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지의 선물 다산어린이 그림책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정숙경 옮김 / 다산어린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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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6



우리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지

― 벤지의 선물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남주현 옮김

 두산동아 펴냄, 1996.10.29.



  가을이 무르익어 구월이 천천히 기웁니다. 시골집 처마에 깃들면서 새끼를 낳은 제비는 어느덧 거의 다 태평양을 가로질러 따뜻한 새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아직 돌아가지 않은 제비도 있어요. 아마 새끼를 두 차례 낳았나 봐요. 새끼를 한 차례만 낳은 어미 제비와 다 자란 새끼 제비는 일찌감치 돌아갔지만, 다시 새끼를 낳은 어미 제비는 늦둥이를 돌보면서 날갯짓을 가르치느라 바쁘리라 생각해요.


  시골마을마다 들판이 누렇게 달라집니다. 누런 빛깔이 짙을수록 나락이 익는다는 뜻입니다. 참새는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아 부산을 떱니다. 추운 겨울이 닥치면 아무래도 넉넉히 먹어야 할 테니까요.


  느즈막하게 깨어난 나비는 가을춤을 춥니다. 겨울나기를 하는 나비라면 큰나무 밑에서 가랑잎 품으로 깃들어 천천히 쉬리라 생각해요. 풀벌레도 이렇게 겨울을 맞이하려 하겠지요. 여름 내내 푸른 빛깔이던 풀벌레는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몸빛이 흙빛으로 바뀝니다. 여름 동안 나무에 푸른 빛깔로 달렸던 잎사귀는 어느새 누렇게 말라서 톡 떨어집니다. 나무가 선 자리마다 누런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입니다.



.. 어느 여름날, 노라는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초대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어요. 노라는 강아지 키키, 인형 마기와 곰인형 푸에게 큰 소리로 편지를 읽어 주었습니다. “놀러 오세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준비했습니다. 정원도 넓고, 수영장도 있습니다. 틀림없이 즐거운 시간이 될 거예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의 거위로부터.” ..  (2쪽)




  우리 집 뒤꼍에서 무화과알을 땁니다. 올해에는 무화과 몇 그루를 잘 건사했기에 무화과알을 제법 얻습니다. 달디단 무화과알은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지 몰라요. 무화과나무가 우리한테 베푸는 고운 가을 선물입니다.


  감나무도 우리한테 선물을 베풉니다. 모과나무도 선물을 베풀고, 나무란 나무마다 서로 다른 선물을 우리한테 나누어 줍니다. 가만히 보면, 나무는 열매만 선물하지 않아요. 한 해 내내 푸른 바람을 선물합니다. 싱그럽게 숨을 쉬고 맑게 꿈을 꾸도록 푸른 바람을 선물하는 나무입니다.


  여름에는 짙푸른 그늘을 선물하지요.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을 막아 주지요. 참말 나무 몇 그루 집 둘레에 우람하게 서면, 이 집에는 따뜻하고 너그러운 숨결이 가득가득 맴돕니다.


  예부터 집집마다 나무를 심는 까닭을 알 만합니다. 아이를 낳는 집이면 으레 ‘우리 집 나무’를 심어요. 아이 이름을 따서 나무를 심습니다. 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사랑스러운 짝을 만나 새롭게 아이를 낳으면, 또 새롭게 이름을 붙여 나무를 심어요.



.. “이런! 누가 선물로 가지고 온 들꽃에 얼굴을 파묻고 있지?” “이웃에 사는 벤지예요. 아, 그렇지. 벤지도 와서 우리와 놀자.” 거위는 벤지도 초대했습니다 ..  (6쪽)




  아이와 살아가는 어른은 나무를 심습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나무를 선물합니다. 아이는 어른한테 무엇을 선물할까요? 글쎄,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무엇을 선물하지요?


  아마, 가장 큰 선물이라면 웃음입니다. 웃음과 함께 노래를 선물합니다. 웃음과 노래가 어우러진 이야기를 선물합니다. 웃음과 노래가 어우러진 이야기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늘 언제 어디에서나 어른들한테 사랑을 선물하는 셈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나무와 밥과 옷과 집이라 하는 선물에 사랑을 담고, 아이들은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라는 선물에 사랑을 싣습니다.



.. 차를 마신 뒤에는 마당에서 신나는 나무타기놀이 ..  (16쪽)




  이치카와 사토미 님 그림책 《벤지의 선물》(두산동아,1996)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치카와 사토미 님은 이 그림책을 1990년에 처음 선보였다고 하니, 제법 나이를 먹은 그림책입니다. 부드러우면서 포근한 붓질이 따사로운 그림책인데, 이 책에 서린 이야기도 부드러우면서 포근해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 ‘노라’는 숲 속 거위한테서 편지를 한 통 받는다고 해요. 네, 거위한테서 편지를 받습니다. 노라는 제 동무인 인형들한테 편지를 읽어 준다고 하는군요. 네, 인형들한테 편지를 읽어 줍니다.


