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571) 의견 충돌이 있다


불규칙한 정간, 압수 등이 밥먹듯 일어나는 상황에서 국장과 일선 기자와의 대립이랄까, 의견 충돌이 자주 있었던 것이다

《김정-화첩에 담긴 조선일보 풍경》(예경,2005) 34쪽


 의견 충돌이 자주 있었던 것이다

→ 의견이 자주 부딪혔다 (?)

→ 생각이 자주 부딪혔다 (?)

→ 생각이 자주 어긋났다

→ 생각이 자주 엇갈렸다

→ 생각이 엇갈리는 일이 잦았다

→ 생각이 어긋나는 일이 잦았다

 …



  요즈음 퍽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투 “의견 충돌이 있다”입니다. 이런 말투는 어디가 말썽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같은 말투는 워낙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쓰이거든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의견 충돌이 있다”라든지 “의견이 있다”라든지 “충돌이 있다” 같은 말투는 한국사람이 예전에 쓴 적이 없는 말투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한자말과 일본 말투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서양말과 번역 말투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채 들어왔으니, 이런 말투는 바로 이무렵에 슬그머니 스며들어서 자리를 잡습니다. 그래서 “사귐이 있다”나 “만남이 있다”나 “부딪침이 있다”나 “즐거움이 있다”나 “기쁨이 있다” 같은 말투까지 자꾸 나타납니다. 한국말다운 한국말은 자리를 못 잡고, 이도 저도 아닌 뒤숭숭한 말투가 끝없이 나타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충돌(衝突)’이라는 한자말 때문에 이 말투가 얄궂은지 아닌지 잘 못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자말 ‘충돌’을 한국말 ‘부딪치다’나 ‘맞서다’로 풀어낸 다음에 생각해 보셔요. 그러면 “부딪침이 있다”나 “맞섬이 있다”가 되는데요, 한국사람은 ‘부딪쳤다’나 ‘맞섰다’처럼 말할 뿐입니다.


 자동차 충돌

→ 자동차가 부딪힘 . 자동차가 박음

 의견 충돌

→ 생각이 맞섬 . 생각이 엇갈림 . 생각이 어긋남

 무력 충돌

→ 힘으로 부딪힘 . 힘으로 맞섬 . 툭탁거림

 온건파와 개혁파의 충돌

→ 온건파와 개혁파가 부딪힘 . 온건파와 개혁파가 맞섬


  무늬만 한글일 때에는 말 그대로 무늬만 한글입니다. 껍데기만 한글로 적는 글이 아니라, 속과 겉이 모두 알찬 한국말이 되도록 해야지요. 토씨만 한글로 붙이는 글이 아니라, 오롯이 한국말이 되도록 해야지요. 4339.6.27.불/4348.2.2.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정간·압수가 밥먹듯 끝없이 일어나니, 국장과 기자가 자꾸 맞선다고 할까, 생각이 엇갈리는 일이 잦았다


‘불규칙적(不規則的)’이 아닌 ‘불규칙’으로 적으니 반갑지만, 이 또한 ‘끊이지 않는’이나 ‘끝없는’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등(等)’은 ‘들’로 고치면 되는데, 아예 덜어도 됩니다. ‘상황(狀況)’은 ‘흐름’으로 다듬을 낱말이지만, 이 또한 덜 수 있습니다. “국장과 일선(一線) 기자와의 대립(對立)”은 “국장과 기자가 맞선다”로 손질할 만하고, “자주 있었던 것이다”는 “자주 있었다”나 “잦았다”로 손질합니다. ‘일선 기자’는 “발로 뛰는 기자”로 손질해도 잘 어울립니다.



충돌(衝突) : 서로 맞부딪치거나 맞섬

   - 자동차 충돌 / 의견 충돌 / 무력 충돌 / 온건파와 개혁파의 충돌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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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백
팀 윈튼 지음, 앤드루 데이빗슨 그림, 이동옥 옮김 / 눌와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숲책 읽기 70



아름다운 숲

― 블루백

 팀 윈튼 글

 이동욱 옮김

 눌와 펴냄, 2000.2.15.



