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느라 그랬어요 마음똑똑 (책콩 그림책) 35
샌돌 스토다드 워버그 글, 이반 체르마예프 그림 / 책과콩나무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4



서로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눈망울

―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샌돌 스토다드 워버그 글

 이반 체르마예프 그림

 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 2015.1.20.



  샌돌 스토다드 워버그 님이 글을 쓰고, 이반 체르마예프 님이 그림을 그린 《생각하느라 그랬어요》(책과콩나무,2015)를 읽으면, 아이는 어른과 달리 어떤 생각을 마음에 품으면서 둘레를 살펴보는가 하는 이야기를 헤아릴 만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는 ‘응, 그러할 테지’ 하고 여길 텐데, 어른인 우리도 아이였을 적에 ‘어른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하던’ 숨결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른으로 자라면서 왜 아이 마음을 잃거나 잊을까요? 사람은 몸이 자라는 동안 왜 ‘어린 몸’에 깃들던 ‘큰 마음’이 사라지거나 없어질까요?


  어른은 언제나 바쁩니다. 이것을 하느라 바쁘고 저것을 하느라 바쁩니다. 이 일에 매달리느라 바쁘고 저 일에 얽매이느라 바쁩니다. 느긋하게 삶을 돌아볼 겨를을 못 내는 어른입니다. 차분하게 사랑을 되새길 틈을 못 내는 어른입니다.



.. 나는 수박을 생각해요. 나는 빨간 꽃들을 생각해요. 나는 생각해요 ..  (8쪽)




  아이는 어른과 다른 눈으로 바라봅니다. 참으로 다른 눈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왜 어른과 다른 눈일까요? 아이는 아이요, 어른은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와 어른은 서로 같은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때에 이러한가 하면, 서로 ‘새로운 곳’을 바라볼 때에는 같은 눈이 됩니다. 서로 ‘사랑스러운 곳’을 바라볼 때에도 같은 눈이 됩니다. 서로 ‘맑은 곳’을 바라볼 때에도 같은 눈이 되어요.


  한편, 새롭지 않은 곳을 바라보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곳을 바라보거나 맑지 않은 곳을 바라볼 적에도 같은 눈이 됩니다. 새로운 곳을 바라볼 적에는 ‘새롭게 빛나는 같은 눈’이고, 새롭지 않은 곳을 바라볼 적에는 ‘기운을 잃은 같은 눈’입니다. 사랑스러운 곳을 바라볼 적에는 ‘따사로운 사랑으로 눈부신 같은 눈’이고, 사랑스럽지 않은 곳을 바라볼 적에는 ‘차갑고 메마른 같은 눈’입니다. 맑은 곳을 바라볼 적에는 ‘맑게 아름다운 같은 눈’이고, 맑지 않은 곳을 바라볼 적에는 ‘죽음으로 치달리는 같은 눈’이에요.



.. 나는 생각해요. 손과 발과 팔과 다리를 생각해요. 만약 팔이 다리이고 팔에다 입는 바지가 있다면 손으로 땅을 짚고 신나게 돌아다닐 수도 있겠죠 ..  (14쪽)




  생각해 보셔요. 함께 웃고 노래할 때에 기쁩니다. 생각해 봐요.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일하고 놀 때에 즐거워요. 생각을 기울여요. 봄볕을 쬐면서 함께 봄나물을 뜯고는, 함께 봄나물을 헹구어 밥상을 차리면 웃음이 터져요. 손을 맞잡고 길을 걸어요.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어요.


  아이는 어른을 기다립니다. 새롭고 사랑스러우면서 맑은 곳을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어른도 아이를 기다리지요. 얼른 옷을 걸치고, 빨리 양말을 신으며, 후다닥 신을 꿸 때까지 기다립니다.


  아이는 어른을 기다립니다. 보드라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를 기다립니다. 따순 손길로 쓰다듬거나 어루만지기를 기다립니다. 언제나 고운 마음결로 살림을 꾸리면서 넉넉한 집안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어른도 아이를 기다리지요. 학교에서 시험성적 잘 받기를 기다립니다. 상장을 거머쥐거나 이름난 대학교에 붙거나 돈 잘 버는 회사에 들어가기를 기다립니다.




