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생겼대
장 뒤프라 글, 넬리 블루망탈 그림, 조정훈 옮김 / 키즈엠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9



수수께끼 함께 풀자

― 바다가 생겼대

 장 뒤프라 글

 넬리 블루망탈 그림

 조정훈 옮김

 키즈앰 펴냄, 2012.7.13.



  드넓은 바다가 있어서 이 땅이 있습니다. 드넓은 바다가 없다면 이 땅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땅만 있으면 땅이 땅으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땅만 있으면 어떠할까요? 아마 모든 땅은 쩍쩍 갈라지면서 메마르겠지요. 드넓은 바다가 햇볕을 드넓게 맞아들여서 따스하게 흐르기에 모든 땅이 싱그러우면서 푸르게 춤출 테지요.


  깊은 바다가 있어서 이 땅이 있습니다. 깊은 바다가 없다면 이 땅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땅만 있으면 땅에서 새로 나오는 갖가지 쓰레기와 주검은 갈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땅만 있으면 어떠할까요? 아마 모든 땅은 썩고 찌들면서 죽음수렁이 되겠지요. 깊은 바다가 ‘땅에서 생긴 모든 쓰레기와 주검’을 빗물로 씻고 냇물로 쓸어서 바다로 흘러오도록 하기에 모든 땅에 기름지면서 해맑게 노래할 테지요.



.. 바다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콸콸콸 누가 수도꼭지를 틀어 놓아서 생긴 걸까? 궁금하지? 내가 이제부터 그 비밀을 말해 줄게 ..  (5쪽)




  장 뒤프라 님이 글을 쓰고, 넬리 블루망탈 님이 그림을 그린 《바다가 생겼대》(키즈앰,2012)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바다가 생긴 바탕을 짤막하면서 재미있고 뜻깊게 보여주려는 그림책입니다. 온갖 인문지식이나 철학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너르면서 깊게 바다와 삶과 별과 온누리를 밝히려는 그림책입니다.



.. 잠깐, 바위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 그건 말이야 ..  (12쪽)



  그림책 하나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글 몇 줄과 그림 몇 점으로 얼마든지 이야기를 지어요. 그림책 둘은 아주 놀랍습니다. 글 두어 줄과 그림 한두 점으로 끝없는 이야기를 펼쳐요. 그림책 셋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글 한두 마디와 그림 한 점으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나누어 주지요.




..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마시는 물도 아주 먼 우주에서 날아온 거야. 정말 놀라운 비밀이지 ..  (16쪽)



  지구라는 별을 이루는 모든 이야기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입니다. 바다도 수수께끼이고, 흙도 수수께끼입니다. 해와 달도 수수께끼일 테고, 풀과 나무도 수수께끼예요. 이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까요? 과학으로 풀까요? 종교나 철학으로 풀까요? 학문이나 역사로 풀까요?


  아니에요. 이 모든 수수께끼는 바로 우리 ‘생각’으로 풀어요. 생각이 없으면 어떤 수수께끼도 풀 수 없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이 또한 수수께끼인데, 이 수수께끼를 ‘생각’해 보셔요. 우리가 생각을 해야 수수께끼를 풀 수 있어요.


  과학 실험도 ‘생각’이 낳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으리라 하고 생각을 해야, 무엇을 실험할는지 알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생각을 하는 내’가 있기에 모든 과학과 수학과 철학이 태어납니다. 생각이 없다면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관찰자’와 ‘양자’라는 두 가지를 맞물려 놓으면서 밝히는 참다운 과학인 양자물리학이 오늘날 새롭게 깨어났습니다. 그림책 《바다가 생겼대》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길을 찾을’ 때에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는 조그마한 실마리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 오늘은 그만 자는 게 어때? 내일 다시 그 비밀을 말해 줄게 ..  (20쪽)



  그런데, 그림책 《바다가 생겼대》는 더 이야기해 주지 않아요. 오늘은 그만 자자고 말합니다. ‘굵고 짧으면’서 재미나고 알차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야말로 깔끔하게 끝맺습니다. 오늘은 그만 자고, 이튿날 새 이야기를 들려주겠노라 말합니다.


