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은 아기 올빼미 - 캄캄한 어둠을 무서워하는 아기 올빼미가 아름다운 밤을 알게 된 이야기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41
길 데이비스 글, 딕 트위니 그림, 김현좌 옮김 / 봄봄출판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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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9



두려움과 새로움은 한몸

― 겁 많은 아기 올빼미

 길 데이비스 글

 딕 트위니 그림

 봄봄 펴냄, 2014.8.5.



  아기가 첫걸음을 내디딥니다. 아직 다리에 힘이 많이 붙지 않았기에 한 발 두 발 내딛으면서 다리를 떱니다. 벌벌 떨면서도 어머니나 아버지 손을 놓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아기는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혼자서 어디로든 걸어서 가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가 몸을 뒤집고, 기고, 일어서고, 걷고, 달리고 하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봅니다. 한 고비를 지나고 두 고비를 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괜히 가슴이 벅찹니다. 어버이 손길을 조금씩 덜 타면서 스스로 웃고 뛰놀면서 자라는 모습은 몹시 대견합니다.


  가만히 보면, 아기뿐 아니라 어른도 자랍니다. 아기는 다리에 힘이 붙고 손에도 힘이 붙는데, 어른은 몸보다 마음에 힘이 붙습니다. 갓난쟁이를 키워내면서 슬기를 얻고, 집살림을 가꾸면서 사랑을 누립니다.



.. 엄마 올빼미가 아기 올빼미를 달래 주었어요. “용기를 내 보렴, 아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좀 봐. 얼마나 아름답니?” 아빠 올빼미도 말했어요. “용기를 내 보렴, 아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좀 봐. 얼마나 크고 밝으니?” ..  (7쪽)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모르기 마련입니다. 개구리는 개구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구리는 올챙이를 바라보면서 저 스스로 올챙이로 지내던 날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짝을 지어 알을 낳을 때에는 올챙이로 깨어나기 앞서 알이던 모습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사람인 어른은 무엇을 돌이킬 수 있을까요? 사람인 어른은 어린이였던 나날을 돌이킬 수 있나요? 아기였던 나날이라든지, 어머니 뱃속에서 무럭무럭 크던 나날을 돌이킬 수 있나요?


  사람인 어른이 지난날을 돌이킬 수 있다면, 아이들을 너르고 깊이 사랑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인 어른이 지난날을 돌이키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아낄 때에 아름다운가를 깨달을 수 있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와 같은 입시지옥이 짙게 드리우도록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모른다고 옛말이 있습니다만, 어른은 아이를 모른다고 해야 할 노릇입니다.



.. 아기 올빼미는 너무 무서워서 눈을 꼭 감았어요. 그러자 갑자기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름다운 노래였지요. 또 물 흐르는 소리도 들렸어요. 신비로운 소리였지요. 아기 올빼미는 더 많은 소리들을 듣고 싶었어요 ..  (11쪽)





  길 데이비스 님이 쓴 글하고 딕 트위니 님이 빚은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겁 많은 아기 올빼미》(봄봄,2014)를 읽습니다. ‘겁이 많다’고 책이름을 붙였습니다만, 아기 올빼미는 아직 바깥누리가 두려울 뿐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두렵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그냥 두려움으로 끝이지 않아요. 아무것도 몰라서 두려울 수 있다면, 아무것도 몰라서 새로울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두려움과 새로움은 한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저 두려워서 꼼짝 못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기에 씩씩하게 나서서 새로운 곳으로 힘껏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 아기 올빼미는 날개를 펴서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했어요. 산들바람이 아기 올빼미를 들어올려 주고, 부드럽게 잡아 주었어요. 아기 올빼미는 날개를 펄력여 보았어요. 그러자 날았어요 ..  (14쪽)



  아기는 아직 일어선 적이 없습니다. 아기는 아직 걸은 적이 없습니다. 아기는 아직 밥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아기는 아직 밥이나 국을 끓인 적이 없습니다. 아기는 아직 자전거를 몬 적도 없고, 도마질을 한 적도 없으며, 글을 쓰거나 읽은 적이 없습니다. 모두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기는 하나씩 받아들입니다. 돌멩이를 입에 넣어 맛을 봅니다. 모래를 움켜쥐고 냄새를 맡습니다. 두려우면 그 자리에 얼어붙을 테지만, 새롭다고 여기기에 자꾸 이것저것 만지고 입에 넣습니다. 새롭기 때문에 자꾸자꾸 앞으로 나아갑니다.


