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네골 : 중국 조선족 설화 재미마주 옛이야기 선집 1
재미마주 편집부 엮음, 홍성찬 그림 / 재미마주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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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4

 


재미있는 마을이란
― 재미네골
 홍성찬 그림
 중국조선족 설화
 재미마주 펴냄, 1999.12.20.

 


  중국조선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롭게 그린 《재미네골》(재미마주,1999)은, 책이름 그대로 “재미난 고을” 이야기입니다. ‘골’은 ‘고을’을 가리킵니다. ‘고을’은 ‘마을’보다 큰 곳을 가리키는데, ‘골’이라고 쓸 적에는 ‘밤골’이나 ‘솔골’이나 ‘감골’처럼 여느 마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마을이름이 ‘재미골’이나 ‘재미말’이나 ‘재미마을’ 아닌 ‘-네’를 넣은 ‘재미네골’이었을까요. 그림책에서는 이 대목까지 낱낱이 알려주거나 다루지 않습니다. 아무튼, 마을사람 모두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재미나게 살아갔다고 하니, 이런 이름을 얻었겠지요.


.. 이 마을은 아주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 마음씨가 곱고 착해서 서로 싸우는 일이 없었죠.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네 일 내 일 따로 없이 서로 도왔습니다 ..  (5쪽)


  재미있는 마을이란 남다르지 않습니다.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이면 어디나 재미네골입니다. 평화란 무엇일까요. 군대를 두면 평화를 지킬까요? 아니에요. 군대가 있대서 평화를 지키지 않아요. 재미네골에는 싸울아비란 한 사람도 없어요. 칼을 차거나 창을 들거나 총을 거머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군인도 없지만 경찰도 없어요. 정보요원도 경호원도 없습니다. 모두들 너그럽게 웃고 따사롭게 어깨동무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군대나 전쟁무기에 들일 돈이나 품이나 겨를이란 없습니다.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데에 모든 마음과 힘을 쏟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군대를 두거나 전쟁무기를 만드는 곳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평화가 없는 곳에는 웃음이 없습니다. 웃음이 없는 곳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곳에는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사랑이 없어요.


  서로 아끼려는 삶이라면 칼이나 총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도둑이 있을 턱이 없겠지요. 굳이 대문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겨울에 부는 드센 바람을 막으려고 울타리를 쌓거나 울타리가 될 나무를 심을 뿐, 누구나 스스럼없이 이웃으로 드나듭니다.


  서로 아끼면서 살아가니 애써 멀리 나들이를 다니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레 살아가는데 무슨 좋은 구경이 있다고 멀리 나다니겠어요. 하늘을 누리고 햇볕을 즐기며 바람과 냇물하고 사이좋게 얼크러집니다. 냇물에서 참방참방 물장구를 쳐요. 들판에서 해바라기를 해요. 숲에서 나물을 캐고 새소리를 들어요.


.. 콩밭의 김을 매고 있던 농부가 무슨 일인지 까닭을 알고 나더니 “여기 네 분은 모두 마을에 꼭 필요한 분들이에요. 농사야 누구나 배워 가면서 지으면 되니 제가 가겠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농부의 말에 부락장, 목수, 대장장이, 토기장이는 “하늘과 바람의 뜻에 따라 땅을 가꾸어 우리 마을 창고를 늘 풍성한 곡식으로 채워 주는 농부님이야말로 이 마을의 보배지요. 어디를 가시겠다고 그러세요.” 하고 입을 모았습니다 ..  (16쪽)

 


  그림책 《재미네골》을 보면, ‘부락장’이니 목수이니 대장장이이니 토기장이이니 하고 나옵니다. 여기에 농사꾼이 따로 나옵니다. 그런데, 시골마을에는 따로 ‘농사꾼’이 없어요. 목수나 대장장이나 토기장이도 함께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지을 겨를이 없이 목수질 하지 않아요. 농사를 안 지으며 대장장이나 토기장이를 하지 않아요. 어느 한 가지만 하는 시골사람은 없습니다. 저마다 조금씩 흙을 일구어요. 저마다 틈틈이 밭을 돌보지요.


  모내기철에 모내기를 함께 안 하는 목수나 대장장이란 없습니다. 가을걷이철에 가을걷이를 함께 안 하는 ‘부락장’이나 토기장이란 없습니다. 목수 일이나 대장장이 일은 여느 때에도 으레 하겠지만, 겨울과 봄에 훨씬 많이 합니다. 일철이 아닐 적에 이 같은 일을 훨씬 많이 하지요. 일철에는 다른 시골사람과 함께 흙일을 합니다.


