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593 : -의 -의 친한 친구


이 참새의 이름은 브루스예요. 브루스는 앙거스의 친한 친구랍니다

→ 이 참새는 브루스예요. 브루스는 앙거스하고 동무랍니다

→ 이 참새는 브루스예요. 브루스는 앙거스랑 동무랍니다

《참새의 빨간 양말》(조지 셀던 톰프슨·피터 리프먼/허미경 옮김, 비룡소, 2015) 10쪽


일본말씨인 “참새의 이름은 브루스예요”는 “참새는 브루스예요”로 고쳐씁니다. “브루스는 앙거스의 친한 친구랍니다”는 겹말이자 일본말씨입니다. “브루스는 앙거스하고 동무랍니다”로 고쳐쓰면 됩니다. ㅍㄹㄴ


친하다(親-) :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

친구(親舊) : 1.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 친고(親故)·동무·벗·친우(親友) 2.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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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594 : 안장 만들기 위해 비단 천 위 일렬로 가지런히 줄맞춰


말안장 꾸미개를 만들기 위해 나무판을 고운 비단 천으로 싼 다음 그 위에 비단벌레 딱지날개를 일렬로 가지런히 줄맞춰 깔아 붙입니다

→ 말타개 꾸미개를 마련하려고 나무판을 누에천으로 곱게 싼 다음 비단벌레 딱지날개를 한 줄로 가지런히 붙입니다

→ 말깔개 꾸미개를 여미려고 나무판을 누에천으로 곱게 싼 다음 비단벌레 딱지날개를 한 줄로 맞춰서 붙입니다

《곤충들의 수다》(정부희, 상상의힘, 2015) 20쪽


“일렬로 가지런히 줄맞춰”는 겹말입니다. “한 줄로 맞춰”나 “한 줄로 가지런히”로 다듬습니다. 말을 타려고 말등에 ‘타개’나 ‘깔개’를 놓곤 합니다. 말타개나 말깔개를 꾸미려고 이모저모 뚝딱뚝딱 마련하거나 여밉니다. ‘비단(緋緞)’은 누에실로 짠 천을 가리킵니다. ‘누에천 = 비단’입니다. “비단 천”은 틀린말씨입니다. “천 위에 붙입니다”도 틀린말씨입니다. 붙일 적에는 “천에 붙입니다”라 해야 올바릅니다. ㅍㄹㄴ


안장(鞍裝) : 1. 말, 나귀 따위의 등에 얹어서 사람이 타기에 편리하도록 만든 도구 ≒ 마안·반타·안자 2. 자전거 따위에 사람이 앉게 된 자리 ≒ 안자

위하다(爲-) : 1. 이롭게 하거나 돕다 2. 물건이나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다 3.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다

비단(緋緞) : 명주실로 짠 광택이 나는 피륙을 통틀어 이르는 말 ≒ 견포(絹布)·단(緞)

일렬(一列) : 하나로 벌인 줄

가지런하다 : 여럿이 층이 나지 않고 고르게 되어 있다

줄맞추다 : x

맞추다 : 1. 서로 떨어져 있는 부분을 제자리에 맞게 대어 붙이다 2. 둘 이상의 일정한 대상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여 살피다 3. 서로 어긋남이 없이 조화를 이루다 4. 어떤 기준이나 정도에 어긋나지 아니하게 하다 5. 어떤 기준에 틀리거나 어긋남이 없이 조정하다 6. 일정한 수량이 되게 하다 7. 열이나 차례 따위에 맞게 하다 8. 다른 사람의 의도나 의향 따위에 맞게 행동하다 9. 약속 시간 따위를 넘기지 아니하다 10. 일정한 규격의 물건을 만들도록 미리 주문을 하다 11. 다른 어떤 대상에 닿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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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말씨 2595 : 피해 이익 차원


피해를 봤느냐 이익을 봤느냐 하는 차원에서

→ 잃었느냐 얻었느냐 하는 틀에서

→ 나쁘냐 좋으냐 하는 마당에서

→ 잃느냐 따느냐 하는 판에서

《10대와 통하는 옛이야기》(정숙영·조선영, 철수와영희, 2015) 157쪽


잃거나 나쁠 수 있습니다. 얻거나 좋거나 따거나 남길 수 있습니다. 어떤 눈이나 틀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누리는 하루입니다. 잃지 않으려는 판이라 오히려 잃기 일쑤입니다. 안 나쁘기를 바라는 마당이니 거꾸로 나쁜 쪽으로 기울곤 합니다. 쥐락펴락이라는 말처럼, 쥐기도 하고 펴기도 합니다. 얄궂게 주무르기도 한다지만, 워낙 새롭게 빚으려고 주무릅니다. 모름지기 이제부터 지으려고 매만집니다. 조금 잃더라도 기꺼이 털어낼 적에 새롭게 나눌 길을 짓습니다. 나쁘든 좋든 차분히 배우면서 살림을 가꿉니다. ㅍㄹㄴ


