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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희네 집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
권윤덕 글 그림 / 길벗어린이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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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80

 


이야기가 숨쉬는 집
― 만희네 집
 권윤덕 글·그림
 길벗어린이 펴냄,1995.11.15./8500원

 


  옛날부터 사람들은 집을 지어서 살았습니다. 살붙이가 함께 지낼 집을 조그맣게 지어서 살았습니다. 집은 흙집이기도 하고 돌집이기도 하며 나무집이나 풀집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집이든 날씨와 터전에 맞추어 지었어요. 옛날에 살던 사람들이 지은 집은 숲과 들에서 얻은 흙과 돌과 나무와 풀로 지었기에, 오래도록 손질하고 고치면서 터를 지켰습니다. 이 집을 허물어 새로 지을 적에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숲에서 얻은 흙은 숲으로 돌아갑니다. 들에서 얻은 돌 또한 들로 돌아갑니다. 멧골에서 얻은 나무는 멧골로 돌아갑니다.


  옛날 옛적 사람들은 ‘새집 증후군’을 앓지 않습니다. 오래된 집이라서 나쁘지 않습니다. 숨을 쉬는 집이었고, 포근한 보금자리였으며, 아늑한 쉼터였습니다.


  옛날보다 아스라히 먼 옛날에는 사람들이 따로 집을 짓지 않고 살았으리라 느낍니다. 하늘이 지붕이 되고 땅이 이부자리가 됩니다. 풀이나 짚이나 잎이 이불이 되겠지요. 이무렵에는 숲에서 자라는 모든 풀이 밥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숲이 집이자 일터이고 놀이터 되면서, 모든 삶을 숲에서 이루었으리라 느껴요.


.. 만희네 집은 동네에서 나무와 꽃이 가장 많은 집입니다. 만희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개들은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만희를 알아봅니다 ..  (6쪽)

 


  집은 삶터입니다. 삶터인 집은 이야기터입니다. 숲이 집이었던 옛날 사람들은 숲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숲바람 마시면서 숲노래를 부릅니다. 숲내음 맡으면서 숲춤을 춥니다.


  예나 이제나 집은 삶터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집은 삶터보다는 부동산이나 재산이 됩니다. 부동산이나 재산이 되는 오늘날 집은 백 해나 이백 해나 오백 해나 천 해를 잇지 못합니다. 쉰 해조차 안 되었어도 헐어서 새로 짓습니다. 삶터 아닌 부동산이나 재산이 되면서, 오늘날 사람들 머무는 집에서는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합니다. 뚝딱 지었다가 와지끈 허무는데, 이런 데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해요. 집값을 따지고 부동산정책 쏟아지지만, 막상 집에서 식구들과 이야기를 누리지 못해요. 무슨무슨 아파트라는 이름이 붙고 어찌저찌 온갖 편의시설과 문화시설 갖춘다고 하지만, 정작 집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즐기지 못해요.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어요. 편의시설도 문화시설도 돈을 써야 누립니다. 돈을 써서 누리는 편의시설과 문화시설에서는 편의와 문화는 있을 테지만, 이야기는 깃들지 않아요. 돈벌이가 되거나 돈굴리기 되는 재산이나 부동산이 된다면, 이러한 건물에서 애틋하거나 살갑거나 구수한 이야기 한 자락 길어올리지 못해요.


  부엌이 어떻고 툇마루가 어떠하며 화장실이 몇 칸 있고 하는 겉모습을 따진대서 집이 살기 좋지 않아요. 이런 시설이 있다 해서 집에서 오순도순 사랑을 속삭이지 않아요. 서로 얼굴 마주볼 때에 이야기를 나누어요. 함께 밥을 먹을 때에 이야기를 나누지요.


.. 앞뜰 화단에는 접시꽃, 도라지, 해바라기, 나리, 분꽃, 홍초, 옥잠화가 모여 삽니다. 봄에는 하얀 목련과 붉은 모란과 라일락도 핍니다 ..  (18쪽)

 

 


  한칸짜리 달삯방이라 하더라도, 이불 나누어 덮으면서 알콩달콩 어울리는 데에서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조그마한 방 한 칸이라 하지만, 아이들이 복닥거리며 뛰노는 데에서는 이야기가 솟구칩니다. 지글지글 반찬 하는 냄새를 나누고, 보글보글 국 끓이는 소리를 나눕니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나누는 한편, 시골집에서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마다 다 다른 빛과 소리를 누려요.


