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어디 가요? 쑥 뜯으러 간다! - 옥이네 봄 이야기 개똥이네 책방 4
조혜란 글.그림 / 보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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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8

 


시골살이 즐거운 사람들
― 할머니, 어디 가요? 쑥 뜯으러 간다!
 조혜란 글·그림
 보리 펴냄, 2009.3.15. 11000원

 


  한가위를 앞두고 마을마다 새벽에 마을방송 흐릅니다. 모두들 바쁘실 테지만 새벽에 살짝 나와서 회관이나 마을길 청소하자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마을청소는 한가위와 설을 앞두고 으레 하고, 두 명절이 아닌 여느 때에도 가끔 합니다. 우리 식구는 마을청소 이야기가 나오면 청소를 하기 하루나 이틀쯤 앞서 마을 빨래터를 치우려고 아이들과 함께 나옵니다. 마을 빨래터 청소는 으레 할머니 몫인데, 빨래터 바닥에 낀 물이끼를 벗기고 물을 퍼내면서 둘레를 청소하는 일이 여러모로 허리가 쑤십니다.


  지난날에는 모두 마을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길었어요. 집집마다 땅밑물을 따로 파서 마시거나 쓰는 요즈음은 집안에 빨래기계까지 두고 따로 빨래를 합니다. 지난날에는 모든 집이 빨래터에 나왔고, 날마다 빨래터가 복닥거리며, 아이들이 이 둘레에서 놀 적에는 빨래터 바닥에 물이끼 낄 일이 없습니다. 따로 누가 청소를 하러 나와야 하지도 않습니다.


  시골마을에 젊은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시골마을에 남은 할매 할배 등이 굽으면서, 시골마을 빨래터는 쓸쓸합니다. 빨래터 찾는 사람 없이 쓸쓸하니, 빨래터는 물이끼를 부릅니다. 빨래터 곁 배롱나무는 볼그스름한 배롱꽃을 자꾸 떨굽니다. 물이끼 둘레에는 다슬기가 살아갑니다. 다만, 요새는 다슬기 잡아먹는 반딧불이를 찾아보지 못해요. 다슬기는 있지만 반딧불이가 없습니다.


.. 옥이는 방바닥을 두드리며 소리 지르다 지쳐 잠이 듭니다. 옥이가 잠든 사이, 할머니는 옥이 옆에 접시를 놓아두고 나갑니다. 맛난 냄새가 솔솔 납니다. 벌떡 일어난 옥이 눈앞에 쑥개떡 두 개가 보입니다. 옥이는 허겁지겁 쑥개떡을 먹어치우고, 빈 접시를 내려다봅니다 ..  (5쪽)

 


  한가위를 맞는 시골에서 마을길 풀을 베지만, 예전에는 어떠했을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1950년에는, 1900년에는, 1800년에는, 1700년이나 1500년에는, 또 500년이나 300년 옛날 옛적에는, 한가위를 앞두고 마을마다 어떤 일을 하느라 부산했을까 하고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그무렵에는 마을길에 풀을 벤다고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로 떠난 딸아들’이란 오늘날에만 있지, 옛날에는 없어요. 옛날에는 한가위나 설에 ‘시골집으로 돌아올 딸아들’이 따로 없어요. 그러나, 옛날에는 군역이나 부역 때문에 나라에 아들을 보내야 한 집이 있었습니다. 궁궐을 새로 짓거나 서울 둘레에 성벽을 쌓거나 병졸 부역을 해야 하던 시골마을 젊은 사내는 한가위라 해서 시골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옛날에는 이런 살붙이를 기다렸을 테지만, 오늘날처럼 ‘아예 도시에서 집을 장만하고 아이들 낳아 돌보는 딸아들’은 없었습니다.


  마을마다 가을걷이와 가을일 서두르고, 온통 잔치를 맞이하는 노래로 떠들썩했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부지깽이와 함께 어버이 일을 힘껏 거들면서도, 틈틈이 고샅을 쏘다니면서 놉니다. 어른들은 쉴새없이 일하면서도 아이들한테 선물할 무엇인가를 조용히 마련합니다.


.. “쑥아, 쑥아, 어디 있냐? 쑥쑥 나오거라.” 옥이는 쑥을 부르고, 할머니는 코를 벌름거립니다. “아이고, 쑥 냄새가 좋구나, 좋아.” 할머니 손이 바빠집니다 ..  (8쪽)

 


  가을날 쑥대에서 쑥꽃이 핍니다. 쑥꽃은 쑥잎처럼 푸른 빛이 감돌면서 천천히 몽우리를 맺습니다. 쑥꽃이 필 무렵 쑥잎은 모양새가 바뀝니다. 고들빼기가 꽃송이 피울 무렵 잎사귀 크기가 줄며 꽃송이한테 모든 기운을 쏟듯, 쑥도 꽃을 피울 적에는 모든 기운을 꽃한테 쏟으며 잎사귀 크기가 줄어요.


  다른 들풀을 하나하나 살피면, 꽃을 피울 적부터 잎사귀 모양이 바뀌어요. 꽃이 지고 열매와 씨앗을 맺으려 하면 잎사귀 모양과 빛이 또 바뀝니다. 이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니 겨울나기를 해야 하거든요. 씨앗이 겨우내 흙 품에서 잘 잠들었다가 봄부터 씩씩하게 깨어나기를 바라거든요.

  봄에 쑥쑥 돋는 쑥을 비롯한 풀은 봄내를 물씬 풍기는데, 봄나물에서 풍기는 봄내음이란 ‘겨울을 지낸 내음’입니다. 저마다 겨울을 얼마나 씩씩하고 튼튼하게 이기면서 지냈는가에 따라 봄빛과 봄내음이 달라요. 코딱지나물도 쑥도 미나리도 민들레도 냉이도 씀바귀도 달래도 꽃다지도, 겨울을 아련히 떠나 보내면서 싱그러이 맞이하는 봄노래를 들려줍니다.