  “볏짚은 벼가 가장 좋아해요.” 시골에서 볍씨를 심어서 벼를 가꾸는 일꾼이라면 모름지기 이처럼 말합니다. 볏짚을 가장 좋아하는 목숨은 바로 벼입니다. 벼는 볏짚을 먹고 이듬해에 새롭게 기운을 냅니다.


  풀씨는 ‘시든 풀잎’을 가장 좋아합니다. 나무는 ‘가랑잎’을 가장 좋아합니다. 겨울을 앞두고 풀잎이 시들어 흙으로 돌아가는데, 이 아이들은 이듬해 봄이면 거의 자취를 감추고, 이듬해 여름이면 ‘지난겨울에 시든 풀잎’은 어느새 흙으로 바뀝니다. 가랑잎도 이와 같아요. 가랑잎은 이듬해 봄과 여름을 거치면서 조용히 흙으로 바뀝니다. 흙으로 바뀐 가랑잎은 나무를 살찌우는 가장 멋지고 아름다우면서 놀라운 거름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웬만한 시골에서는 볏짚을 기계로 묶어서 내다 팝니다. 가을걷이를 마치면 볏짚 묶는 일을 하는 사람이 기계를 부려서 척척 묶습니다. 이렇게 묶은 다발을 ‘소 공장(소를 키우는 곳. 외양간이나 소우리가 아닌, 이제는 닭이나 돼지나 소를 ‘공장’ 같은 곳에서 가두어 키우니 ‘소 공장’, ‘닭 공장’, ‘돼지 공장’이라 해야지 싶습니다)’에 몇 만 원씩 주고 판답니다. 시골일은 어느새 도시를 닮아 돈벌이가 되어야 하다 보니, 볏짚은 돈을 받고 판 다음, 빈 들판에는 온갖 비료와 농약을 줍니다.



.. 두 사람은 전복 무리에서 하나에서 두 마리씩만 캐고 나머지는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남겨두었다. 해초와 바위 틈 사이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튀어나와 남은 전복 살점들을 뜯어먹거나, 그들이 휘저어놓은 침전물들을 집적거렸다 ..  (15쪽)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일꾼이 새끼고기를 싹쓸이를 하면 어떻게 될까 헤아려 봅니다. 지난날에는 새끼고기나 ‘덜 여문 고기’는 바다에 풀어 주었는데, 오늘날에는 이렇게 안 하기 일쑤입니다. 손이 많이 가서 번거롭다고도 하지만, 바다와 뭍과 지구별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그물 뿌리고 걷는 기계를 써서 새끼고기를 ‘죽인 채’ 낚으니, 바다로 새끼고기를 풀어 준다고 해도 ‘죽은 물고기’를 뿌리는 셈이기도 합니다.


  바다에서 하듯이 논밭에서도 ‘흙한테 돌려주는 짚’이 없이 싹 거두면, 이 땅은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 앞날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흙에서 거두기만 하고, 흙을 살찌우지 않을 적에, 이 지구별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은 앞으로도 사람을 먹여살릴 곡식이나 열매를 내어줄까요? 화학비료와 농약은 앞으로 언제까지 공장에서 뽑아내어 땅에다 뿌릴 수 있을까요?


  범도 이리도 여우도 늑대도 멧골과 들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기껏해야 멧돼지와 노루와 고라니와 너구리와 멧토끼 몇 마리가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작 몇 마리 살아남은 숲짐승이 푸성귀나 남새를 조금 갉아먹는 몸짓에도 소름이 돋는다고 합니다. 숲짐승이 살 터를 죄다 빼앗아서 숲짐승이 숲에서 먹을 것이 없는데, 이러한 얼거리를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먹이가 없으니 마을로 내려와서 밭을 들쑤십니다. 먹이가 있으면 숲짐승이 왜 마을에 내려올까요? 먹이가 없고 보금자리가 자꾸 파헤쳐지거나 무너지니까 밭자락으로 자꾸 다가오려고 하는 숲짐승입니다.