  그리고, ‘부락장’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맞갖지 않습니다. ‘부락(部落)’이라는 일본말을 중국조선족도 쓸는지 모릅니다만, 이 그림책은 중국조선족이 쓰는 ‘조선말’로 엮지 않았어요. 남녘에서 쓰는 말로 손질했어요. 그러면, 일본말 ‘部落長’을 ‘마을지기’나 ‘마을 어른’쯤으로 고쳐서 써야 올바릅니다. 우리 겨레 옛삶이나 우리 겨레 아름다운 살림살이를 보여주려 하는 그림책이니, 낱말 하나와 토씨 하나와 말투 하나까지 옹글고 알차게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꼭 이 그림책에서 따질 낱말은 아니지만, 시골사람은 스스로 ‘농부(農夫)’라 말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스스로 ‘시골사람’이나 ‘시골내기’라 말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모두 시골사람이었으니 ‘시골’이라는 말도 잘 안 썼어요. 그러면 무어라 했느냐 하면 ‘흙 만지는 사람’이나 ‘흙 가꾸는 사람’이나 ‘흙 일구는 사람’이나 ‘흙일 하는 사람’이나 ‘흙 먹는 사람’처럼 ‘흙’을 말했습니다. ‘농부’라는 이름은 흙을 안 만지는 양반이나 권력자가 흙을 만지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썼습니다.


.. 이웃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엔 언제나 재미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며 ‘재미네골’이라 불렀답니다 ..  (29쪽)


  재미네골은 중국에만 있지 않습니다. 북녘에도 남녘에도, 사할린에도 일본에도 동남아시아에도 어디에도 있습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려는 넋일 때에는 어디에서나 재미네골입니다. 서로 아끼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을 적에는 어디에서나 싸움터가 됩니다.


  오늘날 이 나라 어느 도시에서나 아침저녁 출퇴근길이 지옥과 같다고들 말합니다. 교통지옥이라 하지요. 그리고, 아이들은 입시지옥이에요. 입시지옥을 거친 아이들은 취업지옥에까지 시달립니다. 모두 지옥구덩이예요. 어디나 지옥투성이예요. 아름다운 삶이나 즐거운 삶은 아무 데나 없는 듯합니다. 고운 삶이나 착한 삶은 도무지 안 보이는 듯합니다.


  우리들은 왜 지옥불에 빠져 허덕여야 할까요. 우리들은 왜 웃음이 아닌 미움으로 치달아야 할까요. 우리들은 왜 서로 돕거나 아끼기보다는 내 밥그릇만 챙기려 애써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지옥이 아닌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을 지옥으로 내몰지 말고 따사로운 마을에서 놀며 자랄 수 있도록 보살피기를 빌어요. 아이도 어른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환하게 웃는 삶 누리기를 빌어요. 4346.12.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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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이야기 - 숨은그림찾기 내 친구는 그림책
안노 미츠마사 지음 / 한림출판사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3

 


숲이 있어야 시골도 도시도 있다
― 숲 이야기
 안노 미쯔마사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2001.5.4.

 


  겨울날 숲길을 거닐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겨울날 숲에 깃들어 포근히 쉬는 가랑잎과 풀벌레를 볼 수 있고, 멧새와 멧짐승을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요즈음은 겨울숲에 깃든 풀벌레나 알집이나 멧새나 멧짐승보다 사냥꾼을 볼 수 있습니다. 사냥총을 들고 사냥을 하려는 사람들 뻥뻥대는 총소리에 깜짝 놀라야 하고, 자칫 사냥꾼들 총알에 맞지 않을까 걱정해야 합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느긋하게 숲을 누리지 못해요. 사냥철이 끝날 때까지 조마조마해야 합니다.


  도시사람은 시골에 왜 찾아올까요. 도시사람은 시골에 찾아와서 숲에 들며 무엇을 누리고 싶을까요. 살찐 멧돼지나 꿩이나 노루나 고라니나 멧토끼나 너구리나 오소리를 잡을 수 있으면 즐거울까요. 도시 길거리를 걸어다니며 먹이를 찾는 비둘기 아닌 깊은 숲에서 살아가는 멧비둘기를 총을 쏘아 잡으면 즐거울까요.


  들나물 캐러 숲을 찾을 시골사람을 무섭게 하는 사냥꾼들 걸음걸이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조용한 시골숲을 사냥터로 꽝꽝 못박아 도시 관광객 끌어들이려는 군 행정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시골은 언제부터 도시사람 관광터로 바뀌어야 했을까요. 시골은 언제부터 도시사람이 관광하러 찾아와 돈을 흘리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흐름이 되었을까요. 시골은 언제부터 도시바라기가 되어야 했을까요. 시골은 언제부터 아이들을 도시로 몽땅 보내는 ‘인력 충전소’ 구실을 해야 했을까요. 이러면서, 도시사람이 유기농이나 친환경곡식을 먹도록 흙을 들볶는 ‘흙공장 노동자’ 노릇을 해야 하는가요.


  지렁이가 꼬물꼬물 살아서 움직이는 흙이 싱그럽습니다. 지렁이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도록 농약을 뿌리는 흙은 싱그럽지 못합니다. 개미가 기어다니고 무당벌레가 내려앉으며 벌과 나비가 노니는 풀밭을 이루는 흙은 싱싱합니다. 개미도 무당벌레도 벌도 나비도 찾아볼 길 없는데다가, 풀밭 하나 없이 민둥민둥 흙땅은 싱싱하지 못합니다.