  가을 앞두며 꽃 피우는 쑥풀은 이제부터 맞이할 겨울에 즐겁게 겨울잠을 잘 수 있도록 봄부터 가을까지 머금은 햇볕과 빗물과 바람을 씨앗 한 톨에 알뜰히 건사하려 합니다. 아주까리도 까마중도 바쁩니다. 강아지풀도 억새풀도 부산합니다. 정구지도 모시풀도 바지런합니다. 저마다 바쁘게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습니다.


.. “할머니, 이거 다 채우면 뭐할 거예요?” 쑥개떡 판 돈이 담긴 꿀병을 보면서 옥이가 묻습니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만 냅니다 ..  (18쪽)

 


  봄날 봄빛을 이야기하는 조혜란 님 그림책 《할머니, 어디 가요? 쑥 뜯으러 간다!》(보리,2009)를 읽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어머니나 아버지 없이, 또 할아버지도 없이, ‘옥이’라는 아이가 할머니하고 단둘이서 살아갑니다.


  어린 옥이는 어머니나 아버지 없어도 할머니하고 신나게 놉니다. 할머니는 어린 옥이를 늦은 나이에도 돌보아야 하지만 얼굴 한 번 안 찡그립니다. 할머니와 옥이는 서로 어버이와 아이가 되고, 또 동무가 됩니다. 한솥밥을 먹습니다. 때때로 할머니는 교사가 되어 옥이한테 들과 숲과 나무와 풀과 바람과 햇살을 가르쳐 줍니다. 옥이는 언제나 학생이 되어 할머니한테서 밥과 옷과 집과 마을을 찬찬히 배웁니다.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며 일하고, 옥이는 노래를 부르며 놉니다. 두 사람은 조그마한 시골마을 조그마한 시골집에서 사랑을 꽃피우는 어여쁜 삶을 실컷 누립니다.


.. “장에 가는 길에 팔아다 주소.” 홍택이 할머니, 모래 할머니, 영식이 할머니가 가죽나무 순, 옻나무 순, 두릅을 한 다발씩 들고 옵니다. 옥이가 지푸라기를 모아 오니, 할머니가 솜씨 좋게 엄마나 순 다발을 엮습니다. “요만큼은 우리 옥이 반찬이다!” ..  (28쪽)

 


  설이나 한가위에 고속도로며 기찻길이며 꽁꽁 막힙니다. 설이나 한가위를 앞두고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자동차가 어마어마한 물결을 이룹니다. 마치 너울과 같습니다. 설이나 한가위를 지나면, 시골에서 도시로 돌아가는 자동차가 새삼스레 너울을 이룹니다.


  설이나 한가위라는 큰 명절이니까, 이렇게 시골집을 찾아간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집에서 지내는 시골살이가 즐겁다면, 다시 시골로 돌아가 어린 마음 되어 시골살이 누릴 때에 훨씬 아름답습니다. 회사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과 문화와 복지 때문에, 또 무엇무엇 때문에, 대학교와 공부 때문에,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모두 도시로, 아니면 서울로 가려고 합니다만, 참말 시골에서는 아무것을 못 이룰까 궁금합니다. 돈을 버는 까닭은 무엇이고, 공부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명절에 시골로 찾아오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요.


  우리들 살아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시골에 남은 늙은 할매와 할배를 찾아오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가을걷이는 왜 하고, 모내기는 왜 할까요. 풀베기는 왜 하고, 나물뜯기는 왜 할까요.


  요즈음 시골을 보면, 노래하며 일하는 분이 매우 드뭅니다. 할배들이 경운기나 짐차를 몰 적에 노래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굽은 등허리 건사하기 벅차니, 노래가 나오기 어려울 만합니다. 경운기와 짐차 구르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우니, 노래를 불러도 안 들릴 만합니다.


  그러면, 도시에서 공장에 다니고 회사에 다니며 공무원으로 한 자리 차지하는 분들은, 이녁이 일하는 곳에서 스스로 얼마나 콧노래를 부르거나 목청껏 일노래를 부를까 궁금합니다. 대통령이나 시장 군수 국회의원은 즐거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면서 일하나요. 의사와 판사는 노래를 추고 어깨춤 들썩이며 일하나요.


  노래가 있는 삶이 싱그럽고 아름답습니다. 나물을 캘 적에 나물노래를 불렀고, 빨래를 할 적에 빨래노래를 불렀고, 아기를 재우거나 젖을 물리며 자장노래를 불렀고, 모를 내며 모내기노래를 불렀고, 풀베기나 벼베기를 할 적에 풀노래나 벼노래를 불렀고, 짚신을 삼으며 짚신삼기노래를 불렀고, 지붕을 이으며 지붕잇기노래를 부르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내내 온통 노래였고 춤이었으며 웃음이던 시골살이입니다.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래를 불렀어요. 즐겁게 살아가다 보니 저절로 노래가 흘렀어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풀벌레가 노래를 부릅니다. 한가위를 앞두고 태평양 건너 따뜻한 나라로 돌아간 제비들은 하루 내내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꾀꼬리도 소쩍새도 노래를 불러 주지요. 참새가 나락을 훑는다 하지만 참새도 노래를 불러요. 개구리도 맹꽁이도 두꺼비도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마을이 아름답거나 살아가기 즐겁다면, 바로 노래가 흐르는 삶터요, 노래가 빛나는 이야기터이기 때문입니다. 4346.9.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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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16 11:47   좋아요 0 | URL
이 그림책도 무척 재미날 것 같아요~!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3-09-16 14:03   좋아요 0 | URL
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권이 한 짝이랍니다.

이야기를 구성지게 잘 풀었어요.
다만, 그림은 군데군데
아직 엉성하답니다.

이를테면 제비 그림을 보시면...
제비는 저런 '파란빛'이 아니에요 ^^;;;;;
제비뿐 아니라 여러모로 아쉬운 그림결이 많이 드러나는데,
이만큼 그리는 화가가 아직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느낌글에서는
이런저런 '아쉬운'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적었어요.