.. 아벨은 답답했다. 도회지에서는 사람들이 포도송이처럼 한데 몰려 있었고 사람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아벨은 결코 혼자가 아닌 것같이 보였다. 사람들 틈에 휩쓸려 학교로 갔고 그들 틈에 뒤섞여 숙소로 돌아왔다. 어느 곳에서든 쾅쾅 문을 여닫는 소리, 탁탁 신발을 걷어차는 소리,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밤에 잠자리에 들 때조차도 숙소는 기침 소리, 고함 소리, 배숙돤을 타고 물 흐르는 소리로 가득 차는 것이었다. 아벨은 사방팔방으로 포위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54쪽)



  팀 윈튼 님이 쓴 《블루 백》(눌와,2000)을 읽습니다. 바다라고 하는 ‘숲’을 사랑하면서 삶을 곱게 가꾸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리고, 바다라고 하는 숲을 숲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바다를 오직 ‘돈’으로 마주하려고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습니다.


  돈이 되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될까요? 돈을 밝히려고 하면서 삶을 망가뜨리거나 사랑을 무너뜨리거나 사람을 괴롭혀도 될까요? 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도 아이들한테 삶이나 사랑이나 사람을 못 가르치기 일쑤입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직업훈련을 시키거나 대학입시 공부만 시킵니다. 삶을 보여주는 학교란 없고, 사랑을 담은 교과서란 없으며, 사람됨을 몸소 보여주는 교사조차 매우 드뭅니다.


  앞으로 아이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연봉을 많이 받는 도시내기로 살면 될는지요. 돈만 바라보는 어른으로 자라면 될는지요. 사랑을 모르는 채 오직 돈벌이에만 눈을 밝혀도 될는지요.


  군대가 전쟁무기를 앞세워도 전쟁이지만, 사람들이 꿈과 사랑을 잊거나 잃은 채 돈바라기로 흐르는 모습도 전쟁입니다. 서로 아끼지 않을 때에도 전쟁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지 않을 적에도 전쟁입니다.



.. 그해 여름 아벨은 자연에는 탐욕스러운 인간만큼 잔인하고 야만적인 존재는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  (93쪽)



  들짐승이나 숲짐승은 거칠지 않습니다. 그저 들넋이요 숲넋입니다. 들짐승이나 숲짐승은 먹이를 찾을 뿐, 골목동네를 허물거나 군사기지를 세우지 않습니다. 들짐승이나 숲짐승은 짝짓기를 할 뿐, 전쟁무기나 핵발전소나 송전탑 따위로 마을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목숨은 오직 ‘돈바라기 사람’입니다. 돈에 얽매인 사람이 끔찍한 짓을 일삼습니다. 돈에 끄달리는 종이 된 사람이 이웃을 괴롭힙니다.


  돈을 버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돈도 아름답게 벌어서 사랑스레 쓸 수 있습니다. 돈을 벌되 아름다운 꿈을 건사하면서, 착하고 참다운 손길로 즐겁게 쓰면 됩니다.


  그러니까, 삶을 이루는 바탕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을 때에는 돈을 벌든 밥을 짓든 옷을 깁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안 아름답습니다.



..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놓든 어머니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완강하고 또 굳건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얼마나 어머니를 지치게 하고 어머니의 시간을 허비하며 어머니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까. 사람들은 그 땅이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들은 롱보트 만이 아벨의 어머니에게는 한 생애이자 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땅이 어머니에게 남편같은 존재였다는 것도 역시 몰랐을 것이다 ..  (100쪽)



  관광지는 누구한테 쓸모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골프장은 누구한테 뜻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보금자리가 있고, 일터가 있으며, 이웃과 어우러지는 마을이 아름답다면, 굳이 관광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이라면, 따로 놀이기구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노래하고 웃으면서 일하는 어른한테는 골프장이 부질없습니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이 있어야 야구나 축구를 하지 않습니다. 너른 들이 모두 야구장이면서 축구장이요 테니스장에다가 농구장입니다. 시멘트와 쇠붙이로 뚝딱뚝딱 올려야 경기장이 되지 않습니다. 들이 놀이터요, 숲이 삶터입니다.



