다. 둘째로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한테서 첫 뽀뽀를 받았습니다. 두 아이는 첫 뽀뽀를 누구한테서 받았건 날마다 수도 없이 아버지 뽀뽀를 받습니다. 얼굴에서 아버지 침내음이 날 만큼, 아이들 아버지는 아이들 얼굴에 언제나 뽀뽀를 합니다.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기저귀에 오줌이나 똥을 싸서 뽀뽀를 합니다. 기저귀 빨래를 마치고 이불을 넌 다음 뽀뽀를 합니다. 앙앙 울며 칭얼거릴 적에 가슴으로 폭 안으면서 뽀뽀를 합니다. 자장자장 노래를 불러 재우는 동안 뽀뽀를 하고, 코코 깊이 곯아떨어지면 자리에 누이며 뽀뽀를 합니다. 밥상을 다 차리고 나서 아이들 부르면서 뽀뽀를 하고, 잘 먹고 밥그릇 말끔히 비우면 말끔히 비워서 뽀뽀를 하며, 제대로 안 먹고 남기면 남기는 대로 뽀뽀를 합니다.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기면서 뽀뽀를 합니다. 품에 안고 저잣거리로 마실을 다녀올 적에 뽀뽀를 하고, 등에 업고 나들이 다니면서 뽀뽀를 합니다. 무릎에 앉혀 그림책 읽히면서 뽀뽀를 하고, 주전부리를 꽃무늬 접시에 담아 내주면서 뽀뽀를 합니다.


.. 안녕? 아가야. 널 만나서 반갑구나 ..  (2쪽)


  아이들은 어느새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맞뽀뽀를 합니다. 뽀뽀를 받기만 할 수 없는지, 입술에도 이마에도 볼에도 코에도 눈에도 쪽쪽 뽀뽀를 해 줍니다. 아이들한테서 뽀뽀를 받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맞뽀뽀를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돌려줍니다. 아이들은 돌려받은 맞뽀뽀를 다시 돌려주고, 뽀뽀놀이는 끝이 나지 않습니다.


  뽀뽀를 하는 입은 사근사근 노래를 부르는 입입니다. 뽀뽀를 하는 입은 냠냠짭짭 밥을 맛나게 먹는 입입니다. 뽀뽀를 하는 입은 코와 함께 맑고 푸른 바람을 마시는 입입니다. 뽀뽀를 하는 입은 싱그러운 냇물 시원하게 들이켜는 입입니다.


  아이들이 말을 배웁니다. 아이들이 어버이 말을 배웁니다. 어버이가 고우며 착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고우며 착한 눈빛 밝히며 고우며 착하게 말을 들려줍니다. 어버이가 짓궂거나 얄궂거나 거칠게 말을 하면, 아이들도 시나브로 짓궂거나 얄궂거나 거칠게 말을 합니다.


  어버이 입에서 나오는 것이 고스란히 아이들 입으로 들어갑니다. 어버이 눈빛이 모두 아이들 눈빛이 됩니다. 어버이 손길과 마음길과 발걸음이 하나하나 아이들 손길과 마음길과 발걸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 엄마는 아가의 손가락에도 뽀뽀를 하네요 ..  (16쪽)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어떻게 살아가면 즐거울까요.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는 살림을 어떻게 꾸리면 아름다울까요. 아이와 놀고 어울리며 삶을 가르치는 어버이는 어떻게 생각을 가누고 마음을 다스리면 착하게 빛날까요.


  가을바람 산들산들 불면서 들판을 포근히 감쌉니다. 가을볕이 나락을 골고루 익힙니다. 시골 흙지기는 나락을 베어 고샅과 마을길과 마당에 자리를 깔고 나락을 죽 펼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락을 슬슬 뒤집으면서 모든 나락알이 알맞게 마르도록 마음을 기울입니다.


  머잖아 가을바람 저물고 겨울바람 찾아오겠지요. 이윽고 가을볕 스러지고 겨울볕 추위를 녹인다며 떠오르겠지요.

  어른들은 가을에 부산합니다. 겨울을 맞이하고 봄을 꿈꾸며 바쁩니다. 아이들은 가을에 부산합니다. 이곳에서 놀고 저곳에서 뒹구느라 바쁩니다. 어른들은 곡식을 갈무리합니다. 아이들은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저희 몸을 즐거워 합니다.


