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 창작 이야기 곧은나무 그림책 9
민퐁 호 지음, 홀리 미드 그림, 윤여림 옮김 / 곧은나무(삼성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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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6



우리 마음속 따순 숨결로

― 쉿!

 민퐁 호 글

 홀리 미드 그림

 윤여림 옮김

 곧은나무 펴냄, 2005.9.1.



  쉿. 아기가 잡니다. 조용히 하셔요. 쉿. 아기가 잠들려 합니다. 조용히 하셔요. 손전화도 끄고, 텔레비전도 끄고, 신문도 부스럭거리지 말고, 설거지도 하지 말고, 젓가락으로 접시를 건드리지도 말고, 문도 함부로 여닫지 마셔요. 아기가 새근새근 잘 수 있도록 모두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요.


  쉿. 아기가 잡니다. 노랫소리를 줄이거나 자장노래로 바꾸셔요. 춤사위는 그치고 사근사근 보드라운 손길로 토닥토닥 아기 가슴을 어루만져요. 오토바이는 못 지나가게 하고, 자동차도 못 다니게 하고, 아기 자는 둘레에서 재잘거리면서 수다를 피우지도 마셔요.



.. 쉿! 누가 바람 속에서 우는 걸까? ..  (4쪽)





  언제 어디에서나 아기가 맨 먼저입니다. 버스에 탈 적에도, 버스에서 내릴 적에도, 언제 어디에서나 아기가 맨 먼저입니다. 다른 사람은 기다리셔요. 아무리 바빠도 아기를 밀치지 마셔요. 아무리 서둘러야 해도 아기 옆에서는 발걸음 사근사근 찬찬히 지나가셔요. 그리고, 아기 옆을 스쳐 지나갈 적에는 아기한테 빙그레 웃음을 지으셔요.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요? 왜냐하면, 이녁도 아기였을 적에 이녁 이웃 아재와 아지매 모두 이렇게 했답니다. 따사로운 사랑이 흐르도록 모두 마음을 기울였고, 아름다운 숨결이 고이 쉬도록 모두 마음을 쏟았어요.



.. 도마뱀아, 도마뱀아! 그렇게 엿보지 말아라. 아기가 자고 있잖이? 도마뱀아, 도마뱀아! 아무 소리도 내지 말아라. 요 옆에서 우리 아기가 자고 있단다 ..  (8쪽)





  아기가 잘 적에는 컴퓨터도 하지 마셔요. 자판을 두들기거나 다람쥐를 콕콕 누르는 소리조차 아기한테는 안 좋아요. 다만, 창밖에서 멧새가 지저귀는 노랫소리는 괜찮아요. 집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는 좋아요. 집 둘레 풀밭과 숲에서 퍼지는 풀벌레 노랫소리는 아름답지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와 나뭇가지가 한들거리는 소리는 모두 예뻐요.


  아기는 저를 뱃속에서 품은 어머니가 포근하면서 아늑하게 감싸 주었듯이, 이 땅에서도 다른 어른들이 저를 포근하면서 아늑하게 보듬어 주기를 바라요. 아기한테만 따스한 손길이 아니라 모든 이웃한테 따스한 손길이 되기를 바라요. 아기한테만 살가운 눈길이 아니라 모든 이웃한테 살가운 눈길이 되기를 바라요.



.. 온 세상이 조용하고, 고요하네요. 엄마도 창턱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들어요. 달이 나무 위로 떠다닐 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아요. 산들바람도 불지 않아요 ..  (31쪽)





  민퐁 호 님이 글을 쓰고, 홀리 미드 님이 그림을 넣은 《쉿!》(곧은나무,2005)을 읽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수많은 별 같은 나라 가운데 타이에서 날아온 그림책입니다. 타이라는 나라에서 시골자락 사람들 삶이 그림책에 잔잔하게 흐릅니다. 타이라는 나라에서 시골마을 어머니 사랑이 그림책에 차분하게 감돕니다. 따사로운 빛과 포근한 숨결과 아늑한 눈길이 골고루 어우러진 즐거운 노래가 고즈넉하게 퍼집니다.



