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이야기 비룡소의 그림동화 106
아이린 하스 글 그림, 백영미 옮김 / 비룡소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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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3



이야기를 나누는 동무 사이

― 한여름 밤 이야기

 아이린 하스 글·그림

 백영미 옮김

 비룡소 펴냄, 2003.8.1.



  동무는 늘 놀이동무입니다. 함께 놀 수 있으니 동무입니다. 동무는 늘 이야기동무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동무입니다. 동무는 밥동무가 되고 책동무도 되면서, 일동무나 글동무도 됩니다. 편지동무도 되고 생각동무도 됩니다. 마을동무이기도 하면서, 지구동무이기도 합니다.


  또래끼리 동무가 되기도 하지만, 할머니와 내가 동무가 되기도 합니다. 어버이와 아이는 서로 새로운 동무로 지내기도 합니다.


  마음이 맞을 때에 동무입니다. 서로 한마음이 되기에 동무로 거듭납니다. 마음으로 생각을 나누기에 동무입니다. 서로 한뜻이 되어 삶을 기쁘게 짓습니다.



.. 루시는 요술 모자를 쓰고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달님이 부드러운 손길로 모자를 쓰다듬자 어! 루시가 나뭇잎만큼 작아졌어요 ..  (4쪽)




  아이들한테 나이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참말 아이다운 아이라면 서로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즐겁게 어울립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서로 나이를 묻습니다. 왜 물을까요? 어른들이 아이를 보며 으레 나이를 묻기 때문입니다. 참말 어른들은 아이한테 나이와 성별 빼고는 궁금한 대목이 없어요. 나이를 묻고 성별을 살핀 뒤, 학교를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까지 물으면 더 궁금한 대목이 없는 듯합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는 어른이 없고, 아이가 오늘 어떤 놀이를 누렸는지 묻는 어른이 없으며, 아이가 지난밤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묻는 어른이 없어요.


  아이들은 나이를 안 가리면서 함께 놉니다. 아이들은 할머니 등을 타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또래이든 아니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함께 놀 동무라면 즐겁고, 함께 어울리면서 하늘숨을 마시는 동무라면 반갑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 마음’이 되려고 한다면, 서로 나이를 따지지 않고 기쁘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몸짓이어야 합니다.



.. 택시가 어둠 속을 달리는 동안, 모두들 조잘조잘 떠들다가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꽝! 택시가 뭔가에 부딪혔어요. 크고 뚱뚱한 올빼미가 모두를 내려다보더니 큰소리로 외쳤어요. “아이고, 요것들! 정말 맛있게도 생겼구나!” ..  (12쪽)




  아이린 하스 님이 빚은 그림책 《한여름 밤 이야기》(비룡소,2003)를 읽습니다. 한여름 이야기 가운데 ‘밤’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이 그림책에 흐르는 숨결은 고즈넉합니다. 고요하게 짓는 춤사위 같고, 고요하게 출렁이는 노래 같습니다.


  우리는 한여름 밤에 무엇을 할까요? 밤에는 잠을 잘 테지요. 그러나 한여름이 되어 폭폭 찌는 날씨라면 쉬 잠들지 못해요. 더위를 식히려고 부채질을 하든 찬물로 몸을 씻든 마당에 나가서 바람을 쐬든 합니다. 이러면서 문득 이야기 하나를 짓습니다.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올빼미 아저씨, 생일 축하합니다!” 올빼미가 외쳤습니다. “아이고, 이를 어째! 다들 이렇게 내 생일을 기억해 주다니, 정말 고마운걸! 좋아 좋아, 오늘 밤에는 그냥 케이크만 먹을게. 벌레들은 말고.” ..  (20쪽)




  더위를 식히거나 잊도록 할 만한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더위를 기쁨으로 바꿀 만한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도란도란 웃으면서 사이좋게 나누는 이야기라면 어느새 이야기로 깊이 빠져들어 더위쯤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런두런 속삭이고 살가이 나누는 이야기라면 어느덧 이야기에 퐁당 빠져들어 더위라고는 아예 생각하지 않아요.


  달빛을 보고 별빛을 봅니다. 새까만 밤하늘에 꽃처럼 피어나서 빛나는 뭇별을 봅니다. 이 별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요. 저 별은 우리 집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찾아오려 할까요. 별자리를 읽으면서 삶자리를 읽습니다. 별님을 부르면서 곁님을 부릅니다. 별꽃이 눈부시니, 서로서로 웃음꽃이 해맑습니다.