  다시 말하자면, ‘노라’라고 하는 아이는 거위랑 인형하고 말을 섞을 줄 압니다. 거위랑 인형은 노라라는 아이하고 말을 섞고 싶습니다. 함께 놀면 즐겁고, 서로 아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 낮잠을 잘 때에 벤지는 푹신푹신한 베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친구에게 도움이 되어서 기쁜가 봐요 ..  (25쪽)




  참말 아이들은 거위나 양이나 인형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비디오나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잠자리나 제비나 매미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지식이나 저런 정보를 머릿속에 채우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구름이나 해나 별하고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열면 우리는 누구하고나 동무가 됩니다. 마음을 열 때에 우리는 서로서로 믿고 아끼는 동무가 됩니다. 마음을 여는 동안 어느새 내 사랑이 너한테 가고 네 사랑이 나한테 옵니다.



.. “어, 이게 그 뚱뚱했던 벤지야?” “전혀 뚱뚱하지 않잖아!” 이번에는 노라와 그 친구들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 벤지 탓으로만 돌려 왔으니까요 ..  (29쪽)



  온몸을 가득 덮은 털로 뚱뚱해 보이던 양은 노라한테 선물을 하나 줍니다. 양은 이름이 ‘벤지’입니다. 양 벤지는 거위랑 인형이랑 노라한테 선물을 가득 받았어요. 맛난 밥이나 꽃만 선물이 아니에요. 서로 아끼고 보듬는 따사로운 사랑을 선물로 받았어요. 그래서, 벤지는 제 털로 지은 폭신하고 따스한 털옷 한 벌을 선물로 보내지요. 아주 마땅합니다만, 삐뚤빼뚤이어도 손수 편지를 곁들여서 소포꾸러미를 선물로 보내요.


  마음을 열어 사귀는 사이라면 늘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늘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동무와 동무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하늘과 땅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별들도 서로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우리는 지구별하고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고, 해님이나 달님하고도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들꽃 한 송이하고도 선물을 주고받으며, 우람한 나무 한 그루하고도 애틋하게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서로, 무엇을 선물로 주고받으면 즐거울까요? 우리, 다 함께, 무엇을 선물로 나눌 적에 아름답게 웃으면서 노래를 부를 만할까요?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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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배 매기호 비룡소의 그림동화 132
아이린 하스 글 그림, 이수명 옮김 / 비룡소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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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4



꿈꾸는 아이가 사랑스럽네

― 꿈의 배 매기호

 아이린 하스 글·그림

 이수명 옮김

 비룡소 펴냄, 2004.8.20.



  아이들이 새벽같이 잠에서 깹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일찌감치 하루를 엽니다. 왜냐하면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놀고 싶은 아이들은 언제나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잡니다. 이와 달리 놀 겨를이 없거나 놀 길이 막힌 아이들은 언제나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학교라는 곳이 있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닙니다. 그런데 학교라는 곳을 살피면, 참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늦습니다. 학교에 늦지 않더라도 빠듯하게 가곤 합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거나 맞이하는 일이 재미없거나 괴롭거나 따분하거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놀듯이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들이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기쁘게 뛰놀면서 배울 수 있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들이 맑은 눈망울로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시험성적이나 시험공부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면, 아니 참다운 삶을 보여주고 나누면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학교라면, 모든 아이뿐 아니라 모든 어른이 서로 사랑스레 어우러질 만하리라 느껴요.



.. 어느 날 밤, 마거릿 반스타블은 별에게 빌었어요. 북극성님, 바다의 별님, 내 이름을 딴 배를 갖고 싶어요 ..  (3쪽)




  아이들은 이튿날 새롭게 놀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잠자리에 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오늘 하루 새롭게 놀 생각으로 번쩍 눈을 뜹니다. 놀 생각이 아니라면 아이들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늘 틀에 박힌 채 고달픈 일을 되풀이하면서 어깨가 무거워야 한다면, 아마 어떤 아이도 잠들기 싫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리라 생각해요. 어른들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아침이 새롭지 않고 늘 똑같은 일을 고달프게 되풀이해야 한다면, 돈을 버는 일이 지겹다면, 돈을 애써 벌어도 집삯과 빚과 이곳저곳에 들어가야 한다면, 일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일하는 보람이 없으면 아침마다 몸이 무거워요.


