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못 분도그림우화 20
이반 간체프 / 분도출판사 / 198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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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2

 


보배는 늘 내 곁에 있어요
― 달못
 이반 간체프 글·그림
 이미림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1983.8.5.

 


  아침밥을 안칩니다. 밥물이 제법 끓을 무렵 국냄비에 불을 넣습니다. 그릇을 둘 챙겨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그릇 하나에는 네 식구가 먹을 풀을 뜯습니다. 그릇이 수북합니다. 사월 팔일 아침볕은 곱고, 사월 팔일에 돋는 풀은 싱그러면서 먹음직합니다. 풀을 뜯는 손에 풀물이 들고 풀내음이 뱁니다.


  그릇 하나를 다 채운 뒤, 다른 그릇에는 쑥을 뜯어서 담습니다. 오늘은 신나게 뜯어 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릇이 넘칠 듯하면 꾹꾹 누릅니다. 넘치도록 뜯은 쑥을 뜯고 더 뜯습니다. 뒤꼍으로 가서 쑥을 더 뜯습니다. 우리 집 둘레에서 나는 쑥을 골고루 뜯습니다.


  볕이 드는 자리에 따라 쑥빛과 쑥내음이 다릅니다. 볕이 잘 드는 자리라고 쑥이 더 잘 자라지는 않습니다. 그늘진 자리에서는 그늘진 자리대로 쑥이 돋고, 볕바른 자리에서는 볕바른 자리대로 쑥이 돋아요.


.. 높은 산 위, 기암괴석이 얼키설키 어우러진 어느 깊은 골짜기에 못이 하나 있읍니다. 골짜기가 어찌나 깊은지 그 속은 언제나 깜깜한데, 오로지 못만은 환하게 말갛고 못가에 보석들이 반짝입니다 ..  (2쪽)

 


  올들어 첫 쑥버무리를 하기로 합니다. 쑥을 듬뿍 넣은 달걀말이를 할까 생각하다가, 달걀말이는 다음에 하자고 생각합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쑥을 조금씩 넣다가 나중에는 왕창 넣습니다. 밀가루 반죽은 살짝 묻은 쑥을 미리 달군 냄비에 놓습니다. 지글지글 자글자글. 처음에는 쑥버무리를 자주 뒤집습니다. 이러다가 눌러붙지 않겠다 싶으면 뚜껑을 닫고 다른 풀을 손질합니다. 날로 먹을 풀은 예쁜 그릇에 담아 밥상에 얹습니다. 두 아이가 배고프다고 부릅니다. 미리 썬 오이와 무를 내줍니다. 오이와 무를 얼른 다 먹은 두 아이는 더 달라고 합니다. 이제 그릇에 국을 떠서 두 아이 앞에 놓습니다. 국을 마시는 아이를 바라보며 다른 풀을 밥상에 올립니다. 하나는 그대로 먹고, 하나는 된장으로 비벼서 먹습니다.


  이동안 쑥버무리가 천천히 익습니다. 당근을 동그랗게 썹니다. 쑥버무리 올릴 네모낳고 커다란 접시 둘레에 당근을 올립니다. “냄새 좋아요. 얼른 먹고 싶어요.” 일곱 살 큰아이가 노래합니다. 그래, 그렇게 노래하는 마음에는 맛난 밥이 들어가서 몸을 튼튼하게 살찌우리라 생각한다, 함께 잘 먹자.


  접시를 ⅔쯤 채울 무렵 쑥버무리구이, 또는 쑥버무리튀김을 밥상에 올립니다. 어떤 맛일까? 나도 아직 모릅니다. 올해 처음 마련한 쑥버무리이기에 무척 궁금합니다. 아무튼, 두 아이는 풀이 가득한 밥상맡에서 밥을 잘 먹습니다.


.. 복돌이는 외토리가 되었읍니다. 혼자서 양들을 돌보았읍니다. 그래도 복돌이는 만족해 하며 살았읍니다. 양유가 넉넉히 나므로 치즈를 만들어서 읍내에 나갈 때 내다 팔아 그 돈으로 자기하고 양들이 먹을 소금을 샀읍니다. 절로 열린 능금이랑 배랑 산딸기랑을 따다가 겨울에 먹을 쨈도 고아 놓고, 양파랑 콩이랑 푸성귀는 손수 심었지요 ..  (10쪽)

 


  이반 간체프 님 그림책 《달못》(분도출판사,1983)을 읽습니다. 1983년에 한국말로 나온 작은 그림책인데,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습니다. 1983년이면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무렵입니다. 그때에 누군가는 이 멋진 그림책을 사랑스레 누렸겠지요. 1985년이나 1987년에 이 그림책을 알아본 어버이는 이녁 아이한테 이 예쁜 그림책을 즐겁게 읽혔겠지요.


