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열 해 : 어릴 적부터 떠올리면, 어느 집에 열 해 넘게 눌러앉은 적이 없지 싶다. 태어난 인천 도화동 집이며, 옮겼던 주안동 집에서도 얼마 안 있다가 옮기기 바빴다고 등본에 나오고, 그나마 인천 신흥동 집에서는 아마 아홉 해를 살았나 싶은데, 연수동으로 옮겨야 했다.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 적에도 이문동에서 세 해를 있다가 종로 교남동으로 옮겨 다섯 해 있었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온 뒤에도 으레 거듭 옮기는 걸음이었다. 이제 고흥으로 옮겨서 열 해째인데, 열 해 동안 미적거리며 쓰지 못한 ‘책숲마실’ 이야기를 여민다. 이 열 해 사이에 ‘미적거리며 못 쓴 여러 책집’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책집지기로 일하시다가 문을 닫으면 아주 연락이 끊기는데, 그분들이 씩씩하게 책집살림 가꿀 적에 마치지 못한 글을 이제 겨우 매듭을 지으며 가늘게 한숨을 쉰다. 2020.2.2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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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나즈막한 이야기를 담는 (2018.1.20.)

강원 춘천 〈경춘서점〉

.. 이곳은 2018년 겨울 언저리에 책집을 접고서 일식집으로 바뀌었습니다 ..



  춘천에 마을책집이 여럿 문을 열었습니다. 도청이 있고 교육대학이 있으며 여느 대학까지 있는 춘천이라면 곳곳에 책집이 들어설 만합니다. 이러한 춘천을 오래도록 책으로 빛낸 터로 〈명문서점〉하고 〈경춘서점〉 두 헌책집이 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책은 새롭게 읽히고, 조용히 잠이 들다가 다시 읽히며, 찬찬히 또다른 손길을 받아서 새록새록 읽힙니다. 오늘을 새롭게 만나고, 어제를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어제를 읽어 오늘에 살리고, 오늘을 읽어 어제에서 거듭난 새길을 익힙니다.


  지난날에는 마을에서 선보인 책을 마을헌책집에서 다루곤 했습니다. 서울이나 큰고장에 두루 넣는 책이 아닌, 마을이나 고장에서 조촐히 나누는 책은 새책집에 넣지 않거나 못했어요. 마을살림이나 마을이야기를 책으로 만나려면 헌책집에 가야 했는데, 이제 나라 곳곳 마을책집은 이처럼 작은 이야기를, 제 마을이며 고장 이야기를 살뜰히 품는 몫을 하고, 이웃 마을이며 고장에서 태어난 작은 이야기도 넉넉히 품습니다.


  고흥으로 터를 잡은 뒤 2014년에 처음 걸음한 〈경춘서점〉에 2018년에 새로 걸음합니다. 이곳을 2009년에 두 살인 큰아이를 안고서 처음 찾아왔으니 어느새 열 해가 흐릅니다. 책집 아주머니는 책집 할머니가 됩니다.


  바깥에 놓은 만화책을 먼저 둘러보는데 《드래곤 볼 3》(토리야마 아키라/아이큐점프 편집부 옮김, 서울문화사, 1993), 《드래곤 볼 6》(토리야마 아키라/아이큐점프 편집부 옮김, 서울문화사, 1993)이 보입니다. 이 만화책은 1990년에 비로소 저작권 계약을 맺어서 나왔습니다. 처음 나올 적에 형하고 살림돈을 푼푼이 모아서 1∼42에 이르는 책을 모두 장만했는데, 설이나 한가위에 찾아온 작은집 아이들이 하나둘 빌려가더니 그만 돌려주지 않아 이제 우리 집에는 처음 나온 이 만화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들어갈 적에 교과서가 모두 바뀌었습니다. 바로 제 앞에서 바뀐 교과서인 《중학 국어 1-2》(한국교육개발원, 문교부, 1989), 《중학 국어 3-1》(한국교육개발원, 문교부, 1984), 《중학 도덕 1 상》(한국교육개발원, 문교부, 1982), 《MIDDLE SCHOOL ENGLISH BOOK 2》(한국교육개발원, 문교부, 1984)를 집어듭니다. 교과서에 적힌 말이 어떤 자취를 남기며 달라졌는가 하고 살피려고 챙깁니다. 죽 넘기다가 묵은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이런 말에 흠칫합니다. 1980년대 학교에서는 이렇게 푸름이를 길들이려 했군요.