.. 나는 엄마를 생각해요. 백만 번, 천만 번, 억만 번 엄마를 생각해요. 나는 고릴라만큼, 코뿔소만큼, 코끼리만큼 엄마를 사랑해요. 나는 생각해요 ..  (28쪽)



  어른도 아이를 바라보면서 사랑을 생각하리라 봅니다. 이래 다그치거나 저래 윽박지르더라도 마음속에는 오롯이 사랑이 있으리라 봅니다. 어른도 아이를 마주하면서 언제나 사랑이 가득하리라 봅니다. 학교와 학원 사이를 쳇바퀴 돌듯이 오가도록 내모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마음속에는 이 아이가 홀가분하게 뛰놀면서 하늘바람을 가득 마시기를 바라리라 봅니다.


  기쁘게 뛰노는 아이가 맑은 생각을 품으면서 자랍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아이가 사랑스러운 생각을 돌보면서 자랍니다. 새롭게 웃는 아이가 고운 생각을 아끼면서 자랍니다. 아이와 함께 어른도 자라기를 바라요. 아이 곁에서 어른도 늘 새롭게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요. 4348.3.5.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 - 고집불통 작가와 제멋대로 화가의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여행
맥 바네트 글, 애덤 렉스 그림, 고정아 옮김 / 다산기획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 같은 그림책을 놓고 쓴 이 글은 <아침독서신문>에 실으려고 썼으나, 싣지 못한 글입니다. 앞서 올린 글과 이 글은 '같은 책'을 읽은 느낌을 담은 글이지만, 이야기를 푸는 얼거리가 사뭇 다릅니다. 따로 떼어서 읽어 보시면, 이야기를 어떻게 달리 풀어내는가를 느끼시리라 생각해요 ..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6 ㄴ



이야기를 짓는 사람 ㄴ

―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

 맥 바네트 글

 애덤 렉스 그림

 고정아 옮김

 다산기획 펴냄, 2015.1.12.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어른은 ‘어버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은 어른은 ‘그냥 어른’이고, 아이를 낳은 어른만 ‘어버이’입니다. 어버이가 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를 헤아려서 이모저모 새로 짓거나 마련하거나 가꿉니다. 이를테면, 아기가 찾아오는 집에 아기가 깃들 방이나 잠자리를 마련하고, 배냇저고리를 새로 짓지요. 어머니는 아기한테 젖을 물릴 텐데, 젖을 뗄 무렵에는 아기가 먹을 밥을 마련해요. 아기가 쓸 수저와 밥그릇을 장만하지요. 아기는 젖만 먹고 자라지 않으니, 어버이는 노래를 들려주고 여러모로 아기하고 놀려 합니다. 왜냐하면, 아기는 혼자 서거나 걷거나 돌아다니지 못하니, 곁에서 어버이가 놀아 주면서 놀잇감을 건네기도 해야 합니다. 게다가 아이가 말을 익힐 수 있도록 어버이는 아기 곁에서 말을 들려줍니다. 어버이가 여느 때에 쓰는 여느 말이 바로 아기가 배우면서 물려받는 말입니다.


  아기 티를 벗고 아이가 되면, 그동안 어버이한테서 듣고 배운 말을 이리 엮고 저리 짜서 ‘아이 나름대로 새로운 말’을 빚습니다. 어버이가 거친 말을 쓴다든지 영어를 자주 쓰면, 아이도 거친 말을 똑같이 쓸 뿐 아니라 영어도 자주 써요. 어버이가 고운 말을 쓴다든지 정갈한 말을 늘 쓰면, 아이도 고우면서 정갈한 말을 써요.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노래를 듣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켜면 온갖 이야기가 흐르고 갖가지 노래가 나옵니다. 그런데, 백 해쯤 앞서만 해도 모든 아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언제나 시골마을에서 시골사람이 시골일을 하다가 부르는 시골노래를 들으면서 시골살이를 배웠어요. 어버이는 딱히 아이한테 흙짓기나 집짓기나 옷짓기를 가르치지 않지만, 아이는 늘 어버이 곁에서 호미질과 괭이질과 바느질과 베틀질과 절구질과 낫질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하나씩 배우고 물려받아요. 놀이도 노래도 춤도 저절로 물려받고 배우면서 ‘제 가락’이 싱그럽습니다. 다만, 이제 이러한 삶길은 거의 끊어졌어요. 민속학자는 두멧자락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삶노래(민요)’를 받아적어서 남기려 하는데, 삶노래는 책에 안 적혔어도 수천 수만 해를 곱게 이으며 흘렀습니다.