피해(被害) : 생명이나 신체, 재산, 명예 따위에 손해를 입음. 또는 그 손해

이익(利益) : 1.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 ≒ 길미 2. [경제] 일정 기간의 총수입에서 그것을 위하여 들인 비용을 뺀 차액 3. [불교] 부처의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얻는 은혜나 행복

차원(次元) : 1.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처지. 또는 어떤 생각이나 의견 따위를 이루는 사상이나 학식의 수준 2. [물리] 물리량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 또는 물리량의 기본 단위와 유도 단위의 관계 3. [수학] 기하학적 도형, 물체, 공간 따위의 한 점의 위치를 말하는 데에 필요한 실수의 최소 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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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6 캐묻지 않기

책벌레수다 : 나물캐기 돌캐기 뒤캐기



  캐묻는 사람을 곧잘 만난다. 나이가 몇이냐고 캐묻고, 내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둥 “엄마나 아빠가 먼나라 사람 아니냐?”는 둥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먼나라 사람 아니냐?”는 둥 끝없이 캐묻는 사람이 곧잘 있다. 내 나이가 이녁보다 많으면 어른으로 섬길 마음 같아 보이지 않고, 내 나이가 이녁보다 적으면 깎음말을 쓰려는 티가 물씬 난다. 더구나 때가 어느 때인데 2026년에 이르도록 얼굴캐기(외모평가)를 버젓이 하는지 참으로 얄망궂다. 그러려니 하며 지나가곤 하지만, 그만큼 우리 민낯이라는 뜻이요, 틀(차별금지법)을 세운들 삶자리에서 마구잡이로 캐묻는 늪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듯하구나 싶다.


“당신, 성실하구나?” “어?” “성실하지 않은 인간을 성실하게 대할 필요가 있나?” 《자전거집 타카하시 군 6》 113쪽


  살림을 짓는 수다를 펴면 서로 즐거울 텐데, 어쩌면 나 혼자만 ‘살림수다’가 즐거운 듯싶다. 둘레에서는 ‘살림수다’가 아닌 ‘화살질·손가락질’을 신나게 하려고 든다. ‘저놈’은 고리타분하다고 화살질이고, ‘그놈’은 건방지다며 입방아를 찧는다. 서로 잘잘못을 짚으면서 함께 배우려는 살림수다라면 화살질이나 손가락질이 아닌, 이렇게 가다듬어서 세우고 저렇게 쓰다듬어서 북돋우자는 이야기로 흐르게 마련이다. 치레글이나 꾸밈글을 쓰지 말자고, 보람(문학상·우승)을 노리지 말자고, 이름책(유명도서)이라는 허울에 휩쓸리지 말자고, 오직 우리 스스로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아이한테 물려줄 살림을 짓듯 글을 쓰고 책을 읽자는 살림수다를 함께하고 싶다. 목소리(주의주장)가 아닌 살림소리(생활지혜)를 나눌 적에 함께 울고 웃으면서 하루가 느긋하다고 느낀다.


생계 부양자로서 성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남자들은, 여자들을 비난하고 혐오하거나 여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 … 급진주의 여성주의자들에게 남성은 (국가나 자본보다) 주적이었고, 젠더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모순이었다 … 찌질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여성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자고 말한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7, 39, 179쪽