우리는 자기의 권리를 침해당하고도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단념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가령, 폭력배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이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폭력 행위를 더욱 도와주는 결과가 되고, 나아가 사회적 불의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권리의 주장과 그 행사는 사회적 불의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기의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느 사회든지 그러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질서가 유지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권리와 안전이 보장될 수도 없다. (도덕 1 상/106∼107쪽)


  1980년대가 저물고 1990년대로 넘어서면서 셈틀이 퍼집니다. 타자기는 1990년대로 넘어서면서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최신 개정판 정규 학교 타자 교본》(한국타자교육협회, 유림문화사, 1985)을 보면서, 그야말로 타자기 끝물에 나온 상업고등학교 교재였네 하고 생각합니다. 《가정의례준칙》(대한민국 정부, 1969)이 있기에 들추는데, 1960년대가 얼마나 싸늘하며 매몰찼는가 하는 대목을 그무렵 우두머리 목소리로 엿볼 만합니다.


지금 우리는 모든 국민이 한덩어리가 되어 조국근대화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읍니다. 그러니 먼저 생활의 합리화, 근대화가 이룩되지 않는한 이 과업수행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서 우리는 그동안 많은 국민들과 더불어 ‘가정의례준칙’의 제정과 그 실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왔던 것입니다. (머리말/대통령 박정희)


  예전에 박정희란 이는 ‘근대화’란 말을, 전두환이란 이는 ‘현대화’를, 김영삼이란 이는 ‘세계화’를 들먹였습니다. 나라지기란 일을 맡는 이들은 우리 살림살이를 깔보거나 밀어없애는 길에만 섰지 싶습니다. 하나같이 경제성장이란 이름으로 삽질을 끊이지 않아요. 이제는 눈을 바깥이 아닌 마을이며 숲이며 보금자리로 돌려서 ‘살림꽃’을 피우는 길로 갈 때가 아니랴 싶습니다.


  오늘은 어쩐지 학교에서 쓰던 책이 자꾸 손이 잡힙니다. 《조림학원론 하권》(F.S.베이카/현신규 옮김, 한국번역도서주식회사·문교부, 1960)을 집어들고 예전에 나라에서 숲을 어떻게 손대려 했는가를 들여다보고는, 《시조문학사전》(정병욱 엮음, 신구문화사, 1966)까지 쓰다듬습니다. 짤막한 석 줄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숨결을 헤아립니다. 그래요, 굳이 길게 써야 하지 않습니다. 석 줄로 얼마든지 노래할 만합니다. 눈물도 석 줄로 그릴 만하고, 웃음도 석 줄로 밝힐 만해요.


  때로는 넉 줄도 좋고, 다섯 줄도 좋습니다. 한 줄이어도 좋고, 열여섯 줄이나 여덟 줄도 좋겠지요. 노래하는 마음이라면 가벼운 어깻짓이 됩니다. 노래하는 발놀림이라면 홀가분한 얼굴이 됩니다. 노래하는 손짓이라면 날갯짓하는 오늘이 되어요. 춘천이라는 고장에 나즈막하면서 의젓한, 차분하면서 듬직한 여러 책집이 사이좋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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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길을 틀다 (2011.9.2.)

― 강원도 춘천 〈경춘서점〉

.. 이곳은 2018년 겨울 언저리에 책집을 접고서 일식집으로 바뀌었습니다 ..



  작은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날 곳을 헤아리며 새로운 시골을 찾을 적에 강원도 춘천에 계신 분이 찾아왔습니다. 새터로 가려 한다면 춘천 김유정문학마을 한켠에 새롭게 집을 올려서 칸마다 다른 도서관을 꾸미면 어떻겠느냐고, 새집을 올리기까지 여러 해 걸릴 테니 그동안 춘천 시내 한켠으로 우리 도서관을 옮긴 다음에, 새집이 다 되면 시골자락 보금자리에 도서관을 누리면서 춘천에 책마을을 이루면 좋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어요.


  곰곰이 생각하며 춘천을 들락거리면서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이러면서 춘천 어디쯤에 살림집을 놓고 도서관은 어디쯤이면 좋으려나 하고 자전거로 골목골목 누비기도 했습니다. 춘천에서 책빛을 밝히는 〈경춘서점〉에서는 오랜 춘천 살림을 보여주는 묵은 졸업사진책을 여섯 꾸러미나 장만했어요. 다른 터로 더 옮기지 않아도 되고, 또 우리 살림집하고 도서관을 옮길 삯을 춘천에서 대준다고 하셔서 그동안 건사한 목돈을 〈경춘서점〉을 드나들며 책값으로 신나게 썼습니다.