 

 


  잠자리가 날지 않아도 시골이라 할 수 있을까요. 메뚜기도 방아깨비도 사마귀도 없다면, 이런 들판에서 자라는 곡식을 누가 먹을 만할까요. 제비가 찾아오지 않아도 시골이라 할 만할까요. 제비가 잡아먹을 풀벌레와 잠자리와 나비와 애벌레가 없는 곳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나 푸성귀는 도시사람을 얼마나 넉넉히 먹여살릴 만할까요.


  숲에는 모든 목숨이 깃듭니다. 커다란 범과 곰도 숲에 깃듭니다. 작은 다람쥐와 공벌레도 숲에 깃듭니다. 여우와 늑대도, 토끼와 고슴도치도, 두더쥐와 수달도, 숲이 있고 냇물이 있으며 갯벌과 도랑과 골짝과 못과 샘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 또한 이 모든 숲벗과 숲님과 숲동무가 함께 있을 때에 싱그럽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나날 누릴 수 있습니다.


  갯벌을 메워 논으로 만들면 사람은 살 만할까요? 바닷가에 핵발전소와 제철소와 유리공장과 중화학공장 잔뜩 세워 갯벌에 살던 게와 조개와 갯것이 모조리 죽으면 사람은 돈을 잘 벌어서 좋을까요? 우리 바다에서 김과 미역과 톳과 다시마와 매생이를 거둘 수 없으면, 우리 바다에서 삼치와 갈치와 조기와 고등어와 오징어를 낚을 수 없으면, 우리 바다에서 아무런 바닷것을 얻을 수 없으면, 우리 살림살이는 얼마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숲을 밀고 송전탑을 때려박아야 경제발전이 될까 궁금해요. 숲을 짓밟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놓아야 경제발전을 이루는지 궁금해요.


  우리들은 숲에서 무엇을 보는가요. 우리들은 숲에서 어떤 이웃을 만나고 싶은가요. 사람 사이에서도 이웃집이 사라지고, 사람과 다른 목숨 사이에 어깨동무를 하지 않아도 될까요.


  안노 미쯔마사 님이 빚은 그림책 《숲 이야기》(한림출판사,2001)를 읽습니다. 숲에는 수많은 목숨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숲에는 온갖 이웃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웁니다. 숲에서는 수많은 목숨들이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살아갑니다. 숲에서는 온갖 이웃들이 푸른 숨을 마시고 맑은 물을 먹으면서 푸른 빛을 흩뿌립니다.


  숲이 있을 때에 비로소 시골이 시골답습니다. 숲이 있을 때에 도시도 문명과 문화를 가꿀 수 있습니다. 숲이 없으면 시골이 무너집니다. 숲이 사라지면 도시도 그예 와르르 무너질밖에 없습니다. 4346.12.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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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23 22:02   좋아요 0 | URL
그림책이 너무 좋습니다!!^^

숲노래 2013-12-24 04:52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숲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곳이
어디에나 곱게 남을 수 있기를 빌어요.
 
배고파요 과학은 내친구 15
야규 겐이치로 글 그림, 예상열 옮김 / 한림출판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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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2

 


맛있게 밥 함께 먹어요
― 배고파요
 야규 겐이치로 글·그림
 예상렬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2.7.30.

 


  배가 고플 적에 밥을 먹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끼니 때에 맞추어 밥을 차릴 수 있습니다만, 배가 고플 적에 먹어야 밥맛이 돕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습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밥그릇을 싹싹 비웁니다.


  참말 그렇지요. 배가 고프니 밥을 차리고, 배가 고프니까 밥을 먹어요. 배고픈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둘러앉아 밥그릇을 비웁니다. 수저를 들고 신나게 먹습니다.


  퍽 어린 아이는 배가 고프면 웁니다. 갓 태어난 아기도 배가 고프면 울어요. 배가 고픈데 왜 밥을 안 주느냐면서 웁니다. 배가 고프니 얼른 밥을 주어 놀 기운을 되찾게 해 달라며 울어요.


  자, 아이들이 기다리니 밥을 차립니다. 차근차근 밥을 차립니다. 때로는 후다닥 밥을 차려서 내놓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이 느긋하게 기다리도록 하면서 밥을 올립니다. 밥 익는 냄새가 돌고 국 끓는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은 이야 곧 맛있게 먹겠구나 여기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많이 어린 아이라면 좀처럼 못 기다릴 수 있으니, 아직 다 차리지 않은 밥상에 앉거나 어버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한 입만 두 입만 하면서 입을 쩍쩍 벌립니다. 배부를 적에는 쳐다보지 않던 먹을거리라 하더라도 배고플 적에는 부랴부랴 손을 뻗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밥을 잘 안 먹거나 가려서 먹는다면, 배가 고프게 하면 됩니다. 신나게 뛰어놀도록 하고는 밥은 살짝 뜸을 들여서 주면 돼요. 밥은 다 차렸지만 밥상에만 올리지 않고는 조용히 기다립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지켜봅니다. 그야말로 배가 고파 어떤 밥이든 고맙게 먹으려 할는지, 배고픈 주제에 이것저것 가리려 하는지 가만히 살펴봅니다.