.. 복돌이가 흘낏 뒤돌아보니, 멋지되 큼직한 은빛 여우 한 마리가 있었어요. 여우는 먹을 것이 있으면 좀 주겠느냐고 물었읍니다. 그리고 “그러면 큰 비결을 하나 가르쳐 주지.” 하고 보답을 약속했읍니다. “내가 가진 것은 얼마든지 줄게.” 소년이 말했읍니다. “많지는 않아. 빵 조금하고 치즈하고 그리고 양파 몇 개야.” ..  (14쪽)


  새책방 책꽂이에서 사라진 책이지만, 헌책방 책시렁에서 더러 만납니다. 다만, 판이 끊어진 그림책이니 자주 찾아보거나 쉽게 만나지는 못하리라 생각해요. 나는 이 그림책을 2000년 언저리에 처음 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아이가 없이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만드는 일을 했어요. 어린이책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그림책을 눈여겨보았고, 분도출판사에서 펴낸 작은 그림책이 몹시 즐겁다고 느꼈어요.


  열 몇 해 앞서는 그저 ‘좋은 그림책이로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일곱 살 네 살 두 아이와 시골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은 새롭게 마주합니다. ‘이 그림책에 담은 넋은 무엇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그림책 《달못》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고 곱씹습니다.


  달못에서 반짝이는 보배에 눈이 멀어 목숨을 잃은 바보스러운 임금님과 신하들? 달못에서 반짝이는 보배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깊은 두멧자락에서 조용히 양을 치면서 숲밥을 먹고 숲노래를 부르는 착한 아이?

 


.. 또 한 번 복돌이는 아름다운 보석을 몇 개 주워 왔읍니다. 그리고 그것을 양마다 하나씩 목고리에 매달아 주었읍니다. 그래서 다시는 양들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 빛이 밤에도 양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거든요. 나머지 보석들은 창틀에다가 얹어 두었읍니다 ..  (26쪽)


  보배는 늘 내 곁에 있어요. 나는 우리 시골집에서 날마다 뜯는 풀이 보배입니다. 마당에서 개구지게 뛰놀다가 대청마루에서 쿵쿵 소리내며 뒹구는 두 아이가 보배입니다. 두 아이를 함께 낳아 사랑하는 곁님이 보배입니다.


  하늘빛이 보배입니다. 싱그러운 물빛이 보배입니다. 꽃내음이 보배입니다. 예쁜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보배입니다. 산뜻한 초피나무와 모과나무가 보배입니다. 모두 보배입니다.


  멧새 노랫소리가 보배이고, 개구리 노래잔치가 보배입니다. 풀벌레 노래빛이 보배요, 아이들을 다독이며 재우는 자장노래가 보배입니다. 모두 보배예요. 언제나 보배입니다. 삶이 보배이고 사랑이 보배예요. 꿈이 보배이고 이야기가 보배입니다. 즐겁게 누리는 사월빛이 해맑습니다. 4347.4.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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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아빠
김장성 글, 김병하 그림 / 한림출판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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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1

 


새집과 까치와 나무
― 까치 아빠
 김병하 글
 김장성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2012.5.25.

 


  그림책 《까치 아빠》(한림출판사,2012)를 읽습니다. 김병하 님이 글을 쓰고, 김장성 님이 그림을 그립니다. 사람들이 까치집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무를 파내어 먼 데에 팔아치우면서 까치 식구가 겪은 고단한 하루를 들려줍니다.


  참말 그렇지요. 사람들은 까치집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까치집뿐 아니라 새집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집 처마에 집을 짓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제비가 집을 지으면 둥지를 허물기 일쑤예요. 아니, 요즈음은 제비가 돌아오는 시골이 아주 적으니, 허물 제비집을 구경하기조차 어렵겠지요.


.. 공원 울타리 밖에 이런저런 나무들이 모여 있었어요. 키 큰 은행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이 있었지요. 까치집에는 물론 까치가 살았어요 ..  (3쪽)

 

 


  새가 없으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벌레와 나비를 잡아먹는 새가 사라지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개구리가 없으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작은 풀벌레뿐 아니라 모기도 파리도 잡아먹는 개구리가 없으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이제 시골에서는 새가 콩을 파먹고 곡식을 쪼아먹는다고 싫어하지만, 새가 잡아먹을 애벌레도 풀벌레도 날벌레도 사라지니 콩이나 곡식을 쪼아먹으려 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농약을 뿌려대어 새가 살아남기 어렵게 하니 어쩌겠어요. 멧돼지도 고라니도 이와 같아요. 숲에서 살기 어렵도록 숲을 망가뜨리니 숲짐승이 어떻게 하겠어요. 숲짐승은 그예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죽어야 할까요.


