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뱅상 지음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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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2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
― 떠돌이 개 (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그림
 열린책들 펴냄, 2003.4.20. (별천지 다시 펴냄, 2009.10.30.)

 


  2014년 2월 첫머리에 우리 집에 개 한 마리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처음부터 우리 집에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개 한 마리 나타났습니다. 마을 이곳저곳을 빙빙 돌다가 마을 할매가 지나가면 꼬리를 살랑살랑 치면서 잰걸음으로 좇습니다. 이러다가 나를 보면 나를 좇고,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을 좇습니다. 마을에 개를 키우는 집은 딱 한 곳 있지만, 아주 덩치 큰 시베리안 허스키인데, 그 집 빼고 개를 아무도 안 키워요. 그 집에서도 토실토실 북슬북슬 개를 키우지 않습니다.


  마을을 이틀째 떠돌던 개는 아이들을 따라 우리 집으로 들어옵니다. 큰아이는 네 살이던 해에 음성 할아버지 댁에 있는 개한테 크게 놀라면서 여러 해 동안 개를 멀리했어요. 아주 조그마한 개만 보아도 울먹이면서 멀리 내빼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일곱 살이 된 뒤 마을을 떠도는 개를 보고는 내빼지 않습니다. “멍멍아, 이리 와 봐.” 하고 부릅니다. 틀림없이 누군가 키우다가 시골마을에 팽개친 ‘집개’로 보이는 떠돌이는 큰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와락 안깁니다. 떠돌이가 되어 배를 한참 곯았구나 싶은 개는 혀를 내밀고 꼬리를 살랑입니다. 마을에 있는 숱한 고양이는 누가 밥을 챙기지 않더라도 이래저래 먹이를 찾습니다. 때로는 마을 할매가 따로 밥을 챙겨서 내밀기도 합니다. 이 개는 어떨까요. 이 개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밥이나마 제대로 먹었을까요.


  국을 끓이고 밥을 말고는 소시지를 몇 점 얹어서 개한테 내밉니다. 개는 밥그릇을 보자마자 덮칠듯이 달려듭니다. “쉿, 쉿, 기다려.” 하고 말한 뒤 마당 한쪽에 내려놓습니다. 떠돌이 개는 곧장 밥그릇을 비웁니다. 그렇다고 한 그릇을 더 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허둥지둥 먹는다면 한참 곯았을 테니 갑자기 많이 먹으면 안 좋아요. 더 달라는 눈빛을 모르는 척합니다. 저녁에 아이들 밥을 차린 뒤에 슬그머니 개밥을 한 그릇 덜어서 내놓습니다. 떠돌이 개는 이틀 동안 밥그릇을 내려놓기 무섭게 비웠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떠돌이 개는 이제 배가 좀 부른지, 밥에 얹은 소시지만 훑어먹습니다. “너, 배부르구나? 어쩜 요렇게 먹니?” 하고 볼따구를 두 손으로 잡고 살살 흔듭니다. “골고루 다 먹으라고 주었잖니.” 물끄러미 지켜보니 개는 한 시간쯤 뒤에 밥을 비웁니다. 저녁에도 이렇게 먹습니다. 이튿날에도, 또 이튿날에도, 밥에 얹은 다른 것만 날름 집어먹은 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밥을 삭삭 비웁니다.


  이러구러 보름이 지나니, 떠돌이 개는 아침에 밥그릇 비우고 우리 집에서 나갑니다. 낮에 살짝 들어와서 밥그릇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그러고는 해가 떨어진 저녁에 들어와서 섬돌에 올라앉아 웅크리고 잡니다. 늦은 저녁에 들어온 모습을 보고는 밥을 마당에 내려놓으면 자다가 일어나서 밥을 먹습니다. 이렇게 열흘을 지냅니다.


