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네 이야기 11
유키 스에나가 지음, 모에 타카마사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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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2.12.

나는 내 말씨부터


《아카네 이야기 11》

 스에나가 유키 글

 모우에 타카마사 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5.7.25.



  우리나라 글살림을 엄청나게 갈아엎는 첫길을 연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책이 1989년에 태어났습니다. 이 책을 쓴 이오덕 님은 사슬나라(일제강점기)이던 무렵부터 차꼬나라(군사독재정권)이던 내내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를 돌보면서 어린이 스스로 살림짓기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가꾸는 나날을 살아냈습니다. 이러다가 전두환 막바지에 어린배움터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전교조 교사’가 아니었어도 쫓겨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입니다.


  멧골마을 작은배움터에서 더는 어린이를 못 돌보고 못 지키고 못 가르치는 날벼락 탓에 몹시 슬프고 아프셨다는데, 이듬해에 어느 큰배움터(대학교)에서 이오덕 님더러 “이제는 젊은이한테도 글살림을 가르치는 길잡이가 되실 만하지 않나요?” 하고 여쭈며 찾아왔다지요. 어린길잡이(초등교사)만 하던 사람이 어찌 젊은이를 가르치느냐며 손사래를 치다가 받아들이기로 하고서, 이태 동안 스물 안팎 나이인 젊은이를 가르치고서 그만두기로 했답니다. 더 가르칠 수 있지만, “어느 대학교 한 곳을 다니는 젊은이만 이끌기보다는, 온나라 모든 젊은이한테 ‘글길잡이’ 노릇을 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또한 “대학교를 다니지 않는 젊은이, 그러니까 푸른배움터만 마친 채 일하는 모든 젊은이”한테도 글길잡이가 있을 노릇이면서, “이미 어른이 된 서른 살과 마흔 살과 쉰 살과 예순 살 모두”한테도 새롭게 글길잡이가 있어야 할 노릇이라고 느꼈다지요.


  우리는 흔히 잘못 짚거나 엉뚱하게 새기곤 합니다. ‘길잡이(교사·지도자)’는 훌륭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길잡이란, 그저 먼저 어느 길을 나아간 사람입니다. 가시밭길이건 꽃길이건 스스럼없이 누구보다 먼저 걸어가면서 느끼고 겪고 배운 바를 고스란히 둘레에 알리고 나누는 사람입니다.


  어린배움터이든 푸른배움터이든 큰배움터이든 매한가지입니다. ‘길잡이’는 훌륭한 어른일 까닭이 없습니다. 모름지기 모든 길잡이는 ‘어린이랑 함께 배우려는 사람’이면 됩니다. 마을길잡이도, 배움길잡이도, 나라길잡이도, 집안길잡이도, 글길잡이도 똑같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세워서 ‘똑같이 따라하’지는 말아야 하고, 어느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할 까닭이 없으며, 어느 우두머리 마음이나 입맛에 들려고 아양을 떨지 않아야겠지요.


  “가르치는 사람”이란 “배울 줄 알며, 기꺼이 배우고, 즐겁게 배운 다음 익혀서 다시금 들려주고 알려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가르치는 길을 배우는 사람이 바로 ‘길잡이’입니다.


  “배우는 사람”이란 “가르칠 줄 알며, 신나게 가르치고, 기쁘게 가르치는 동안 가만히 사랑이 피어나서 노래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배우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이 ‘배움이(학생)’입니다.


  두 길과 두 사이와 두 사람과 두 자리를 헤아려 본다면 《우리글 바로쓰기》란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야 할 길잡이’일 수 없습니다.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책은 ‘멧골자락 작은배움터 길잡이’로 내내 살아오고 일하다가 ‘서울 젊은이를 만나서 배운 바’를 글어른 나름대로 익히고 가다듬어서 풀어놓은 작은씨앗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아카네 이야기》는 퍽 아름답게 줄거리를 여미어 들려주는 그림꽃입니다. 첫걸음부터 열걸음을 지나는 동안 이러한 물줄기가 고스란합니다. ‘아카네’라는 아이는 어린배움터를 다니기 앞서부터 ‘아버지가 펴는 소리마당’을 지켜보면서 따라했고, 어린배움터를 다닐 적에는 ‘나 나름대로 배우는 소리마당’으로 건너갔고, 푸른배움터를 마치며 젊은이로 피어나는 동안에는 ‘나와 너(이웃)를 아우르는 하늘빛(우리)으로 날개돋이하는 소리마당’을 바라봅니다.


