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소중한 보물
사이토우 에미 글, 카리노 후키코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8

 


물려줄 수 있는 사랑이란
― 엄마와 나의 소중한 보물
 사이토우 에미 글
 카리노 후키코 그림
 크레용하우스 펴냄, 2000.4.30.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콩콩 뛰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훨훨 날고 싶습니다.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지내든 시골에 있는 흙집에서 살든, 아이들은 콩콩 뛰고 싶으며 훨훨 날고 싶습니다.


  지난날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콩콩 뛰었고 훨훨 날았습니다. 집에서도 뛰고 마을에서도 날았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마음껏 놀라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이 아니어도 스스로 놀고 뛰면서 웃었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콩콩 못 뛰고 훨훨 못 납니다. 집에서도 못 뛰고 학교나 학원에서도 못 납니다. 아파트에서 1분조차 뛰기 어렵고, 학교에서 목청껏 소리치거나 노래하기 힘듭니다.


.. “인호야, 장난감 상자에 필요 없는 물건이 너무 많아. 정리하면 어떨까?” “으응, 필요 없는 건 하나도 없는데…….” ..  (3쪽)

 


  가만히 돌아보면, 오늘날 어른들부터 쿵쿵 뛰지 않아요. 오늘날 어른들부터 집에서 목청껏 노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스스로 신나게 놀거나 어우러질 줄 모르는 채 집과 마을과 일터가 모두 동떨어집니다. 집과 마을과 일터가 모두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어른이다 보니, 아이들도 어느새 집이랑 마을과 일터가 모두 흩어지거나 동떨어지고 말아요.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는 어른이 없습니다. 노래책을 사거나 노래시디를 들려주거나 텔레비전을 켤 뿐입니다. 스스로 지어서 즐기는 노래를 아이한테 물려주는 어른이 없습니다.


  아이한테 일을 물려주는 어른이 없습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아이들이 물려받아 앞으로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며 살림을 가꾸도록 이끄는 어른이 없습니다. 아이가 직업인이나 회사원이 되도록 학교에 보내기는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삶을 짓거나 살림을 꾸리도록 돕는 어른이 없어요.


  어느 모로 보면, 오늘날 어른들부터 이녁 어버이한테서 삶을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들부터 어릴 적에 학교에만 다니고 학과공부만 하며 시험공부에 얽매여야 했을 뿐, 집안에서 삶을 누리거나 배우거나 물려받지 못했어요.

 


.. “우리 집 마당에 맨 처음 열렸던 귤이란 말야. 엄마랑 아빠랑 나랑 맛있게 나눠 먹었잖아.” “그 귤 껍질을 아직도 갖고 있었니? 새콤달콤 참 맛있었지!” ..  (15쪽)


  사이토우 에미 님 글에 카리노 후키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엄마와 나의 소중한 보물》(크레용하우스,2000)을 읽습니다.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장난감 상자에 온갖 것을 잔뜩 그러모읍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못 버립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모든 것에 이야기를 담았거든요.


  아이 어머니는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치우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제 것을 버리지 말라고 막으면서 아이와 말을 섞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듣습니다. 무턱대고 아이 것을 버리지 않아요. 아이는 한참 어머니하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와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던 어머니는 무엇인가 떠올립니다. 어머니 스스로 ‘아이가 처음 걷던 날 신던 신’을 버리지 않고 건사한 신 한 켤레를 꺼내요.


  아하 그래, 어머니인 나도 아이와 함께 누리던 즐거운 빛을 건사하고 싶어 ‘조그마한 신’을 안 버렸구나, 나중에 아이와 함께 지나온 삶을 돌아보려고 ‘조그마한 신’을 알뜰히 챙겼구나, 집안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아이와 나 사이에 이야기가 없겠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 “엄마, 내 발 좀 봐. 이젠 신을 수도 없는데 왜 버리지 않았어?” “그건 우리 인호가 아기였을 때 처음으로 신었던 신발이니까. 인호가 그 신발 신고 아장아장 걷던 모습을 엄마는 잊을 수가 없단다.” ..  (22쪽)


  물려줄 수 있는 사랑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은 삶입니다. 삶은 사랑입니다. 날마다 피어나는 사랑은 언제나 이야기가 됩니다. 날마다 피어나는 사랑은 아름다운 이야기이니, 입에서 입으로 대물림합니다. 차근차근 물려주는 이야기는 즐겁게 빛나는 삶이요, 먼먼 옛날부터 오늘까지 고이 흐르는 노래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 살아가고, 어버이 또한 어릴 적에 이녁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물려줄 수 있는 삶은 사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물려줄 수 있는 한 가지는 사랑스레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물려줄 수 있는 이야기에는 사랑스러운 삶이 깃듭니다.