 

 


.. “아, 배고프다. 언니, 오늘은 엄마가 안 계시니까 일찍 간식을 먹자.” “안 돼. 간식은 간식 시간에 먹어야 해!” ..  (2∼3쪽)


  아이들이 먹는 밥은 어른이 함께 먹는 밥입니다. 어른은 아이들 몸이 튼튼히 자라기를 바라며 밥을 차립니다. 그런데, 어른은 어른이 되기까지 살아오며 입과 혀에 익숙한 밥을 차리곤 해요. 아무래도 ‘아이와 함께 먹는 밥’보다는 ‘어른이 이제껏 먹은 밥에 숟가락 더 얹어서 먹는 밥’이 되곤 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나라와 고장마다 날씨가 다르고 삶이 달라요.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에서는 이곳대로 밥삶이 달라요. 티벳이나 몽골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도, 중남미나 북중미도, 또 유럽도, 중국과 일본도, 저마다 밥삶이 다릅니다. 한겨레 사이에서도 함경도와 평안도와 경기도와 강원도와 충청도와 전라도와 경상도 밥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날씨가 다르고 삶이 다르니까요. 추운 곳에서는 추운 곳대로 밥을 차리고, 더운 곳에서는 더운 곳대로 밥을 차려요. 바닷마을과 멧골마을 밥차림이 달라요. 들이 너른 마을과 깊숙한 골짝마을 밥차림이 다르지요.


  그래도 옛날에는 어디에서나 시골밥이었으리라 느껴요. 옛날에는 어디나 시골이었을 테니까요. 임금이나 신하 같은 이들이 아니었다면, 양반이라 하더라도 떵떵거리듯 돈이 많은 집안이 아니었다면, 참말 거의 모든 한겨레는 손수 흙을 일구면서 밥을 얻었으리라 생각해요. 흙에서 곡식을 거두고 풀을 얻으며 열매를 따서 도란도란 밥을 차렸으리라 생각해요.


  아마 풀밥이었을 테지요. 끼니마다 키질을 하고 절구질을 하며 조리질을 한 뒤 물을 맞추어 솥에 장작불 때어 밥을 지었을 테지요. 흰쌀밥이란 거의 안 먹었으리라 생각해요. 돈과 힘이 있는 이들은 스스로 흙을 만지지도 않고 키질이니 절구질이니 조리질이니, 또 아궁이에 불을 때어 솥으로 밥을 끓이는 일이니, 아무것도 안 했겠지요. 흰밥에 고깃국이란 돈과 힘이 있는 이들이 누리던 밥차림이었으리라 느껴요. 그리고, 흰밥에 고깃국만 먹던 이들은 쌀알에서 씨눈까지 제대로 먹는 밥이 아니었을 테니 자꾸 몸이 아팠겠지요. 스스로 흙을 만지지 않고 땀흘려 일하지 않는 채 영양소만 많이 집어넣으니 몸이 튼튼하기 어려웠으리라 느껴요. 이와 달리, 누런쌀밥 먹고, 풀을 뜯으며, 늘 흙을 만지고 흙집에서 지내는 거의 모든 시골사람은 몸이 아프거나 힘들 일이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 선희네 저녁은 뭐지? 몰라. 하지만 크로켓이면 좋겠다. 나도, 할머니가 만든 만두, 아주 좋아해. 엄마가 만든 크로켓, 할머니가 만든 만두 ..  (13쪽)

 


  야규 겐이치로 님 그림책 《배고파요》(한림출판사,200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 배가 고플 적에 얼마나 밥이 먹고 싶을까. 아, 배가 고파서 먹는 밥이란 얼마나 맛있을까.


  무엇을 차려서 먹든 대수롭지 않아요. 고픈 배를 채울 수 있으면 고맙습니다. 맛나게 먹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나물 몇 가지에 밥과 함께 간장에 버무려서 먹어도 반갑습니다. 된장국이랑 밥 한 그릇이어도 즐겁습니다. 김치 한 조각 있어도, 김치 아닌 날무나 날배추 있어도, 언제나 뚝딱 삭삭 말끔하게 밥그릇 비울 만합니다.