  그림책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다산기획 펴냄,2015)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줄거리가 따로 없’이 ‘이야기를 그때그때 새로 짓는 얼거리’를 ‘줄거리’로 보여줍니다. 어딘가 알쏭달쏭하다 할 만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스스로 새롭게 지어서 즐겁게 누렸다는 대목을 재미난 짜임새와 앙증맞은 인형과 그림으로 장난스레 보여주어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는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 다 언제나 새로운 틀로 거듭나는 이야기예요. 줄거리는 똑같아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맛이 달라지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 맞추어 이야기결을 바꾸며, ‘이야기하는 날과 때’를 살펴 이야기꽃을 새로 피웁니다. 그러니까,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는 끝이 날 수 없습니다. 그림책은 마흔 몇 쪽에서 ‘끝’이라고 나오지만, 우리는 이 다음 이야기를 우리 나름대로 새로 지어서 붙일 만합니다. 그림책 뒤에 하얀 종이나 파란 종이를 붙여서 어버이와 아이가 새로운 이야기를 그리고 써도 재미있어요. 이 그림책은 ‘그림책을 즐기는 길’은 아주 많다고 넌지시 알려줍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새 이야기를 지어서 함께 나눌 수 있다고 가만히 보여줍니다.


  삶을 짓는 사람이 이야기를 짓습니다. 삶을 날마다 새롭게 짓기에, 이야기를 언제나 새롭게 짓습니다. 주어진 노랫말대로만 노래를 부를 수 있으나, 노랫말을 내 나름대로 고쳐서 새로 부를 수 있습니다. 노랫가락도 우리 나름대로 새로 짓거나 붙일 수 있습니다. 사랑은 끝이 없고, 꿈은 끝이 없으며,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끝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오늘 하루도 기쁘게 불러요.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 - 고집불통 작가와 제멋대로 화가의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여행
맥 바네트 글, 애덤 렉스 그림, 고정아 옮김 / 다산기획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 <아침독서신문>에 싣는 글입니다. 그림책 한 권을 놓고 느낌글을 두 가지로 썼습니다. 두 가지 느낌글을 따로 올려놓겠습니다 ..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76 ㄱ



이야기를 짓는 사람 ㄱ

―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

 맥 바네트 글

 애덤 렉스 그림

 고정아 옮김

 다산기획 펴냄, 2015.1.12.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적에 ‘시간 흐르는 줄’ 잊기 일쑤입니다.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니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은 곧 흐릅니다. 서너 시간이나 예닐곱 시간까지 바로 흘러요. 그런데, 반가운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하고 돌아보면 아주 수수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수수하거나 투박한 이야기를 놓고 몇 시간을 지치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워요.


  아이라면 누구나 수수한 놀이 하나를 놓고 하루 내내 신납니다. 이 장난감이 있어 이 놀이를 해야 신나지 않아요. 아무런 장난감이 없어도 스스로 놀이를 지을 줄 압니다. 연필 한 자루로도, 비닐봉지 하나로도, 돌멩이 하나로도 온갖 놀이를 지을 수 있어요.


  그림책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다산기획 펴냄,2015)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은 새로운 얼거리를 써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면, 이 그림책에 흐르는 줄거리는 어떠할까요? 줄거리는 새로울까요? 이 그림책을 읽을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텐데,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은, 책이름에서도 나오듯이 ‘끝없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줄거리도 끝이 없고 이야기도 끝이 없습니다. 끝이 날 수 없는 이야기를 ‘얼핏 끝이 났다’고 보여주지만, 아무래도 이야기가 더 있으리라고 느낄 만해서, 책을 이리저리 살펴야 합니다. 어디엔가 ‘도라에몽 사차원 주머니’가 붙어서 다른 이야기가 더 이어지리라 생각할 만하니까요.


  얼거리를 가만히 보면,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는 ‘글을 쓰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나오고, ‘글 아저씨와 그림 아저씨가 빚은 클로이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엮는다고 할 만해요. 그런데, 세 사람은 또 한 사람을 부릅니다. 누구를 부르는가 하면, 이 그림책을 펼쳐서 읽을 아이(또는 어른)를 부릅니다. 그래서, 네 사람(또는 다섯 사람, 때로는 예닐곱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엮으면서 보는 그림책입니다.


