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론 할머니 - 작은 책 2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조니 그림, 강무홍 옮김 / 비룡소 / 1999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7

 


할머니가 계신 나라
― 말론 할머니
 엘리너 파전 글
 에드워드 아디조니 그림
 강무홍 옮김
 비룡소 펴냄, 1999.1.22.

 


  새가 노래하는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즐겁습니다. 새는 날마다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면서 우리 마음을 포근하게 적십니다. 개구리가 노래하는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기쁩니다. 개구리는 날마다 푸른 노래를 들려주면서 우리 마음을 싱그럽게 보듬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곳은 아름다운 보금자리입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보금자리에서 살아야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러운 둥지에서 살아야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과 동떨어진 곳에서 지낸다면 누구나 괴롭기 마련입니다.


.. 호젓한 숲가에 / 말론 할머니 혼자 / 가난하게 살고 있었네 ..  (3쪽)

 


  커다란 집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작은 집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꿈꾸고 노래할 수 있는 집이 아름답습니다. 넓은 집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좁은 집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스스로 이웃을 품고 동무를 아낄 수 있는 집이 사랑스럽습니다.


  돈을 더 벌어야 하지 않고, 돈을 덜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꿈꾸는 길로 나아가면서 곱게 노래할 수 있는 삶이면 됩니다. 스스로 빛나는 하루를 일구면서 착하게 춤출 수 있는 삶이면 넉넉합니다.


  새가 노래하는 곁에서 사람도 함께 노래합니다. 개구리가 노래하는 옆에서 사람도 같이 노래합니다. 새는 새대로 노래하고 사람은 사람대로 노래하지요. 개구리는 개구리답게 노래하고 사람은 사람답게 노래합니다. 서로 가장 즐거우면서 환한 눈빛으로 어깨동무합니다. 다 같이 가장 신나면서 맑은 눈망울로 춤을 춥니다.


.. 창가에는 조그만 참새 한 마리 / 파리한 모습으로 눈이 반쯤 감긴 채 / 부리마저 얼어붙어 있었네. / 할머니는 얼른 창문을 열어 / 작은 새를 안으로 들이고, / 살며시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네. / “작은 새야, 몹시 지치고 더러워졌구나. / 여기에 네가 지낼 곳이 있단다.” ..  (13쪽)

 

 


  엘리너 파전 님은 시를 씁니다. 엘리너 파전 님이 쓴 시에 에드워드 아디조니 님이 그림을 그립니다. 작은 글에 작은 그림이 붙어 《말론 할머니》(비룡소,1999)라는 그림책이 1962년에 처음 태어납니다. 한국에는 1999년에 나옵니다.


  그림책 《말론 할머니》는 ‘말론 할머니’가 보낸 마지막 이레를 보여줍니다. 말론 할머니가 이녁 삶에서 마지막 이레를 어떻게 누리는가를 보여줍니다. 말론 할머니가 이 땅에서 마지막 이레를 어떻게 밝히는가를 보여줍니다.


.. 할머니는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네. / “어느덧 하나 둘씩 우리 식구가 늘었구나. / 하지만 아직도 한 마리쯤은 더 있을 곳이 있구나.” ..  (27쪽)


  말론 할머니는 죽었을까요? 몸뚱이로 보자면 숨을 쉬지 않고 반듯하게 누웠으니 죽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말론 할머니가 건사한 당나귀와 참새와 고양이와 여우와 곰은? 말론 할머니를 짊어지고 하늘나라로 찾아간 이들 숲짐승은? 숲짐승도 함께 죽었기에 하늘나라로 갔을까요? 이들 숲짐승이야말로 숲동무로서 ‘천사’가 아니었을까요? 이들 숲짐승은 ‘하느님’을 만나려고 숲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말론 할머니를 찾아간 셈 아닐까요? 말론 할머니는 이 땅에서 고이 눈을 감으면서 어여쁜 숲짐승을 벗삼아 새로운 나라로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이를테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그린 이야기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나오는 낭기얄라와 낭길리마처럼, 말론 할머니가 떠난 곳은 ‘하늘나라’가 아닌 새로운 아름다운 나라이리라 느껴요. 그러니, 하늘나라 문지기라고 하는 베드로는 말론 할머니를 못 알아봅니다. 게다가, 말론 할머니는 하늘나라 문앞에서 번쩍 깨어나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다!” 하고 외쳐요.

 


.. 천국의 문지기 베드로가 묻기를, / “너희가 데려온 사람이 누구냐?” / 그러자 당나귀와 참새, 고양이와 어미 여우와 곰은 / 한목소리로 외쳤네. / “천국에서 이분을 모르십니까, / 돌아가신 우리들의 어머니, 말론 할머니를? / 가난하여 가진 것 하나 없고 / 집도 보잘것없고 좁았으나 / 그 넓고 큰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품어 주신 / 우리의 어머니, 말론 할머니를!” ..  (33쪽)


  그럼요. 말론 할머니가 계실 곳은 하늘나라가 아닌걸요. 말론 할머니가 계실 곳은 하늘나라가 아닌 사랑나라인걸요. 말론 할머니는 어여쁜 숲동무하고 꿈나라로 가야 하는걸요.