  장 뒤프라 님과 넬리 블루망탈 님이 엮은 다른 그림책도 만날 수 있을까요? 틀림없이 뒷이야기가 다른 그림책으로 더 있으리라 느끼는데, 《바다가 생겼대》 다음으로 흐를 새로운 이야기도 만날 수 있을까요?


  새로운 그림책이 나올 수 있어도 반갑고, 새로운 그림책이 나올 수 없으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겠지요. 바다와 얽힌 수수께끼를 풀었다면, 흙과 나무와 꽃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우리가 스스로 풀고, 온누리와 별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야지요.


  생각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슬기롭게 생각을 기울이면 우리는 누구나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을 살찌우고 북돋우면서 멋진 넋을 빛내는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자랍니다. 예쁜 그림책을 길동무로 삼으면서. 4348.3.27.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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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은 파는 것 - 어린이의 시선을 담은 재밌는 낱말 책 네버랜드 아기 그림책 128
루스 크라우스 글, 모리스 샌닥 그림,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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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아름다운 그림책이지만, 번역이 엉터리라서 별점을 깎을 수밖에 없다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8



‘재미있는 낱말놀이’가 되려면

― 구멍은 파는 것

 루스 크라우스 글

 모리스 샌닥 그림

 홍연미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13.11.25.



  ‘어린이의 시선을 담은 재밌는 낱말 책’이라는 이름이 붙은 《구멍은 파는 것》(시공주니어,2013)이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52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1950년대 미국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말놀이’를 펼친 책인 셈입니다. 다만, 어린이 눈높이라면 미국이나 영국이 다르지 않고, 영국과 독일이 다르지 않으며, 독일과 헝가리가 다르지 않고, 헝가리와 인도가 다르지 않으며, 인도와 베트남이 다르지 않고, 베트남과 일본이 다르지 않으며, 일본과 한국이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구멍은 파는 것》을 한국말로 옮긴 분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나왔다고 합니다. 내가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대목은, ‘영어로 나온 책’을 한국말로 옮긴 분이 ‘영어를 잘 하는 분’이겠거니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러니까, ‘영어는 잘 할’는지 모르나 ‘한국말을 잘 할’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 간식은 모두모두 사이좋게 나눠 먹는 것

- 얼굴은 재미난 표정을 짓는 것

- 손은 서로 꼭 잡는 것

- 할 말이 있을 때 번쩍 드는 것

- 구멍은 파는 것




  루스 크라우스 님이 글을 쓰고, 모리스 샌닥 님이 그림을 그린 《구멍은 파는 것》이라는 그림책에는 ‘것’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없이 나옵니다. 이 그림책을 펼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도무지 한국말이 될 수 없는 말투로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기 때문입니다.


  ‘간식(間食)’이 한국말이 아닌 줄 아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한국말사전을 찾아보아도 이를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국말사전 낱말풀이를 보면 “ ‘곁두리’, ‘군음식’, ‘새참’으로 순화”로 나옵니다. ‘표정(表情)’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아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요? 한국말사전 낱말풀이를 보면,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 따위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으로 나옵니다.


→ 주전부리는 모두모두 사이좋게 나눠 먹는 밥

→ 얼굴은 재미난 모습을 짓는다

→ 손은 서로 꼭 잡는다

→ 할 말이 있을 때 번쩍 들지

→ 구멍은 판다




  ‘곁두리’이든 ‘군것질’이든 ‘주전부리’이든 ‘밥’입니다. 밥을 먹어요. 얼굴빛은 얼굴에 드러나는 빛입니다. 그러니, ‘얼굴’과 ‘표정’을 나란히 쓰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한자말 ‘표정’은 ‘얼굴빛’이나 ‘낯빛’을 가리킵니다. ‘손’이나 ‘구멍’을 ‘것’으로 가리킬 수 있을까요? 이렇게 가리킬 수 없습니다.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 땅은 정원을 만드는 것