.. 루시는 요술 모자를 벗었습니다. 어! 그러자 다시 원래대로 커졌어요. 루시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인형을 내밀었지요. “루시! 네가 찾아 주었구나!” 할머니가 외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치며 노래했습니다. “루시, 루시, 모두에게 인사해라. 우리 노래는 이제 행복하게 끝났단다!” ..  (26쪽)



  그림책 《한여름 밤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 루시는 참말 ‘작은 사람’으로 몸을 바꾸어 멋진 밤나들이를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리하여, 루시는 여러 새 동무를 사귀면서 할머니 옛 인형도 찾았겠지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모두 동무가 됩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참말 다 함께 동무가 되어요. 쥐하고도 동무가 되고 올빼미하고도 동무가 됩니다. 우리는 서로 아끼고 믿는 동무입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고 어깨를 겯는 동무입니다. 4348.4.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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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글.그림 / 초방책방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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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2



‘까막나라’ 임금님은 빛을 안 바란다

―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글·그림

 초방책방 펴냄, 1994.3.10.



  정승각 님이 빚은 그림책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를 읽습니다. 어느덧 서른 해 남짓 묵은 오래된 한국 그림책입니다. 앞으로도 이 그림책은 한국 어린이한테서 사랑을 받을 테니, 마흔 해도 묵고 쉰 해도 묵을 테지요.


  1990년대 첫무렵에 정승각 님이 어떤 숨결이 되어 이 그림책을 빚었을까 하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불을 찾으려는 불개는, 불을 찾았으나 그예 숨이 끊어지고 만 불개는, 새로운 숨결로 다시 살아난 불개는,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곰곰이 되새깁니다.



.. “나라가 온통 깜깜하니 다스릴 수가 없구나.” 까막나라 임금님은 답답했습니다. “누가 불을 구해 올 수만 있다면…….”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불을 가져오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  (4쪽)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를 보면, 까막나라 임금님은 ‘나라 다스리기’를 한다는데, 어떻게 무엇을 다스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임금님 둘레에서 임금님을 모신다는 이들은 무엇을 섬기거나 모시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들은 ‘나라 다스리기’를 걱정하거나 마음을 쓸 뿐, 까막나라에서 사는 사람을 걱정하거나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까막나라에 빛이 없어서 삶이 얼마나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힘든가 하는 대목도 걱정하지 않고 마음을 쓰지 않아요.


  곰곰이 따지면, 임금 자리에 있는 이가 하는 일은 ‘까막나라’가 그저 ‘까만 빛깔 나라’이면서 ‘슬기에 깜깜한 나라’가 되도록 굳히는 몸짓이지 싶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나라이름부터 ‘까막나라’인걸요. 무엇보다 임금 자리에 있는 우두머리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일을 꾀할 뿐입니다. 스스로 하는 일이 없습니다. 나중에 보면, 임금 자리 우두머리는 팔랑귀에다가 철부지입니다. 우두머리로서 일을 다 남한테 맡기거나 시키는데, 스스로 시킨 일조차 스스로 매조지하지 않아요. 삽사리가 불을 가져왔어도 이를 쓰지 않습니다. 신하라고 하는 이들이 말하는 대로 팔랑거리면서 따르다가, 뒤늦게 애를 태웁니다.



.. “불개야, 네 노래가 내 마음을 울리는구나.” 잔잔한 물 위로 현무가 나타났습니다. “환한 빛은 해와 달에서 나오는 거란다. 그러나 새겨 두어라. 참다운 빛은 마음속에 있는 거란다.” ..  (9쪽)




  까막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먼먼 옛날, ‘불이 없는’ 곳이 까막나라일까요? 아니면, 오늘날 바로 이곳이 까막나라일까요? 까막나라에는 불빛이 비추지 않습니다. 불이 없기 때문에 불빛이 안 비추지 않습니다. 해와 달이 하늘에 버젓이 있으나, 까막나라 임금님이나 신하나 다른 사람들 마음속에 ‘빛’이 없기 때문에, 까막나라는 언제까지나 까막나라이면서 아무런 빛이 깃들 수 없습니다.