앞으로 화가 스스로 잘 느끼고 깨우쳐서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믿어요.
 
고고와 하얀 아이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7
바르브루 린드그렌 지음, 안나 회그룬드 외 그림, 최선경 옮김 / 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5

 


재미있게 살아가는 길
― 고고와 하얀 아이
 안나 회그룬드·이사도라 회그룬드 그림
 바르브루 린드그렌 글
 최선경 옮김
 보림 펴냄, 2009.5.12. 9200원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밥차리기를 곁눈질하고 설거지를 구경합니다. 아이들도 도마질을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도 수세미로 그릇을 부시고 싶습니다.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은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함께 쓸고 닦으면서 집안을 누비고 싶습니다.


  대청마루에 앉아 책을 펼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도 책을 가지고 와서 대청마루에 앉습니다. 마당 평상에 드러누워 후박나무 그늘을 누리며 하늘바라기를 하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도 마당 평상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고 싶습니다.


  들길을 천천히 걷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도 나란히 걷습니다. 아이들은 나란히 걷다가 이내 달립니다. 저 앞까지 달렸다가 이리로 달려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달리고, 춤을 추면서 달립니다.


  자전거를 타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도 자전거를 달리고 싶습니다. 노래를 흥얼흥얼 읊는 어버이 곁에서 아이들도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삶과 넋과 꿈을 사랑스럽게 물려받습니다.


.. 펠레 아빠는 선장이야. 아주 커다란 배의 선장이지. 어느 날 아빠가 말했어. “이번에는 아주 머나먼 나라로 가는데, 따라오련?” 펠레는 날아갈 듯 기뻤어. 얼른 가방을 챙겼지 ..  (2쪽)

 


  먼먼 옛날부터 여느 어버이는 모두 시골사람이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1960년대에 정치권력자가 새마을운동을 일으키면서 ‘도시에 있는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시골사람이 고향을 떠나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래도, 이무렵까지는 아직 시골사람이 더 많았고, 1970년대까지도 시골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를 넘어서고 1990년대가 되는 사이, 시골사람은 부쩍 줄었고, 2000년대와 2010년대를 지나니, 시골사람은 아주 크게 줄어 1퍼센트가 될까 말까 합니다.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먼먼 옛날부터 여느 어버이인 시골사람은 이녁 아이들한테 먹는 풀과 안 먹는 풀을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먹는 풀은 즐겁게 먹고, 안 먹는 풀로는 실을 얻거나 바구니를 짜거나 새끼를 꼬았습니다. 가을걷이 마친 나락에서 알은 훑고 짚은 잘 건사해서 새끼를 꼬았어요. 겨울나기를 앞두고 시래기를 마련합니다. 무를 묻고 배추를 묻습니다. 고구마를 아랫목에 들이고 감자를 웃목에 둡니다. 콩을 삶아 메주를 띄웁니다. 봄부터 바지런히 모아 놓은 나무는 틈틈이 패어 장작으로 갈무리합니다. 바느질을 하고 베틀을 밟습니다.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합니다. 물을 긷고 젖을 물립니다. 자장자장 노래를 부르고, 조그마한 방에 둘러앉아 옛이야기를 도란도란 주고받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1960년대 언저리까지, 이 나라 여느 시골마을 여느 살림집에서는 언제나 한식구가 함께 움직였어요. 함께 일하고 함께 놀며 함께 먹고 함께 쉬었습니다. 어버이가 따로 아이를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버이 매무새에서 삶을 배우고, 아이들은 따로 어버이한테서 배운다고 나서지 않아도 어버이 말씨와 몸씨와 마음씨에서 꿈과 사랑을 이어받습니다.


.. 고고는 펠레의 손을 잡고 숲으로 갔어. 펠레는 무섭지 않았어. 텔레비전에서 고릴라를 본 적이 있었거든. 동물들이 멈춰 서서 펠레를 구경했어. 하얀 아이를 처음 봤으니까 ..  (13쪽)

 


  그림책 《고고와 하얀 아이》(보림,2009)를 읽습니다. 스웨덴 어느 마을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이’가 나옵니다. 아버지는 배를 모는 사람입니다.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멀디먼 뱃길을 함께 나섭니다. 그러다가 큰 물결을 만납니다. 너울너울 몰아치는 물결에 그만 아버지와 아이는 갈라집니다. 아이는 먼저 어느 섬에 닿습니다. 어느 섬에 닿은 아이는 ‘고릴라 고고’를 만납니다. 고릴라 고고는 스웨덴에서 온 ‘하얀 아이’를 알뜰히 아낍니다. 둘은 서로를 아끼며 보살피는 살가운 동무이자 한식구 됩니다.


  이윽고 아이 아버지가 나타납니다. 아이 아버지는 그동안 아이를 찾아다녔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난 아이는 몹시 기쁩니다. 그런데, 아이는 기뻐도 고릴라 고고는 슬픕니다. 둘은 헤어져야 할 판입니다.


.. 펠레는 기뻤어. 하지만 고고는 아주 슬펐지. 펠레와 아빠가 가는데, 고고는 울고 또 울었어. 펠레도 아빠도 떠나기 싫어졌어. “우리 돌아가요, 아빠.” 펠레가 그랬어 ..  (21쪽)

 


  아이도 아버지도 망설입니다. 작은 섬에서 두 사람을 살뜰히 아끼는 고릴라 고고를 모른 척 놔두고 스웨덴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은, 아니 셋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버지는 배를 몰아 스웨덴으로 돌아가는 길을 고릅니다. 아이는 뱃머리를 꺾어 섬에 남는 길을 고릅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고른 길로 함께 가기로 합니다. 처음 스웨덴을 떠나 배를 몰 적에, 아이는 아버지 말을 따라 먼 나들이를 나섰는데, 이제 아버지는 아이 말을 따라 섬에 남기로 합니다. 아이는 한껏 자랐습니다. 아이는 몸과 마음이 부쩍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이녁 아이가 어느새 홀로서기를 할 만큼 씩씩하게 자란 모습을 깨닫습니다. 다만, 아직 어린이인 터라 아이를 홀로 두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배를 모는 아버지도 고릴라 고고랑 섬에서 놀고 어울리는 삶이 무척 즐겁습니다. 아이도 아버지도 ‘즐거운 삶’을 누리자고 생각해요.