- 풀은 흙에서 자라 땅 위를 가득 덮는 것

- 길게 자라면 깎는 것

- 파티는 ‘안녕!’ 하고 서로 인사하고 악수하는 것

-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




  ‘정원(庭園)’은 어떤 곳일까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말사전까지 찾아보지 않더라도, 한국에는 ‘정원’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말에서는 어디까지나 ‘뜰’이요 ‘마당’이며 ‘꽃밭’이거나 ‘잔디밭’입니다. ‘파티(party)’는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모임’, ‘연회’, ‘잔치’로 순화”라 합니다. 그런데, ‘연회(宴會)’는 “축하, 위로, 환영, 석별 따위를 위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베푸는 잔치”라고 나와요. 다시 말하자면, ‘파티’와 ‘연회’는 한국말이 아니고, 한국에서 사는 어른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한테 이 외국말을 쓸 까닭이 없습니다. 


  ‘행복(幸福)’이라는 한자말을 어른들이 참 흔히 쓰는데, 이 낱말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말 ‘기쁨’이나 ‘흐뭇함’이나 ‘즐거움’을 한자로 옮기니 ‘행복’입니다.


→ 땅으로 꽃밭을 가꾸지

→ 풀은 흙에서 자라 땅을 가득 덮어

→ 길게 자라면 깎는다

→ 잔치는 ‘반가워!’ 하고 서로 인사하고 손 잡는 자리

→ 우리들을 기쁘게 해 준다




  그림책 《구멍은 파는 것》은 몹시 재미있습니다. 글이나 그림이 참으로 아기자기하면서 앙증맞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책이 참다이 아름다우려면,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옮길 적에 ‘한국말로 옳고 바르며 슬기롭고 아름답게’ 옮겨야 아름답습니다.



- 팔은 꼭 껴안는 것

- 발가락은 꼼지락거리는 것

- 귀는 쫑긋거리는 것

- 구멍은 쏙 들어가 앉는 것

- 꿈은 한밤중에 여러 가지를 만나는 것



  우리 몸을 가리키면서 어느 누구도 ‘것’이라 하지 않습니다. 몸은 ‘몸’이라는 낱말로 가리킵니다. ‘한밤중(-中)’이라는 엉터리 낱말을 어른들이 자꾸 쓰는데, ‘한밤’이라고만 적어야 합니다. ‘밤중(-中)’이라는 낱말도 엉터리예요. “밤중에 일어나다”가 아니라 “밤에 일어나다”라 말해야 합니다. ‘밤중·아침중·낮중·새벽중’ 같은 한국말은 없습니다.


→ 팔은 꼭 껴안아

→ 발가락은 꼼지락거리지

→ 귀는 쫑긋거린다

→ 구덩이는 쏙 들어가 앉는 데

→ 꿈은 한밤에 여러 가지를 만나네




  ‘구멍’은 파인 자리를 가리키지만 “구멍에 앉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들어가서 앉는 “파인 곳”은 따로 ‘구덩이’라고 합니다. 영어가 되든 일본말이 되든 중국말이 되든, 바깥말(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는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살펴야 합니다. 어린이책이라면 어린이 눈높이를 제대로 살펴야 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슬기롭게 물려받아서 사랑스럽게 쓸 수 있는 말로 가다듬어야 합니다.



