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금파리 아스트리드 국민서관 그림동화 83
마리아 옌손 지음, 김순천 옮김 / 국민서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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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3



신나게 뛰어놀고픈 아이들

― 나는야 금파리 아스트리드

 마리아 옌손 글·그림

 김순천 옮김

 국민서관 펴냄, 2008.5.15.



  도시에서는 겨울에 바람이 멎으면 날이 포근합니다. 도시에서는 겨울에 눈이 내리면 길바닥이 얼어붙습니다. 시골에서는 겨울에 바람이 멎으면 땅마다 싹이 돋습니다. 시골에서는 겨울에 눈이 내리면 흙이 반깁니다.


  바람은 불어야 할 까닭이 있어서 붑니다. 비와 눈은 내려야 할 까닭이 있어서 내립니다. 볕은 내리쬐어야 할 까닭이 있어서 내리쬡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바람도 비와 눈도 볕도 그늘도 안 반깁니다. 비가 오면 비가 온대서 궁시렁거리는 도시 문화요, 눈이 오면 눈이 온대서 투덜거리는 도시 문명이며, 바람이 불거나 볕이 내리쬐면 또 이런 날씨라서 말이 많은 도시 얼거리입니다.


  보금자리에 나무를 심어서 돌보는 사람이라면, 볕과 바람과 비와 눈과 그늘이 모두 골고루 어우러져서 삶이 빛날 때에 즐거운 줄 압니다. 삶자리에서 손수 밥과 옷과 집을 얻는 사람이라면, 별과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풀을 모두 찬찬히 헤아리면서 삶을 가꾸는 기쁨을 압니다.



.. 나는 천장에서 걸어다닐 수도 있고요, 바람처럼 엄청 빨리 날 수도 있어요. 또 쏜살같이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물론 바닥에 쾅 부딪히지 않고 말이죠 ..  (4쪽)



  충북 음성에서 설날 아침을 맞이합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눈이 아주 살짝 내렸습니다. 아침부터 안개가 퍽 짙습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고흥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아침빛입니다. 겨울에 제법 추운 멧골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니, 새롭고 새삼스럽구나 싶어 한참 창밖을 내다보다가, 앞마당을 천천히 걷습니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흙바닥에 말라죽거나 시든 풀잎을 밟으니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납니다. 이런 소리도 겨우내 포근한 시골에서는 도무지 느끼거나 겪을 수 없습니다. 눈과 겨울안개는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싱그러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설 언저리에 찾아오는 눈과 겨울안개라면 찻길에서는 하나도 안 반가우리라 느낍니다. 이런 날에는 자동차를 몰기에 몹시 나쁠 테지요.


  아이들은 창밖을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반깁니다. 비록 눈을 뭉칠 만큼 쌓이지 않아 살짝 손바닥으로 쓸기만 할 뿐이지만, 눈을 보고 만질 수 있으니 몹시 기뻐합니다.


  아이들은 비가 와도 기뻐합니다. 아이들은 바람이 불거나 볕이 나도 기뻐합니다. 아이들은 그늘이 지거나 벼락이 쳐도 기뻐합니다. 날씨가 달라질 적마다 새로운 기운이 감도니까, 새로운 기운을 맞아들이면서 새로운 놀이를 그립니다.



.. 내가 너무 오래 놀러 나가 있는다 싶으면 알뤼 이모가 나를 찾아와서는 막 잔소리를 해요. 두툼한 파리채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 버리는 끔찍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말이죠 ..  (12쪽)



  마리아 옌손 님이 빚은 그림책 《나는야 금파리 아스트리드》(국민서관,2008)를 읽습니다. 쇠파리도 똥파리도 쉬파리도 아닌 ‘금파리’가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금파리 한 마리가 도시에 있는 어느 집에 깃들어 지내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는 그림책입니다.


  주인공 그림책은 한 마리이지만, 이 아이 곁에는 수많은 형제가 있고, 이모 파리에 온갖 살붙이 파리가 있습니다. 파리네 집안은 아주 커다란 집안입니다. 이들은 사람 눈에 잘 안 뜨이는 곳에 조용히 깃들어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숨을 쉬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무엇보다 금파리 아스트리드네 집안은 ‘집 바깥’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도시 어느 살림집에 살며시 깃든 파리들은 바로 ‘어느 집 안쪽’이 이녁 삶터이자 보금자리요 고향일 테지요. 이곳에서 떠난다는 일은 생각조차 못할 테지요.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면 앞날이 까마득할 테지요.