  아이들은 꿈을 꾸면서 잠듭니다. 어른들은 어떻게 잠들까요? 어른들도 꿈을 꾸면서 잠들까요? 아니면, 꿈은 하나도 없이 마냥 힘들다 힘들어 힘들어 죽겠네 하는 소리만 읊다가 스르르 곯아떨어질까요?



.. 눈부신 아침이 오면, 마거릿은 갑판을 북북 문질러 닦고 항해할 준비를 하면서 오래된 뱃노래를 불렀어요 ..  (9쪽)





  아이린 하스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비룡소,2004)를 읽습니다. ‘매기호’는 이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이 ‘마거릿’이 모는 배 이름입니다. 마거릿은 잠자리에 들기 앞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애타게 빌었어요. 마거릿은 잠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뭇별한테 기쁘게 바랐어요. 그러고는 꿈을 꾸지요. ‘내 배’를 몰아 거친 물결을 헤치면서 바다를 가로지르고 싶다는 꿈을 꾸어요.


  자, 마거릿이라는 어린이 앞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앞으로 마거릿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부터 마거릿은 어떤 이야기를 맞이할까요?



.. 매기호는 항해를 계속했어요. 산들바람은 상냥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웠지요. 제임스는 부드러운 벨벳 베개를 베고 낮잠을 잤고, 마거릿은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15쪽)



  꿈을 꾸었기에 꿈을 이룹니다. 꿈을 생각하기에 꿈으로 나아갑니다. 아주 마땅해요. 꿈을 꾸지 않으면 꿈을 이루지 않아요. 이루고 싶은 꿈이 없는데 무엇을 이루겠어요? 생각한 꿈이 없는데 어디로 나아갈까요?


  아이들은 즐겁게 놀 생각을 품으면서 밤에 잠듭니다. 그래서 새로운 아침에 새롭게 기운을 내면서 놀아요. 어른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른들도 꿈을 꿀 노릇입니다. 스스로 이루고 싶은 일을 꿈꾸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마음속에 곱게 품어야 합니다.


  생각을 지어야 꿈이 나타납니다. 생각을 지을 때에 꿈을 그립니다. 생각을 지어 꿈이 나타나도록 했으면, 이제부터 꿈을 누려야지요. 생각을 지어서 꿈을 그렸으면, 이제부터 꿈길로 나아가야지요.




.. 저녁 식사가 끝나고, 마거릿은 바이올린으로 오래된 곡조를 연주했어요. 그리고 제임스를 요람에 누이고 부드럽게 흔들었지요. 또 제임스가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 주었고요 ..  (27쪽)



  그림책에 나오는 마거릿이라는 아이한테 ‘얘, 어서 방 좀 치워!’ 하고 윽박지른다면 아이는 고달픕니다. 그러나, 마거릿이라는 아이가 스스로 배를 몰 수 있고, 제 이름을 딴 배를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면, 아무도 어떤 일을 안 시켰어도 스스로 청소를 합니다. ‘얘, 네 동생 좀 봐!’ 하고 다그치면 아이는 괴롭습니다. 그렇지만, 마거릿이라는 아이가 스스로 배를 몰아 바다를 가로지르고픈 꿈을 키운다면, 함께 배를 타고 즐겁게 나들이를 하고픈 동무를 찾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누가 심부름으로 동생 보기를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즐겁고 사랑스레 동생을 보살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이로구나 하고 느끼면서 읽는데, 번역은 그리 살갑지 못하구나 싶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집 일곱 살 아이한테 그냥 건네려 했지만, 이곳저곳 손질할 대목이 많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그림책은 그야말로 어린이 눈높이대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어린이가 처음으로 만날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국말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문학에서 쓰는 낱말이나 말투를 섣불리 그림책에 넣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에서 만나는 낱말과 말투로 생각을 지어요.



하루 동안 항해를 하고, 멋진 친구도 생기게 해 주세요

→ 하루 동안 바다를 가르고, 멋진 동무도 사귀게 해 주세요

태양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 해님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나무 가지 위에는 큰부리새가 앉아 있었지요

→ 나뭇가지에는 큰부리새가 앉았지요



  아이들한테 ‘항해’라는 말을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까요? 어른이라면 이런 한자말을 써도 된다고 할 테지만, 아이들한테 이런 말을 쓰면, 뜻풀이를 다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친구나 동무는 ‘생기게’ 하지 않습니다. 친구나 동무는 ‘사귑’니다.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어른들한테도 하늘에 걸린 따뜻한 별은 ‘해’나 ‘해님’입니다. 새는 나뭇가지에 앉습니다. ‘나뭇가지 위’에 앉는 새는 없습니다.