.. “어머니는 예나 다름없이 바다를 이해하는 분이시오. 어머니는 그 어디로도 간 적이 없소. 어머니는 채소를 키우고 물고기를 드시고, 그러면서 한 장소를 구한 거요. 나는 명색이 과학자, 제딴은 명사지만, 결코 어느 한 곳도 구하지 못했소. 어머니는 한 자리에 머무르면서 다만 지켜보고 들으면서 터득한 것이오. 모든 것을 느낌으로써 말이오.” ..  (130쪽)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줄 곳은 보금자리입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삶터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나중에 재개발이 될 부동산이나 재산을 물려주지 말고,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오백 해나 즈믄 해에 걸쳐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아름다운 숲을 아이한테 물려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사회의식을 물려받지 말고, 사랑과 꿈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희망도 절망도 아닌, 숲바람과 같은 꿈을 물려받아야지요. 전쟁도 전쟁무기도 아닌, 튼튼한 손발과 씩씩한 마음을 물려받아야지요.


  아이는 어른한테서 씨앗을 받아야 합니다. 볍씨와 콩씨와 풀씨와 나무씨를 받아야 합니다. 손수 심어서 손수 가꿀 수 있는 알차며 고운 씨앗을 받아야 합니다. 인문 지식이나 철학이 아닌, 삶을 짓는 슬기를 받아야 합니다.


  아이는 누구나 철이 들어야 합니다. 철이 들어 삶을 슬기롭게 바라볼 줄 아는 눈길을 길러야 합니다. 어른은 먼저 철이 든 사람으로 우뚝 서서 아이들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이라면 이슬떨이가 되어야 하고, 언제나 아이 곁을 지키는 길잡이인 한편 반갑고 살가운 길동무가 되어야 합니다.



.. 아벨과 어머니는 그들 나름대로 고기를 잡고 과일과 야채를 가꿨다. 오리와 닭을 쳐서 고기와 알을 마련했고, 염소 한두 마리를 키우면서 그 젖으로 우유를 대신했다. 롱보트 만으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빗물 말고는 물이라고는 없었으며, 텔레비전도 없었다. 그들처럼 사는 것은 때때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아벨은 그와 다른 방식의 삶을 전혀 몰랐다. 아벨은 날마다 국립공원 숲 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바다에서 헤엄쳤다. 가끔 외롭기도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  (26∼27쪽)



  즐겁게 노래하는 삶일 때에 사람이 됩니다. 기쁘게 웃는 하루일 때에 사람으로 섭니다. 노래와 웃음이 없으면 사람다운 빛을 잃습니다. 즐거움과 기쁨을 모르면 사람다운 숨결이 사그라듭니다.


  우리한테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습니다. 삶을 손수 짓는 길이 첫째입니다. 돈을 거머쥐면서 전쟁으로 가는 길이 둘째입니다. 어느 길로 가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 길로든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 걷는 길입니다. 삶을 손수 짓는 사랑스러운 길로 가겠다면 이 길을 씩씩하게 갈 수 있습니다. 돈을 더 거머쥐어 돈으로 물질문명을 누리겠다면 이 길로 가도 됩니다. 좋고 나쁨이란 따로 없습니다. 삶이냐 돈이냐, 이 두 가지로 나뉠 뿐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적에는 꾸밈이 없습니다. 수수하지요. 있는 그대로 곱습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적에는 꾸밉니다. 그럴듯하게 꾸미지요. 있는 그대로 얼마나 고운지 모르는 탓에 얼굴을 덕지덕지 문지르고 이것저것 붙이거나 치레합니다.