  푸른 숨결을 먹는 밥이거든요. 따순 사랑 담긴 밥이거든요. 즐거운 넋 서린 밥이거든요. 밥을 차리는 사람들 예쁜 손길을 밥 한 그릇으로 먹어요. 밥상에 오르기까지 너른 들과 숲과 바다와 멧골 곳곳에서 저마다 푸른 숨결로 살아온 다른 목숨을 먹어요. 나락 한 줌은 봄부터 가을까지 어떤 햇볕을 머금었을까요. 어떤 빗물을 마시고, 어떤 바람을 누리며, 어떤 흙에 뿌리를 내리다가 이렇게 밥 한 그릇이 되었을까요. 나물 한 줌은 어느 들이나 밭둑이나 숲이나 멧골에서 어떤 햇볕과 빗물과 바람과 흙을 누리며 자라다가 우리 밥상까지 왔을까요. 물고기 한 마리는 어떤 바다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파란 물빛 머금다가 우리한테 고기 한 점 될까요.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어떤 삶을 누리느냐가 달라지지 싶어요. 먹는 밥에 따라 삶은 새롭게 거듭나지 싶어요. 사랑스러운 밥을 먹으면서 사랑스러운 삶 되고, 따순 밥을 먹으면서 따순 넋 되어요. 착한 밥을 먹으면서 착한 삶 되고, 고운 밥을 나누면서 고운 넋 됩니다.


.. 아, 맛있었다! 간식을 먹었더니 기운이 난다. 밖에서 놀다 올까? 신나게 놀고 나면 저녁 때는 ..  (28쪽)


  그나저나, 예쁜 그림책 《배고파요》인데, 이 그림책에 적힌 말투는 좀 곰곰이 생각해야지 싶어요.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지만, “배가 납작납작”이라든지 “배 납작 신호”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이 그림책 말투는 아이 어버이로서 찬찬히 따져야지 싶습니다.


  ‘납작해진다’고 할 때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징어가 납작해지지요. 쥐포가 납작하지요. 자동차 바퀴에 눌려 납작해져요. 꾹 누르거나 밟으면 납작해집니다. 그러니까, 부피 있는 무언가를 눌러서 부피를 없앨 때에 ‘납작하다’고 합니다.


  자, “배가 납작납작”이라면 어떤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배가 고픈 모습이라면 어떤 말로 나타내야 올바를까요.


  배가 부르면 배가 나옵니다. 배가 고프면 배가 들어갑니다. 배가 쏙 들어가요. 홀쭉해집니다. 그래서 ‘홀쭉이’와 ‘뚱뚱이’ 같은 이름이 있어요. 몸이 마른 사람이라면 ‘날씬하다’고도 하지만, 제대로 못 먹은 사람은 ‘비쩍 말랐다’고 해서 ‘홀쭉하다’고 가리킵니다.

 


 배고파서 배가 납작납작. 지금부터 간식 시간까지 몇 분? (4쪽)
→ 배고파서 배가 홀쭉홀쭉. 이제부터 간식 때까지 몇 분?
 굉장히 배가 고파서 배가 납작해졌어. (9쪽)
→ 몹시 배가 고파서 배가 홀쭉해졌어.
 할머니가 만든 만두. 나 배고파지기 시작했어. (13쪽)
→ 할머니가 빚은 만두. 나 슬슬 배고파.
 우리의 배는 언제 납작해지는 것일까? (16쪽)
→ 우리 배는 언제 홀쭉해질까?
 ‘배 납작 신호’는 우리 몸 속의 ‘에너지’가 모자라게 되었을 때 나옵니다. (18쪽)
→ ‘배 홀쭉 소리’는 우리 몸에 ‘힘’이 모자랄 때 나옵니다.
 ‘배 납작 신호’가 나오면 우리는 배고파져서 밥을 먹게 됩니다. (20쪽)
→ ‘배 홀쭉 소리’가 나오면 우리는 배고파서 밥을 먹습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24쪽)
→ 밥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간식에는 ‘영양분’이 들어 있지 않나요? (24쪽)
→ 간식에는 ‘영양분’이 안 들었나요?
 ‘영양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덤’인 간식도 필요한 것입니다. (25쪽)
→ ‘영양분’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덤’인 간식도 먹어야 합니다.


  ‘홀쭉’이라고 적어야 할 대목을 ‘납작’이라고 자꾸 적은 대목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배는 홀쭉해지니까요. 그리고, 이 그림책을 읽을 어린이 눈높이와 안 맞는 말투도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아직 한글을 모르는 나이부터 이 그림책을 어버이와 함께 귀로 들을 텐데, 너덧 살 눈높이를 헤아려 우리 말글을 찬찬히 살펴 알맞게 가누어야지 싶어요. 낱말도 말투도 꼭 아름다운 한국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비로소 아름다운 그림책 돼요.