  이 길과 저 길이 있다면 어느 길로 가야 할까 망설일밖에 없어요. 그러면 가만히 마음을 기울여 보셔요. 즐겁게 누릴 삶을 생각하고, 재미있게 빛낼 삶을 생각해요.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 새롭게 살아가는 길을 생각해요.


  섬에 남아서 살아가는 아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겠지요. 가끔 배를 타고 스웨덴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학교를 다닐 수 없습니다. 섬에서 고릴라와 살아가며 노는 아이는 풀과 나무와 흙과 해와 비와 바람을 차근차근 배우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삶을 짓고, 스스로 삶을 노래하는 길을 익힙니다.


  우리 어버이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면서 살아가는지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야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어버이들은 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을 빼고, 집에서 아이들한테 무엇을 몸소 보여주거나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노래를 배워야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랑을 배워야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배워야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을 배워야 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무엇을 하는가요? 우리 어른들은 집에서 어른 스스로 무엇을 누리는 나날일까요? 4346.9.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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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고 지고! : 자연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1
박남일 지음, 김우선 그림 / 길벗어린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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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4

 


한국말을 못 배우는 요즘 아이들
― 뜨고 지고,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1·자연
 박남일 글
 김우선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2008.10.9. 11000원

 


  초·중·고등학교에서 ‘국어’ 과목을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교과목인 ‘국어’ 수업 진도를 나갈 뿐, 한국말을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국어’라는 낱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제국주의 정치권력자가 이웃나라를 억누르면서 쓴 한자말입니다. 그무렵 일본제국주의 정치권력자는 ‘일본말’이 바로 ‘나랏말’이라는 뜻에서 ‘國語’라고 적었어요. 예나 이제나 중국에서는 ‘중국사람이 중국말을 가르칠 적’에 ‘中國語’라 하지 ‘國語’라 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오늘날에도 ‘國語’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한국사람은 지난날 ‘조선어’라 적었고, 이제는 ‘한국어’ 또는 ‘한국말’이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가르칠 과목에서도 ‘국어’ 아닌 ‘한국말’이나 ‘한국어’로 적어야 올발라요.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꾼 까닭을 생각할 노릇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천황폐하 섬기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일본사람이 쓴 한자말 ‘國民’을 오늘날까지 이 나라에서 쓸 수 없는 노릇이라고 뜻있는 분들이 힘있게 외쳤어요. 그래서 이제는 ‘초등학교’라는 이름을 써요. 그러니까, ‘국민’을 비롯해 ‘국어·국가(國歌)·국조(國鳥)’ 같은 일제강점기 찌꺼기를 하나하나 털거나 씻을 수 있어야 합니다. 털거나 씻을 말은 털거나 씻을 적에 아름답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즐겁고 슬기롭게 쓰던 말마디를 살피고, 오늘날 우리들이 예쁘며 사랑스레 살려쓸 말마디를 톺아볼 때에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 해는 또 세상을 따뜻하게 해 줘. 햇빛은 밝고, 햇볕은 따사롭지. 따사한 햇볕에 ‘해바라기’를 하면 기분이 좋아. 겨울날 드는 햇볕은 따뜻해서 고맙고, 여름날 내리쬐는 햇볕은 뜨거워서 싫어 ..  (10쪽)

 


  ‘한글’은 한국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으레 아이들한테 한글을 일찍 가르쳐서 깨우치려고 애씁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한테 한글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집에서 어버이들이, 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이,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올바르거나 슬기롭게 가르치지 못해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 여덟 살 무렵에 한글을 처음으로 배워도 됩니다. 한글은 아홉 살이나 열 살에 배워도 됩니다. 그러나, “말을 담는 그릇”에 앞서 “마음을 나타내는 말”을 제대로 배워야 해요. 열 살 어린이도, 여덟 살 어린이도, 다섯 살 어린이도, 두어 살 아기도 한국말을 제대로 배워야 하고, 참답게 배워야 하며, 슬기롭게 배워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한국말을 제대로 참답게 슬기롭게 가르치도록 먼저 알뜰살뜰 한국말을 익힐 노릇입니다. 어른 스스로 한국말을 제대로 못 쓰면, 아이한테 한국말을 제대로 못 가르쳐요. 어른 스스로 한국말을 참답게 안 쓰면, 아이한테 한국말을 참답게 못 보여줘요. 어른 스스로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꾸며 보살필 줄 알아야, 아이가 스스로 한국말을 새롭고 맑게 가꾸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말 지식이 아닌 ‘말’을 사랑스레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른들은 여느 삶자리에서 이녁 마음을 나타낼 말을 사랑스레 써야 합니다. 아이들은 책상맡에서 말을 배우지 않아요. 삶자리 어디에서나 말을 배워요. 어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스레 생각하고 사랑스레 말하면서 사랑스레 삶을 일구어야 합니다. 말은 삶이고, 삶은 말로 드러납니다.


