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곡예사 분도그림우화 33
바바라 쿠니 / 분도출판사 / 198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7



누가 누구를 섬기는가

― 꼬마 곡예사

 바바라 쿠니 글·그림

 김구인 옮김

 분도출판사 펴냄, 1987.4.1.



  우리 집 큰아이는 여섯 살까지 자전거수레에 앉았습니다. 요즈음은 샛자전거에 탑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올해에 네 살이니 앞으로 두 해 더 자전거수레에 앉으리라 생각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곧 네발자전거로 싱싱 달릴 수 있을 텐데, 여덟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면 두발자전거로 달리리라 생각합니다. 열 살이 되어서야 두발자전거를 달릴는지 모릅니다. 이때에는 샛자전거를 동생한테 물려주겠지요.


  아이는 아이 몸에 맞게 자전거를 탑니다. 어른은 어른 몸에 맞게 자전거를 탑니다. 아이더러 어른 자전거를 타라 할 수 없고, 어른한테 아이 자전거를 타라 할 수 없습니다. 아이 밥그릇에 어른이 먹는 부피로 밥을 떠 줄 수 없고, 어른 밥그릇에 아이가 먹는 부피로 밥을 떠 주면 배고프겠지요.



.. 바나비는 공 여러 개로 재주를 부리고, 공중제비를 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렇게 해서 먹고살았습니다. 높이 뛰어오르고, 공중에서 공놀이를 하고 물건으로 균형을 잡는 것, 이런 것들은 잘 알았지만 그밖의 것은 거의 몰랐습니다. 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것밖에는 몰랐습니다. 아버지도 곡예사이셨으니까요 ..  (8쪽)





  아이는 아이답게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는 어른스럽게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어른스러운 그림을 바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글을 씁니다. 아이는 어른스럽게 글을 또박또박 쓰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한테 어른스러운 글씨를 바랄 수 없습니다.


  어른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 ‘천재’일는지 모르지만, 이런 아이는 아이도 어른도 천재도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는 왜 어른스럽게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아이는 왜 천재 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일곱 살 아이가 바둑 천재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여덟 살 아이가 골프 박사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열 살 아이가 피아노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만, 아이는 아이답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춤출 적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어른도 어떤 천재나 박사나 교수 같은 이름보다는 그저 어른으로서 삶을 즐기고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잔치를 나눌 적에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 몸이 꽁꽁 어는 듯한 어느 날, 의지할 곳 없는 바나비는 깔개 위에 서서 인사를 했습니다.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구경꾼이라고는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  (24쪽)



  사월에 사월꽃이 핍니다. 삼월에는 삼월꽃이 피었습니다. 오월에는 오월꽃이 핍니다. 꽃은 봄 가운데 한 달만 피지 않습니다. 꽃은 봄에만 피지 않습니다. 여름꽃과 가을꽃이 있고, 겨울꽃이 있습니다. 꽃은 철마다 다른 빛이며, 달마다 다른 내음입니다.


  마당에 서서 후박꽃을 바라봅니다. 평상에 올라서서 후박꽃하고 키높이에 섭니다. 코를 대고 얼굴을 대면서 후박내음을 듬뿍 들이켭니다. 자그마한 꽃망울마다 벌나비가 모여들 테고, 벌나비는 꽃가루받이를 거들 테지요. 꽃가루받이를 마친 꽃송이는 천천히 지면서 빨갛고 예쁜 열매를 맺겠지요.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 가지가 쏴아쏴아 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두 팔을 벌려 나무노래를 듣습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나뭇잎과 꽃잎이 함께 흔들립니다. 나뭇잎과 꽃잎이 흔들리면서 후박내음은 더 짙게 퍼지고, 겨우내 푸르게 매달렸던 잎은 노랗게 물든 채 톡톡 소리를 내며 마당으로 떨어집니다.





.. 어느 날 바나비는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거룩하신 마리아님, 제가 어떻게 마리아님을 섬길 수 있을까요?” 그러고는 절망하여 흐느꼈습니다. 바나비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었기를 바랐습니다.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을 때, 바나비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깡총 뛰었습니다. “그걸 할까? 그래. 할 수 있어. 꼭 할 테야. 내가 배운 것을 할 테야. 그래서 내 나름으로 성모님의 작은 성당에서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섬길 테야. 다른 수사님들은 성가와 기도로 그분들을 공경하시겠지. 난 재주넘기로 그분들을 예배할 테야.” ..  (32쪽)



  봄에 노랗게 물든 채 떨어지는 후박잎을 줍습니다. 밥상에 올리고 아이들을 부릅니다. 말없이 크레파스와 종이를 꺼냅니다. 후박잎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립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종이를 달라 하면서 함께 후박잎을 그립니다.