  “배고파지기 시작했어” 같은 말투는 한국 말투가 아닌 일본 말투입니다. 이른바 직역투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슬슬 배가 고픈걸” 하고 말해요. “배고파지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밥은 밥이지 ‘식사’가 아니에요. 밥을 먹으면 ‘힘’이나 ‘기운’을 새로 낼 수 있어요. 아이들한테 섣불리 ‘에너지’를 말할 까닭 없어요. 이 그림책에서는 “배 납작 신호”라 나오지만, 배가 고파서 홀쭉할 적에 꼬로록 하는 소리가 나요. 그러니까, ‘신호’라기보다는 ‘소리’요, ‘신호’가 아닌 ‘소리’라 말해야 알맞다고 하겠어요. 너덧 살 아이들한테까지 ‘필요’ 같은 일본 한자말을 이야기할 까닭은 없어요. 아이들이 튼튼히 자라려면 “영양분이 많이 들”고, 덤인 “간식도 먹어야”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랍니다.


  예쁘게 자랄 아이들한테 예쁜 말로 빚은 그림책을 베풀 수 있기를 빌어요. 그러고 보니, 만두는 ‘만든다’고 하지 않아요. 만두는 ‘빚는다’고 하지요. 도자기를 빚듯이 만두를 빚습니다. 어른들만 보는 책에서도 말은 말대로 옳게 가눌 노릇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는 그림책은 더더욱 말을 잘 살피고 올바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게 밥 함께 먹고, 즐겁게 책 같이 읽어요. 4346.12.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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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과 개미 과학은 내친구 6
모리타 타츠요시 그림, 야자마 요시코 글, 윤태랑 옮김 / 한림출판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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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1

 


작은 꽃 사랑하는 눈길
― 제비꽃과 개미
 야자마 요시코 글·그림
 윤태랑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4.5.20.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듯이 조그맣게 피어나는 제비꽃이 있습니다. 제비꽃은 더없이 자그마한 봄맞이꽃인데, 제비꽃 둘레에서 피어나는 봄까지꽃과 코딱지나물꽃은 더 자그마한 봄맞이꽃입니다. 이 곁에서 피어나는 별꽃은 더욱 자그마한 봄맞이꽃입니다. 그리고, 별꽃 둘레에서 피고 지는 꽃다지꽃이랑 꽃마리꽃은 훨씬 자그마한 봄맞이꽃이에요.


  냉이꽃도 조그마한 봄맞이꽃입니다. 꽃마리 가운데 좀꽃마리꽃은 그야말로 작은 봄맞이꽃입니다. 할미꽃이나 참꽃처럼 제법 알아보기 쉬운 커다란 꽃이 있고, 현호색이나 복수초처럼 환하게 빛나는 꽃이 있어요.


  제비꽃과 같은 앉은뱅이꽃이라 할 민들레도 꽃송이가 눈에 잘 뜨여요. 푸릇푸릇 돋는 풀밭에서 보랏빛 제비꽃은 좀처럼 안 보인다 할 테지만, 아직 풀이 우거지지 않은 봄숲에서는 보랏빛 꽃송이도 꽤 잘 보입니다.


.. 봄기운이 가득한 길가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 있어요. 보랏빛 꽃이 제비꽃이에요 ..  (2쪽)


  민들레는 꽃이 지고 나서 꽃대가 껑충 오릅니다. 멀리멀리 씨앗을 날리려고 고개를 높이높이 뻗습니다. 바람이 분다든지, 아이들이 꽃대를 꺽어 후후 날립니다. 민들레는 그야말로 멀리멀리 새끼들을 보내어 새롭게 뿌리내려 자라도록 합니다.


  제비꽃은 꽃이 지고 나더라도 꽃대가 오르지 못합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제비꽃 작은 송이마냥 작은 씨주머니를 맺고, 깨알보다 더 작은 씨톨을 내놓아요.


  민들레꽃씨 날리는 아이들은 많아도, 제비꽃씨 터뜨리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제비꽃이 진 뒤 제비꽃씨 맺은 줄 알아차리는 아이들부터 드물다고 할 만해요. 제비꽃씨 있는 줄 모르니, 제비꽃씨 터뜨리며 놀지 못할 만해요.


.. 벌이 제비꽃 꽃잎에 앉았어요. 머리를 꽃 속에 깊숙이 들이밀고 기다란 입을 꿀샘에 넣고 있어요 ..  (10쪽)

 

 

 


  어느 누구도 민들레를 따로 심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냉이를 따로 심지 않습니다. 씀바귀 씨앗이나 고들빼기 씨앗을 뿌려서 퍼뜨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질경이 씨앗이나 쑥 씨앗을 받아 뿌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상추씨를 뿌리고 시금치씨를 뿌립니다. 무씨를 심고 배추씨를 심어요. 이들 씨앗은 참말 따로 심어야 잘 자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누군가 꼭 심는 씨앗이 자라야 밥을 얻나요. 누군가 꼭 심는 씨앗이 없으면 굶어야 할까요.


