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친구 웅진 우리그림책 1
한태희 지음 / 웅진주니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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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80



같이 놀 때에 즐겁습니다

― 로봇 친구

 한태희 글·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2005.10.20.



  어른들이 죽음수렁으로 내몰아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살짝 벗어나 배를 타고 나들이를 가던 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배에 갇힌 채 그대로 바닷속에 잠겼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배에서 빠져나와 살아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고운 숨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바닷속에 가라앉아 죽은 아이들이 죽지 않았다면, 무엇이 이 아이들을 기다렸을까요. 바닷속에 가라앉지 않고 살아난 아이들 앞에는 무엇이 이 아이들을 기다릴까요.



.. 나에게는 로봇 친구가 있습니다 ..  (2쪽)



  아이들은 며칠쯤 학교를 벗어나 뛰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작 며칠을 뛰놀 뿐, 다시 학교에 갇힌 채 입시지옥에 허덕여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태어나기 앞서도 어머니 뱃속에서 영어 노래를 들어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태어나서 뒤집고 볼볼 길 적에 영어 노래를 다시 들어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두 발로 서서 뛰놀 무렵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들어가서 또 영어 노래를 부르면서 영어 낱말을 배워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뛰놀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빈터를 모두 주차장이 빼앗습니다. 시골에서는 빈터 하나 없이 모조리 논이나 밭으로 일구는데, 빈터, 그러니까 수풀이 있으면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또는 비닐쓰레기를 태우는 자리로 빈터를 삼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신나게 뛰놀지 못합니다. 그나마 시골 아이는 웬만하면 한층집에서 살지만 도시 아이는 층집에서 살아요. 층을 이룬 아파트에서는 뛰지도 달리지도 구르지도 노래하지도 못합니다. 피아노를 신나게 칠 수 없고 피리를 마음껏 불 수 없어요.


  바다에 빠졌다가 살아난 아이들을 기다리는 한 가지는 입시지옥입니다. 입시지옥을 빠져나오면 취업지옥이 기다립니다. 취업지옥을 빠져나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 앞에는 온통 지옥입니다. 하늘나라 아닌 지옥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 지옥만 만들어 놓고는 밀어넣습니다. 아이들은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목숨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외롭습니다. 쓸쓸합니다.



.. 목요일, 나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큰고시로 말했습니다. “로봇, 꼭꼭 같이 놀자.” 하지만 로봇은 피자를 엄청나게 많이 만드느라 바빴습니다 ..  (18∼21쪽)



  오늘날 아이들은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주머니에 모래가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콧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이마에 땟국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손톱 밑에 때가 끼지 않습니다. 놀지 못하니까요. 놀 수 없으니까요.


  어릴 적에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푸른 나날 누리는 때에도 놀지 못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친들 놀지 못합니다. 대학교까지 마쳤어도 놀 겨를이 없어요. 아이들한테 놀이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얼싸안고 춤추거나 노래할 줄 모릅니다. 배운 적이 없거든요. 아이들은 어른들마냥 담배를 태우고 술을 마십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흉내내를 내느라 바빠 일찌감치 입술을 박고 살갗을 부빕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꽁무니를 좇느라 동무를 주먹으로 괴롭히고 등수와 서열과 계급과 신분과 재산으로 가릅니다.



.. 로봇은 한참을 자고, 자고, 또 잤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늦게서야 일어났습니다. “우리, 같이 놀자.” 로봇은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  (30쪽)



  한태희 님이 빚은 그림책 《로봇 친구》(웅진주니어,2005)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림책 《로봇 친구》에는 ‘로봇 친구’가 나옵니다. 그런데, 로봇은 ‘친구’라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놀지 못합니다. 놀 겨를이 없습니다. 로봇을 친구로 둔 ‘아이’도 놀 겨를이 없습니다. 이 공부를 하고 저 숙제를 하며 그 유치원(또는 학교)에 가야 합니다. 이레 가운데 일요일 늦은낮에야 비로소 같이 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와 로봇은 무엇을 하며 놀까요. 무엇을 하며 놀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한테 어떤 놀이를 물려주나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서로 동무 삼아 즐겁게 놀도록 맑고 밝으며 너른 빈터를 내주는가요. 아이들이 흙과 모래와 돌을 만지도록 해 주는가요. 아이들이 냇가에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할 수 있는가요.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놀이를 잊거나 잃으면서 아이한테 아무런 놀이를 안 물려주거나 못 이어주지 않나요. 오직 입시지옥으로 내몰고, 그예 취업지옥에 디밀면서 아이들을 들볶거나 괴롭히지 않나요.


