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 겨레 전통 도감 5
조현 지음, 홍영우 그림 / 보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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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2

 


삶과 놀이와 빛과 이야기
― 탈춤
 토박이 기획
 홍영우 그림
 조현 글
 보리 펴냄, 2010.4.8. 35000원

 


  우리 겨레한테 탈춤은 오랜 놀이요 잔치였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우리 겨레는 누구나 탈춤을 즐겼습니다. 재주꾼만 탈춤을 할 수 있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만 탈춤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사람들만 탈춤을 구경하지 않았습니다. 손쉽게 탈을 만듭니다. 스스럼없이 춤을 춥니다. 탈을 만들어서 써도 춤을 추고, 탈이 없어도 춤을 춥니다.


  내 어릴 적 탈을 문득 떠올립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학교 미술 수업에서 탈을 안 만들었고, 국민학생 적에만 학교 미술 수업에서 탈을 만들었습니다. 탈을 만든다며 집에서 플라스틱 바가지를 하나씩 가져와서 구멍을 뚫었어요. 제가 도시내기 아닌 시골내기였으면 플라스틱 바가지 아닌, 하얗게 꽃을 피우며 큼지막하게 열매 맺는 박을 토막내어 만든 ‘싯누런 바가지’를 썼겠지요. 물을 푸고 쌀을 풀 적에 쓰는 바가지를 학교에서 탈 만든다며 가져가려 하면 어머니는 적잖이 못마땅해 하셨을 테지요. 원, 무슨 학교에서 바가지를 가져오라 하느냐면서. 그러나 그 바가지로 탈을 만든다고 하면 싫어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해요. 그렇구나, 바가지로 탈을 만들려고 하는구나 하시면서.


  그러고 보면, 도시인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국민학생 적에 ‘플라스틱 바가지’로 탈을 만들면서, 바가지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만 있는 줄 알았어요. ‘뿔바가지(플라스틱 바가지)’란 참말 박꽃 피는 그 풀씨가 덩굴을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박덩어리를 자르고 속을 파내어 만든 바가지 모양을 빗대어 공장에서 척척 찍은 것을 가리키는 이름인 줄 제대로 모른 채 살았어요.


  예전에는 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예전에도 바가지로 탈을 만들었을까요. 바가지를 얻기까지 봄 여름 지나고 가을을 기다리면서 둥그렇고 소담스러운 박덩이 언제 맺히나 하고 한참 손꼽았을까요.


  맨 처음 탈을 생각해 내어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우리 겨레는 언제부터 탈을 만들었을까요. 탈은 우리 겨레뿐 아니라 다른 겨레에도 있어요. 우리 겨레와 이웃 겨레는 저마다 언제부터 탈을 생각해 내어 만들어 춤을 추면서 삶을 누렸을까요. 왜 굳이 탈을 쓰면서 잔치마당을 열고 노래와 춤을 즐겼을까요.


  어릴 적 학교에서 미술 수업으로 탈을 만들 적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교과서에는 이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시험문제에도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미술 교사도 이런 이야기는 모르리라 느껴요. 그저 점수를 매기려고 탈 만드는 실기수업을 했으리라 느껴요.


  탈을 만들었으면 탈춤을 출 노릇이요, 탈춤을 추려면 정규수업을 뒤로 젖혀야 합니다. 탈춤을 추면서 학생과 교사 사이 울타리를 걷을 노릇입니다. 몽둥이와 주먹다짐으로 윽박지르는 교사 앞에서 학생 누구나 스스럼없이 제발 학교에서 우리(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나무라는 말 섞으며 춤놀이 즐길 노릇입니다. 고운 이야기 길어올리며 서로서로 어깨동무하고 춤사위 흐드러질 노릇입니다. 실기수업 점수 때문에 만드는 탈이 아니라, 어깨를 들썩이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채 춤 한 판 맛깔나게 누리고 싶어 만드는 탈입니다.


.. 우리 탈들이 이렇게 따뜻하고 익살스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건 우리 탈이 오랜 세월 동안 서민들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  (6쪽)

 

 

 


  홍영우 님 그림과 조현 님 글이 어우러진 도감 《탈춤》(보리,2010)을 읽습니다. 탈과 얽힌 여러 이야기를 엿볼 수 있고, 탈을 쓰고 즐기는 춤과 얽힌 숱한 이야기를 살필 수 있습니다. 이런 책은 진작 나왔어야 했는데 참 많이 늦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제대로 놀지 못하는 오늘날이 되어서야 이 책이 나왔으니 아주 늦었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제대로 놀지도 못할 뿐 아니라, 놀이노래조차 스스로 만들어 부르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수많은 골목놀이와 고샅놀이와 마당놀이를 거의 모를 뿐 아니라, 이마에 구슬땀 흘리면서 몇 시간이고 집 바깥에서 뛰놀며 누리는 삶을 하나도 모른다 할 만합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탈춤》과 같이 예쁜 책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일밖에 없습니다. 즐겁게 놀고 싶어서 읽는 책이 아니에요. 즐겁게 탈을 만들어 개구지게 탈춤놀이와 탈춤마당 벌이자고 읽는 책이 아닙니다.


