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프 데콧, 간추린 독일 종교개혁사, 김영식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23(5).

 

1539년 초에 헤센의 필리프는 부처와 루터에게 의견을 물었다. 1210일에 루터, 멜란히톤, 부처, 그리고 이후에 다른 신학자들도 서명한 소위 비텐베르크 견해’(Wittenberger Ratschlag)는 두 번째 혼인이 가능하다고 인정했다.(165)

 

153912초에 헤센의 필리프는 부처와 루터에게 의견을 물었다. 1210일에 루터, 멜란히톤, 부처, 그리고 이후에 다른 신학자들도 서명한 소위 비텐베르크 견해’(Wittenberger Ratschlag)는 두 번째 혼인이 가능하다고 인정했다.

 

Anfang Dezember 1539 ließ Philipp von Hessen Bucer und Luther nach ihrer Meinung fragen. Im sogenannten Wittenberger Ratschlag vom 10. Dezember, unterzeichnet von Luther, Melanchthon, Bucer und nachträglich noch anderen Theologen, wurde eine solche Möglichkeit eingeräumt.

 

빠진 단어를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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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 데콧, 간추린 독일 종교개혁사, 김영식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23(5).

 

그들은 14개 항목에서 의견이 일치했으나 가장 논쟁을 일으킨 핵심 부분에서는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루터는 칠판에 이것이 내 몸이다”(hoc est corpus meum)라고 썼다.(142)

 

그들은 14개 항목에서 의견이 일치했으나 가장 논쟁을 일으킨 핵심 부분에서는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루터는 탁자 위에 이것이 내 몸이다”(hoc est corpus meum)라고 썼다.

 

In 14 Punkten konnte man sich einigen, nicht aber in der eigentlichen Streitfrage. Luther hatte mit Kreide die Worte: „Das ist mein Leib“ (hoc est corpus meum) auf den Tisch geschrieben.

 

번역을 바로잡았다.

 

아래, 그림을 참조할 것:

 

James Aitken Wylie, The History of Protestantism Vol. 1, London 1870,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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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 데콧, 간추린 독일 종교개혁사, 김영식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23(5).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신학은 종교개혁과 서로 바꿀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출발점을 지녔다.(134-135)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신학은 종교개혁적 노력의 바꿀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는 출발점이었다.

 

Martin Luther und seine Theologie waren der unverwechselbare und unersetzbare Ausgangspunkt der reformatorischen Bestrebung.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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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 데콧, 간추린 독일 종교개혁사, 김영식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23(5).

 

프랑수아 1세 치하에서 개신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기 전에 그는 스위스로 망명했다.(120)

 

프랑수아 1세 치하에서 개신교에 대한 박해를 피해 그는 스위스로 망명했다.

 

Vor einer Protestantenverfolgung unter Franz I. floh er ins Schweizer Exil.

 

번역을 바로잡았다.

 

vor A fliehen = A를 피해 달아나다

 

https://www.dwds.de/wb/fliehen

 

https://de.wikipedia.org/wiki/Johannes_C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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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 데콧, 간추린 독일 종교개혁사, 김영식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23(5).

 

[츠빙글리]는 베른, , 바젤에서 1506년부터 1516년까지 공부했으며 글라루스(Glarus)에서 본당 신부로 사목했다. 1516년부터 1518년까지 아인지델른(Einsiedeln)에서 지내다가 마침내 151911일에 취리히 주교좌성단인 그로스뮌스터(Grossmünster) 대성당의 주임신부가 되었다.(116)

 

그는 베른, , 바젤에서 공부했으며, 1506년부터 1516년까지 글라루스(Glarus)에서 본당 신부로 사목했다. 1516년부터 1518년까지 아인지델른(Einsiedeln)에서 지내다가 마침내 151911일에 취리히 주교좌성단인 그로스뮌스터(Großsmünster) 대성당의 주임신부가 되었다.

 

[...] wurde er nach gründlichen Studien in Bern, Wien und Basel von 1506 bis 1516 Pfarrer in Glarus. Von 1516 bis 1518 war er Leutpriester in Einsiedeln. Am 1. Januar 1519 trat er sein neues Amt als Pfarrer des Großmünsters in Zürich an.

 

번역을 바로잡았다.

 

https://de.wikipedia.org/wiki/Huldrych_Zwing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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