.. 아기만 혼자 동그란 눈을 반짝이네요 ..  (32쪽)



  우리 마음속 따순 숨결로 사랑을 속삭입니다. 우리 마음속 따순 이야기로 꿈을 짓습니다. 우리 마음속 따순 노래로 삶을 가꿉니다. 우리 마음속 따순 웃음으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어머니는 가까스로 아기를 재웁니다. 이러는 사이 어머니도 살몃살몃 곯아떨어집니다. 이제 모두 조용합니다. 이제 모두 잠이 듭니다. 그런데, 이때에 아기가 말똥말똥 눈을 떠요. 모두 조용한 때에 아기는 혼자 눈을 뜨고는 까르르 웃으며 놀아요.


  이 사랑스러운 아기가 자라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됩니다. 사랑을 받으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된 아기가 새롭게 사랑을 꽃피우면서 새롭게 아기를 낳습니다. 그러고는 이윽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모두 아기로 태어났고,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사랑을 기쁘게 베풉니다.


  사랑이 흐르고 흘러 삶이 되고, 사랑이 자라고 자라 삶꽃이 핍니다. 4347.11.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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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좋아 비룡소의 그림동화 102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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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5



나도 네가 좋단다

― 아빠가 좋아

 사노 요코 글·그림

 김난주 옮김

 비룡소 펴냄, 2003.7.18.



  낮에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옵니다. 모처럼 면소재지 빵집에 들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빵을 한 조각씩 고르고, 어머니 몫으로 하나 더 고릅니다. 두 아이는 자전거에 앉아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맛나게 빵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나는 집에 닿은 뒤 빵을 곧바로 내주지 않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빵을 주겠노라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밥 먹고 빵 먹어요? 알았어요.” 하고 말하더니 놀면서 기다리기로 합니다. 아니, 작은아이는 놀이에 빠져들어 밥도 빵도 잊습니다. 이와 달리 큰아이는 배가 퍽 고픈 듯합니다. 마룻바닥에 엎드려 손으로 가리면서 한참 무엇인가 쓰더니 종이를 척척 접어서 나한테 건넵니다. “자, 편지예요. 보세요.” 저녁밥을 짓느라 부산을 떨다가 살짝 겨를을 내어 큰아이 편지를 엽니다. 큰아이는 그림편지를 썼습니다. 큰아이는 ‘빵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커다란 종이에 가득가득 쓰면서 온갖 빵 그림을 신나게 그렸습니다. 그렇구나, 참말 먹고 싶구나. 기다리렴, 오늘 저녁은 아주 맛나게 차릴 테니까.




.. 아기 곰이 물었어요. “엄마, 아빠는 언제 돌아오세요?” 엄마 곰이 대답했지요. “머지않았단다. 목련꽃이 필 때쯤이면 돌아오실 거야.” ..  (6쪽)



  보글보글 밥이 끓습니다. 알맞게 물을 맞춘 뒤 냄비에 불을 넣으면, 냄비에 담긴 물은 천천히 끓으면서 쌀알을 익힙니다. 딱딱한 쌀알은 천천히 익으면서 살살 풀어집니다. 보드라운 밥이 됩니다. 밥이 익을 무렵 아이들은 밥내음을 맡습니다. 마루에서 놀다가 밥내음을 킁킁 맡으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놀다가 웃는 아이들은 어느새 노래를 부릅니다. 곧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밥내음을 맡으면서 웃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니, 밥을 짓는 어버이 손길은 한결 부산하고 정갈합니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밥을 짓습니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밥을 지으니, 이 밥을 먹는 아이들은 새삼스레 웃음과 노래를 받아먹습니다.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내주는 어버이도 아이와 함께 밥을 먹는 동안 어느새 새롭게 웃음과 밥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함께 먹을 밥을 차리니 즐겁습니다. 함께 먹을 밥을 지을 수 있으니 기쁩니다. 어버이 자리에 서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북돋울 밥 한 그릇 내놓을 수 있으니 반갑습니다. 어버이로서 날마다 밥을 지어 오순도순 하루를 열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목숨을 잇는 밥을 손수 짓는 하루는 사랑을 짓는 삶입니다.