  일이 99.99퍼센트가 마무리될 즈음 곁님이 불쑥 한 마디를 합니다. “여보, 그런데 춘천에 그렇게 골프장이 많아요?” “(뜨끔) …….” “골프장이 그렇게 많으면 우리는 깨끗한 물을 어떻게 마셔요?” “(뜨끔) …….” “우리가 시골에서 사는 뜻은 맑은 물하고 바람하고 해인데, 물이 안 되는 곳으로 가서 살 수 없잖아요? 아이들한테 어떤 물을 먹으려고요?”


  살림집도 도서관도 새터를 찾을 수 있습니다만, 그곳 둘레에 잔뜩 있는 골프장을 우리가 치워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 보금자리를 춘천으로 옮기지 못하겠다고 깨달았습니다. 한참 헤매면서 길을 찾으려 했으나 도무지 길이 안 보이더군요. 그래서 우리를 춘천으로 데려가고 싶어한 분들한테 고개를 숙여며 손사래를 하기로 했습니다.


  춘천에 터를 잡으면 적어도 이레마다 들르리라 여긴 〈경춘서점〉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려나 하고 생각하며 찾아갑니다. 《이주》(박경주, 다빈치 기프트, 2005)라는 사진책도, 사진잡지 《韓日의 廣場》(한일뉴스) 20호(1986.6.)도 건성건성 봅니다. 그러나 《강원 전화번호부 75》(원주체신청, 1975)는 건성으로 지나칠 수 없습니다. ㄱㄴㄷ으로 나오는 1975년치 강원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면서 예전 〈경춘서점〉 자취를 찾아냅니다.


경춘서점 7234…중앙2-29


  1975년에는 이런 전화번호였고 주소였군요. ‘춘천 직업별’에서 ‘서점’으로는 〈제일서점〉(정음사·민중서관 지사)이 더 나옵니다. 원주는 서점 전화번호가 안 나오고, 강릉은 〈삼문사〉와 〈삼일사〉 두 군데가 나옵니다. 그러나 전화번호부에 오르지 않은 책집이 많아요. 전화를 안 놓은 데가 많았거든요. 게다가 예전에는 꽤 많은 헌책집이 간판도 이름도 없이 책을 사고팔았습니다.


  아스라한 자취를 헤아리다가 《계해생 친목회》(1982)를 넘기고, 《숭실대학교 1988 달력》을 들춥니다. 대학교에서 달력도 내놓지요. 《춘천 사범학교 14회 졸업사진책》(4290)은 1957년치인데, 학교 뒤쪽 민둥산에 새로 심은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는 모습이 새삼스럽습니다. 더욱이 한겨울에 운동장에 쌓인 눈을 치우면서 눈싸움을 하며 노는 모습이라든지, 밭을 일구는 모습, 벼싹을 심는 모습도 새삼스럽습니다. 난로를 빙 둘러싸고 앉은 교실에 나무책상과 나무걸상이 학생 몸크기에 견주어 너무 작구나 싶은 모습도 새삼스럽고요. 여기에, 하숙집이지 싶은 곳에서 아침에 일어나고 씻고 밥하는 모습까지 담았어요. 참말로 졸업사진책은 우리 수수한 자취를 간직한 꽃책입니다. 1957년에 사진기가 있는 집이 얼마나 되었겠어요. 그런데 사범학교 졸업사진책에 ‘이 대통령 81탄신 축하식’을 벌이는 모습까지 있네요. 끔찍하지만 그때 우리 모습입니다.


  사진잡지 《월간사진》 467호(2006.12.)를 넘기는데, 1979년에 나온 《현대한국사진가선-임응식》이라는 사진책을 놓고서 박평종 님이 쓴 글이 있습니다.