- 눈은 뒹굴면서 신나게 노는 것 → 눈밭에서 뒹굴면서 신나게 놀아

- 세상은 우리가 발 디디고 서는 것 → 온누리에 우리가 발 디디고 선다

- 해는 아침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 해는 아침이 왔다고 알려준다

- 산은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 → 산은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 기슭까지 내려오는 것 → 기슭까지 내려오지

- 구멍은 꽃을 심는 것 → 구덩이는 꽃을 심는 자리

- 시계는 똑딱똑딱 소리 내는 것 → 시계는 똑딱똑딱 소리 내며 움직여

- 접시는 씻는 것 → 접시는 씻는다

- 손은 놀잇감을 만드는 것 → 손은 놀잇감을 만들 수 있어

- 책은 들여다보는 것 → 책은 들여다보는 이야기밭




  《구멍은 파는 것》을 보면, 41쪽에 꼭 한 번 “구멍은 쥐가 사는 곳”처럼 나옵니다. 이 대목에서는 ‘것’이 아닌 ‘곳’으로 적습니다. 그러나, 다른 글월에서는 도무지 한국말이나 한국 말투라고 할 수 없이 옮겼습니다. 아무쪼록 이 그림책에 쓴 번역말을 제대로 고쳐쓰거나 똑바로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 어린이가 슬기롭고 즐겁게 읽으면서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말넋을 살찌울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 이만 한 그림책이라 한다면, ‘한국말을 슬기롭게 쓰는 어른’한테 ‘글손질’을 받아야 하리라 느낍니다. 다른 여느 그림책도 한국말을 슬기롭게 쓰는 어른이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하는데, 출판사 편집부에서 이 몫을 먼저 잘 하기를 빌고, 슬기로운 어른들이 마음을 모아서 책 하나를 아름답게 가꾸어 주기를 빕니다. 4348.3.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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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친구야 웅진 우리그림책 21
강풀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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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6



내 마음동무야 반갑구나

― 안녕, 친구야

 강풀 글·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2013.1.14.



  씨앗 한 톨한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얘야 얘야 예쁜 씨앗아 너는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렴, 하고 말을 걸 수 있습니다. 풀 한 포기한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얘야 얘야 싱그러운 풀포기야 너는 아름다운 밥이 되어 나와 한몸이 되어 주렴, 하고 말을 걸 수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한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얘야 얘야 우람한 나무야 너는 나한테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렴, 하고 말을 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하고도 말을 나눌 수 있습니다. 돌멩이하고 말을 걸면 돌멩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참새한테 말을 걸면 참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만, 요새는 씨앗한테 말을 거는 시골지기가 드물고, 참새한테 말을 거는 아이가 드뭅니다. 요새는 어른이나 아이 모두 너무 바쁩니다. 요즈음은 어른이나 아이 모두 놀거리와 볼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누군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깜짝 놀라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네가 그렇게 울면 사람들이 우리가 우는 줄 알고 싫어한단 말이야.” ..  (4쪽)




  우리가 사귀는 동무는 언제나 마음동무입니다. 소꿉동무나 책동무나 언제나 마음동무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마음으로 아낄 때에 비로소 동무이니까, 모든 동무는 마음동무일밖에 없어요.


  눈빛을 보면 마음을 압니다. 눈빛으로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눈빛을 밝혀 기쁜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우리는 서로 마음동무이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동무가 아닙니다.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음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얘기하며, 마음으로 노래하면서 기쁘게 어깨동무를 합니다.



.. 생쥐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쥐한테 고양이가 어디 있는지 묻는 거야?” ..  (23쪽)





  강풀 님이 만화로 빚은 그림책 《안녕, 친구야》(웅진주니어,2013)를 읽습니다. 밤에 혼자 잠들다가 문득 무섭다고 여겨 깨어난 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가다가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고는 아파서 우는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이 아이는 누구일까요. 발가락이 아프다며 우는 아이는 누구일까요. 어린 강풀 님일까요, 아니면 강풀 님이 낳은 아이일까요. 이 아이는 왜 밤에 씩씩하게 잠들면서 꿈나라로 가지 못하고 이렇게 아프다며 울어야 할까요.