.. 하루는 소시지를 아주 배불리 먹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잠이 들어 버렸지 뭐예요.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저 내가 깼을 때 아주 춥고, 조용하고, 깜깜했다는 것밖에는요. 게다가 날개는 눈곱만큼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  (20∼22쪽)



  금파리이자 ‘집파리’인 아스트리드는 제 보금자리에만 머물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사람 살림집 이곳저곳’ 두루 돌아다니기를 즐깁니다. 금파리 아스트리드한테 이모인 ‘알뤼 이모 파리’는 아스트리드 파리더러 ‘파리 보금자리 바깥’에서 함부로 오래 돌아다니다가는 사람한테 들켜서 곧바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면서 나무란답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사람 눈에 뜨이지 않도록 조용히 있어야 오래도록 아늑하게 지낼 만할 테지요.


  그러나, 사람도 파리도 모두 같아요. 한곳에만 머물 수 없어요. 그저 밥만 먹고 살 수 없어요. 집안에만 있을 수 없으니, 집 둘레를 쏘다니고 싶습니다. 사람이 마을 언저리 숲으로 나들이를 가고, 일하러 다니며, 바다나 냇가나 골짜기로도 돌아다니듯이, 파리도 이곳저곳 마실을 다니면서 삶을 누리고 싶습니다.



.. 소시지 사건이 있었던 그날 이후, 내가 제일 많이 먹는 음식은 바로 야채랍니다 ..  (28쪽)



  금파리 집안 파리들이 ‘사람 살림집’을 떠날 수 있을까요. 금파리 집안 파리들은 앞으로도 사람 살림집에 그대로 머물까요. 금파리 아스트리드는 어쩌면 사람 살림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보금자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아직 어린 아스트리드는 어머니와 이모가 있는 사람 살림집에 그대로 머물며 무럭무럭 자란 뒤, 어른 파리가 되면 씩씩하게 더 먼 나들이를 떠나면서, 너른 숲이나 들에 새로운 터전을 닦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멀리 뻗으려는 꿈을 키웁니다. 아이들은 다리힘이 닿는 데까지 달리려는 꿈을 가꿉니다. 아이들은 손힘을 길러 무엇이든 손수 짓는 꿈을 갈고닦습니다. 아이들이 푸르면서 싱그럽게 지으려는 꿈을 기쁘게 바라봅니다. 4348.2.20.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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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란디의 생일 선물
안토니오 에르난데스 마드리갈 글, 토미 드 파올라 그림, 엄혜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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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2



노랫소리와 노래가 아닌 소리

― 에란디의 생일 선물

 안토니오 에르난데스 마드리갈 글

 토미 드 파올라 그림

 엄혜숙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9.5.12.



  봄이면 풀벌레가 깨어납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풀벌레 노랫소리가 함께 무르익고,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풀벌레 노랫소리가 한결 우렁찹니다. 풀벌레가 저마다 온갖 소리를 낼 적에, 나는 시골에서 이 소리를 노랫소리로 느껴서 받아들입니다.


  경운기가 지나갑니다. 마을방송이 흐릅니다. 택배 짐차가 지나갑니다. 철마다 농약 치는 소리가 들리고, 두멧시골에까지 종교를 퍼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양복을 갖추어 입고 찾아옵니다. 풀벌레가 들려주는 소리가 노랫소리라 한다면, 경운기나 기계나 마을방송이나 종교 퍼뜨리려는 소리는 어떤 소리가 될까요. 자질구레한 소리일까요. 이러한 소리도 모두 노랫소리일까요.



.. 에란디는 일어나 얼굴을 씻고,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었어요. 마마는 에란디의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주었어요. 에란디의 길고 탐스러운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왔지요 ..  (3쪽)




  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갑니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탑니다. 버스에서 내려 기차로 갈아타는 데까지 걸어서 갑니다. 읍내 버스역에서 이웃 도시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기차역에서 기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도 아이들도 발바닥을 구르면서 놉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아이들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나 수많은 사람들 복닥거리는 소리를 얼마든지 노랫소리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귀를 찢는 따가운 소리로 여길 수 있고, 때로는 사랑스러우면서 멋진 노랫소리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 소리는 왜 나한테 노래로 스며들까요. 이 소리는 왜 나한테 귀에 거슬릴까요. 나는 왜 이 소리를 귀여겨들으면서 흥얼흥얼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까요. 나는 왜 이 소리에는 귀를 닫고 눈마저 질끈 감고 싶을까요.


