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TV 뉴스



  경기 고양시 백석역에 있는 버스역에서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아침 여덟 시부터 달리는 이 시외버스는 순천에 낮 한 시나 되어서야 닿을 듯하다. 그런데, 이 시외버스는 아침 여덟 시부터 낮 한 시가 거의 다 된 이즈막까지 내내 TV를 튼다. 누가 보라고 틀까? 버스에 탄 사람들을 죽 둘러보니, 나 말고는 깨어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는데, 누가 보라고 틀까? 그렇다고 버스 일꾼이 TV를 볼 수 있지도 않다. 왜 트는가? 잠든 사람들 머릿속에 저 텔레비전 소리가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시외버스 TV 뉴스는 ‘사건·사고’를 참으로 꼼꼼히 보여준다. 어떤 손놀림으로 다른 사람 것을 훔치거나 가로채는지 밝힌다. 왜 이럴까? 그러니까, ‘아직 훔치거나 가로챌 줄 모르는’ 사람들더러, 앞으로는 제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이렇게 훔치거나 가로채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범죄 수법’과 ‘피해 금액’을 왜 이다지도 꼼꼼하면서 큼지막하게 ‘가르쳐’ 주는가? 4348.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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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숲’ 책읽기



  노래방에 간다. 내가 스스로 노래방에 가려고 한 적은 마흔두 해를 살면서 처음이다. 장모님과 장인어른한테 말을 여쭈고, 곁님 막내동생이랑, 곁님 동생하고 함께 삶을 짓는 곁님한테 말을 물어, 모두 다섯 사람이 노래방에 간다.


  어떤 노래를 부를 마음이기에 노래방에 가는가? 모른다. 다만, 나는 춤을 보여주고 싶어서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춤사위가 나를 살리고, 내가 춤사위로 살아날 적에, 내 삶이 꽃으로 피어나는 이야기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노래방에 간다. 나와 곁님 둘레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노래방에 간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춤을 추다가 문득 나도 노래를 몇 가락 뽑아야겠다고 느낀다. 그러면 어떤 노래를 부르면 될까? 처음에는 신해철 노래가 하나 떠오르고, 다음으로는 이선희 노래가 하나 떠올랐으며, 김현식 노래 하나와 심수봉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이 가운데 이선희가 부른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노래를 소릿결(키)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부른다. 여느 사내는 이 노래를 부르기 아주 어렵다고 하지만, 나는 오늘 이곳에서 이 노래가 어렵다느니 쉽다느니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부른다고 생각하기에 부른다.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데,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소리를 뽑’기 때문이다. 나한테 있는 숨결을 뽑아서 바람처럼 실어 나르기 때문이다. 모든 소릿결을 아주 부드러우면서 거침없이 쏟아낸다. 나 스스로 내 노래에 놀라면서, 나 스스로 내 새로운 노래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면서 흔히들 소리를 쥐어짜려고 온몸을 비틀거나 허리룰 숙이곤 하지만, 나는 그저 가만히 선 채, 게다가 춤을 온몸으로 신나게 추면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른다. 두근두근 가슴이 뛰다가 터지도록 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아주 새롭게 배운다. 그래, 그렇구나. 우리 겨레가 부를 노래는 ‘죽음길노래(장송곡)’ 같은 멍청한 〈애국가〉가 아니라, 가슴이 뛰다가 터지도록 북돋우는 〈아름다운 강산〉이어야겠구나 하고 느낀다.


  그러나, 하나가 걸린다. ‘강산’이란 무엇인가? 이 낱말은 뜬구름이다. ‘없는 구름’이다. 우리 겨레는 ‘강산’ 따위 낱말을 안 썼다. 중국이라면 썼을는지 모르나, 한국사람은 먼 옛날부터 이런 멍청난 낱말을 안 썼다. 그러면 한국말은 무엇인가? ‘숲’이다. 냇물이 흐르고 골짝이 깊은 곳은 ‘숲’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아름다운 숲〉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노랫말을 손질해서 우리 아이들과 날마다 이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나는 내가 되어 아름다운 삶을 짓고, 나와 너, 그러니까 어버이와 아이는 함께 이곳에서 아름다운 숲을 짓는다. 4348.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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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6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5-01-26 21:15   좋아요 0 | URL
네, 즐겁게 잘 돌아왔어요.
언제나 우리 모두
가슴속에 있는 숨결을
곱게 살려야 곱구나 하고 새롭게 바라보았어요
고맙습니다~ ^^
 
너와 나의 발자취 4 - 시간여행 카스가연구소
요시즈키 쿠미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50



씨앗으로 남는 발자국

― 너와 나의 발자취 4

 요시즈키 쿠미치 글·그림

 정은서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14.2.28.