  어른도 아이하고 똑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두렵다고 여기면 참말 아무 일을 못합니다. 넘어질까 두려우면 아이들은 못 걸어요. 넘어져서 무릎이 깨질까 두려우면 아이들은 달리지 못해요.


  자전거를 어떻게 배울까요? 걸음을 어떻게 익힐까요? 글을 어떻게 읽거나 쓸까요? 사랑하는 짝을 어떻게 만나서 사귈까요? 우리는 두려움으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움을 맞아들이면서 일을 합니다. 새롭기에 일을 하고 놀이를 즐겨요. 새롭기에 사랑을 하고 어깨동무를 합니다.


  훨훨 날아오르기를 바라요.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어른들 누구나 훨훨 날갯짓을 펼치기를 바라요. 아이도 어른도 이 지구별에서 아름답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즐겁게 노래잔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요. 4347.9.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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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9-12 14:41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좋습니다!!!!
올빼미가 무척 귀엽네요~^^
이 그림책 은근히 탐이 나는군요. ㅎㅎ

숲노래 2014-09-12 16:32   좋아요 0 | URL
원작은 꽤 예전 작품이더라구요.
앞으로는 이런 그림책이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마 외국에서는 나올는지 모르나
한국에서는 어렵겠지요.

한국은 깊은 숲이 거의 사라졌고
올빼미나 소쩍새를 두 눈으로 지켜본 뒤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도
거의 드물 테니까요... ㅠ.ㅜ

여러모로 예쁜 그림책입니다~
 
샌지와 빵집주인 비룡소의 그림동화 57
코키 폴 그림, 로빈 자네스 글, 김중철 옮김 / 비룡소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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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8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면

― 샌지와 빵집 주인

 코키 폴 그림

 로빈 자네스 글

 김중철 옮김

 비룡소 펴냄, 2001.8.21.



  우리 집 한쪽에 무너진 돌울타리를 다시 쌓으려고 이웃 할매가 논에서 돌을 고르던 오월에 크고작은 돌을 잔뜩 얻었습니다. 그런데 구월이 넘도록 돌을 마당 한쪽에 그대로 두었어요. 돌울타리를 손질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넉 달 만에 돌울타리를 손질하며 생각에 잠깁니다. 가을 뙤약볕을 받으며 돌울타리를 쌓는 동안, 이 울타리가 튼튼하게 서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중에 다시 쌓을 일이 없도록 하자면, 아이들이 큰 뒤에도 그대로 튼튼히 서도록 하려면 어떻게 쌓아야 할는지 생각에 잠깁니다.


  이렁저렁 쌓고 나서 가만히 바라봅니다. 더 높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렁저렁 쌓인 데에 더 높이면 무너지겠습니다. 쌓은 울타리를 허뭅니다. 예전 높이에서 더 허뭅니다. 바닥부터 튼튼하게 하자면 돌을 넓게 쌓아야지 싶습니다. 석 줄로 쌓자고 생각합니다. 한 줄로는 안 될 테고, 두 줄도 힘을 덜 받겠구나 싶어, 석 줄로 처음부터 새로 쌓습니다.


  한두 줄이라면 돌이 얼마 안 들 테지만, 석 줄로 쌓으려니 돌이 아주 많이 듭니다. 바깥과 안쪽은 큰돌로 버티고, 사이는 잔돌로 채웁니다. 바깥과 안쪽을 큰돌로 서로 버티도록 하면서 안쪽에 잔돌을 동이에 담아서 붓습니다. 오월에 이웃 논에서 돌을 얻을 적에 할매가 들려준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흙을 발라서 쌓으면 아주 튼튼하지만, 잔돌을 쓰면 더욱 튼튼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오늘에서야 알아차립니다.