  그러고 나서 그제부터 떠돌이 개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레쯤 앞서 새로운 떠돌이 개를 보았습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떠돌이 개도 예전에는 집개였다고 느꼈는데, 새로운 떠돌이 개도 집개인 티가 물씬 나는 한편 목줄까지 있습니다. 새로운 떠돌이 개는 우리 집에 먼저 자리를 잡은 떠돌이 개하고 밥을 나누어 먹습니다. 그러고 닷새가 지난 그제, 우리 집 떠돌이 개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안 보입니다. 사나흘 앞서부터 밤바다 새로운 떠돌이 개가 우리 집 마당으로 와서 자꾸 얼쩡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눌러앉은 떠돌이 개 곁에서 함께 자지는 않고 마당을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무슨 뜻이었을까요. 저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살자는 뜻이었을까요. 저하고 함께 나그네 되어 새로운 마을로 돌아다니자는 뜻이었을까요. 집개로 지내면서 실컷 뛰지도 못하고 달리지도 못하던 아쉬움을 풀자는 뜻이었을까요.


  우리 집에 눌러앉으며 한 달을 함께 지낸 떠돌이 개는 처음에는 달리지 못했습니다. 걸음도 되게 느렸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고 논둑길을 달릴라치면 어정어정거리면서 가까스로 따라오다가 저 뒤로 한참 처졌어요. 그런데, 스무 날쯤 될 무렵부터 달리더군요. 우리 마을에 깃든 지 스무 날쯤부터 이장님네 짐차 꽁무니를 좇아 제법 잘 달립니다. 아하, 네가 아침에 밥을 먹고 이렇게 하루 내내 이곳저곳 뛰고 달리면서 돌아다니는구나.


  우리 집 아이들은 떠돌이 개가 우리 집에 그대로 눌러앉지 않아서 못내 서운합니다. 그렇지만 아쉽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개는 왜 밖에서 살아?” “개는 처음부터 밖에서 사는 짐승이야. 고양이도 밖에서 살지. 제비도 딱새도 까치도 밖에서 살아.” “사람은?” “사람도 처음에는 숲에서 살았어. 그러다가 이렇게 집을 지어서 집에서 살지만, 집보다 들과 바깥에서 움직이며 일하지.”

 


  지난 한 달은 떠돌이 개가 홀로서기를 하는 기운을 모으는 때였으리라 느낍니다. 한 달 동안 알맞게 밥을 먹으면서 기운을 되찾는 한편, 시골을 두루 누빌 다리힘을 찬찬히 붙이는 때였으리라 느낍니다. 이 개가 십일월이나 십이월이 아닌 이월에 우리 마을에 와서 그나마 낫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겨울이 끝나는 달에 와서 새봄이 막 열리는 달에 홀로서기를 하는 셈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들마다 풀이 돋고 딸기꽃이 피면 떠돌이 개도 한결 느긋하게 이 땅을 누빌 수 있겠지요. 퍽 늙은 개였는데, 봄과 여름과 가을까지 즐겁게 지낼 수 있겠지요.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힘들면, 그때에 또 우리 집으로 찾아오기를 빌어요. 겨울에는 따순 밥과 잠자리를 누린 뒤, 또다시 찾아올 봄에 홀가분하게 골골샅샅 누빌 수 있기를 빌어요. 들개가 되고 숲개가 되며 시골새가 되어 온몸에 푸른 숨결 새록새록 받아들일 수 있기를 빌어요. 떠돌이 개 두 마리는 서로 아끼며 잘 지내리라 믿습니다.


  가브리엘 벵상 님이 빚은 그림책 《떠돌이 개》를 새삼스레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떠돌이 개는 처음부터 떠돌이 개는 아니었습니다. 사랑받는 개였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던 개였습니다. 어여쁜 개였으며, 착한 개였습니다. 이 개는 왜 버림받아야 했을까요. 이 개를 버린 사람은 어떤 마음이요 어떤 삶일까요.


  개는 떠돌이가 되었지만,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집개도 떠돌이도 아닌 들개라는 숨결을 깨닫습니다. 들에서 살고 들바람을 마시면서 들빛으로 고운 숨결인 줄 느낍니다. 그림책 《떠돌이 개》에서는, 개와 똑같이 떠돌이로 지내는 아이를 만나요.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은 다른 손님을 만납니다. 마음으로 아끼고 마음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는 벗이 있기에 삶이 맑게 빛나는구나 싶습니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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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3-09 22:49   좋아요 0 | URL
새로운 이름 지어주며 알콩달콩 살줄알았는데, 또 다른 친구 사귀며 다른곳으로 떠났군요.
부디 함께살기님 말씀대로 큰 어려움없이 둘이 친구가 되어 상처받지 말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어요.

