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네 티츠, 디트리히 본회퍼 저항의 신학자, 김성호 옮김, 동연, 2022(1).

 

그가 나에게 요청하는 모든 긴급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내가 기도하는 형제를 판단하거나 미워할 수 없다.(125)

 

그가 나에게 가하는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내가 기도하는 형제를 판단하거나 미워할 수 없다.

 

독일어 원문: Einen Bruder, für den ich bete, kann ich bei aller Not, die er mir macht, nicht mehr verurteilen oder hassen.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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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성도의 공동생활, 정현숙 옮김, 복 있는 사람, 2023(15).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정신 요양소가 아닙니다. 자기 도피의 길로 공동체를 찾는 사람은, 공동체를 잡담이나 하고 기분을 전환하는 곳으로 왜곡시켜 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잡담하며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 외관상 영적인 모습을 띨 수도 있습니다.(123)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영적 요양소가 아닙니다. 자기 도피의 길로 공동체를 찾는 사람은, 공동체를 잡담이나 하고 기분을 전환하는 곳으로 왜곡시켜 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잡담하며 기분을 전환하는 것이 외관상 영적인 모습을 띨 수도 있습니다.

 

독일어 원문: Die christliche Gemeinschaft ist kein geistliches Sanatorium. Wer auf der Flucht vor sich selbst bei der Gemeinschaft einkehrt, der mißbraucht sie zum Geschwätz und zur Zerstreuung, und mag dieses Geschwätz und diese Zerstreuung noch so geistlich aussehen.

 

번역을 바로잡았다.

 

단어의 차이에 주의할 것:

 

geistlich = 영적

 

geistig = 정신적

 

 

아래, 44쪽의 번역을 볼 것: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근거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정신적psychisch 실재가 아닌 영적인pneumatisch 실재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와 구별됩니다.

 

독일어 원문: Weil christliche Gemeinschaft allein auf Jesus Christus begründet ist, darum ist sie eine pneumatische und nicht ein psychische Wirklichkeit. Sie unterscheidet sich darin von allen andern Gemeinschaften schlecht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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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네 티츠, 디트리히 본회퍼 저항의 신학자, 김성호 옮김, 동연, 2022(1).

 

이 시간 동안 그것은 명백히 자기 관찰이나 자기 성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자기 관찰을 위해 [] 명상하는 시간은 그리스도인의 삶만큼이나 짧은 시간이다.”(DBW 5, 72).(125)

 

이 시간 동안 그것은 명백히 자기 관찰이나 자기 성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자기 관찰을 위한 시간은 [] 명상 중에도, 기독교 생활 전반에서도 거의 없다.”(DBW 5, 72).

 

독일어 원문: In dieser Zeit geht es ausdrücklich nicht um Selbstbetrachtung oder Selbstreflexion: «Zur Selbstbeobachtung ... ist in der Meditation ebenso wenig Zeit wie im christlichen Leben überhaupt.» (DBW 5, 72)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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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네 티츠, 디트리히 본회퍼 저항의 신학자, 김성호 옮김, 동연, 2022(1).

 

[...] 공동체 없는 홀로 있음을 추구하는 사람은 허영심, 자기 반감, 절망의 심연 안에서 멸망한다.(DBW 5, 66)(125)

 

[...] 공동체 없는 홀로 있음을 추구하는 사람은 허영심, 자아도취, 절망의 심연 안에서 멸망한다.(DBW 5, 66)

 

독일어 원문: [...] wer Alleinsein sucht ohne Gemeinschaft, der kommt im Abgrund der Eitelkeit, Selbstvernarrtheit und Verzweiflung um. (DBW 5, 66)

 

번역을 바로잡았다.

 

Selbstvernarrtheit = 자기 열중, 자기 탐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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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네 크리스트 폰 베델, 에라스무스의 생애와 사상, 정미현 옮김, 새물결플러스, 2024(5).

 

가령 1516년에 에라스무스가 쓴 글에 따르면 프랑스만이

 

이단에 영향받지도, 보헤미아의 분파주의자들이나, 유대인, 혹은 [역자 삽입: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반쪽짜리 유대인 마라노에 감염되지도 않았으며 튀르키예 인접 지역 사람들의 입김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226)

 

가령 1516년에 에라스무스가 쓴 글에 따르면 프랑스만이

 

이단에 영향받지도, 보헤미아의 분파주의자들이나, 유대인, 혹은 [역자 삽입: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반쪽짜리 스페인 거주 유대인에 감염되지도 않았으며 튀르키예 인접 지역 사람들의 입김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독일어 원문: 독일어 원문: Zahlreiche mehr oder weniger judenverächtliche Äußerungen sind von ihm überliefert, so auch die von Historikern verschiedentlich zitierte Chrakterisierung des blühenden Frankreich von 1516: Frankreich sei nicht von Häretikern angesteckt und weder von böhmischen Schismatikern noch von Juden, halbjüdischen Maranen oder von der Nachbarschaft der Türken angehaucht.

 

번역을 바로잡았다.

 

Marane = 스페인 거주 기독교 개종 유대인

 

아래, 글을 볼 것:

 

http://www.confessio-augustana.info/pdf_Dateien/Artikel/CA_2012_1_Seite_46bis5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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