그의 집은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있네

→ 그대 집은 넘실거리는 바다에 있네

낮에 사과나무 아래로 소풍 가서 점심을 먹었어요

→ 낮에 사과나무 그늘로 나들이 가서 도시락을 먹었어요

갯가재도 냄비 속에 넣었어요

→ 갯가재도 냄비에 넣었어요



  이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은 ‘위’나 ‘아래’나 ‘속’을 엉뚱하게 씁니다. 외국 말투를 섣불리 한국말로 옮깁니다. 바다 위쪽이라고 여겨 “바다 위에 있네”라 할 수 있겠으나, 배(집)는 “바다에 있다”고 말합니다. 바다 밑 어딘가를 가리킬 때에는 “바닷속에 있다”처럼 적습니다. 사과나무 아래에 소풍을 간다는 말은 어딘가 안 어울립니다. “나무 아래”란 어디일까요? 땅속일까요? 뿌리 밑일까요? “나무 그늘”이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국을 끓일 때에는 “냄비에 넣”습니다. “냄비 속”에 넣지 않아요. 냄비 속이란 어느 곳일까요?



마거릿은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 마거릿은 제임스를 멋지게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제임스는 울기 시작했어요. 폭풍이 오고 있었던 거예요

→ 제임스는 울어요. 비바람이 와요

저녁 식사가 끝나고

→ 저녁이 끝나고 / 저녁을 다 먹고



  토씨 ‘-의’를 얄궂게 붙여서 “제임스의 멋진 초상화”라 적었습니다만, 이런 말투도 그림책에 함부로 쓸 일이 아닙니다. 어른문학에서도 이런 말투는 손질해야 합니다. ‘시작’은 일본 한자말이기도 하지만, 거의 군말입니다. “울기 시작했어요”가 아니라 “울어요”로 적어야 합니다. “오고 있었던”은 영어 번역 말투이고, 뒤에 붙은 “거예요”는 군더더기입니다. ‘저녁’이라는 낱말은 때를 가리키면서 끼니를 가리킵니다. ‘식사’라 하는 한자말은 덜어냅니다.



오래된 곡조를 연주했어요

→ 오래된 노래를 켰어요

담요 안으로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 잠이 들었답니다

→ 담요를 덮고 몸을 구부리면서 잠이 들었답니다



  마거릿이라는 아이는 바이올린을 켜서 동생을 재웁니다. 그러니, “바이올린을 켰어요”처럼 적으면 됩니다. 굳이 ‘연주’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담요 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고 하는데, 담요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담요 안”이라는 자리도 없습니다. “담요를 덮고” 몸을 구부리면서 잠이 들었겠지요.


  그림책 번역에 마음을 깊고 넓게 기울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그림책이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외국 그림책이기에 한국 어린이한테도 널리 읽힐 만합니다만, 아름다운 그림책은 아름다운 말과 글과 이야기과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서 숨쉬도록 더욱 마음을 기울여서 가다듬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들으면서 말을 배우기도 하고, 아이들은 어버이가 건네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읽으면서 말을 익히기도 합니다. 그림책은 줄거리만 훌륭하거나 그림만 예쁘대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림책에 넣는 말 한 마디까지 알뜰살뜰 여밀 줄 알아야 합니다.


  꿈꾸는 아이가 사랑스럽듯이, 꿈꾸는 어른이 사랑스럽습니다. 꿈을 살가이 담은 그림책이 아름답고, 꿈을 맑으면서 밝은 말과 글로 엮어서 보여주는 그림책이 아름답습니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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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특별한 그림책 만들기
현혜수 글, 김소영 그림 / 풀과바람(영교출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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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3



‘내 책’이 되려면 ‘내 이야기’를 써야

― 나만의 특별한 그림책 만들기

 현혜수 글

 김소영 그림

 풀과바람 펴냄, 2014.6.19.



  현혜수 님이 글을 쓰고 김소영 님이 그림을 그린 《나만의 특별한 그림책 만들기》(풀과바람,2014)를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은 어린이가 스스로 그림책을 한 권 만들어 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모두 열여덟 가지로 나누어 차근차근 이 흐름에 맞추면 그림책을 한 권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먼저 생각을 짜고, 쓸 이야기를 세운 뒤, 정보를 모아서, 누가 나오는가를 살피고, 이름을 붙인 뒤, 줄거리 바탕을 짭니다. 그런 뒤 그림을 그리고 빛깔을 입히며 책은 어떤 크기로 만들는지 살피지요. 겉그림을 그리고 글꼴을 살피며, 그림책을 펴내는 까닭을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묶습니다.


