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젤 알랭 4
카사이 스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56



내가 너한테 가야 만난다

― 지젤 알랭 4

 카사이 수이 글·그림

 우혜연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6.30.



  나는 늘 내 모습을 봅니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으나, 언제나 내 모습을 또렷하게 그립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가 아니라 ‘내 옷’입니다. 내 숨결을 둘러싼 껍데기는 살갗과 뼈와 피와 물이라는 얼거리로 이루어집니다. 머리카락이나 이나 손발톱도 ‘내’가 아닌 ‘내 옷’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 대목을 알았어요. 아무리 거울을 보아도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가 아니로구나 싶더군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 둘레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둘레 어른은 피식 웃으면서 핀잔을 하지요. ‘얌마, 이게(네 살갗) 네 몸이고 너이지, 뭐가 이게 너가 아니냐?’ 하면서 볼을 아주 세게 꼬집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닐 무렵이라고 떠오르는데, 하도 궁금해서 담임 교사한테 말을 여쭈었다가 볼만 꼬집히고는, ‘둘레 어른(다른 사람)’한테 내 궁금함을 묻지 말자고 생각을 단단히 못박았습니다. 다른 사람(둘레 어른) 어느 누구도 내 궁금함을 풀 수 없다고 알았습니다.



- “하하. 편지란 왠지 훈훈한걸. 샌드위치라도 먹고 돌아갈까?” (13쪽)

- “업무가방을 만들었거든!” “뭐가 들어 있는데?” “지갑이랑 손수건이랑 딸기사탕!” “핫핫핫. 뭐야, 잡일만 잔뜩.” “전부 즐거웠어.” “알아. 잡일이 즐겁지. 나도 장보는 거 좋아해.” “아, 나도! 청소도 좋아.” “한 일을 전부 적는 거야?” “응.” (23쪽)



  나는 내 궁금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내가 궁금한 대목은 내가 스스로 풀어야 합니다. 내가 궁금한 대목은 언제나 ‘내가 나한테 물어’서 ‘내가 나한테서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내 둘레 다른 어느 어른(사람)도 나한테 스승이 될 수 없다고 알아차렸습니다. 이때가 열 살 언저리입니다. 열 살 언저리까지 집이나 동네나 학교에서 둘레 어른한테 ‘꼬집히고 맞고 핀잔을 들으’면서 내 ‘참다운 모습’은 자꾸 주눅이 들었어요.


  스승을 찾으려면 내가 나한테 가야 합니다. 동굴로 가거나 골방으로 가라는 소리가 아니라, 바로 오늘 이곳에서 내 삶을 스스로 누리면서 내가 나한테 가야, 비로소 내 모든 수수께끼를 풉니다.



- “고향으로 돌아갈 건가요?” “그것도 좋지.” “우리 애들은 고향을 몰라. 내가 서커스에서 낳았거든. 지젤은 정말 가정교육을 잘 받았구나.” “네.” “돌아갈 땅이 있다는 건, 좋은 거야.” (55∼56쪽)

- “카밀라는 굉장해.” “어?” “잘 보고 있구나. 꼭 할 수 있을 거야.” “쉽게 말하지 마.” (69쪽)



  카사이 수이 님 만화책 《지젤 알랭》(대원씨아이,2014) 넷째 권을 읽습니다. 《지젤 알랭》에 나오는 ‘지젤 알랭’은 첫눈에 반한 사람이 있고, 이이가 첫눈에 반한 그대한테 가려고 애씁니다. 처음에는 눈빛으로, 다음에는 마음으로, 이러고 나서 눈물로, 그 뒤에는 편지로, 마지막에는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갑니다.


  그렇지요. 한 걸음씩 걸어서 비로소 ‘새걸음’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스스로 궁함을 풀고, 다시 스스로 수수께끼를 내면서 삶을 짓습니다.



- “곡예도 그렇지만, 손님의 기분을 ‘푸는’ 게 일이야. 계속 긴장되는 곡예만 있으면 보기 힘들지? ‘불완전’한 게 피에로인 거야. 그래서 실수로 웃음을 끌어내는 게 ‘요령’이지. 어떻게 귀엽게 실수하느냐, 이거야!” (96쪽)



  남을 가르칠 수 있는 나는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너한테 보여줄 뿐입니다. 나를 가르칠 수 있는 남도 없기에, 너도 언제나 너 스스로 나한테 보여주면서 스스로 배울 뿐입니다. 만화책 《지젤 알랭》은 스스로 삶을 지어서 기쁘게 노래하는 고운 아이가 빚는 이야기를 살가이 담아서 보여줍니다. 4348.1.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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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이 책을 못 읽히는 까닭



  학교도서관은, 여러모로 안타깝다면 안타까운데,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학교라는 곳이 아이들을 ‘수많은 지식 학습’으로 옭아매거나 가두거나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삶을 안 보여줍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삶과 동떨어지도록 내몹니다. 이러면서 학교는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세우지요. 그래도, 이 같은 학교에 도서관이라도 있어 숨통을 틀 만한데, 막상 도서관에서 숨통을 트는 아이도 드뭅니다. 도서관에서마저 입시공부와 시험공부에 매달려, 정작 ‘삶짓기’를 하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읽지 못해요.