  글 아저씨가 먼저 첫머리를 엽니다. 글 아저씨는 ‘인형’ 모습으로 나와서 이름을 밝히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줍니다. 이러고 나서 그림 아저씨가 ‘인형’ 모습으로 나와서 ‘클로이’라는 아이를 만화로 그려서 보여주어요. 이제 이렇게 세 사람이 이야기를 엮으려고 하는데, 그림 아저씨는 곧잘 글 아저씨하고 다툽니다. 옥신각신하지요. 왜냐하면, 그림 아저씨도 ‘그림책을 엮는 일’을 함께 하고 싶거든요. 글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만 하고 싶지 않아요. 글 아저씨는 어떤 마음일까요? 글 아저씨는 글 아저씨대로 생각한 얼거리가 있어서, 이 얼거리를 따르지 않는 그림 아저씨가 괘씸합니다. 사자한테 잡아먹히도록 내몰아요.


  그림 아저씨가 사자한테 잡아먹히게 했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그림 아저씨를 부르든 글 아저씨가 손수 그림을 그리든 해야 할 테지요. 글 아저씨가 그림 아저씨하고 머리를 맞대면서 둘이 더욱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으면 부드럽게 그림책 하나가 나올 텐데, 글 아저씨가 그만 억지를 부리고, 그림 아저씨도 글 아저씨한테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지 못했어요. 이 사이에서 ‘클로이’는 모두 괜찮으니까, 그림책 이야기를 차근차근 다시 엮자고 두 아저씨한테 말합니다. 두 아저씨는 살짝 바보스러웠으나 클로이라는 아이는 슬기롭고 차분하게 다독여 주어요. 자, 그러면 이 다음에는 이야기가 어떻게 흐를까요? 궁금한 분은 손수 이 그림책을 장만해 보셔요. 모든 줄거리를 다 밝히면 “끝없는 이야기”에서 ‘끝’이 보일 테니까요. 끝이 없는 이야기에 참말 끝이 없도록, 즐겁게 읽으면서 우리도 새로운 이야기를 책 뒤에 종이를 더 붙여서 손수 글과 그림을 넣으면 더욱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8.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별에 온 손님 그림책 보물창고 5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1



슬기롭게 생각해야 삶을 짓는다

― 지구별에 온 손님

 모디캐이 저스타인 글·그림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펴냄, 2005.5.10.



  모디캐이 저스타인 님이 빚은 그림책 《지구별에 온 손님》(보물창고,2005)은 우리가 이 지구별에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나한테 찾아온 삶을 어떻게 누릴 때에 즐거우면서, 이 삶을 마친 뒤 죽음에 이를 적에 내 ‘다음 삶’을 어떻게 그려야 다시 지구별로 돌아와서 태어날 수 있느냐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나는지 안 태어나는지 궁금할 수 있고, 안 궁금할 수 있습니다. 죽고 나서 다시 안 태어난다고 여길 수 있을 테고, 죽고 난 뒤에 틀림없이 다시 태어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다 옳습니다. 다만, 삶을 누리는 동안에는 늘 삶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삶을 마친 뒤에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려는가 하는 대목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아이는 밤마다 하늘을 쳐다보곤 했어요. 밤하늘엔 별들이 반짝이고 어디론가 은하수가 흘렀어요. “저 너머엔 무언가 다른 세상이 있을 거야. 언젠가 꼭 한번 가 봐야지.” 아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어요 ..  (4쪽)




  그림책 《지구별에 온 손님》에 나오는 나무꾼은 ‘나무꾼으로 살면서 키운 꿈’이 있습니다. 아마 이 나무꾼은 이 꿈을 이루려고 ‘다시 태어났’을 텐데, 스스로 꿈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그저 ‘일만 하느’라 바쁘게 하루하루 보내다가 죽음으로 들어섭니다. 그러니까, 어떤 꿈을 이루려고 다시 태어났지만, 막상 다시 태어났어도 스스로 꿈을 이루지 못해요. 이리하여, 죽은 뒤 찾아온 새로운 누리에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살펴서 고릅니다. 어느 별누리로 갈는지, 별누리 가운데 어느 별에 깃들는지, 별에서 어떤 목숨으로 깃들는지, 별에서 어떤 목숨으로 깃들되 어느 터전에서 어느 어버이를 만나려는지, 어느 어버이를 만나서 어떤 삶을 누리려 하는지, 하나하나 낱낱이 새로 살펴서 고릅니다.