  나무가 씨앗 한 톨을 떨어뜨립니다. 이 씨앗은 바람을 타고 훨훨 납니다. 어미나무 옆에 떨어지는 씨앗도 있지만, 어미나무한테서 멀리 떨어진 씨앗도 있습니다. 씨앗은 저마다 어미나무 곁에서 떨어져 새로운 곳에 깃든 뒤 천천히 자라는데, 하나하나 새로운 어미나무로 거듭납니다.


  씨앗은 어미나무 품에 안겨서 자라는 동안 꿈을 꾸지요. 무슨 꿈을 꾸느냐 하면, ‘나도 앞으로 커서 우리 어머니(어미나무)처럼 될까?’ 하고 꿈을 꿉니다. 우리 어머니처럼 되면, 앞으로 ‘나도 씨앗을 맺겠구나’ 하고 새로운 꿈을 꾸어요. 씨앗은 어미나무 품에서 꿈을 꾸면서 즐겁습니다. 포근하게 감싸는 어미나무 숨결을 느끼면서 씩씩하고 튼튼하게 하루를 일으켜요.



-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모든 결말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었어요. 즉 ‘당신 어깨의 짐은 사라졌’니다. 이제, 이 일은 잊어버리는 것이 어떨까요?” “나는, 단지 어깨의 짐을 내려놓고 싶었을 뿐인가?” (36쪽)

- “겨우 이걸로 두 사람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바뀌었어?” “글쎄? 진정한 엔딩은 앞으로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50쪽)



  어머니가 아이를 낳습니다. 어머니는 열 달에 걸쳐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마음으로 속삭입니다. 곱게 꿈을 꾸면서 곱게 꿈을 지으렴, 곱게 꿈을 품으면서 곱게 꿈을 가꾸렴, 하고 속삭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는 어머니가 날마다 속삭이는 따사로운 말을 들으면서 씩씩한 꿈을 짓습니다. ‘나도 커서 어머니처럼 사랑으로 내 아이를 낳아서 보듬는 빛이 되겠어’ 하고 꿈을 짓습니다. 이윽고 열 달이 차면, 기쁘게 노래하면서 이 땅에 태어나,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싱그러이 웃음을 베풀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하루를 누리면서 이 땅에 튼튼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 “전 세계의 비극을 직접 목격하고 진실이란 이름 아래 그걸 밥벌이로 삼고, 그런 작품으로 명예를 얻으면 얻을수록 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혼탁해졌어. 바로 그랬을 때 만난 사람이, 이 팬티 도촬의 장인, 서브컬처 사진가 즈키니 주니어 씨.” (70쪽)



  요시즈키 쿠미치 님이 빚은 만화책 《너와 나의 발자취》(서울문화사,2014) 넷째 권을 읽은 뒤 곰곰이 헤아립니다. 내 말은 언제나 씨앗이 됩니다. 내가 따사로운 마음으로 말을 하면, 내 말은 따사로운 숨결이 되어 흐릅니다. 내가 차가운 마음으로 말을 하면, 내 말은 차가운 숨결로 바뀌어 흐릅니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따사롭거나 차가울 뿐입니다. 내 말은 늘 내 마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서로 어떤 사이가 되어 삶을 누리고 싶은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내 말 한 마디가 어떤 씨앗이 되어 이녁한테 흘러 가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 “예전에 언니가 이런 말을 했어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해 본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 저야말로 초대면의 사람이 울어 준 건 생전 처음이에요.” (146쪽)

- “범죄자든 선량한 사람이든, 미래를 바꾸는 것은 ‘그 사람의 의지’에 달린 거잖아? 소장님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 건방진 생각은 집어치우시지?” (163쪽)



  꽃씨는 꽃이 되고, 나무씨는 나무가 됩니다. 풀씨는 풀이 될 테지요. 그러면 꽃과 나무와 풀은 무엇이 될까요? 이 세 가지는 함께 어우러져서 숲이 됩니다.