  백 평쯤 되는 아파트라 하더라도, 열 평 마당이나 꽃밭 있는 시골집처럼 살가우며 따사로운 소리와 빛과 내음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백 평쯤 되는 고급빌라라 하더라도, 스무 평 마당이나 텃밭 있는 시골집처럼 햇볕 듬뿍 누리면서 싱그러운 나무그늘과 바람을 즐기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쿵쿵 뛰지 못하는 아파트에서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즐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쿵쿵 뛰지 못하는 아파트에서는 어른들도 목청 곱게 뽑아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피아노를 마음 놓고 못 치기도 하지만, 북이나 장구 또한 신나게 두들기지 못하지요. 무엇 하나 홀가분하게 누리지 못해요. 왜냐하면, 집이 아닌 재산이 되거나 부동산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집이라 할 때에는, 같이 일하고 같이 놀며 같이 쉽니다. 집이라 할 때에는, 언제나 조촐하게 잔치를 벌이고, 놀이판 이루며,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 밤노래를 들으면서 밤잠에 빠져들어요.


  이야기는 하늘에서 똑 하고 떨어지지 않아요. 이야기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서 뻥 하고 튀어나오지 않아요.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 가슴에서 샘솟아요. 이야기는 늘 우리들 마음에서 자라요.


.. 옥상 한쪽엔 빨랫줄이 있습니다. 햇볕이 좋은 날엔 엄마가 이불을 내다 넙니다. 만희는 부드러운 이불 속으로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닙니다 ..  (28쪽)

 


  권윤덕 님이 빚은 그림책 《만희네 집》(길벗어린이,1995)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만희네 집뿐 아니라, 골목동네 작은 집에는 꽃도 풀도 나무도 싱그러이 자랍니다. 흙땅 한 뼘조차 없어도 헌 그릇과 통에 흙을 옮겨담아 꽃을 키우고 풀을 기르며 나무를 돌봅니다. 게다가 옥상에서는 옥상텃밭을 이루면서 빨래 너는 터를 마련하지요. 조그마한 집 한 채가 드넓은 운동장 못지않게 재미난 놀이터 됩니다. 자그마한 집 한 곳이 우람한 건물과 아파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쉼터 됩니다.


  만희네 집은 골골샅샅 어디에나 있습니다. 도시에도 있고 시골에도 있습니다. 만희네 집은 아직 서울에도 제법 남았고, 인천이나 부산이나 대전이나 춘천에도 꽤 있어요. 시골에는 훨씬 살갑고 아름다운 ‘꽃집·풀집·나무집’이 있어요. 숲 곁에 깃든 넉넉하고 푸른 숲집도 있습니다.


  이들 꽃집에서는 언제나 웃음소리 퍼집니다. 이들 풀집에서는 늘 노랫소리 번집니다. 이들 나무집에서는 노상 사랑소리 울려요. 이들 숲집에서는 한결같이 꿈소리 흐르겠지요.


  재산이나 부동산을 사들일 마음 아닌,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가꾸는 손길 되면 좋겠어요. 목돈을 모아 큰도시 한복판 떵떵거리는 재산이나 부동산이 아닌, 푼돈이어도 좋으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숲터를 일구어 조그마한 살림집 돌보는 어른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줄 ‘집’이라면,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이야기집’이어야 한다고 느껴요.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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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된 아빠 살림어린이 그림책 20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노경실 옮김 / 살림어린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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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9

 


철없는 ‘큰 아기’
― 아기가 된 아빠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노경실 옮김
 살림어린이 펴냄,2011.4.20./1만 원

 


  ‘큰 아기’는 철이 없습니다. 몸은 커졌는데 마음은 커지지 않았으니 철이 없습니다. 몸은 크지만 마음이 크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광쟁이요 칭얼쟁이요 미련쟁이일까요. 몸은 작으나 마음이 쑥쑥 자란다면 얼마나 예쁘고 착하며 사랑스러울까요.