..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오늘 내 방이 생겼거든. 혼자서도 잘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혼자 자다가 깨니까 너무 무서웠어. 안방을 가려다가 문지방에 엄지발가락이 찧었어.” ..  (34쪽)




  어쩌면 아이는 잠에서 깨어 눈밭나라를 돌아다니지 않고, 꿈나라에서 신나게 돌아다닌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꿈나라에서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꿈나라에서 개와 쥐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고 나서 울다가 어느새 잠이 들고 나서 고양이와 개와 쥐를 만났을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아이는 밤마실을 합니다. 눈송이가 펄펄 날리는 골목을 고양이와 함께 걷습니다. 그러면서 고양이하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고양이는 아이 말을 알아듣고, 아이는 고양이 말을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개와 사람도, 쥐와 사람도, 서로 말을 섞습니다.


  사람은 고양이하고 말을 섞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렇지요. 서로 말을 섞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면 말을 섞을 수 있습니다. 쥐와 고양이는 서로 말을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렇지요. 서로 잡고 잡히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아끼고 돕는 사이가 되면 얼마든지 말을 나눌 수 있습니다.



.. 아이는 한참을 걷다가 검은 고양이가 있는 골목까지 왔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아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길을 잃었니? 넌 아까 저쪽에서 왔어.” “고마워.” ..  (47쪽)




  마음을 활짝 열 때에 이야기꽃이 핍니다. 마음을 밝게 열면 이야기잔치가 됩니다. 마음을 따사로이 여는 동안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골목길을 걷는 동안 씩씩한 마음으로 거듭납니다. 아이는 새끼 고양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골목길을 걷는 사이 씩씩한 몸짓으로 거듭납니다.


  밤은 무섭지 않습니다. 밤은 그저 밤이라, 모두 새근새근 잠들어 꿈을 꿉니다. 길을 잃을 일이 없습니다. 그저 먼 길을 혼자 나서 보았을 뿐이요, 고양이도 아이도 얼마든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이 지켜보면서 길을 다 알려줍니다. 바람이 들여다보고는 길을 살포시 알려주지요. 눈송이가 저마다 조잘조잘 떠들면서 길을 낱낱이 알려주어요. 고양이는 어미 품으로 돌아가고, 아이는 어버이 품으로 돌아갑니다. 4348.3.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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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규칙
숀 탠 글.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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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5



즐겁게 노는 동안

― 여름의 규칙

 숀 탠 글·그림

 김경연 옮김

 풀빛 펴냄, 2014.10.30.



  아이들은 놀면서 스스로 틀을 세웁니다. 그때그때 새로운 틀을 세웁니다. 어느 때에는 이 틀로 놀고, 다른 때에는 저 틀로 놉니다. 왜냐하면 늘 똑같은 틀로만 하면 재미없거나 따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틀을 세우든 늘 똑같이 지키려고 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여린 아이를 괴롭히지 않기로 하고, 함께 노는 동무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빠뜨리지 않기로 하며, 놀이에서 졌다고 토라지지 않기로 합니다. 벌레 한 마리를 함부로 밟아 죽이지 않기로 하고, 꽃을 함부로 밟지 않기로 하며, 나뭇가지를 함부로 꺾지 않기로 합니다.


  어린 우리들은 이 모두 또렷이 깨닫습니다. 함께 놀다가 어느 한 사람을 누군가 괴롭히면, 놀이하는 기쁨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재미없습니다. 함께 잘 놀다가도 어느 한 사람이 빠진 줄 깨달으면 가슴 한켠이 철렁하면서 아차 싶습니다. 벌레를 함부로 죽이든 꽃을 함부로 밟든 가지를 함부로 꺾든, 이런 바보짓은 고스란히 우리한테 돌아오는 줄 느낍니다.



.. 내가 지난여름 배운 게 있어 ..





  숀 탠 님이 빚은 그림책 《여름의 규칙》(풀빛,2014)을 읽습니다. 여름 규칙이 따로 있고, 겨울 규칙이 따로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규칙이나 틀은 더 재미있게 놀려고 아기자기하게 세웁니다. 놀다 보면 규칙이나 틀이 있는지 없는지 느끼지 않는데, 다른 마을 아이하고 섞여서 놀려 하면 규칙이나 틀이 있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고작 바로 옆 마을 동무인데, 규칙이나 틀이 달라요. 그래서 그냥 놀다가는 자꾸 툭탁거리기 마련입니다.