  모든 사람이 길잡이로 살아갑니다. 스승 하나만 길잡이일 수 없습니다. 함께 배우는 동무도 길잡이로 만납니다. 또한, 나 스스로 너한테 길잡이요, 나는 스승한테까지 길잡이입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길잡이요 스승이고 동무에 이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사람인 줄 알아챈다면, 사람인 스승한테서도 배우고, 엄마아빠한테서도 배우고, 동생과 언니한테서도 배우고, 낯선 이웃한테서도 배웁니다. 게다가 사납거나 모질거나 매몰차거나 차갑거나 고약한 짓을 일삼는 모두한테서도 배워요.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삶과 살림을 착하게 일구는 빛”을 배웁니다. 나쁘거나 얄궂다고 하는 굴레에 빠진 사람한테서는 “삶과 살림을 스스로 망가뜨릴 적에 어떻게 망가지는가 하는 늪”을 배웁니다. 먹을 적에는 먹는 살림을 배우고, 내놓을 적에는 내놓는 살림을 배워요. 이쪽도 살림길이고 저쪽도 살림길이에요. 그래서 이 푸른별에는 ‘밤낮’이 있고, 우리는 낮이 아닌 밤을 먼저 짚고 이야기합니다.


  밤이란, 몸에서 모든 힘을 빼고서 가만히 누이고 곧게 편 뒤에, 오롯이 마음에 담는 빛줄기로 넋을 깨워서 꿈을 그리는 때입니다. 그래서 밤에 별을 마주하고 품습니다. 그렇기에 밤에 돋는 별이 ‘밝다’고 합니다. 밤이란, 밝은 때요, 밝은 빛으로 어둠을 다스려서 모든 어렵고 힘들던 실타래를 푸는 길입니다.


  낮이란, 밤새 되찾은 기운을 바탕으로 새벽(새롭게 트는 빛)을 맞이하고서, 새벽이슬 한 톨을 받아들이는 하루를 살아내는 때입니다. 낮에 뜨는 해는 모든 나(숨결)가 나무처럼 서면서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며 일하고 노는 길입니다. 밤새 어둡던 길을 밝히고 나서 맞이하는 아침이기에, 아침은 ‘환하다’고 합니다. 환한 낮이기에 활짝 날개를 펴지요. 활개를 치듯 일하고 놀이합니다.


  《아카네 이야기》를 이루는 이야기는 꼭 《우리글 바로쓰기》를 아우르는 이야기하고 닮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이 여태 ‘우리글’이 아닌 ‘중국글’에 ‘일본글’에 ‘미국글’로 휩쓸리면서 제넋도 제가락도 제길도 잊다가 잃었다는 줄거리마냥, 높다란 스승만 좇다가는 어떤 소리마당도 ‘나답게’ 펴거나 일굴 수 없다는 줄거리입니다.


  말을 잘 해야 하지 않습니다. 말을 못 해야 하지도 않습니다. 글을 잘 쓰거나 못 써야 하지도 않아요. 오직 “말을 하면” 되고, “글을 쓰면” 됩니다. 마음을 담은 소리인 말이니, 내 마음과 네 마음이 만나서 우리 마음으로 피어나는 길을 읽고 이으면 누구나 이곳에 빛나는 이름으로 있게 마련입니다. ‘잘’울 따지느라 그만 ‘잘못’이 뒤따르지요. 말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울면, 어느새 “잘 하는 말”하고 “못 하는 말”을 ‘좋다·나쁘다’로 가르느라 싸웁니다. 싸우니 겨루고 다툽니다. 싸워서 겨루고 다투니 값(순위·등급·계급·질서)을 매깁니다. 값을 매기느라 잘난책(베스트셀러)이 생기고, 잘난책은 자랑책으로 뻗다가 시나브로 자빠지고 말아요.


  말은 그저 할 노릇입니다. 모든 하루를 그저 삶이라는 길로 느끼고 받아들여서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을 노릇입니다. 나무를 이루는 바탕은 뿌리가 아닌 ‘그루’입니다. 나무는 그루가 있기에 하늘을 보며 줄기를 올리고, 땅을 품으며 뿌리를 뻗습니다. 그루에서 고르고 곧게 나아가는 줄기와 뿌리요, 이러한 결을 가지로 이어서, 가지에 잎을 내고 꽃을 피워서 씨앗과 열매를 베풀어요. 사람도 나무와 매한가지인 터라, 사람을 이루는 몸마음이라는 ‘그릇’이 ‘그루’와 나란한 살림길을 여미면 넉넉합니다.