  이야기에서 생각이 자랍니다. 사랑에서 꿈이 자랍니다. 삶에서 빛이 자랍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라요. 아이도 이야기밥을 먹고 어른도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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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그림책 - 태어나서 세 돌까지 책읽는 아기
박은영 지음 / 청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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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9

 


함께 읽어 즐거운 그림책
― 시작하는 그림책
 박은영 글
 청출판 펴냄, 2013.4.11.

 


  둘레에 시집장가를 가는 이웃이나 동무가 있으면 으레 그림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둘레에 교사로 일하는 이웃이나 동무가 꽤 있었기에 이들한테는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선물해 주곤 했습니다. 책선물을 얼마나 반겼는지 알 길이 없고, ‘다 큰 어른’이라는 이한테 내미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얼마나 달가이 받아들였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이런 책을 선물할 적에 늘 한 마디를 붙였어요. 나중에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아갈 생각이 있으면 그때 가서 그림책이나 어린이책 살핀다고 애쓰지 말고,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림책을 사귀고 어린이책을 좋아해 주기를 바랐어요. 교사가 되려는 후배한테는 교사법이나 교수법이나 교과서 진도 나가는 지식만 배우지 말고, 그림책과 동화책도 바지런히 읽으면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삶’도 헤아려 주기를 바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만난 사람은 어른이 되어 교사가 되어도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아끼면서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읽히거나 들려줍니다.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만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되거나 교사가 된 이들은 교사 자리에 서더라도 아이들한테 어떤 책을 읽히면 즐거울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기관과 저런 단체에서 추천하거나 권장하는 책은 장만해서 독후감 쓰기를 시킬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마다 다 다른 넋과 숨결을 깊고 넓게 돌아보는 눈썰미가 없기 마련이에요.


.. 부모의 관심사는 오로지 독서 그 자체에만 놓여 있으니 정작 아이는 책 읽어 주기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쓸쓸한 아이가 즐거이 책을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 이유식을 만들어 먹일 때에도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입힐 때에도 아이에 대한 사랑은 바탕처럼 깔려 있지 않은가요 … 아기들을 위한 책 읽어 주기의 목적은 마땅히 대화, 소통, 교감에 있어야 합니다 ..  (4, 16, 18쪽)


  아기는 어머니가 낳습니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으레 아기와 오래도록 살가이 지냅니다. 어머니 자리에 서는 사람은 아기를 낳아 돌보는 한때를 누리기에,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사람보다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고 하기 일쑤입니다. 아기는 아버지가 함께 낳습니다. 아기를 함께 낳는 아버지는 으레 ‘앞으로 돈을 더 잘 벌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자리에 서면서 회사일이나 가게일을 쉬는 일이란 거의 없고, 아기하고 살가이 지낼 겨를을 좀처럼 마련하지 못합니다. 아기한테 노래를 들려주거나 아이가 차근차근 클 무렵 함께 말놀이를 하고 그림놀이를 하며 들놀이를 하거나 책놀이를 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얼마든지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읽을 만합니다.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읽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스스로 즐겁다면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얼마든지 즐기면서 마음밭을 살찌울 노릇입니다. 그런데, 인문책이나 문학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기 어렵습니다.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쓰는 어른은 ‘어른이 읽도록 눈높이를 맞출’ 뿐이에요. 아이와 함께 누리는 책이 아닙니다.


  시집장가를 가지 않든, 아이를 낳지 않든, 우리 둘레에는 늘 아이들이 있어요. 내 아이가 아니라도 이웃 아이가 있으며 동무 아이가 있습니다. 동생이나 언니나 형이나 오빠가 낳은 아이가 있어요. 설이나 한가위에 만나는 가까운 조카가 있습니다. ‘아이키우기’와는 동떨어진 채 살아간다 하더라도 언제나 아이와 만나는 어른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살아가는 스무 살 젊은이도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이부터 할매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란 무엇인지를 여느 때에도 살필 수 있으면 한결 아름답습니다. 아이 낳을 생각이 없고 시집장가 갈 마음이 아직 없는 서른 삶 젊은이도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읽으면서 ‘아이부터 할배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란 무엇인가를 여느 때에도 헤아릴 수 있으면 한결 사랑스럽습니다.


  조카한테 동화책을 읽어 주거나 동시를 함께 읊는 이모나 삼촌이란 얼마나 멋있을까요. 조카와 그림책을 함께 읽거나 그림놀이를 함께 하는 삼촌이나 고모란 얼마나 예쁠까요.