  따사로운 빛이 흐르는 사랑나라가 말론 할머니가 계실 자리입니다. 아름다운 넋이 감도는 꿈나라가 말론 할머니가 계실 곳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요? 죽는다면 아마 하늘나라로 갈는지 모르고, 땅나라로 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지 않으니, 사랑나라나 꿈나라로 갑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나오는 두 아이 요나탄과 칼은 낭기얄라와 낭길리마로 갔고, 말론 할머니는 사랑나라와 꿈나라로 갈 테지요. 언제나 아름답게 빛나고, 늘 사랑스레 맑은 삶을 새로 짓겠지요. 새가 노래하고 개구리가 춤추는 곳에서 어여쁜 숲동무하고 오순도순 살림을 가꾸겠지요. 4347.3.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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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 스웨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88
울프 닐슨 지음, 임정희 옮김, 에바 에릭손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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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6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에바 에릭손 그림
 울프 닐손 글
 임정희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8.5.15.

 


  삼월 이십구일에 딸기꽃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딸기덤불을 이리저리 살피며 걷다가 아주 일찍 하얗게 피어난 꽃 한 송이를 봅니다. 내 눈에는 오늘 보였지만, 하얀 딸기꽃은 며칠 앞서부터 피었을 수 있습니다. 그제도 그 자리 앞을 지나갔는데 못 알아챘으니, 어쩌면 어제나 오늘 아침이 피었을 수 있어요. 다른 마을 다른 들판이나 밭둑이나 수풀에서는 하얗게 꽃잔치를 이루었을 수 있어요.


  딸기꽃이 핀 둘레에 딸기꽃망울이 조물조물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살 어루만지면서 말을 겁니다. 올해에도 예쁘게 꽃이 피어나렴, 올해에도 맛난 열매 듬뿍 맺어 주렴, 올해에도 즐겁게 딸기알 나누어 주렴.


.. 에스테르는 잠시 생각에 잠겨서 빈 터를 왔다갔다 했어요.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말했지요. “세상은 온통 죽은 동물들로 가득해. 덤불마다 죽은 새랑 나비랑 쥐가 있지. 이들을 누군가 보살펴 줘야 해. 누군가 친절하게 묻어 줘야 해.” “누가?” ..  (8쪽)

 


  우산을 쓰고 걷습니다. 빗물이 우산으로 떨어집니다. 작은아이는 우산대를 어깨에 걸치고 걷습니다. 이렇게 걷느라 작은아이는 우산을 받았어도 머리와 온몸에 비를 쫄딱 맞습니다. 우산을 바르게 쓰렴 하고 말해도 다시 우산을 어깨에 걸칩니다. 빗물이 머리와 낯에 떨어지는 느낌이 즐거울까요. 빗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를 적에 재미있을까요. 빗소리와 빗내음을 혀로 날름날름 마시면 맛날까요.


  봄비를 맞는 풀을 바라봅니다. 봄비에 젖는 나무를 살핍니다. 빗물을 먹고 풀잎은 더 짙습니다. 빗물을 마시고 풀줄기는 더 올라옵니다. 빗물이 흐르는 나뭇가지마다 새잎이 고개를 내밉니다. 잎망울마다 빗방울이 동그랗게 맺히다가 톡 떨어집니다.


  얼마 앞서 겨울에는 모든 숲과 들을 잠재우는 차가운 비였습니다. 이제 봄에는 모든 숲과 들을 깨우는 따스한 비입니다. 새들은 비가 내리는 오늘 조용합니다. 개구리와 뱀과 맹꽁이는 따스한 빗물이 흙을 더욱 보드랍게 풀어 주니 싱그럽게 노래합니다. 물이 넉넉하게 고인 자리를 찾아 알을 낳을 테지요. 논이나 둠벙에서 올챙이가 깨어나기를 꿈꾸겠지요.

 


.. 꼬마 햄스터 누베는 천 일 동안 쳇바퀴를 돌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지친 발을 편히 쉴 수 있겠지요. 눈을 감은 모습이 아주 귀여웠어요. “그냥 자는 거 아냐?” 푸테가 햄스터를 깨우려 했어요. “일어나!” ..  (17쪽)


  여름이 무르익으면 숲과 들은 복닥복닥합니다. 경운기와 농기계 움직이는 소리 때문에 복닥이지 않습니다. 기쁘게 태어나거나 깨어나려는 숨결이 넘쳐서 복닥입니다. 새는 새끼를 낳습니다. 풀은 씨앗을 터뜨립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푸른 바다에 알록달록한 이야기가 넘칩니다.