  땅을 호면서 홈을 내는 연장이라서 ‘호미’입니다. 바느질에도 있는 ‘호치다’입니다. 홈이란 하나로 이루는 골이자 길입니다. 하나로 이루는 골이자 길처럼 스스로 배우고 나아가니 ‘홀·혼·홑’입니다. 누구나 홀로 나아가고 혼자 일구며 홑으로 깨어납니다. 하나인 ‘홀·혼·홑’이기에, 나처럼 너도 하나인 ‘홀·혼·홑’을 맞아들여서 ‘나하고 너를 아우르는’ 바람과 바다처럼 ‘우리’를 열어서 웃고 우는 오늘을 이룹니다.


  웃은 하루라면 웃은 삶을 그대로 말하고 글쓰면 됩니다. 울어버린 하루라면 울고 만 삶을 낱낱이 말하고 글쓰면 됩니다. 웃기에 기쁘지 않고, 울기에 슬프지 않습니다. 가두기에 갑갑하다가 슬프고, 나누기에 싹트면서 기쁩니다. 모든 말은 마음으로 이루고, 모든 마음은 삶으로 일구고, 모든 삶은 꿈으로 짓고, 모든 꿈은 한밤에 심는 생각씨앗 한 톨로 폅니다. 좋은말과 나쁜말이라는 사슬(감옥)을 가르지 않을 줄 알면, 누구나 말지기에 글지기로 섭니다. 좋은글과 나쁜글이라는 굴레(독재)를 가두지 않을 수 있으면, 누구나 살림말과 살림글을 즐기며 나눕니다.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글을 써야 할는지 망설일 까닭이 없습니다. 다 핑계입니다. 그저 나를 말하고 너를 들으면서 우리를 나누면 파랗게 일렁이는 바람 한 줄기가 찾아듭니다. 그대로 나를 나타내고 고스란히 너를 바라보면 우리를 살리면서 파랗게 넘실대는 바다빛을 빗물 한 방울과 샘물 한 모금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말씨를 사랑합니다. 너는 네 말씨를 사랑하지요. “내 말씨”랑 “네 말씨”는 바로 ‘사투리’입니다. ‘서울말(표준말·교양 있는 언어)’이 아니라, 서로서로 사투리(내 말 + 네 말 + 우리말)를 즐겁게 쓰면 저절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저절로 어깨동무를 하니, 우리가 나누는 모든 말글은 노래요 춤이면서 별빛 한 자락입니다.


ㅍㄹㄴ


“시끄러. 내게 네게 부탁하고 싶은 거다. 그것뿐이야.” (22쪽)


“라쿠고를 할라치면 딱 성실해져.” “성실하면 안 되나요?” “안 될 건 없지만, 아직 멀었어. 더 할 수 있잖아? 넌 자기 실력의 반도 못 보여주고 있다고.” (59쪽)


“당연히 하는 거지. 에도 사투리 없이 ‘너구리 주사위’를 하라고.” (71쪽)


“물론 속은 상하지. 하지만 울분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어. 불행하지도 않았고.” (135쪽)


‘이제 기초만이 아니어도 좋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놀면 되는 거다.’ (182쪽)


#あかね噺

#末永裕樹 #馬上鷹将

《아카네 이야기 11》(스에나가 유키·모우에 타카마사/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5)


관객 4명으로 시작한 이 회가, 4회째에 벌써 만원 사례잖냐

→ 손님 넷으로 연 이 모임이, 넉걸음에 벌써 구름떼잖냐

→ 구경꾼 넷을 연 이 모임이, 넉벌째에 벌써 붐비잖냐

8쪽


마음에 드는 녀석한테는 크게 베팅한다

→ 마음에 드는 녀석한테는 크게 건다

→ 마음에 드는 녀석한테는 크게 민다

41쪽


제 18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 제 자랑이 될 수 있다고?

→ 제 꽃노래가 될 수 있다고?

54쪽


실패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기예까지 잃어버릴지 몰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모 아니면 도, 한판 승부

→ 넘어지면 이제까지 쌓아온 길까지 잃어버릴지 몰라. 돌개바람. 모 아니면 도, 한판겨룸 

→ 쓰러지면 여태까지 쌓아온 재주까지 잃어버릴지 몰라. 큰바람. 모 아니면 도, 한판싸움

68쪽


“알고 계셨군요.” “스승님한테 들었어.”