.. 앵두에게 노래를 불러 줍니다. 앵두를 눕혀 놓고 녀석의 머루알 눈에 제 눈을 맞추고, 손으로는 녀석의 말랑말랑한 몸을 주무르며 입으로는 재미난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지요. 그럴 때 앵두는 그 오물입으로 함빡함빡 웃으며 아주 즐거워 하니 … 아빠의 품에 안겨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아이는 그 이야기의 맞고 틀림을 따지는 것이 아닌, 아빠가 나와 놀아 주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온몸이 그리고 온마음이 따끈따끈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37, 85쪽)


  함께 읽어 즐거운 그림책입니다. 함께 들여다보며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극장에 가거나 미술관에 가야 아름다운 그림을 만나지 않습니다. 값싼 그림책 한 권을 펼치면 극장이 흐르고 미술관이 춤춥니다. 이름난 화가 몇 사람이 그리고 역사와 예술에 남는다는 작품을 표를 끊고 전시관에서 들여다보아야 문화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작은 그림책 한 권을 넘기면 아름다운 역사와 사랑스러운 예술이 따사롭게 빛납니다.


  그림책을 읽는 아이는 숲을 읽습니다. 아파트에서도 숲을 읽고 시골에서도 숲을 읽습니다. 그림책을 즐기는 아이는 하늘숨을 마십니다. 서울에서도 하늘숨을 마시고 고흥에서도 하늘숨을 마십니다. 그림책과 노는 아이는 들놀이로 신납니다. 복닥거리는 부산 산복도로에서도 놀고, 한갓진 신안섬 시골마을에서도 놀아요.


  예부터 아이들은 종이책을 따로 만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어버이 일을 거들거나 동생을 돌보는 틈틈이 동구 밖에서 놀고 숲정이에서 놀았습니다. 아이들은 물을 긷고 빨래를 거들면서 흙마당에 작대기로 그림을 그리며 놀았습니다. 아이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지게를 짊어지고 나뭇짐을 나르면서 꽃놀이를 하고 풀내음을 맡았어요.


  예부터 아이들은 학교를 따로 다니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할매와 할배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받아먹으면서 삶을 배웠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와 동생과 언니를 돌보는 매무새를 살피면서 사랑을 배웠어요. 바느질과 절구질과 방아질을 늘 마주하고 키질과 조리질을 거들면서 살림을 배웠어요.


.. 앵두와 함께 그림책을 본다는 것은 글과 그림을 읽는 것을 넘어서 확장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뜻을 지닙니다 … 텔레비전의 해악은 단지 여러모로 비교육적인 프로그램에 따른 부정적 영향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 내용의 질이 어떠하느냐와는 별개로 텔레비전 시청으로 인해 그맘때의 아이들이 충분히 즐겨야 할 지극히 아이다운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서랍을 뒤지고, 소꿉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블록을 가지고 놀아야 할 아이가 텔레비전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습니다. 집안이, 아니 온 우주가 조용합니다 ..  (95, 120쪽)


  박은영 님이 쓴 《시작하는 그림책》(청출판,2013)을 읽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으며 함께 누린 ‘그림책 놀이’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그러모읍니다. 둘째 아이와 주고받은 삶과 사랑과 살림이 어떤 노래인가 하고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아이와 왜 그림책을 읽을까요? 아이한테 왜 그림책을 읽힐까요? 아이하고 함께 즐길 그림책을 어떤 눈썰미로 고를까요? 이웃한테 선물할 만한 그림책을 어떤 마음결로 살필까요?


..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해 줘야 하는 놀이라면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될는지 상당히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제가 큰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그림책 놀이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제 적성과도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 사와 내밀한 만남을 가지지 못한 아이가, 시와 그 시가 가진 다양한 미덕을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  (191, 213쪽)


  《시작하는 그림책》을 읽는대서 그림책을 모두 잘 알 수는 없습니다. 《시작하는 그림책》은 책이름 그대로 ‘그림책으로 나아가는 삶놀이를 여는 첫걸음’입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으로 놀고 노래하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살포시 건드립니다.


  언제나 놀이가 먼저인걸요. 아이한테 학습이나 교육을 시킬 수 없어요. 언제나 놀이가 즐거운걸요. 아이한테 학습이나 교육이 즐거울 수 없어요.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할 적에도 즐거울 노릇이에요. 아이들을 씻기거나 함께 씻을 적에도 즐겁게 웃으면서 노래할 노릇이에요. 아이 손을 맞잡고 저자마실을 다니거나 이웃마실을 갈 적에도 까르르 노래하고 춤출 노릇이에요.