  이 그림책에서는 ‘죽고 난 뒤에 다시 고르는 자리’가 있다고 나오지만, 죽기 앞서 이 모든 ‘다음 삶 이야기’를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죽고 난 뒤에는 그저 텅 빈 곳을 떠도는 넋이 되리라 느낍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데, 어떤 삶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면서 가꾸는 삶이 아니라면 ‘살아서 움직일’ 때에도 내 꿈과 뜻을 이루지 못하는 쳇바퀴입니다. 삶을 마감하고 죽음으로 나아갈 적에도 아주 마땅히 ‘살아서 움직일’ 때 모습 그대로 갑니다. 여느 때에 생각이 없이 지냈으면, 죽은 뒤에도 생각이 없겠지요. 죽은 뒤에도 생각이 없으면, 이러한 사람은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 나무꾼의 눈앞에 우주 전체가 펼쳐져 있었어요. 우주는 새해 전날의 불꽃놀이처럼 눈부시게 반짝이며 소용돌이치고 있었지요. “이 우주에는 은하계라 불리는 수억 개의 세상이 있느니라. 은하계들은 저마다 다르게 생겼고 모두들 아름답지. 어느 은하계든 네가 살고 싶은 곳을 골라 보아라.” ..  (10쪽)




  그림책을 곰곰이 읽으면, 나무꾼으로 늙다가 죽은 사람은 늙으면서, 또 죽으면서, 이 삶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돌아보았습니다. 스스로 돌아보았지요. 이러고 나서 죽었어요. 그러니까, 그림책에 나오는 나무꾼 할배는 죽음을 앞두고 ‘다음 삶’을 그린 셈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 스스로 돌아볼 노릇이에요. 오늘 이곳에서 살며 우리는 무엇을 그릴까요? 오늘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지으려 하나요? ‘다음 삶’은커녕 ‘오늘 이곳 삶’조차 하나도 안 그리면서 아침을 열지는 않나요? 오늘 하루도 늘 똑같이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수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따분함과 고단함과 힘겨움만 잔뜩 끌어들이지는 않나요?


  나 스스로 아침부터 고단하거나 따분하거나 힘겹다고 생각하니, 참말 이 생각 그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단하거나 따분하거나 힘겨운 쳇바퀴를 돌아야 하지 않나요?



.. “나처럼 되세요! 그럼, 얼마나 신나겠어요!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생물들이 나무꾼을 향해 소리쳤어요 ..  (16쪽)




  생각이 삶을 바꿉니다. 기쁘게 스스로 짓는 생각이 내 삶을 스스로 기쁘게 바꿉니다. 남이 바꾸어 주는 내 삶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바꾸는 내 삶입니다. 남한테 기댄들 남은 나한테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내가 먹을 밥을 남이 먹어 준들, 내 배가 부를 수 없습니다. 내가 읽을 책이 남이 읽어 준들, 내 마음이 넉넉할 수 없습니다.


  내 밥은 내가 손수 지어서 내가 수저를 들어서 먹어야 합니다. 내 책은 내가 손수 골라서 내가 신나게 읽어야 합니다.


  내 삶은 내가 지어야 합니다. 하늘에서 돈다발이 툭 하고 떨어져야 내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내 삶을 바꾸려 하는 마음을 생각으로 키워야 비로소 내 삶을 바꿉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스스로 쳇바퀴를 돌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하겠노라 생각을 키우기에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얘야, 이리 오렴! 어서 우리 아이가 되렴!” 그때 나무꾼은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한 아버지의 미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한 어머니의 미소도 보았습니다. “바로 저분들이 나의 부모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22쪽)



  슬기롭게 생각해야 삶을 짓습니다. 생각을 해야 삶을 짓지는 않습니다. 아니, 생각만 해서는 삶을 짓지 못합니다. 바보스레 생각하거나 멍청하게 생각할 때에는 삶을 바보스럽거나 멍청하게 지어요. 그러니, 생각을 하더라도 슬기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사랑스러움을 생각할 노릇입니다. 내가 누를 아름다움을 가만히 생각하면서, 내가 나아갈 사랑스러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때에 바로 내 앞길이 환하게 열립니다. 내가 여는 내 앞길이지요.