..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당신이 올 줄 알았어요.” 까치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마음 다 알아요.’ 빙긋 웃으며 이제껏 물고 있던 벌레를 건네주었어요. 그러자, 집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어요 ..  (30쪽)


  그림책 《까치 아빠》는 까치 식구가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애틋하게 그립니다. 새 한 마리쯤 쳐다볼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까치 식구는 당차게 살림을 꾸립니다. 도시에 있는 공원에서는 나뭇가지 주워서 집을 짓기 어려웠을 텐데, 까치는 까치집을 어떻게 지었을까요. 도시에 있는 공원에서 까치가 집을 짓기까지 얼마나 힘을 들였을까요.

 

 


  그나저나, 그림책 《까치 아빠》는 그림이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까치는 틀림없이 우람한 나무 우듬지 가까이에 둥지를 짓습니다. 그렇지만, 그림책으로 보면 나무가 그리 크지 않아요. 이렇게 나즈막한 데에 둥지를 트는 까치가 있을는지 모르겠으나, 고개를 자꾸 갸우뚱할밖에 없습니다. 한편, 수컷 까치가 ‘벌레’를 입에 물고 날아다니는 이야기를 그리는데, 까치가 입에 문 먹을거리는 ‘벌레’가 아닌 ‘지렁이’예요. 말과 그림이 안 맞아요. 까치가 지렁이를 찾아내거나 땅에서 파내어 물 수 있습니다만, 새는 지렁이만 먹지 않고, 나뭇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를 많이 잡아먹고, 풀벌레도 꽤 잡아먹습니다. 쉬 지나칠 수 있을 법한 대목이지만, 조금 더 찬찬히 살펴서 보듬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대목을 보면, 도시에 있는 공원에서 파낸 나무를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어느 시골마을에 옮겨심습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나무를 옮겨심을 수 있기도 할 테지만,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모습이로구나 싶어요. 시골에 나무가 없어 도시에서 파내어 옮길까요? 시골에서 파낸 나무를 도시로 옮겨심는 그림으로 보여주어야 앞뒤가 맞지 않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요즈음 시골마을을 보면, 집집마다 ‘집나무’가 아주 드뭅니다. 마당에 그늘이 드리운다면서 집나무를 거의 다 베어서 없앱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 숲정이를 찾아보기 퍽 힘들어요. 외려 도시에서 나무를 사다가 옮겨심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시골집 마당에 은행나무를 심을까 궁금합니다. 시골집에서도 은행나무를 심을 수 있지만,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이 그림책을 들여다보면서 여러모로 알쏭달쏭하고 아리송합니다. 은행나무를 아주 좋아한다면 이렇게 심기도 할 테지만, 글쎄요. 줄거리는 뜻있고 재미있으나, 그림 얼거리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4347.4.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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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참 멋지다
일론 비클란드 그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이명아 옮김 / 북뱅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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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0

 


학교가 나아갈 길
― 학교 참 멋지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북뱅크 펴냄, 2014.1.25.

 


  아침에 고구마와 감자를 굽습니다. 다른 집에서는 으레 냄비 바닥에 물을 깔고 고구마와 감자를 삶지만, 우리 집에서는 물 없이 아주 작은 불로 오래도록 고구마와 감자를 굽습니다. 아주 작은 불에 오랫동안 굽는 고구마와 감자이니 다 익을 때까지 한참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언제 고구마와 감자를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부엌을 자꾸 기웃거립니다. 고구마와 감자가 익는 냄새를 맡으면서 군침을 삼킵니다.


  볶음밥을 할 적에 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널따란 냄비에 물을 깔듯이 붓고는 자작자작 익힌 뒤 풀이랑 밥을 넣은 뒤 석석 비비고 섞은 뒤 간을 맞추어도 볶음밥이 되어요. 꼭 기름볶음밥을 해야 볶음밥이 아니고 물볶음밥을 해도 볶음밥입니다.


  집 둘레에서 풀을 뜯어서 먹을 적에 흙만 물로 헹구어 먹곤 합니다. 가끔 된장이나 간장으로 무쳐서 먹기도 합니다. 시금치를 먹더라도 굳이 데쳐야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데쳐서 먹는다면, 풀을 데친 물로 밥을 짓거나 국을 끓여요.