  단출하면서 깔끔하게 ‘그림책 만드는 얼거리’를 보여주어요. 그림이 아기자기합니다. 어린이도 이 책을 곁에 두고 그림책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잘 이끌겠구나 싶습니다.




..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려면 다양한 정보를 모아야 해요. 어디에서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요? 책, 인터넷, 비디오, 라디오, 신문, 텔레비전 등이 있지요 ..  (9쪽)



  그런데 《나만의 특별한 그림책 만들기》라는 그림책은 아주 큰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이 그림책은 ‘나만의 특별한’ 그림책을 만들자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어떤 그림책이 ‘나한테 남다른’ 그림책이 되는지 밝히지 못해요.


  종이를 묶거나 글꼴을 살피거나 빛깔을 입히는 대목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니, 안 대수롭지 않습니다만, 가장 대수로이 살필 대목을 너무 가볍게 지나치기 때문에, 이 책만 읽어서는 ‘나한테 남다른’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만의 특별한 그림책 만들기》를 쓴 분은 아이들한테 ‘여러 가지 정보’를 책이나 인터넷이나 비디오나 라디오나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얻으라고 말합니다. 자, 생각해 보셔요. ‘나한테 남다른’ 그림책을 만들자는 책 아닌가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이 쓴 책에서 정보를 얻어야 하지요? 무슨 책을 만들려고 하는데 다른 책에서 정보를 얻나요? 인터넷이나 비디오나 텔레비전 같은 데에서 왜 정보를 얻어야 하나요?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살피거나, 다른 사람이 만든 방송이나 신문을 살핀다면, ‘나한테 남다른’ 이야기를 쓸 수 없습니다. ‘나한테 남다른’ 이야기를 쓰려면, 내가 스스로 겪은 일을 갈무리해서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부터 제대로 살펴야 하고, 그림책을 한 권 빚을 때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야기 엮고 짜고 쓰기’에 아주 많이 품을 들여요. 그림도 잘 그려야 하고, 글꼴도 잘 맞추어야겠지만, 그림을 그리려면 ‘이야기(글)’가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가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어요.


  그러니까, 열여덟 가지로 차근차근 ‘만드는 차례’를 나눌 노릇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어떻게 느끼거나 깨닫거나 알아보면서 ‘내 이야기’를 쓰도록 이끌어야 할까 하는 대목을 더 깊고 많이 제대로 다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만의 특별한 그림책 만들기》라는 책은 ‘나도 책을 만들어 볼까?’ 하는 책이 아니라 ‘나한테 남다른 책을 만들자!’ 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써 볼까요? 한 번에 너무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그동안 모아 둔 자료와 계획서를 바탕으로 마음껏 이야기를 써 봐요 ..  (18쪽)



  어떤 책을 쓰든 ‘글쓰기’가 절반을 넘는 자리를 차지합니다. 왜냐하면 ‘책을 쓰기’ 때문입니다. 글을 한 줄조차 안 넣더라도, 줄거리가 될 이야기를 글로 갈무리해 놓아야 합니다. 이 글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니까요.


  더 살핀다면, ‘나도 책을 만들어 볼까?’ 하고 이야기를 엮더라도, ‘자료와 계획서 짜기’를 더 꼼꼼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만의 특별한 그림책 만들기》라는 책은 이 대목도 너무 가볍게 넘어갑니다. 이래서야 아이들이 그림책 만드는 일을 제대로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어른들은 쉽게 말하겠지요. “마음껏 이야기를 써 봐요” 하고 쉽게 말하겠지요. 그러면, 이렇게 말한들 참말 마음껏 이야기를 써 볼 수 있을는지 생각해 보셔요. 마음껏 이야기 쓰기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마음껏 쓸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라고 이끄는 이 책인데, 다른 사람이 만든 자료로 어떻게 마음껏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 알쏭달쏭하기도 합니다.