  숲은 꾸미지 않습니다. 풀과 꽃은 꾸미는 일이 없습니다.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는 이녁 몸을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언제나 모두 그대로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어디에 있을는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찾고 마주하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가슴속에 파란 별씨를 품고 푸른 바람을 마시면서 하얀 넋이 될 적에, 비로소 까만 밤하늘에 고운 무지개를 드리우는 착한 사람이 됩니다. 4337.12.7.불/4348.2.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숲책/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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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26) 불리다 1


다른 두 명 중 한 명은 ‘영 진저’라고 불리는 열두 살의 소년으로, 평범한 아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아로서 정상적인 양육을 받지 못했으며, 작년에는 주로 트라팔가르 광장에서 살았다

《조지 오웰/박경서 옮김-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2003) 171쪽


 ‘영 진저’라고 불리는

→ ‘영 진저’라고 하는

→ ‘영 진저’라는 이름이 붙은

 …



  ‘부르다’를 잘못 쓰기에 ‘불리다’도 잘못 씁니다. ‘부르다’ 말풀이를 한국말사전에서 살피면 “10. 무엇이라고 가리켜 말하거나 이름을 붙이다”처럼 나오지만, 이 말풀이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투를 억지스레 담았으니까요. ‘부르다’는 “이름을 붙이다”를 가리키는 자리에 쓰지 않고 “이름을 외치다”를 가리키는 자리에 씁니다.


  ‘불리다’는 “교무실로 선생님한테 불리어 갔다”나 “많은 사람한테 불리는 노래”나 “시상식에서 내 이름이 불렸을 때”처럼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한테 천재라고 불렸다”처럼 쓸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천재 소리를 들었다”라든지 “많은 사람들한테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우리는 그를 형님으로 부르면서 깍듯이 대접할 것이다

→ 우리는 그를 형님으로 삼으면서 깍듯이 모실 생각이다

→ 우리는 그를 형님으로 여기면서 깍듯이 모시려 한다

→ 우리는 그를 형님으로 깍듯이 모실 생각이다

 그는 형님으로 불리면서

→ 그는 형님 소리를 들으면서

→ 그는 형님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 그는 형님이 되면서

→ 그는 형님으로서


  ‘불리다’를 제대로 쓰자면 ‘부르다’부터 제대로 써야 합니다. ‘부르다’를 옳게 가누지 못하면 ‘불리다’도 옳게 가누지 못합니다. 여느 말투를 알맞게 쓰지 못할 적에는 입음꼴도 엉터리로 쓰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배우려는 뜻으로 한국말사전을 살필 텐데, 한국말사전 올림말이나 낱말풀이나 보기글을 보면, 일본 말투와 번역 말투를 한국말사전에 자꾸 싣기 일쑤입니다. 한국사람이 쓸 낱말이 아닌 일본 한자말과 중국 한자말을 함부로 싣기도 합니다. 이래서야 말을 말답게 바라보기 어렵겠지요.


  쉽지 않을는지 모르나, 먼 옛날부터 우리 어버이가 어떤 말을 썼는지 헤아리면 실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학교 교육이나 신문이나 방송에 물들지 않은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떤 말투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지 찬찬히 돌아보면 실타래를 엮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인문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이나 교과서에서는 ‘불리다·부르다’를 엉터리로 쓰지만, 이러한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흙을 만지는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고이 흐르는 한국말을 정갈히 쓸 줄 압니다. 전문 학자한테 맡길 말이 아니라, 손수 삶을 짓는 사람이 씩씩하게 가꿀 말입니다. 4337.5.23.해/4348.2.2.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다른 둘 가운데 하나는 ‘영 진저’라고 하는 열두 살 아이로, 수수한 아이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외톨이로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으며, 지난해에는 거의 트라팔가르 광장에서 살았다


“두 명(名) 중(中) 한 명(名)”은 “둘 가운데 하나”로 손보고, “열두 살의 소년(少年)”은 “열두 살 아이”나 “열두 살 사내 아이”로 손보며, ‘평범(平凡)한’은 ‘수수한’으로 손봅니다. ‘사실(事實)은’은 ‘알고 보면’으로 손질하고, ‘고아(孤兒)’는 ‘외톨이’나 ‘외돌토리’나 ‘외톨박이’로 손질하며, “정상적(正常的)인 양육(養育)을 받지 못했으며”는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으며”나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으며”로 손질합니다. ‘작년(昨年)’은 ‘지난해’로 다듬고, ‘주(主)로’는 ‘거의’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369) 불리다 2