.. 레나는 아직 여섯 살인데,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나도 학교 갈 거야.’ 레나는 날마다 이렇게 말하고는 정말 선생님이 있는 것처럼 놀아요.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안다면 훨씬 재밌게 놀 수 있을 거예요 ..  (2쪽)

 


  아이들과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를 잘 타는 법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학교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아이가 드뭅니다. 학교에서는 어디나 학교버스를 둔다든지 시내버스(나 군내버스)를 타고 다니도록 이야기합니다. 자가용이 있는 집에서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태워 주기도 할 테지요.


  그러고 보면, 학교에서는 버스를 ‘잘 타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버스에서 어떻게 있어야 한다든지, 버스를 타고 내릴 적에 어떠해야 하는가를 일러 주지 못합니다. 더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가용을 몰 적에 어떻게 자동차를 몰아야 하는가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운전면허를 따라고 얘기하기는 하더라도, 자동차를 올바르고 즐겁게 모는 법을 이야기하지 못해요.


  학교에서는 입시지도와 취업지도를 합니다. 입시와 취업을 널리 살피는 학교입니다. 그렇지만, 사랑과 꿈과 아이키우기는 하나도 안 살피는 학교입니다. 성교육이나 피임법을 이렁저렁 비디오로 보여주는 학교는 더러 있을 터이나, 사랑을 참답게 이야기하거나 꿈을 밝게 노래하거나 살림살이를 알뜰살뜰 가꾸는 길을 보여주는 학교는 아직 없다고 느껴요.


.. 교실에는 담임선생님이 계셨어요. 드디어 레나는 페터 선생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됐어요. 페터가 선생님께 말했어요. “레나가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해서 데려왔어요.” “레나야, 어서 와. 만나서 반갑구나.” ..  (12쪽)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이야기를 집에서는 얼마나 가르치거나 보여줄까요.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사랑과 꿈과 살림을 집에서는 얼마나 가르치거나 보여주나요.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 어떤 마음결과 손길일 때에 아름다운가를 집에서 얼마나 차근차근 가르치거나 보여주는가요.


  밥짓기를 학교와 집에서 얼마나 가르칠는지요. 밥짓기를 학교와 집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인이 되면 스스로 살림을 어떻게 돌볼 만할까요. 옷짓기를 하지 못하더라도 바느질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어버이가 되면 집살림을 어떻게 보살필 만할까요. 집짓기를 하지 못하더라도 집안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거나 집 얼거리를 슬기롭게 살피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아이는 나중에 이녁 보금자리를 어떻게 보듬을 만할까요.


  아침에 마당에서 풀을 뜯으며 생각합니다. 사월로 접어들어 통통하게 물이 오른 돌나물을 톡톡 끊고 부추잎을 툭툭 뜯습니다. 곧 꽃이 필 초피나무 야들야들한 잎도 탁탁 땁니다. 초피잎을 따면 손과 몸에 초피내음이 짙게 뱁니다. 싸아하고 퍼지는 냄새가 향긋합니다. 갓잎을 뜯으면 갓내음이 온몸으로 퍼지고, 쑥을 뜯으면 쑥내음이 온몸으로 번져요.


  교육은 언제나 삶으로 이루어지겠지요. 삶은 언제나 교육일 테지요. 교육은 아침저녁으로 차려서 함께 먹는 밥 한 그릇에서 태어나겠지요. 아침저녁으로 아이와 함께 먹는 밥은 늘 교육일 테지요.


.. 이제 쉬는 시간이에요. 아이들이 학교 마당으로 몰려 나가 놀았어요. 팔짝팔짝 뛰고 그물사다리에 기어올랐어요. 잉에가 레나에게 물었어요. “너도 우리랑 놀래?” “응, 좋아.” ..  (16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글하고 일론 비클란드 님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학교 참 멋지다》(북뱅크,2014)를 읽습니다. 책이름이 참 착하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착한 책이름을 한국땅 어린이와 어른은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궁금합니다. 학교를 짓건 무엇을 만들건 모두 ‘멋진’ 곳이 되도록 하려는 첫마음이었으리라고 생각해요. 글을 써서 책을 내놓는 이들도 언제나 ‘멋진’ 마음밥이 되도록 하려는 뜻이었으리라고 봐요.