→ “아셨군요.” “스승님한테서 들었어.”

9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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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함부로 했으면



날씨는 날마다 바뀌지. 똑같은 날인 적이 아예 없듯, 똑같은 날씨인 적은 아예 없어. 따뜻하다가 시리다가 덥다가 춥게 나아가는 다 다른 날이야. 요즈음 사람들은 ‘널뜀날씨(기상이변·기후위기)’ 같은 이름을 섣불리 붙이는구나. 날씨가 늘 바뀌니, “안 바뀐(이변·위기)” 적이 없잖아? 더구나 “뭘 줄이고 안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데, “전기 먹는 플라스틱 제품”부터 다 버리면 될 일이고, 다 버리더라도 흙으로 돌릴 길을 찾아야 하겠지. 무엇보다도 모든 ‘널뜀날씨’는 ‘나라(국가·정부)’를 세워서 ‘서울(대도시)’을 키우면서 불거졌잖니? 그럼 뭘 하고 뭘 바꿔야겠니? ‘나라’부터 없애고 치우면 돼. 나라 사이를 긋고 막으면서 죽어라 싸우지? 금(경계선·국경선)을 지킨다면서 애꿎은 목숨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데, 쌈박질(전쟁·전쟁무기)에 돈을 얼마나 쏟아붓는지 들여다봐야 해. 쌈박질은 사람도 죽이지만, 땅을 망가뜨리고, 들숲바다를 모두 더럽혀. 서울(도시)은 어떠할까? 서울사람이 누리는 새길(현대문명)이야말로 이 별을 어지럽히고 더럽히고 무너뜨리고 죽여. 이 두 가지 민낯을 제대로 보면서 갈아엎으려고 해야 ‘참날씨’를 되찾아. 이제 차분히 헤아리렴. 여태 이 별에서 사람들이 ‘나라’를 함부로 세워서 ‘쌈박질’을 함부로 일삼았고 ‘서울’을 함부로 키우고 늘렸어. 이와 같이 멍청하게 함부로 해댄 모든 부스러기를 멈추고 내려놓고 끝내면서, 풀꽃나무를 보금자리에서 품고, 해바람비를 온사람이 누리고, 들숲바다에서 살림길을 지을 때라야, 다 다른 날에 늘 새롭게 찾아드는 날씨를 받아들여서 사랑으로 빛난단다. ‘탄소발자국’을 줄인다면 ‘탄소발자국’만 줄여. ‘태양광·풍력’은 나라·서울·쌈박질을 못 끝내. 네가 숲에 보금자리를 짓고서 푸른숨을 마셔야 다 바꾸어 제자리를 찾는단다. 2026.1.19.달.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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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새걸음



빛나는 하루를 지으려고 태어나. 네가 살아가는 뜻을 아직 모를 수 있는데, 누구나 씨앗이라는 몸을 입은 작은 한 톨로 이곳에 오지. ‘나’라고 하는 씨앗은 스스로 자라나는 동안 스스로 빛나는데, 이때에 ‘스스로사랑’이면서 “나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빛나는 ‘스스로사랑’인 또다른 나”인 ‘너’를 만난단다. ‘나’하고 ‘너’라고 하는 둘은 함께 그리고 빚고 짓고 가꾸고 돌보고 나누는 사이에 “새롭게 하나”를 이루는데, 이때 ‘나’하고 ‘너’는 다르면서 같이 담는 ‘하늘’을 이뤄. 다르기에 나하고 너로 따로 있어. 같으면 굳이 둘일 까닭이 없고, 구태여 ‘스스로사랑’이지도 않아. 다르면서 담는 몸과 마음이라는 그릇을 다스리고 다독이고 닦는 나날인 ‘삶’이야. 누구나 ‘나’하고 마주하는 ‘너’를 알아보려고 이곳에 있어. 이때에 ‘너’는 누구이겠니? “내가 보는 뭇빛”이 바로 모든 ‘너’야. ‘나’는, 사람인 숱한 ‘너’하고도, 나무와 풀과 꽃이라는 푸른 ‘너’하고도, 새와 짐승과 벌레라는 신나는 ‘너’하고도 가만히 만나서 ‘둘’을 이루고 ‘하늘’이 되어 함께 이곳에 있어. 밤이 걷히고 새벽으로 나아가는 사이에 온누리 온곳에 이슬이 맺는단다. 새걸음으로 나아가는 하루를 기리고 기뻐하는 물빛이지. 안 죽고 싶다고 걱정하거나 싫어하거나 고개돌리느라 죽어. 뻔히 죽을 텐데 왜 태어났느냐고 한숨을 짓느라 늙어. 살리는 길이어서 ‘살림길’이고, 살림길이란 ‘나’부터 ‘너’에 이르는 모든 곳에 노래씨를 심으면서 노을빛으로 물드는 길이란다.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찾고, 노래를 밝히니, 모든 다른 노래가 어울리는 푸른숲과 푸른들로 만나는 푸른별로 간단다. 2026.1.20.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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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적인 얼굴