.. 샌지는 자기 마음에 꼭 드는 방을 찾았지. 그 방은 작고 아담했지만 아주 아늑했어. 무엇보다 이 방 밑에 빵집이 있다는 게 가장 좋았어 ..  (4∼5쪽)




  전라남도 고흥은 태평양을 맞댄 시골입니다. 태풍이 한반도에 찾아들 적에는 진도 해남 강진 장흥과 함께 바닷바람까지 고스란히 껴안습니다. 우리 집이 있는 마을은 바닷가부터 멧봉우리가 둘 있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은 태풍을 맞바로 받아야 하지만, 우리 집은 멧봉우리 두 곳이 먼저 튕겨 주어요. 그래도 막상 태풍이 찾아오면 바람이 얼마나 드센지 몰라요.


  태풍이 지나갈 때면 제주섬 사람들이 예부터 바람을 얼마나 무서워 하면서도 섬기고 애틋하게 여겼겠는가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제주섬은 예부터 지붕을 단단히 새끼줄로 동여맸어요. 돌울타리가 아주 높아요. 그러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었겠지요.


  우리 집은 마당에 후박나무가 크게 자랐습니다. 그늘이 꽤 넓습니다. 마을 이웃은 그늘이 진다며 나무를 베라 하지만, 우리는 이 나무를 아낍니다. 여름에 나무그늘이 얼마나 시원한데요.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이 얼마나 싱그러운데요. 후박나무 곁에서 자라는 초피나무도 키가 꽤 올랐습니다. 두 나무와 동백나무는 우리 집이 바깥에서 잘 들여다볼 수 없도록 가로막아 줍니다. 바람이 드세게 불 적에도 나무들이 먼저 받아 주어요.



.. 샌지는 빵집에 가서 아주 조그만 계피빵을 샀어. “베란다에서 맛있는 빵 냄새를 맡았어요.” 샌지가 빵집 주인에게 말했지. “그래? 네가 빵 냄새를 맡았다고?” 빵집 주인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어 ..  (9쪽)




  한겨레 옛집에는 대문이 없습니다. 알 사람은 알 텐데, 한국말에는 ‘문’이라는 낱말조차 없습니다. 한겨레 옛집에는 큰문(대문)도 작은문도 없어요.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에는 ‘미닫이’나 ‘여닫이’가 있을 뿐입니다.


  한겨레 옛집에는 ‘마루문’도 없지요. 그냥 탁 트인 마루일 뿐입니다. 집과 바깥 사이에 경계가 없어요. 집집마다 세운 울타리는 이웃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경계가 아닙니다. 바람을 막으려는 울타리이고, 비가 덜 들이치도록 높이는 울타리이며, 들짐승이 함부로 드나들지 말라고 세운 울타리입니다. 게다가 돌울타리를 쌓지 않는 곳은 ‘바자(울바자)’나 겨우 놓았습니다. 탱자나무나 찔레나무를 심기도 했고요.



.. 재판관은 빵집 주인을 쳐다보았어. “넌 딸그락 짤랑 하는 동전 소리를 들었느냐?” “예, 재판관님.” 욕심이 난 빵집 주인은 대답하면서, 동전 그릇을 바라보았어 ..  (23쪽)




  코키 폴 님 그림하고 로빈 자네스 님 글이 어우러진 재미난 그림책 《샌지와 빵집 주인》(비룡소,2001)을 읽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도 어릴 적에 익히 들었습니다. 빵냄새에 돈을 물리려는 빵집 임자하고, 빵냄새 때문에 돈을 억지로 물어야 하는 안쓰러운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에 마을 재판관은 아주 슬기롭게 일을 끝맺어요. 이쪽에 손을 들어 주거나 저쪽에 손을 들어 주지 않습니다. 오직 올바르게 일을 끝맺습니다.


  나는 이 옛이야기를 어릴 적에 들으면서 ‘슬기로우면서 올바르게 바라보고 생각하여 말할 줄 아는’ 매무새가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빵집 임자는 이녁 빵내음을 좋아하는 사람을 반갑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일 때에 아름다울 테고, 빵집을 찾아간 사람은 빵을 더 넉넉히 장만해서 기쁨을 누렸다면 한결 아름다웠을 테지요. 서로서로 마음을 더 나누지 못했어요. 서로서로 마음으로 더 사귀지 못했습니다.