  같이 놀 때에 즐겁습니다. 같이 웃고 노래할 때에 즐겁습니다. 레크레이션이 아닌 놀이입니다. 여가나 취미가 아닌 놀이입니다. 여행이나 관광이 아닌 놀이입니다. 온몸으로 놀고 온마음으로 놉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기쁘게 손을 잡습니다.


  길거리를 보셔요. 도시에도 시골에도 놀이터란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는 잔디밭이 있는 공원이 있을는지 모르고, 어르신 운동기구를 몇 놓은 손바닥만 한 쉼터는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신나게 땀흘리며 뛰놀 빈터는 이 나라 어디에도 없습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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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물러서는 마음



  이야기는 서로 마음과 마음으로 나눕니다. 이야기는 지식이나 정보로는 나누지 않아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식이나 정보로 이야기를 나누려 해요. 이때에는 겉보기로는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정작 이야기라 할 수는 없습니다. ‘지식나눔’이나 ‘정보나눔’이 될 뿐입니다.


  요즈막에 사람들이 세월호 이야기에 그토록 힘을 쏟는데, 막상 ‘예방접종’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예방접종이 무엇인지 얼마나 살피실 수 있을까요. 예방접종에 들어가는 성분이 무엇인지 알면서 어른들이 아이한테 이 주사를 놓을까요. 그저 맞히라고 하니까 맞히지 않을까요. 수은과 포르말린과 알루미늄을 버젓이 집어넣는 예방주사인데, 이런 주사를 반드시 맞혀야 아이가 아프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까요.


  2007년에 나온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스테파니 케이브)라는 책과 2006년에 나온 《예방접종, 부모의 딜레마》(그레그 비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책은 예방접종을 어떤 화학약품으로 만드는가를 낱낱이 밝힙니다. 2014년에 《우리 집 백신 백과》(로버트 W.시어스)라는 책이 한국말로 나옵니다. 이 세 가지 책을 보면, 오늘날 이 나라 어른들이 아이한테 맞히는 예방주사에 수은·포르말린·알루미늄이 들어간다고 밝힙니다. 예방접종 문제를 조금 살핀 분이라면, 이 세 가지 때문이라도 예방접종이 무척 무서운 줄 느낍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어버이는 예방접종 성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와 학교와 병원에서 맞히라고 하니까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할’ 뿐입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은 어른들 탓입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세월호가 가라앉았아도 아이들을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듯이’ 내몰기만 하고, 우리 어른들 스스로도 ‘삶을 찾고 사랑을 찾으며 사람을 찾는 길’로 좀처럼 접어들지 않습니다. 언론보도에 자꾸 얽매이기만 한다면 참모습도 못 보고 참을 가리는 거짓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모두들 세월호 취재와 보도에 목을 매달까요.


  한발 물러설 적에 비로소 참모습을 봅니다. 한발 물러서지 않으면 참모습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헤엄을 못 치는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곳은 깊은 물속이 아니라 얕은 곳입니다. 아이 손을 잡고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어른도 아이도 깨닫습니다. 한발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비로소 참모습을 볼 수 있고, 삶과 사랑을 볼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어른들 잘못 때문에 그만 푸른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떠난 아이들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야 하던 숨결입니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즐겁게 살아갈 숨결입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전쟁이 터져도 씨앗을 심었습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전쟁이 터지는 한복판에서도 풀을 뜯고 밥을 지으며 베틀을 밟고 절구를 찧었습니다.


  세월호라는 배가 가라앉아 수많은 아이들이 죽고 말았지요.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른들은 우리 삶과 삶터를 어떻게 다시 지어야 할까요. 우리 아이들을 대학입시로 똑같이 밀어넣어야 할까요. 세월호에서 빠져나와 살아남은 아이들한테 다시 교과서를 외우도록 하고 대학입시만 살피도록 해야 할까요.


  씨앗을 심는 손길을 돌아보고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한발 물러서서 참모습을 읽고 참삶을 가꾸는 길로 걸어갈 수 있기를 빌어요. 한발 물러서는 까닭은 두발 앞으로 나오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발 물러나는 까닭은 앞으로 한결같이 씩씩하게 걸어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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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4-04-29 05:14   좋아요 0 | URL
글이라는 게 한 허리를 베어쓰면 독해지는 것 같아요...독은 베는 칼에 묻은 것일 텐데요...