  철이 없는 ‘큰 아기’는 스스로 삶과 살림을 어떻게 돌볼 때에 아름다운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깨닫지 못한다기보다 깨닫지 않습니다. 아직 삶을 들여다보는 눈이 없고, 살림을 일구는 손이 없습니다.


  철없는 ‘큰 아기’인 터라 혼자서 개구지게 놀려고 할 뿐, 살붙이나 동무하고 살가이 얼크러지지 못합니다. 어리광을 부리고 칭얼거리며 미련스럽습니다. 참말 ‘다 큰 아기’가 되면 ‘아이를 돌보’는 일이라든지 ‘집안일 맡는’다든지 하는 데에는 젬병이에요. 철이 없어 저 혼자밖에 모르거든요. 철이 없기에 둘레를 찬찬히 살필 줄 모르거든요.


  철없는 ‘큰 아기’는 우리 둘레에 퍽 많습니다. 젊은 사내들만 서른 마흔 쉰 되도록 철없는 ‘큰 아기’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젊은 가시내들도 서른 마흔 지나 쉰 예순 되어도 철없는 ‘큰 아기’로 살곤 합니다. 요즈음은 그야말로 철없는 ‘큰 아기’를 곳곳에서 봅니다.


.. 존의 아빠는 집이 떠나갈 듯이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하고, 커다란 방에는 아빠의 장난감들이 가득하지요 ..  (6∼7쪽)

 

 


  씨앗을 심지 못하는 사람은 철이 없습니다. 나무를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은 철이 없습니다. 바람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철이 없습니다. 꽃가루와 풀내음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철이 없습니다. 여름에 더위를 못 느끼고 겨울에 추위를 안 느끼는 삶이라면 철이 없습니다. 철을 모르기에 철이 없고, 철을 맞아들이지 않으니 철이 없어요.


  제철에 나는 먹을거리를 제대로 먹지 않으니 철이 없어요. 제철에 피는 꽃을 제때에 느끼지 못하니 철이 없어요. 제철에 흐르는 냇물을 제 손과 발로 누리지 못하니 철이 없습니다.


  철이 없는 사람은 살림을 일구지 못합니다. 살림이란 목숨을 살리는 일입니다. 목숨을 살리는 일이란 하루하루 새롭게 삶을 짓는 일입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삶을 짓는다고 할 때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날마다 새 숨결로 거듭나면서 환하게 웃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철이 든 사람이에요.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사람이라면 아름답게 철이 든 사람이지요.


  다만,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철이 들도록 이끌지 않아요. 어린이집에서는 어린이가 어린이답도록 북돋우지 않아요. 일찌감치 영어를 가르치려 애쓰고, 일찍부터 아이들 머리에 갖은 지식 집어넣습니다. 초등학교는 초등교육 아닌 ‘초등입시’에 파묻히지요. 중학교는 중등교육 아닌 ‘중등입시’요, 고등학교 또한 고등교육 아닌 ‘고등입시’일 뿐입니다. 온통 입시교육이에요. 삶도 사랑도 사람도 가르치지 못하고 배울 수 없어요.


  틀에 박힌 제도권 노예교육에 열두 해 길들이는데, 철든 아이로 자라지 못하는 모습은 마땅하다 할 만해요. 틀에 박힌 제도권 노예교육에 아이들 집어넣는 어버이 또한 철없다고 여길 만해요.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삶과 사랑과 사람을 슬기롭게 보여주지 못하는 어른도 모두 똑같이 철없다고 할밖에 없어요.


.. 아빠는 조금이라도 머리가 아프거나 감기 기운이 있으면 큰일이 나요. 얼른 자리에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독감에 걸린 게 틀림없다며 법석을 피우거든요. 엄마는 그런 아빠를 ‘다 큰 아기’라고 부른답니다 ..  (10쪽)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선대서 철있는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의사 노릇 하거나 박사 노릇 한대서 철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신문사 기자나 방송국 피디는 철있는 사람일까요. 논밭에 농약 아무렇지 않게 뿌리는 시골사람은 얼마나 철있는 사람인가요. 골목길에서 빵빵거리며 내달리는 사람은 얼마나 철있는 사람이려나요.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아닌, 내 마음밭 살찌울 책을 다른 전문가들 추천이나 비평에서 벗어나, 스스로 눈길과 눈썰미 키워서 하나둘 찾아내어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철있는 사람이 되지 않아요. 서울 얘기만 가득한 신문은 내려놓을 줄 알아야 철이 듭니다. 큰도시 소비문명 가득한 텔레비전은 끌 줄 알아야, 조금이나마 철있는 사람에 다가설 만합니다.