  빵냄새가 좋다면서 냄새만 맡는다고 배가 부르지 않아요. 그런데 빵냄새가 좋다는 말만 하면서 빵은 정작 안 산다고 하면, 빵집 임자는 살살 약이 오를 수 있어요. 빵냄새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무슨 말인가 하면, 그 좋은 빵냄새를 냄새로만 즐기지 말고, 빵을 입에 물고 냠냠 먹으면 훨씬 즐겁다는 뜻이에요.


  생각해 봐요.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는 밥과 국이 있을 적에 냄새만 맡게 하면 어떠한가요? 배부른가요? 굴비를 천장에 매달고서 눈으로 보고 ‘맛있다’고 여기라 하면 참말 맛있거나 배부른가요? 아닙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샌지’는 즐겁고 신나게 빵을 배불리 사다 먹을 수 있기를 빌어요. 빵집 임자는 샌지한테 덤도 주고 우수도 주면서 함께 즐겁고 사이좋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재판관은 샌지와 빵집 임자 두 사람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느낍니다. 다만, 샌지나 빵집 임자는 이를 얼마나 알아채거나 느꼈을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4347.9.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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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은 엄마의 파업 이야기 희망을 만드는 법 9
다이애나 콘 글, 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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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7



이주노동자, 부엌노동자, 그리고

―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다이애나 콘 글

 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

 마음물꼬 옮김

 고래이야기 펴냄, 2014.5.30.



  그림책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고래이야기,2014)를 읽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일을 담은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으레 청소부 일을 했다는데, 낮은 일삯과 고단한 삶을 떨치려고 한꺼번에 팔천 사람이 들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공장 노동자가 파업을 한다든지, 철도 노동자가 파업을 한다고 하면, 정부에서는 아주 큰일이 터질 듯이 윽박지릅니다.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해요. 노동자는 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할까요? 노동자는 기계일까요? 기계 부속품일까요? 또는 이름은 노동자이되, 속알맹이는 종일까요?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중앙정부는 으레 대체인력을 씁니다. 대체인력이 되는 이들도 ‘노동자’라 할 만하지만 기꺼이 대체인력이 되어 파업을 막으려 합니다. 함께 파업에 어깨동무를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돈을 얻으려고? 정부가 시키니까?


  정부가 대체인력을 쓸 적에 으레 궁금해요. 청소부가 파업을 할 적에도 대체인력을 쓸까요? 청소부가 사흘쯤, 또는 석 주나 석 달쯤 손을 놓고 파업을 한다면, 정부나 회사는 얼마든지 대체인력을 쓸 수 있을까요? 아무도 청소부로서 대체인력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정부와 회사는 어떻게 될까요?



.. 엄마는 화장실 바닥을 달처럼 빛이 나게 청소하고, 커다란 유리창을 아빠가 수영을 가르쳐 준 호수처럼 깨끗하게 닦습니다. 그러고 나서 걸레로 사무실 바닥을 윤이 나도록 닦습니다. 얼마나 매끄러운지 신발을 벗으면 미끄러질 정도지요. 쓰레기를 모두 모아 종류별로 나눈 다음 내다 버리면 하루 일이 끝납니다. 엄마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  (5쪽)




  우리 정부는 농사꾼이 파업을 한다 할 적에 대체인력을 안 씁니다. 아마 시골 농사꾼이 파업을 한다면, 어느 누구도 대체인력으로 안 오리라 느낍니다. 농사꾼을 대체하는 인력이라면 일삯을 얼마쯤 받을까요? 일삯다운 일삯이나마 받을까요?