숲노래 2014-04-29 06:40   좋아요 0 | URL
허리란 무엇이고
독이란 무엇일까요.

글이든 삶이든 사랑이든 사람이든
누구나 스스로 읽으려 하는 만큼 읽고
마주하려 하는 만큼 마주하며
받아들여 살아내려 하는 만큼 받아들여 살아낼 수 있습니다.
 

아이 그림 읽기

2014.4.22. 큰아이―만화 그렸어



  도라에몽 만화책을 날마다 수없이 들여다보던 큰아이가 문득 ‘만화 그리기’를 하겠다고 나선다. 큰종이를 여럿 챙겨서, 만화책을 들여다보면서 네모칸을 그리고 네모칸마다 그림을 집어넣는다. 아이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모습을 옮겨서 그리는 듯하다. 네모칸을 모두 다른 빛으로 그리고, 네모칸에 깃드는 모습도 모두 다른 숨결로 그린다. “내가 그린 만화 진짜 재미있다!” 하고 외치면서 만화놀이를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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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78) 존재 178 : 올챙이 같은 존재


청소년은 꼭 올챙이 같은 존재다. 사람이면서도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기에 여러 가지로 제약 사항이 많은 존재

《박상률-청소년문학의 자리》(나라말,2011) 17쪽


 올챙이 같은 존재다

→ 올챙이 같다

→ 올챙이 같은 숨결이다

→ 올챙이 같은 모습이다

 …



  옛날에는 ‘청소년’이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아이 티를 벗으면 어른이라고 했습니다. 열세 살이건 열다섯 살이건, 아이 티를 벗으면 제몫을 단단히 할 줄 아는 어른으로 여겼습니다. 나이는 많지만 제몫을 단단히 하지 못한다면 ‘철부지’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아니지만 철을 모르니 철부지요, 철모르쟁이입니다.


  보기글을 살피면 앞뒤로 ‘존재’가 나타납니다. 앞쪽에서는 ‘존재’를 덜면 됩니다. 뒤쪽에서는 ‘숨결’이나 ‘모습’ 같은 낱말로 손보면 됩니다. 앞쪽과 뒤쪽에 나란히 ‘숨결’이나 ‘모습’을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청소년은 꼭 올챙이 같다. 사람이면서도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기에 여러 가지로 걸림돌이 많은 숨결


‘제약(制約)’은 “조건을 붙여 내용을 제한함”을 뜻합니다. ‘제한(制限)’은 “일정한 한도를 정하거나 그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음”을 뜻합니다. “제약 사항(事項)이 많은”이라 할 때에는 “막히는 사항이 많은”을 가리킵니다. 막히는 것이란 사회에서 어른이 청소년한테 막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걸림돌이 많은”으로 손볼 만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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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79) 존재 179 :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며


이 등장인물은 작가가 끙끙거리며 고민하기도 전에 먼저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며 재빨리 뛰쳐나왔습니다

《마쓰타니 미요코/햇살과나무꾼 옮김-안녕 모모, 안녕 아카네》(양철북,2005) 180쪽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며

→ 제 모습을 드러내며

→ 제 얼굴을 드러내며

→ 제 이름을 외치며

→ 나 여기 있다고 외치며

 …



  보기글을 헤아리면,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외치며 뛰쳐나왔다”는 소리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일이란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일입니다. ‘나를 보라고 외치’는 일입니다.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모습은 ‘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번역을 하거나 창작을 할 적에 아이들 눈빛을 살피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읽을 문학을 쓰거나 옮길 적에 아이들 말빛을 헤아리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처럼 말하면 얼마나 알아들을까요. 아이들이 알아듣도록 쓰는 글은 어떻게 가다듬어야 할까요. 4347.4.28.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아이들은 내가 끙끙거리며 생각하기 앞서 먼저 제 모습을 드러내며 재빨리 뛰쳐나왔습니다


‘등장인물(登場人物)’ 같은 낱말은 한자말로 여기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만, 글흐름을 보면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이니 ‘아이들’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고민(苦悶)하기도 전(前)에”는 “생각하기 앞서”나 “애태우기 앞서”로 손질하고, ‘자신(自身)의’는 ‘제’로 손질하며, ‘주장(主張)하며’는 ‘외치며’나 ‘드러내며’로 손질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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