숲노래 2014-03-10 05:56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마음을 써 주시는 보슬비 님 같은 분이 있으니,
그 개 두 마리는 서로 아끼면서
새로운 삶 가꾸면서 하뤃루
즐겁게 뛰놀고 노래하리라 믿습니다..

hnine 2014-03-10 07:30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떠돌이개는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울리고 가는 말이네요. '떠'돌이라는 우리 말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요.

이분 원작의 영화가 얼마전에 극장에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깜박 잊고 있다가 생각났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알아봐야겠어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인가? 아마 제목이 그랬던것 같아요.

숲노래 2014-03-11 01:34   좋아요 0 | URL
셀레스틴느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어린이'와 '인형'과 '개'를 놓고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두루 빚은 분인데,
한국에서는 아직 널리 사랑받지 못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알뜰히 사랑받지 싶어요.

그림책 <떠돌이 개>뿐 아니라 <작은 인형>이든 <곰인형의 행복>이든
모두 '외톨이가 된 숨결'이 스스로 삶을 찾거나 사랑스러운 빛을 찾는
줄거리를 보여주어요. 다른 이가 보기에는 '떠돌이'일는지 모르지만,
저마다 스스로 아름다운 넋이라고 밝혀 준다고 할까요.

참으로 예쁜 그림책들이에요.
 
로지의 작은 집 웅진 세계그림책 89
헬렌 크레이그 그림, 주디 하인들리 글, 김서정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1

 


봄볕을 먹는 봄아이
― 로지의 작은 집
 헬렌 크레이그 그림
 주디 하인들리 글
 김서정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3.3.30.

 


  어제 낮 아이들과 들길을 걷다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은 듯합니다. 고로록 소리가 나기에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는데, 고로록 소리가 다시 들리지 않습니다. 참말 개구리가 깨어나서 고로록 울었으면, 사람 발걸음 소리를 듣고는 울음을 그쳤겠지요. 개구리는 사람 발걸음을 아주 잘 느끼거든요. 걸음을 뚝 멈추어도 곧바로 다시 울지 않아요. 개구리는 잘 알거든요. 덩치 큰 누군가 가까이에 있으면 다시 움직여서 떠날 때까지 꼼짝을 않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새한테 잡아먹힌다고 몸으로 알지 싶어요.


  집으로 돌아오며 날짜를 헤아리니 며칠 뒤면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날입니다. 개구리는 달력 날짜대로 깨어나지 않습니다. 해마다 비슷한 때에 날씨와 바람을 헤아려 씩씩하게 바깥으로 나와요. 논도랑으로 나오고, 물가로 나옵니다. 흙이 촉촉한 풀숲으로 나오고, 못가로 나옵니다. 바야흐로 개구리가 깨어난다면, 개구리한테 먹이가 될 모기와 파리도 깨어난다는 뜻일까요. 아무렴, 그렇겠지요.


.. 로지는 바빠졌어요. “여기가 내 집이래요. 모두 다 내 거래요!” 노래를 부르면서 집 안을 깨끗이 쓸고, 말끔히 닦고, 가지런히 정리했지요 ..  (6쪽)

 


  개구리가 깨어난 뒤에는 풀벌레도 깨어납니다. 풀거미는 진작 깨어났습니다. 집거미는 아직 안 보입니다. 풀밭마다 풀거미가 볼볼볼 기어다니는 모습을 봅니다. 무당벌레도 어느새 깨어났습니다. 아이들 옷자락에 묻어 무당벌레 한 마리 집안으로 들어왔기에 손가락에 살짝 얹어 풀밭에 내려놓습니다.


  꿀벌도 일찌감치 깨어나서 우리 집 언저리를 맴돕니다. 머잖아 나비도 깨어날 테지요. 아침저녁으로 멧새가 우리 집 둘레를 자주 들락거리던데, 곳곳에 나비 번데기나 애벌레가 많은 듯해요. 작은 새들은 나뭇가지를 두루 살피면서 저희 먹이가 있는지 꼼꼼히 알아보겠지요.


  햇볕이 달라지면서 바람도 달라집니다. 겨우내 뭍바람이었다면 이제부터 바닷바람입니다. 높바람에서 마파람으로 달라집니다. 높바람은 차갑고 모질었다면, 마파람은 따사로우면서 보드랍습니다. 다만, 아직 꽃샘추위가 사그라들지 않았으니, 마파람으로 달라지더라도 살짝 서늘하기는 합니다.