  박제가 되고 만 책입니다. 박제로 만들고 만 우리 겨레 놀이를 박물관 유물처럼 그러모은 책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고 보면, 지난날에는 굳이 이런 책 없어도 되었어요. 지난날에는 미술 교사가 이끌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탈을 만들 줄 알았습니다. 지난날에는 학교 수업이 아니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탈을 만들어 놀 줄 알았습니다. 지난날에는 이런 도감이나 그림책이나 책이 없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옛날부터 물려받은 이야기에 따라 스스로 탈춤놀이 즐길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박제가 되고 만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지식으로 읽을밖에 없는 이야기’인 책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아이들로서는 이런 책이라도 있어야 우리 겨레 옛놀이와 옛삶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책조차 없다면, 아이들은 우리 겨레 삶과 발자취와 이야기를 하나도 모르고야 맙니다.


  삶이 제도권에 짓눌리면서 박물관이 생깁니다. 박물관에 들어가는 유물이란 모두 ‘여느 사람들이 살림 일구며 쓰던 것’들입니다. 수수하고 투박한 살림살이가 박물관 유물이 됩니다. 박물관 유물 가운데에는 권력자들이 시골사람 등을 울궈내며 가로챈 금은붙이로 만든 씌우개나 노리개가 있고, 권력자들이 시골사람 등허리 졸라내며 빼앗은 도자기에 옷가지가 있습니다. 임금님이나 신하나 지식인이나 양반이나 권력자는 스스로 옷을 지을 줄 모르고 그릇을 구울 줄 모르며 밥을 할 줄 모릅니다. 모든 옷과 밥과 집이란, 또 임금님 머리에 씌우는 것이든 허리에 두르는 것이든 무엇이든, 게다가 한문만 가득 채운 책이든, 하나같이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피땀 흘려 만든 것이에요. 시골사람이 나무를 베어 삶고 끓이고 말리고 하면서 종이를 한 장 두 장 만들어 책이 태어나요. 시골사람이 풀줄기에서 실감을 뽑아 말리고 삶고 되풀이하며 실을 얻고는 물레를 돌리고 베틀을 밟으며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짓습니다. 바늘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꽃신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갓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바로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흙에서 얻은 것들로 시골에서 만들어요.


  ‘임금님이 쓰던 것’이라서 대단한 유물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임금님이 쓰던 모든 물건은 ‘시골마을 시골사람이 시골 숲과 들과 메에서 얻은 것을 시골에서 만들어 바친 것’입니다.


  도감 《탈춤》을 읽으며, 탈과 얽혀 우리 겨레 삶과 놀이와 빛과 이야기가 어떻게 흘렀는가 곰곰이 돌아봅니다. 도감 《탈춤》을 덮으며, 우리 겨레 구수하고 투박한 삶과 놀이와 빛과 이야기가 얼마나 짓밟히거나 짓눌리면서 모조리 아스라이 사라지고야 마는가를 헤아립니다.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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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 이한우 편 재미마주 어린이 미술관 1
원동은 글, 이한우 그림 / 재미마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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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2

 


내가 사는 마을
― 나의 살던 고향은
 이한우 그림
 원동은 글
 재미마주 펴냄, 2011.11.5. 13000원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에 참새가 놀러옵니다. 대청마루에서 놀던 아이들이 “와, 저기 봐. 참새야.” 하고 말할 적에 설마 참새가 제비집으로 깃들며 놀까 싶었는데, 참말 참새였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제도, 참새 몇 마리가 우리 집 처마 밑을 들락거립니다.


  마을 참새들은 우리 집에서 여러 가지 먹이를 얻습니다. 먼저 나무열매를 얻습니다. 마당에 있는 후박나무에 아직 열매가 남았는지 살핍니다. 몽글몽글 돋는 보드라운 잎사귀를 쪼아먹을는지도 몰라요. 다음으로 초피나무에 앉아 초피열매를 먹습니다. 이렇게 나무열매를 찾으면서 나무에 깃든 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새들은 우리 집 풀벌레도 잡아서 먹으리라 생각해요. 마을에서 우리 집만 농약을 안 치니 우리 집 둘레는 풀밭을 이루고, 풀밭에서는 내도록 노래잔치 이루어집니다.


  부엌에서 밥을 지으며 풀벌레와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드문드문 개구리 노랫소리 섞입니다. 참개구리는 참개구리대로 노래를 하고, 풀개구리는 풀개구리대로 노래를 합니다.