.. 달도 차면 기울어. 보름달은 점점 기울어 반달이 되고, 반달이 조각달 되고, 조각달은 다시 그믐달이 되지 ..  (17쪽)

 


  한국말로 생각은 ‘생각’을 비롯해서 ‘셈’이 있으며, ‘어림’이 있습니다. ‘꿍꿍이’라든지 ‘속셈’도 있어요. 생각하는 결과 무늬에 따라 ‘살피다·헤아리다·보다·여기다·톺아보다·돌아보다·되새기다·짚다·그리다·곱새기다·떠올리다·돌이키다’ 들이 있어요. 궂은 일을 생각할 적에는 ‘근심·걱정·끌탕’이 있지요. 어렵거나 아픈 일을 생각할 적에는 ‘안타깝다·안쓰럽다·아쉽다’가 있으며, ‘슬프다·구슬프다·애처롭다’로 이어집니다. 힘든 이웃을 바라보면서 ‘불쌍하다·가엾다·딱하다’ 하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기울입니다. 이 나라 여느 어버이들은 이녁 아이들한테 이와 같은 ‘생각 말밭’을 얼마나 알뜰살뜰 들려주거나 알려주는가요. 이 나라 여느 학교 교사들은 아이들한테 이러저러한 ‘생각 말꾸러미’를 얼마나 제대로 이야기하거나 밝히는가요.


  ‘창피하다’와 ‘부끄럽다’가 서로 어떻게 다른가를 아이들한테 들려주지 못한다면, ‘두렵다’와 ‘무섭다’를 어떻게 다른 자리에 쓰는가를 아이들한테 보여주지 못한다면, ‘돌보다’와 ‘보살피다’가 사뭇 다른 말느낌을 아이들한테 알려주지 못한다면, 이 나라 어버이와 교사는 어른답게 한국말을 쓴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살짝·슬쩍·살며시·슬며시·살그머니·살그마니·슬그머니’를 저마다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알맞나 하는 대목을 이 나라 어버이와 교사는 얼마나 찬찬히 밝히거나 보여줄까 궁금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이 나라 어른들은 ‘한국사람’이지만 ‘한국말’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모르는 채 아이들을 낳아 ‘한국사람 되는 한국말 쓰기’를 조금도 못 가르친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제대로 못 쓴다면, 영어를 배우거나 일본말을 배우거나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요.


.. 모낼 무렵에 고맙게도 비가 내렸어. 그럼, 꼭 필요할 때 내렸다고 목비. 가슴과 머리를 잇는 사람 목처럼, 농사철에도 중요한 ‘목’이 있지. 바쁜 봄에 내리는 비는 비를 맞더라도 일하라고 일비. 덜 바쁜 여름철에 내리는 비는 집에서 낮잠이나 자라고 잠비. 추수 끝난 가을에 내리는 비는 떡 해 먹는다고 떡비 ..  (29쪽)

 


  한국말을 못 배우는 요즈음 아이들은 삶을 못 배우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말이란 삶에서 태어나기에, 삶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니 말을 제대로 못 배우는 셈입니다. ‘풀’이라는 낱말과 ‘하늘’이라는 낱말을 생각해 보셔요. 이 낱말은 누가 어떻게 지었을까요. 풀빛은 무엇이고 하늘빛은 무엇일까요.

  ‘누렇다’는 가을날 들판에 잘 익은 나락 빛깔에서 나왔습니다. ‘푸르다’는 골골샅샅 어디에서나 푸르게 돋는 풀 빛깔에서 나왔습니다. ‘파랗다’는 바다와 하늘이 해맑게 탁 트인 눈부신 빛깔에서 나왔습니다. ‘빨갛다’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붉게 익은 맛난 열매 빛깔에서 나왔어요.


  숲에서 나온 이 낱말들은 바로 삶에서 나온 낱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모두 숲에서 살았거든요. 옛날 사람들은 모두 숲에서 살림을 꾸리며 집을 짓고 옷을 지으며 밥을 지었어요. 집을 이루는 나무와 흙과 풀과 돌은 모두 숲에서 나와요. 옷을 짓는 실은 흙에서 자라는 풀포기에서 얻어요. 밥 또한 숲과 들에서 자라는 풀포기와 나무에서 얻은 열매입니다.


  이제 이 나라는 도시 물질문명 사회라 할 테니, 옛날처럼 ‘숲 = 삶’이자 ‘삶 = 숲’이던 누리하고는 달라, 한국말을 찬찬히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여길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참말, 요즘 널리 쓰이는 말치고 살갑거나 아름다운 한국말은 없어요. 새 손전화 기계, 새 공산품, 새로 짓는 아파트와 고속도로와 공장과 발전소는 모두 영어나 일본 한자말로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 겨레가 이 땅에서 오래도록 숲에서 삶을 지으며 누린 빛을 담는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하늘에서 내려온 물방울이 모여 졸졸졸 길 옆 도랑으로 흐르고, 도랑물 모여 골짜기 개울로 흐르고, 개울물 모여 들판의 내로 흐르고. 내는 모여 가람, 강이 되고 가람은 굽이굽이 바다에 이르지 ..  (47쪽)

 


  박남일 님이 쓰고 김우선 님이 그린 《뜨고 지고,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1·자연》(길벗어린이,200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쁘며 알찬 이야기그림책이 있군요. 우리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읽으며 한국말을 한결 고우며 슬기롭게 익히며 살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책으로뿐 아니라 교과서에서도 이렇게 한국말을 알맞게 견주고 모아서 살피면, 어린이도 어른도 한국말을 알뜰히 사랑하면서 살뜰히 살려쓰도록 맑은 빛이 되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펀펀하고 넓게 트인 들은 곡식과 들꽃이 자라는 기름지고 푸른 땅. 농부는 하루 종일 들에 나가 일을 하지. 넓고 펀펀한 벌은 풀도 나무도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40쪽).” 같은 이야기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들·벌’을 이렇게 이야기해도 될까 아리송합니다.