.. “음…….” 로지는 잠깐 생각했어요. “그런데 손님들이 집을 잘 찾아올까? 오솔길을 하나 만들어야겠어. 그러면 집 찾기가 쉬울 거야.” 로지는 돌멩이랑 다른 물건들을 모아서 문 앞까지 죽 늘어놓았어요 ..  (10쪽)

 


  따순 날씨는 들과 숲을 깨웁니다. 따순 날씨에 따라 풀이 새로 돋고 꽃이 다시금 피어납니다. 풀과 꽃이 자라는 들과 숲에서는 개구리며 풀벌레며 기지개를 켭니다. 멧새는 부산히 날고, 철새는 따순 바람과 함께 이 땅에 찾아오겠지요. 개구리가 한창 노래하는 사월에는 제비가 먼 바다를 가로질러 이 땅 골골샅샅 시골마을 처마 밑에 깃들리라 생각합니다.


  밭흙도 폭신하고 숲흙도 폭신합니다. 겨울 동안 단단하게 얼고 굳었던 흙이 풀립니다. 쑥이 자라고 갓이 돋으며 유채가 잎사귀 벌리는 땅바닥을 밟으면 말랑말랑 부드러운 기운이 즐겁습니다. 냉이꽃이 하얗게 나부끼는 둘레마다 노랗게 나부낄 유채가 흐드러지겠지요. 꽃다지꽃이 노랗게 하늘거리는 둘레마다 봄나물이 물씬물씬 푸른 내음을 퍼뜨리겠지요.


  어른은 들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들에서 놉니다. 어른은 들일을 하면서 들바람을 쐬고 아이들은 들놀이를 하면서 들숨을 마십니다. 꽁꽁 닫았던 문을 엽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깥에서 지냅니다. 봄이 퍼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이 번지는 잎망울과 꽃망울을 바라봅니다.


.. 저기 봐요! 로지의 손님들이에요. 바다에서, 하늘에서, 세상 모든 땅에서 모두들 로지네 집으로 오고 있어요 ..  (15쪽)


  헬렌 크레이그 님 그림과 주디 하인들리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로지의 작은 집》(웅진주니어,2003)을 읽습니다. 그림책 《로지의 작은 집》에 나오는 어린 로지는 바람이 따숩게 부는 어느 날 인형을 수레에 싣고 들마실을 나옵니다. 어린 로지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께로 나들이를 갑니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에는 구멍이 났고, 구멍을 따라 들어가면 나무 안쪽에 아늑한 자리가 있어요.


  어린 로지는 나무 안쪽을 ‘내 집’으로 삼습니다. 슥슥 비질을 하고 문패를 걸며 책을 둡니다. 인형하고 소꿉을 하고는 나무 둘레를 문간이자 마당으로 삼습니다. ‘로지네 나무집’에 손님들을 부릅니다. 손님들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즐겁게 찾아옵니다. 로지는 나무집에서 하루 내내 신나게 놉니다. 해가 기울 때까지 참말 재미나게 놀아요. 해가 기울 무렵 인형을 다시 수레에 태우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요.


  로지한테는 따로 또래동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들에서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무가 모두 로지한테 동무입니다.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로지한테 동무입니다. 작은 풀짐승도 로지한테 동무입니다. 로지는 심심할 일이 없습니다. 로지는 쓸쓸할 일도 없습니다. 즐겁게 들놀이를 합니다. 하루 내내 들놀이를 즐깁니다. 가슴 가득 들빛을 담으면서 들노래를 부릅니다. 누가 가르쳐 주는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스스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스스로 놀면서 큽니다. 생각날개를 펴고, 숲바람을 마시면서, 천천히 차근차근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랍니다. 봄에 봄빛을 누리는 아이들은 봄아이가 됩니다. 여름에 여름볕 먹는 아이들은 여름아이가 되겠지요. 아이들은 철마다 다른 햇빛과 햇볕과 햇살을 맞아들이면서 까무잡잡 야무진 아이로 우뚝 섭니다. 4347.3.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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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씨앗이 터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생태놀이터 1
곤도 구미코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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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0

 


씨앗 한 톨이 살리는 숨결
― 톡 씨앗이 터졌다
 곤도 구미코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한울림어린이 펴냄, 2007.5.2.

