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6.10.


《냉전의 벽》

 김려실과 일곱 사람 글, 호밀밭, 2023.6.25.



집으로 돌아왔으니 저잣마실을 나갈까 했으나 그만둔다. 하루를 푹 쉬면서 여러 일을 돌본다. 집안일을 하고 빨래를 한다. 늦은낮에는 큰아이하고 앵두를 따면서 새소리를 듣는다. 둘이서 어느새 큰들이를 채운다. 이튿날 더 하면 큰들이 하나를 더 얻을 만하다. 구름이 짙다가도, 이슬비를 뿌리다가도, 새삼스레 해가 나면서 싱그럽고 따사로운 여름이다. 여름이되 덥지 않고 따사롭다. 워낙 새여름은 안 덥던 날씨이다. 구름 없는 한낮이라면 조금 덥더라도 바람과 구름이 이내 식히는 길목이다. 《냉전의 벽》을 읽었다. “차가운 담”은 남이 쌓지 않는다. 큰나라가 끼어들었다고 여기되, 우리가 큰나라 등쌀과 옷자락에 휘둘리기에 “얼음담”을 쌓는다. 옆에서 쑤석거리는 놈이 있기에 “겨울담벼락”이 생길 수도 있되, 모든 겨울담은 우리가 스스로 녹이고 허물 만하다. 이제는 우리가 할 때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치우고 걷어낼 노릇이다. 높녘(북)에도 ‘사람’이 살지만, 꼭두각시와 허깨비가 무시무시하게 도사린다. 마녘(남)은 어떤가? 우리는 서로 ‘사람’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이미 마녘에서도 서로 차갑게 담벼락을 높다랗게 세우면서 싸우는가? 민낯을 고스란히 바라볼 때라야 응어리도 고름도 생채기도 하나하나 달랠 수 있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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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6. 알못 못알



  누구나 그때그때 배울 이야기를 따라서 낱말 한 자락이 찾아온다. 좋거나 나쁜 낱말이 아닌 배울거리인 낱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나한테 온 낱말”을 고요히 돌아보고서 차분히 짚을 적에 스스로 길을 연다.


  ‘알못’이라는 낱말을 예전에 처음 듣고서 “알꼴로 둥근 머리인 못”인가 하고 갸우뚱했는데 “알지 못하다”를 줄인 낱말이라고 해서 빙그레 웃었다. 대못·잔못이 아니었구나.


  아이들은 ‘안’이나 ‘못’을 앞에 놓는다. 아이들 말씨라면 ‘못알’이다. “못알 = 못 알다 = 모르다”이다. 오랜 우리말씨라면 ‘못알’이라 해야 알맞은데, 워낙 오늘 우리가 스스로 우리말씨를 잊은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못알이라서 알아가고 알아보고 알아들으려고 하는 아이라면, 먼저 못알에서 ‘알’로 나아가서 ‘알깨기(알아차리기)’로 거듭난 사람이 ‘어른’이다. 아이어른은 한 사람 몸마음에 나란히 있다. 두 빛인 넋과 얼이 한덩이로 밝기에 ‘숨’이다. 이 숨을 살리기에 ‘사람’이고, 사람이 서로 살리는 숨결이 ‘사랑’으로 넘어간다.


  좋고나쁨과 옳고그름을 다 놓아야 비로소 삶을 느끼고 보고 배운다. 배우는 길에 서기에 가만히 익힐 틈을 낸다. 배우고서 익히는 틈과 짬을 누리기에 눈을 뜬다. 눈을 뜨기에 철이 들고, 철이 들면서 찬찬히 나이를 머금으니 바야흐로 어른이란 이름으로 일어선다. 나이를 알맞게 머금으며 무르익는 사람을 지켜볼 수 있기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논다. 아이는 어른 곁에서 놀이랑 노래를 누리고 짓는다. 어른은 아이 곁에서 일이랑 살림을 돌보고 나눈다.