  밥을 먹고 나서 아이들과 글씨쓰기를 하거나 그림그리기를 하는 동안에도 노래를 듣습니다. 풀벌레와 새들도 노래를 하지만, 바람도 노래를 합니다. 바람은 풀잎과 나뭇잎을 살랑이며 노래를 부르는데, 조용히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구름이 흐르는 소리를 함께 듣습니다. 구름 흐르는 결에 따라 햇볕이 내리쬐는 결을 같이 느낍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다른 빛과 볕이 드리웁니다. 새벽과 저녁과 밤마다 다른 별빛이 감돕니다. 별똥이 떨어질 적에는 휙 하고 하얀 빛꼬리 나타나는데, 저 먼 데에서 울리는 소리가 가냘프게 들리곤 합니다.


  아침에 이슬이 맺히고, 저녁에 촉촉한 바람이 붑니다. 가을입니다. 아침노을이 여름과 달리 새삼스럽고, 저녁노을이 겨울을 앞두며 싱그럽습니다.


.. 나의 살던 고향은 집 앞에 작은 섬 하나 똑딱선 두 척 텃밭을 지나 집이 세 채, 그리고 사철 환한 햇볕이 드는 먼 남쪽 바닷가 마을이었습니다 ..

 

 


  마을 빨래터에는 여름까지 푸른 물이끼 꼈습니다. 여름이 지나며 빨래터에 물이끼 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사람이나 물 긷는 사람이 없기에 흙과 먼지가 뽀얗게 쌓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보름이나 한 달에 한 차례쯤 빨래터를 치웁니다. 아이들은 물놀이 한다며 좋아하고, 나는 시원한 물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구니 재미있습니다.


  어느새 마을 빨래터 배롱나무는 꽃이 거의 다 집니다. 도시에서는 ‘백일홍’이나 ‘목 백일홍’이라 말하지만, 시골에서는 ‘배롱나무’라 하고, 때로는 ‘간지럼나무’라 합니다. 시골사람은 ‘배롱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 식물학을 하던 학자가 붙인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을 시골에서는 안 씁니다. 시골사람은 ‘코딱지나물’이라고 가리킵니다. 서울 표준말로 민들레·씀바귀·고들빼기·부추·쇠뜨기·미나리라 일컫지만, 시골마다 이들 풀을 가리키는 이름은 모두 달라요. 고장마다 말이 다르고 마을마다 말이 다릅니다. 삶터가 다르고 삶이 다르니 말이 다릅니다.


  시골마을마다 말이 다를 뿐 아니라 물맛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들이 다르고 숲이 다르며 골짝이 달라요. 마을마다 나무가 다르고 풀이 다르며, 숲과 들에 깃드는 새와 벌레가 달라요. 이러한 결에 따라 바람맛도 다릅니다.


  이 마을은 이 마을대로 예쁩니다. 저 마을은 저 마을대로 곱습니다. 우리 마을은 우리 마을대로 사랑스럽고 이웃 여러 마을은 이웃한 마을대로 살갑습니다.


  어디에서나 이야기를 들어요. 우리 집에서는 우리 이야기가 소근소근 자랍니다. 이웃에서는 이웃 이야기가 조롱조롱 자랍니다. 서로서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즐거운 날에는 잔치를 엽니다. 함께 노래하고 같이 춤을 추어요. 맛난 밥을 함께 차려서 즐기고, 밭고랑에 나란히 쪼그려앉아 지난날 겪고 들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눕니다.


.. 어릴 적 때묻지 않은 우리들의 고향은 언제나 꿈과 마음 속에만 살아 있을 뿐,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는 고향은 두루미가 날고 꽃사슴이 뛰놀고, 머언 옛날에나 있었다는 ..

 

 


  이한우 님 그림에 원동은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나의 살던 고향은》(재미마주,2011)을 봅니다. 유화를 그리는 이한우 님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신다고 해요. 그래, 이 그림책도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합니다. 구태여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이원수 님 동요 〈고향의 봄〉 첫마디를 애써 따서 이름을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원수 님은 이녁 동요 〈고향의 봄〉 첫머리를 “나의 살던 고향은”이 아닌 “내가 살던 고향은”으로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녁이 이렇게 고쳐써야 하는 줄 깨달은 때는 너무 늦어서, 사람들이 온통 ‘나의’로 익숙하니 참 힘들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이한우 님 그림은 아이들이 보도록 그린 그림은 아닙니다. 재미마주 출판사에서 원동은 님 글과 함께 엮으며 그림책을 빚기에,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새 옷을 입습니다. 그러면, 곰곰이 생각할 일이에요. 어른들한테는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말마디가 익숙할 테지만, 아이들은 아직 몰라요. 아이들은 이제 막 새로운 말을 배우고 새로운 삶을 즐기려 합니다. 이 아이들 앞에 선물처럼 내놓으며 보여주는 아름다운 그림책에는 어떤 이름을 붙일 때에 곱게 빛날까요.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한테서 어떤 ‘말’과 ‘그림’을 물려받으면서 날마다 신나게 놀고 새롭게 놀며 씩씩하게 놀 적에 튼튼하게 자랄까요.