  누가 누구를 ‘분석’한다고 하는 말을 들을 적마다 “제발 캐지(분석) 맙시다” 하고 손사래를 친다. ‘캐내기(분석·해석)’가 아닌 ‘읽기(이해·숙독)’를 하자고 덧붙인다. 다섯 살 아이가 말하든, 열다섯 살 푸름이가 말하든, 스물다섯 살 젊은이가 말하든, 서른다섯 살이나 마흔다섯 살 아재가 말하든, 쉰다섯 살이나 예순다섯 살 젊은할배가 말하든, 일흔다섯 살이나 여든다섯 살 할매가 말하든, 그저 ‘말’이라는 소리에 얹은 ‘마음’을 가만히 읽고서, 우리 마음을 나란히 들려주는 ‘이야기’를 누리자고 보탠다. 사내(남성)를 캘 까닭도, 가시내(여성)를 캐낼 까닭도 없다. 그저 서로 생각하고 헤아리고 살피고 들여다보고 눈여겨보면 된다. 누구나 문득 눈을 뜨면서 말빛을 알아차릴 날을 지켜보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모르기에 어설프게 넘겨짚듯 캐려고 하게 마련이다. 이제부터 알아가려고 너무 힘쓰다 보니, 차근차근 읽으면서 알아가기보다는 얼른 서둘러서 바삐 캐내려고 허둥거린다고 느낀다.


그들은 민주당의 문제를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야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왜 이전엔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을까? 왜 뒤늦게 혼자 깨끗한 척하고 혼자 잘난 척하려는 걸까? … 유시민을 비롯한 그 주동자들은 민주당이 아무리 혐오스러운 정당이라 하더라도 그 정당이 투표 행위를 통해 유권자들과 연계돼 있다는 건 아예 처음부터 무시하고 들어갔던 것이다. 《노무현은 배신자인가》 217, 222쪽


  겨울이 걷히고 새봄으로 접어들면 늦겨울꽃과 첫봄꽃이 흐드러진다. 그러나 꽃은 늦겨울과 첫봄에만 피지 않는다. 한봄과 늦봄에도 핀다. 첫여름과 한여름과 늦여름에도 핀다. 첫가을과 한가을과 늦가을에도 꽃이 피고, 첫겨울과 한겨울에마저 꽃이 핀다. 첫여름꽃과 늦가을꽃은 ‘늦꽃’일 수 있되, ‘그저꽃’이다. 모두 제철에 제대로 피면서 제빛을 살리는 제길과 제살림을 일으키는 제걸음이다. 서둘러 익으려는 열매란 없다. 모든 열매는 차분히 차근차근 느긋이 무르익는다. 덜익은 수박을 쪼개면 얼마나 시큼한지 아는가? 겉보기만으로는 익었는지 멀었는지 모를 수 있으나, 긴긴 해에 걸쳐서 지켜보면 겉보기로도 너끈히 익음결을 알 수 있다.


“할머니도 기뻐하고 계실 거야.” “뭐?” “모모가, 할머니의 기모노를 물려받아서.” 《사랑하라 기모노 소녀 1》 49∼50쪽


  때로는 서두를 수 있다지만, ‘모든 때’에 서두른다면 삶이란 어디 있을까? 이따금 빨리빨리 마감에 맞춰야 한다지만, ‘언제나’ 마감에 맞추어 움직인다면 살림이란 뭘까? 동무가 없는 아이는 없다. 동무가 없는 어른은 없다. 사람만 동무이지 않다. 나무도 새도 풀도 돌도 바람도 비도 눈도 해도 별도 꽃도 씨앗도 벌레도 나비도 벌도 잠자리도 동무이다. 온누리 뭇숨결은 서로 동무이다. 푸른별에서 나고자라는 모든 목숨붙이는 다 다르게 동무이다. 사람으로 친다면, 엄마아빠가 온누리 첫 동무요, 할매할배가 이다음 동무요, 집안에 있는 모든 살림이 셋째 동무이다. 집밖에서 마주하는 바람과 해와 비와 흙과 풀과 벌레와 나비와 새와 들짐승이 넷째 동무이지. ‘또래 동무’는 거의 열째나 스무째쯤 되는, 또는 쉰째나 일흔째에 닿는 동무이다. ‘사람동무’만 찾으려고 하니 외롭거나 쓸쓸하다고 잘못 여기고 만다.


“이래 봬도 할머니일 땐 꽃 만지는 걸 좋아했거든. 게다가 이건 기차놀이도 가능한 길이지!” “그러네!” “출발합니다.” “후후, 기차놀이는 처음 해봐. 화환도.” “거짓말. 연꽃이랑 민들레로도 만들 수 있는데? 어린 시절 한 번도 안 해봤누?” “으음, 난 별로 어린애다운 어린애가 아니라서.” “아니면 전생의 어린 시절이라든가.” 《할망소녀 히나타짱 10》 104쪽