  두 다리로 마을을 걸을 때에 철을 시나브로 느낍니다. 두 손으로 풀포기 쓰다듬고 나무줄기 어루만질 때에 철을 찬찬히 헤아립니다. 두 귀로 소리를 들어 봐요. 유월에 어떤 소리 들리는가를 살펴요. 칠월과 팔월에는, 십이월과 일월에는, 사월과 오월에는, 다달이 어떤 소리가 우리 삶터를 밝히는가 하고 귀를 기울여요. 소리를 가누면서 즐길 수 있을 때에 조금씩 철들 수 있어요.


.. “그렇게 젊어지고 싶어 하더니, 진짜로 소원을 이루었네.” 엄마는 쓸쓸한 얼굴로 살짝 미소를 지었어요 ..  (14쪽)

 


  앤서니 브라운 님은 그림책 《아기가 된 아빠》(살림어린이,2011)에서 철이 안 든 ‘큰 아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집안에서 아버지 노릇을 못 하거나 안 할 뿐 아니라,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는 ‘다 큰 사내’를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어른’이나 ‘어버이’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지요. 스스로 아버지나 어른이나 어버이를 모르니까, ‘아이’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를밖에 없어요.


  아무것도 모르지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지요. 아무것도 느끼지 않지요. 아무것도 사랑할 줄 모르지요.


  몸뚱이만 큰 철없는 사내 아닌, ‘몸뚱이까지 조그맣게 달라진’ 철없는 아기가 되면, 철이 없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느낄 만할까요. 철이 들면 부끄러움이나 창피를 느낄까요. 철이 조금 들어 무엇이 부끄럽고 어느 대목이 창피한가를 느낀다면, 이제부터 삶을 고치고 살림을 바라보며 사랑을 헤아리는 길로 접어들 수 있을까요.


  철이 없는, 다시 말하자면, 바보스레 살아가는 사람 곁에 철이 있고 슬기로운 옆지기 있다면, 조금씩 거듭나면서 차근차근 아름다운 매무새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철이 없는 사람 곁에 또 철이 없는 옆지기가 있다면 서로서로 철없는 채 언제까지나 맴돌겠구나 싶어요.


  어린이다운 마음을 건사할 때에 아름다운 마음빛이 됩니다만, 철이 없는 마음일 때에는 아름답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으며 사랑스럽지도 않습니다. 어린이다움하고 철없는 모습은 아주 달라요. 어린이는 씩씩하며 야무집니다. 어린이는 튼튼하고 웃음보따리입니다. 어린이는 늘 새 마음 새 뜻 새 꿈을 키웁니다.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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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해요 한림 아기사랑 0.1.2 8
다카코 히로노 지음,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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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2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갑니다
― 산책을 해요
 다카코 히로노 글·그림,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2002.5.25./5000원

 


  나들이를 갑니다. 아이는 아버지 손을 잡고, 아버지는 아이 손을 잡으며 나들이를 갑니다. 봄에는 봄나들이를 갑니다. 여름에는 여름나들이를 갑니다. 가을에는 가을나들이를 가지요. 겨울에는 겨울나들이를 가요.


  봄에는 아이 따뜻해, 하고 노래합니다. 여름에는 아이 더워, 하다가는 아이 시원하구나, 하고 노래하지요. 가을에는 아이 좋구나, 하면서 아이 곱네, 하고 노래합니다. 겨울에는 아이 춥잖아, 하면서도 아이 좋아, 하고 콩콩 뛰면서 노래합니다.


  언제나 노래를 부르는 나들이입니다. 언제나 노래가 떠오르는 나들이예요. 우리 보금자리에서 즐겁게 살아가면서 하루를 한껏 누리고, 이웃마을 살며시 지나가면서 저마다 아름다운 빛 드리우는 고운 숲 바라봅니다.