  한참 《나의 살던 고향은》을 들여다보다가, 그림에 나오는 논밭이 너무 ‘경지정리 잘 된 모습’이라서 살짝 아쉽습니다. 풀로 지붕을 잇던 지난날에는 논과 밭이 이렇게 반듯반듯하지 않았을 텐데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뚜렷한 우리 나라를 헤아린다면, 우리 시골마을 들빛과 숲빛과 마을빛이 알록달록 노르스름 불그스름한 빛깔뿐 아니라 짙푸른 빛깔, 새하얀 빛깔, 누르스름한 사이사이 푸르게 새잎 돋는 빛깔 골고루 있으면 더 나을 텐데요. 이 그림책에는 봄도 여름도 겨울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을만 있구나 싶어요.


  그러나, 가을만 보여주면서 아름다운 마을을 노래할 수 있지요. 가을빛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냇물과 골짝과 바다와 들판을 춤출 수 있어요. 이야기가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진 채 구경하는 그림이 아닌, 아이들이 바로 오늘 기쁘게 뛰노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사랑스럽습니다.


  아무래도 그림책 《나의 살던 고향은》은 시골마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이든 어른들이 그리는 예전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늘 시골에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밝게 노래하는 예쁜 삶터를 새롭게 그리면 됩니다. 오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오늘 도시에서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둥실둥실 춤추고 맑게 노래하는 고운 동네를 싱그럽게 그리면 됩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마을이 바로 고향입니다. 태어난 곳만 고향이 아니라, 사랑과 꿈을 심으며 살아가는 곳이 어디나 고향이 됩니다. 아이들이 눈망울을 빛내고 가벼운 몸짓으로 날갯짓을 하듯 춤추며 노는 곳이라면 어디나 고향입니다. 4346.10.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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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은 고양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124
레미 찰립 그림, 버나딘 쿡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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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0

 


아이들은 궁금덩어리
― 호기심 많은 고양이
 레미 찰립 그림
 버나딘 쿡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펴냄, 2002.3.23. 6500원

 


  아이들은 궁금덩어리입니다. 만지지 말라 하면 만지고, 만지라 해도 만집니다. 먹지 말라 하면 먹고, 먹으라 해도 먹습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만큼, 아이들은 하라는 짓도 하고 하지 말라는 짓도 해요. 무엇이든 스스로 겪거나 부대끼거나 부딪히면서 몸으로 알고 싶어 해요.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서도 느끼지만, 나 스스로 내 어릴 적을 돌아보아도 느낍니다. 나부터 어릴 적에 어른들이 하지 말라 하면 앞에서는 다소곳하게 ‘네’ 하고 말한 뒤, 어른들이 없거나 안 보이는 데에서 슬쩍 일을 저질러요.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 하고 아무리 얘기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귀로 듣기만 해서는 알 수 없고, 눈으로 보기만 해서도 알 수 없어요. 손으로 대 보아야 하고, 살짝 만지기라도 해 보아야 합니다.


  매우니 먹지 말라 하지만, 매운맛이 궁금해서 한입 먹습니다. 짜니 먹지 말라 하지만, 짠맛이 궁금해서 한 숟갈 뜹니다. 어른들이 무엇을 하지 말라 말할 적에는 마치 ‘너 그것 좀 해 보렴’ 하고 말하는 셈이라고 듣는다고 할까요. 이제까지 모르던 무엇을 스스로 알아보라면서 알려주는 셈이라고 생각한다고 할까요.


.. 이웃집에는 새끼 고양이가 살았어요. 큰 새끼 고양이도 아니고, 보통 크기 새끼 고양이도 아니고,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였지요. 새끼 고양이는 아주아주 호기심이 많았답니다 ..  (5쪽)

 


  아이들한테 이것 하지 말고 저것 하지 말라며 말할 적에는 부질없구나 싶어요. 그래,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이것 하고 저것 하렴 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즐겁게 할 만한 것을 찾고 챙기며 보여주어야지 싶어요. 자, 실컷 해 보렴. 자, 신나게 해 보렴. 자, 마음껏 해 보렴.


  마당에서 맨발로 뛰어놀아 보렴. 비오는 날 옷 흠뻑 젖어도 되니까 빗물 받아먹으며 놀아 보렴. 우리 함께 골짜기에 가서 골짝물에 몸을 담그며 놀아 보자. 우리 자전거 타고 바닷가에 가서 모래밭에서 뒹굴고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자. 우리 들마실 가서 들꽃 꺾고 들풀 뜯으며 놀자. 우리 책방에 가서 수많은 책들 구경하고 살피면서 놀자.


  얘야, 봄에는 우리가 유채를 뜯어서 먹지? 민들레잎도 맛나게 먹지? 씀바귀 고들빼기 코딱지나물 꽃마리 꽃다지 모두모두 맛나게 훑어서 먹지? 갈퀴덩굴 모시잎 환삼덩굴 도꼬마리 모두모두 맛나지. 젓가락나물 까마중 아주까지 모두모두 우리 입맛을 돋우지.