  모르기에 배우는 길에 선다. 하나를 알기에, 이 하나를 씨앗으로 새로 묻고서 즐겁게 다시 배우는 길을 걷는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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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4. 돼지



  ‘고기돼지’가 아닌, 우리에 갇힌 돼지가 아닌, 들이며 숲을 가로지르면서 아름다이 노래하는 돼지를 만나거나 사귀면서 함께 하루를 짓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그렇게 믿던 사람이 무시무시한 칼이나 도끼를 들고서 저한테 다가와 마구 휘두르니, 돼지는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꾸로 생각해 봐요. 누가 사람 목을 무서운 칼이나 도끼로 내리치려고 하면, 사람도 “사람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슬프게 숨을 거둘 테지요. 우리는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아닌 “돼지가 풀숲에서 고르릉고르릉 기쁘게 노래하는 소리”를 나눌 수 있는 살림길로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더 많이 먹으려고 더 모질게 좁고 어둡고 답답한 우리에 가두어서 착하고 상냥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마는 고기돼지라는 길은 끝내기로 해요. 느긋하며 아늑할 뿐 아니라 착하고 참하면서 곱게 숲을 같이 누리는 따사로운 길을 나아가야지 싶어요. 사람을 사람답게 보려면 나무를 나무답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개미를 개미답게 마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돼지를 돼지답게 끌어안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돼지는 노래하고 싶습니다. 돼지는 멱을 따이고 싶지 않습니다. 돼지는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돼지는 좁은 잿바닥(시멘트바닥)에 갇힌 채 흙도 풀도 나무도 꽃도 없는 곳에서 찌꺼기로 배를 채울 생각이 없습니다. 돼지는 풀잎을 사랑해요. 돼지는 풀벌레하고 동무하면서 놀고 싶어요.



돼지


반지르르한 털은 아침햇살

곧고 긴 등줄기는 여름바다

새털같은 몸은 날렵날렵

싹싹하며 올찬 걸음걸이


혀에 닿으면 바람맛 느껴

코에 스치면 흙맛 느껴

살에 대면 마음멋 느껴

품에 안으면 숨멋 느껴


낯선 길을 의젓이 이끌지

우는 동생 토닥토닥 달래

사나운 물살 헤엄쳐 건너

별빛으로 자고 이슬빛으로 일어나


거짓말 참말 환히 꿰뚫고

즐거운 웃음을 노래하면서

보금자리 정갈히 돌보는데

둥글둥글 모여 누워 꿈을 그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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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운해 雲海


 운해가 장관이었다 → 구름떼가 대단했다


  ‘운해(雲海)’는 “1. 구름이 덮인 바다 2. 바닷물이나 호수가 구름에 닿아 보이는 먼 곳 3. 산꼭대기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바다처럼 널리 깔린 구름 ≒ 구름바다”를 가리킨다고 하는군요. ‘구름’으로 고쳐씁니다. ‘구름떼·구름밭·구름무리·구름물결’로 고쳐쓰고요. ‘구름바다·구름같다·구름처럼’으로 고쳐써도 되어요. ㅍㄹㄴ



운해가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 반짝이는 구름을 보면서

→ 반짝이는 구름바다를 보면서

《토리빵 8》(토리노 난코/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5)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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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다발 多發


 사고 다발 지역 → 자주 다치는 곳

 사고가 다발하는 곳이니 → 잇달아 다치는 곳이니


  ‘다발(多發)’은 “1. 많이 발생함 2. 발동기의 수가 많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많다·잦다·자주·자꾸·흔하다’나 ‘또·또다시·다시’로 손봅니다. ‘도사리다·뻔질나다·끊임없다’나 ‘잇다·잇달아·이어가다’로 손보고, ‘여러·여럿’으로 손보면 됩니다. ㅍㄹㄴ



날씨가 험해지면 추락사고가 다발하는 위험한 길이거든요

→ 날씨가 궂으면 자주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길이거든요

→ 날씨가 궂으면 자주 미끄러지는 아슬아슬한 길이거든요

《낙원까지 조금만 더 3》(이마 이치코/이은주 옮김, 시공사, 2005) 124쪽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테러에 문학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요

→ 한꺼번에 일어나는 막짓에 글꽃은 어떻게 대꾸해야 하나요

→ 곳곳에서 일어나는 주먹질에 글은 어떤 말을 해야 하나요

→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끔찍짓에 글은 무슨 말을 하나요

《여행하는 말들》(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 96쪽


진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길이 다를지 몰라도, 한꺼번에 일어난다

→ 달리 나아갈지 몰라도, 나란히 일어난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김진아, 바다출판사, 2019) 5쪽


함정 속의 함정, 연속 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실수 속의 실수

→ 덫에 덫, 잇달아 잘못에 잘못

→ 그물에 그물, 자꾸 말썽에 말썽

→ 올가미에 올가미, 또 걸리고 빠지고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김상미, 문학동네, 2022)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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