  그림책 《지구별에 온 손님》은 우리 모두가 저마다 ‘지구별 손님’인 대목을 밝힙니다. 맞아요. 우리는 지구별에 온 손님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다른 별에서 지구별로 온 손님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사랑과 평화와 꿈을 이루려고 모인 손님입니다. 그래서, 다 다른 나라와 겨레를 이루고, 다 다른 삶을 지으면서, 다 다른 사랑을 노래하지요.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씨앗 나라의 루시 - 물구나무 그림책 048 파랑새 그림책 48
소피 드 레슬러 지음, 김효림 옮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80



씨앗 한 톨 심을 수 없어도

― 씨앗 나라의 루시

 소피 드 레슬러 글·그림

 김효림 옮김

 주니어파랑새 펴냄, 2006.6.25.



  그림책 《씨앗 나라의 루시》(주니어파랑새,2006)는 아주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만, 이 대단한 이야기를 가슴으로 느끼려면, 우리가 손수 씨앗을 건사해서 심을 땅이 있어야 합니다. 손수 씨앗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손수 씨앗을 심지 못하며, 손수 씨앗을 가꾸지 못한다면, 이 그림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겉훑기’로만 지나치고 끝납니다.


  겉훑기를 한다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나오는 수많은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을 보면 ‘자연·환경·생태’를 다루는데, 막상 오늘날 어린이나 어른 모두 ‘자연·환경·생태’와는 아주 동떨어진 도시에서 살거든요. 도시에서 살며 모자란 대목인 ‘자연·환경·생태’를 책으로나마 아이한테 맛보게 하려고 이러한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을 읽히곤 하는데, 손수 밟을 흙땅이 없이 생태책이나 환경책이나 자연책을 읽는다면, 아이는 무엇을 배울까요? 아이가 둘레를 살펴보면 흙이고 풀이고 나무이고 없는데, 이러한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은 어떤 구실을 할까요?


  아파트에서 살며 집안에 꽃그릇을 두더라도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집안에 꽃그릇을 두더라도, 마루나 방이나 툇마루에 흙이 굴러다니는 ‘꼴’을 두고볼 수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에 ‘흙’이나 ‘모래’가 거의 없기 일쑤입니다. 아파트 놀이터에 흙이나 모래가 있어서, 이곳에 씨앗이 드리워 싹이 트려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파트 지킴이가 어느새 이 ‘풀싹’을 뽑아서 없앨 테지요.



.. 할아버지는 나무와 풀이라면 뭐든지 알고 있답니다. “씨앗도 여행을 해요?” 동생 앙트완느는 깜짝 놀란 것 같았어요. “얘들아, 텃밭으로 나오렴. 씨앗 나라로 떠나 보자!” ..  (7쪽)





  씨앗 한 톨 심을 수 없는 오늘날 도시 문명사회에서 《씨앗 나라의 루시》 같은 그림책은 어느 모로 본다면 ‘바보스럽’거나 ‘반동’이거나 ‘거꾸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밥은 무엇일까요? 밥은 풀열매입니다. 벼라는 풀에서 맺은 열매인 ‘벼알(볍씨)’이 바로 밥입니다. 다만, 벼알이 바로 밥이 되지 않아요. 벼알을 감싸는 껍질(겨)을 벗겨야 ‘쌀’이 되고, 이 쌀을 냄비에 넣고 물을 맞추어 끓여야 밥입니다.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다 하더라도, 돼지나 소나 닭은 모두 ‘풀알(풀열매)’과 ‘풀잎’과 ‘짚(마른풀)’을 먹으면서 자라는 짐승이에요. 요즈음에는 돼지와 소와 닭한테 사료를 주지만, 더군다나 풀짐승한테 ‘고기 성분이 깃든 사료’를 주는 끔찍한 짓을 일삼지만, 돼지와 소와 닭은 풀알과 풀잎과 짚을 가장 즐기면서 반기지요. 사람이 고기를 먹더라도, 곰곰이 따지면 언제나 ‘풀’을 먹는 셈입니다.