  삽사리는 제 몸을 불사르고 녹여서 ‘두 가지 불’을 가져옵니다. 이른바 ‘태극’이라고 할 빨강과 파랑입니다. 빨갛게 빛나면서 파랗게 빛나요. 오늘날 과학으로 치자면 양자역학인 셈입니다. 빨갛지만 파랗고, 파랗지만 빨갛습니다.


  까막나라에 드디어 빛이 오지만, 임금님이나 신하는 두려워 합니다. 왜 두려워 할까요? 빛이 왔기 때문에 두려워 합니다. 까막나라는 어둠에 파묻혀야 정치권력이 그대로 이어갈 텐데, 빛이 오니, 모든 어둠이 드러나서 임금님이나 신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훤하게 드러날 테니 두려워 합니다.



.. “이까짓 해쯤이야.” 불개는 와락 달려들어 해를 꽉 물었습니다. “앗, 뜨거워!” 손발은 오그라들고 뱃속은 타 들어갔습니다. 불꽃은 불개의 온몸을 황금빛으로 휘감았습니다. 불개는 입에 물었던 해를 뱉어내고 나동그라졌습니다 ..  (12쪽)




  까막나라에 누군가 빛을 가져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더는 까막나라가 아닙니다. 까막나라에 빛이 비추면, 이제 까막나라는 ‘빛나라’나 ‘하얀나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나라가 되려면, 그동안 권력을 지키던 임금님이나 신하는 어떻게 될까요?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까막나라를 다스릴 줄만 알던 이들은 떠나야 하얀나라를 새롭게 세울 수 있습니다.


  아마 예전에도 삽사리뿐 아니라 다른 숨결도 빛을 수없이 가져왔으리라 느낍니다. 다만, 그동안 수없이 다른 숨결이 빛을 가져올 적마다 임금님과 신하는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이들을 매몰차게 내치거나 죽였겠지요. 이러면서 또 빛을 바라고, 빛을 가져오면 또 내치거나 죽이고 ……, 까막나라가 하는 짓이란, 까막나라 임금님과 신하가 하는 짓이란, 언제나 바보스러우면서 멍청한 짓입니다. 그러니, 이 나라는 언제까지나 ‘까막’나라일 수밖에 없습니다.



.. 궁궐이 갑자기 환해지자, 신하들은 놀라서 벌벌 떨었습니다. “임금님, 저 개 몸에서 나는 이상한 빛을 보십시오. 빨리 없애지 않으면 무서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임금님도 퍼런 몸에 붉은 빛을 내는 불개가 두려웠습니다. 불개에게 상을 준다는 약속은 까맣게 잊었습니다. 불개는 쇠줄에 꽁꽁 묶인 채 궁궐 밖으로 들려 나갔습니다 ..  (23쪽)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정치권력자나 경제권력자나 문화권력자나 교육권력자나 종교권력자나 과학권력자나 군사권력자나 한결같이 바보스럽거나 멍청합니다. 이들은 이 나라를 까막나라로 짓누르려 합니다. 이 나라에서 수수하게 삶을 짓는 여느 사람들이 날마다 새롭게 사랑을 길어올리면, 이 사랑을 매몰차게 짓밟습니다.


  민주와 평화와 평등이 싹트려고 하면, 바로 권력자가 짓밟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과 꿈길이 열리려 하면, 바로 권력자가 짓이깁니다.


  삽사리와 까막나라에 빗댄 옛이야기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벌어지는 ‘우리 스스로 바보스러운 모습’을 건드립니다. 까막나라 임금님한테 빛을 바치는 짓은 그치고,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새롭게 서도록 마음속 불길을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하는 삶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건드립니다.


  우리가 까막나라에서 살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까막나라 권력자한테서 떡고물을 받아서 먹으려 한다면 까막나라에 그대로 머물면서 ‘까막사람’ 노릇을 하면 쳇바퀴처럼 되겠지요. 이제부터 밝고 환하면서 슬기롭고 철든 사람이 되려 한다면, 빨가면서 파랗고 파라면서 빨간 숨결을 바람처럼 가슴에 담아 아름답게 피어나는 새로운 봄꽃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4348.3.31.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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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31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3-31 23:33   좋아요 0 | URL
옛이야기를 살린 작품이니
조금 더 마음을 기울였다면
`까막나라 임금님과 신하`라든지
`불개`가 삼킨 빨갛고 파란 빛 이야기를
더 찬찬히 짚거나 다룰 만했을 텐데
이 대목에서 여러모로 아쉽구나 싶어요.