  누가 그림을 그리라 시키지 않았습니다. 후박잎을 그리기에 어디 공모전에 내지 않습니다. 우리 집을 포근하게 감싸며 고운 냄새를 나누어 주는 후박나무를 떠올리며 보드라운 잎사귀를 쓰다듬으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책 《꼬마 곡예사》(분도출판사,1987)를 펼칩니다. 프랑스에서 먼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바라 쿠니 님이 손질해서 새로운 그림책으로 엮었습니다. 바바라 쿠니 님은 ‘꼬마 곡예사’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여겨 이녁 아이한테 ‘바나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그러니까, ‘꼬마 곡예사’는 바바라 쿠니 아들한테 새롭게 선물하는 책이요 이야기이며 그림이고 이름으로 거듭난 셈입니다.





.. 예수 아기님의 생일인 이날 밤에 바나비는 일찍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더 기술적으로 재주를 부렸습니다. 재주 부리기가 끝나자, 바나비는 너무나 지쳐서 그만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녹초가 된 채 누워 있었습니다. 아빠스님과 호기심 많은 수사님이 바나비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성상을 모신 벽감에서 한 부인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일찍이 어느 누가 본 부인보다 더 영광스런 모습에 보배스런 관을 쓴 아름다운 부인이었습니다 ..  (41∼42쪽)



  옛이야기 ‘꼬마 곡예사’에 나오는 아이 ‘바나비’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습니다. 아버지도 여의었어요. 어머니를 여읜 뒤 아버지와 곡예사 노릇을 하며 살았으나, 아버지마저 떠나면서 혼자 곡예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을까지는 이럭저럭 벌이가 되어 밥을 먹을 수 있었으나, 겨울이 찾아오니 곡예를 보려는 사람이 없어 굶고 추운 하루를 보내야 했다고 해요. 이런 바나비를 길에서 문득 마주친 성당 수사님이 바나비를 거두어 성당에서 지내도록 해 줍니다.


  바나비는 성당에서 배고픔과 추위를 잊은 채 지냅니다. 처음에는 고맙고 즐거웠으나 차츰 시무룩하고 슬픕니다. 왜냐하면, 성당에 있는 어른들은 예수님나신날을 맞이하여 여러 가지 선물을 마련합니다. 어떤 어른은 멋진 글씨로 성경을 새로 옮기고, 어떤 어른은 멋진 그림을 그리며, 어떤 어른은 멋진 노래를 짓습니다. 어린 바나비는 어릴 적부터 배운 ‘재주’가 곡예 한 가지뿐입니다. 다들 무언가 멋진 선물을 바친다는 생각에 들뜨고 기쁘며 설레지만, 바나비 혼자 외롭고 서글프며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다 바나비는 다짐을 해요. 바나비 스스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길을 걷자고 다짐합니다. 성모님한테 ‘바나비가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곡예’를 바치자고 다짐해요.


  돈이 있는 어른이라면 돈을 바치겠지요. 글재주 있는 어른이라면 아름다운 글을 바치겠지요. 그러면, 돈이 없거나 글재주가 없는 어른은? 몸이 아파 몸져누운 채 살아온 어른은? 아이들은? 늙은 할매와 할배는? 온삶을 바쳐 흙을 일군 사람은? 건물 청소 일꾼은? 버스나 택시를 모는 일꾼은? 공장 일꾼은? 구멍가게 일꾼이나 대형할인마트 일꾼은? 입시지옥에 허덕이는 푸름이는?




.. 마리아님은 하얀 손수건을 꺼내어 당신의 곡예사 얼굴에 부채질을 해 주셨습니다 ..  (42쪽)



  성모 마리아님은 어떤 숨결일까요. 바나비라는 아이는 어떤 숨결일까요. 그림책 《꼬마 곡예사》를 빚은 바바라 쿠니 님은 어떤 숨결일까요. 이 그림책을 읽으며 눈물젖거나 웃음짓는 우리들은 어떤 숨결일까요. 젖을 먹는 아기와 개구지게 뛰노는 아이들은 어떤 숨결일까요.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는 어떤 숨결일까요. 개구리 한 마리와 제비 한 마리는 어떤 숨결일까요.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목숨은 저마다 어떤 숨결일까요.