.. ‘저 낙하산처럼 생긴 건 왜 씨앗에 붙어 있는 걸까?’ 루시는 할아버지가 들려준 민들레 이야기를 떠올려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씨앗을 날려 보내기 시작했어요. 루시는 어느새 하늘을 날고 있었어요 ..  (19쪽)



  삶을 먼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면, 삶을 옳게 읽지 못합니다. 삶을 옳게 읽지 못한다면, 어른은 아이한테 아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어른 스스로 흙과 동떨어진 시멘트나라에서 사는데, 아이가 ‘흙내음 이야기’를 반가이 들을 수 없습니다. 어른 스스로 풀이나 나무하고 등진 아스팔트나라에서 사는데, 아이가 ‘풀꽃 이야기’를 기쁘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림책 《씨앗 나라의 루시》는 들을 가꾸는 할아버지한테서 슬기로운 숨결을 물려받는 아이들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시골에서는 살아야 이 그림책을 온몸으로 헤아릴 수 있고, 시골에서 살지 않더라도 틈틈이 흙땅을 두 발로 밟고 흙을 두 손으로 만지는 아이쯤 되어야 온마음을 기울여 이 그림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보금자리 둘레에는 자가용과 아파트와 건물만 그득한 도시에서 《씨앗 나라의 루시》를 아이한테 읽히려 한들 읽힐 수 없어요. 오늘날 도시 문명사회에서는 ‘닐스의 신기한 여행’조차 아이한테 읽히기 어렵습니다.





.. 다람쥐는 배불리 먹었는지 남은 솔방울을 자기만 아는 곳에 숨겨 놓으려고 바쁘게 왔다갔다 했어요. “겨울을 나려고 먹이를 쌓아 두는 거야.” 루시가 속삭였어요. “그렇구나. 깜빡 잊고 먹지 않은 씨는 자라서 나무가 될 수도 있겠네?” 앙트완느가 덧붙였어요 ..  (29쪽)



  씨앗 한 톨은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깃들지 않습니다. 씨앗 한 톨은 언제나 흙 품에 안깁니다. 흙은 씨앗을 반깁니다. 씨앗과 흙은 서로 아끼고 섬기면서 돕는 이웃입니다. 씨앗은 흙이 있어서 포근하게 잠들고, 흙은 씨앗을 만나면서 한결 아름답게 거듭나요. 씨앗은 흙이 품는 포근한 기운을 받으면서 새로운 숨결로 깨어납니다. 싹이 돋아 풀이나 나무로 자라요. 흙은 ‘풀이나 나무로 자란 씨앗’이 무럭무럭 올라가면서 뿌리를 내리는 동안, 뿌리가 붙잡는 온갖 기운을 맞아들여 기쁠 뿐 아니라, 가을이 되어 풀잎이나 나뭇잎이 흙으로 돌아와서 새 기운을 살찌워 주니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씨앗과 흙은 서로 돕고 아끼는 사이,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 할아버지는 루시의 머리에 화관을 씌워 주며 말했어요. “우리 루시는 앞으로 식물학자가 될 씨앗 같구나!” ..  (36쪽)



  사람은 씨앗을 흙에 심습니다. 사람은 씨앗과 흙을 잇는 징검돌이자 이음고리요 사랑입니다. 씨앗과 흙한테 사람은 멋진 손길이에요. 씨앗과 흙은 저마다 제 가슴에 고운 님이 감도는데, 이 고운 님을 깨우는 손길은 바로 사람들이 일으켜 주는 상큼한 산들바람입니다.


  우리는 밥을 먹으려고 씨앗을 심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을 가꾸려고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가 삶을 가꾸려고 씨앗을 심는 땅은 바로 우리 보금자리입니다. 우리 보금자리에는 어떤 ‘나쁜 기운’도 들어서지 못합니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가 심은 씨앗이 ‘숲’으로 자라고, 우리가 심은 씨앗으로 ‘흙’이 기름지니, 이 아름다운 터전은 ‘숲집’으로 거듭나요.


  지구별이 예부터 푸르면서 파랗게 빛나는 눈부신 터전이었던 까닭은, 씨앗을 심는 사람이 있고, 씨앗을 심을 흙이 있으며, 씨앗이 자라는 보금자리(집)가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 한 톨 심을 수 없는 도시에서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시멘트땅이 갈라진 틈바구니에 씨앗을 심어요. 일부러 시멘트땅을 쪼개어 흙땅을 넓히고 텃밭을 가꾸어요. 농약이나 비료나 항생제에 기대지 말고, 우리 사랑을 쏟아서 흙을 북돋우고 지구별을 살려요. 그러면, 우리는 누구나 씨앗나라로 기쁘게 나들이를 다닐 수 있습니다.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