  태어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해살이 풀이나 벌레는 가을이 저물 무렵 천천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여러해살이 풀이나 벌레는 가을이 깊어질 무렵 겨우내 웅크릴 자리를 찾습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들면 사람들은 조그마한 집에서 이불을 함께 덮습니다. 겨우내 눈이 덮인 자리에서도 풀은 자라 숲짐승이 배를 채울 수 있도록 합니다. 바지런히 땔감을 모은 사람들은 겨우내 불을 지피면서 아이들과 포근히 이야기꽃을 피워요. 먼먼 옛날부터 할매와 할배가 들려준 이야기를 아이들이 들어요. 아이들은 할매와 할배한테서 들은 이야기에 따라 새로운 꿈을 담습니다. 어버이는 할매와 할배와 아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삶을 짓습니다.


.. 할머니가 쥐덫에 잡힌 쥐를 아홉 마리가 주었어요. 다른 때 같았으면 고양이 차지였겠죠. 쥐들도 이름이 필요해서 우린 일일이 세례를 해 주었어요 ..  (22쪽)

 


  스웨덴에서 찾아온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시공주니어,2008)을 읽습니다. 에바 에릭손 님 그림하고 울프 닐손 님 글이 어우러집니다. 아이들은 작은 벌레와 짐승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들한테 ‘장례식’을 치러 주는 일(놀이)을 하자고 생각합니다. 여느 때에는 돌아보지 않던 벌레와 짐승을 눈여겨봅니다. 벌레와 짐승이 왜 죽는가 살펴봅니다. 사람들은 사람끼리만 장례식을 치를 뿐, 작은 벌레와 짐승한테는 눈길을 두지 않는다고 깨닫습니다. 집에서 따로 키우던 짐승이 아니라면, 주검을 아무렇게나 다루는구나 하고 깨달아요.


.. 난 누가 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는 지빠귀 옆에 웅크리고 앉았어요. 지빠귀가 날개를 퍼드덕거렸어요. 부리를 벌리고, 다리를 움찔했어요. 그러더니 잠시 후 숨을 거두었지요 ..  (29쪽)


  우리들은 무엇을 먹으며 살아갈까요. 물고기 주검을 먹을까요. 소 주검이나 돼지 주검이나 닭 주검을 먹을까요. 싱그럽게 숨쉬는 목숨을 먹는가요. 토막토막 저미거나 자른 주검을 가게에서 사다가 먹는가요.


  풀잎은 무엇이고 열매는 무엇일까요. 배추와 무한테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요. 능금과 감에는 어떤 넋이 있을까요. 오이와 딸기한테는 어떤 숨결이 있을까요.


  비가 오는 오늘 마을길을 걷다가 머위꽃을 꺾습니다. 아직 꽃으로 피어나지 않은 머위를 한 뿌리 캡니다. 머위뿌리는 우리 집 뒤꼍에 옮겨심습니다. 머위꽃은 아이들과 맛나게 먹을 생각입니다. 아침에는 마당에서 쑥을 뜯어 쑥국을 끓였어요. 마당에서 뜯은 갓잎에 무를 채썰기 해서 된장으로 버무렸습니다. 갈퀴덩굴은 간장으로 무쳤습니다.


  밥 한 그릇에는 수많은 목숨이 깃듭니다. 나락 한 알도 목숨이고, 멸치 한 마리도 목숨입니다. 김 한 조각도 목숨이며, 감자 한 톨도 목숨입니다. 여러 목숨을 즐겁게 지지고 볶아서 내 목숨을 잇습니다. 여러 목숨을 살뜰히 어루만져서 내 목숨을 살립니다. 마을 앞 풀섶에서 머위 한 뿌리를 캐니 땅에서 지렁이가 꼬물거립니다. 우리 집 뒤꼍에서 땅을 파서 머위 한 뿌리를 옮겨심자니 이곳에서도 지렁이가 꼬물거립니다. 모두들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저마다 이 지구별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꿈을 품습니다. 4347.3.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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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좋아 - 바랭이 아줌마와 민들레의 들풀관찰일기 개똥이네 책방 8
안경자 글.그림 / 보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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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4

 


풀내음 나누는 삶이 좋아
― 풀이 좋아
 안경자 글·그림
 보리 펴냄, 2010.8.16.

 


  새로 봄을 맞이합니다. 아이들과 들길을 거닐면서 지난해에 즐겁게 누린 딸기밭을 찬찬히 살핍니다. 올해에는 들딸기(멧딸기)가 얼마나 퍼질는지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전남 고흥은 다른 곳보다 한결 포근하니 딸기꽃이 일찍 필 수 있는데, 충북 음성 멧골마을에서 살 적에도 삼월부터 딸기잎이 돋았고 사월에 딸기꽃이 피었어요. 이곳저곳 딸기덤불을 살피니, 머잖아 꽃을 터뜨리려고 꽃망울이 조물조물 맺습니다.