  서울을 바라보면 서울이 익숙하고 반갑게 마련이다. 서울에서 살더라도 푸른별을 품으면서 파른별을 그리면, 서울이 아니어도 온누리 어느 곳이나 익숙하고 반가울 수 있다. 서울에서도 시골을 품을 수 있고, 시골에서도 서울과 만날 수 있다. 들빛을 찾아보면 들빛이 마음과 말에 녹아든다. 숲빛을 찾아나서면 숲빛이 마음이며 말뿐 아니라 몸에도 스며들 테지. 그러니까 억지로 캐내려 하지 말자. 자꾸자꾸 캐묻지 말자. 캐거나 캐내려는 마음을 다 내려놓고서, 그저 마음을 나누는 말을 도란도란 엮고 이으면서 ‘이야기’를 하자. 숲빛으로 수수하게 ‘수다’를 하자. 수런수런 수더분하게 피어나는 수다밭을 지을 수 있기에, 일렁일렁 파란바람과 파란바다를 품은 노을빛과 너울빛으로 어깨동무를 한다. 캐고 싶다면, 뒤를 캐지 말고 나물을 캐자. 밭자락에 있는 돌을 캐서 돌담을 바람막이로 쌓자. 즐거이 나물을 캤으면 나 한 줌 너 한 줌 나누면서 노래하자. 이러면 된다.


ㅍㄹㄴ


《자전거집 타카하시 군 6》(마츠무시 아라레/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25.10.31.)

#自轉車屋さんの高橋くん #松蟲あられ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권김현영 엮음, 교양인, 2017.5.26.)

《노무현은 배신자인가》(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3.12.16.)

《사랑하라 기모노 소녀 1》(야마자키 제로/이상은 옮김, 시리얼, 2020.6.25.)

#戀せよキモノ乙女 #山崎零

《할망소녀 히나타짱 10》(쿠와요시 아사/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25.11.15.)

#桑佳あさ #老女的少女ひなたちゃん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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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카시 장의사 4
Yukiko AOTA 지음, 박소현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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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3.14.

잘못했다는 말


《아야카시 장의사 4》

 아오타 유키코

 박소현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6.1.30.



  하늘길을 읽는다는 나이인 쉰 살을 넘어서고 보니, 열 살과 스무 살과 서른 살과 마흔 살에 겪거나 배우거나 치른 숱한 일이 무슨 뜻이었나 하고 차분히 돌아볼 만합니다. 머잖아 예순 살과 일흔 살에는 쉰 살을 되집고서 예순 살을 곱씹을 테지요. 둘레에서는 ‘나이듦 = 나쁘다’로 자꾸 씌우려고 합니다. ‘나이듦 = 낡다·늙다’로만 옭아매려 하는데, 워낙 ‘나이’라는 우리말은 ‘낳’이라는 외마디로 적었습니다. 요샛말 ‘나이’를 쓰는 사이에 말밑인 ‘낳다’가 깃든 ‘나이’인 줄 까맣게 잊는다고 할 만합니다.


  해마다 새롭게 나이가 든다고 할 적에는 ‘낳’이 든다는 뜻이니, “낳을 줄 아는 슬기와 철”이 찬찬히 무르익는 얼거리입니다. 우리는 “낳으려고 나이를 머금”습니다. ‘낳다’는 ‘아기낳이’만 가리키지 않아요. ‘씨앗낳이’인 ‘낳다’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아기를 못 낳아요. 우리는 오직 씨앗을 낳을 뿐입니다. 가시내도 사내도 저마다 씨앗 하나를 내놓을 뿐이요, 두 사람이 다른 씨앗을 하나씩 내놓아서 사랑으로 맺을 적에 비로소 새롭게 사람이 태어납니다. 이때에 사내는 새사람을 못 품고 가시내는 새사람을 품어요. 새사람을 품는 가시내는 새사람을 돌보는 몫이라 할 테고, 새사람을 못 품는 사내는 집일과 집살림을 도맡는 몫이라 할 테지요.


  여러모로 보면, 숱한 ‘낳다’ 가운데 ‘아기낳이’라 할 적에 사내가 집안일을 즐겁게 다 해야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해 적잖은 나라에서는 얼추 즈믄해나 두즈믄해 즈음 사내가 집일을 멀리하거나 팽개쳤습니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쌈박질에 나서거나 벼슬자리를 거머쥐려고 ‘아기돌봄’뿐 아니라 ‘집일·집살림’을 가시내한테 혼자 맡으라고 떠넘겼어요. 미친짓이지요. 멍청굴레이고요. 이러다 보니 “집일을 안 하는 사내”는 철들지 않으면서 밖에서 맴돌다가 바람질을 한다든지 헤매거나 헤픕니다. ‘낳다’라는 길인 ‘나이’를 품을 적에는 집일과 집살림뿐 아니라, 들숲메바다를 품고서 아이한테 들려줄 이야기도 낳아야 할 텐데, 지난 두즈믄해 남짓 온갖 사내는 이 아름길을 스스로 걷어찼습니다.