  어느 대목에서 노래와 ‘그냥 소리’가 갈릴까요. 어느 대목에서 ‘삶을 밝히는 소리’와 ‘삶에서 고단한 소리’로 나뉠까요. 내 마음은 나를 둘러싼 소리를 어떻게 맞이하고 싶을까요. 내 숨결은 내가 스스로 짓는 소리에 어떤 가락을 담아서 이웃한테 퍼뜨리고 싶을까요.



.. “에란디,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지?” “그럼요, 마마. 내 생일이잖아요!” 에란디가 말했어요. 내일이면 에란디는 일곱 살이 될 거고, 마마는 에란디에게 생일 선물을 사 줄 거예요. 에란디는 마을 피에스타에 입고 갈 새 옷을 갖고 싶었어요 ..  (7쪽)




  안토오 에르난데스 마드리갈 님이 글을 쓰고, 토미 드 파올라 님이 그림을 그린 《에란디의 생일 선물》(문학동네,2009)이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시골마을에서 함께 살림을 가꾸는 어머니와 딸아이는 조용히 하루를 누립니다. 어머니는 그물을 손질하면서 고기를 낚고, 아이는 고즈넉한 시골에서 동무와 어울려서 놉니다. 어머니는 딸아이 머리카락을 곱게 빗으면서 아낍니다. 아이는 해마다 새롭게 찾아오는 생일을 기다리면서 고운 꿈을 꿉니다.


  그런데 두 어머니와 가시내한테 고빗사위가 찾아옵니다. 어머니가 고기를 낚을 적에 쓰는 그물이 낡고 해집니다. 어린 가시내가 새 옷을 한 벌 얻었지만, 새 인형을 장만할 돈은 없습니다. 이리하여 어머니는 이녁 머리카락을 잘라서 돈을 마련해 보려 하는데, 어머니 머리카락은 짧아서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아마 시골마을 어머니는 지난해에도 머리카락을 잘라서 돈으로 바꾸었나 봐요. 아직 머리카락이 길게 새로 자라지 못했나 봐요.


  일곱 살이 꽉 차는 가시내 에란디는 망설입니다. 그리고 알아챕니다. 어머니는 왜 머리카락이 짧은지 알아채고, 에란디네 집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에란디가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기를 바라지만, 에란디는 오직 제 뜻대로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자고 합니다.



.. 마마는 몸을 돌리며 단호하게 말했어요. “내 딸의 머리는 팔지 않아요.” 그때 에란디가 마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마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어요. “그렇게 해요, 마마. 내 머리를 팔아요.” 에란디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어요 ..  (20쪽)




  어버이는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너른 사랑을 나누어 주는 하루를 가꾸고 싶습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슬프거나 고단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는 아이도 같은 마음이에요. 아이도 어버이한테 너른 사랑을 나누어 주는 하루를 짓고 싶어요. 아이도 어버이가 슬프거나 고단한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요.


  그림책에 나오는 시골마을 어머니가 아이 머리카락을 고이 아끼고 싶듯이, 시골마을 가시내도 어머니 머리카락을 고이 아끼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제 머리카락을 날마다 곱게 빗고 땋아 주듯이, 아이도 나중에는 어머니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서 땋아 주고 싶습니다. 둘이 오래오래 따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하루를 아름답게 짓고 싶습니다.