  딸기를 놓고 본다면, 삼월에 잎이요 사월에 꽃이고 오월에 열매입니다. 딸기알이 맺을 즈음 같은 덤불에서도 꽃망울이 맺히거나 꽃이 피어나기도 해요. 한꺼번에 와락 터지거나 피지 않습니다. 달포 즈음 딸기잔치를 이루어요. 이러다가 유월을 넘으면 들딸기도 끝물입니다. 그동안 잘 먹고 잘 누렸어 하고 인사하고는 이듬해 봄을 기다려요.


.. 엄마랑 나는 동네 여기저기 들풀을 보러 다녀. 학교 가는 길에도, 놀이터에도, 약수터 가는 산길에도 들풀이 참 많아 ..  (6쪽)

 


  안경자 님이 빚은 그림책 《풀이 좋아》(보리,2010)를 읽습니다. 안경자 님은 《풀이 좋아》에서 ‘들딸기(멧딸기)’를 놓고 “봄에 흰꽃이 피었다가 7∼8월에 열매가 빨갛게 익어.” 하고 적습니다. 야생화도감이나 풀도감 같은 책을 뒤지면, 들딸기가 ‘6∼7월’에 익는다고 나옵니다.


  나는 아무래도 고개를 갸우뚱할밖에 없습니다. 충청북도 음성 멧골마을에서도 사월이면 딸기꽃을 보고 오월 언저리에 딸기알을 먹습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도 사월에 딸기꽃을 보고 오월 언저리에 딸기알을 먹습니다. 강원도 멧골짝도 딸기철은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다만, 함경도쯤은 언제 딸기꽃이 피고 딸기알이 맺는지 모르겠어요. 중국 연변자치주는 조금 더 늦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딸기꽃이 피고 딸기알이 맺는 철이 그리 ‘늦’거나 ‘더디’지 않습니다. 하얀 딸기꽃이 지면서 천천히 열매가 익는데, 보름쯤 지나면 빨간 빛이 감돌고 스무 날쯤 되면 맛나게 먹을 만해요. “봄에 흰꽃이 피”는데 칠팔월이 되어서야 열매가 빨갛게 익지 않습니다. 봄에 꽃이 피고 봄에 열매를 먹어요. 첫여름까지 열매를 먹고는 어느새 사라집니다.


.. 진짜 손톱보다 작고 파란 꽃들이 피어 있다. “아유, 콩알만 한 큰개불알풀이 봄맞이 나왔구나.” “뭐라고? 큰개불알풀?” 어우, 꽃은 참 예쁜데 왜 그렇게 이름이 이상하지? ..  (15쪽)

 

 


  겨울이 끝나는 이월 즈음부터 들마다 올망졸망한 꽃잔치가 이루어집니다. 봄맞이꽃 몇 가지가 들을 보듬습니다. 별꽃과 코딱지나물꽃과 봄까지꽃과 냉이꽃입니다. 볕이 잘 드는 남녘에서는 뽀리뱅이나 지칭개가 이삼월 언저리에도 일찌감치 꽃을 피울 뿐 아니라 씨앗까지 날리곤 합니다. 경기도나 강원도쯤이라면 민들레가 사월은 넘어서야 비로소 잎사귀를 보여줄는지 모르는데, 전라남도에서는 삼월에도 민들레가 노랗게 꽃을 피웁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민들레가 피어난 지도 열흘쯤 되었어요.


  그나저나, 우리들은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잘못 쓰는 일이 잦습니다. 이를테면,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입니다. 일본 풀학자가 일본에서 붙인 학술이름을 일제강점기와 해방 언저리에 한국 풀학자가 잘못 받아들인 풀이름 ‘개불알풀’입니다. 그만 이런 풀이름이 확 퍼지고 말았어요. 일본에서 나는 풀과 한국에서 나는 풀이 얼마나 다르랴 싶으니, 일본 풀이름을 한국에서 못 받아들일 까닭은 없을 텐데, 풀학자가 학술이름을 짓기 앞서, 시골에서는 모든 풀에 저마다 이름을 붙여요. 고장마다 풀이름이 다 다릅니다. 이런 이름이 재미있다고 말뿌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함부로 쓰면, 예부터 한겨레가 스스로 붙인 풀이름이 자취를 감춥니다. 그나마 ‘봄까지꽃’이라는 풀이름도 ‘봄까치꽃’으로 잘못 퍼뜨리는 사람이 많아요. 봄까지꽃은 풀이름 그대로 봄이 저물며 여름이 다가오면 들에서 어느새 사라집니다. 봄까지 돋으며 자라는 풀입니다.