  농사꾼이 파업을 한다면 정부가 하는 일은 꼭 한 가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곡식과 열매와 남새를 사들입니다. 그뿐입니다. 아무런 정책이 없고 대책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 나라 사람들은 정부가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는 곡식이나 열매나 남새를 잘 먹어요. 그러니, 한국에서는 어깨동무가 없다고 할 만합니다. 서로 끈이 되지 못합니다.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그림책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에 나오는 청소노동자는 이주노동자입니다. 미국에 돈을 벌러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미국에서 파업을 했고, 일삯을 올려받았으며, 쉬는 날이 생겼습니다. 한국에도 이주노동자는 대단히 많습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는 파업을 할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는 고용주한테 ‘욕을 하지 말라’나 ‘때리지 말라’ 같은 뜻을 밝히려고 파업을 할 수 있을까요?



.. 학교에 가 보니 우리 엄마만 파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 마리아의 아빠도 엄마와 같은 조합원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엘살바도르에서 왔지요. 니카라과에서 온 티노의 엄마도 날마다 우리 엄마와 함께 행진을 했습니다. 로페즈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도 업신여김을 당했다고 합니다.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요 ..  (14쪽)




  한국에서 아주 많은 아줌마는 부엌노동자입니다. 한국에서 웬만한 아줌마는 육아노동자입니다. 한국에서 수많은 아줌마는 ‘아줌마’로도 ‘어머니’로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아줌마들이 파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줌마들은 서로 똘똘 뭉쳐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부엌노동자가 파업을 벌여 석 주나 석 달쯤 밥을 차리지 않기를 빕니다. 육아노동자가 파업을 벌여 석 주나 석 달쯤 아이를 아저씨나 아버지한테 도맡길 수 있기를 빕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저씨나 아버지 스스로 밥을 차려서 먹든 사다가 먹든 지켜볼 수 있기를 빕니다. 유치원이나 학교나 학원에 아이를 가두든, 언제 어디에서나 아이와 다니든 아저씨나 아버지 스스로 아이를 하루 내내 지키면서 보살피고 아끼도록 할 수 있기를 빕니다.



.. 나는 아주 밝게 색칠해서 만든 내 팻말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  (21쪽)




  사회가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파업을 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나라가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지구별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자꾸 전쟁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거느립니다.


  탱크 한 대를 만들어 거느리는 데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 사람들은 제대로 알까요? 전투기나 군함 한 대를 만들어 거느리느라 얼마나 돈을 많이 쓰는지 사람들은 제대로 알까요? 지구별 수많은 나라 중앙정부가 전쟁무기와 군대를 거머쥐면서 권력을 누릴 뿐 아니라, 우리를 못살게 하는 줄 깨닫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느 사람들은 스스로 종이 됩니다. 군대에 끌려간 젊은이는 이들대로, 군대에 직업군인으로 들어간 사내는 이들대로, 정부가 시키는 대로 바보가 되면서 참다운 삶이나 사랑하고 멀어집니다.


  우리는 왜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적으로 삼아야 할까요. 우리는 왜 냇물을 곱게 돌보면서 싱그러운 물을 마실 생각은 않고, 수십 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시멘트를 냇물에 퍼붓고는 ‘막개발 막공사 일자리’를 얻겠다고 할까요. 냇물을 죄 망가뜨리니 댐을 지어 수돗물을 마셔야 하는데, 댐을 짓는 돈과 수돗물이 흐르도록 하는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올까요.


  그림책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에 나오는 이주노동자는 고향나라를 떠나야 했습니다. 바로 미국 때문입니다. 미국이 제국주의 정책을 펼칠 뿐 아니라,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만들어 제3세계 수많은 나라에 독재군사정권이 서도록 뒤에서 부추긴 탓입니다. 그러니, 제3세계 많은 나라에서 미국으로 들어가 고된 일을 하며 낮은 일삯으로 더 고달프게 지냅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제3세계에서 미국으로 가지 않는다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청소부로 일할 사람이 없다면, 미국에 있는 군수공장 노동자로 일할 사람이 없다면, 미국은 그런 모양새가 되어도 전쟁 미치광이로 날뛸 수 있을까요? 한국에 다른 나라 노동자가 찾아오지 못하게 한다면, 한국 사회에 다른 나라 노동자가 아무도 없도록 한다면, 한국 정부가 미친 바보짓 정책을 펼쳐 사회를 어지럽힐 수 있을까요. 석 달도 석 주도 아닌 사흘만 ‘모든 노동자가 손을 잡아 일을 쉬면’ 정부와 회사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면 정부는 무서워 벌벌 떱니다. 그래서 정부는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못하게 막으려고 힘씁니다. 4347.9.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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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가는 길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37
존 버닝햄 글.그림, 이상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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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6