  ‘나한테 남다른 책을 만들자!’ 하고 말하려 한다면, 다른 사람이 만든 책에서 자료를 빌리도록 이끌지 말고, 아이들이 손수 쓴 일기나 생활글을 바탕으로 책을 엮도록 이끌어야지 싶습니다. 적어도 이쯤은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느 날 겪은 일이 아주 남달라서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으니, 그 이야기를 어떻게 추리고 솎고 살을 붙이고 가다듬어서 그림책 ‘밑글’이 되도록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이 밑글을 바탕으로 쪽수에 맞게 글을 나누어서 새롭게 쓰고, 새롭게 쓴 글에 맞추어 그림은 어떻게 그릴 때에 아름답거나 잘 들어맞는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보기 쉽게 이야기를 하려는 개론서라 할 《나만의 특별한 그림책 만들기》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보기 쉽게 들려주는 개론서 구실로서도 여러모로 아쉽구나 싶습니다. ‘나한테 남다른’ 이야기가 무엇인지부터 똑똑히 살핀 뒤, 아이들이 참말 그림책에 ‘내 이야기’를 즐겁게 담도록 이끄는 아름다운 웃음과 노래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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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옛이야기는 내친구 5
이나미 글.그림 / 한림출판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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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2



함께 살아가는 이웃

―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이나미 글·그림·꾸밈

 한림출판사 펴냄, 1998.9.30.



  나무꾼하고 범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익히 들었습니다. 나무꾼은 범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그러니까 어머니하고 깊은 멧골집에서 둘이 사는데,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범한테 이야기를 하나 지어서 들려줍니다. 왜냐하면, 깊은 멧골에서 어머니와 아들 둘이서 단출하게 지내는데,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안 돌아온다면, 어머니가 얼마나 쓸쓸하면서 고단할까요. 슬픔과 아픔에 못 이겨 더는 살아가지 못하겠지요. 그러니, 나무꾼은 온힘을 기울여서 범한테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줍니다. 나무꾼은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짓습니다.



.. 옛날 어느 산골에 나무꾼과 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  (2쪽)



  나무꾼인 아이는 왜 어머니와 둘이서 살까요? 아버지는 어디 갔을까요? 멧골집에서 지내니, 어쩌면 아버지는 멧짐승한테 잡아먹혔을는지 모릅니다. 멧골집에서 따로 사는 살림을 헤아린다면, 아버지는 나라에서 빼앗았을 수 있습니다. 성곽을 쌓는 부역자로 빼앗거나, 병졸로 빼앗았을 수 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깊은 멧골로 숨어 들어서 조용히 살려고 했겠지요.


  끔찍한 정치와 무서운 전쟁이 없다면, 사람들은 마을에서 오순도순 살 만합니다. 서로 아끼고 도우면서 즐겁게 살 만합니다. 그러나, 임금을 비롯해 정치꾼들이 끔찍하고, 이들이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성곽이나 궁궐을 쌓으라고 일을 시키면, 힘이 없는 여린 사람들은 깊디깊은 멧골로 숨을밖에 없습니다.


  어릴 적에 나무꾼과 범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이런 모습이 환하게 떠올랐어요. 두 사람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그러나 깊은 멧골에서 둘이 오순도순 지내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이리하여 문득 범을 만났을 때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면서 ‘어머니 걱정’이 솟았겠지요.




.. 나무꾼은 갑자기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호랑이에게 절을 하고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형님! 그동안 어디에 계셨습니까?” ..  (7쪽)



  옛이야기이지만, 나는 그저 옛이야기로만 느끼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범이 얼마든지 말을 나눌 수 있었으리라 느낍니다. 그래서 범은 나무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참말 범이기 앞서 사람으로도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떠올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부터 사람이 죽어 범이나 나비로도 다시 태어난다고 했으니까요. 옛이야기이니까요.


  범으로서는 나무꾼을 굳이 잡아먹지 않아도 됩니다. 범은 얼마든지 다른 멧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범은 ‘사람 먹기’를 그치면서 생각합니다. 범으로서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범과 나무꾼은 새롭게 형과 동생이 됩니다.




..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은 호랑이는 잃어버린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  (15쪽)



  이나미 님이 그림을 그린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한림출판사,1998)을 찬찬히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옛이야기이지만, 요즈음 말에 맞추어 글을 새로 엮습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옛날에는 모두 ‘멧골’이고 ‘멧짐승’입니다. ‘산골’이나 ‘산짐승’이 아닙니다. “살고 있었습니다”라든지 “기다리고 있었어요”는 한국 말투가 아닌 번역 말투입니다. “살았습니다”와 “기다렸어요”로 바로잡을 노릇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인데 어린이 눈높이에 걸맞지 않은 낱말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런 대목을 더 살피면서 그림책을 빚었어야지 싶어요.