  ‘광대나물’은 한국 풀학자가 붙인 이름이지만, 시골에서 쓰는 풀이름을 학술이름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는 고장과 고을마다 이름이 다를 텐데, 전라남도 고흥에서는 으레 ‘코딱지나물’이라고 가리킵니다.


.. 별꽃은 길가 풀밭에서 자라는데 추운 한겨울만 아니면 언제 어디서든 잘 자라. 하얗고 작은 꽃이 꼭 별 같다고 ‘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대. 봄에 나는 어린싹은 나물로 먹기도 해 ..  (24쪽)

 

 


  그림책 《풀이 좋다》는 풀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가를 따사롭게 들려줍니다. 어머니와 아이가 풀놀이를 즐기고 풀내음을 맡으며 풀밥을 먹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속삭입니다. 풀빛을 가슴에 담고, 풀노래를 부르는 삶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이런 그림책이 하나둘 늘어나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고장마다 다른 풀빛과 풀이름과 풀살이를 살가이 들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풀 한 포기가 들과 숲을 살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꿈꿉니다. 풀이 있기에 지구가 푸르고 풀과 함께 사람이 싱그럽게 살아가는 길을 밝히기를 바라요.


  곰곰이 돌아보면, 그림책 《풀이 좋아》는 크게 하나 빠뜨렸습니다. 어느 고장에서 어느 때에 만난 풀인지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만난 풀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어느 고장에서 어느 때에 만난 풀인가를 또렷이 밝혀야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강원도와 경기도 풀은 달과 날이 조금씩 다를 테고, 경기도와 충청도도, 또 충청도와 전라도도, 또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도, 또 제주도도 풀이 돋고 자라는 달과 날이 조금씩 다를 테니까요. 4347.3.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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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 - 시각 장애아 미유키의 자전 동화 삶과 사람이 아름다운 이야기 1
카리노 후키코 그림, 이노우에 미유키 글, 이정선 옮김 / 베틀북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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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3

 


아름답게 일어서요
― 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
 이노우에 미유키 글
 카리노 후키코 그림
 베틀북 펴냄, 2002.4.10.

 


  글을 찬찬히 익히면서 새롭게 눈을 뜨는 아이는 스스로 책을 읽고 싶습니다. 스스로 그림책 한 권 다 읽어내고서 아주 뿌듯해 합니다. 다만, 글을 좇아 하나하나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에 빠져, 이야기에는 깊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그래도, 아이는 한 번 읽은 책을 덮고 다시 안 읽지 않아요. 한 번 읽은 책을 꾸준하게 다시 읽습니다. 나중에는 외우다시피 책을 읽을 뿐 아니라, 책을 들추지 않고도 이야기를 줄줄 뀁니다.


  스스로 즐기고 누리면서 자랍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즐기고 누리는 동안 자랍니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차츰 익숙합니다. 처음에는 아이도 어른도 낯설고 어렵지만, 차츰 익숙하면서 잘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밥을 잘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옷을 잘 깁거나 집을 잘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차근차근 하면서 몸에 익힙니다. 찬찬히 즐기면서 삶으로 녹아듭니다.


..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살 수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아기의 아버지는 초여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  (2쪽)

 

 

 

 

 

 


  학교에서 시험을 치러 점수를 따야 공부를 잘하지 않습니다. 시험은 시험일 뿐이요, 공부는 공부일 뿐입니다. 그리고, 삶은 삶이며 사랑은 사랑이에요. 꿈은 꿈이고 놀이는 놀이이며 일은 일이에요.


  학교에 보내는 일은 학교에 보내는 일입니다. 시험공부는 시험공부입니다. 영어를 일찍부터 가르치니 영어를 일찍부터 잘합니다. 아주 마땅해요. 한국말을 일찍부터 슬기롭게 가르치면 한국말을 일찍부터 슬기롭게 잘하기 마련입니다. 어버이가 아이 앞에서도 늘 거친 말을 일삼으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으레 거친 말을 쓰지요. 어버이가 언제나 웃고 노래하는 삶이라면 아이들은 언제나 웃고 노래하는 넋입니다.