 


  봄이 되어 빈터마다 새싹이 돋습니다. 논둑과 밭둑에도 새싹이 돋습니다. 마당과 숲에서도 새싹이 돋아요. 새싹은 풀싹이면서 나물입니다. 새싹은 푸르게 돋으면서 싱그러운 풀내음을 퍼뜨립니다. 새싹이면서 풀싹이요 나물을 톡톡 손가락으로 끊습니다. 곧바로 입에 넣기도 하고, 물로 헹구어 하얀 접시에 올려 밥상에 놓기도 합니다. 나물이자 풀싹이요 새싹을 입에 한 줌 넣어 야금야금 씹으면 온몸으로 봄내음이 확 퍼집니다.


.. 씨앗들아, 반가워 ..  (4쪽)


  가을에 떨어진 씨앗이 봄에 돋습니다. 겨울을 견딘 씨앗이 봄부터 하나둘 깨어납니다. 모두들 겨우내 찬바람과 흰눈을 먹고 마시면서 흙 품에서 봄을 기다렸습니다. 저마다 겨울 동안 흙 품에서 시든 풀잎 이불을 덮고는 포근하게 쉬면서 봄을 바랐어요.


  사람들은 봄을 맞이해 씨앗을 심기도 합니다. 손수 길러서 먹고 싶은 푸성귀 씨앗을 심습니다. 사람들이 따로 심는 씨앗은 알뜰살뜰 보살피는 손길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심은 씨앗에서 돋는 싹이나 잎이나 줄기가 아니라면 석석 베어서 없애곤 합니다. 때로는 약을 뿌려 태워 죽이기도 합니다. 농약을 맞는 풀은 그냥 죽지 않습니다. 잎사귀와 뿌리가 농약 기운에 타서 지글지글 까맣게 죽습니다.


  논일과 밭일을 하며 김매기로 고단하다고도 하는데, 김매기를 하면서 뽑는 풀이란 모조리 나물입니다. 여느 때에는 나물이지만, 밭이나 논을 가꿀 적에는 ‘김(잡풀)’이 됩니다.


  언제부터 풀은 풀이 아닌 김이 되어야 했을까요. 여느 때에는 온갖 나물을 훑어서 먹는데, 왜 밭을 가꿀 적에는 농약을 뿌리거나 김매기를 해야 할까요. 식구가 많고 아이들이 여럿이라면 나물뜯기나 나물캐기를 할 텐데,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줄면서 일손 또한 사라져, 풀을 싫어하는 삶으로 바뀌지 않나 싶습니다. 시골에서도 푸성귀를 내다 팔아야 하기에, 여느 나물을 뜯어서 먹는 흐름이 사라지지 싶어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북적거리고, 굳이 푸성귀를 내다 팔지 않으면서 조용하고 오붓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늘면, 김이나 잡풀이란 말은 사라지면서 나물살이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 쉬잇! 모두 잠들었어 ..  (19쪽)


  곤도 구미코 님이 빚은 그림책 《톡 씨앗이 터졌다》(한울림어린이,2007)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씨앗이 처음 톡 터지면서 얼마나 어떻게 퍼지는가를 아기자기하게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풀씨는 아주 작은 만큼, 이 그림책에는 ‘사람’은 나오지 않습니다. ‘풀벌레’가 그림책 주인공입니다. 풀벌레는 저마다 풀씨 둘레에서 즐겁게 어우러져 놉니다. 풀벌레는 봄에 깨어나 여름에 놀다가 가을에 천천히 쉬고는 겨울에 잠듭니다. 곰곰이 따진다면 씨앗도 이와 같아요. 씨앗은 봄에 깨어나 뿌리를 내리면서 싹을 틔우고, 여름에 한껏 뻗은 다음 가을에 다시금 톡톡 터뜨려 퍼집니다. 겨우내 고이 잠들었다가 새봄에 새삼스레 깨어나요.


  씨앗 한 톨이 살리는 숨결입니다. 풀벌레도 씨앗 한 톨이 살립니다. 사람도 씨앗 한 톨이 살립니다. 밭에 푸성귀 씨앗을 심든, 풀씨가 들판에 풀풀 날리든, 씨앗이 땅에 떨어져 푸르게 돋지 않으면, 풀벌레도 사람도 살아갈 수 없어요. 풀씨와 나무씨가 날려 지구별이 푸르게 물들어야 풀벌레와 사람 모두 살아갈 만합니다.