  한편, 나무꾼이 멘 지게가 너무 작아요. 지게는 어른한테도 아이한테도 꽤 크게 만듭니다. 그래야, 나무를 해서 짊어지거든요. 이 책에 나온 지게는 너무 작아서 나뭇감은커녕 검불도 못 얹겠구나 싶습니다. 먹빛으로 살리는 예스러운 그림결이 돋보이지만, 이런 대목은 더 살펴야지 싶어요. 나무꾼이 손에 쥔 도끼도 그래요. 손도끼라 해도 너무 작아요. 아주 작은 도끼를 두 손으로 엉성하게 잡은 모습은 어쩐지 안 어울립니다. 도낏자루는 더 굵고 길어야 합니다. 도끼로 쩍쩍 찍는 장작도 반듯하게 잘려야 옳습니다. 구불구불 힘차게 흐르는 먹줄기인데, 붓으로 먹을 놀리더라도 곧게 흐르는 줄기는 곧게 흘러야 합니다.




.. 새끼 호랑이들은 나무꾼에게 달려와 말했습니다. “삼촌! 삼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며칠 후 우리 아버지도 돌아가셨답니다. 옛날에는 우리 아버지도 사람이셨대요.” ..  (26쪽)



  먼 옛날에는 사람과 짐승이 서로 남이 아니었으리라 느낍니다. 서로 이웃이요 동무였으리라 느낍니다. 멧골에서는 멧사람과 멧짐승이 멧살림을 함께 가꾸면서 살았으리라 느껴요. 멧내음을 마시고 멧바람을 쐬면서 멧밥을 나누고 멧노래를 부르는 하루였으리라 느껴요.


  이제 한국에서 범은 씨가 말랐습니다. 범뿐 아니라 수많은 멧짐승이 씨가 말랐고, 삶터를 빼앗깁니다. 이러는 동안 사람들은 멧짐승을 아주 괴롭히기만 할 뿐, 이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사람만 살 수 있는 도시를 키우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리 살갑지 않아요.


  어쩌면, 어쩌면 말이지요, 사람은 사람끼리만 살 수 있는 도시를 키우면서, 사람 스스로 이웃과 동무를 저버리는 길로 가지 싶습니다. 멧짐승하고 동무가 되는 삶일 때에는 멧짐승뿐 아니라 이웃인 사람도 아낍니다. 들짐승하고 동무가 되는 삶일 적에는 들짐승뿐 아니라 이웃인 사람도 사랑합니다.


  숲을 잃거나 잊으면서 사람 사이에서 나누던 사랑을 잊습니다. 숲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면서 사람 사이에서 짓던 삶을 함께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립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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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 마음 약한 늑대 이야기 베틀북 그림책 24
조프루아 드 페나르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베틀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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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31



네 이웃을 잡아먹을 수 있느냐

―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조프루아 드 페나르 글·그림

 이정주 옮김

 베틀북 펴냄, 2002.1.30.



  어릴 적에 이런 동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동무라기보다 껄렁이라고 할 만한 아이인데, ‘야, 내가 너 좀 때려도 될까?’ 하고 물으면서 여린 아이들을 괴롭혀요. ‘아니.’ 하고 대꾸하면 ‘네가 뭔데 안 맞겠다고 해?’ 하고 윽박지르면서 때립니다. 하도 괴롭히니 ‘응.’ 하고 대꾸하면 ‘네가 네 입으로 때려도 된다고 했지?’ 하면서 때려요. 여린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아이는 이래도 저래도 그저 괴롭힐 마음입니다. 여린 아이들은 이러거나 저러거나 시달리거나 들볶입니다.


  어른 사회에서는 법을 앞세우는 이런 껄렁짓이 흔합니다. 이른바 ‘강제집행’이나 ‘강제수용’이라고 해서 집이나 마을이나 숲을 공권력이 함부로 밀어붙여서 빼앗습니다. 재개발뿐 아니라 올림픽이나 세계대회 같은 뭔가를 연다면서 가난한 사람들 동네를 와르르 무너뜨려요. 고속도로를 짓는다든지 발전소를 지을 적에도 이와 같습니다. 건축가와 공무원은 책상맡에서 지도에 금을 죽 긋습니다. 그러고는 이대로 땅을 빼앗아요. 오늘날 도시사람이 신나게 싱싱 달리는 고속도로는 모두 강제집행과 강제수용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 어느 날 루카스는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저도 이제 다 컸어요. 제 힘으로 혼자 살아도 될 것 같아요.” ..  (4쪽)





  조프루아 드 페나르 님이 빚은 그림책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베틀북,2002)를 읽으며 예전 일을 떠올립니다. 어릴 적에 껄렁이들을 만날 때면 참 괴롭고 고달팠습니다. 여린 사람을 괴롭히는 짓은 이렇게도 이루어지고 저렇게도 이루어집니다. 이런 짓은 군대에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학교와 사회와 동네 어디에서나 참말 똑같이 일어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늑대는 그나마 마음이 착합니다. 그런데, 이 늑대가 묻지요.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하고.