.. 임응식이 중심이 되어 개척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은 한국사진에 기록의 가치를 처음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진가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과 역사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토대로, 일제시대를 풍미했던 탐미주의적 경향의 살롱사진 전통과 단절하고 적극적으로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던 태도 또한 소중하다. 생활주의 리얼리즘은 이후 60∼70년대의 한국사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기록에 중점을 둔 현대적 의미에서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꽃피울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순수 아마추어리즘을 고집하면서 사진단체와 공모전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친 탓에 사진은 발전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채 50년대를 이끌었던 사진운동으로 남게 되었다. 리얼리즘을 표방했던 많은 선구적인 사진가들은 리얼리즘 사진에 부합하는 고유한 사진형식을 완성하지 못했고, 결국은 다시 조형성에 탐닉하는 공모전 형식의 사진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임응식의 생활주의 리얼리즘이 지녔던 한계이기도 하다 ..  (137쪽)


  사진비평은 으레 이렇기는 하지만 따분합니다. 사진을 읽는 멋이나 맛은 한 줄로도 못 쓰고서 이런 이야기를 읊어야 할까요? 사진 한 칸에서 눈물하고 웃음을 읽고서 비평이란 이름으로 글을 쓰기는 어려울까요?


  일본에서 썼구나 싶은 ‘생활주의 리얼리즘’이란 말을 끌어들여서 어떤 사진 이야기를 펼 만한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언제나 삶입니다. 삶을 쓰고, 삶을 그리고, 삶을 찍습니다. 글님이건 그림님이건 사진님이건 스스로 마주하는 곳에서 그이 눈길로 오늘을 담아냅니다.


  사진님 한 사람이 담은 눈빛이 더 뛰어나거나 더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저 그이 삶입니더. 우리는 사진님 눈빛에 흐르던 마음줄기를 사진 한 칸으로 읽습니다. 그이가 걸은 곳을, 그이가 본 길을, 그이가 사랑한 하루를, 그이가 누린 꿈을. 임응식이라는 한 사람이 좀 아쉽구나 싶으면, 사진이란 사진기를 손에 쥐기만 하면 누구나 찍을 만하니, 사진비평에 앞서 사진찍기부터 하면 좋겠어요. 어느 사진님이 못 넘은 담벼락이 있다면, 비평하는 이부터 스스로 그 담벼락을 넘는 사진을 찍어서 ‘사진으로 말하’면 되리라 봅니다. 사진비평은 사진을 찍어서 하면 되거든요.


  그나저나, 춘천으로 가려던 길을 틀었지요. 길그림책을 들여다보며 어디가 맑은 물이며 바람이며 해를 누릴 터전이 될까 하고 석 달을 살핀 끝에 전남 고흥을 찍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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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일기 세미콜론 코믹스
아즈마 히데오 지음,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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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아픈 사람은 숲에서 낫는다



《실종일기》

 아즈마 히데오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2011.3.11.



  옛날에는 아픈 사람이 있을 적에 얼른 시골이나 숲으로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 두지 않았어요. 오늘날에는 아픈 사람이 있으면 으레 병원에 보내거나 외따로 두기 일쑤입니다.

  옛날하고 오늘날은 무엇이 다를까요? 옛날에는 아픈 사람을 꺼리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아플 만하고, 누구나 아프기도 하거든요. 다만,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이이한테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무엇을 바라지도 않아요. 오직 하나만 바라고 맡기지요. ‘튼튼하게 일어서는 데에만 온마음을 쓰고, 다른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요.



작업실에 돌아오니 편집자의 메시지. 그 뒤로 연재하던 만화를 대부분 접고 휴양에 들어갔다. 일을 쉬는 기간에는 아침에 작업실에 가서 술 마시고 자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술 마시고 잤다. 그런 생활을 하고 있자니 점점 우울과 불안과 망상이 덮쳐 와서 죽고 싶어졌다. “어디 인적 없는 산속에 가서 죽자.” 돈도 떨어졌고, 마지막 술도 마셨다. 산비탈을 이용해서 목을 벨 계획이었다. 근데 잠이 왔다. (6∼7쪽)



  오늘날에는 시골에 요양시설이 있곤 합니다. 그러나 이곳도 터만 시골일 뿐 똑같이 병원입니다. 아픈 이가 숲을 누리거나 햇볕을 쬐거나 바람을 마시거나 맨발로 풀밭을 밟도록 이끌지 못해요. 오늘날 병원이나 요양시설은 매한가지입니다. 포근한 손길이 아닌 기계나 의약품에만 내맡겨요. 튼튼하게 일어설 새몸보다는 ‘처방·수술’에 치우칩니다.