그래도, 이 책을 아이들과 읽을 어른이
그러한 대목은 슬기롭게 알려주면 되겠지요...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11
웬디 앤더슨 홀퍼린 지음, 조국현 옮김 / 봄봄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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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1



새로 깨어나는 두 사람

―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

 기 드 모파상 원작

 웬디 앤더슨 홀퍼린 글·그림

 조국현 옮김

 봄봄 펴냄, 2006.7.20.



  오늘날 학교를 보면, 학교에서 아이한테 가르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참말 제도권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도 못 가르칩니다.


  이렇게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분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도 안 가르칩니다. 왜 그러할까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교과서 지식이 아닌 ‘이야기’는 하나도 안 가르칩니다.


  이를테면, 학교는 시험공부에 도움이 될 지식은 가르치되, 아이들이 집에서 집일을 돕거나 건사하거나 맡을 수 있는 ‘이야기’는 못 가르칩니다.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들부터 스스로 집살림을 알뜰살뜰 건사하는 사람이 드물 뿐 아니라, 집살림을 알뜰히 건사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섣불리 들려주지 못해요. ‘교과서 진도’를 나가야 하고, ‘시험공부’를 시켜야 하니까요.



.. “이 게으름뱅이 영감탱이야! 그렇게 놀지만 말고 나 좀 도와 달란 말이에요!” 할머니가 들볶아도 할아버지는 그냥 껄껄 웃었어요 ..  (5쪽)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어도 홀로서기를 할 줄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살섞기나 짝짓기를 할는지 모르나,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삶을 짓는 사랑은 하지 못합니다. 이제껏 배운 적이 없고, 본 적이 없으며, 알아보려 한 적도 없어요.


  아이들은 밥짓기를 집이나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입시를 잘 치르도록 돕기만 하고, 학교에서는 도시락조차 없이 급식만 먹입니다. 아이들은 옷짓기나 집짓기를 집이나 학교에서 구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어디에서나 옷은 가게에서 사다 입을 뿐,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지 않습니다. 집을 스스로 지어서 사는 사람은 없고, 다들 돈을 벌어서 아파트나 빌라를 사거나 빌려서 지내려 할 뿐입니다.



.. 할머니는 닭들에게 가서 말했어요. “사랑스런 닭들아, 이제부터 앙트완 할아버지가 알 품는 것을 도와줄 거야!”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와서 찢어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노란 암탉에게 달걀을 열 개 품으라고 했어요. 자, 이건 당신 몫이에요. 깨지지 않게 조심해요!” ..  (13쪽)





  기 드 모파상 님이 쓴 글을 바탕으로, 웬디 앤더슨 홀퍼린 님이 새롭게 엮었다고 하는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봄봄,2006)를 읽습니다. 할머니한테는 늘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는 할아버지인데, 언제나 허허 웃으면서 지나갔다고 해요.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가 못마땅해서 더 들볶으려고 했답니다.


  어느 모로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둘 다 옳습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집일을 거의 건사하지 않아 할머니 혼자 늘그막에도 온갖 일을 해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조금 더 느긋하거나 너그럽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실마리는 하나이지요. 할머니가 조금 더 느긋하거나 너그러우려면 할아버지가 집일을 거들면 돼요. 허허거리기는 그만두고 말이지요.



.. 할아버지가 품은 알에서는 병아리가 몇 마리 나올지, 어떻게 생겼을지, 또 할아버지처럼 슈크림이 빵을 좋아할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  (19쪽)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저마다 스스로 달라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이때 두 사람한테 ‘달걀’이 실마리가 됩니다. 아이가 따로 없이 둘이서만 지낸 삶인데, 할아버지가 그만 허리를 다쳐서 몸져누워야 할 적에, 할머니는 이웃사람 이야기를 듣고는 할아버지더러 달걀을 품으라고 시켜요. 할아버지는 어떻게 달걀을 품느냐고 따졌지만 할머니 말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몸져누워 꼼짝을 못하기도 하니까 달걀을 품고 맙니다.