  ‘들’은 “푸른 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벌’을 꼭 “거친 벌”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비사벌’이나 ‘서라벌’이나 ‘달구벌’이나 ‘황산벌’ 같은 땅이름을 생각해 보셔요. 이런 이름을 붙인 고을은 “거친 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고을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들’은 시골을 이루면서 곡식과 푸성귀를 일구는 땅입니다. 들에 집을 짓고 마을이 되면 ‘시골’이에요. ‘벌’에도 집을 짓고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갈 수 있어요. 이렇게 벌에 집을 짓고 고을을 이루면 ‘서라벌’이나 ‘비사벌’처럼 새 이름이 붙어요. 요즈음으로 치면 ‘도시’를 가리키는 자리에 ‘-벌’을 붙여서 썼습니다. 도시는 시골과 달리 흙을 일구지 않고 풀과 나무를 돌보지는 않으니까, 언뜻 보기에는 “거친 땅”이라 여길 수 있지만, “풀과 나무를 심어서 돌보지 않을 뿐인 탁 트이며 너른 땅”이라고 해야 올바르다고 느껴요.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야기책이지만, ‘점점’이나 ‘것’이나 ‘-지다’나 ‘필요’나 ‘-의’ 같은 말투가 곳곳에 나타납니다. 이런 낱말과 말투를 굳이 이 이야기책에 써야 했나 싶어요.
  ‘부르다’는 “동무를 부르다”라든지 “별명을 부르다”처럼 쓰는 낱말입니다. “자연을 부르는 우리말”처럼 쓰지 않습니다. ‘가리키다’나 ‘일컫다’ 같은 낱말을 넣어야 올발라요.


  ‘신기(神奇)한’ 같은 한자말은 한자말이라 여기지 않아도 될 만하지만, 이런 낱말을 자꾸 쓰니까 ‘놀라운’이나 ‘남다른’이나 ‘새삼스러운’ 같은 한국말은 설 자리를 잃습니다. “모두 갯벌에 속(屬)하지” 같은 말투를 어른들이 퍽 자주 쓰는데, 어른들은 이런 말투를 쓰더라도 아이들한테 이런 말투를 들려주어야 하는지 생각할 일입니다. “모두 갯벌이지”나 “모두 갯벌이라 하지”처럼 써야 알맞습니다.


 바람이 점점 더 세게 불어 → 바람이 자꾸 더 세게 불어
 잎이 나는 걸 시샘해 부는 잎샘바람 → 잎이 날 적에 시샘해 부는 잎샘바람
 다디달게 느껴져서 단비 → 다디달게 느껴서 단비
 꼭 필요할 때 내렸다고 목비 → 꼭 바랄 때 내렸다고 목비
 는개보다 더 가는 건 안개 → 는개보다 더 가늘면 안개
 간밤에 도대체 어떤 비가 내린 걸까 → 간밤에 참말 어떤 비가 내렸을까
 우리가 사는 땅별의 핏줄기 → 우리가 사는 땅별을 살리는 핏줄기
 모두 갯벌에 속하지 → 모두 갯벌이지
 물때는 신기한 바다 시계지 → 물때는 놀라운 바다 시계지
 아름다운 자연을 부르는 어여쁜 우리말의 재미에
 → 아름다운 자연을 가리키는 어여쁜 우리말 재미에


  아이도 어른도 사랑스럽게 주고받을 말을 익히고 가꿀 수 있기를 빕니다. 어른과 아이는 서로서로 따사롭게 마주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아름다운 꿈으로 나아가는 말을 살찌울 수 있기를 빌어요. 박남일 님이 빚은 《뜨고 지고,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1·자연》은 사랑스러운 말길과 아름다운 글길을 빛낼 살가운 길동무 구실을 톡톡히 하리라 생각합니다. 고운 말이 흘러 고운 삶이 환하고, 맑은 말이 감돌며 맑은 넋이 눈부십니다. 4346.9.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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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콩! - 접시까지 온 콩 이야기 내인생의책 그림책 7
엄혜숙 옮김, 사이먼 리커티 그림, 앤디 컬런 글 / 내인생의책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4

 


콩을 먹는 사람들
― 콩콩콩! 접시까지 온 콩 이야기
 사이먼 리커티 그림, 앤디 컬런 글
 엄혜숙 옮김
 내인생의책 펴냄, 2009.10.7. 1만 원

 


  가을걷이를 앞둔 늦여름입니다. 마을마다 콩포기를 베어 길가에 널어 말리느라 바쁩니다. 볕이 좋을 적에 콩포기를 잘 말리고 콩을 털어야, 비로소 참깨를 베어 말릴 수 있고, 참깨를 베어 말리고 턴 뒤에, 바야흐로 나락을 베어 말립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커다란 밭이 있으면, 그런 데는 트랙터라는 기계를 써서 밭을 갈는지 모릅니다. 한국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경운기 앞자락에 연장을 붙여 천천히 밭을 갈곤 합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시골에서나 소한테 쟁기를 얹어 밭을 갈았어요.


  나락을 심을 적에는 모를 내어 볏모를 옮겨서 심지만, 콩은 나락처럼 기계를 써서 심기 어렵습니다. 아마, 미국이나 캐나다쯤 되면, 사람이 손으로 심지 않고 기계로 심을 수 있지 않으랴 싶어요. 이들 나라에서는 이녁이 먹을 콩이 아닌, 돈을 벌려고 내다 파는 콩을 심거든요. 커다란 기계를 쓰거나 일꾼을 많이 모아서 한꺼번에 엄청나게 짓고 엄청나게 다룹니다.


  이 나라 시골 할매와 할배는 도리깨도 쓰고 방망이도 쓰며, 경운기가 밟고 지나가도록 하면서 콩을 텁니다. 조그마한 짐수레에 무거운 돌을 얹어 이리 밀고 저리 밀면서 콩을 털기도 합니다. 조그마한 시골마을 조그마한 밭자락에서 거둔 콩은 이녁 스스로 먹고, 도시로 떠난 아이들한테 보내 줍니다. 손수 심고 손수 돌보며 손수 거두어 손수 갈무리합니다. 그리고 손수 밥을 지어 먹어요.


.. 트랙터가 넓고 넓은 밭을 갈았어. 농부는 콩을 가져와서, 밭에 꼭꼭 심었지 … 농부는 꼬투리를 까서 상자에 담아서 트럭에 싣고 콩공장으로 달려갔어 ..