.. “마마, 걱정 마요. 내 머리는 곧 전처럼 길고 예쁘게 자랄 거예요.” “네 머리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웠는데.” 마마가 말했어요. 에란디는 잠깐 멈추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마마, 이제 새 그물을 살 수 있어요?” ..  (27∼28쪽)



  어머니는 아이를 걱정하고, 아이는 어머니를 근심합니다.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과 근심은 오래가지 않아요. 이내 사그라듭니다. 두 사람이 나누면서 키우는 사랑이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어머니한테 다부지게 말하지요. 새 머리카락은 곧 다시 자란다고 말하지요. 어머니는 아이를 한결 포근하게 안으면서 생각합니다. 그래 우리한테는 새로운 앞날이 있지 하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한결같이 꿈을 꿉니다. 늘 춤을 추고 기쁘게 노래합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면서 파랗게 눈부신 꿈을 꿉니다. 파랗게 맑은 냇물을 길으면서 파랗게 눈부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해맑고 따스한 햇볕을 쬐면서 해맑고 따스한 놀이를 누리고, 해맑고 따스한 손길을 나누면서 해맑고 따스한 하루가 흐릅니다. 4348.2.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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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찾아온 행운 내 아이가 읽는 책 9
엘리자베스 허니 글 그림, 김은정 옮김 / 제삼기획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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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9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다

― 나에게 찾아온 행운

 엘리자베스 허니 글·그림

 김은정 옮김

 제삼기획 펴냄, 2003.6.17



  ‘양자 물리학’을 한 마디로 간추린다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모두 이룬다”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내 삶은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졌다”입니다. 엘리자베스 허니 님이 빚은 사랑스러운 그림책 《나에게 찾아온 행운》(제삼기획,2003)을 아이들과 보다가 문득 양자 물리학이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가시내 ‘수지’한테 찾아온 행운이란, 바로 수지라는 아이가 스스로 빚어서 누린 기쁨이라고 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 “시시한 도시야, 안녕!” 알렉스가 소리쳤습니다. “푸른 바다야, 반가워!” 수지가 노래했습니다. 터키는 물안경을 깔고 앉고, 사촌 빈은 용돈을 세고, 엄마는 아빠에게 뒷문을 잠갔는지 물었습니다 ..  (2쪽)




  그림책 《나에게 찾아온 행운》을 엽니다. 첫머리를 보면, 도시에 살던 아이들과 어른들이 도시를 떠나요. 다만, 집을 옮기지는 않고, 여름철 물놀이를 갑니다. 아이들이 외친 소리 그대로 ‘시시한 도시’입니다. 참말 도시란 시시하지요. 도시에 무엇이 있을까요? 도시에 바다가 있나요? 도시에 숲이 있나요? 도시에 들이 있나요? 도시에 ‘타고 오를 만한 나무’가 있나요? 도시에 골짜기가 있나요? 도시에 물장구를 칠 냇물이 있나요? 도시에 두 손으로 떠서 마실 만한 샘물이 있나요? 도시에 개구리가 사나요, 메뚜기가 사나요? 참말 도시에 무엇이 있을까요?


  도시에는 극장이 있고, 피시방이 넘치며, 술집과 찻집과 옷집과 맛집이 그득그득 있습니다. 도시에는 학교와 도서관이 많고, 자동차도 많으며, 온갖 가게와 건물이 빼곡하게 있습니다.


  도시에는 바퀴벌레가 많습니다. 도시에도 개미는 많습니다. 그러나, 도시에는 나비조차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도시에 잠자리가 몇 마리 날더라도 그뿐이요, 도시에 온갖 새가 깃들지 못해요.





.. “잠꾸러기들, 어서 일어나야지!” 아빠가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낚시하러 갈 사람?” “저요!” 빈이 말했습니다. “전 옆집 친구들이랑 놀래요.” 알렉스가 하품을 하며 말했습니다. “깨우지 마세요, 아빠! 좋은 꿈 꾸고 있는데.” 터키가 중얼거렸습니다. “음, 저는 뭐 할 건지 결정했어요. 낚시하러 갈 거예요!” 수지가 말했습니다 ..  (9쪽)



  도시가 시시하다면, 왜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까요? 사람들 스스로 시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나쁘게 보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사람들 스스로 ‘시시한 삶’을 골랐기 때문에 도시에서 살아요.


  이렇게 말하니 참으로 도시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듯하구나 싶지만, 참말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스스로 쳇바퀴에 갇히려고 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삽니다. 그러면, 시골에서 살면 쳇바퀴가 아닐까요? 네, 시골에서 살아도 스스로 쳇바퀴를 뒤집어쓰면 쳇바퀴입니다. 농약 치고 비료 뿌리고 비닐 씌우고 하는 쳇바퀴에 스스로 갇히면, 시골에서 살아도 그예 시시한 하루입니다. 농약과 비료와 비닐에 무엇이 따를까요? 빈 농약병과 빈 비료푸대와 푸석거리는 비닐쓰레기입니다. 농약과 비료와 비닐로 망가진 논밭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요. 농약과 비료와 비닐이 구르는 논밭에는 풀벌레도 멧새도 숲짐승도 없어요.