  책마다 온누리 넋이 감돕니다. 책에는 지구별 숨결이 깃듭니다. 그림책 한 권을 손에 쥐면서 파르르 떠는 기쁜 설렘은 아이한테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동화책과 동시집을 펼치면서 빙그레 짓는 웃음은 아이 마음자리에 사랑씨앗으로 한 톨 두 톨 스밉니다.


  어떤 그림책을 골라야 하는가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도 살피고 저 그림책도 읽어요. 아이와 함께 책방마실을 해요. 아이가 스스로 눈여겨보는 그림을 돌아보고, 어버이가 스스로 손을 뻗으며 아낄 만한 그림을 둘러보아요. ‘그림책 추천 도서목록’으로도 두툼한 책 한 권이 될 만해요. 그러니, 추천 도서목록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마셔요. 전문가 서평이나 비평은 즐겁게 읽고 내려놓아요.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보금자리를 누리면서 다 다른 사랑을 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아요. 우리가 우리 아이한테 스스로 물려줄 사랑을 어떤 그림책과 함께 빛낼까를 생각해요. 그러면, 《시작하는 그림책》에서 속삭이는 이야기를 한껏 신나게 받아먹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이한테는 놀이가 삶입니다. 놀이가 삶인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일을 놀이처럼 기쁘게 맞이해서 삶으로 곱게 삭힙니다. 아이는 어떤 놀이이든 스스로 빚을 줄 압니다. 아이를 믿고 보살피면서, 어버이는 어떤 삶을 어떤 놀이로 빛내는가 곰곰이 짚어요. 아이도 어른도 삶은 놀이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삶은 사랑입니다. 그림책은 늘 우리한테 삶과 사랑을 속삭여요. 그림책은 언제나 우리한테 꿈과 빛을 노래해요. 4347.4.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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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1 1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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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2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말론 할머니 - 작은 책 2
엘리너 파전 지음, 에드워드 아디조니 그림, 강무홍 옮김 / 비룡소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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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7

 


할머니가 계신 나라
― 말론 할머니
 엘리너 파전 글
 에드워드 아디조니 그림
 강무홍 옮김
 비룡소 펴냄, 1999.1.22.

 


  새가 노래하는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즐겁습니다. 새는 날마다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면서 우리 마음을 포근하게 적십니다. 개구리가 노래하는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기쁩니다. 개구리는 날마다 푸른 노래를 들려주면서 우리 마음을 싱그럽게 보듬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곳은 아름다운 보금자리입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보금자리에서 살아야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러운 둥지에서 살아야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다움이나 사랑스러움과 동떨어진 곳에서 지낸다면 누구나 괴롭기 마련입니다.


.. 호젓한 숲가에 / 말론 할머니 혼자 / 가난하게 살고 있었네 ..  (3쪽)

 


  커다란 집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작은 집이 아름답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꿈꾸고 노래할 수 있는 집이 아름답습니다. 넓은 집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좁은 집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스스로 이웃을 품고 동무를 아낄 수 있는 집이 사랑스럽습니다.


  돈을 더 벌어야 하지 않고, 돈을 덜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꿈꾸는 길로 나아가면서 곱게 노래할 수 있는 삶이면 됩니다. 스스로 빛나는 하루를 일구면서 착하게 춤출 수 있는 삶이면 넉넉합니다.


  새가 노래하는 곁에서 사람도 함께 노래합니다. 개구리가 노래하는 옆에서 사람도 같이 노래합니다. 새는 새대로 노래하고 사람은 사람대로 노래하지요. 개구리는 개구리답게 노래하고 사람은 사람답게 노래합니다. 서로 가장 즐거우면서 환한 눈빛으로 어깨동무합니다. 다 같이 가장 신나면서 맑은 눈망울로 춤을 춥니다.


.. 창가에는 조그만 참새 한 마리 / 파리한 모습으로 눈이 반쯤 감긴 채 / 부리마저 얼어붙어 있었네. / 할머니는 얼른 창문을 열어 / 작은 새를 안으로 들이고, / 살며시 품에 안고 쓰다듬어 주었네. / “작은 새야, 몹시 지치고 더러워졌구나. / 여기에 네가 지낼 곳이 있단다.” ..  (13쪽)

 

 


  엘리너 파전 님은 시를 씁니다. 엘리너 파전 님이 쓴 시에 에드워드 아디조니 님이 그림을 그립니다. 작은 글에 작은 그림이 붙어 《말론 할머니》(비룡소,1999)라는 그림책이 1962년에 처음 태어납니다. 한국에는 1999년에 나옵니다.