  사회나 학교에서 흔히 ‘조기교육’을 말하지만, 무엇이든 일찍 가르치면 잘합니다. 일본문학 《오싱》이나 한국문학 《몽실 언니》에 잘 나옵니다.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일곱 살 어린이가 동생 기저귀를 빨래해요. 한겨울에도 냇물 얼음을 깨고 동생 오줌기저귀와 똥기저귀를 빨래합니다. 그런데, 기저귀 빨래를 해 본 적 없으면, 스무 살이건 서른 살이건 마흔 살이건 처음에는 서툴고 어설픕니다. 일곱 살 어린이라 하더라도 날마다 이 일을 해야 하면 아주 익숙하면서 솜씨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잘 알아두어야 해요. 한 손에는 하나씩 쥘 수 있습니다. 한 손에 우산을 쥐었으면 책을 쥘 수 없습니다. 한 손에 책을 쥐었으면 호미를 쥘 수 없습니다. 한 손에 호미를 쥐었으면 자동차 운전대를 쥘 수 없습니다. 한 손에 자동차 운전대를 쥐었으면 수세미를 쥘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아이들이 일찍부터 영어나 한자를 지식으로 외우듯이 익혀야 하면, 이 아이들은 일찍부터 ‘잃거나 잊어야’ 하는 대목이 있어요. 일찍부터 영어나 한자를 익혀야 하는 아이들은 일찍부터 한국말을 제대로 못 듣고 제대로 못 배웁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푸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면, 겉으로는 한국사람 얼굴로 한국말을 읊지만,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즐거운 한국말하고는 동떨어진 모습이 되고 말아요.


.. 엄마는 나를 공원에 데려가면 “여기는 모래밭.” 하며 손으로 만지게 해 놓고는 어딘가로 가 버립니다. 내가 넘어져서 울어도 오지 않아요 ..  (8쪽)

 

 

 

 

 

 


  내 어릴 적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국민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인지 3학년인지 어렴풋합니다. 아무튼, 학교에서 담임 교사가 받아쓰기를 시킵니다. 받아쓰기는 날마다 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두 차례를 했다고 떠오릅니다. 받아쓰기를 시키면 교실은 쥐죽은듯이 조용합니다. 받아쓰기를 해서 하나라도 틀리면 한 대씩 얻어맞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받침 하나라도 틀리면 그야말로 큰일이 터집니다. 다섯 문제를 내어 다섯 문제를 모두 맞혀야 하거나 열 문제를 내어 열 문제를 모두 맞혀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얻어터지지 않으’려고 용을 씁니다.


  그런데, 교사 가운데에는 시골에서 자란 분들이 있어 곧잘 사투리를 섞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분들 가운데에도 혀짤배기 소리라든지 새는 소리를 내는 분이 있습니다. 받아쓰기는 늘 표준말로 하는데, 동무들 가운데에는 담임 교사가 읊는 ‘표준 소리가 아닌 소리’를 그대로 받아서 적는 아이가 있어요. 참 안쓰럽지요. 동무는 담임 교사가 읊은 대로 제대로 받아서 적었으나 담임 교사한테 얻어터져야 해요. 담임 교사는 한 반 예순 아이를 신나게 두들겨팹니다. 지치지도 않고 몽둥이질을 아침저녁으로 합니다. 열 문제 가운데 하나만 틀린 아이는 살살 때리고, 둘을 틀린 아이는 조금 세게 때리며, 셋을 틀린 아이부터 무척 셉니다. 다섯을 틀린 아이는 머리통이 깨질듯이 맞거나 엉덩이가 터질듯이 맞습니다. 몽땅 틀린 아이는 밀걸레자루로 피멍이 들도록 맞아요.


  요즈음에는 초등학교(학교이름도 바뀌었으니)에서 받아쓰기 틀렸대서 두들겨팰 교사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받아쓰기를 시켰을까요. 왜 아이들은 받아쓰기를 해야 했고, 왜 교사는 받아쓰기 숙제를 내야 했을까요.


  한국하고는 좀 멀리 떨어졌다지만, 프랑스라는 나라는 프랑스사람이 프랑스말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제 나라 아름다운 시를 아이들 스스로 읽고 읊도록 이끈다고 해요. 받아쓰기나 외워읽기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이 피어날 만한 아름다운 시를 아이들이 스스로 골라서 즐겁게 머릿속에 담아 학예회 같은 자리에서 시를 노래한다고 해요. 나중에 더 살펴보니, 한국을 뺀 웬만한 나라에서는 아이들한테 ‘제 나라 아름다운 시’를 읽히고 손수 종이에 옮겨쓰며 언제나 되읽도록 북돋으면서 마음속에 담도록 가르칩니다.


.. 어느 날 라디오에서 멋진 시를 들었습니다. 자전거에 관한 시였어요.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 보고 싶다.” “그럼 운동장에 가자.” 엄마와 나는 보조 바퀴를 떼낸 자전거를 끌고 운동장으로 갔지요 ..  (18쪽)

 

 

 


  이노우에 미유키 님이 쓴 글에 카리노 후키코 님이 그림을 붙인 《엄마, 내가 자전거를 탔어요!》(베틀북,2002)를 읽습니다. 아이한테 이 그림책을 내밀기 앞서 내가 먼저 즐겁게 읽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이 그림책을 받더니 스스로 읽습니다. 이제 일곱 살 아이는 읽어 달라는 말을 안 합니다. 가끔 말하기는 하되, 모든 글을 혼자서 먼저 읽고 싶습니다. 누가 알려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들여다보면서 묻습니다. “얘는 이렇게 작게 태어났어?” “얘는 커서 아이가 됐어?” “얘는 엄마하고 뭐 해?” “얘가 넘어져서 아야 해?” “얘는 왜 자전거를 못 타?” “얘는 이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나도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얘는 엄마하고 서로 안았어?” 그림에 뻔히 나오는 모습이지만, 하나하나 낱낱이 들여다보면서 묻습니다.