  ‘시시한 삶’이란 새로움이 없는 삶입니다. ‘시시한 사람’이란 새로움을 찾지 않으면서 날마다 똑같은 몸짓만 되풀이하는 사람입니다.




.. 수지는 두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참았습니다. 바다는 저렇게 넓은데 수지의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수지는 물 속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잔잔한 은빛 물결 속에 시커먼 모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빠 저것 보세요! 저건, 고래 같은데.” ..  (24∼25쪽)



  그림책 《나에게 찾아온 행운》에 나오는 가시내 수지는 날마다 낚시를 합니다. 그렇지만, 도시를 떠나 애써 바다로 나들이를 왔는데, 수지는 날마다 아무것도 못 낚아요. 다들 여러 물고기를 낚고, 낚은 물고기로 맛나게 밥을 먹는데, 수지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빈손입니다. 빈손인 수지는 끝내 바다를 노려봅니다. 또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는 빈손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갈 생각으로 바다에 오지 않았어!’ 하는 엄청나게 큰 외침을 마음속으로 우렁차게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아주 놀랍고 새로운 일이 수지한테 찾아와요.



.. “고기 잡았구나?” “아니, 고기보다 훨씬 좋은 거. 고기는 아무나 잡잖아.” 수지는 그렇게 말하며 깡충깡충 뛰엇습니다. “물고기 육십 마리보다 더 커! 우리 집보다도 훨씬 더 크다!” ..  (31쪽)



  다른 어느 누구도 고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수지만 고래를 보았습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수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수지네 아버지조차 수지를 믿지 않았습니다. 수지네 식구가 놀러온 바닷가는 고래가 나오지 않는 바다라는 말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수지는 자꾸 보고 또 보지요. 이러다가 다른 사람도 수지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다가 고래를 보아요. 이제는 수지가 거짓말을 하지 않은 줄 알아채면서 다 함께 놀랍니다. 수지가 고래를 보았고 말했으며 외쳤기에, 다른 사람도 비로소 고래를 볼 수 있습니다.


  수지는 수지한테 즐거운 일을 수지 스스로 끌어들였습니다. 물고기 몇 마리 낚는 일이란 아무것도 아닌 줄 수지 스스로 알기에, 수지는 너른 바다에서 그야말로 ‘너른 숨결’인 고래가 찾아오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수지는 고래를 낚은 셈이고, 고래를 낚은 뒤 바다에 고이 돌려준 셈입니다. 아름다운 생각을 스스로 지을 줄 아는 수지는,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아름다운 삶을 아주 멋지고 사랑스레 지으리라 봅니다. 4348.2.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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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 옮기기 대작전을 펼치다 집요한 과학씨, 웅진 사이언스빅 23
이천용.쓰카모토 고나미 지음, 양광숙 옮김, 조예정.이치노세키 게이 그림, 전영우 감수 / 웅진주니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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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5



나무심기, 나무베기

― 큰 나무 옮기기 대작전을 펼치다

 쓰카모토 고나미·이천용 글

 이치노세키 게이·조예정 그림

 양광숙 옮김

 웅진주니어 펴냄, 2008.3.15.



  어린나무 한 그루를 심자면, 어린나무를 얻으면 됩니다. 어린나무를 들고 마땅한 땅을 살펴서 삽으로 흙을 파낸 뒤 뿌리를 알맞게 집어넣고 흙을 덮고 물을 주면 되지요. 큰나무 한 그루를 심자면, 큰나무를 얻으면 됩니다. 다만, 큰나무는 혼자 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계힘을 빌려야 할 수 있습니다. 큰나무가 들어설 땅을 찬찬히 살펴야 할 테지요.


  그런데, 나무는 상품이나 물건이 아닙니다. 나무는 나무입니다. 나무 한 그루는 돈으로 심을 수 없습니다. 돈이 많대서 나무를 더 심는다든지, 돈으로만 헤아려서 나무를 심는다면, 나무도 사람도 함께 괴롭거나 고달픕니다.