.. 높다란 돌담을 기어오르는 개미가 있어요. 제비꽃 씨앗을 입에 물고 있네요. 떨어뜨리지 말고 나르렴. 가까운 곳에 개미집이 있나 보구나 ..  (23쪽)


  야자마 요시코 님이 빚은 그림책 《제비꽃과 개미》(한림출판사,2004)를 읽습니다. 조그마한 제비꽃 한살이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곱게 담은 그림책을 읽습니다. 제비꽃이 처음 작은 떡잎 내놓고 자라는 모습부터, 어미 제비꽃이 시들고 새끼 제비꽃이 새롭게 자라는 모습까지,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제비꽃 둘레에는 제비꽃한테서 꿀을 얻는 작은 벌이 있고, 제비꽃 씨앗을 물어 먹이로 삼으려는 개미가 있습니다.


  벌이 있어 제비꽃은 씨앗을 맺을 수 있습니다. 개미가 씨앗을 물어 나르다가 그만 톡 떨어뜨리는 바람에 이곳저곳에서 제비꽃은 새롭게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제비꽃은 벌과 개미가 있어 고맙습니다. 벌과 개미는 제비꽃이 있어 고맙습니다.


  사람은 제비꽃이 고마울까요. 제비꽃은 사람이 고마울까요. 사람은 제비꽃을 곱다 여기며 빙그레 웃으며 들여다보나요. 제비꽃은 사람이 반갑기에 봉오리 활짝 벌려 방긋방긋 인사를 할까요.


.. 엄마 제비꽃에서 멀리 떨어져서 이곳에도 싹을 틔웠구나 ..  (26쪽)


  작은 꽃 사랑하는 눈길이 되어 이 땅을 사랑합니다. 작은 꽃 아끼는 손길이 되어 이웃을 아낍니다. 작은 꽃 쓰다듬는 마음길이 되어 마을과 고을과 고장을 얼싸안아요. 작은 빛이 모여 아름다운 빛 되고, 작은 꿈이 모여 아름다운 삶 됩니다.


  천천히 길을 걸어요. 천천히 길을 걷다가도 살며시 멈추어요. 하늘을 올려다보고 땅을 내려다봐요. 나뭇줄기를 가만히 품에 안아요. 조그마한 꽃송이나 잎사귀를 보드랍게 쓰다듬어요.


  꽃을 바라보는 눈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됩니다. 꽃내음 맡는 매무새가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매무새가 됩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봄이 오면 온갖 들꽃이 들내음 듬뿍 베푸는 따사로운 이야기 펼칩니다. 4346.12.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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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2-11 15:41   좋아요 0 | URL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자연을 사랑할 줄 알고 그런 사람은 좋은 사람일 겁니다.
사람이니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겠으나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겠죠.
아이들에게 자연을 알게 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특히 도시 아이들에겐요...

숲노래 2013-12-11 17:30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이런 책들 모두 도시 아이들 읽히려고 나와요.
다만, 이 아름다운 웬만한 자연그림책은 거의 다
일본에서 1950~80년대에 만든 책들이에요.
2000년대에 접어들고 2010년대가 되어도
아직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창작 자연그림책'이 잘 태어나지 못해요.
애써 나와도 깊고 넓게 들여다보지 못하고요.

이 제비꽃 그림책은 일본에서 1995년에 처음 나왔군요.
시골 아이들은 자연그림책 들여다보지 않아도 될 만했지만,
이제는 시골에서도 참말 시골아이는 드물고
거의 다 읍내나 면내 아이가 되다 보니,
시골에서도 이런 자연그림책 읽히면서 '자연을 알도록' 해야 한답니다...
 
오늘은 내 생일이야 즐거운 유치원 2
나카가와 히로타카 지음, 이정원 옮김,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 보물상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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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20

 


나 스스로 기리는 삶
― 오늘은 내 생일이야
 하세가와 요시후미 그림
 나카가와 히로타카 글
 이정원 옮김
 보물상자 펴냄, 2010.5.20.

 


  어머니들은 으레 물고기 몸통을 아이들한테 내주고 이녁은 머리나 꼬리만 먹는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철없는 사람들은 어머니는 머리와 꼬리만 좋아하는구나 하고 잘못 알기도 한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쩜 그리 모를까?’ 하고 느낍니다. 나는 어릴 적에도 우리 어머니가 물고기 몸통을 발라서 내 밥그릇에 얹으실 적에도 ‘어머니는 왜 안 드실까?’ 하고 생각하며, 어머니가 안 볼 적에 넌지시 어머니 밥그릇으로 옮겨 놓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나중에 알아채기 마련이라, 어머니 밥그릇으로 옮긴 물고기 살점을 다시 내 밥그릇으로 옮기셨어요.