  그림책 《말론 할머니》는 ‘말론 할머니’가 보낸 마지막 이레를 보여줍니다. 말론 할머니가 이녁 삶에서 마지막 이레를 어떻게 누리는가를 보여줍니다. 말론 할머니가 이 땅에서 마지막 이레를 어떻게 밝히는가를 보여줍니다.


.. 할머니는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네. / “어느덧 하나 둘씩 우리 식구가 늘었구나. / 하지만 아직도 한 마리쯤은 더 있을 곳이 있구나.” ..  (27쪽)


  말론 할머니는 죽었을까요? 몸뚱이로 보자면 숨을 쉬지 않고 반듯하게 누웠으니 죽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말론 할머니가 건사한 당나귀와 참새와 고양이와 여우와 곰은? 말론 할머니를 짊어지고 하늘나라로 찾아간 이들 숲짐승은? 숲짐승도 함께 죽었기에 하늘나라로 갔을까요? 이들 숲짐승이야말로 숲동무로서 ‘천사’가 아니었을까요? 이들 숲짐승은 ‘하느님’을 만나려고 숲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말론 할머니를 찾아간 셈 아닐까요? 말론 할머니는 이 땅에서 고이 눈을 감으면서 어여쁜 숲짐승을 벗삼아 새로운 나라로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이를테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그린 이야기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나오는 낭기얄라와 낭길리마처럼, 말론 할머니가 떠난 곳은 ‘하늘나라’가 아닌 새로운 아름다운 나라이리라 느껴요. 그러니, 하늘나라 문지기라고 하는 베드로는 말론 할머니를 못 알아봅니다. 게다가, 말론 할머니는 하늘나라 문앞에서 번쩍 깨어나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란다!” 하고 외쳐요.

 


.. 천국의 문지기 베드로가 묻기를, / “너희가 데려온 사람이 누구냐?” / 그러자 당나귀와 참새, 고양이와 어미 여우와 곰은 / 한목소리로 외쳤네. / “천국에서 이분을 모르십니까, / 돌아가신 우리들의 어머니, 말론 할머니를? / 가난하여 가진 것 하나 없고 / 집도 보잘것없고 좁았으나 / 그 넓고 큰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품어 주신 / 우리의 어머니, 말론 할머니를!” ..  (33쪽)


  그럼요. 말론 할머니가 계실 곳은 하늘나라가 아닌걸요. 말론 할머니가 계실 곳은 하늘나라가 아닌 사랑나라인걸요. 말론 할머니는 어여쁜 숲동무하고 꿈나라로 가야 하는걸요.


  따사로운 빛이 흐르는 사랑나라가 말론 할머니가 계실 자리입니다. 아름다운 넋이 감도는 꿈나라가 말론 할머니가 계실 곳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요? 죽는다면 아마 하늘나라로 갈는지 모르고, 땅나라로 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지 않으니, 사랑나라나 꿈나라로 갑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나오는 두 아이 요나탄과 칼은 낭기얄라와 낭길리마로 갔고, 말론 할머니는 사랑나라와 꿈나라로 갈 테지요. 언제나 아름답게 빛나고, 늘 사랑스레 맑은 삶을 새로 짓겠지요. 새가 노래하고 개구리가 춤추는 곳에서 어여쁜 숲동무하고 오순도순 살림을 가꾸겠지요. 4347.3.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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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 스웨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88
울프 닐슨 지음, 임정희 옮김, 에바 에릭손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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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6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에바 에릭손 그림
 울프 닐손 글
 임정희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8.5.15.

 


  삼월 이십구일에 딸기꽃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딸기덤불을 이리저리 살피며 걷다가 아주 일찍 하얗게 피어난 꽃 한 송이를 봅니다. 내 눈에는 오늘 보였지만, 하얀 딸기꽃은 며칠 앞서부터 피었을 수 있습니다. 그제도 그 자리 앞을 지나갔는데 못 알아챘으니, 어쩌면 어제나 오늘 아침이 피었을 수 있어요. 다른 마을 다른 들판이나 밭둑이나 수풀에서는 하얗게 꽃잔치를 이루었을 수 있어요.


  딸기꽃이 핀 둘레에 딸기꽃망울이 조물조물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살 어루만지면서 말을 겁니다. 올해에도 예쁘게 꽃이 피어나렴, 올해에도 맛난 열매 듬뿍 맺어 주렴, 올해에도 즐겁게 딸기알 나누어 주렴.