‘동물원’에 갇힌 꿈 없는 아이들

― 동물원 가는 길

 존 버닝햄 글·그림

 이상희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14.6.20.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 방’을 따로 마련하면서 저녁에 아이가 따로 잠들도록 합니다. 고작 두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조차 요즈음에는 어버이와 떨어져 따로 자기 일쑤입니다. 대여섯 살쯤 되면 아주 마땅히 어버이와 따로 자야 하는 듯 여기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은 왜 따로 자야 할까요? 아이들은 어버이와 같은 방에서 자면 안 될까요? 열 살뿐 아니라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에도 어버이와 같은 방에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먼 옛날을 돌아보면 조그마한 집에서 온 식구가 함께 잠을 잤습니다. 이불 하나를 함께 덮고 잠들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많이 커서 제금을 나기까지는 조그마한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르르 잠들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와 어른이 다른 방에서 잠들면서 아이와 어른 사이에 이야기가 끊어집니다. 아이와 어른이 다른 방에서 잠들기에 어른은 아이가 어떤 숨결인지 헤아리지 못하고, 아이는 어른한테서 따스한 사랑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 시간이 한참 흘렀어요. 실비는 이제 그만 자기 방으로 돌아가 잠들어야 했어요. 아침엔 다시 학교에 가야 하니까요. 실비는 아기 곰에게 함께 방으로 가겠냐고 물었어요. 그리고 아기 곰을 데려가 자기 침대에 재웠지요 ..  (11쪽)



  존 버닝햄 님 그림책 《동물원 가는 길》(시공주니어,2014)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가시내 하나, 어머니 하나, 이렇게 두 사람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은 더 안 나옵니다. 아마 가시내는 집에서 혼자인 듯합니다. 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은 없지만, 아버지가 있더라도 아이와 보내는 겨를은 없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에서 ‘말을 나눌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침에 아이를 깨워 학교로 보냅니다. 아이 어머니는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도 아이하고 말을 섞지 않습니다.


  아이는 이런 집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아이는 이와 같은 집에서 ‘왜 살’까요? 아침과 저녁을 먹고 잠을 자기는 하지만, 이밖에 다른 아무런 삶이 없는 집이란 어떤 곳일까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아이 가르치기’는 끝인 셈일까 궁금합니다. 아이가 배울 이야기는 학교에서 다 가르치는 셈인지 궁금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학교에서 배우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으로서 이웃을 서로 아끼고 믿고 돌보고 사랑하는 숨결을 학교에서 얼마나 잘 가르칠는지 궁금합니다.




.. 거실에는 동물들이 그득했어요. 실비가 펄쩍 뛰며 화를 내자 동물들은 모두 가 버렸어요 ..  (31∼33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에서 심심합니다. 아니, 심심함을 넘어서지요. 날마다 똑같은 하루가 되풀이될 뿐이니, 아이는 지겹습니다. 날마다 신나게 뛰놀아야 할 아이가 활짝 웃을 일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속삭일 일조차 없습니다. 말을 할 줄 알 테지만, 입을 벙긋할 일이 없습니다.


  아이는 마음속으로 새로운 길을 짓습니다. 아이가 잠드는 방 한쪽에 문을 만들어서, 이 문을 열고 어떤 길로 들어서면 무엇이 나오도록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짓습니다.