  나무를 심으려 한다면, 나무를 왜 심으려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우리 삶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오래도록 뿌리를 내려서 오래도록 푸른 기운을 나누어 주는 얼거리를 살펴야 합니다.



.. 나는 내 눈으로 확인한 거대한 등나무의 생명력을 믿어 보기로 했어요 ..  (9쪽)



  예부터 시골사람은 나무를 함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시골사람이 나무를 베는 때는 아주 드뭅니다. 첫째, 집을 지으려고 나무를 벱니다. 그리고, 집을 지으려고 나무를 베면, 나무를 벤 자리에 어김없이 새롭게 나무를 심어요. 집을 지을 만한 나무를 벨 적에는 으레 삼백 해라든지 오백 해라든지 즈믄 해를 살아온 나무를 베어요. 그래서, 나무를 한 번 벤 곳에서는 앞으로 삼백 해나 오백 해나 즈믄 해에 걸쳐서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합니다.


  다음으로, 옷장을 짜려고 나무를 벱니다. 집에서 쓸 여러 가지를 건사할 살림으로 삼으려는 뜻으로 나무를 베지요. 배를 무으려고 나무를 베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부터 이런저런 뜻으로 나무를 벨 적에는, 나무를 벤 만큼 꼭 새롭게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숲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도시사람은 나무를 함부로 다룹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하루아침에 밀어서 없앱니다. 아파트를 올리거나 공장을 세우거나 고속도로를 닦거나 발전소를 들이거나 호텔이나 관광단지를 두려고 숲을 마구 짓밟아요. 이렇게 숲도 나무도 짓밟으면서 나무를 다시 심거나 숲을 다시 가꾸지 않습니다. 그저 숲도 나무도 짓밟을 뿐입니다.



.. 등나무 가지는 다른 나무와 달리 가지가 뒤틀린 원통 모양이에요. 굵은 가지는 너비가 30센티미터나 되는 것도 있었어요. 조금 아까웠지만 과감하게 잘라냈지요. 그런데 가지의 단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어요. 나이테 모양이 다른 나무와는 전혀 달랐거든요. 어느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지요 ..  (14쪽)



  쓰카모토 고나미 님이 글을 쓰고, 이치노세키 게이 님이 그림을 그린 《큰 나무 옮기기 대작전을 펼치다》(웅진주니어,2008)를 읽습니다. 일본에서 ‘커다란 등나무’를 옮기면서 일어난 이야기를 찬찬히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책끝에는 ‘나무와 숲’하고 얽힌 이야기를 한국사람이 붙입니다.


  책이름처럼, 이 그림책은 ‘커다란 나무’를 옮기는 엄청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등나무 한 그루를 옮기려고 여러 해에 걸쳐서 차근차근 살피고, 등나무 한 그루를 옮겨서 심은 뒤 여러 해에 걸쳐서 다시 찬찬히 돌본 뒤, 비로소 이 나무를 사람들이 기쁘게 누리는 이야기를 보여주어요.



.. 아직 칼바람이 부는 추운 2월이라 흙 위에 보온용 볏짚을 넓게 깔았어요. 그리고 흙이 마르고 볏짚이 날아가지 않도록 뿌리 전체를 비닐로 덮었고요. 이렇게 해서 네 그루의 거대한 등나무는 총 2000여 명의 손을 거쳐 무사히 새로운 땅으로 옮겨 갈 수 있었지요 ..  (37쪽)



  일본에서 있었다는 ‘커다란 등나무 옮기기’는 참으로 대단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이 일을 하려고 돈을 얼마나 썼을까 생각해 보아도 대단하거나 놀랍지만, 이보다는, 나무 한 그루를 살피는 마음이 애틋합니다. 비록 일본도 정치나 사회나 경제로 보면, 다른 나라 숲을 엄청나게 망가뜨리는 일을 하지만, 일본 한켠에서는 나무 한 그루를 살뜰히 아끼거나 돌보려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한국에서도 ‘나무를 마구 괴롭히는 정치와 사회와 경제’가 있으나, 이와 함께 ‘나무 한 그루를 살가이 아끼거나 돌보려는 사람’이 함께 있을 테지요.