  풀바람이 불어 모든 목숨이 살아요. 풀내음이 번져 모든 목숨이 노래합니다. 풀빛이 밝으면서 모든 목숨이 까르르 웃습니다.


  풀잎을 어루만집니다. 풀줄기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풀꽃을 빙그레 웃으며 들여다봅니다. 두 손 가득 풀물이 들도록 풀을 만집니다. 풀이 자라면서 푸른 마음이 되고 푸른 사랑을 그립니다. 풀과 함께 삶이 빛납니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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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집 보기 - 치히로 아트북 3,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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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9

 


하루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 비 오는 날 집 보기
 이와사키 치히로 글·그림
 프로메테우스 출판사 펴냄, 2002.10.10.

 


  아침 일찍 곁님이 집을 나섭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픈 곁님은 이녁 몸과 마음에 깃든 아픈 뿌리를 스스로 찾아서 달래려고 애씁니다. 쉬운 일일는지 어려운 일일는지 모릅니다. 다만, 곁님한테 아픔이 찾아들었으면 아픔이 찾아든 까닭이 있을 테지요. 내가 아픈 사람하고 같이 살아간다면, 나도 아픈 사람하고 같이 살아가는 까닭이 있을 테지요. 우리 집 두 아이가 아픈 이를 어머니로 두었으면, 아이들로서도 아픈 이를 어머니로 둔 까닭이 있을 테지요.


  아이들이 깊이 잠든 이른아침에 집을 나섭니다. 곁님은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 첫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갑니다. 읍내에서는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탈 테고, 순천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구례로 갈 테며, 구례에서 이웃을 만나 함께 공부할 곳으로 갈 테지요.


  아이들은 어머니가 아침에 집을 비운 줄 느즈막하게 알아차립니다. 어머니 없이 지낸 나날이 제법 길기도 해서, 어머니가 또 ‘공부하러’ 나간 줄 깨닫습니다. 두 아이는 마당에서 뛰놀면서 멧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두 송이 핀 동백꽃을 바라봅니다. 몽오리 단단하고 발그스름하게 맺힌 후박나무 밑에 있는 평상에 앉아서 그림놀이도 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붓에 물감을 묻혀 “어머니 사랑해 좋아해” 하고 파란 빛깔로 글씨를 적습니다.


.. 엄마가 어디까지 갔는지 보고 올래 ..  (2쪽)

 


  거의 모든 사람들 귀에는 멧새와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노래’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 귀에는 풀벌레와 개구리와 맹꽁이가 우는 소리가 ‘노래’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 귀에는 물결소리도 ‘노래’요, 바람소리도 ‘노래’입니다.


  그러면, 자동차나 경운기 지나가는 소리도 노래가 될까요? 비행기 날아가거나 손전화 울리는 소리도 노래가 될까요?


  어떤 사람은 손전화 울리는 소리를 ‘대중노래’로 바꾸곤 하는데, 이렇게 바꾸면 손전화 울리는 소리는 언제나 노래라고 할 만할까요?


.. 빗방울도 노래를 하고 있네. 참 엄마가 손가락 빨면 안 된댔지 ..  (10쪽)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책 《비 오는 날 집 보기》(프로메테우스 출판사,2002)를 읽습니다. 어머니가 바깥일을 보러 집을 비우는 동안 아이 혼자 집을 보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이제 아이는 제법 컸기에 혼자서 집을 봅니다. 웬만하면 어머니와 함께 마실을 갈 법한데, 처음으로 혼자서 집보기로 한 듯합니다. 아이로서는 어머니와 따라 마실을 가는 일도 즐겁지만, 두근두근 설레면서 혼자서 집보기를 하는 일도 즐겁습니다. 처음 겪는 새롭고 재미난 놀이요 삶입니다.


.. 유리창에 내 소원을 써 보았어 ..  (21쪽)


  언제나 아이와 함께 마실을 다니거나 저잣거리에 가셨을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이만 혼자 집에 두고 나서는 길’이 얼마나 설렜을까요. 아이가 집에서 혼자 잘 있는지 얼마나 두근거리면서 궁금할까요. 어머니도 웬만하면 아이와 함께 마실을 가고 싶었겠지요. 어머니도 아이와 함께 마실을 갈 적에 훨씬 즐거웁겠지요.