오스트레일리아 근해에 서식하는 열대성 어류 중 놀래기과의 작은 기생어류로부터 농어류까지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종이 모두 그루퍼라는 속칭으로 불린다

《팀 윈튼/이동욱 옮김-블루 백》(눌와,2000) 10쪽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종이 모두 그루퍼라는 속칭으로 불린다

→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가지를 모두 그루퍼라고 한다

→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가지를 모두 그루퍼라고들 한다

→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가지를 아울러 그루퍼라고 한다

 …



  물고기 이름을 밝히는 자리에 ‘불리다’라는 낱말을 넣은 보기글입니다. 이름을 밝히려 한다면 ‘하다’라는 낱말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라는 이름을 쓴다’라든지 ‘-라는 이름을 붙인다’처럼 적을 수도 있습니다. 4337.11.1.달/4348.2.2.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오스트레일리아 앞바다에 사는 열대 물고기 가운데 놀래기과인 작은 더부살이물고기부터 농어까지 아주 다른 물고기 서너 가지를 모두 그루퍼라고 한다


‘근해(近海)’는 ‘앞바다’나 ‘든바다’로 다듬고, ‘서식(棲息)하는’은 ‘사는’으로 다듬으며, “열대성(-性) 어류(魚類)”는 “열대 물고기”로 다듬습니다. ‘중(中)’은 ‘가운데’로 손보고, ‘기생(寄生魚類)’는 ‘더부살이물고기’로 손보며, “서너 종(種)”은 “서너 가지”로 손봅니다. “-라는 속칭(俗稱)으로”는 “라는 이름으로”로 손질할 수 있는데, 이 보기글에서는 아예 덜 수 있습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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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람,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 (백종원) 삼천리 펴냄, 2012.9.14.



  학교에서 ‘역사’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시험문제에 맞추어 정치집권자 발자취 언저리에서 맴도는 ‘기록’을 외우도록 하는 얼거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살아온 나날을 가르치는 역사는 학교에 없고, 마을과 고장이 태어나 이어진 흐름을 보여주는 역사는 학교에 없으며, 이웃과 사랑스러운 꿈으로 어깨동무를 하는 보금자리를 밝히는 역사는 학교에 없다. 학교에서는 ‘죽은 기록’을 가르칠 뿐인데, 이를 ‘역사’라는 이름을 덧씌운다고 할까. 《조선사람》이라는 책을 읽는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한국(또는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아가는 숨결로 역사를 바라본다. 몸으로 겪은 지난날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몸으로 겪거나 가로질러야 했던 1900년대가 이녁한테 어떤 발자국이었는지 가만히 밝힌다. ‘학교 역사 과목’은 시험문제로 기울어졌다면, 《조선사람》은 이 땅에서 태어나 살던 사람이 스스로 남긴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4348.2.2.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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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 재일조선인 1세가 겪은 20세기
백종원 지음 / 삼천리 / 2012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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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이야기 하나 적어 봅니다.

'부르다' 이야기를 놓고 이를 어떻게 갈무리하면 좋을까 하고
여러 달 생각을 기울인 끝에
오늘 드디어 글을 마무리지었습니다.

밑글은 열 해 앞서 썼는데
그 뒤 보기글을 더 모으지 않았습니다.
더 모을까 싶다가도 
어쩐지 굳이 더 모으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르다'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를 놓고
여러모로 헤맸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잘 살려서 쓰는 보기'로도 볼 수 있는 터라
이를 풀기가 만만하지 않았는데,
이제 실마리와 실타래를 풀었습니다.

이렇게 글 하나를 끝내고 보니,
어쩐지 기운이 탁 풀리네요.
다음 이야기도 갈무리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조용히 한숨을 쉰 뒤에
차근차근 다시 일손을 잡아야겠구나 싶습니다.

'부르다'가 끝났으니 '불리다'를 해야겠고 ^^;;;;;
'그/그들'과 '저희' 같은 말마디를
올바로 쓰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갈무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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