  나무는 4월 5일에 심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이 벌이는 겉치레로는 나무가 자라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정치권력이 4월 5일에 나무를 심으라고 하면서, 막상 도시 재개발을 하든, 시골을 파헤쳐서 새로운 도시로 만들든, 나무를 얼마나 아무렇게나 베어서 없애는가를 바라보셔요. 그나마 시골마을과 숲에 농약을 얼마나 끔찍하게 뿌려대는가를 살펴보셔요.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나무를 많이 씁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쓰는 나무는 ‘한국에 있는 숲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 숲에서 자라던 나무를 사들입니다. 나무로 짠 살림살이도, 나무에서 얻은 종이도, 한국사람은 나무를 대단히 많이 쓰면서 정작 나무 한 그루를 제대로 심거나 돌보거나 아끼려고 하는 마음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자동차를 세울 자리를 하나 마련하듯이 나무 한 그루를 심을 자리를 하나 마련해야지 싶습니다. 자동차가 다닐 찻길을 길게 닦듯이, 나무가 우거지는 숲이 아름답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습니다. 4348.2.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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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우산 내 친구는 그림책
아만 기미코 글, 다루이시 마코 그림, 곽혜은 옮김 / 한림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8



하늘을 마시는 아이들

― 하늘 우산

 아만 키미코 글

 다루이시 마코 그림

 곽혜은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2007.5.15.



  우리 집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에 맨몸으로 비를 맞으며 놀기를 즐깁니다. 우산을 뒀다가 무엇을 하니 하고 물어도 까르르 웃으면서 비를 맞습니다. 비가 온 오는 날에 괜히 우산을 펴면서 빙글빙글 돌리면서 노래합니다. 얘들아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 웬 우산이니 하고 물어도 헤헤헤 웃으면서 우산놀이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한겨울에도 바람주머니르 후후 바람을 넣습니다. 바람주머니를 탱탱하게 한 다음 마룻바닥에 놓고는 바람주머니를 타고 콩콩 뜁니다. 마룻바닥이 마치 냇물이라도 되는듯이 여깁니다. 얘들아 바람주머니를 마룻바닥이나 방바닥에서 굴리면서 밟지 말고, 여름에 골짜기에 가서 놀아야지 하고 말해도 빙그레 웃을 뿐, 이 놀이를 그치지 않아요. 이러다가 끝내 바람주머니에 구멍을 내지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온 뒤 새로운 여름이 오면 이제 바람주머니가 없어서 맨몸으로 골짜기에 가야 할 테지요.



.. 엄마는 분홍 우산을 펼치며 말했어요. “이 우산 예쁘다. 이걸로 살까?” 나는 대답했어요. “파란 우산이 좋아요. 날씨 좋은 날의 하늘 빛깔 같잖아요.” ..  (4쪽)




  놀이터에 갑니다. 도시에서는 따로 놀이터에 가야 빈터가 있기에, 놀이터를 찾아서 갑니다. 도시에서는 놀이터가 아니고서는 흙을 밟을 데가 없으니, 놀이터를 살펴서 갑니다. 그런데, 요새는 시골에서도 놀 데가 없어요. 빈터나 풀숲이나 숲정이가 사라지거든요. 냇물이나 골짝물마저 시멘트를 들이부어서 파헤치거든요. 도르르 흐르는 도랑물조차 없는 시골이고, 도랑물이 있어도 논밭마다 농약과 비료를 어마어마하게 치느라 도랑물에 맨발로 들어가서 놀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맨발로 일하거나 놀았으나, 오늘날에는 어른도 아이도 맨발로는 좀처럼 안 다닙니다.


  놀이터에 제법 너른 흙땅이 있어 두리번거리면서 나뭇가지를 찾습니다. 길바닥에 나뭇가지가 구르는 곳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놀이터를 둘러싸고 나무가 몇 그루 있어서 나뭇가지가 조금 있습니다. 나뭇가지를 주워서 흙바닥에 금을 긋습니다. 놀이판도 그리고 그림도 그립니다.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릴 적에는 작은 그림만 그렸다면, 너른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릴 적에는 아주 커다란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내 몸보다도 크고, 우리 집보다도 큰 그림을 신나게 그립니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여러 어린이 모습을 그림으로 실컷 그립니다.