  그러나, 어머니도 아이도 자라야 합니다. 어머니도 아이도 스스로 씩씩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 품에서 벗어나 씩씩하게 두 다리로 섭니다. 어버이도 아이를 살그마니 놓아 주면서 씩씩하게 두 팔로 기지개를 켭니다.


  새끼 제비는 날갯짓을 익혀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합니다. 어미 제비는 다 큰 새끼 제비한테까지 먹이를 물어다 주지 않습니다. 어미 제비라면 훨씬 쉽고 빠르게 먹이를 잡을 테지만, 아이가 크기를 바라니, 눈물을 삼키면서 고개를 홱 돌립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니, 아이 혼자서 집보기를 시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뛰놀기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가 저희끼리 마당에서 스스로 놀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서 놀기를 바라면서 살그마니 지켜봅니다.


  유리창에 꿈을 손가락으로 적어 봅니다. 마음밭에 사랑을 가만히 씨앗 한 톨로 심습니다. 하얀 종이에 우리 이야기를 그림으로 곱게 그립니다. 가슴속에 부푼 이야기를 그득그득 담습니다. 하루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4347.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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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은 여우 내 친구는 그림책
이사미 이쿠요 글.그림 / 한림출판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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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6

 


사람이 참새보다 낫지 않다
― 알을 품은 여우
 이사미 이쿠요 글·그림
 허앵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1994.5.1.

 


  가끔 도시로 일을 하러 다녀옵니다. 전남 고흥은 어느 도시하고도 참 먼 시골이기에, 어디로든 도시로 일을 하러 가자면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섭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적에는 언제나 저녁별이나 밤별을 등에 업습니다.


  엊그제 이틀치기로 서울과 인천을 다녀오면서 밤 열두 시 언저리에 고흥에 닿았습니다. 서울과 인천에서는 별을 보지 못했고 별을 볼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인천은 서울보다 건물이 낮지만, 시골처럼 한 층짜리 집이 죽 늘어서지는 않습니다. 골목동네에서도 곳곳에 빌라가 많으니 별바라기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늘이 너무 좁아요. 서울에서는 밀려드는 자동차 물결 때문에 하늘 볼 틈이 없지요. 게다가 깊은 밤까지 불빛이 밝은 서울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별이건 달이건 떠올리지 않으리라 느껴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흥읍에서 내려 택시를 불러 탑니다. 택시 창밖으로 별을 봅니다. 읍내를 벗어난 택시는 바다도 멧자락도 들도 하늘도 모두 깜깜한 길을 조용히 달립니다. 이곳에서는 택시나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서 별바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택시를 내립니다. 천천히 걸어 집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낮 동안 마당에서 놀며 어지른 것을 치웁니다. 마루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루며 방이며 부엌이며 어지럽습니다. 몸이 고단하지만 이대로 두고 쓰러질 수는 없습니다. 한참 치우고 걸레질을 합니다. 한숨을 돌리려고 마당으로 다시 내려섭니다. 별바라기를 합니다. 이 좋은 별을 보며 살자고 시골로 왔지, 하고 헤아립니다. 이 좋은 별빛을 받는 시골에서 푸르게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무를 누리자고 조용조용 살아가지, 하고 돌아봅니다.

 


.. “아주 먹음직스러운 알이네. 한입에 삼켜버리자. 아니, 잠깐!” 여우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먹을 거라면 이 알을 따뜻하게 품어서, 태어난 아기 새를 꿀꺽하자.” ..  (2쪽)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을 한참 바라봅니다. 이불을 여미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습니다. 코를 부비고 다리를 주물러 봅니다. 어른인 나와 견주어 조그마한 발을 조물주물 주무릅니다. 이 작은 발로 오늘 하루 얼마나 신나게 뛰놀았니, 이 작은 발로 얼마나 개구지게 뛰고 날면서 하루가 신났니.