  맑은 날에는 맑은 바람과 햇살을 마십니다. 찌푸린 날에는 찌푸린 하늘 바라보면서 비를 기다립니다. 추운 날에는 설마 눈이 오려나 하고 손을 꼽습니다.


  두 손을 주머니에 푹 찌른 채 걷습니다. 두 손을 활개치면서 씩씩하게 걷습니다. 걷다가 서고 또 걷다가 섭니다. 좁은 길을 살금살금 걷습니다. 풀섶을 성큼성큼 걷습니다. 도랑물을 훌쩍 건너뜁니다. 달팽이가 있어 걸음을 멈춥니다. 개구리를 보며 우뚝 섭니다.


  아이 발자국과 어른 발자국이 다릅니다. 큰아이 발자국과 작은아이 발자국이 달라요. 저마다 몸에 맞추어 척척 걷습니다. 서로서로 방긋방긋 마주보고 쳐다보면서 걷습니다. 꽃을 보며 꽃한테 묻습니다. 너 참 예쁘다, 한 송이 꺾어도 될까. 꽃을 꺾으며 손에 쥡니다. 까르르 웃으며 달립니다.


  나들이를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나들이를 합니다. 가장 좋은 마음이 되어 나들이를 합니다. 마음속에 싱그러운 바람 스미기를 바라며 나들이를 합니다. 천천히 걷습니다. 빨리 걷습니다. 느긋이 걷습니다. 서둘러 걷습니다. 나무그늘 있으면 풀밭이나 흙땅에 털푸덕 주저앉습니다. 때로는 벌러덩 드러눕습니다. 마음껏 걷고 마음껏 쉽니다. 마음껏 풀바람 쐬고, 마음껏 햇살조각 먹습니다. 4346.6.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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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홍영우 글.그림 / 보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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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8

 


보름달 같은 홍길동 얼굴
― 홍길동
 홍영우 글·그림
 보리 펴냄,2006.9.20./9800원

 


  어린 날부터 ‘홍길동’ 이야기를 익히 들었습니다. 내 어린 날 텔레비전에서 만화영화로 ‘홍길동’이 나오기도 했고, 만화로 누군가 ‘홍길동’ 이야기를 그려서 만화잡지에 싣곤 했습니다. 동화로도 읽고 이야기로도 듣습니다. 참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는 이야기는 마음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무엇보다 나쁜 사람들을 꾸짖는 대목이 속시원했고, 나쁜 사람들이 가로챈 곡식과 돈을 모두 힘여린 시골사람한테 돌려주는 대목이 반가웠습니다.


.. 또다른 길동이들도 나라 곳곳에서 나쁜 양반과 벼슬아치들을 하나하나 혼내 줬어. 그리고, 빼앗은 곡식과 재물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줬지 ..  (22쪽)


  문학책 〈홍길동〉에서 길동이는 ‘배다른 어머니’한테서 태어났다고 나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대목을 알쏭달쏭하게 여겼습니다. ‘배다른 어머니’란 없기 때문입니다. 낳은 어머니는 그저 ‘어머니’일 뿐입니다. 아버지가 다르대서 이 아이를 달리 부르거나 대접해야 할 까닭이 없어요. 모든 아이는 사랑스럽고, 어느 아이라도 즐겁게 뛰놀며 자라야 올발라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린 길동이한테 ‘형’이라 할 사람은 이녁부터 마음그릇이 비뚤어졌다 할 수 있어요. 어린 길동이를 놀리거나 따돌리는 마을 다른 아이들도 서로 똑같아요. 비뚤어지거나 일그러진 마음그릇이지요. 그리고, 이처럼 비뚤어지거나 일그러진 마음그릇인 사람들이, 힘여린 시골사람 등허리를 휘게 하면서 곡식과 돈을 가로채지요.


  스스로 힘과 슬기를 갈고닦아 ‘백성을 괴롭힌 양반과 벼슬아치’를 꾸짖는 홍길동 모습은, 삶이 제자리를 찾도록 힘쓴 모습이라고 느껴요.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고, 마을이 제자리를 찾으며, 나라도 제자리를 찾도록 힘쓴 모습이에요.