.. 노래를 부르며 우산을 풍차처럼 돌렸어요. 빙글빙글 빙그르르 빙글빙글 빙그르르 우산을 돌리며 노래 불렀어요. “내 우산은 하늘빛. 빗줄기 속에서도 포근해.” ..  (8쪽)



  아만 키미코 님이 글을 쓰고, 다루이시 마코 님이 그림을 그린 《하늘 우산》(한림출판사,2007)을 읽습니다. 하늘을 마시면서 하늘처럼 노는 아이가 나오는 맑은 빛깔 그림책을 읽습니다.


  그림책을 보면, ‘하늘아이’라 할 만한 아이는 하늘빛 우산을 쓰고 하늘노래를 부릅니다. 우산을 쓰고 숲으로 가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 그림책을 펼쳐서 읽는 우리 집 큰아이도 노래를 부릅니다. 그림책 아이가 하늘노래를 부르면서 하늘마음이 되듯이, 그림책을 읽는 우리 집 큰아이도 하늘아이가 되면서 하늘노래를 불러 하늘마음으로 거듭납니다.



.. 문득 올려다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우와, 굉장해.” 내 우산이 쭉쭉 쭉쭉 넓게 펼쳐지는 거예요. “이 우산은 하늘 우산이었구나.” ..  (20쪽)




  아이들 가슴에는 하느님이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가슴에 하느님을 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하늘숨을 마시고, 하늘빛을 사랑하며, 하늘노래를 부르지요. 아이들은 하늘밥을 먹고, 하늘놀이를 하며, 하늘꿈을 키웁니다.


  그러면 어른은 어떠할까요? 어른도 가슴에 하느님이 있어요. 잘 생각해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가 자란 숨결’이에요. 우리 어른도 모두 아이였어요. 그러니까, 우리 어른 가슴속에도 하느님이 있는데, 우리 어른은 이를 죄 잊거나 잃었다고 해야지요. 어른이 되어도, 나이 마흔이나 예순이 되어도, 일흔이나 여든이나 아흔 살이 되어도, 어른들 누구나 가슴속에 깃든 하느님을 깨워서 하늘숨을 마시고 하늘노래를 부르면서 하늘살이를 이 땅에서 누릴 수 있어요.



.. 모두들 무지개를 보느라 정신이 없을 때 나는 살짝 우산을 접었어요. 그때 귓가에서 후훗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어요. 와! 우산이 웃고 있어 ..  (30쪽)



  그림책 《하늘 우산》에 나오는 아이는 우산이 후훗 하고 웃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해님이나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도 달님이나 별님이나 냇물이나 열매나 볍씨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습니다. 가방이 나한테 말을 걸고, 책과 옷과 빨래비누가 나한테 말을 겁니다. 모두 우리 이웃이에요. 서로서로 언제나 동무입니다. 너는 나한테 살가운 벗이고, 나는 너한테 따사로운 이슬떨이요 길잡이입니다.


  바람이 흘러 구름이 마실을 갑니다. 해가 뜨면서 꽃송이가 벌어집니다. 달이 이울면서 밤새가 노래합니다. 풀잎이 스러지면서 풀벌레가 울고, 개구리가 깨어나면서 뱀도 함께 깨어나요. 빗물을 타고 모래가 바다로 나들이를 가고, 나무뿌리를 움켜쥔 커다란 바위가 오랜 나날 우리 곁에서 상냥하게 웃습니다.


  하늘을 마시는 아이들 곁에서 하늘을 마시는 어른들이 춤을 춥니다. 하늘을 마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늘을 마시는 어른들이 기쁘게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습니다. 다 같이 말을 짓고, 생각을 지으며, 사랑을 짓습니다. 4348.2.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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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5-02-09 20:45   좋아요 0 | URL
와 마치 동화를 듣는 느낌입니다 ㅎㅎ 시골에도 흙이 없다니 좀 충격이네요ㅠㅠ
바람주머니는 혹시 튜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숲노래 2015-02-09 20:50   좋아요 0 | URL
시골도 논밭이 아니면 모두 시멘트로 덮으니 흙이 없답니다.
게다가 시골 면소재지나 읍내 학교는
도시보다 더 빠르게 인조잔디로 덮어씌워서
흙을 만지자면
`내 땅`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힘들어요 ...

내 땅이 아닌 곳은 농약범벅이니 못 만지기도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