  그러면 요즈음 한국에서 학교란 어린이와 어른한테 ‘멋진’ 곳일까요. 멋진 배움터이자 삶터요 놀이터이자 만남터 노릇을 하는 학교는 어디에 있을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서 멋진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가요. 어른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 멋진 삶과 사랑을 들려주는가요.


.. 마지막 수업은 읽기 시간이에요. 레나는 아직 글자를 못 읽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레나에게 읽기 책을 한 권 빌려주었어요. 먼저 비르기타가 책을 읽었어요. “할머니는 다정하시다.” 하고 소리 내 읽었어요. 다음은 페터 차례예요. 그런데 페터는 자리에 앉아서 다른 생각에 푹 빠져 있었어요.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자 페터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어요. “아이쿠, 페터야. 거기 앉아서 꿈이라도 꾸고 있니?” 선생님이 물었어요. “아뇨, 어떻게 하면 둥그런 깡통을 만들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어요.” 페터가 대답했어요. “그건 다음에 얘기해 보기로 하고, 지금은 책을 읽자꾸나.” ..  (25쪽)


  그림책에 나오는 ‘페터’는 어른 동생 ‘레나’를 데리고 학교에 갑니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인 오빠가 여섯 살 동생과 함께 학교에 갑니다. 여덟 살 어린이는 담임교사한테 동생을 소개합니다. 담임교사는 여섯 살 어린이를 따사로이 맞이합니다. ‘네가 왜 학교에 오느냐?’ 하고 따지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아요. 급식을 같이 먹고 수업도 함께 합니다. 여섯 살 레나는 오빠와 언니 사이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손을 번쩍 들고 ‘여섯 살 아이가 아는 이야기’를 대답하기도 합니다.


  어린 동생과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스스럼없습니다. 아마 모두들 집이나 마을에 ‘레나와 같은 어린 동생’이 있겠지요. 동무네 동생도 제 동생이요, 제 동생도 동무네 동생과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아낄 벗이고, 서로 어깨를 겯으면서 사랑할 이웃입니다.


  학교가 나아갈 길은 우리가 나아갈 길과 같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일구어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면, 학교도 아름다운 배움터가 될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는 터전이 될 노릇입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평화와 민주와 통일과 평등을 꿈꾸거나 바란다면, 학교도 평화와 민주와 통일과 평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살가운 터전이 될 노릇이에요. 4347.4.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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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의 소중한 보물
사이토우 에미 글, 카리노 후키코 그림, 사과나무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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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8

 


물려줄 수 있는 사랑이란
― 엄마와 나의 소중한 보물
 사이토우 에미 글
 카리노 후키코 그림
 크레용하우스 펴냄, 2000.4.30.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콩콩 뛰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훨훨 날고 싶습니다.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지내든 시골에 있는 흙집에서 살든, 아이들은 콩콩 뛰고 싶으며 훨훨 날고 싶습니다.


  지난날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콩콩 뛰었고 훨훨 날았습니다. 집에서도 뛰고 마을에서도 날았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마음껏 놀라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이 아니어도 스스로 놀고 뛰면서 웃었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콩콩 못 뛰고 훨훨 못 납니다. 집에서도 못 뛰고 학교나 학원에서도 못 납니다. 아파트에서 1분조차 뛰기 어렵고, 학교에서 목청껏 소리치거나 노래하기 힘듭니다.


.. “인호야, 장난감 상자에 필요 없는 물건이 너무 많아. 정리하면 어떨까?” “으응, 필요 없는 건 하나도 없는데…….” ..  (3쪽)

 


  가만히 돌아보면, 오늘날 어른들부터 쿵쿵 뛰지 않아요. 오늘날 어른들부터 집에서 목청껏 노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스스로 신나게 놀거나 어우러질 줄 모르는 채 집과 마을과 일터가 모두 동떨어집니다. 집과 마을과 일터가 모두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어른이다 보니, 아이들도 어느새 집이랑 마을과 일터가 모두 흩어지거나 동떨어지고 말아요.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는 어른이 없습니다. 노래책을 사거나 노래시디를 들려주거나 텔레비전을 켤 뿐입니다. 스스로 지어서 즐기는 노래를 아이한테 물려주는 어른이 없습니다.


  아이한테 일을 물려주는 어른이 없습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아이들이 물려받아 앞으로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지으며 살림을 가꾸도록 이끄는 어른이 없습니다. 아이가 직업인이나 회사원이 되도록 학교에 보내기는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삶을 짓거나 살림을 꾸리도록 돕는 어른이 없어요.