  책을 여러 차례 스스로 읽은 아이가 그림책을 들어 내 눈앞에 대더니 “여기 ‘미유키’라고 적혔어. 왜 미유키라고 해?” 하고 말합니다. “이 아이 이름이 미유키야. 미유키네 어머니는 미유키라는 이름이 예뻐서 이 아이한테 붙여 주었어.”


.. “미유키! 탔구나, 탔어!” 엄마 목소리가 가까이 들려 옵니다. “엄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자전거가 앞으로 쑥쑥 나갔어요.” “잘 했어.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거야.” “맞아요. 난 해냈어요!” “그래, 해냈구나, 미유키.” 엄마와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엄마의 볼이 젖어 있었어요 ..  (30쪽)

 

 

 

 

 

 


  그림책에 나오는 미유키는 고작 500그램 무게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모두 이 가녀린 아기가 죽는다고 말했지만, 미유키네 어머니만큼은 이 아기를 믿었고, 이 아기를 살아났으며, 씩씩하게 자랍니다. 미유키네 어머니는 여리고 작은 아이가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애씁니다. 일부러 안 도와주고 일부러 옆에서 조용히 지켜봅니다. 앞을 못 보는 몸으로 태어난 미유키는 늘 넘어지고 부딪힙니다. 그렇지만 미유키네 어머니는 언제나 안 도와줍니다. 넘어지고 부딪히더라도 스스로 일어나라고 말할 뿐입니다. 스스로 다시 일어서고 힘을 내라고 말할 뿐입니다. 앞을 못 보는 몸으로 자전거를 타려 할 적에도 그저 지켜보기만 합니다. 정 못 타겠으면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어린 미유키는 달래지도 도와주지도 않는 어머니 곁에서 씩씩거리며 다시 기운을 내어 보란듯이 자전거를 타겠다고 다짐합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자빠지고 다친 끝에 드디어 반듯하게 자전거를 가누어 운동장을 가릅니다. 혼자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달리면서, 바람을 가르는 맛이 얼마나 즐겁고 시원한가를 깨닫습니다. 이 아이 미유키는 앞으로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스스로 아름답게 일어섰으니까요. 미유키네 어머니도 미유키도 모두 아름답게 일어서는 삶과 사랑을 나누면서 웃겠지요.


  늘 마음속으로 시를 읽고 들으면서 자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나무가 속삭이는 꿈을 들으면서 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시험공부나 받아쓰기 아닌 삶노래를 즐길 적에 비로소 삶이 노래가 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4347.3.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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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4-03-23 09:19   좋아요 0 | URL
받아쓰기가 아닌 시를 읽으면서 익히는 글! 참 아름다운 생각이에요.

숲노래 2014-03-23 10:33   좋아요 0 | URL
어릴 적에 이렇게 '받아쓰기' 아닌 '시읽기'를 배웠으면 참 많이 달라졌겠다 싶은데, 높은학년일 적에는 '시읽기'를 하기도 했지만, 한 마디라도 틀리면, 그때에도 담임 교사는 무시무시하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때렸답니다 ^^;;;

희망찬샘 님은 학교에서 아름답게 아이들을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책으로 노래를 부르시겠지요? ^^

희망찬샘 2014-03-30 07:47   좋아요 0 | URL
아이들의 모습에 요즘 기운을 많이 잃고 지내고 있답니다. 능력 밖의 문제? 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느끼면서 저의 무기력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많이 들어서 있는데, 그들을 감동교화 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우울하네요.

숲노래 2014-03-30 09:27   좋아요 0 | URL
저런...
그렇지만 '잘못된 길'이라고는 섣불리 여기지 마시고요,
그 아이들이 '왜 그런 길을 걸어가면서 그런 길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우는가'를
차분하게 살펴보아 주셔요.

좋은 쪽으로든 궂은 쪽으로든
아이들은 어른이 힘으로 잡아당기면 안 좋아해요.
우리는 아이들을 '힘으로 잡아당기지' 않는다고 여겨도
아이들은 달리 여기기도 해요.

늘 부대끼시겠지만,
늘 즐겁게 바라보고 지켜보면서
희망찬샘 님 스스로 고운 넋으로 지내는 빛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찬찬히 따라오리라 믿어요.

오늘 따라오지 않는 아이들도 마음속에는 그 고운 빛을 담아서
나중에 그 빛으로 나아갈 테고요.