 

 


  사이먼 리커티 님 그림하고 앤디 컬런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콩콩콩! 접시까지 온 콩 이야기》(내인생의책,2009)를 읽습니다. 영국에서 도시사람이 바라본 ‘콩을 심고 거두어 먹는’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입니다. 밝고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는구나 싶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콩이 좋아!” 하는 말마디로 마무리를 지으면서 콩이 얼마나 맛난 밥인가를 알려주려고 힘쓴 그림책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콩돌이와 콩순이가 “제발 한 번 먹어 봐! 콩은 맛있어.” 하고 말한대서 콩맛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궁금해요. 무엇보다, 콩을 익히거나 볶아서 차린 접시를 ‘꼬마 공주님’과 ‘꼬마 왕자님’ 앞에 차린다는 대목이 아리송합니다. 아이들은 ‘아이’일 뿐입니다. 아이들은 ‘공주’도 ‘왕자’도 아니에요. 다만, 영국사람이 그린 어린이책이니, ‘공주’이니 ‘왕자’이니 나올 법도 하구나 싶은데, 아무리 영국이라 하더라도, 그 나라에서 공주나 왕자가 된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영국에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여느 삶자리에서 수수하게 살아온 여느 ‘아이’일 텐데요.


.. 사람들은 꼬투리에서 콩을 골라서 봉지와 깡통에 담았어. 그리곤 콩을 꽁꽁 얼렸지. 콩은 온 세상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났어. 배로, 기차로, 비행기로 말이야 ..

 


  그림책 《콩콩콩! 접시까지 온 콩 이야기》에 나오는 콩은 여느 콩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모두 곡물재벌이 유전자조작을 해서 키우는 콩이겠지요. 들에서 들숨을 마시는 콩이 아니라, 유전자를 건드리고 농약으로 화학처리를 한 ‘식품’이겠지요.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농장에서는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기도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뙈기에 오직 한 가지 곡식만 심어서 거두려 하면, 이 한 가지 곡식을 빼고는 자라서는 안 될 테니까, 농약을 엄청나게 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에서는 ‘콩 농장에서 농약을 얼마나 어떻게 쓰는가’를 다루지 않습니다. 이 콩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모르겠지만, 사람 몸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그리고 지구별 푸른 숨결에 얼마나 이바지를 할는지 알 길이 없어요.


.. 말랑말랑하고 따끈따끈한 콩이 접시에 담겨, 꼬마 공주님과 꼬마 왕자님 앞에 놓였단다. 꼬마 공주님이 말했다. “난 콩 먹기 싫어!” ..

 


  손수 심고 돌본 뒤 거두어서 먹는 콩이 가장 맛있습니다. 호텔 요리나 레스토랑 요리가 되어야 맛있지 않습니다. 굳이 콩이 아니어도 날씨와 철을 살펴 요모조모 심고 돌보면서 거두면 삶이 즐겁습니다. 우리는 콩 한 가지만 먹지 않아요. 쌀도 보리도 밀도 수수도 서숙도 율무도 먹습니다. 상추와 시금치만 먹을까요? 깻잎도 고추잎도 먹고, 무청도 먹으며 푸른 배춧잎도 먹어요. 당근 뿌리도 맛있지만 당근 줄기도 맛있어요. 냉이 씀바귀 쑥도 맛나며, 고들빼기 지칭개 소리쟁이 비름나물 주홍서나물 젓가락나물 쇠뜨기 취나물 까마중잎 부추 코딱지나물 미나리 질경이 갯기름나물 모두 맛나요. 꽃 달린 갈퀴나물도 맛나고, 꽃 자그마한 꽃다지와 꽃마리도 맛납니다.


  모든 곡식과 풀은 햇볕과 바람과 빗물과 흙이 어우러지는 사랑으로 자라니, 어느 곡식이거나 풀이거나 모두 살갑고 아름답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도 화학농약을 뿌리지 않았어요. 심은 곡식과 푸성귀도 먹지만, 들에서 스스로 돋는 풀도 먹습니다. 그런데,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주 많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아예 도시에서 나고 도시에서만 살다가 도시에서 죽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보니, 흙도 숲도 들도 마을도 밥도 어떻게 이루어질 때에 아름다우면서 즐거운가를 잊기 일쑤예요.


  콩 한 알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봐요. 날콩 한 알 입에 넣고 오래도록 천천히 씹으면서 콩알에 깃든 숨결을 읽어요. 콩을 먹을 적에 콩은 내 몸이 됩니다. 내 몸이 된 콩이란, 나 스스로 콩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영양소 아닌 숨결인 콩을 헤아립니다. ‘한 끼니 밥’이면서 ‘온 삶’을 이루는 살뜰한 빛을 바라봅니다. 이 땅 어버이들이 그림책 《콩콩콩! 접시까지 온 콩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읽히기 앞서, 작은 꽃그릇 하나에 콩 석 알 심고는 언제나 들여다보며 차근차근 돌볼 수 있기를 빕니다. 4346.8.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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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빨간 우산 비룡소 아기 그림책 31
로버트 브라이트 지음, 김세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94

 


같이 놀고 함께 웃어요
― 내 빨간 우산
 로버트 브라이트 글·그림
 김세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5.9.22. 5500원

 


  깊은 밤, 큰아이가 아버지를 나지막한 소리로 부릅니다. “추워. 큰 이불 덮을래.” 큰아이는 이 나지막한 소리를 아버지가 들을 줄 알았을까요. 큰아이는 이렇게 나지막하게 말하기만 하면 큰 이불이 저한테 올 줄 알았을까요.


  꼭 한 마디요 낮은 목소리이지만, 내 몸은 이 말마디에 깨어납니다. 끙 하고 벌떡 일어나 큰 이불 어디로 갔는지 손으로 더듬더듬 찾습니다. 작은아이가 이리저리 뒹굴거리다가 저쪽까지 갔습니다. 작은아이도 이불로 덮어 주고서, 큰아이한테는 큰 이불 잘 펼쳐서 덮어 줍니다.