  어느 모로 보면, 오늘날 어른들부터 이녁 어버이한테서 삶을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들부터 어릴 적에 학교에만 다니고 학과공부만 하며 시험공부에 얽매여야 했을 뿐, 집안에서 삶을 누리거나 배우거나 물려받지 못했어요.

 


.. “우리 집 마당에 맨 처음 열렸던 귤이란 말야. 엄마랑 아빠랑 나랑 맛있게 나눠 먹었잖아.” “그 귤 껍질을 아직도 갖고 있었니? 새콤달콤 참 맛있었지!” ..  (15쪽)


  사이토우 에미 님 글에 카리노 후키코 님 그림이 어우러진 《엄마와 나의 소중한 보물》(크레용하우스,2000)을 읽습니다.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장난감 상자에 온갖 것을 잔뜩 그러모읍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못 버립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모든 것에 이야기를 담았거든요.


  아이 어머니는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 치우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제 것을 버리지 말라고 막으면서 아이와 말을 섞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듣습니다. 무턱대고 아이 것을 버리지 않아요. 아이는 한참 어머니하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와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던 어머니는 무엇인가 떠올립니다. 어머니 스스로 ‘아이가 처음 걷던 날 신던 신’을 버리지 않고 건사한 신 한 켤레를 꺼내요.


  아하 그래, 어머니인 나도 아이와 함께 누리던 즐거운 빛을 건사하고 싶어 ‘조그마한 신’을 안 버렸구나, 나중에 아이와 함께 지나온 삶을 돌아보려고 ‘조그마한 신’을 알뜰히 챙겼구나, 집안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아이와 나 사이에 이야기가 없겠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 “엄마, 내 발 좀 봐. 이젠 신을 수도 없는데 왜 버리지 않았어?” “그건 우리 인호가 아기였을 때 처음으로 신었던 신발이니까. 인호가 그 신발 신고 아장아장 걷던 모습을 엄마는 잊을 수가 없단다.” ..  (22쪽)


  물려줄 수 있는 사랑은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은 삶입니다. 삶은 사랑입니다. 날마다 피어나는 사랑은 언제나 이야기가 됩니다. 날마다 피어나는 사랑은 아름다운 이야기이니, 입에서 입으로 대물림합니다. 차근차근 물려주는 이야기는 즐겁게 빛나는 삶이요, 먼먼 옛날부터 오늘까지 고이 흐르는 노래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 살아가고, 어버이 또한 어릴 적에 이녁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물려줄 수 있는 삶은 사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물려줄 수 있는 한 가지는 사랑스레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물려줄 수 있는 이야기에는 사랑스러운 삶이 깃듭니다.


  이야기에서 생각이 자랍니다. 사랑에서 꿈이 자랍니다. 삶에서 빛이 자랍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라요. 아이도 이야기밥을 먹고 어른도 이야기밥을 먹습니다.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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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그림책 - 태어나서 세 돌까지 책읽는 아기
박은영 지음 / 청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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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9

 


함께 읽어 즐거운 그림책
― 시작하는 그림책
 박은영 글
 청출판 펴냄, 2013.4.11.

 


  둘레에 시집장가를 가는 이웃이나 동무가 있으면 으레 그림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둘레에 교사로 일하는 이웃이나 동무가 꽤 있었기에 이들한테는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선물해 주곤 했습니다. 책선물을 얼마나 반겼는지 알 길이 없고, ‘다 큰 어른’이라는 이한테 내미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얼마나 달가이 받아들였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이런 책을 선물할 적에 늘 한 마디를 붙였어요. 나중에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아갈 생각이 있으면 그때 가서 그림책이나 어린이책 살핀다고 애쓰지 말고,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림책을 사귀고 어린이책을 좋아해 주기를 바랐어요. 교사가 되려는 후배한테는 교사법이나 교수법이나 교과서 진도 나가는 지식만 배우지 말고, 그림책과 동화책도 바지런히 읽으면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삶’도 헤아려 주기를 바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만난 사람은 어른이 되어 교사가 되어도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아끼면서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읽히거나 들려줍니다.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만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되거나 교사가 된 이들은 교사 자리에 서더라도 아이들한테 어떤 책을 읽히면 즐거울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기관과 저런 단체에서 추천하거나 권장하는 책은 장만해서 독후감 쓰기를 시킬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마다 다 다른 넋과 숨결을 깊고 넓게 돌아보는 눈썰미가 없기 마련이에요.