  아이가 지은 것은 동물원입니다. 왜 동물원일까요? 동물원에 있는 짐승은 사람을 고분고분 따릅니다.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릅니다. 게다가 범이든 코끼리이든 사자이든 코뿔소이든, ‘어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거나 윽박질러’도 꼼짝을 못 합니다. 아이는 귀여운 짐승을 제 방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잠들기도 한다는데, 동물원 짐승들은 마치 꼭둑각시나 인형과 같습니다. 아이하고 놀지 않아요. 아이도 놀 줄 몰라요. 짐승들은 그저 아이 곁에 머물 뿐입니다. 아이도 짐승들을 어떻게 보살피거나 함께 살아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배운 적도 본 적도 없거든요.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무언가 잘못했을 적에 소리를 지르거나 윽박지르기는 했겠지요. 차근차근 타이르거나 함께 더 어지르면서 논 적이 없겠지요. 아이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똑같이 아이하고 말을 제대로 섞은 적이 없을 테니, 아이도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떻게 말을 섞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즐거운지 모릅니다.


  그저, 마음속 동물원에서 ‘새로운 짐승’을 끝없이 데려올 뿐입니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갔다가, 교과서 수업을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와서 얌전히 지내다가 잠드는 하루처럼, 마음속 동물원에서도 ‘새로운 짐승’만 끝없이 데리고 와서 침대맡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하룻밤을 보낼 뿐입니다.


  더구나, ‘동물원 짐승’들이 조그마한 방에서 벗어나 넓은 데에서 놀고 싶어 마루로 나왔는데, ‘그림책 아이’는 이 짐승들하고 놀 줄 몰라요. 함께 놀지 않고 그저 윽박지르지요. ‘아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다그칩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한테 ‘시키기’만 하고, 아이는 짐승들한테 ‘시키기’만 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를 ‘아이 방’에 가두기만 하고, 아이도 짐승들을 ‘제 방’에 가두기만 합니다. 놀이도 삶도 꿈도 이야기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 실비가 이제 막 방을 다 치웠을 때 엄마가 도착했어요. “이런, 실비야!” 엄마가 소리쳤어요. “온갖 동물들이 몰려와 놀다 간 것처럼 어질러 놓았네. 내가 집을 비울 때는 실비 너도 나가 노는 게 좋겠어.” ..  (37쪽)



  새로운 삶을 배운 적 없기에 새로운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즐거운 사랑을 물려받은 적 없으니 즐거운 사랑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가 ‘동물원’이 아닌 ‘숲’을 그릴 수 있었다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존 버밍햄 님은 이 그림책에서 ‘숲’을 그릴 수는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날마다 쳇바퀴처럼 지내는 아이라면, 숲에 가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고작 동물원에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겠지요. 아이가 그릴 수 있는 꿈은 아이가 누린 삶입니다. 아이 스스로 겪은 적이 없는 삶을 아이가 꿈꾸지 못해요.


  어른도 이와 똑같습니다. 어른도 스스로 겪은 적이 없는 삶을 꿈꾸지 못합니다. 평화를 겪은 적이 없으면 평화를 꿈꾸지 못합니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겪은 적이 없으니 사랑과 아름다움을 꿈꾸지 못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버이(어른)부터 아름다운 삶과 이야기와 사랑을 겪고 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이한테 아름다움도 이야기도 물려주지 못하지요.


  《동물원 가는 길》을 아이한테 읽히는 어버이는 무엇을 느낄까요? 아이가 그저 재미나게 ‘꿈놀이’를 한다고만 여길까요? 그렇게 여기고 재미난 여러 짐승들 그림을 보며 재미나다고 여길까요? 짐승들 이름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면서 좋아할까요?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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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백과사전 - 내 안의 모든 감정과 만나는 그림책 밝은미래 그림책 18
메리 호프만 글, 로스 애스퀴스 그림, 최정선 옮김 / 밝은미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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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5



마음을 이야기해요

― 감정 백과사전

 메리 호프만 글

 로스 애스퀴스 그림

 최정선 옮김

 밝은미래 펴냄, 2014.5.30.



  어머니나 아버지가 걱정을 늘어놓으면 아이들도 어느새 걱정을 물려받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걱정을 모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 아이들은 늘 웃고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즐겁게 웃거나 노래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웃음도 노래도 좀처럼 스스로 길어올리지 못하곤 합니다.