  흔히 “서구적인 외모”라는 말을 ‘잘생겼다’는 뜻으로 쓴다. 그러나 “서구적인 외모”만 잘생기고, “아프리카적 외모”라든지 “남미적 외모”라든지 “중국·일본적 외모”라든지 “말레이시아적·동남아시아적 외모”는 못생겼다는 뜻일까? 아무래도 “서구적인 외모”가 아니면, 이른바 “한국적인 외모”조차 ‘못생겼다’는 뜻으로 빗댄다고 느낀다.


  번듯하거나 말끔한 얼굴이나 몸매라면 ‘잘생겼다’고 할 수 있다. 안 번듯하거나 안 말끔한 얼굴이나 몸매라서 ‘못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밝히는 말이나 글은 안 대수롭다. 그렇지만 ‘서구적·한국적’ 같은 일본말씨를 붙이는 마음이나 자리를 살피면, “넌 왜 이렇게 부럽게 잘생겼어?” 하고 시샘을 한다든지, “나 따위는 너무 못생겨서 싫어!” 하고 스스로 갉거나 깎는 빛이 어린다.


  닷새쯤 앞서 부산으로 일을 다녀오는 길에도 “조상 중에 서양에서 오신 분 계시지 않아요? 틀림없이 서양 분이 있어서 서구적인 외모인데요?” 하는 말을 다시금 듣는다. 이 말을 여태 골(10000)이 웃돌 만큼 들었다. 골머리가 아플 만한 골질 같은 말인데, 여러모로 곱씹으면 “넌 튀기(혼혈) 아냐? 그나마 넌 나은(잘생긴) 튀기이네? 잘생겼으니 봐주지?” 하는 속내를 품는다. “넌 우리(한국인)처럼 생긴 얼굴이 아니니까 우리 사이에 끼어줄 수 없어. 그래도 뭐, 보기나쁘지 않으니 봐주지.” 하면서 담을 치는 속마음마저 있다.


  남을 얼굴부터 훑으면서 ‘얼굴말(외모비평)’을 일삼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나는 이미 스무 살부터 “텔레비전 안 들이는 곳”에서 살려는 뜻으로 어버이집을 박차고 나왔다. 어려서부터 거울을 안 보려고 했고, 혼살이를 하던 무렵부터 “집에 텔레비전도 거울도 안 놓는 삶”을 잇는다. 바라보려면 마음을 볼 노릇이다. 얼굴을 안 쳐다봐야 할 까닭은 없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길이라면 ‘마음읽기 + 말나누기(이야기) + 생각짓기(미래설계)’라는 세 가지를 살필 노릇이라고 본다.


  텔레비전을 집에서 치우고서 거울을 안 들여다보니, 참말로 이웃이나 동무를 만날 적에 얼굴을 거의·아예 안 본다. 요사이는 “얼굴을 마주보지 않으며 말하면 버릇없다”고 여기는 분이 많아서, 말을 할 적에 이따금 얼굴을 마주보기는 하지만, 나는 되도록 “얼굴 안 보며 말하기”를 한다. 아니 “겉으로 보이는 얼굴이 아닌, 눈망울을 거쳐서 들여다보는 마음”을 마주하면서 말을 한다. 이런 터라, 자주 만나거나 뜸하게 만나거나 “그분 얼굴이나 생김새”를 하나도 못 떠올려서 못 알아보기 일쑤이다.