  후박나무 잎이 지는구나. 겨울날 짙푸르게 빛나려고 여름과 가을에 헌 잎 떨구어 가랑잎 내놓는구나. 우리 후박잎 주워서 가만히 들여다볼까. 후박잎을 그림으로 예쁘게 그려 볼까.


  이웃집 할매가 심은 호박넝쿨이 우리 집 대문까지 타고 오르네. 멋지구나. 이 호박넝쿨은 우리 집으로도 큼지막한 호박알을 선물해 주네. 할매 할배 두 분이 저 많은 호박을 다 자실 수 없으니 우리한테 넌지시 선물해 주네. 이 커다란 호박알 따서 다 먹을 무렵 새 호박알 굵고, 새 호박알 또 따서 다 먹을 무렵 다른 호박알 굵겠지. 얘들아, 모두모두 함께 만지고 함께 보자. 다 같이 들여다보고 다 같이 일하다가 다 같이 놀자.


.. 새끼 고양이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한 번 더 건드리면, 머리가 쑥 나올지도 몰라 ..  (21쪽)

 

 


  아이들이 궁금덩어리라면, 새끼 짐승도 궁금덩어리로구나 싶습니다. 고양이도 강아지도 병아리도 모두 궁금덩어리일 테지요. 알고픈 누리가 넓어요. 알고픈 바다가 깊어요. 알고픈 숲이 깊어요. 저마다 이것 살짝 건드립니다. 서로서로 저것 가만히 집어서 입에 넣습니다.


  아이들은 모래도 흙도 돌도 거리끼지 않고 입에 넣습니다. 뭐, 돌멩이를 삼켜도 걱정할 일 없어요. 아이 뱃속을 두루 거쳐 똥으로 나오니까요. 아이가 잘 안 씹고 밥을 먹으면, 밥알도 콩알도 도로 똥으로 고스란히 나와요. 우리 집 두 아이 아직 똥오줌 못 가릴 적에 똥바지 치우고 밑을 씻기면서 ‘이 아이들이 제대로 안 씹고 삼킨 것’이 똥으로 어떻게 나오는가를 참 오래도록 보았어요.


  그러나, 아이들은 밥상머리에서 언제나처럼 잘 안 씹고 꿀꺽 삼켜요. 배고프니 얼른 삼키지요. 입에 군침이 도니 얼른 입에 넣고는 또 손으로 집어서 또 삼키고, 자꾸자꾸 되풀이하지요.


.. 새끼 고양이는 한 발, 한 발, 또 한 발 물러났고요. 웅덩이 바로 앞까지 말이에요 ..  (35쪽)

 


  버나딘 쿡 님 글에 레미 찰립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호기심 많은 고양이》(비룡소,2002)를 읽습니다. 온통 궁금덩어리인 고양이는 거북이를 처음 만납니다. 무엇일까? 누구일까? 가만히 생각하며 살그마니 다가섭니다. 거북이는 덩치 큰 고양이(비록 새끼라 하더라도)를 보고는 머리를 움찔, 쏙 숨습니다. 이내 네 다리 쏙 감춥니다. 고양이는 화들짝 놀랍니다. 아니, 어떻게 저럴 수 있담?


  그런데, 머리와 다리가 다시 뿅 나옵니다. 고양이는 더 놀랍니다. 뭘까, 무엇일까, 어떤 녀석일까, 살금살금 뒷걸음을 하다가 그만 웅덩이에 퐁당 빠집니다.


  새끼 고양이는 거북이하고 물에 대어 꽁지 빠져라 내뺍니다. 궁금덩어리 새끼 고양이는 궁금한 이야기 한 가지를 풀었을까요. 앞으로는 웅덩이 언저리에 얼씬도 안 할가요. 다시 거북이를 만나면 놀라서 숨을까요.


  궁금함을 풀면서 한 살 두 살 자랍니다. 궁금함을 마음으로 품으며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되어도 궁금한 이야기가 많아, 동무를 사귀고 책을 읽으며 나들이를 다닙니다. 해마다 새로 봄을 만나도 새삼스러워 다시 봄꽃을 누리고 봄풀을 뜯습니다. 해마다 새로 가을을 맞이해도 새삼스러우니 다시 가을볕을 쬐고 가을바람을 마십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얽힌 궁금함을 모두 풀었음직한 어른이지만, 어른들도 해마다 철마다 날마다 새삼스럽다고 느낍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해한테 인사합니다. 햇볕을 가리는 구름을 쳐다보며 손을 흔듭니다. 늦여름에 바다 건너 따스한 나라로 돌아간 제비가 새봄에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며 바닷가에서 물결 소리를 듣습니다.