.. 에스테르는 잠시 생각에 잠겨서 빈 터를 왔다갔다 했어요.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말했지요. “세상은 온통 죽은 동물들로 가득해. 덤불마다 죽은 새랑 나비랑 쥐가 있지. 이들을 누군가 보살펴 줘야 해. 누군가 친절하게 묻어 줘야 해.” “누가?” ..  (8쪽)

 


  우산을 쓰고 걷습니다. 빗물이 우산으로 떨어집니다. 작은아이는 우산대를 어깨에 걸치고 걷습니다. 이렇게 걷느라 작은아이는 우산을 받았어도 머리와 온몸에 비를 쫄딱 맞습니다. 우산을 바르게 쓰렴 하고 말해도 다시 우산을 어깨에 걸칩니다. 빗물이 머리와 낯에 떨어지는 느낌이 즐거울까요. 빗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를 적에 재미있을까요. 빗소리와 빗내음을 혀로 날름날름 마시면 맛날까요.


  봄비를 맞는 풀을 바라봅니다. 봄비에 젖는 나무를 살핍니다. 빗물을 먹고 풀잎은 더 짙습니다. 빗물을 마시고 풀줄기는 더 올라옵니다. 빗물이 흐르는 나뭇가지마다 새잎이 고개를 내밉니다. 잎망울마다 빗방울이 동그랗게 맺히다가 톡 떨어집니다.


  얼마 앞서 겨울에는 모든 숲과 들을 잠재우는 차가운 비였습니다. 이제 봄에는 모든 숲과 들을 깨우는 따스한 비입니다. 새들은 비가 내리는 오늘 조용합니다. 개구리와 뱀과 맹꽁이는 따스한 빗물이 흙을 더욱 보드랍게 풀어 주니 싱그럽게 노래합니다. 물이 넉넉하게 고인 자리를 찾아 알을 낳을 테지요. 논이나 둠벙에서 올챙이가 깨어나기를 꿈꾸겠지요.

 


.. 꼬마 햄스터 누베는 천 일 동안 쳇바퀴를 돌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지친 발을 편히 쉴 수 있겠지요. 눈을 감은 모습이 아주 귀여웠어요. “그냥 자는 거 아냐?” 푸테가 햄스터를 깨우려 했어요. “일어나!” ..  (17쪽)


  여름이 무르익으면 숲과 들은 복닥복닥합니다. 경운기와 농기계 움직이는 소리 때문에 복닥이지 않습니다. 기쁘게 태어나거나 깨어나려는 숨결이 넘쳐서 복닥입니다. 새는 새끼를 낳습니다. 풀은 씨앗을 터뜨립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푸른 바다에 알록달록한 이야기가 넘칩니다.


  태어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해살이 풀이나 벌레는 가을이 저물 무렵 천천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여러해살이 풀이나 벌레는 가을이 깊어질 무렵 겨우내 웅크릴 자리를 찾습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들면 사람들은 조그마한 집에서 이불을 함께 덮습니다. 겨우내 눈이 덮인 자리에서도 풀은 자라 숲짐승이 배를 채울 수 있도록 합니다. 바지런히 땔감을 모은 사람들은 겨우내 불을 지피면서 아이들과 포근히 이야기꽃을 피워요. 먼먼 옛날부터 할매와 할배가 들려준 이야기를 아이들이 들어요. 아이들은 할매와 할배한테서 들은 이야기에 따라 새로운 꿈을 담습니다. 어버이는 할매와 할배와 아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삶을 짓습니다.


.. 할머니가 쥐덫에 잡힌 쥐를 아홉 마리가 주었어요. 다른 때 같았으면 고양이 차지였겠죠. 쥐들도 이름이 필요해서 우린 일일이 세례를 해 주었어요 ..  (22쪽)

 


  스웨덴에서 찾아온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시공주니어,2008)을 읽습니다. 에바 에릭손 님 그림하고 울프 닐손 님 글이 어우러집니다. 아이들은 작은 벌레와 짐승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들한테 ‘장례식’을 치러 주는 일(놀이)을 하자고 생각합니다. 여느 때에는 돌아보지 않던 벌레와 짐승을 눈여겨봅니다. 벌레와 짐승이 왜 죽는가 살펴봅니다. 사람들은 사람끼리만 장례식을 치를 뿐, 작은 벌레와 짐승한테는 눈길을 두지 않는다고 깨닫습니다. 집에서 따로 키우던 짐승이 아니라면, 주검을 아무렇게나 다루는구나 하고 깨달아요.