  아,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요. 잡아먹어도 되느냐고 묻는다니! 차라리 그냥 잡아먹든지요. 잡아먹지 말아 달라고 하면 안 잡아 먹을까요? 괘씸하다고 여겨 덥석 잡아먹지는 않을까요? “네, 잡아먹어 주셔요.” 하고 말하면 옳거니 하고 낼름 잡아먹겠지요.


  주먹힘을 앞세우는 이들은 주먹힘뿐 아니라 법과 규칙까지 혼자 차지합니다. 오늘날에도 법과 규칙을 앞세우는 이들은 법과 규칙뿐 아니라 힘과 이름과 돈까지 함께 거머쥐어요. 힘없거나 이름없거나 돈없는 사람을 지키는 법이란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힘없거나 이름없거나 돈없는 사람이 읽어서 헤아릴 수 있는 법이란 도무지 없다고 할 만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고 더 어지럽고 빽빽하게 만드는 법과 규칙입니다.



.. “우리 아들, 이제 떠날 시간이구나. 자, 이 종이를 가져가렴. 네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쭉 적어 놓았단다.” ..  (7쪽)





  그런데, 재미있다고 한다면, 힘이나 돈이나 이름으로 여린 이를 윽박지르는 사람은 오래 못 갑니다. 왜냐하면, 더 큰 힘과 돈과 이름을 앞세우는 이가 꼭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힘과 돈과 이름을 앞세우는 이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늙고, 늙으면서 힘도 돈도 이름도 쭈그러듭니다. 지난날 이녁이 여린 이들한테 한 짓을 고스란히 돌려받아요.


  그림책에 나오는 늑대가, “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하고 물은 다음, 모두 우악스럽게 잡아먹었으면 어떻게 되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 녀석도 잡아먹고 저 녀석도 잡아먹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그때에 늑대는 어떤 삶이 될까요. 그때에 늑대는 더 잡아먹을 밥이 있을까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잡아먹다가 그만 먹이가 모두 사라져서 늑대는 쫄쫄 굶다가 죽지 않을까요.



.. “늑대님! 제발 잡아먹지 마세요! 우리 할머니가 너무 슬퍼하실 거예요. 할머니는 내가 할머니 인생의 태양이라고 하셨거든요!” 빨간 모자는 엉엉 울며 애원했어요. 루카스는 마음이 흔들렸어요. “우리 할머니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얘, 그럼 어서 가 봐.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  (15쪽)




  늑대한테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습니다. 늑대한테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늑대는 늑대 바깥누리로 나오면서, 처음으로 다른 누리를 깨닫습니다. ‘빨간 모자’한테도 할머니가 있을 뿐 아니라, 빨간 모자네 할머니가 빨간 모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늑대네 할머니가 늑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하고 같은 줄 깨닫습니다. 이를 깨달으면서 눈물을 쏟습니다.


  어버이한테서 제금을 나오면서 홀로서기를 하려는 늑대는, 돼지 세 형제가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숲을 아무렇게나 헤매는 아이를 다그쳐서 얼른 할아버지한테 돌아가라고 나무랍니다. 그저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일’만 하면서 자라던 늑대인데, 이 아이는 새로운 삶을 만납니다. 새로운 동무와 이웃을 사귑니다. 마음을 새롭게 가꾸고, 사랑을 새롭게 북돋웁니다.



.. 루카스는 아빠가 준 종이에다 아주 큼직한 글시로 꾹꾹 눌러 이렇게 썼어요. ‘사람 잡아먹는 거인’ ..  (33쪽)




  ‘홀로서기를 하는 늑대 루카스’는 저희 아버지(늑대)가 준 쪽글을 모두 고칩니다. 아버지가 먹으라고 한 목숨은 하나도 안 먹기로 합니다. 젊은 늑대는 새로운 먹이를 찾아냅니다. 동무와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늑대 스스로도 삶을 새롭게 열 수 있는 먹이를 알아냅니다.


  함께 살고 싶기에 함께 살 길을 찾아요. 함께 사랑하면서 놀고 싶으니 함께 사랑하면서 놀 길을 생각해서 찾아냅니다.


  길이 없다고 여기면 참말 길이 없습니다. 길이 있다고 여기면 참말 길이 있습니다. 너를 사랑하려 한다면 참말 너를 사랑할 수 있어요. 너를 미워하려 하면 참말 너를 미워하고 말아요. 우리는 어떤 길로 갈 때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어떤 삶으로 나아갈 때에 아름다울까요. 젊은 늑대 루카스가 그림책에서 우리한테 살그마니 묻습니다. 우리더러 무엇을 먹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가 하고 묻습니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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