  옛날에 아픈 사람을 시골이나 숲에서 지내도록 할 적에는 아픈 몸을 오롯이 돌아보도록 했어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를 되새기도록 했고, 앞으로 어떤 꿈을 그리려 하는가를 매우 느긋하면서 천천히 짚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병원은 무엇을 할까요? 오늘날 건강보험은 무엇을 할 만할까요?



“무만 먹고 다니니 어질어질하네. (쓰레기통에) 비엔나빵 조각이 있네. 은근히 맛있네. 결국 춥다든가 배가 고프다든가 담배를 피우고 싶다든가 술을 마시고 싶다든가 그런 번뇌가 나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로군. 이젠 쓰레기 봉투 뒤지는 건 아무렇지도 않지롱.” (20쪽)



  한창 만화를 그리다가 이도 저도 괴롭고 지치며 어지러워서 그만 모든 만화를 멈추고 달아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이는 곁님이며 아이한테는 부끄럽지만 스스로 너무 죽을 듯해서 달아나고 싶었다 하며, 달아난 곳은 숲이었다지요. 낮부터 밤까지 숲에서 지내다가 이른새벽에 마을로 조용히 내려와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거리를 찾았대요. 이런 이야기를 《실종일기》(아즈마 히데오/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2011)에 고스란히 담습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하루 종일 걸었다. 다리가 풀릴 때까지 걸었다. 이렇게 하니 피곤해서 술 없이도 잠이 잘 왔다. (66쪽)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먹을거리를 챙긴 만화쟁이 아저씨는 몸이 아프지 않았다고 합니다. 숲에서 지내면서 늘 때맞추어 움직이고 오래오래 걷다 보니 몸은 외려 한결 튼튼하게 달라졌다지요. 더구나 오랫동안 짓누르던 멍울도 말끔히 가실 만했다고 하지요.


  다만, 마을사람이나 경찰은 이런 한뎃잠이로 숲에서 혼자 지내는 사람한테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싫어했다뿐입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고약한 냄새란 무엇일까요? 거의 숲사람이 된 몸에서 고약한 냄새일까요, 아니면 화학약품이 가득한 병원이 고약한 냄새일까요? 머리카락에 물을 들이거나 이것저것 하는 화약약품도 냄새가 대단합니다. 샴푸나 염색약이나 화장품이야말로 고약한 냄새일 텐데, 우리는 이런 냄새는 안 고약하다고 여기지 않을까요?


  숲에 사는 짐승이나 벌나비나 푸나무는 사람이 몸에 두른 샴푸 냄새 염색약 냄새 화장품 냄새를 매우 꺼립니다. 이런 냄새를 풍기는 사람 곁에는 어떤 새도 딱정벌레도 나비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아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노숙자 생활을 했던 시절에 제일 건강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잘 먹고 잘 싸, 맑으면 일하고 비오면 책 읽어. 새벽 4시에 일어나면 두 시간 안에 하루 준비를 끝낸다. 그날 먹을 밥, 담배, 디저트, 술값, 마실 물을 확보한다. (69쪽)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힘겹습니다. 비정규직이나 감정노동 때문만이 아닙니다. 너무나 고달프게 겨루거나 싸워야 하는 판에다가,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입시라는 싸움터에 내몰려요. 게다가 이런 싸움터를 갈아엎을 낌새가 잘 안 보입니다. 다들 아무튼 대학교에는 보내야 한다고 여길 뿐, ‘아무튼 대학교는 안 보내고 생각해 보자’는 마음은 찾아보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한걸음 나아가 ‘아무튼 중·고등학교도 초등학교도 안 보내고 생각해 보자’는 마음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지요.


  우리는 무엇을 잃거나 잊었을까요? 만화쟁이 아저씨는 스스로 톱니바퀴에서 달아나서 숲 한켠에서 한뎃잠이요 숲사람으로 제법 오래 지냈습니다. 이러다가 ‘붙잡혀’서 다시 만화를 그리는 삶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해 내내 거의 큰고장 일터에 머물며 지내다가 여름이나 겨을에 쪽틈을 얻어 그제서야 숲이 아름다운 곳에 살짝 바람쐬러 다니는, 또는 이레 가운데 닷새를 큰고장 일터에 머물다가 이틀쯤 자가용을 몰아 시골이나 숲에 가볍게 바람쐬러 다니는, 이러한 얼거리로는 우리 몸이며 마음은 그저 지칠 뿐이지 않을까요. 이제는 큰고장이라는 담벼락을 허물고서 작은고장으로 바꾸고, 작은고장은 시골로 바꾸고, 시골은 아주 숲으로 바꾸어서, 누구나 무슨 일을 하건 푸른바람이며 맑은물이며 고운해를 누리는 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무렵(1970년대 첫무렵) 테즈카 선생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뭐야? 콘티를 안 보여준다고? 난 만날 수정 당하는데 말야.” “그런가요?” (129쪽)