  임금님이 있는 까닭은 권력을 누려 백성을 짓누르거나 짓밟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라고 임금님을 세우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나라를 다스리면서 누구나 넉넉하고 따사로운 삶을 이룰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임금님도 있고 양반도 있고 학자도 있겠지요.


  그러나, 임금님도 양반도 학자도 모두 흙을 만지지 않습니다. 임금님도 양반도 학자도, 수많은 벼슬아치들도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밥을 먹어요. 손에 굳은살 배기지 않으면서 값진 옷을 입지요. 손에 땀이 흐르지 않으면서 ‘여러 색시’를 건드려 ‘배다른 어머니’가 아이를 낳도록 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임금님이든 양반이든 학자이든 벼슬아치이든, 사랑스럽고 살가운 대목 없습니다. 이들은 시골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집에서 살며 똑같은 일을 할 노릇입니다.


  그렇거든요. 가장 평화로운 나라라고 한다면, 임금님부터 어린이까지 스스로 흙을 보듬으면서 보금자리를 푸르고 해맑게 가꿉니다. 대통령이 경호원과 비서를 거느리면서 나라일 맡는대서 평화로운 사회 되지 않아요. 대통령 스스로 경호원도 비서도 없이 일을 해야지요.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 이녁 밥을 이녁 손으로 흙을 일구어 얻어야지요. 의사도 판사도 검사도, 무슨무슨 ‘사’ 이름 들어간 모든 사람들도 손수 흙을 보살피면서 삶을 꽃피워야지요.

 

 

 


.. 그러자, 길동이가 천둥 같은 소리로 말했어. “정말로 죄를 지은 이는 가난한 백성들을 괴롭힌 양반과 벼슬아치들입니다. 나는 다만 하늘을 대신하여 나쁜 이들에게 벌을 준 것뿐입니다.” ..  (35쪽)


  일본땅에서 살아가며 《홍길동》 그림책을 빚은 홍영우 님 그림결을 살핍니다. 푼더분하면서 살갑습니다. 수수하면서 아기자기합니다. 한겨레 그림맛을 살포시 느낍니다. 홍길동이란 아이는 이렇게 착하고 맑은 눈빛으로 보름달 같은 얼굴이었겠지요. 슬픔을 웃음으로 바꾸고, 눈물을 노래로 거듭나게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바로 홍길동일 테지요. 온누리 모든 아이들은 홍길동과 같겠지요. 우리 어른들도 처음에는 홍길동과 같이 맑고 밝은 넋을 품으며 태어났겠지요. 저마다 가슴속 고운 빛을 느낀다면, 지구별에 사랑 가득 넘실거리리라 생각합니다. 4346.6.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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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논으로 오세요
여정은 지음, 김명길 그림 / 길벗어린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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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77

 


개구리와 함께 살아가기
― 개구리논으로 오세요
 여정은 글,김명길 그림
 천둥거인 펴냄,2004.5.1./11000원

 


  개구리는 개구리집이 저희 집입니다. 개구리집은 숲이기도 하고 풀섶이기도 하며, 풀밭이나 꽃밭이기도 합니다. 논도 개구리집이 되고, 밭도 개구리집이 됩니다. 멧골이나 시냇가도 개구리집이 되어요.


  사람은 사람집이 우리 집이 되겠지요. 사람은 도시에서도 살고 시골에서도 살아요. 사람은 한갓진 골목동네에서 살거나 복닥거리는 시내 한복판에서도 살지요. 두멧시골에서 살거나 숲속에 조용히 깃들어 살아가기도 해요.


  개구리는 딱히 사람 곁에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람도 굳이 개구리 곁에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개구리 살아가는 곳에서 지내는 사람은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과 따순 햇살을 먹습니다. 이와 달리, 사람 곁에서 살아가는 개구리는 자동차에 치여 죽거나 농약을 마시다가 죽거나 경운기나 트랙터에 깔려 죽곤 합니다.