  학교도서관이 ‘책을 읽히는 곳’이 되려면, 이곳에는 참고서나 교과서나 문제집은 한 부조차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학교도서관이 ‘책을 나누는 곳’이 되려면,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못 보여주는 삶을 보여주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입시공부나 시험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짓도록 이끌어 주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두고는, 이 책을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내어 읽고 마음에 새긴 뒤, 언제나 온몸으로 펼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학교도서관은 아주 아름다운 쉼터이자 배움터가 될 만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 학교도서관은 제구실을 거의 못 하거나 안 합니다. 4348.1.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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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08] 첫걸음과 새걸음



  사람은 누구나 첫발을 내딛습니다. 첫걸음입니다. 첫걸음을 떼고 나서는 어떤 걸음을 뗄까요? 두 걸음일까요, 세 걸음일까요, 네 걸음일까요, 다섯 걸음일까요? 한겨레가 먼 옛날부터 쓰는 말을 돌아보면, ‘첫걸음’만 한 낱말로 삼아서 썼고, 다른 낱말은 굳이 한 낱말로 다루지 않습니다. 재미나지요. 그러면, ‘첫걸음’에서 끝일까요? 그럴 수 없을 테지요. 첫걸음에서 끝날 일은 없을 테지요. 처음을 지나면, 이제부터 모두 새롭습니다. 그래서, 우리 걸음은 꼭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첫걸음’이요, 다른 하나는 ‘새걸음’입니다. 첫걸음을 뗀 사람은 이제부터 나아갈 새로운 걸음을 생각합니다. 첫걸음을 지나간 사람은 앞으로 늘 새롭게 걷습니다. 새로운 걸음은 새로운 삶입니다. 그러니까, 걷는 사람은 늘 새롭습니다. 새롭지 않다면 걸음이 아니고, 걸음이 아닌 걸음을 걷는다면 모두들 너무 괴롭고 고단합니다. 4348.1.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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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25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새로운..^^
 

‘싸우는 아이’에서 ‘노는 아이’로



  나는 오늘부터 새로운 ‘아이’로 살기로 합니다. 내가 이제껏 살던 모습은 ‘싸우는 아이’입니다. 나는 나를 둘러싼 바람이 ‘사회의식’이었기에, 이러한 사회의식에 갇히거나 눌리거나 치이지 않도록 늘 싸우며 살았습니다. 누가 나를 어떤 틀에 가두려 한다든지, 누가 나를 어떤 굴레로 씌워서 누르려 한다든지, 누가 나를 어떤 쳇바퀴에서 맴돌도록 친다든지 할 적마다 싸웠습니다.


  오늘부터 나는 새로운 생각을 새로운 바람한테 맡겨서 새로운 마음에 깔아 새로운 몸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노는 아이’로 살려 합니다. 집에서 살림을 하거나 바깥에서 돈을 벌거나 아이들과 어우러지거나 곁님과 사랑하거나 글을 쓰거나, 내 마음이 늘 ‘노는 아이’로 웃는 길을 가려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 태어날 적부터 ‘노는 아이’였고, 우리 아이들을 ‘노는 아이’로 낳았으며, 우리 곁님도 ‘노는 아이’인데다가, 우리 모두 누구나 ‘노는 아이’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4348.1.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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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25 08:44   좋아요 0 | URL
노는..의 의미가 일이 없는 할 일이 없이..
로..비춰져버린지..오래라..^^
 

오늘로 '열흘에 걸친 람타학교 배움마실'을 마친다.

버스 가는 때를 살피니

아무래도 오늘 바로 고흥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했는데,

함께 배움마실에 나선 이웃 가운데

내 곁님 오래된 동무하고

택시를 함께 타고 일산으로 가기로 한다.


일산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또는 새벽에 고흥으로 돌아간다.


나는 숲집을 이루어 춤꾼이 되고자 하는 뜻을 세워 이곳에 왔고,

고흥에 숲집을 곱게 지어 춤꾼으로 아이들과 놀고자 한다.


'람타'를 배운다고 해서 모두 곧바로 깨달을 수 있지는 않을 테지만,

'책읽기'가 아닌 '삶짓기'를 하도록

첫걸음(비기닝)과 새걸음(어드밴스)을 함께 듣는다면,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누구나 배우리라 본다.


자, 이제 오늘 아침에 하는 마지막 배움길을 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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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1-26 07:21   좋아요 0 | URL
늘 좋은 글과 우리말로 깨달음을 얻습니다. 고맙습니다.

파란놀 2015-01-26 21:15   좋아요 0 | URL
저도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