  삶은 온통 새롭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 솟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어른들도 함께 자랍니다. 아이들은 배우고, 어른들도 함께 배웁니다. 삶을 이루는 빛은 그예 궁금덩어리입니다. 4346.9.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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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30 08:57   좋아요 0 | URL
ㅎㅎ 정말 아이들이랑 새끼 고양이는 닮았네요~
한시도 가만 안 있고 늘 무엇인가를 궁금해하고 이것이 무엇일까? 새끼 고양이가 폴싹폴싹 앞발로 살짝 건드려 보고 뒷발로 펄썩 뛰어 오르다, 또 다시 다가가 보며...자기가 지칠 때까지 아주 즐겁게 잘 놀지요~~

지난번에 보내주신 후박나무 가랑잎이 "하루하루 깨어서 살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며 그 하루하루가 쌓여서 이오덕의 온 삶이 되었습니다."라고 적힌 이오덕 선생님 사진엽서 옆에서 오늘도 예쁘게 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직도 코끝에 대어 보면 풋풋한 나뭇잎 냄새가 나요...

숲노래 2013-09-30 09:36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가을비와 함께 가을바람
상큼하게 하루를 누리셔요~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
이노우에 마사지 글 그림, 정미영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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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01

 


즐겁게 그리면 신나는 그림
―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
 이노우에 마사지
 정미영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펴냄, 2001.10.8. 9000원

 


  빨간 능금 한 알 곱게 나오는 그림책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문학동네어린이,2001)를 방바닥에 살그마니 놓으니, 큰아이가 들여다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척 하고 집어 아버지한테 읽어 달라고 가져옵니다. 다른 그림책도 살그마니 방바닥에 놓았으나, 여섯 살 큰아이한테는 능금 한 알 빨갛게 빛나는 그림 나오는 그림책이 가장 끌린 듯합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어 주기 앞서 아버지가 먼저 읽었습니다. 보드라운 그림결이 퍽 곱구나 느끼면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책에 깃든 옮김글은 영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보드라운 그림결 흐르는 그림책에 금을 죽죽 긋기는 싫지만, 일부러 금을 죽죽 긋고 새 말을 적어 넣습니다. 흰종이에 새 글을 적어서 붙일 수 있는데, 이제 큰아이가 여섯 살인 만큼 ‘책으로 찍혀 나오는 글’이라 하더라도 잘못 적힌 글은 바로잡아서 읽을 때에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들려주는 셈입니다.


  그림책 첫 줄 “동네 과일 가게 앞에 사과 한 개가 놓여 있었어(2쪽).”를 “동네 과일 가게에 사과 한 알이 놓였어.”로 바로잡습니다. 사과는 “가게 앞에”가 아니라 “가게에” 놓입니다. 또, 사과는 ‘알’로 세지 ‘개’로 안 셉니다. “놓여 있었어”는 한국 말투가 아니에요. “놓였어”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고 있다”는 영어 말투인 현재진행형을 어설피 한국말로 잘못 옮긴 말투입니다. 일본사람은 영어 현재진행형을 ‘中’이라는 한자를 써서 적습니다. 한국사람은 이런 일본말을 “먹는 중이었다”나 “가고 있는 중이다”처럼 잘못 옮기곤 합니다.


  4쪽에서는 “쌩하니 뛰어가던 한 사람이 사과를 봤어.”가 나오는데, 이 글은 “쌩하니 뛰어가던 사람이 사과를 봤어.”로 바로잡습니다. “한 사람”처럼 쓸 자리는 따로 있습니다. 한국말로는 “한 사람”이나 “한 농부”나 “한 선생님”이나 “한 멋쟁이 아가씨”처럼 쓰지 않아요. 아이들한테 잘못된 말투로 읽어 줄 수 없으니 씩씩하게 금을 긋고 바로잡습니다. 5쪽에 나오는 “바쁜 걸 보니 저 사람은 회사원일 거야.”는 “바쁜 모습을 보니 저 사람은 회사원이야.”로 바로잡습니다.


  6쪽과 7쪽에 걸쳐, “‘정말 탐스러운걸. 기름진 밭에서 자란 사과가 분명해.’ 알았다. 틀림없이 농부 아저씨들이야.”처럼 나오는데, 이 대목은 “‘참말 먹음직스러운걸. 기름진 밭에서 자란 사과가 틀림없어.’ 알았다. 틀림없이 농부 아저씨들이야.”로 고쳐서 읽습니다. 한국말은 ‘틀림없다’이고 한자말은 ‘分明하다’입니다. 두 쪽에 걸쳐 이 두 가지 낱말을 섞어 쓰는데, ‘틀림없다’로만 적으면 됩니다.


.. 이번엔 멋쟁이 아가씨가 다가왔어. “사과를 노래한 사람이 많지. 모두 이렇게 예쁜 사과를 보고 노래를 만들었나 봐. 그래, 나도 한번 만들어 봐야지.” ..  (14쪽)

 


  일본사람 이노우에 마사지 님은 능금 한 알을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모습을 그림책으로 재미나게 보여줍니다. 참 그렇지요. 시골 흙일꾼은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능금나무에서 능금 한 알 얻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노래를 지어 부르는 아가씨는 능금알처럼 곱고 환하게 빛나는 열매를 마음속으로 아로새기며 곱고 환하게 빛날 만한 노래를 지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어린 아이들은 봄나들이 가는 길에 무얼 싸 가면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감이며 배이며 능금이며, 아이들은 서로 다른 열매를 쌉니다. 능금을 싸 간 아이가 아삭 하고 소리를 내며 능금을 베어 먹습니다. 동무들은 ‘아삭!’ 하는 소리에 군침을 흘립니다. 감도 배도 맛나지만, ‘아삭!’ 하는 소리를 내지는 못해요.