  아이들이 있기에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노래하기를 바라니까, 자동차 걱정을 하지 않는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온갖 놀이를 찾아내고 지으면서 자라기를 바라니, 어디에서 무엇을 만져도 근심할 일이 없는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구나 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아파트 아닌 다세대주택에서 살아도 아이들이 집안에서 뛰도록 두기 어렵습니다. 아파트숲 아닌 골목동네에서 살더라도 아이들은 자동차 걱정을 해야 합니다. 나라에서 어린이집 보육비를 대준다 하더라도 썩 반갑지 않습니다. 보육비를 대주는 일보다 어린이집이 어떤 노릇을 하는가를 살펴야지 싶어요. 아이를 낳아 보살피는 삶은 돈으로는 가꾸지 못해요. 아이는 언제나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스럽게 놀고, 사랑스럽게 노래합니다.

 


.. 큰 소리에 여우가 눈을 떠 보니, 족제비가 알을 깨뜨리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크릉, 크릉! 무슨 짓이냐, 내 알이야!” 여우는 새처럼 입으로 쿡쿡 족제비를 찌르며, 털북숭이 꼬리로 힘껏 때렸습니다 ..  (15쪽)


  이사미 이쿠요 님 그림책 《알을 품은 여우》(한림출판사,1994)를 읽습니다.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는 “왜 여우가 알을 품어?” 하고 묻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닌 적 없고 다큐영화도 거의 본 일이 없는 일곱 살 큰아이는 여우가 새끼를 낳는지 알을 낳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요즈막에는 ‘새는 알을 낳는다’는 대목 하나는 조금 알아챘습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보다가 “족제비가 왜 알을 먹으려고 해?” “배고파서.” “족제비가 알을 먹으면 새가 태어나지 못하잖아.” “그러게. 새가 태어나지 못하지. 그런데 족제비는 배고프니까 알을 먹어야 해.”


  큰아이는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요. 아니,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를 어느덧 잊었을까요. 여우도 알을 먹을 생각이었어요. 여우도 알을 먹으려 합니다. 다만, 알에서 새끼 새가 깨어나면 더 맛나게 먹을 생각이에요.


.. 여우는 매일 매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알을 고이고이 품었습니다 ..  (26쪽)


  내가 낳은 목숨이든 남이 낳은 목숨이든 모두 같습니다. 내가 돌보는 목숨이든 남이 돌보는 목숨이든 모두 같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와 내가 씨앗을 심어 돌보는 밭이 서로 같습니다. 내가 쓴 글과 내가 장만한 책이 서로 같습니다.


  목숨은 어디에서나 같습니다. 같은 값이라서 같지 않습니다. 같은 사랑이라서 같습니다.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미국사람이 버마사람이나 라오스사람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어른이 아이보다 낫지 않으며, 아이가 어른보다 낫지 않습니다.


  사람이 참새보다 낫지 않습니다. 이와 똑같이, 참새가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낫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꽃이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모두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목숨이요 숨결이면서 이웃이자 동무입니다. 저마다 한식구를 이루어 저마다 예쁜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 난처해진 여우는 아기 새를 두고 숲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둥지 안에 두고 온 아기 새가 걱정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삐익삐익, 삐익삐익.” 불쌍한 아기 새의 울음소리가 숲 속까지 들려왔습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 ..  (37쪽)


  여우는 새끼 새를 잡아먹지 못합니다. 여우는 새끼 새를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알을 고이고이 품”으며 지냈는데, 이 알에서 깨어난 여린 목숨을 어떻게 잡아먹을까요. 아마 여우는 앞으로 ‘풀 먹는 여우’로 달라질는지 몰라요. ‘풀 먹는 여우’로 살다가, 풀이 아파할까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면, 풀조차 안 먹고 ‘바람과 이슬을 먹는 여우’로 다시 태어날는지 몰라요. 하느님 눈물을 쏙 뺄 만큼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여우로 살아갈 테지요. 하느님 웃음을 빙그레 자아낼 만큼 멋지고 예쁘며 즐거운 여우로 살아가겠지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모두 한마음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은 모두 한넋입니다. 사랑이 가득 담긴 한마음이요, 꿈이 그득 실린 한넋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요.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앉아 땅을 봐요. 가만히 서서 두리번두리번 이웃을 둘러봐요. 눈을 살며시 감고 마음속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느껴요. 우리는 서로서로 어떻게 살아갈 적에 환하게 빛나면서 맑게 노래할 수 있는 숨결일까 헤아려 봐요. 4347.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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