  말씨는 말이 됩니다. 아무렴, 그렇습니다. 말이 되는 말 씨앗인 말씨인데, 말씨는 앞으로 무엇이 될까요? 말은 바로 삶이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은 언제나 내 삶이 됩니다. 내가 읊는 말은 너와 나 사이에서 삶이 됩니다.



- “아사키는 내가 처음으로 얻은, 같은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야. 하지만 아사키. 이제 남들처럼 평범한 중학생이 되자. 폭력이나 상처에 겁먹지 않고, 나 외에도 새 친구를 잔뜩 만들고.” (179쪽)



  삶을 차근차근 돌아보면, 내가 여태 어떤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삶을 하나하나 짚으면, 내가 그동안 어떤 말을 마음에서 꺼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발자취는 내 말자취입니다. 내 하루는 내가 말한 대로 흐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어떤 말을 하려 하는지 돌아보셔요. 오늘에 이어 모레에 어떤 말을 할 마음인지 짚어요. 말은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말은 꿈이 될 수 있습니다. 말은 생채기가 되거나, 앙금이 될 수 있습니다. 내 말이 어떤 삶이 되도록 하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4348.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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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깊이 잠이 든다



  열흘에 걸친 배움마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배움마실을 하는 동안 나는 나한테 몇 가지 말을 걸었다. 첫째, 배운다. 둘째, 잠을 안 잔다. 셋째, 이웃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리하여, 나는 내가 나한테 말한 대로 세 가지를 늘 이룬다. 배움마실을 한창 하면서 다른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 잠을 하루에 네 시간 잔다. 낮에 살짝 숨을 돌리고자 1분이나 5분쯤 눈을 붙인다.


  내가 하는 일은 ‘말짓기’이다. 나는 말을 배워서 말을 짓는 일을 한다. 이를 사회에서는 ‘한국말사전 편집’이라 가리키지만,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은 ‘말짓기’이다.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배운다고 할 적에는 ‘말’을 배운다는 뜻이다. 말을 배워서 말을 짓다 보면, 어느새 삶을 짓는다.


  그런데,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로 돌아가는 길에, 태블릿을 꺼내 글을 한 꼭지 쓰는 동안 천천히 졸음이 찾아온다. 무엇일까? 나는 밤에 꿈을 꾸면서 잠들 때를 빼고는 안 자기로 했는데 왜 졸음이 오지? 아무튼 글은 마무리짓고, 태블릿은 옆으로 치운다. 이러고 나서 머리끈을 풀고 걸상에 머리를 가만히 기댄다. 바라본다. 이 졸음이 무엇인지 바라본다. 나는 어느새 잠이 든다. 그리고 코를 살짝 골기까지 한다. 코를 고는 소리를 듣고는 문득 잠에서 깬다. 이러다가 다시 잠들고, 다시 깨고, 또 잠들고, 또 깬다. 이러기를 한 시간쯤 하니, 몸이 스르르 풀린다. 무엇인가 몸에 맺힌 응어리가 하나 사라진 듯하다. 응어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가 스며든 듯하다. 무엇일까. 아직 잘 모른다. 그리고, 아직 잘 모르기에, 나는 앞으로도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려 한다. 4348.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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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큼하게


생각은 늘 삶이 됩니다.
생각은 말을 거쳐 마음이 됩니다.
푸르게 흐르는 바람을 타고
씨앗이 내 둘레로 퍼져서
내 말은 언제나 나무로 자랍니다.
아주 작은 씨앗이 큰나무 되고,
이윽고 숲으로 우거지는 만끔,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품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와 한 해와 온삶이
고이 새롭습니다.
상큼하게 생각하며 말하소서.


4348.1.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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