  참말 아이들은 온갖 것을 다 먹습니다. 열매도 먹지만 소리도 먹어요. 밥에서 영양소를 먹는 아이들이 아니라, 밥에서 사랑을 먹는 아이들이에요. 어른들은 사랑으로 밥을 차리고, 아이들은 사랑스러움을 밥으로 얻어요. 반찬 가짓수가 몇 안 되더라도, 아이들은 참 맛나게 잘 먹어요. 왜냐하면, 그야말로 아이들은 사랑받을 때에 즐겁게 웃거든요. 사랑받는구나 하고 느낄 적에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노래해요.


  ‘아삭!’ 하는 소리가 얼마나 즐거운데요. 능금을 수십 수백 알 그러모아 앞에 늘어놓아야 맛나지 않아요. 주머니가 가난해서 능금 한 알만 겨우 샀어도, 식구 숫자에 따라 작게 쪼개어 하나씩 나눈 뒤 서로서로 ‘아삭!’ 소리를 내며 빙그레 웃어 보셔요. 즐거움은 어깨동무에 있어요. 즐거움은 함께 살아가는 하루에 있어요.


..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우르르 가게로 모여들었어. “난 감을 싸 갈 테야.” “난 사과.” “나는 배를 먹을래.” 어, 너희들 내일 ..  (24∼25쪽)

 


  비오는 날에는 비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빗방울 떨어지는 마당을 조용히 쳐다봅니다. 대청마루에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비를 한참 구경하며 즐겁습니다. 한참 비를 구경하다가 비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햇볕 쨍쨍 맑은 날에는 햇살이 어떻게 곱게 퍼지는가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햇빛이 밝아 꽃빛도 밝고, 햇볕이 따스해 들판에 나락 누렇게 잘 익습니다. 풀내음과 나락내음 듬뿍 들이마시면서 평상에 앉아 후박나무 그늘을 즐기다가, 또 종이를 꺼내 가을빛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아이도 그림놀이를 하고, 어버이도 그림놀이를 합니다.


  잘 그려야 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즐겁게 그리면 신나는 그림입니다. 잘 써야 하는 글이 아닙니다. 기쁘게 쓰면 아름다운 글입니다. 살림도 아이키우기도 언제나 맨 첫째로 손꼽을 대목은 즐거움이고, 웃음이며, 사랑입니다. 나는 그림책 《하나라도 백 개인 사과》를 읽으며 시골에서 아이들과 누리는 사랑을 어떤 빛깔로 그릴 때에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싱글벙글 떠올립니다. 4346.9.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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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엉망진창이지만, 책은 아름답기에 별 다섯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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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병정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56
폴 페렙트 글 그림, 조수경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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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9

 


누가 일으키는 싸움인가
― 작은 병정
 폴 페렙트 글·그림
 조수경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4.4.30. 7500원

 


  엊저녁 올해 들어 첫 반딧불이를 보았습니다. 반딧불이는 늘 살아서 돌아다녔을 테지만 그동안 내가 알아보지 못했을 테고, 엊저녁 비로소 알아보았으리라 생각해요.


  새까만 밤입니다. 반딧불이는 논자락을 살포시 날아갑니다. 꽁지에 불을 밝히고 조용히 날아갑니다. 올들어 여름비 거의 안 내리고 바람조차 거의 안 불면서 메로(멸구)가 엄청나게 끓는다면서 마을마다 집집마다 농약을 어마어마하게 뿌렸어요. 날이면 날마다 마을에 농약바람이 흘렀습니다. 마을 빨래터나 흙도랑에서 다슬기를 곧잘 찾아보지만, 다슬기는 보더라도 반딧불이는 좀처럼 안 보였어요.


  어쩌면 다슬기는 사람들 눈길과 발길에서 벗어날 만한 자리에 아주 조용히 숨어서 지냈을는지 모릅니다. 사람만 살겠다는 이곳에서 꽁꽁 숨죽이면서 삶을 가까스로 버티었을는지 모릅니다.


  우리 집 풀밭에서 살아가는 개구리와 풀벌레도 힘겹게 이녁 삶 버티었겠지요. 먹이가 송두리째 사라질 뿐 아니라, 어쩌다 있는 먹이도 농약에 해롱거리다 죽은 먹이입니다. 개구리가 몸을 적실 논물은 농약바다입니다. 살갗으로 숨을 쉬는 농약바다인 논에 몸을 들이밀었다가는 그예 타죽습니다.