  풀벌레가 노래하고, 텃새들 먹이 찾아 날갯짓하면서 지저귑니다. 겨울잠을 앞둔 개구리들 몸집을 불리고, 겨울나기 기다리는 다람쥐는 곳간을 만듭니다. 꿈을 꾸고 사랑을 하며 열매를 맺는 가을에,


.. 쿵! 쿵! 엄마는 아가의 가슴에서 나는 소리를 듣네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  (20쪽)


  정인현 님 그림과 김별지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엄마는 뽀뽀괴물》(달과소나무,2013)을 읽습니다. 엄마가 ‘괴물’이라니! 그런데 괴물 가운데에서도 ‘뽀뽀괴물’이라니!


  ‘괴물’이란 무엇일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은 ‘괴물’이라는 낱말을 모릅니다. 어른들이 자꾸 ‘괴물’을 말하기에 괴물이 있는가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마음속에 없는 괴물이지만, 어른들이 자꾸 만들기에 어머니를 놓고도 ‘뽀뽀엄마’ 아닌 ‘뽀뽀괴물’로 바라보고 맙니다.


  그런데, 괴물이라 하더라도 뽀뽀괴물이라 하면 귀엽겠지요. 사랑괴물이라든지 노래괴물이라면, 이야기괴물이라든지 줄넘기괴물이라면, 고무줄놀이괴물이라든지 가위바위보괴물이라면, 이러한 괴물은 얼마나 애틋하고 살가우며 반가울까요.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언제나 아이한테 뽀뽀를 합니다. 볼에, 다친 무릎에, 엉덩이에, 그리고 푸르고 맑게 피어나는 아이들 마음에 뽀뽀를 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뽀뽀를 합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맞뽀뽀를 합니다. 4346.10.1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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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린 날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1
김동수 글 그림 / 보림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3

 


아이들은 아픈 날이 없다
― 감기 걸린 날
 김동수 글·그림
 보림 펴냄, 2002.11.30.

 


  아무리 힘들거나 고된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라 하더라도, 자는 동안 틈틈이 손을 뻗어 아이들이 옆에서 이불을 잘 덮는가 살핍니다. 잠결에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저기 멀리 뒹구는 이불을 잡아당깁니다. 손이 안 닿으면 발로 잡아끕니다. 눈을 뜨지 않은 채 손발을 써서 아이들이 이불을 꼭꼭 덮도록 여밉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훨씬 많이 어릴 적에는 밤새 잠을 거의 못 이루었습니다. 아이들이 밤에 오줌을 누느라 축축한 기저귀와 바지를 갈아입히고, 사타구니를 닦으며, 잠자리 이불을 걷거나 걸레질을 하느라 긴 밤을 보냅니다. 여섯 살 세 살 두 아이와 살아가는 요즈음은 밤에 아이들 오줌 누이느라 잠을 깨야 하고,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이 자꾸자꾸 이불을 차거나 이리 구르고 저리 뒹굴거리기에 반듯하게 누워 자도록 다스리니, 잠을 설쳐야 합니다.


  새벽에는 일찌감치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밥을 헤아립니다. 쌀은 엊저녁부터 미리 불리고, 국거리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일손이 달라집니다. 미역국을 끓이자면 물에 불려야 할 뿐 아니라, 국을 끓이기 앞서까지 새 물로 갈아 줍니다. 다시마가 국물에 배도록 하자면 한참 불려 놓아야 합니다. 부엌에서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옵니다. 잠꼬대하는 아이들 가슴을 톡톡 토닥입니다. 새벽바람 차가우니 이불을 다시 여미고, 작은 이불을 위에 포개어 덮습니다.


.. 엄마가 나에게 따뜻한 옷을 사다 주셨다 ..  (5쪽)


  아이들은 아픈 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고된 먼 마실을 다녀온다든지, 자동차를 너무 오래 태운다든지, 바다나 골짜기에서 몸이 얼얼하도록 논다든지, 이렇다면 아이들도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픈 날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끝없이 뛰고 구릅니다. 아이들은 멈추지 않고 달리며 노래합니다. 몸을 움직이며 후끈후끈 땀을 흘리는 아이들입니다. 자라고 새로 자라며 또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어버이가 엉뚱한 것을 먹이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아프지 않아요. 어버이가 옷을 잘못 입히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아프지 않아요. 어버이가 집안을 제대로 쓸고닦지 않는 일 없으면 아이들이 아프지 않아요.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아이들은 늘 어버이와 같은 방에서 같은 이불을 덮으며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모두들 집이 작았어요. 집은 작더라도 헛간이 있고 마당이 넓었어요. 집은 작다지만 텃밭도 꽃밭도 있었지요.