  닭이 낳은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는 ‘늘그막까지 아이가 없는 두 사람’한테는 새로운 목숨이자 숨결이요 아이와 같습니다. 병아리도 아기와 똑같이 사랑스럽습니다. 병아리와 아기는 서로 아름다운 목숨이요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제껏 늘 보던 병아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삶이 되면서, 두 사람은 저마다 새로운 몸짓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허물을 벗고 새로 깨어나는 셈입니다.



.. 마침내 마지막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왔어요. 할아버지는 병아리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어 주었어요. “보드라운 깃털을 가진 친구야, 여기가 마음에 드니? 자, 여기 빵 부스러기를 먹어. 물도 마시렴. 너도 슈크림을 좋아할 거지, 그렇지? 우리 모두 네가 나오길 기다렸단다. 봐, 저 달도 널 보고 웃고 있잖아.” ..  (27쪽)



  함께 살림을 짓는 사람은 함께 사랑을 짓는 사이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입니다. 같이 삶을 가꾸는 사람은 같이 한길을 걷는 사이입니다.


  이야기책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새로운 삶에 눈을 뜹니다. 할아버지는 집일을 돌보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고, 할머니는 한결 느긋하면서 너그럽게 할아버지와 마주하는 기쁨을 느낍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사내는 바깥일을 한다면서 집일에 등돌리는 바보스러운 짓을 그쳐야 합니다. 가시내는 사내가 바보스러운 짓을 벌이더라도 더욱 따사로운 손길로 어루만지면서 슬기로운 살림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깨어나야 하고, 두 사람은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4348.3.30.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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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과 2015-03-30 08:47   좋아요 0 | URL
참 좋은 그림책이네요,함께살기님의 글도 어우러지구요.꼭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숲노래 2015-03-30 09:33   좋아요 0 | URL
번역을 더 가다듬으면 한결 나았을 테지만,
여러모로 재미있고 뜻있는 그림책이라고 느꼈어요.
아이들도 아주 좋아합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쓰는 느낌글이

어제 500꼭지를 넘는다.

500권에 이르는 그림책을 놓고 느낌글을 썼다.


예전에도 그림책 느낌글을 썼으니,

그림책을 놓고 쓴 느낌글은 꽤 많기는 할 텐데,

이제 비로소 500권을 놓고 느낌글을 썼구나 하고 생각한다.

앞으로 5000권에 이르는 느낌글을 써야

비로소 그림책을 곰곰이 들여다보았다고 할 만하리라 본다.


그러니까, 5000권 그림책 가운데 500권 느낌글을 마무리지었으니

앞으로 9/10를 씩씩하게 걸어가면 된다.

온누리 아름다운 그림책을 가만히 헤아린다.


새로 나오는 책도

예전에 나온 책도

판이 끊겨 사라진 책도

모두 아름다운 이야기꾸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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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이세 히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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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0



나무와 함께 푸른 숨결을

―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

 이세 히데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2010.5.5.



  앵두나무 곁에 섭니다. 우리 집 앵두나무는 사월을 앞두고 꽃봉오리를 하나둘 터뜨립니다. 앵두꽃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앵두꽃에서는 앵두내음이 퍼집니다. 앵두알에서도 앵두내음이 나고, 앵두꽃에서도 앵두내음이 납니다. 그리고, 앵두나무 줄기와 가지에서도 앵두내음이 납니다.


  모과나무 곁에 섭니다. 우리 집 모과나무는 사월을 앞두고 새잎이 돋습니다. 새잎은 한꺼번에 벌어집니다. 앵두나무나 매화나무는 꽃잎이 먼저 피고, 모과나무는 나뭇잎이 먼저 돋습니다. 모과나무에서는 모과내음이 나고, 모과잎에서도 모과내음이 납니다. 모과꽃이 곧 곱게 피어나서 한껏 고운 빛을 내뿜다가 천천히 스러지면, 모과알이 맺으면서 짙푸르다가 샛노란 모과알로 거듭날 테지요.


  봄바람이 붑니다. 봄바람에는 봄내음이 가득합니다. 봄바람에는 봄에 피어나는 꽃이 뿜는 냄새가 깃들고, 봄에 돋는 새잎에서 흐르는 냄새가 감돕니다. 겨우내 고요히 잠자던 풀과 나무가 깨어나면서 한꺼번에 터뜨리는 냄새가 가득한 봄바람입니다.