.. 부모의 관심사는 오로지 독서 그 자체에만 놓여 있으니 정작 아이는 책 읽어 주기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쓸쓸한 아이가 즐거이 책을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 이유식을 만들어 먹일 때에도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입힐 때에도 아이에 대한 사랑은 바탕처럼 깔려 있지 않은가요 … 아기들을 위한 책 읽어 주기의 목적은 마땅히 대화, 소통, 교감에 있어야 합니다 ..  (4, 16, 18쪽)


  아기는 어머니가 낳습니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으레 아기와 오래도록 살가이 지냅니다. 어머니 자리에 서는 사람은 아기를 낳아 돌보는 한때를 누리기에, 아버지 자리에 서는 사람보다 그림책이나 어린이책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고 하기 일쑤입니다. 아기는 아버지가 함께 낳습니다. 아기를 함께 낳는 아버지는 으레 ‘앞으로 돈을 더 잘 벌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자리에 서면서 회사일이나 가게일을 쉬는 일이란 거의 없고, 아기하고 살가이 지낼 겨를을 좀처럼 마련하지 못합니다. 아기한테 노래를 들려주거나 아이가 차근차근 클 무렵 함께 말놀이를 하고 그림놀이를 하며 들놀이를 하거나 책놀이를 하는 일은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얼마든지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읽을 만합니다.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읽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스스로 즐겁다면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얼마든지 즐기면서 마음밭을 살찌울 노릇입니다. 그런데, 인문책이나 문학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기 어렵습니다. 인문책이나 문학책을 쓰는 어른은 ‘어른이 읽도록 눈높이를 맞출’ 뿐이에요. 아이와 함께 누리는 책이 아닙니다.


  시집장가를 가지 않든, 아이를 낳지 않든, 우리 둘레에는 늘 아이들이 있어요. 내 아이가 아니라도 이웃 아이가 있으며 동무 아이가 있습니다. 동생이나 언니나 형이나 오빠가 낳은 아이가 있어요. 설이나 한가위에 만나는 가까운 조카가 있습니다. ‘아이키우기’와는 동떨어진 채 살아간다 하더라도 언제나 아이와 만나는 어른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살아가는 스무 살 젊은이도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이부터 할매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란 무엇인지를 여느 때에도 살필 수 있으면 한결 아름답습니다. 아이 낳을 생각이 없고 시집장가 갈 마음이 아직 없는 서른 삶 젊은이도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읽으면서 ‘아이부터 할배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란 무엇인가를 여느 때에도 헤아릴 수 있으면 한결 사랑스럽습니다.


  조카한테 동화책을 읽어 주거나 동시를 함께 읊는 이모나 삼촌이란 얼마나 멋있을까요. 조카와 그림책을 함께 읽거나 그림놀이를 함께 하는 삼촌이나 고모란 얼마나 예쁠까요.


.. 앵두에게 노래를 불러 줍니다. 앵두를 눕혀 놓고 녀석의 머루알 눈에 제 눈을 맞추고, 손으로는 녀석의 말랑말랑한 몸을 주무르며 입으로는 재미난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지요. 그럴 때 앵두는 그 오물입으로 함빡함빡 웃으며 아주 즐거워 하니 … 아빠의 품에 안겨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아이는 그 이야기의 맞고 틀림을 따지는 것이 아닌, 아빠가 나와 놀아 주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온몸이 그리고 온마음이 따끈따끈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  (37, 85쪽)


  함께 읽어 즐거운 그림책입니다. 함께 들여다보며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극장에 가거나 미술관에 가야 아름다운 그림을 만나지 않습니다. 값싼 그림책 한 권을 펼치면 극장이 흐르고 미술관이 춤춥니다. 이름난 화가 몇 사람이 그리고 역사와 예술에 남는다는 작품을 표를 끊고 전시관에서 들여다보아야 문화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작은 그림책 한 권을 넘기면 아름다운 역사와 사랑스러운 예술이 따사롭게 빛납니다.


  그림책을 읽는 아이는 숲을 읽습니다. 아파트에서도 숲을 읽고 시골에서도 숲을 읽습니다. 그림책을 즐기는 아이는 하늘숨을 마십니다. 서울에서도 하늘숨을 마시고 고흥에서도 하늘숨을 마십니다. 그림책과 노는 아이는 들놀이로 신납니다. 복닥거리는 부산 산복도로에서도 놀고, 한갓진 신안섬 시골마을에서도 놀아요.


  예부터 아이들은 종이책을 따로 만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어버이 일을 거들거나 동생을 돌보는 틈틈이 동구 밖에서 놀고 숲정이에서 놀았습니다. 아이들은 물을 긷고 빨래를 거들면서 흙마당에 작대기로 그림을 그리며 놀았습니다. 아이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지게를 짊어지고 나뭇짐을 나르면서 꽃놀이를 하고 풀내음을 맡았어요.