.. 난 누가 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는 지빠귀 옆에 웅크리고 앉았어요. 지빠귀가 날개를 퍼드덕거렸어요. 부리를 벌리고, 다리를 움찔했어요. 그러더니 잠시 후 숨을 거두었지요 ..  (29쪽)


  우리들은 무엇을 먹으며 살아갈까요. 물고기 주검을 먹을까요. 소 주검이나 돼지 주검이나 닭 주검을 먹을까요. 싱그럽게 숨쉬는 목숨을 먹는가요. 토막토막 저미거나 자른 주검을 가게에서 사다가 먹는가요.


  풀잎은 무엇이고 열매는 무엇일까요. 배추와 무한테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요. 능금과 감에는 어떤 넋이 있을까요. 오이와 딸기한테는 어떤 숨결이 있을까요.


  비가 오는 오늘 마을길을 걷다가 머위꽃을 꺾습니다. 아직 꽃으로 피어나지 않은 머위를 한 뿌리 캡니다. 머위뿌리는 우리 집 뒤꼍에 옮겨심습니다. 머위꽃은 아이들과 맛나게 먹을 생각입니다. 아침에는 마당에서 쑥을 뜯어 쑥국을 끓였어요. 마당에서 뜯은 갓잎에 무를 채썰기 해서 된장으로 버무렸습니다. 갈퀴덩굴은 간장으로 무쳤습니다.


  밥 한 그릇에는 수많은 목숨이 깃듭니다. 나락 한 알도 목숨이고, 멸치 한 마리도 목숨입니다. 김 한 조각도 목숨이며, 감자 한 톨도 목숨입니다. 여러 목숨을 즐겁게 지지고 볶아서 내 목숨을 잇습니다. 여러 목숨을 살뜰히 어루만져서 내 목숨을 살립니다. 마을 앞 풀섶에서 머위 한 뿌리를 캐니 땅에서 지렁이가 꼬물거립니다. 우리 집 뒤꼍에서 땅을 파서 머위 한 뿌리를 옮겨심자니 이곳에서도 지렁이가 꼬물거립니다. 모두들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저마다 이 지구별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꿈을 품습니다. 4347.3.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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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좋아 - 바랭이 아줌마와 민들레의 들풀관찰일기 개똥이네 책방 8
안경자 글.그림 / 보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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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4

 


풀내음 나누는 삶이 좋아
― 풀이 좋아
 안경자 글·그림
 보리 펴냄, 2010.8.16.

 


  새로 봄을 맞이합니다. 아이들과 들길을 거닐면서 지난해에 즐겁게 누린 딸기밭을 찬찬히 살핍니다. 올해에는 들딸기(멧딸기)가 얼마나 퍼질는지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전남 고흥은 다른 곳보다 한결 포근하니 딸기꽃이 일찍 필 수 있는데, 충북 음성 멧골마을에서 살 적에도 삼월부터 딸기잎이 돋았고 사월에 딸기꽃이 피었어요. 이곳저곳 딸기덤불을 살피니, 머잖아 꽃을 터뜨리려고 꽃망울이 조물조물 맺습니다.


  딸기를 놓고 본다면, 삼월에 잎이요 사월에 꽃이고 오월에 열매입니다. 딸기알이 맺을 즈음 같은 덤불에서도 꽃망울이 맺히거나 꽃이 피어나기도 해요. 한꺼번에 와락 터지거나 피지 않습니다. 달포 즈음 딸기잔치를 이루어요. 이러다가 유월을 넘으면 들딸기도 끝물입니다. 그동안 잘 먹고 잘 누렸어 하고 인사하고는 이듬해 봄을 기다려요.


.. 엄마랑 나는 동네 여기저기 들풀을 보러 다녀. 학교 가는 길에도, 놀이터에도, 약수터 가는 산길에도 들풀이 참 많아 ..  (6쪽)

 


  안경자 님이 빚은 그림책 《풀이 좋아》(보리,2010)를 읽습니다. 안경자 님은 《풀이 좋아》에서 ‘들딸기(멧딸기)’를 놓고 “봄에 흰꽃이 피었다가 7∼8월에 열매가 빨갛게 익어.” 하고 적습니다. 야생화도감이나 풀도감 같은 책을 뒤지면, 들딸기가 ‘6∼7월’에 익는다고 나옵니다.


  나는 아무래도 고개를 갸우뚱할밖에 없습니다. 충청북도 음성 멧골마을에서도 사월이면 딸기꽃을 보고 오월 언저리에 딸기알을 먹습니다. 인천 골목동네에서도 사월에 딸기꽃을 보고 오월 언저리에 딸기알을 먹습니다. 강원도 멧골짝도 딸기철은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다만, 함경도쯤은 언제 딸기꽃이 피고 딸기알이 맺는지 모르겠어요. 중국 연변자치주는 조금 더 늦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딸기꽃이 피고 딸기알이 맺는 철이 그리 ‘늦’거나 ‘더디’지 않습니다. 하얀 딸기꽃이 지면서 천천히 열매가 익는데, 보름쯤 지나면 빨간 빛이 감돌고 스무 날쯤 되면 맛나게 먹을 만해요. “봄에 흰꽃이 피”는데 칠팔월이 되어서야 열매가 빨갛게 익지 않습니다. 봄에 꽃이 피고 봄에 열매를 먹어요. 첫여름까지 열매를 먹고는 어느새 사라집니다.


