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 해설, 김산덕 옮김, 새물결플러스, 2025(6).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에게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의 가장 오래된 역사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본인만이 알고 있는 백 가지의 특수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던 사실을 여기서 상기하고 싶다. 나는 실로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늦기 전에 그것을 발표하여주시기를 그에게 부탁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11)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에게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의 가장 오래된 역사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본인만이 알고 있는 백 가지의 특수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던 사실을 여기서 그에게 상기시키고 싶다. 나는 실로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늦기 전에 그것을 발표하여주시기를 그에게 부탁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어 원문: Ich erinnere ihn hiemit daran, daß er mir dabei einmal gesagt hat: es gebe mindestens hundert Spezialtatsachen aus der ältesten Geschichte des Heidelberger Katechismus, die bis jetzt nur ihm bekannt seien, und ich halte es für verdienstlich, ihn zu bitten, damit zu unser aller Nutz und Frommen doch ja, solange es Zeit ist, ans Licht zu treten.

 

번역을 바로잡았다.

 

 

표현의 차이에 주의할 것:

 

ich erinnere ihn = 나는 그에게 상기시킨다

 

ich erinnere mich = 나는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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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 해설, 김산덕 옮김, 새물결플러스, 2025(6).

 

70세가 될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아침 7(스위스의 여름 시간으로 5)에 포펠스도르프(Poppelsdorfer)에 있는 화학 연구소로 학생들과 함께 나오셨다. 이 연구소에서 다양하고 신기한 형태의 유리 제품이나 도구에 둘러싸인 채 마치 파우스트 박사의 기묘한 신판처럼, 나는 이 작업을 진행하였다.(11)

 

70세가 될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아침 7(스위스의 여름 시간으로 5)에 포펠스도르프(Poppelsdorf)에 있는 화학 연구소로 학생들과 함께 나오셨다. 이 연구소에서 다양하고 신기한 형태의 유리 제품이나 도구에 둘러싸인 채 마치 파우스트 박사의 기묘한 새 버전인 것처럼, 나는 이 작업을 진행하였다.

 

독일어 원문: Er ist damals, im Begriff sein 70. Lebensjahr zu vollenden, jeden Morgen früh 7 Uhr (nach schweizerischer Zeitrechnung in jenem Sommer früh 5 Uhr!) inmitten des studentischen Schwarms in das Chemische Institut an der Poppelsdorfer Allee gekommen, wo ich, umgeben von allerlei auffallend geformten Gläsern und Apparaten, wie eine kuriose Neuauflage des Dr. Faust, dieses mein Wesen.

 

지명과 번역을 바로잡았다.

 

an der Poppelsdorfer Allee = 포펠스도르프 대로(大路)에 있는

 

Neuauflage = 새 버전

 

위 단어는 괴테의 <파우스트> 1, 서재 장면을 참조할 것:

 

파우스트는 여러 가지 실험 기구들이 가득 들어차 있”(406-407)는 서재에서 신약 성경의 원문을 독일어로 번역한다(1218-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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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유다의 버림받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받으신 버림받음입니다. 바울의 선택은 무엇보다 유다의 선택입니다. 만약 바울이 없었더라면, 유다는 유다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만약 유다가 없었더라면, 바울도 바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두 사람의 강력한 원형으로서 중간에서 다스리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선택된 자와 버림받은 자 사이의 상황은 언제나 열려 있는 선포의 상황입니다.(209)

 

유다의 버림받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받으신 버림받음입니다. 바울의 선택은 무엇보다 예수의 선택입니다. 만약 예수가 없었더라면, 유다는 유다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만약 예수가 없었더라면, 바울도 바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두 사람의 강력한 원형으로서 중간에서 다스리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선택된 자와 버림받은 자 사이의 상황은 언제나 열려 있는 선포의 상황입니다.

 

독일어 원문: Die Verwerfung des Judas ist die Verwerfung, die Jesus Christus getragen hat, die Erwählung des Paulus ist zuerst seine Erwählung. Ohne ihn wäre Judas nicht Judas, wie ohne ihn auch Paulus nicht Paulus wäre. Ist es aber Jesus Christus, der hier beherrschend, als das unerreichbare aber kräftige Urbild beider in der Mitte steht, dann ist und bleibt die Situation zwischen dem Ewählten und dem Verworfenen die offene Situation der Verkündigung.

 

 

번역을 보완했다.

 

아래, 전문(全文)을 볼 것:

 

KD /2, 53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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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과 열두 사도의 죽음 사이의 시간에, 그것도 매우 생소한 과거를 뒤로한 채 열두 명에 추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의 분명한 기술에 의하면 실로 유다는 단지 한 명의 사도가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대표적인 사도입니다.(208)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과 신약성경이 기록하지 않은 열두 사도의 죽음 사이의 시간에, 그것도 매우 생소한 과거를 뒤로한 채 열두 명에 추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의 분명한 기술에 의하면 실로 바울은 단지 한 명의 사도가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대표적인 사도입니다.

 

독일어 원문: Eben Paulus ist ja nach dem klar entworfenen Bild der Apostelgeschichte, obwohl und gerade indem er zu den Zwölfen erst hinzukommt, und zwar aus jener höchst befremdlichen Vergangenheit heraus hinzukommt, in der Zeit zwischen Jesu Auferstehung und dem vom Neuen Testament nicht berichteten Tod der Zwölfe nicht ein, sondern der Apostel.

 

번역을 보완하고,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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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그루노브 엮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이신건·오성현·이길용·정용섭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0(초판 2).

예수님에게 대항하여 이처럼 독특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리고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유보함으로써 유다가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야웨에게 대항하여 언제나 행하던 일이요, 야웨가 자신이 선택한 백성을 불가피하게 버리시도록 만든 일입니다. 실로 이스라엘이 자신의 하나님을 만난 적은 결코 없으며, 하나님에게 믿음과 자기 자신을 무조건 바칠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204)

 

예수님에게 대항하여 이처럼 독특한 행동을 함으로써 그리고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유보함으로써 유다가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야웨에게 대항하여 언제나 행하던 일이요, 야웨가 자신이 선택한 백성을 불가피하게 버리시도록 만든 일입니다. 실로 저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을 대했던 것과 같이(12:1-8), 이스라엘은 자신의 하나님을 만난 적은 결코 없으며, 하나님에게 믿음과 자기 자신을 무조건 바칠 마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독일어 원문: Er tut, indem er sich Jesus gegenüber in jener charakteristischen Weise etwas und im Grunde Alles vorbehält, das, was Israel Jahve gegenüber immer getan und was Jahves Verwerfung seines erwählten Volkes von jeher unvermeidlich gemacht hat. Eben so wie jene Maria Jesus, hatte ja Israel seinem Gott nie begegnen, gerade Glauben und damit sich selber ohne Vorbehalt hatte es ihm ja nie schenken wollen.

 

번역을 보완했다.

 

아래, 글을 볼 것:

 

KD /2,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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