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안 쉬어도 돼요?
엊저녁에 고흥으로 들아와서 발바닥만 씻고서 일찍 누웠다. 01시에 일어나서 설거지를 하고서 06시까지 일한 뒤에 살짝 새벽잠을 들었다. 08시에 일어나서 비로소 씻으면서 빨래를 한다. 두 아이가 마당에 빨래를 너는 소리를 들으면서 집일을 더 한다. 이윽고 고흥읍 나래터에 글월을 부치려고 마을앞에 나와서 시골버스를 탄다. 아직 한끼도 안 먹었으나 배고플 일은 없다. 그저 느긋이 봄으로 가는 늦겨울볕을 바라본다. 사마귀알집도 슬슬 쓰다듬는다.
갓 나올 적에는 이래저래 놓치는 그림책과 동화책이 수두룩하다. 요 몇 해 사이에 부산 마을책집 〈책과아이들〉을 마치 옆집처럼 드나들면서 찬찬히 알아보는 그림책과 동홰책이 숱하다. 비록 누리책집과 새책집에서는 판끊긴 책인데, 〈책과아이들〉에는 멀쩡히 있으면서 열다섯 해나 스무 해씩 손길을 기다리는 아름책이 많다.
우리는 무슨 책을 알아보고 읽고 알려야 어른일까? 우리는 글을 어떻게 쓰고 그림을 어떻게 빚어야 어른일까? 우리는 낱말을 어떻게 가리고 살펴서 마음을 말로 펼쳐야 어른일까? 우리는 밥을 어떻게 짓고 옷을 어떻게 기우며 집을 어떻게 건사해야 어른일까?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을 적에 어른일까? 우리는 뚜벅뚜벅 걸어다니는 어른일 수 있을까? 입으로만 외치는 올바른 말이 아닌, 딱히 외치지 않더라도 스스로 보금자리를 일구는 살림길로 어른일 수 있을까?
길(정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모든 사람마다 길(해법)이 다르다. 우리말이 훌륭하거나 일본말이나 미국말이 못나지 않다. 우리는 그저 우리 살림자리에서 우리 손으로 사랑을 지으면서 어른길을 함께 배우는 이웃이다. ‘우리말’이란 이름은, 나랑 너를 아우르며 서로 아늑히 아름드리로 안아서 푸르게 빛나는 말이라는 뜻이다. ‘우리’라는 이름은, 내가 ‘나’를 알아보고 돌아보고 품을 적에 비로소 ‘너’를 알아보고 돌아보고 품기 때문에, ‘나’하고 ‘너’는 다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다른 빛인 줄 깨달으면서 터뜨리는 소리이다.
큰아이한테는 “언제나 느긋이 쉬는걸.” 하고 속삭인다. 일할 적에는 일하고, 잘 적에는 자고, 살림할 적에는 살림하고, 놀 적에는 놀고, 읽을 적에는 읽고, 쓸 적에는 쓴다. ‘잘하기’나 ‘못하기’가 아닌, 그저 ‘하기’를 바라본다. 2026.2.9.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