  가만히 보면, 같은 마을 동무끼리도 먼저 규칙이나 틀을 세우지 않으면, 놀다가 또 툭탁거립니다. ‘자, 이렇게 하기로 하자’ 하고 얘기해야 하는데, 이렇게 얘기를 안 하다가 놀면서 멋대로 규칙이나 틀을 바꾸면, 서로 재미없습니다.



.. 밤새 뒷문을 열어 두지 말 것 ..





  우리는 온갖 것을 생각합니다. 우리 생각은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 참말 우리한테 찾아온다고 느낍니다. 운동장만큼 커다란 새를 생각하면 참말 이렇게 커다란 새가 하늘을 덮는다고 느낍니다. 바다처럼 커다란 웅덩이를 그리면 참말 우리 앞에 커다란 웅덩이가 있어서 이를 건너지 못하리라 느낍니다.


  아무것이나 함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섣불리 아무것이나 생각했다가는 그만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이나 굴레에 갇힌다고 느낍니다. 놀이동무는 저마다 한 가지씩 규칙이나 틀을 말하는데, 내가 말하는 규칙이나 틀은 바로 나를 옥죄거나 얽맵니다.



.. 언제나 집에 가는 길을 알아 둘 것 ..



  놀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갑니다. 놀이를 마친 뒤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마당이나 골목에서 놀 수 없습니다. 실컷 뛰놀았으니 기쁘게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집하고 너무 멀리 떨어진 데까지 나와서 놀다가는, 그만 기운이 다 빠져서 집에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놀이를 끝내고 뿔뿔이 흩어질 때가 되면 갑자기 배가 고프고 다리가 아픕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놀아야 합니다. 노는 동안에는 배고픈 줄 잊고, 해가 기우는 줄 모르며, 날이 추워지는 줄 알아채지 못해요. 그러니, 우리는 집 둘레에서 신나게 놀아야지요. 해가 꼴깍 넘어간 뒤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는 길을 잃을 수 있어요. 그림책 《여름의 규칙》을 넘기면서 어린 날 놀이를 하나하나 새롭게 되새깁니다. 오늘 이곳에서 어린이가 이 그림책을 읽는다면, 하나하나 새롭게 ‘놀이그림’을 마음속에 그리겠지요.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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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여우와 털장갑
니이미 난키치 지음, 손경란 옮김, 구로이켄 그림 / 한림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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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94



네 따뜻한 손으로

― 아기 여우의 털장갑

 니이미 난키치 글

 구로이 켄 그림

 손경란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1998.10.30.



  아이들은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져 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저희 손으로 동무나 동생을 쓰다듬어 주기를 좋아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똑같이 어루만져 주고 싶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어루만지는 손길은 늘 따뜻합니다. 아이가 어버이를 어루만지는 손길도 늘 따뜻합니다. 서로서로 따뜻한 숨결이 되어 만나고, 다 함께 사랑스러운 노래를 부릅니다.


  예부터 이러한 손길을 가리켜 ‘약손’이라 했는데, ‘藥’이라고 하는 한자가 한겨레 삶에 스며들기 앞서는 누구나 ‘사랑손’이라 말했으리라 느낍니다. 사랑으로 어루만지기에 아픈 데가 낫고, 사랑으로 쓰다듬기에 기쁜 웃음이 넘칩니다.



.. “엄마, 손이 꽁꽁 얼어버린 것 같아요. 손이 너무 시려워요.” 하며, 젖어서 빨개진 작은 두 손을 엄마 여우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 여우는 “호, 호.” 하고 입김을 불어 주고, 따뜻한 엄마의 손으로 살포시 감싸서 녹여 주었습니다..  (8쪽)




  곰곰이 따지면 ‘약손’은 그리 미덥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아픈 사람은 ‘약’만 써서는 낫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거나 훌륭한 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라고 하는 기운을 담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값지거나 멋진 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스러운 숨결을 넣지 않으면 보람이 없어요.