  누가 누구를 섬기는지 헤아려 봅니다. 누구 누구한테서 섬김을 받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름다운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곱씹어 봅니다. 사랑스러운 하루는 누가 어떻게 가꾸는지 되새겨 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다 다르면서 다 같은 빛이 환하게 있으리라 믿습니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 번째 질문 - 2015 오픈키드 좋은어린이책 목록 추천도서 바람그림책 19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6



무엇이 궁금한가요

― 첫 번째 질문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

 천개의바람 펴냄, 2014.2.22.



  아침밥을 먹던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이거 뭐야? 까만 이거?” “간장.” “간장? 내 머리도 까만데.” 종지에 담은 까만 물이 간장이라고 그동안 늘 말했지만 큰아이한테는 늘 새로울 수 있습니다. 간장 말고 다른 까만 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까만 간장이 무엇인지 물으면서 “간장이구나.”라든지 “간장이라고 하는구나.”처럼 말했다면, 이제는 아이가 제 머리카락 빛깔과 같은 까만 물이라고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다닐 적에 큰아이가 곧잘 ‘수레’ 이름을 묻곤 했습니다. “아버지, 여기 뒤에 붙인 거 뭐야?” 하고. “수레.” “수레? 으응, 수레.” 이제 큰아이가 일곱 살이니, 가끔 아이가 묻는 말에 곧바로 안 알려주기도 합니다. “여기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음, 이름이 뭘까?” “글쎄.” “꽃을 보고 뭐 생각나지 않아? 꽃을 바라보는 느낌대로 벼리가 스스로 이름을 붙이면 돼. 온누리에 있는 모든 꽃은 사람들이 그 꽃을 바라보면서 받은 느낌으로 붙였거든.”


  하늘에 뜬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새털구름이라느니 뭉게구름이라느니 매지구름이라느니 먹구름이라느니 실구름이라느니 하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아이한테 “우와 구름 예쁘다. 저 구름은 어떤 구름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하고 묻기도 합니다. 구름이 봉우리에 걸릴 적에 “구름이 봉우리에서 쉬나?” 하고 묻기도 합니다.


  저녁이나 밤에 달을 보면서 자전거를 달리거나 자동차를 얻어 타서 달리면, 달이 마치 따라오는 듯합니다. 큰아이는 달을 보면서 “달이 우리를 따라와요!” 하고 소리칩니다. 동생은 누나 말을 받아 “달이 우리를 따라와요!” 하고 소리칩니다. 큰아이는 “우리가 달을 이겼다!”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달리던 길을 꺾으면 달이 뒤에 처지는 듯 보이거든요.





..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하늘은 멀었나요, 가까웠나요 ..  (3쪽)



  맛있게 먹자고 생각하며 밥을 차립니다. 맛있게 먹습니다. 맛있게 먹으니 이로 씹으면서 즐겁습니다. 즐겁게 씹어서 삼키니 뱃속에서 반깁니다. 뱃속에서 반기니 온몸에 새 기운이 돕니다. 온몸에 새 기운이 도니 오늘 하루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풀을 먹으면 풀내음 나는 몸이 되면서 풀똥을 누고 풀오줌을 눕니다. 빵을 먹으면 빵내음 나는 몸이 되면서 빵똥을 누고 빵오줌을 누어요. 고기를 먹은 날에는 고기내음 나는 몸이 되면서 고기똥을 누고 고기오줌을 누겠지요.





.. 좋은 하루란 어떤 하루인가요? 오늘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  (6쪽)



  먼먼 옛날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습니다. 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말이 고울 적에 아이가 어버이한테 들려주는 말이 곱습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이 고울 적에 아이가 이웃이나 동무하고 놀면서 사랑스레 웃고 뛰며 달립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하는 까닭은, 말을 하는 나 스스로 고운 말로 고운 넋이 되고 고운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고운 빛이 환하면, 내 둘레에 있는 사람들도 고운 기운을 받아서 저절로 고운 웃음과 고운 몸짓이 될 수 있어요.


  가는 말이 거칠거나 밉다면? 거칠거나 미운 말을 듣고도 고운 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참말 마음이 넓고 깊은 이웃입니다. 거친 말을 들었대서 거친 말을 맞받으면 거친 말은 더욱 커집니다. 거친 말을 들었어도 살살 다독이거나 달래면서 보드랍게 보내면, 말빛은 새삼스레 따스하면서 아름답습니다.