..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  (3∼4쪽)


  어느덧 가을걷이철입니다. 시골 들판은 누런 빛이 물결을 이룹니다. 시골 흙지기는 나락알이 잘 익기를 바랍니다. 참새는 무리를 지어 이 들판 저 들판 날아다니며 낟알이 떨어지면 훑어먹으려고 바쁩니다.


  먼먼 옛날부터 참새가 낟알 훑어먹는 모습을 달가이 여긴 시골 흙지기는 드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새는 낟알만 훑어먹지 않아요. 사람들이 집에서 키우는 닭도, 들에서 살아가는 참새도, 애벌레와 풀벌레를 몹시 잘 잡아서 먹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일구지 않는 빈 풀밭이 자꾸 줄고, 찻길이 늘며, 들판에서 살아남는 풀벌레가 몹시 드뭅니다. 닭은 사료를 먹습니다. 참새는 애벌레도 풀벌레도 못 먹으며 낟알이나 씨앗을 훑으려고 합니다. 언제부터 실타래가 이리 꼬였는지 모르되, 새들은 ‘시골사람 흙짓기’를 괴롭히는 모양새가 되고 맙니다.


  오랜 옛날부터 함께 살아오면서 이웃이 되었고 동무가 되었던 새들인데, 어느 무렵부터 사람과 새는 서로 모진 맞수가 됩니다. 사람들은 총으로 새를 쏘아 죽입니다. 사람들은 독약 묻힌 쌀알 놓아 새를 말려 죽입니다. 사람들은 덫을 놓아 잡아 죽입니다.

 

 


.. 많은 병사들이 죽어 갔습니다. 나는 살아남았고, 너무나도 끔찍한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전쟁이 끝났습니다 ..  (10∼11쪽)


  벨기에사람 폴 페렙트 님이 빚은 그림책 《작은 병정》(시공주니어,2004)을 읽습니다. “작은 병정”이란 “어린이”입니다. 그림책 《작은 병정》에 나오는 ‘군인’은 ‘어른’ 아닌 ‘어린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누군가(틀림없이 어른일 테지요)’ 일으킨 싸움 때문에 ‘아이들’이 싸움터로 끌려갑니다. 아이들은 누가 왜 ‘적군’이 되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저 ‘누군가(틀림없이 권력과 돈 거머쥔 어른들일 테지요)’ 이 아이들을 긁어모아 군인옷 입히고 총칼을 들리고 싸움 훈련 시켜서 싸움터로 내보냈으니,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곳이니, 죽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칼로 찔러 죽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작은 병정”은 서로 왜 미워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미워하면서 싸웁니다. 곰곰이 따져, 그림책 바깥인 우리 삶터를 보자면, 오늘날 이 땅 아이들은 동무들을 왜 서로 미워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입시전쟁을 치릅니다. 시험점수를 놓고 동무도 이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무이건 이웃이건 모두 밟고 올라서도록 배우고 길듭니다.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 같은 데에서는 ‘이웃사랑’을 말하고, 신문이나 방송 같은 데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외치지만, 정작 아이들은 학교에서 동무와 이웃 괴롭히며 짓밟는 삶을 배웁니다. 대학교를 앞에 놓고 시험점수로 싸워요.


.. 나는 그저 예전과 변함 없이 살고 있고, 더 이상 전쟁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어도 잠들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  (21∼22쪽)


  싸움은 누가 일으키는가요? 네, 어른이 일으킵니다. 권력을 거머쥔 어른이건, 돈을 거머쥔 어른이건, 싸움은 모두 어른이 일으킵니다. 그리고, 권력이나 돈이 없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권력과 돈 있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 휩쓸리는 여느 어른들이 다 함께 싸움을 일으킵니다. 올바르지 않을 뿐더러 아름답지 않은 싸움인 만큼, 어떤 싸움도 일어나지 않게끔, 여느 어른들 스스로 마을과 나라를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지키면서 가꾸어야 마땅해요. 우리 삶터에 착하고 참다우며 맑은 기운이 넘치도록 여느 어른들 모두 즐겁고 씩씩하게 힘을 쏟아야 마땅해요.


  입시교육이 아닌 사랑교육을 해야 옳습니다. 시험문제 외우도록 내모는 참고서와 문제집을 아이들한테 사 주어서는 안 되고, 이런 참고서와 문제집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삶을 밝히고 사랑을 북돋우는 이야기책을 빚어 아이들이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함께 들일과 바닷일과 숲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꿈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이, 싸움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전쟁이나 싸움을 일으키는 어른들부터 어릴 적에 참답게 사랑받지 못한 탓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오늘날 어른들처럼 똑같이 사랑 못 받는 채 자란다면,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되어 ‘오늘날 어른과 똑같은 모습’으로 더 모진 전쟁이나 싸움을 일으키고 맙니다. 이제라도 어른들은 우스꽝스러운 싸움짓을 그치고, 사랑놀이와 사랑살이를 일구어야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4346.9.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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