.. 진짜 손톱보다 작고 파란 꽃들이 피어 있다. “아유, 콩알만 한 큰개불알풀이 봄맞이 나왔구나.” “뭐라고? 큰개불알풀?” 어우, 꽃은 참 예쁜데 왜 그렇게 이름이 이상하지? ..  (15쪽)

 

 


  겨울이 끝나는 이월 즈음부터 들마다 올망졸망한 꽃잔치가 이루어집니다. 봄맞이꽃 몇 가지가 들을 보듬습니다. 별꽃과 코딱지나물꽃과 봄까지꽃과 냉이꽃입니다. 볕이 잘 드는 남녘에서는 뽀리뱅이나 지칭개가 이삼월 언저리에도 일찌감치 꽃을 피울 뿐 아니라 씨앗까지 날리곤 합니다. 경기도나 강원도쯤이라면 민들레가 사월은 넘어서야 비로소 잎사귀를 보여줄는지 모르는데, 전라남도에서는 삼월에도 민들레가 노랗게 꽃을 피웁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민들레가 피어난 지도 열흘쯤 되었어요.


  그나저나, 우리들은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잘못 쓰는 일이 잦습니다. 이를테면,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입니다. 일본 풀학자가 일본에서 붙인 학술이름을 일제강점기와 해방 언저리에 한국 풀학자가 잘못 받아들인 풀이름 ‘개불알풀’입니다. 그만 이런 풀이름이 확 퍼지고 말았어요. 일본에서 나는 풀과 한국에서 나는 풀이 얼마나 다르랴 싶으니, 일본 풀이름을 한국에서 못 받아들일 까닭은 없을 텐데, 풀학자가 학술이름을 짓기 앞서, 시골에서는 모든 풀에 저마다 이름을 붙여요. 고장마다 풀이름이 다 다릅니다. 이런 이름이 재미있다고 말뿌리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함부로 쓰면, 예부터 한겨레가 스스로 붙인 풀이름이 자취를 감춥니다. 그나마 ‘봄까지꽃’이라는 풀이름도 ‘봄까치꽃’으로 잘못 퍼뜨리는 사람이 많아요. 봄까지꽃은 풀이름 그대로 봄이 저물며 여름이 다가오면 들에서 어느새 사라집니다. 봄까지 돋으며 자라는 풀입니다.


  ‘광대나물’은 한국 풀학자가 붙인 이름이지만, 시골에서 쓰는 풀이름을 학술이름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는 고장과 고을마다 이름이 다를 텐데, 전라남도 고흥에서는 으레 ‘코딱지나물’이라고 가리킵니다.


.. 별꽃은 길가 풀밭에서 자라는데 추운 한겨울만 아니면 언제 어디서든 잘 자라. 하얗고 작은 꽃이 꼭 별 같다고 ‘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대. 봄에 나는 어린싹은 나물로 먹기도 해 ..  (24쪽)

 

 


  그림책 《풀이 좋다》는 풀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가를 따사롭게 들려줍니다. 어머니와 아이가 풀놀이를 즐기고 풀내음을 맡으며 풀밥을 먹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속삭입니다. 풀빛을 가슴에 담고, 풀노래를 부르는 삶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이런 그림책이 하나둘 늘어나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고장마다 다른 풀빛과 풀이름과 풀살이를 살가이 들려줄 수 있기를 빌어요. 풀 한 포기가 들과 숲을 살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꿈꿉니다. 풀이 있기에 지구가 푸르고 풀과 함께 사람이 싱그럽게 살아가는 길을 밝히기를 바라요.


  곰곰이 돌아보면, 그림책 《풀이 좋아》는 크게 하나 빠뜨렸습니다. 어느 고장에서 어느 때에 만난 풀인지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만난 풀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어느 고장에서 어느 때에 만난 풀인가를 또렷이 밝혀야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강원도와 경기도 풀은 달과 날이 조금씩 다를 테고, 경기도와 충청도도, 또 충청도와 전라도도, 또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도, 또 제주도도 풀이 돋고 자라는 달과 날이 조금씩 다를 테니까요. 4347.3.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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