.. “아름다워!”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꽃 일곱 가지를 꼽을 수 있나요? 나에게 ‘우리’는 누구인가요 ..  (15쪽)



  오사다 히로시 님이 쓴 글에 이세 히데코 님이 그림을 그린 《첫 번째 질문》(천개의바람,2014)을 읽습니다. ‘첫 물음’을 묻는 그림책입니다. 아이한테 묻고 싶은 첫 이야기를 밝히는 그림책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 묻는 첫 궁금함을 살피는 그림책입니다.



.. 나에게,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  (26쪽)





  우리는 아이와 함께 어떤 이야기를 빚을 때에 아름다울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웃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나눌 때에 사랑스러울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동무와 함께 어떤 이야기를 속삭일 때에 즐거울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한테 무엇이 궁금한가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한테 무엇이 궁금한가요? 꽃 한 송이를 마주하면서 무엇이 궁금한가요? 숲에 깃들어 나무내음을 맡는 동안 무엇이 궁금한가요?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무엇이 궁금한가요? 무럭무럭 자라며 뛰노는 아이를 바라보며 무엇이 궁금한가요? 어느덧 어버이 키만큼 자란 아이와 마주하면서 무엇이 궁금한가요?


  궁금한 이야기란 저마다 스스로 살아가고 싶은 모습입니다. 궁금해서 묻는 이야기란 저마다 스스로 사랑하고 싶은 길입니다. 그림책 《첫 번째 질문》을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도란도란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을 찾아 햇볕처럼 포근하며 바람처럼 싱그럽고 빗물처럼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서로 묻고 알려주면서 삶꽃을 피울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4347.4.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할아버지의 벚꽃 산 쪽빛그림책 4
마쓰나리 마리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5

 


나무와 이야기하는 아이
― 할아버지의 벚꽃 산
 마쓰나리 마리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2008.3.21.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키우기까지 오랜 나날이 걸립니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가 우람하게 서면, 오래오래 수많은 사람들한테 열매를 베풀고 푸른 숨결을 베풀며 싱그러운 그늘을 베풉니다. 나무 한 그루는 수많은 새와 벌레와 풀짐승한테도 열매와 숨결과 그늘을 나누어 줍니다. 사람한테는 집을 지을 기둥을 내어주고, 짐승과 풀벌레와 새한테는 포근한 보금자리를 내어주지요.


  나무 한 그루에서 씨앗이 떨어져 커다란 나무가 되기까지 오랜 나날이 걸립니다. 그렇지만,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두 그루가 자라며 세 그루 네 그루 빽빽하게 숲을 이루면, 오래오래 수많은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마을을 베풀어요. 사람들은 숲 가까이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습니다. 새와 벌레와 풀짐승도 숲 품에 안겨 사랑스레 살아갑니다.


..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몰래 벚나무를 심었어요. 큼직큼직 자란 벚나무 가지는 이제 하늘까지 닿을 듯해요 ..  (4쪽)


  기계를 써서 도시를 짓습니다. 찻길을 닦고 지하상가를 마련합니다. 공공기관과 회사가 섭니다. 학교가 들어서고 병원이나 극장이나 경기장이 올라섭니다. 문화가 웅성거리고 문명이 복닥거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얼크러지고 설크러지면서 사회를 이룹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룬 도시에는 사람만 삽니다. 사람 아닌 목숨은 도시에 깃들지 못합니다. 들고양이도 들개도 도시에서 살 수 없습니다. 풀벌레도 멧새도 도시에서 살 수 없습니다. 고기가 되는 돼지와 소와 닭일 뿐, 숲바람을 마시면서 숲내음을 나누는 짐승은 도시에서 살아갈 수 없어요.


  도시가 커지면서 시골은 시골다움을 잃습니다. 도시에서는 쌀도 밀도 얻지 못해요. 도시에서는 옥수수도 수박도 얻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는 딸기도 능금도 바나나도 얻지 못해요. 시골은 도시에 자원과 인력과 곡식을 내주는 식민지가 되어야 합니다. 시골에는 문화도 문명도 들어서지 않습니다. 시골에는 대규모 농장과 비닐집이 서야 합니다. 시골에는 발전소와 공장에 들어서야 합니다. 시골에는 관광단지와 호텔과 식당이 있어야 합니다. 시골 사이에는 고속도로가 놓여야 하고, 시골마다 송전탑을 박아 도시로 이어야 합니다.


  도시가 하나둘 생기면서 시골에서도 짐승이 짐승답게 살지 못합니다. 시골에서도 노루와 고라니가 살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도 수달과 너구리가 살기 벅찹니다. 이리도 늑대도 여우도 씨가 말랐어요. 범과 곰은 자취를 감추었어요. 꾀꼬리가 한국을 찾아올 수 있을까요. 제비는 앞으로 얼마나 한국에서 둥지를 틀 만할까요.