.. 내 빨간 우산을 가져가야지. 비가 올지도 몰라 ..  (2∼3쪽)


  아이들은 날마다 즐거운 놀이를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즐겁게 놀아요. 즐거운 놀이를 바라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새롭게 놀이를 찾아내거나 빚어내어 누립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재미난 이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재미난 이야기를 길어올려요. 재미난 이야기를 바라기에 늘 새삼스레 재미와 꿈 그득한 이야기를 스스로 빚으면서 누릅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바라며 하루를 열까요. 어른들은 어떤 꿈을 꾸면서 하루일을 붙잡을까요. 차분하게 맑은 생각을 가슴에 품으면서 아름다운 빛을 바라면, 이 아름다운 빛은 차분하고 맑게 이루어지는데, 어른들은 이러한 삶자락을 얼마나 깨달을까요.


  배고프네 밥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면 배가 고프니 밥을 먹습니다. 오늘도 출퇴근길 북적거리는 길에서 시달려야지, 하고 생각하면 출퇴근길 북적거리고 이 길에서 시달립니다. 재미나고 아름다운 책을 읽으며 하루를 열어야지, 하고 생각하면 날마다 새롭게 재미나고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면서 하루를 엽니다. 오늘은 어떤 즐거운 소리와 노래가 나한테 스며들까, 하고 생각하면 참말 이 생각 그대로 아침부터 즐거운 소리와 노래가 나한테 스며들어요.


.. 꼬꼬댁 암탉 세 마리, 암탉들아 어서 들어와 ..  (8쪽)

 


  나는 풀노래를 즐깁니다. 나는 나무노래를 사랑합니다. 나는 햇볕과 바람과 비와 흙이 반갑습니다. 그러니, 늘 풀을 꿈꾸면서 우리 집을 풀밭으로 꾸밉니다. 우리 집이 풀밭이 되니 숱한 풀벌레가 우리 집에 깃들어 살아갑니다. 풀벌레는 하루 내내 쉬잖고 풀노래잔치를 벌입니다. 풀노래가 언제나 몸과 마음에 감돌아요. 집안에서도 마당에서도 늘 풀노래를 듣습니다. 또한, 우리 집 나무들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며 뿌리와 줄기 굵어집니다. 오래지 않아 우리 집 나무그늘 한결 널따랗게 이루어지면서, 퍽 멀리에서도 우리 집을 ‘나무집’으로 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햇볕을 반기니 땡볕이 드리워도 땀을 후줄근히 쏟으면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바람을 반기니 살랑바람도 산들바람도 회오리바람도 모두 실컷 쐽니다. 비를 반기니 빗물이 우리 집 풀과 나무를 싱그럽게 먹여살립니다. 흙을 반기니 흙 한 줌 시나브로 고소한 내음 풍기며 기름지게 거듭납니다.


  삶에 빛을 드리웁니다. 저 먼 나라에 있는 하느님이 내 삶에 빛을 드리우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이 내 삶에 빛을 드리웁니다. 삶에 꿈이 감돕니다. 저 먼 나라에 있는 대통령이 내 삶에 꿈이 감돌도록 돕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내 삶에 꿈이 감돌도록 이끕니다.


.. 아기 여우 네 마리, 여우들아, 빨리 와 ..  (14쪽)

 


  로버트 브라이트 님 그림책 《내 빨간 우산》(비룡소,2005)을 읽습니다. 빨간 우산을 들고 나들이 나온 어린 가시내는 비가 오니 우산을 펼칩니다. 우산을 펼치며 걷다가 작은 짐승들을 만납니다. 작은 짐승들을 하나둘 불러 우산을 같이 쓰자고 얘기합니다. 이 짐승도 저 짐승도 나란히 우산을 씁니다. 나중에는 커다란 곰까지 우산을 같이 써요. 그러고는 서로서로 즐겁게 노래를 부릅니다. 같이 놀고 함께 웃습니다.


.. 우리 다 같이 노래 부를까? 비야, 비야, 내려라! 어서 어서 내려라 ..  (21쪽)


  조그마한 가시내 조그마한 우산에 이토록 많은 짐승들이 어떻게 깃들어 비를 긋느냐구요? 조그마한 가시내는 제 조그마한 우산에 이 많은 짐승들을 몽땅 건사해서 함께 비를 긋고 같이 놀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생각대로 이루어집니다. 숲짐승도 조그마한 가시내를 놀이동무로 삼고 반가운 나들이벗으로 여기니, 서로서로 흐뭇하게 웃으면서 놀 수 있어요.


  자, 아이들을 잘 살펴보셔요. 아이들은 사탕값이나 과자값을 따지지 않으면서 사탕을 달라느니 과자가 먹고 싶다느니 노래해요. 아이들은 옷값이나 밥값이나 집값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잠을 자요. 바라는 대로 누리고, 생각하는 대로 즐깁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가장 고우면서 맑은 사랑을 품어 보셔요. 가슴속에 가장 환하면서 아름다운 꿈을 품어 보셔요. 이 사랑과 꿈은 모두 이루어집니다. 따사로운 빛을 품으며 따사로운 눈빛이 되어요. 밝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밝은 살림살이 일구어요. 4346.8.2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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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28 09:42   좋아요 0 | URL
전에는 비가 오면 거리에서도 우산을 가진 사람이 비를 맞고 있는 사람과 짧은 거리라도
함께 우산을 쓰고 갔는데, 이젠 그런 모습 잘 볼 수 없네요..
이쁜 어린이의 빨간 우산 속이 한층 더 즐겁고 좋습니다~
오늘도 마음속에 가장 곱고 맑은 사랑으로 또 새로운 날을 살아야겠어요~*^^*

숲노래 2013-08-28 12:06   좋아요 0 | URL
네, 우산 함께 쓰는 사람은
이제 거의 볼 수 없어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