.. 행복 유전자를 타고난 것처럼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어. 어떨 땐 반짝이는 햇살만 봐도 행복한 기분이 든단다 ..  (5쪽)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될 적에 이웃과 동무한테 사랑을 나누어 주도록 이끕니다. 근심과 슬픔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될 적에 이웃과 동무한테 근심과 슬픔을 퍼뜨리도록 이끕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옳거나 그르다고 가르지 않으면서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좋거나 싫다고 금을 긋지 않으면서 맞아들입니다. 사랑이라서 옳거나 좋다고 받아들이지 않아요. 어버이가 사랑스럽게 지내니, 이러한 모습을 늘 지켜보면서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근심이라서 그르거나 슬픔이라서 나쁘다고 쩍쩍 가르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늘 근심과 슬픔에 젖어서 지내니, 아이들은 그저 늘 바라보면서 하나둘 맞아들입니다.




.. 살다 보면 속상한 일도 생겨. 친구가 너를 무시하거나 따돌린다면 ..  (14쪽)



  메리 호프만 님이 글을 쓰고, 로스 애스퀴스 님이 그림을 그린 《감정 백과사전》(밝은미래,2014)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즐거움과 흐뭇함 같은 느낌뿐 아니라 걱정과 창피 같은 느낌을 두루 이야기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즐거운 느낌보다 서운하거나 고단한 느낌을 조금 더 이야기하지 싶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이 그림책에서 서운하거나 고단한 느낌을 더 다룰 만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여느 어버이는 즐거운 느낌보다 서운하거나 고단한 느낌으로 하루하루 살림을 꾸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걱정이 참 많습니다. 오늘날 어버이들은 근심덩어리라 할 만합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지내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어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학교와 학원 때문에 걱정할 뿐 아니라, 돈 때문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뒤틀린 정치와 경제와 사회 때문에 골이 아픕니다. 자동차 소리 때문에 언제나 귀가 아프고, 매캐한 바람과 찌뿌둥한 하늘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 힘겹습니다.


  맑은 물을 못 마시는 사람들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똑같습니다. 하루라도 수돗물이 끊기면 도시에서는 큰일이 생깁니다. 하루라도 가스가 끊기거나 전기가 끊겨 보셔요.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딱히 걱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른들은 온통 걱정투성이입니다.


  전쟁이 터지면 어쩌지요? 아버지나 아저씨는 군대에 끌려갈 걱정을 해야겠지요. 전쟁이 터지면 도시사람은 어떻게 하지요? 어디 몸을 옮길 시골이 있을까요. 시골로 몸을 옮기더라도 어떻게 먹고살까요? 전쟁이 아니더라도 핵발전소가 터지면 어쩌나요? 핵발전소가 아니더라도 화력발전소가 터지면 어떡하나요? 화력발전소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미군부대에서 흘려보낸 엄청난 쓰레기와 석유찌꺼기와 중금속은 어떡하나요?




.. 정말로 부끄러워서 어떡해야 좋을지 몰랐던 적이 있니? 떠올리기만 해도 창피해서 숨어 버리고 싶은 일,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어. 엄마나 아빠가 사람들 앞에서 너를 창피하게 만들 때도 있을 거야 ..  (22쪽)



  마음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이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마주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서로 따사롭게 마주하면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어른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넉넉할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됩니다. 마음이 기쁠 때에 환하게 웃습니다. 환하게 웃는 마음일 때에 사랑이 샘솟습니다. 사랑이 샘솟을 때에 노래가 흐르고 춤이 절로 나옵니다.




..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일도 자꾸 걱정하다 보면 큰일처럼 느껴지거든. 이런 말 들어 봤니? “작은 걱정이 큰 걱정을 만든다.” 네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으면 종이에 네 걱정거리들을 하나하나 적어 보는 것도 좋아 ..  (27쪽)



  마음을 이야기하는 《감정 백과사전》은 우리한테 꼭 한 가지를 힘주어 말하려는구나 싶습니다. 어려운 일도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고달픈 일도 있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웃고 노래하면, 모든 실타래를 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싶습니다. 내가 먼저 한발 나서서 어깨동무를 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스스로 웃고 노래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내가 먼저 웃으면 돼요.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느긋하게 웃으면 됩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따사롭습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일 때에 서로 돕습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꽃이 핍니다. 4347.9.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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