 

 

 

 
.. 길을 걷다가 할아버지랑 민들레를 뜯어 만든 풀피리. 질경이 끊기 놀이. 조릿대 배. 염주는 엄마의 목걸이 ..  (10쪽)


  마쓰나리 마리코 님이 빚은 그림책 《할아버지의 벚꽃 산》(청어람미디어,2008)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기쁜 일’이 있을 적에 벚나무를 심었다고 해요. 숲에 조용히 심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벚나무를 심으면서 스스로 꽃을 볼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 벚나무가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할아버지 마음속에 깃든 기쁜 기운이 나무한테 퍼지기를 바랍니다.


  할아버지는 젊은 날부터 나무를 심었고,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숲마실을 하면서 나무를 비롯해 온갖 이웃과 동무를 사귑니다. 숲놀이를 즐기고, 숲바람을 마십니다. 숲빛을 맞아들이고 숲노래를 부릅니다.


  할아버지와 아이는 숲에서 서로 동무가 됩니다.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숲을 물려줍니다. 아니, 할아버지는 아이한테 ‘숲을 사랑하는 넋’과 ‘숲을 아끼는 손길’과 ‘숲을 노래하는 마음씨’를 물려주어요.

 

 

 


.. “할아버지, 벚꽃 보러 가.” 할아버지는 잠이 든 채 대답이 없어요. 혼자서 산길을 걸어 벚꽃 산에 갔어요. “우리 할아버지를 건강하게 해 주세요.” 벚나무에 빌었어요 ..  (16쪽)


  벚나무는 한 그루씩 늘어 어느새 ‘벚꽃 산’이 됩니다.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가 봄마다 꽃빛이 맑게 눈부시니, 마을에서는 봄마다 꽃잔치를 엽니다. 마을사람은 숲에 벚나무가 꽃잔치를 이루는 까닭을 알까요. 아이는 사람들한테 숲에 벚꽃이 흐드러지는 까닭을 이야기할까요.


  아마 아이는 할아버지처럼 조용히 숲에 벚나무를 한 그루씩 심겠지요. 기쁜 일이 있을 적마다 한 그루씩 심겠지요. 아이가 심은 나무는 무럭무럭 자랄 테고, 무럭무럭 자란 나무에서 씨앗이 떨어져 새롭게 어린나무가 자랄 테지요.


  할아버지가 심은 벚나무에서 맺은 열매는 숲짐승과 새한테 먹이가 됩니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는 숲짐승과 새한테 보금자리가 됩니다.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흙이 살아납니다. 바람이 맑게 불고, 사람들은 싱그러운 바람을 즐겁게 마십니다.


  아이는 곧 할아버지처럼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리라 생각해요. 아이는 앞으로 할아버지처럼 나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숲지기가 되고, 숲사람이 되면서, 숲아이를 낳겠지요. 4347.4.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글리의 형제들 - 정글북 첫 번째 이야기 마루벌의 새로운 동화 17
루드야드 키플링 지음, 크리스토퍼 워멀 그림, 노은정 옮김 / 마루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4

 


숲말을 잊은 채 살아가면
― 모글리의 형제들
 루디야드 키플링 글
 크리스토퍼 워멜 그림
 노은정 옮김
 마루벌 펴냄, 2007.5.19.

 


  길을 가다가 벌한테 쏘였습니다. 나도 쏘이고 일곱 살 아이도 쏘였습니다. 유채꽃 노란물결 그득한 논자락 옆을 걷는데, 갑자기 벌이 내 머리카락에 걸려 파닥거리면서 콕 하고 침을 쏩니다. 일곱 살 큰아이 머리카락 사이에도 벌이 걸립니다. 큰아이더러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 이르고는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에 따라 머리카락을 헤집어 벌을 겨우 꺼내어 날립니다. 그런데 이 벌이 다시 내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옵니다. 얘야, 어쩌다 네가 내 머리카락에 걸린 듯한데 다른 데로 가야지, 머리카락 사이는 거미줄과 같아서 이런 데에 끼면 네가 괴롭단다.