감동과 교화는 천천히 이루어지는 만큼
느긋하게 한 해 걸어가시기를 빕니다. ^^
디 잘 되리라 믿어요.
 
오늘 할아버지랑 자야한대요 온세상 그림책 6
나카가와 치히로 지음, 고향옥 옮김 / 미세기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4

 


할아버지와 즐겁게 노래해요
― 오늘 할아버지랑 자야 한대요
 나카가와 치히로 글·그림
 고향옥 옮김
 미세기 펴냄, 2008.5.20.

 


  봄을 맞이한 시골은 조금씩 부산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는 논밭에 새힘을 북돋우려고 애쓰고, 마을로 찾아와 먹이를 찾는 새들도 아침저녁으로 조잘조잘 복닥거립니다.


  풀잎이 깨어나면서 풀벌레가 함께 깨어납니다. 꽃잎이 터지면서 벌과 나비가 하나둘 춤춥니다. 나뭇가지마다 잎망울과 꽃망울이 가득합니다. 일찍부터 꽃이나 잎을 내놓는 나무가 있고, 아직 조용히 기다리는 나무가 있습니다.


  다만, 옛날과 견주면 한 가지가 다릅니다. 옛날에는 따사로운 봄날에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개구지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고샅과 들과 숲마다 넘쳤으나, 오늘날에는 어느 시골마을에서도 아이들 노랫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 처음으로 할아버지 댁에 혼자 자러 왔어요 ..  (2쪽)

 

 

 

 

 

 


  언제부터 아이들 노랫소리가 시골에서 사라졌을까 헤아려 봅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 아이들은 도시에서 노래를 부를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뛰놀아서 아이인데, 요즈음 도시 아이들은 얼마나 신나게 놀면서 노래하거나 춤추는지 궁금합니다.


  텔레비전이나 만화영화가 무언가 나와야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저희끼리 어울려 놀면서 스스럼없이 춤이 흘러나오고 노래가 터져나오는 아이들입니다. 놀 때에는 늘 노래가 흘러요. 놀 적에는 언제나 노래와 함께예요.


  그러고 보면, 예부터 어른들도 아이와 같아요. 아이들은 놀면서 노래라면, 어른들은 일하면서 노래입니다. 아이들은 놀 적에 늘 노래를 불렀고, 어른들은 일할 적에 언제나 노래를 즐겼습니다.


.. “할아버지. 잠이 안 와요.” “그래? 그럼, 안 자도 돼.” “안 자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할아버지가 고래 만났던 이야기를 해 주마.” ..  (25쪽)


  아이들은 누구나 어버이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희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희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낳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안 따집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 나이를 안 묻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한테 돈이 많은지 적은지 캐묻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한테 부동산이 있는지 전셋집이 있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즐겁게 놀면서 즐거운 아이들입니다. 즐겁게 일하면서 즐거운 어른들입니다. 기쁘게 뒹굴면서 기쁜 아이들이에요. 기쁘게 두레와 품앗이를 하는 동안 기쁘게 웃음짓는 어른들입니다.

 

 

 

 

 


.. “할아버지, 그 뒤로 쭈욱 그 섬에 있었어요?” “아니다. 또 모험을 떠났지. 할아버지는 너보다 몇 십 배나 더 오래 살았으니까 말이야. 어이쿠, 아빠가 벌써 데리러 왔구나.” ..  (30쪽)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 《오늘 할아버지랑 자야 한대요》(미세기,2008)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머스마는 할배 집으로 혼자 갑니다. 머스마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바깥일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닐 수 없어 하루 동안 할아버지한테 아이를 맡기기로 해요.


  아이는 할아버지를 잘 모릅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잘 알까요? 글쎄, 모를 노릇입니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잘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를 이끌고 목욕탕으로 갑니다. 이녁이 살아온 이야기를 아이한테 스스럼없이 들려주면서 함께 놉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말을 듣다가 어느새 빨려듭니다. 아이는 할아버지 이야기에 녹아들고, 어느덧 할아버지하고 신나게 놀아요.


  예부터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사람들은 큰식구를 이루었어요. 큰식구란 한식구입니다. 크게 하나인 식구요, 하늘처럼 하나인 식구입니다. 아이와 어버이와 할매와 할배가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었습니다. 서로 오순도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어른들은 함께 일하고 아이들은 같이 놀았습니다. 어른들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고,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물려받았어요.


  오늘 이 땅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됩니다. 이 땅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이 아이들을 낳은 어버이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될 테지요. 어른이 된 아이들은 곧 새 아이를 낳을 테며, 새 아이는 다시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될 테며, 예전에 아이였던 사람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됩니다.


  즐겁게 노래하던 아이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즐겁게 놀던 아이들이 즐겁게 일하는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즐겁게 노래할 수 있기를 빌어요.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알뜰살뜰 아끼고 사랑하면서 꿈꿀 수 있기를 빌어요. 4347.3.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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