편집자가 시키는 대로 그리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130쪽)



  달아날 수 있습니다. 달아나도 됩니다. 아플 적에는 쉴 노릇입니다. 힘드니까 그만둘 만합니다. 그러니까 너도 나도 함께 쉴 만한 터전이자 마을이자 보금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집집마다 마당이 있고, 마을마다 빈터랑 숲정이가 있으며, 고장마다 너른 들이며 냇물이 있도록 가꾸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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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뚱보 맛 좀 볼래? 난 책읽기가 좋아-3단계 (초등3,4학년) 17
모카 글, 아나이스 보젤라드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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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22 겉모습으로 놀리는 바보


《어디, 뚱보 맛 좀 볼래?》

 모카 글

 아나이스 보즐라드 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

 1999.11.3.



  우리 집에서 떼지어 피어나는 민들레가 언제쯤 고개를 내밀려나 하고 여러 날 뒤꼍을 뒤적이다가 어제 비로소 만납니다. 아기 손가락보다도 가늘고 작은 잎을 여리게 내놓은 채 시든 풀줄기 밑에서 살짝 깨어났더군요.


  이제는 따순 볕을 듬뿍 받기를 바라며 시든 풀줄기를 모두 걷어냅니다. 이 시든 풀줄기는 겨우내 민들레뿌리가 든든히 잠들 수 있도록 이불 노릇을 했으리라 여겨요.



“우리 엄마는 돼지같이 살찐다고 아무거나 못 먹게 하시거든.” 돼지같이? 그럼 우리 멈마는 돼지를 굉장히 좋아하시나 보다. 소시지, 햄, 베이컨 …… 이런 게 우리 집에서는 매일 식탁에 오른다. 물론 이런 것들 말고 다른 사람들 먹는 것도 다 먹는다. (7쪽)



  갓 돋은 풀잎은 모두 보드랍습니다. 여리지 않은 떡잎은 없습니다. 나물로 삼지 못할 봄풀이란 없어요. 봄에는 새로 돋은 나뭇잎까지 모조리 나물입니다. 아스라이 옛날에 보릿고개가 있었다지만, 그 철에 모두 봄잎이며 봄풀로 하루하루 누렸겠구나 싶어요. 느티잎으로 느티떡을, 갖은 잎하고 풀로 온몸을 풀빛으로 물들였겠지요.


  봄이란 얼마나 대단할까요. 갓 돋은 잎은 풀줄기에 나무줄기를 북돋웁니다. 막 피어난 꽃은 꽃내음으로도 살찌우고 바야흐로 익는 열매로도 밥이 되어요. 우리한테는 쌀만 밥이지 않아요. 나물이며 남새도 밥이요, 열매도 과일도 밥입니다. 그리고 햇볕하고 빗물하고 바람도 밥일 테고요.



헉헉거리고, 땀이 줄줄 흐르고, 얼굴이 벌게지는 나. 체육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신다. 비웃고 계신 게 틀림없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자, 얘들아! 딱 한 바퀴만 더 뛰자!” 나는 못한다. 선생님도 아신다. 내가 못한다는 것.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10쪽)


사실 선생님은 내게 관심이 없다.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다. 내 생각이 어떤지 물어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내 가슴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내 가슴속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12쪽)



  어린이문학 《어디, 뚱보 맛 좀 볼래?》(모카·아나이스 보즐라드/최윤정 옮김, 비룡소, 1999)는 뚱보라며 놀림받고 미움받는 아이가 마음앓이를 어떻게 풀어내어 스스로 씩씩하게 서느냐 하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뚱보 소리를 듣는 아이는 내내 속으로 누르다가 어느 날 “어디, 뚱보 맛 좀 볼래?” 하고 터뜨립니다. 다만, 한 판을 터뜨린 뒤에는 굳이 터뜨리려 하지 않았지 싶어요.