  한 마리를 빼내니 다른 벌이 내 머리 둘레로 윙윙거리면서 또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머리통을 제법 세게 쿡 쏩니다. 야야, 참 아프구나, 네가 말벌이 아닌 꿀벌이니 그럭저럭 견딜 만하지만, 네가 침을 쏘며 내 뒷덜미에 침이 박힌 줄 느끼겠네. 너희는 너희 침을 이렇게 쏘면 어찌 살려고 그러니. 어쩌면 너희가 부러 침을 쏘아서 내 몸 어딘가 아픈 데를 고쳐 줄 마음이니.


.. 달빛은 늑대 식구가 오순도순 사는 굴의 저 안쪽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 “이 밤중에, 알몸으로 쫄쫄 굶은 채 혼자서 우리한테 온 아이예요. 게다가 우리를 겁내지도 않잖아요!” ..  (8, 21쪽)

 


  시골에서 경관사업을 한다면서 유채씨를 논마다 잔뜩 뿌립니다. 봄이 되어 유채씨는 싹을 트고 이곳저곳 노랗게 꽃물결이 춤춥니다. 지난해까지는 유채꽃 사이에 벌집을 놓은 사람이 없었는데, 올해에는 누군가 벌통을 되게 많이 갖다 놓았습니다. 게다가 마을 어귀 버스 타는 곳 바로 옆에 있는 논에 벌통을 놓았어요.


  이 벌은 우리 집까지 드나들곤 합니다. 마을 이웃집에도 이 벌이 드나들 테지요. 우리 마을에서 벌통을 놓았을까요. 다른 마을에서 벌통을 놓았을까요. 유채꿀을 얻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왜 마을사람이 뻔히 지나다니는 길목에 벌통을 놓았을까요.


  곁님이 큰아이 머리에 박힌 침을 둘 뽑고 벌을 쫓아냅니다. 처음에는 조금 부었으나 붓기가 차츰 가라앉습니다. 하루가 지나니 아픈 자리는 많이 가라앉지만 그래도 따끔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두서너 방을 쏘였으니 이만큼이지, 벌떼가 달려들어 쏘면 어마어마하겠다고 느낍니다. 벌떼가 달려들면 그야말로 어디 냇물을 찾아서 뛰어들든지, 도랑물에 고개를 처박든지 할 노릇이네 하고 느낍니다. 조그마한 벌이지만, 벌 한 마리가 쏘는 침이 아프고, 벌떼가 달려들면 어떤 사람도 꼼짝할 수 없겠구나 싶습니다.


.. 이런 규칙이 생겨난 것은, 인간을 죽이면 코끼리를 타고서 총을 쏘아대는 백인들과 징을 든 갈색 피부의 사람들 수백 명이 횃불과 불화살을 갖고 정글로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글의 모든 것이 고통을 받고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 아빠 늑대는 모글리에게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과 정글에 있는 것들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알려주었습니다 … 모글리에게는 풀잎의 바스락거림, 훈훈한 밤공기의 숨결,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올빼미의 울음소리, 나무에 내려앉은 박쥐 발톱에 나뭇가지가 긁히는 소리, 웅덩이에서 튀어오르는 갖가지 작은 물고기들의 텀벙거리는 소리도 모두 의미 있는 것이었어요 ..  (13, 31쪽)

 

 


  지구별에는 온갖 목숨이 얼크러져 살아갑니다. 사람은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뭇목숨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구별에서 사람이 ‘별임자’인 듯 여깁니다. 어쩌면 사람은 ‘별임자’일 수 있습니다. 지구별에는 따로 임자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별임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별임자는 어떤 몫을 맡을 때에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울까요. 사람은 지구에서 별임자다운 삶을 가꾸거나 꾸린다고 할 만한가요. 사람은 지구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림을 꾸리거나 일구는가요.


  사람은 사람끼리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이웃인 사람을 어느 만큼 아끼거나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사람끼리 오순도순 아기자기한 삶을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꿈을 빚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지구별에 평화를 내리누르는 전쟁이 자꾸 불거지거든요. 지구별에 사랑을 가로막는 푸대접과 따돌림과 괴롭힘이 자꾸 춤추거든요.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이 끔찍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디나 경쟁이요 피튀기는 싸움터와 같습니다. 갖가지 위계질서와 신분질서가 득실거립니다. 사람은 스스로 사람다움을 잃기도 하고 잊기도 하며 저버리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아름다운 목숨’이나 ‘따사로운 숨결’을 잃거나 잊거나 저버리곤 합니다.