  말 한 마디로 아픈 데를 씻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말 한 마디로 아픈 데가 도질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 때문에 아픈 데가 생기고, 말 한 마디를 듣고 나서 모든 앙금을 말끔히 씻습니다.


  우리는 ‘약’으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삽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한테 ‘약손’이라는 말은 안 씁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우리는 모두 ‘사랑손’이라고 말합니다.



.. “사람들은 네가 여우라는 것을 알면 장갑을 팔려고 하지 않을 거란다. 오히려 너를 잡아서 우리에 가두어 버릴 거야. 사람이란 정말로 무섭거든.” “흐음.” ..  (14쪽)




  니이미 난키치 님이 글을 쓰고, 구로이 켄 님이 그림을 그린 《아기 여우의 털장갑》(한림출판사,1998)을 읽습니다. 번역이 여러모로 아쉽지만, 이야기는 따사롭습니다. 겨울을 처음으로 맞이한 아기 여우가 손이 시려워서 쩔쩔매니, 어미 여우는 아기 여우를 데리고 아기 여우 손(발)에 꼭 맞을 만한 장갑을 ‘사람 마을’에서 얻어 주고 싶습니다. 어미 여우가 손수 가게에 가면 걱정스럽지 않을 테지만, 어미 여우가 가면 어미 여우 손(발)에 맞는 장갑을 얻을 테지요. 그래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누르면서 아기 여우가 스스로 제 장갑을 얻도록 심부름을 시킵니다.



.. 아기 여우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저건 분명히 사람 엄마의 목소리임에 틀림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구요? 아기 여우가 잠을 청할 때도 늘 엄마 여우는 지금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  (24쪽)



  어미 여우는 그동안 겪은 일이 많아서 두렵습니다. 아기 여우는 아직 겪은 일이 없어서 안 두렵습니다. 어미 여우는 아기 여우가 사람한테 사로잡힐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아기 여우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 어떤 목숨인지 모르기에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아기 여우는 모든 것이 궁금합니다. 아기 여우는 모두 다 새롭습니다. 아기 여우는 모든 것을 새롭게 알려고 합니다. 씩씩하게 나서고, 즐겁게 돌아봅니다. 다부지게 움직이고, 기쁘게 헤아립니다.




.. 엄마 여우는 걱정이 된 나머지 마을 어귀까지 나와서 아기 여우가 돌아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하고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힘차게 달려오는 아기 여우를 본 엄마 여우는, 따뜻한 품에 꼬옥 끌어안아 주며 눈물이 날 만큼 기뻐했습니다 ..  (29쪽)



  아기 여우는 어떻게 어미 여우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미 여우가 언제나 따사롭게 나누어 주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기 여우한테는 오롯이 사랑이 흘러요. 사람을 나쁘게 여기지 않고, 사람한테 나쁜 짓을 할 뜻이 없습니다. 그저 사람이라고 하는 ‘새로운 이웃이나 동무’가 궁금할 뿐 아니라, 사람한테서 장갑을 얻고 싶습니다.


  아기 여우는 ‘사람 어른’이 ‘사람 아기’한테 자장노래를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어미 여우를 떠올립니다. 그렇구나, 장갑을 얻었으니 얼른 돌아가야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여우 발바닥이 추위를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림책에 나오는 아기 여우는 새로운 빛을 보았습니다. 이러면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돌아갑니다. 가슴속에 새로운 빛을 고즈넉하게 심을 테고, 이 빛은 천천히 아기 여우 품에서 자라면서 고요한 숨결을 이어받아 새로운 사랑으로 타오르겠지요.


  따뜻한 손길로 물려주는 사랑이 오래도록 흐르고 흘러서 새로운 사랑이 됩니다. 먼 옛날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물려주는 사랑이요, 오늘날 내가 내 아이한테 새로 물려주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늘 이 사랑을 먹고 나누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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