.. 이 초록 동굴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오솔길이다 ..  (3쪽)





  아침에 별꽃나물을 뜯습니다. 봄을 맞이한 우리 집 마당은 온통 풀밭입니다. 아직 우거진 풀밭까지는 아니지만, 겨울 끝자락부터 천천히 고개를 내민 여러 가지 들풀이 조촐하게 풀밭을 이룹니다. 이 풀밭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별꽃나물을 훑고, 다른 들풀도 훑습니다. 민들레는 아직 많이 돋지 않아서 민들레잎을 둘만 뜯습니다.


  봄풀은 날로 먹어도 싱그럽고, 간장이나 된장을 찍어 먹어도 상긋합니다. 무쳐서 먹을 수 있으나, 그냥 먹어도 됩니다. 아니, 봄풀은 바로 뜯어서 바로 먹을 적에 가장 향긋하구나 싶어요. 흐르는 물에 살짝 헹구어 물기를 탁탁 털고는, 꽃접시에 소복하게 담아서 신나게 먹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함께 즐깁니다.


  바야흐로 봄내음이 무르익는 삼월 막바지요, 나무마다 새로운 잎사귀나 꽃송이를 주렁주렁 다는 기쁜 하루입니다.



.. “너도 으아리꽃을 좋아하는구나.” “(내 그림) 보지 마세요!” ..  (11쪽)





  이세 히데코 님 그림책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청어람미디어,2010)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프랑스에 있다는 어느 식물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식물원을 날마다 찾아와서 꽃과 풀과 나무를 그림으로 담는 어린 가시내가 있습니다. 이 어린 가시내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식물원 아저씨가 있습니다.


  어린 가시내는 어떤 일로 프랑스에 왔을까요. 어린 가시내는 무슨 즐거움을 누리려고 식물원을 날마다 찾아올까요. 어린 가시내는 프랑스 식물원을 날마다 찾아오면서 꽃을 얼마나 많이 그렸을까요.



.. 해바라기는 해님을 좋아하지? 아, 빨리 아침이 왔으면 ..  (22쪽)



  식물원 아저씨는 그림순이한테 해바라기 씨앗을 나누어 줍니다. 해바라기 씨앗을 나누어 받은 그림순이는 집에서 이 씨앗을 심어서 꽃을 피웁니다. 프랑스를 떠나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해바라기 꽃그릇을 식물원 아저씨한테 물려줍니다. 그동안 식물원에서 그린 꽃 그림도 살포시 남깁니다.





.. 숲처럼 커다란 나무. 별빛 쏟아지는 밤에도, 눈 내리는 날에도, 이 나무를 지탱해 주는 뿌리가 있었다. 250년 동안이나 이렇게 ..  (41쪽)



  아이는 그림을 내려놓고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가슴에 꽃내음을 듬뿍 담았습니다. 아이를 떠나 보낸 식물원 아저씨는 꽃 그림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꽃빛을 새롭게 담습니다. 두 아이와 어른 사이에 나무가 있습니다. 오랜 나날 이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수많은 사람들한테 꽃내음을 베풀고 푸른 그늘을 나누어 주던 나무가 두 사람 사이에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식물원 아저씨와 그림순이로 만난 두 사람은, 먼먼 지난날에는 어떤 사이로 만났을까요. 커다란 나무는 두 사람 가슴에 어떤 이야기꽃을 피워 줄 수 있을까요.


  바람이 불어 일본에서 프랑스로 갑니다. 프랑스에 머문 바람은 다시 불어 일본으로 갑니다. 일본으로 온 바람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아르헨티나로 갑니다. 아르헨티나에 닿은 바람은 다시 바다를 가로질러서 한국으로 옵니다. 한국에 온 바람은 또 드넓은 땅을 지나 중국도 베트남도 찾아가고, 이 바람은 다시 바다를 훨훨 가로질러서 지구별 온 나라를 골고루 돕니다.


  사랑이 흘러 봄이 찾아옵니다. 사랑이 싹터서 여름이 됩니다. 사랑이 무르익어 가을이 환합니다. 사랑을 갈무리하며 겨울을 고요히 쉽니다. 두 손 모아 가슴 가득 이야기씨앗을 담은 두 사람은 오늘도 커다란 나무 곁에 서서 가만히 귀를 나뭇줄기에 댄 채, 나무가 들려주는 푸른 숨결을 마십니다. 4348.3.2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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