  예전에는 서로 옹기종기 달라붙어 키득키득 놀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집안 아닌 집밖에서 하루를 누렸습니다. 마당에서 달리고 고샅에서 뛰며 꽃밭과 텃밭 사이를 오갔어요. 햇볕을 먹고 바람을 마셨지요. 흙을 밟고 풀과 나무를 만졌어요. 이렇게 들바람과 들넋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아플 턱이 없어요. 들바람과 들넋으로 숨쉬며 일하는 어른들도 아플 일이 없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아이들은 너무 아픕니다. 널찍하게 짓는 아파트에 방이 따로따로 있습니다. 예전에는 방을 따로 두더라도 어머니나 아버지가 밤새 자주 들락거리며 이불깃 여미어 주거나 이마를 쓸어넘겼는데, 요사이는 이런 어버이가 자꾸 줄어듭니다. 널찍하게 짓는 아파트이다 보니, 집밖으로 나가서 하루를 누리기보다 집안에서 온 하루를 보내기 일쑤입니다. 굳이 집밖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할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런데, 요새 도시에서는 애써 집밖으로 나가더라도 느긋하거나 즐겁게 놀 만하지 않아요. 놀이터 없는 데 많고, 자동차 시끄러우며 무섭습니다. 새도 벌레도 개구리도 없지요. 흙도 풀도 나무도 없어요. 눈을 맑게 다스릴 만한 하늘이나 숲이나 바다가 없는 도시예요. 마음을 넓게 북돋울 구름이나 햇살이나 빗방울 만나기 어려운 도시예요.


.. 엄마는 내가 이불을 잘 덮고 자지 않아서 감기에 걸렸다고 하셨다 ..  (25쪽)


  김동수 님 그림책 《감기 걸린 날》(보림,2002)을 읽습니다. 감기에 걸린 날 밤, 오리털 겉옷을 놓고 즐겁게 꿈을 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한테서 오리털 겉옷을 선물로 받았는데, 털 하나가 뾰롱 빠져나왔다 하고, 밤에 꿈을 꾸면서 겉옷에서 오리털을 하나씩 뽑아 ‘털 없는 오리들’한테 모두 나누어 주었다고 해요.


  그렇군요. 털 없는 오리들한테 털을 나누어 주듯, 이불을 조금씩 밀어내며 그예 뻥 걷어찼겠군요. 그런데, 아이들은 밤새 이불 없이 지내기도 해요. 이불을 걷어찬 줄 모르는 채 지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다가 스스로 어 춥네 하고 느끼면 어떻게 해서든 이불을 찾아내어 잡아당깁니다. 이불 한 채로 두 아이를 왼쪽과 오른쪽에 눕혀 같이 덮고 자다 보면, 어느 때에는 왼쪽 큰아이가 몽땅 가져가고, 또 어느 때에는 오른쪽 작은아이가 몽땅 가져갑니다. 하도 두 아이가 서로 ‘이불 당기기’를 하는 바람에, 이제는 아이마다 이불 한 채씩 따로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저희 이불을 잡아당기다 못해 바닥에 깐 채 잠들고는 아버지 이불까지 빼앗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이불을 잡아당겼으면 잘 덮어야 할 테지만, 잡아당기기만 할 뿐 가랑이 사이에 끼고 잔다든지 옆으로 차 놓는다든지 하는군요.


  아이들은 꿈속에서 하늘 훨훨 날아다니는가 봐요. 아이들은 꿈속에서 바닷속 깊이 헤엄치는가 봐요. 옷도 이불도 없이 홀가분하게 달리고 날고 헤엄치고 뛰노는가 봐요.


  재미있게 맞이하는 아침입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아침입니다. 아이들은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납니다. 오늘은 뭐 재미나고 새로운 놀이 없을까 눈을 반짝이며 일어납니다. 어제는 어제이고, 오늘은 오늘입니다. 다시금 개구지게 달립니다. 또다시 신나게 뛰고 구릅니다. 참말 아이들은 몸이 아플 틈이 없습니다. 참으로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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