.. 아기 곰이 말했어요. “아빠, 산책하러 가요.” “좋지” ..  (12쪽)



  사노 요코 님이 빚은 그림책 《아빠가 좋아》(비룡소,2003)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서도 ‘가시내(어머니, 여자, 암컷)’가 집일을 도맡고, 집에서 밥을 짓습니다. 사노 요코 님은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라든지 《산타클로스는 할머니》 같은 그림책을 그리기도 했는데, 《아빠가 좋아》라는 그림책에서는 ‘어버이 구실’을 조금 더 넓게 헤아리면서 담지는 못합니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이든 일본 사회이든, 밥짓기나 집살림은 ‘사내(아버지, 남자, 수컷)’가 거의 안 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 나라와 사회에서 사내가 집일도 집살림도 밥짓기도 거의 안 한다 할지라도, 어린이책과 그림책에서 이 대목을 한결 슬기롭고 아름답게 다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밥을 짓고, 함께 살림을 가꾸며, 함께 아이랑 놀며 사랑을 보여주는 착한 어버이가 나올 수 있기를 바라요.





.. 아기 곰이 말했어요. “아빠, 다리가 떠내려갔어요.” “그럼, 이렇게 하면 되지.” 아빠 곰은 길죽한 나뭇가지를 뚝 꺾어 ..  (20쪽)



  저녁을 새로 지어 두 아이와 곁님을 먹입니다. 두 아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밥을 먹고 샛밥을 먹고 주전부리를 먹고 나서 새근새근 곯아떨어집니다. 낮에 면소재지 빵집에서 장만한 빵은 두 아이가 모두 먹었습니다. 큰아이는 아주 작은 조각을 아버지한테 나누어 주었으나, 큰 조각과 큰 덩이는 두 아이가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래, 너희가 참으로 쑥쑥 크려고 이렇게 많이 먹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나도 어버이 자리 아닌 아이 자리에 있던 지난날에 이렇게 배 똥똥 나오도록 밥을 먹고 샛밥이랑 주전부리까지 알뜰히 먹었습니다.


  평화는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밥 한 그릇에 평화가 있고, 빵 한 조각에 사랑이 있습니다. 웃음에 평화가 있고, 노래에 사랑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평화를 낳고, 어머니는 사랑을 낳습니다. 아이들은 평화와 사랑을 골고루 물려받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좋지? 아버지와 어머니도 너희가 좋단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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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도깨비 오니타 베틀북 그림책 39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아만 키미코 글, 김석희 옮김 / 베틀북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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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4



이웃을 아끼는 바람 한 줄기

― 꼬마 도깨비 오니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아만 키미코 글

 김석희 옮김

 베틀북 펴냄, 2002.11.20.



  그림책 《꼬마 도깨비 오니타》(베틀북,2002)를 읽습니다.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과 아만 키미코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입니다. 한국말로 옮긴 책에는 ‘도깨비’로 적지만,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도깨비’가 아닌 ‘오니’입니다. 일본 오니와 한국 도깨비는 사뭇 달라요. 다만, 서로 사뭇 다르지만 한국 어린이가 알아보기 쉽도록 도깨비로 고쳐서 옮겼을 텐데, 책이름도 한국말로 옮기면서 바꾸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그림책은 《おにたのぼうし》입니다. ‘おにた’는 그림책에 나오는 오니 이름이고, ‘ぼうし’는 일본말로 ‘모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밀짚모자 오니타”나 “모자 쓴 오니타”나 “오니 모자”나 “오니가 쓴 모자”가 일본책 이름입니다.


  이 그림책에서 모자는 무척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오니타라는 오니 아이는 가난한 집 이웃을 사귀고 싶어 해요. 가난한 집으로 조용히 깃들어 몰래 이것저것 도우면서 삶을 즐깁니다. 여느 때에는 사람 눈에 안 뜨이는 데에서 숨어서 지내지만, 때때로 사람 앞에 나타나야 할 때가 있어요. 이때에는 ‘머리에 돋은 뿔’을 숨기려고 모자를 써요.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씁니다. 오니타는 이웃과 동무를 사귀고 싶기에 ‘제 모습을 감추면서 사람 앞에 나서면서 꼭 모자를 챙깁’니다.


  그림책 흐름을 보면, 마지막 고빗사위에서 오니타는 그만 몸이 사라져요. 어린 가시내가 던지려는 콩 때문에 오니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는 깃들 수 없습니다. 이때, 오니타는 사라지지만 모자는 남지요. 사라진 오니타가 남긴 모자를 손에 쥔 어린 가시내는 ‘오니타’가 ‘하늘에서 찾아온 신령’이라든지 ‘하늘에서 찾아온 천사’쯤으로 생각합니다.