  예부터 아이들은 학교를 따로 다니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할매와 할배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받아먹으면서 삶을 배웠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와 동생과 언니를 돌보는 매무새를 살피면서 사랑을 배웠어요. 바느질과 절구질과 방아질을 늘 마주하고 키질과 조리질을 거들면서 살림을 배웠어요.


.. 앵두와 함께 그림책을 본다는 것은 글과 그림을 읽는 것을 넘어서 확장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뜻을 지닙니다 … 텔레비전의 해악은 단지 여러모로 비교육적인 프로그램에 따른 부정적 영향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 내용의 질이 어떠하느냐와는 별개로 텔레비전 시청으로 인해 그맘때의 아이들이 충분히 즐겨야 할 지극히 아이다운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서랍을 뒤지고, 소꿉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블록을 가지고 놀아야 할 아이가 텔레비전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습니다. 집안이, 아니 온 우주가 조용합니다 ..  (95, 120쪽)


  박은영 님이 쓴 《시작하는 그림책》(청출판,2013)을 읽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으며 함께 누린 ‘그림책 놀이’ 이야기를 책 한 권으로 그러모읍니다. 둘째 아이와 주고받은 삶과 사랑과 살림이 어떤 노래인가 하고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아이와 왜 그림책을 읽을까요? 아이한테 왜 그림책을 읽힐까요? 아이하고 함께 즐길 그림책을 어떤 눈썰미로 고를까요? 이웃한테 선물할 만한 그림책을 어떤 마음결로 살필까요?


..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해 줘야 하는 놀이라면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될는지 상당히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거든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제가 큰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고 그림책 놀이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제 적성과도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 사와 내밀한 만남을 가지지 못한 아이가, 시와 그 시가 가진 다양한 미덕을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  (191, 213쪽)


  《시작하는 그림책》을 읽는대서 그림책을 모두 잘 알 수는 없습니다. 《시작하는 그림책》은 책이름 그대로 ‘그림책으로 나아가는 삶놀이를 여는 첫걸음’입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책으로 놀고 노래하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살포시 건드립니다.


  언제나 놀이가 먼저인걸요. 아이한테 학습이나 교육을 시킬 수 없어요. 언제나 놀이가 즐거운걸요. 아이한테 학습이나 교육이 즐거울 수 없어요.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할 적에도 즐거울 노릇이에요. 아이들을 씻기거나 함께 씻을 적에도 즐겁게 웃으면서 노래할 노릇이에요. 아이 손을 맞잡고 저자마실을 다니거나 이웃마실을 갈 적에도 까르르 노래하고 춤출 노릇이에요.


  책마다 온누리 넋이 감돕니다. 책에는 지구별 숨결이 깃듭니다. 그림책 한 권을 손에 쥐면서 파르르 떠는 기쁜 설렘은 아이한테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동화책과 동시집을 펼치면서 빙그레 짓는 웃음은 아이 마음자리에 사랑씨앗으로 한 톨 두 톨 스밉니다.


  어떤 그림책을 골라야 하는가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 그림책도 살피고 저 그림책도 읽어요. 아이와 함께 책방마실을 해요. 아이가 스스로 눈여겨보는 그림을 돌아보고, 어버이가 스스로 손을 뻗으며 아낄 만한 그림을 둘러보아요. ‘그림책 추천 도서목록’으로도 두툼한 책 한 권이 될 만해요. 그러니, 추천 도서목록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마셔요. 전문가 서평이나 비평은 즐겁게 읽고 내려놓아요.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보금자리를 누리면서 다 다른 사랑을 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아요. 우리가 우리 아이한테 스스로 물려줄 사랑을 어떤 그림책과 함께 빛낼까를 생각해요. 그러면, 《시작하는 그림책》에서 속삭이는 이야기를 한껏 신나게 받아먹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이한테는 놀이가 삶입니다. 놀이가 삶인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일을 놀이처럼 기쁘게 맞이해서 삶으로 곱게 삭힙니다. 아이는 어떤 놀이이든 스스로 빚을 줄 압니다. 아이를 믿고 보살피면서, 어버이는 어떤 삶을 어떤 놀이로 빛내는가 곰곰이 짚어요. 아이도 어른도 삶은 놀이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삶은 사랑입니다. 그림책은 늘 우리한테 삶과 사랑을 속삭여요. 그림책은 언제나 우리한테 꿈과 빛을 노래해요. 4347.4.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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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1 1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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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2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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