.. 누구나 생일이 있어요. 여러분은 갓 태어났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3쪽)


  어머니와 아버지 보살핌을 받으며 무럭무럭 큰 아이는 어느덧 고운 짝을 만나 새로운 살림을 꾸리면서 어여쁜 아이들 낳습니다.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새롭게 어버이 노릇을 하면서 새롭게 태어난 아이들을 보살피고 사랑합니다. 이 아이들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가기를 빌면서 물고기 살점을 밥그릇에 바지런히 발라 주고, 풀과 밥을 알뜰히 먹도록 거듭니다. 다 같이 즐겁게 먹기를 바라며 풀을 뜯습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기를 바라며, 도시를 떠나 시골에 조그마한 보금자리 가꿉니다. 여름에는 그늘이 짙푸르고 겨울에는 푸른 잎사귀 사랑스러운 후박나무 있는 마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우리 시골마을에서 놀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서 이 시골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고, 다른 마을이나 도시로 나가서 지낼 수 있는데, 우리 식구한테는 이 시골집 있어 언제라도 이 품에 안길 만해요. 풀바람 쐬고 풀내음 먹으며 풀빛 누릴 시골살이가 사랑스럽습니다.

 

 


.. 넌 밤마다 잘 안 자고, 잘 우는 아기였어. 젖을 물려도, 안고 얼러도 응애응애 울기만 했지 ..  (16쪽)


  생일잔치라고 따로 복닥복닥 차리지는 않습니다. 네 식구 살림이면 한 해에 생일잔치 네 차례 있는데, 네 차례 모두 밥상을 조금 더 꾸밀 뿐, 딱히 남다르지는 않습니다. 생일을 맞이해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겁니다. 생일을 맞이해 그동안 걸어온 나날을 돌아봅니다. 생일을 맞이해 앞으로 누릴 삶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하루하루 즐겁게 누리는 삶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즐기는 삶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활짝 웃을 적에 기쁩니다. 어른도 아이도 기운내어 일하고 땀내어 놀 적에 재미있습니다.


  생일떡이나 생일빵이나 생일케익이 꼭 있어야 하지 않아요.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으면 돼요. 서로를 사랑하는 넋이 있으면 돼요. 다 함께 살아가는 이 조그마한 집과 마을 보듬는 눈길 있으면 돼요.


  먼먼 옛날부터 바람을 마시고 물을 들이켜며 밥을 먹는 사람이에요. 자동차는 없어도 되고, 아파트는 없어도 됩니다. 학교 졸업장은 없어도 되고, 이런저런 자격증은 없어도 됩니다. 돈이 넉넉하대서 살림을 잘 꾸리지 않아요. 학교를 오래 다녔대서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아요. 사랑이 있을 때에 짝을 지어 살림을 꾸리고는 아이를 낳아요. 사랑이 있을 때에 밥을 맛있게 짓고 빨래를 정갈하게 해요. 사랑이 있을 때에 마을이 이루어지고 지구별이 포근해요.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전쟁이나 미움이나 따돌림 같은 슬픈 굴레가 찾아들 테지요. 사랑이 없으면 돈이 넉넉하더라도 나눌 줄 모를 테지요. 사랑이 없으면 학력차별이나 계급차별처럼 안쓰러운 바보짓이 넘실거릴 테지요.

 

 


.. 배가 아파서 아기를 낳을 때 도와주는 산파 할머니네까지 걸어가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쿵 찧고 말았단다 ..  (29쪽)


  하세가와 요시후미 님 그림이랑 나카가와 히로타카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오늘은 내 생일이야》(보물상자,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린이집에서 생일잔치를 하기 앞서 ‘저마다 어떻게 태어나 사랑받으며 자랐는가’ 하는 이야기를 어버이한테서 듣자고 합니다. 그래요, 생일잔치란 케익을 앞에 놓고 선물을 받는 자리가 아니에요. 나를 낳은 사랑을 돌아보는 자리예요. 나를 낳은 사랑이 어떤 웃음과 눈물로 고운 빛을 노래했는가 되새기는 자리예요.


  생일 맞이한 밥상이 여느 날과 똑같대서 서운하거나 아쉬울 일 없어요. 무엇을 먹든 입이 아닌 마음으로 먹을 줄 알면 돼요. 밥 한 그릇 어떤 사랑과 숨결 담아 지어서 차리는가 읽을 줄 알면 돼요.


  숨을 쉴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가요. 숨을 쉴 수 있도록 풀과 나무가 우리 곁에 있어 얼마나 고마운가요. 물을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요.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냇물과 골짝물 흐르고 바다가 드넓게 펼쳐지니 얼마나 고마운가요. 밥을 먹을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가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시골이 넓고 푸르며, 논과 밭뿐 아니라 숲과 들이 싱그러이 춤추니 얼마나 고마운가요.


  나를 낳은 어버이와, 우리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 또 이 어버이를 낳은 어버이를 차근차근 되새깁니다. 모두들 같은 지구별에서 같은 바람과 물과 풀을 먹으면서 숨결을 이었어요. 내 핏줄기에는 먼먼 옛날부터 흐르던 바람과 물과 풀이 고스란히 흘러요. 아름다운 빛이 아름다운 사랑 되어 내 몸을 이루고 내 마음을 밝힙니다. 내가 내 나이 한 살 보태어 빙그레 웃음지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 어버이와 우리 아이들 삶을 한결 따사롭게 보듬는 사랑으로 즐거운 하루 됩니다. 4346.1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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