.. 오니타는 마음씨 착한 도깨비였습니다. 어제도 마코토가 잃어버린 유리 구슬을 주워서 몰래 마코토 방에 갖다 두었지요. 며칠 전 소나기가 내렸을 때는 빨래를 걷어서 안방에 던져 두었고요 ..  (6쪽)





  그런데, 오니타는 왜 사라져야 했을까요. 왜 가난한 집 사람들은 오니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밀짚모자로 뿔을 가렸기에 오니타를 못 알아보았을까요. 오니타처럼 착한 아이가 곁에 있어도 ‘귀신이니까 그저 싫기’만 할까요.


  어린 오니타는 아주 착한 아이입니다. 마음도 착하고 몸가짐도 착합니다. 그런데 오니타한테는 늘 한 가지가 못마땅해요. 사람들은 ‘착한 귀신’도 ‘안 착한 귀신’도 알아보지 않아요. 사람들은 ‘귀신이면 모두 싫어합’니다. 가난한 이웃이나 어려운 동무를 도와주면서도 오니타는 늘 못마땅해 하는 마음이 도사려요. 처음에는 이웃돕기나 동무사랑이 무척 즐거워서 이 길을 걸었을 텐데, 차츰차츰 아쉬움이 불거져요. 아마 나중에는 이 아쉬움이 커다란 미움이 되었을는지 몰라요.


  오니타는 아쉬움이 미움으로 커지기 앞서 몸을 잃습니다. 그만 마음을 너무 놓다가 콩 한 줌에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이웃을 사귀지 못하고 사라져야 한 오니타는 어떤 마음이 되었을까요. 동무와 어울려 놀지 못한 채 몸뚱이를 잃어야 한 오니타는 어떤 마음일까요. 도깨비이든 오니이든 귀신이든, 이 아이들이 몸을 잃으면 이제 어떻게 될까요.



.. 콩 뿌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오니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이상해. 왜 귀신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  (9쪽)





  그림책을 읽는 내내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나 스스로 오니타 마음이 되어 봅니다. 아니, 나 스스로 오니타가 됩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착하게’ 이웃과 마주하려고 애써 봅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아름답게’ 동무를 돕거나 보살피려고 애써 봅니다. 그런데, 이웃이나 동무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고맙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때 나는 어떤 마음일까요. 서운할까요? 섭섭할까요? 미울까요? 싫을까요?


  대가를 바랄 적에는 사랑이 아닙니다. 내 이름값을 알아주기 바랄 적에는 사랑이 아닙니다.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기를 바랄 적에는 사랑이 아닙니다. 오니타라는 아이는 이제껏 틀림없이 멋지고 놀라우며 예쁜 일을 수없이 했어요. 그러나, 오니타가 이제껏 했던 수없이 많은 멋지고 놀라우며 예쁜 일은 ‘즐겁거나 따스하거나 넉넉한 마음’으로 하지 못했어요.





.. 오니타는 왠지 등이 근질거리는 것 같아서,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며시 대들보를 따라 부엌으로 가 보았습니다. 이런! 부엌은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말라 있습니다. 쌀 한 톨도 없고, 무 한 토막도 없었습니다 ..  (21쪽)



  오니타는 몸을 잃습니다. 그러나 넋은 잃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오니타는 몸을 고이 내려놓고는, 이제 조용히 바람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오니타는 참으로 착한 아이인 터라, 따사롭고 포근한 바람이 되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과 동무 곁에서 늘 살랑살랑 불리라 생각해요. 게다가, 이제는 바람이 되었으니, 돈이 많은 이웃한테도 가고, 바보짓을 하는 동무한테도 가며, 전쟁을 일으키는 멍청한 어른한테도 갑니다. 그저 햇볕처럼 그저 바람이 됩니다. 햇볕이 온누리 골골샅샅 골고루 내리쬐면서 누구한테나 따스한 숨결이 되듯이, 바람이 되는 오니타는 온누리 골골샅샅 골고루 퍼지면서 누구한테나 싱그러운 숨결이 되리라 생각해요.