  서로 눈망울을 바라보며 말을 나눌 적에는 허튼말이나 속임말이나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다. 추킴말이나 겉치레말도 아예 안 한다. 부질없는 말치레에 이 하루를 빼앗길 까닭이 없다. 오롯이 눈망울을 마주보면서 말을 나눌 적에는 서로서로 ‘마음읽기 + 말나누기(이야기) + 생각짓기(미래설계)’를 저절로 이룬다. 이 얼거리는 책읽기에서도 똑같다. 우리는 ‘책읽기’라는 길에서 “글쓴이 이름값·펴냄터 이름값·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나 추천도서라는 이름값 따위는 몽땅 걷어낸 채”, 책이라는 꾸러미에 깃든 “이야기라는 숨결”만 말갛게 바라볼 노릇이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눈망울을 보는 하루를 지으면, 읽는이(독자)와 지은이(작자) 사이에 그저 마음과 마음이 별빛으로 마주치면서 반짝반짝 빛난다. 다만 우리나라 책마을을 돌아보면, 한참 멀다. 아직 우리는 ‘이야기’가 아닌 ‘이름값’을 쳐다본다. 숱한 지은이(작자·작가)는 옷차림이나 얼굴이나 몸매를 꾸미려고 온힘과 목돈을 쏟아붓는다. 우리가 어른이면서 지은이라면, ‘프로필 사진’ 따위는 안 찍어야 맞다. ‘멋지게 찍는 프로필’이 아닌, 아줌마이면 아줌마 모습으로 찍고, 할머니라면 할머니 모습으로 찍고, 아재라면 아재 모습으로 찍고, 할배라면 할배 모습으로 찍으면 그만이다.


  보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할머니한테 ‘프로필 사진’ 따위는 없다. 그저 ‘이야기 할머니’답게 찍었다. 더 젊거나 더 예쁘거나 더 멋지거나 더 눈부시거나 더 돋보이거나 더 남다르거나 더 잘난 모습으로 꾸며서 ‘프로필 사진’에 힘을 들이붓는 이가 있다면, 그런 이가 쓴 글이나 책은 걸러낼 노릇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온사랑으로 담은 책”을 살피고 장만하고 읽고 새기고 나누고 곁에 둘 노릇이다. 부디 서로서로 “한국적인 외모”라든지 “서구적인 외모”처럼 스스로 갉고 할퀴는 멍청한 말은 걷어치우기를 빈다. 잎샘바람이 누그러들고서 봄맞이비가 가볍게 흩뿌린 하늘을 헤아리면서 “이렇게 바람과 비가 지나간 밤에는 별이 쏟아지면서 반짝반짝 아름다워요!” 같은 이야기를 하자. 2026.2.1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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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6.2.6.


《깡깡깡》

 이영아 글·그림, 빨간콩, 2023.12.29.



새벽길을 나선다. 일하러 새벽바람으로 움직이는 분이 있고, 먼고을로 놀러가려고 움직이는 분이 있다. 누구는 한결같이 일빛을 밝힐 수 있고, 누구는 으레 노닐며 한갓질 수 있다. 고흥부터 부산으로 가는 긴긴 시외버스에서 ‘놀러 움직이는’ 아지매와 할매가 꽉 찬 이곳에서 단둘이 밑도 끝도 없이 수다를 편다. 사상나루에서 내려 전철을 타니, 온갖 사람 갖은 말소리가 뒤범벅이다. 미리 챙긴 책을 읽다가 노래를 한 자락 쓴다. 〈책과아이들〉에서 책집일꾼으로 지내는 분이 몇 가지 혼책을 보여주는데 매우 알차다. 오늘은 동래 안락2동에 깃든 〈오른발왼발 작은도서관〉에서 《마늘꽃》 그림책 이야기꽃을 꾀한다. 여수에서 살며 마늘꽃 한살림을 담아낸 최서영 님이 ‘쓸모없어 보이는 곳에서 길어올린 쓸모있는 작은씨앗과 작은나’라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자리이다. 그림지기 곁님은 이 그림책을 보더니 “나도 마늘꽃이었던 것 같아.” 하고 속삭였단다. 《깡깡깡》을 곧잘 되읽어 본다. 부산이라는 곳에서 작은마을과 작은살림을 지은 작은사람 숨소리를 작은붓으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크기로 치면 큰붓과 작은붓이 있을 만한데, 그림책을 여미는 붓은 그저 ‘그림붓’이다. 큰마을과 작은마을로 가를 수 있되, 사람이 살림하는 곳은 ‘살림마을’이다. 쓸모를 찾는다든지, 이름을 높인다든지, 돈을 꾀하지 않아도 된다. 다 다른 숨빛을 그저 다르게 받아안으면서 오늘 이곳에서 노래하며 놀면 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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