  뚱보라는 아이를 아끼는 삼촌은 말라깽이라며 놀림이며 미움을 받았다지요. 아마 삼촌은 그 놀림말이며 미움말에 “어디, 말라깽이 맛 좀 볼래?” 하고 한 판 터뜨린 적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과자를 줄 때 보면 빅토르가 웃는 얼굴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무리 동생을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해도 그렇게 좋아하는 과자를 안 주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고맙다, 크림 소스같이 귀여운 내 아들.” 엄마 말씀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우리 보물’이라거나 ‘귀여운 내 새끼’라고 부른다. (16쪽)



  두 사람이 똑같이 먹더라도 두 사람은 다르게 자라요. 한 사람은 키가 부쩍 크고, 한 사람은 키가 그리 안 큽니다. 한 사람은 몸피가 불고, 한 사람은 깡마릅니다. 적게 먹기에 살이 덜 찌거나 안 찌지 않아요. 그저 몸이 다를 뿐입니다. 어느 것을 골라서 먹기에 못생기지 않습니다. 몇 가지를 솎아서 먹기에 잘생기지 않아요. 겉모습은 그냥 겉모습이에요.


  우리가 사람이라는 숨결이라면, 슬기롭고 참하며 착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즐겁게 삶을 짓는 빛이라면, 겉모습을 환하게 밝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키가 이렇든 몸이 저렇든 마음에 따라서 반가운 동무가 되고 이웃이 됩니다. 얼굴빛이 이렇건 저렇건 마음빛에 따라서 스스로 하루를 짓고 갈고닦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마음에 다 들 순 없는 거잖니. 널더러 코가 너무 크다고 놀리는 애도 있을 거고, 이름이 이상하다고 뭐라 그러는 애도 이쓸 거고, 또 살이 너무 쪘다고 그러는 애도 있을 거고 …… 짓궂은 애들이 장난으로 그러는 거지. 그 애들이 뭐라고 하든 그런 게 뭐 중요하니.” (18∼19쪽)



  우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까요? 사내이니 머리카락을 짧게 쳐야 한다고 가르치나요? 이제는 가시내한테 꼭 치마만 입히려는 어른은 줄었다지만, 신문·방송뿐 아니라 일터나 학교나 이곳저곳에서 사내하고 가시내 옷차림이나 겉모습을 놓고서 울타리가 꽤 높아요.


  왜 겉모습으로 갈라야 할까요? 왜 겉모습을 그렇게 들여다보아야 할까요? 일을 훌륭히 잘하는 사람이 대학교를 마쳤든 아무 학교를 안 다녔든 대수롭지 않아요. 글을 아름다이 쓰는 사람이 누구한테서 배웠건 혼자서 조용히 살림을 짓다가 처음으로 글빛을 나누었던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언제나 마음빛을 가꾸는 자리에 설 노릇이지 싶습니다. 아이라는 나날을 살아내어 어른이자 어버이가 된 사람이라면 어제도 오늘도 마음결을 참하게 다스리는 몸짓이어야지 싶습니다.



마르탱 삼촌도 생각이 같았다. “학교 다닐 땐 애들이 얼마나 놀렸는지 몰라요. 내가 너무 말라깽이였거든요. 내 별명이 ‘개구리 다리’였다니까요.”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삼촌을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내가 버릇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삼촌, 죄송해요.” (31쪽)


“자주 좀 그렇게 웃어라. 그러니까 너, 네 동생이랑 똑같다.” 미카엘이 말했다. 그 소리가 아주아주 듣기 좋았다. (62쪽)



  뚱보인 아이는 뚱보라는 몸이라면 그저 뚱보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말라깽이인 삼촌은 말라깽이라는 몸이라면 그냥 말라깽이로 맞아들이면 되어요. 서로 어떤 몸이건 서로 아끼는 사이입니다. 서로 어떤 얼굴이건 서로 마음으로 돌보며 즐거운 사이입니다.


  겉모습으로 놀리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속마음을 볼 줄 모르거든요. 속마음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놀리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이들은 동무나 이웃이 없습니다. 속마음으로 다가서거나 만나지 않는데 동무나 이웃이 없을밖에요. 그러니까, 동무도 이웃도 없이 외로우니 자꾸자꾸 따돌리거나 괴롭힐 사람을 찾아내려 하지요.


  봄볕처럼 따스한 손길이 누구한테나 흐르기를 바라요. 봄바람처럼 따스한 눈빛을 누구나 받기를 바라요. 우리는 모두 다른 몸이자 목소리이자 낯빛이자 겉모습이기에, 이렇게 즐거우면서 재미나게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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