  바람이 된 오니타는 흐뭇하게 웃으리라 믿어요. 나뭇가지를 살살 흔들면서 멋진 가을노래와 여름노래를 들려주리라 믿어요. 무더운 여름에는 우리 이마를 가볍게 건드리면서 더위를 잊도록 도와주겠지요. 겨우내 싱싱 찬바람으로 불면서 들과 숲이 고즈넉히 잠들도록 이끌겠지요. 이러다가 새봄에는 다시 포근한 기운을 실어나르면서 들과 숲에서 온갖 꽃이 피어나도록 할 테고요.


  나도 바람 한 줄기가 되고 싶습니다. 나도 이웃과 동무를 아끼는 싱그러운 바람 한 줄기가 되고 싶습니다. 나를 참답게 사랑하면서 삶을 즐겁게 짓는 고운 바람 한 줄기가 되어 온누리를 보드랍게 어루만지고 싶습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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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가 잠자나 아기 시 그림책
목일신 지음, 이준섭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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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2



노래가 태어나는 곳

― 누가 누가 잠자나

 목일신 시

 이준섭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03.11.25.



  목일신 님은 이녁 아이를 바라보면서 글을 짓습니다. 이녁 아이를 바라보면서 지은 글은 어느새 가락이 붙어 노래가 됩니다. 아마 처음 글을 쓸 적부터 입에서 흥얼흥얼 노랫가락이 흘렀으리라 생각합니다.


  목일신 님이 낳은 딸아이 목수정 님은 어릴 적에 어떤 노랫가락을 이녁 어버이한테서 들었을까 하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늘 들었을 수 있고, 자주 들었을 수 있으며, 드문드문 들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얼마나 자주 들었거나 몇 차례 들었거나 하는 대목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들려주는 노랫가락을 들었다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사랑을 담아 따사롭게 들려준 노래를 듣고 자라는 아이는 가슴속에 사랑을 담아 따사로운 눈빛으로 온누리를 보듬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이기에 내 아이만 사랑하려고 노랫가락을 짓지 않습니다. 내 이웃이나 동무가 낳은 아이도 내가 낳은 아이하고 똑같습니다.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누구나 곱습니다. 누구나 착하고 누구나 애틋합니다. 그러니, 목일신 님이 이녁 아이를 바라보면서 쓴 글이란, 이 땅 모든 아이를 바라보면서 쓴 글이요, 지구별 모든 숨결을 바라보면서 쓴 글이에요.


  새근새근 잠들기를 바랍니다. 깊이 잘 자고 나서 아침에 다시금 씩씩하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루 내내 신나게 뛰놀고, 저녁에 꿈나라에서 다시 놀 수 있기를 바라요.


  모든 노래는 삶에서 태어납니다. 삶은 우리 생각에서 태어납니다. 우리 생각은 즐겁게 짓는 이야기에서 태어납니다. 이야기는 웃음에서 태어나고, 웃음은 사랑을 담은 손길로 즐겁게 꿈꿀 적에 태어납니다.



.. 산새들이 모여 앉아 꼬박꼬박 잠자지 ..





  가을비가 내리는 시월 끝자락입니다. 갑자기 늦가을 비가 내리니 집안에 서늘한 바람이 붑니다. 오슬오슬 쌀쌀한 기운이 감돌기에 조용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방바닥에 불을 넣습니다. 아침에 아이들과 먹을 밥을 헤아리며 쌀을 씻습니다. 엊저녁에 끓인 미역국을 살핍니다. 오늘은 아침에 어떤 밥을 지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아침마다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오늘은 무슨 밥이야?”


  날마다 똑같은 밥은 없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밥입니다. 날마다 똑같은 놀이는 없습니다. 어제 한 놀이와 오늘 한 놀이는 다릅니다. 똑같다 싶은 놀이를 날마다 한다면, 날마다 하면서 놀이가 손과 몸에 익어 이튿날에는 훨씬 빠르면서 잰 몸놀림이나 손놀림을 보입니다.


  노래는 바로 오늘 우리가 선 이곳에서 태어납니다.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을 노래합니다. 사랑 아닌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 아닌 것을 노래합니다. 누군가는 기쁨을 노래할 수 있고, 누군가는 슬픔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고, 누군가는 미움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농약이나 새마을운동을 노래할 수 있고, 누군가는 웃음과 춤사위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나비를 노래할 수 있고, 누군가는 살충제를 노래할 수 있습니다.