.. “난 정글을 본 적이 없었어. 그저 인간들이 쇠창살 너머로 던져 주는 고기를 먹고 살았지. 그런데 어느 날 밤, 나는 내가 흑표범 바기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노리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앞발을 들어 엉성한 자물통을 단번에 부수고 뛰쳐나왔어.” ..  (40쪽)

 


  루디야드 키플링 님이 쓴 글에 크리스토퍼 워멜 님이 그림을 넣은 《모글리의 형제들》(마루벌,2007)을 읽습니다. ‘정글북 첫 번째 이야기’라는 이름이 붙으며 나온 그림책인데, 2007년에 첫째 권이 나왔으나 2014년이 되도록 둘째 권이 나오지 못합니다. 키플링 님이 선보인 이야기에 새빛을 드리운 워멜 님 그림이지 싶은데, 한국에서는 이 같은 그림이 사랑받기 어렵기에 둘째 권이 못 나오는가 싶기도 합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어느새 숲도 들도 자취를 감출 뿐 아니라, 냇물도 바닷물도 제 빛과 숨결을 잃으니 이러한 책이 사랑받기 어렵지 싶기도 해요.


  아이들은 도시에서 들빛을 보지 못해요. 아이들은 시골에서도 숲빛을 누리지 못해요. 요즈음 아이들은 풀을 베거나 나무를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불을 때거나 밥을 짓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소를 몰지 않고 닭을 치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나무를 타거나 흙을 만지지 않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별을 보거나 햇볕에 까맣게 타지 않습니다.


.. “정글이 내게 문을 닫아 버렸으니 나는 너희의 말과 우정을 잊어야겠지. 하지만 나는 너희가 그리울 거야.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 나는 진짜 너희의 형제였어. 너희는 나를 배신했지만, 나는 어른이 되더라도 인간의 편에 서서 너희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  (56쪽)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숲말’을 할 줄 모릅니다. 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일찍부터 영어를 할 줄 알고 한자를 읽을 줄 압니다. 들이 베푸는 노래를 듣지 못한 채 크는 아이들은 ‘들놀이’를 할 줄 모릅니다. 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게임을 할 줄 알고 손전화를 솜씨 잇게 다를 수 있습니다. 냇물과 바닷물을 벗삼아 놀지 않는 아이들은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풀을 읽지 못합니다. 다만, 오늘날 아이들은 상표와 캐릭터와 연예인과 스포츠를 훤히 뀁니다.


  숲말을 잊은 채 살아가면 숲을 모릅니다. 숲을 모르는 사람은 숲을 쉬 망가뜨립니다. 밀양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 송전탑을 때려박기만 하는 사람은 숲을 모를 뿐 아니라, 숲을 사랑하지 않아요. 숲을 모르면서 안 사랑하니, 숲을 가꾸지 않아요. 숲에서 누릴 푸른 바람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꿈을 꾸면 즐거울까요. 어른들은 앞으로 어떤 사랑을 속삭이면 즐거울까요. 아름답게 살아갈 지구별은 누가 어떻게 가꿀 수 있을까요. 4347.4.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들의 아이 미나
에릭 바튀 지음, 이수련 옮김 / 달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73

 


맑은 노래가 흐르는 밤
― 새들의 아이 미나
 에릭 바튀 글·그림
 이수련 옮김
 달리 펴냄, 2003.12.5.

 


  하얗게 핀 딸기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서 맑은 노랫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아, 새가 한 마리 있구나. 사람이 있으니 날아갈 법하지만,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부릅니다. 나무 옆 풀밭에서 마른 가지를 밟아 두둑두둑 소리가 나지만, 새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노래를 부릅니다.


  딸기꽃하고 새소리가 곱게 어우러지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들딸기는 자동차 오가는 길가 아닌 한길에서 떨어진 풀숲에서 넝쿨을 뻗어 꽃을 피웁니다. 멧새는 자동차 다니는 길에서 사뭇 떨어진 풀밭에서 자라는 나무에 앉아 노래를 부릅니다. 바람은 딸기꽃 내음을 퍼뜨립니다. 바람은 멧새 노랫소리를 실어 나릅니다.


.. 긴부리 영감은 동전 몇 푼을 받고 사람들에게 새들을 보여줍니다. 지휘봉을 휘두르며 새들에게 노래를 시켜요 ..  (4쪽)

 


  저녁이 되어 아이들을 재우려고 쉬를 누입니다. 두 아이 오줌으로 꽉 찬 오줌그릇을 들고 뒤꼍으로 나옵니다. 어느 나무 둘레로 뿌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감나무 둘레에 뿌립니다. 그리 멀지 않은 논에서 개구리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요즈막에 노래하는 개구리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일 테지요. 알을 낳아 올챙이가 깨기를 기다리는 개구리이겠지요.