.. “아이, 귀여워. 집에 가져가서 키우고 싶어.” “올챙이한테는 여기가 집이야. 다른 데서는 잘 자라지 못해.” 코딱지 선생님이 타이릅니다 ..  (6쪽)

 

 


  소쩍새는 어디에서 살까요. 꾀꼬리는 어디에서 사나요. 제비는 어디를 보금자리로 삼을까요. 까치와 까마귀는 이녁 둥지를 어디에 마련할까요. 사람들은 ‘우리 집’을 마련하면서 사람 곁에 다른 목숨들 고이 지낼 만한 삶터를 알맞게 남기는가요. 사람들은 ‘우리 집’만 생각하느라 다른 목숨들 모두 내쫓거나 죽이거나 몰아내지는 않나요. 아니, 사람들은 ‘우리 집’만 생각하기에 바빠, 막상 ‘사람 이웃’들 보금자리조차 넉넉히 나누는 일을 안 하지 않나요.


.. “올챙이한테 사람 손은 너무 뜨거워서 함부로 만지면 죽어. 그냥 물에 손을 넣고 가만있어 봐. 그러면 올챙이들이 뽀뽀를 해 준다.” 물속에 손을 넣으니 조금 있다 올챙이들이 다가와 달라붙습니다. 손이 간질간질합니다 ..  (8쪽)


  개구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개구리 노래잔치를 누립니다. 꾀꼬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늘 꾀꼬리 노래잔치를 즐깁니다. 귀뚜라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노상 귀뚜라미 노래잔치를 마주해요.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잔치를 맞이하나요. 오늘날 사람들은 어느 곳을 우리 보금자리로 삼아 우리 꿈과 사랑을 펼치는 너른마당으로 삼는가요.


  여정은 님 글과 김명길 님 그림으로 이루어진 그림책 《개구리논으로 오세요》(천둥거인,2004)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니 도시사람은 이제 따로 개구리논으로 찾아가야 개구리를 만납니다. ‘여느 논’으로 찾아가서는 개구리를 보기도 어렵습니다. ‘여느 논’에 잘못 손을 담갔다가는 농약 밴 논물에 손이 다칠는지 모릅니다.


  개구리 살아가는 논에는 거미도 살고 게아재비도 삽니다. 미꾸라지와 다슬기가 살는지도 몰라요. 물방개와 소금쟁이도 살아갈 수 있는지 몰라요. 그러면, 잠자리도 알을 낳을 수 있고, 도룡뇽이나 뱀도 함께 어우러질는지 모르지요.


  개구리 살아갈 수 없는 논에서 거둔 벼는 누가 먹을 만할까 궁금합니다. 농약을 친 벼는 한결 값싸게 도시 노동자한테 내다 팔아서 도시 노동자가 먹을 만할까 궁금합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농약에 찌든 쌀을 사다가 먹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온누리 누구나, 이 나라 어떤 사람들이나, 개구리 함께 오순도순 노래하는 논에서 거둔 싱그러운 벼를 빻은 쌀을 먹으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할 때에 아름답지 않나 궁금합니다.

 

 

 


.. 오늘 아기 산개구리를 보았다. 아주아주 작았다. 개구리가 그렇게 작다니, 상상도 못 했다. 코딱지가 그러는데, 개구리는 5년에서 7년쯤 산다고 한다 ..  (19쪽)


  도룡뇽 한 마리를 지키고자 고속철도를 막을 수 있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지키려고 공항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맹꽁이 한 마리를 지킬 뜻으로 관광단지나 발전소 모두 막을 수 있습니다. 도마뱀 한 마리를 지킬 생각으로 아파트도 쇼핑센터도 극장도 체육관도 축구장도 모두 막을 수 있어요.


  우리 이웃은 도룡뇽이고 개구리이며 맹꽁이입니다. 우리 동무는 도마뱀이요 제비이며 멧토끼입니다. 우리 곁에서 아름다운 숨결이 푸르게 노래할 때에 즐겁습니다. 우리 둘레에서 싱그러운 빛이 곱게 넘실거릴 때에 웃음꽃 피어납니다. 4346.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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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6-18 13:37   좋아요 0 | URL
이 글을 보니 개구리의 합창을 듣고 싶네요.
농약 없는 논에서,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부르는 노래잔치를요... ^^

숲노래 2013-06-18 14:05   좋아요 0 | URL
도시 한복판 아파트와 건물과 백화점 없애고
논을 만들어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면
도시사람도
무언가 큰 깨달음 얻지 않을까 싶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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