  목일신 님은 고흥에서 나고 자랐고, 목일신 님이 낳은 아이 목수정 님은 한국을 떠나 퍽 먼 나라에서 오랫동안 지냅니다. 그래도 목씨 집안 분들은 고흥에 많이 남습니다. 우리 식구가 읍내 마실을 하다가 택시를 불러 우리 집으로 돌아올 적에 부르는 택시는 목씨 집안 아재가 몹니다. 목씨 집안 아재는 이녁 집안 어른들이 예부터 곧고 바르며 옳게 살았던 이야기를 택시를 몰며 즐겁게 들려줍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어떤 노래를 부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오늘 사랑으로 지어서 부르는 노래를 들려줄 적에, 이 노랫가락 가운데 어느 한 타래가 살며시 스며들어, 아이들이 즐겁게 부르는 노래로 다시 태어나겠지요.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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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달라 파랑새 그림책 73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조민영 옮김 / 파랑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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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1



사랑을 담아 살다

― 달라달라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조민영 옮김

 파랑새 펴냄, 2008.11.3.



  사랑을 담아 그림을 그리면 그림에 따사로운 사랑이 흐릅니다. 사랑을 담아 노래를 부르면 노래에 따사로운 사랑이 감돕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사랑을 담아서 사는 사람한테는 언제나 따사로운 기운이 퍼집니다.


  남이 나한테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사랑을 알지 못하면, 남이 나한테 아무리 사랑을 주더라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나 스스로 먼저 오롯이 사랑일 때에, 남이 주는 사랑도 받고 내가 나한테 주는 사랑을 느낍니다.



.. 우리 할아버지도 젊었을 적에는 달라달라를 몰았대요. “봐라, 쥐마. 할아비가 너 주려고 장난감 달라달라를 만들었지. 내가 몰던 것과 똑같이 생겼단다.” ..  (4쪽)





  이치카와 사토미 님이 빚은 그림책 《달라달라》(파랑새,2008)에 흐르는 사랑을 찬찬히 헤아립니다. 태평양 어느 섬마을에서 버스를 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쥐마’라는 아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달라달라를 모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쥐마네 할아버지는 쥐마더러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쥐마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하는 ‘달라달라 버스 몰기’가 썩 ‘좋은 일’은 아니라고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면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일을 해야 좋은 삶이 될까요. 어떤 좋은 일로 좋은 삶을 가꾸어야 좋은 사랑이 피어날 만할까요.



.. 까마득히 펼쳐진 바다까지 왔어요. “저 앞을 봐라, 쥐마. 저게 인도양이란다.” “아빠, 왜 우리는 더 멀리까지 못 가요? 펠리컨들은 인도까지 갈 수 있는데.” ..  (12쪽)




  어린이 쥐마는 스스로 실타래를 풀어야 합니다. 쥐마한테 궁금한 대목은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풀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이 쥐마 스스로 제 삶길을 열어서 씩씩하게 걸어가야 할 뿐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쥐마를 다그치지 않습니다. 그저, 쥐마한테 나무 장난감을 깎아서 선물하고, 쥐마를 데리고 바다로 마실을 다닙니다. 어린이 쥐마는 나무 장난감을 만지면서 놀다가, 바닷가에서 드넓은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다가, 문득, 비로소, 시나브로, 환하게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 그때 나는 할아버지가 기도할 때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문득 깨달았어요. “나한테 ‘좋은 직업’은 바로 이거예요! 나도 달라달라 운전사가 될 거예요. 내 달라달라는 하늘을 날 거예요!” ..  (25쪽)



  스스로 웃음을 찾을 때에 좋은 일입니다. 스스로 노래를 부를 때에 좋은 일입니다. 스스로 이야기를 지을 때에 좋은 일입니다. 스스로 사랑을 찾아 어깨동무할 이웃을 사귈 때에 좋은 일입니다.


  내 삶을 좋게 가꾸는 길은 아주 쉬워요. 스스로 좋은 마음이 되고, 좋은 생각을 가꾸면서, 좋은 눈빛으로 좋은 몸짓이 되면 되지요. 포근하면서 싱그러운 숨결이 흐르는 그림책 《달라달라》를 아이와 함께 읽습니다. 4347.10.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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