  지난주에 신안에 살짝 다녀왔습니다.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은 사월 첫 주에도 제비가 날아다닙니다. 제비가 벌써 찾아오나 하고 놀랍니다. 그러나, 일찌감치 제비가 찾아오는 시골이 있고, 늦게라도 제비가 찾아오지 않는 시골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비가 도무지 찾아갈 수 없는 도시가 있을 테며, 용케 도시에까지 찾아가는 제비가 있어요.


  그나저나, 제비가 꽤 많이 찾아갈 듯한 신안인데, 곳곳에 ‘헐린 제비집 자국’이 있습니다. 신안 분들은 제비를 썩 달가이 안 여기는 듯해요. 헐고 다시 헐고 또 허는가 싶어요. 그래도 제비는 씩씩하게 집을 다시 짓고 또 지으며 새로 짓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집을 허물어 괴롭히고 들볶아도 씩씩하게 집짓기를 잇습니다.


.. 긴부리 영감과 궁중 대신은 밤새도록 으리으리한 성과 황금마차를 꿈꾸었어요. 그러는 동안 미나는 울고 있었어요. 긴부리 영감이 새장 속에 미나를 가두고 마른 빵 한 조각과 물만 조금 넣어 주었거든요 ..  (10쪽)

 

 


  우리 집 섬돌에 아침마다 지푸라기가 있습니다. 날마다 쓸고 치워도 아침마다 섬돌에 새 지푸라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지푸라기가 왜 있나 아리송했는데, 이내 깨닫습니다. 우리 집 처마에 아직 제비가 찾아오지는 않았으나, 참새와 딱새가 제비집에 슬그머니 들어와서 지내요. 참새와 딱새가 지푸라기를 물어다 나르며 조금씩 떨어뜨리지 싶습니다. 가만히 올려다보니 마루문 위쪽 바깥 등불에 허술하지만 조그마한 새집이 새로 생기려 하더군요.


  너희한테는 그곳이 새로운 집으로 알맞다 싶으니? 그런데 너희도 이 집에서 얹혀 지내며 알 텐데, 곧잘 바깥불을 켜잖아? 바깥불을 켜면 갑자기 환하니까 깜짝 놀라지 않니? 등불 밑이 따뜻해서 괜찮으니?


  생각해 보니, 읍내 버스역 바깥 등불에도 제비집이 있습니다. 어쩌면 새들은 바깥 등불을 퍽 좋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밤이 되면 등불이 따끈따끈하니까 꽤 지낼 만하다 여길 수 있어요.


.. 공연을 본 왕이 물었어요. “도대체 뭐가 특별하다는 게냐? 내 정원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훨씬 좋은걸. 춤을 추고 싶으면 무도회에 가면 되고!” 왕이 새장을 열자, 새들은 미나를 등에 태우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지요 ..  (16쪽)

 


  그림책을 읽습니다. 작은 새들이 나오고, 작은 새와 함께 지내는 ‘미나’라는 작은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에릭 바튀 님이 빚은 《새들의 아이 미나》(달리,2003)입니다. 작은 아이 미나는 작은 새만 한 몸피입니다. 어쩜 이렇게 자그마한 아이가 있을 수 있을까요. 엄지 아이보다는 크지만 주먹 아이보다는 작아요. 작은 아이는 새들과 함께 맑은 눈빛과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작은 아이는 새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즐겁게 춤을 춥니다. 새들은 미나가 추는 춤을 보면서 한결 즐거이 노래를 불러요.


  그러나, 돈을 바라거나 이름값을 거머쥐려는 어른들은 작은 새들과 작은 미나를 괴롭힙니다. 따사롭게 아끼지 않습니다. 새들이 들려주는 고운 노래를 살가이 듣지 못해요. 미나가 보여주는 어여쁜 춤사위를 기쁘게 누리지 못해요. 새노래를 돈으로 팔면 즐거운가요? 새춤을 돈으로 팔아야 보람이 있나요?


  맑은 노래가 흐르는 밤입니다. 밝은 노래가 감도는 낮입니다. 맑은 노래가 흐르면서 별빛이 속삭이는 밤입니다. 밝은 노래가 감돌면서 햇빛이 웃는 낮입니다. 다 같이 자동차를 멈추고 컴퓨터를 끄면서 풀노래를 들어요. 풀숲에 깃드는 풀벌레 노래를 듣고, 나무 우거진 숲에 깃드는 멧새 노래를 들어요. 4347.4.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