  《아야카시 장의사 4》을 돌아봅니다. 썩 잘 빚는 줄거리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 그림꽃이 다루는 줄거리는 자꾸 쳇바퀴를 맴돈다고 느낍니다. 그래도 ‘잘잘못’을 조금 짚는다고는 느낍니다. 잘못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잘 하지 못 하다”이기에 줄여서 ‘잘못’입니다. 그러면 ‘잘’이란 무엇일까요. “자랑할 만큼 넉넉히 펼치는 길”이라서 ‘잘’이에요. 우리말 ‘잘’은 ‘억(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매우 커다란 셈값인 ‘잘’이니까 남한테 크넓게 드러나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한테 크넓게 드러날 모습이 아니라서 ‘잘못’입니다.


  아이는 잘 하면서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는 숲을 푸르게 아우르는 잣나무마냥 젖(엄마젖)을 먹으면서 아름답게 자랍니다. 아이는 자랑을 하려고 자라지 않아요. 아이는 ‘잘’ 하거나 ‘잘못’ 하는 길이 아닌, 모두 처음부터 새롭게 배우고 느끼고 익혀서 철드는 어른으로 서려고 자랍니다.


  아이한테 섣불리 “잘했네, 못했네.” 하고 가르거나 따지지 않아야 할 노릇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불늪이 대단해요. 아이가 ‘서울대학교’쯤 들어가야 ‘잘’로 여기고, 적어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어야 ‘잘’로 칩니다. 서울에서 벗어나거나 열린배움터에 얼씬하지 않으면 ‘못·잘못’으로 깎아내리기 일쑤입니다.


  물을 자아올리듯 살림을 자을(잣다) 수 있을 적에 ‘자라다’라 합니다. 짙푸르며 곱게 지필 줄 아는 손길과 눈썰미와 매무새로 가다듬기에 ‘자라다’입니다. ‘자랑’은 ‘재다’라 하는 몸짓입니다. 빠르거나 날래거나 따지거나 재미를 따지는 ‘재다·재미·재주’라는 늪에 갇히는 ‘잘’이에요. 수수한 낱말 한 마디에 서리는 삶결을 읽으려고 한다면, 아이한테 “잘했구나!” 같은 말은 함부로 안 합니다. 그저 “(네가) 했구나!”처럼 ‘하다’를 바라보면서 ‘낳다’라는 씨앗맺기와 씨앗심기와 씨앗나눔이라는 아름드리숲길을 걸을 적에, 서로서로 즐겁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이곳에 설 만하다고 봅니다.


ㅍㄹㄴ


“촌장이 나쁜 거잖아. 어린애들한테 그런 명령을 하고, 눈보라 속으로 내쫓고, 죽을지도 모르는데.” 42쪽


“어째서 모두 누군가를 죽일 수가 있어?” 99쪽


“내가 싫어? 우리들 사토리는 그런 걸 알 수 있어. 보이거든. 마을은 시끄러운 놈들밖에 없어서, 여기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고양이 새들이 온 뒤론 기분 나쁜 감정만 보였어. 그리고 우연히 장의사가 지나갔던 거지.” 125쪽


“네 안은 모순투성이야. 이상해.” “원래 그런 거야. 인간도, 아야카시도.” 156쪽


“절대 동정 안 해. 너한테 어떤 과거가 있어도, 네 죄는 변하지 않아. 아빠도, 나도, 이 세상의 죄인들 모두.” 200쪽


#あやかしの葬儀屋 #あおたゆきこ


+


《아야카시 장의사 4》(아오타 유키코/박소현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6)


시간도 때울 겸 환술을 보여줘

→ 짬도 때우게 거짓꿈 보여줘

→ 심심한데 눈비움을 보여줘

12쪽


반신반의려나

→ 걱정이려나

→ 근심이려나

→ 아리송인가

→ 갸웃이려나

15쪽


상당한 난산이었던 모양이라

→ 무척 막낳이인 듯해서

→ 몹시 힘겨워서

→ 아주 죽을고비여서

1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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