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섣달그림 (2025.12.5.)
― 부산 〈책과 아이들〉
한 해를 마무르는 섣달이란 새해로 잇는 길목입니다. 섣달을 맞이하면서 올해를 되새기고 새해를 그립니다. 마치는 달이기에 넘어서는 달이요, 새해첫날은 꼭 하루만 ‘설날’이라 합니다. 이제 서면서 다시 서는 길이니, 멈춰서기에 일어선다는 뜻으로 ‘섣’과 ‘설’을 나란히 놓은 말결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일어서려고 하기에 서로 다가섭니다. 저마다 스스로 일어나려고 하기에 서로 만납니다. 얼핏 남이 나를 알아보고 사랑해야 즐거운 줄 잘못 여기지만, 저 사람은 저이 스스로 들여다보면서 사랑하기에 빛나고, 나는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서 사랑하기에 빛납니다. 두 사람이 만날 적에는 ‘스스로 일어서서 사랑하는 나’를 둘이 다르게 이루었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씨앗 한 톨하고 저 씨앗 한 톨이 만나면서 맺은 작은열매로 열 달을 고이 잠들다가 고치에서 날개돋이하듯 태어난 숨결이에요. 몸이 무럭무럭 커서 어른에 이르더라도 ‘씨앗빛’과 ‘아기빛’과 ‘아이빛’과 ‘푸른빛’이 늘 감돌면서 ‘어른빛’하고 어울립니다. 문득 어린이 같은 빛이 드러난다면, 어린빛을 잊지 않고서 스스로 사랑한다는 뜻일 테니, 우리 마음에 깃든 모든 빛줄기를 그대로 품으면서 하루하루 풀어내면 즐겁게 이 삶길을 걸을 만할 테지요.
부산 〈책과 아이들〉에서 조촐히 섣달모임을 꾸립니다. 새삼스럽게 ‘서다’라는 낱말과 얽혀서 우리 삶과 마음과 길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굳이 안 물러서려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반드시 넘어서야 하지 않습니다. 일어서다가 넘어질 만합니다. 다가서는데 손사래치는 탓에 울 수 있습니다. 늘 꼿꼿이 서기란 어려울 만합니다. 마음을 세우기란 힘거나, 스스로 짓는 살림길에 서자니 흔들거릴 수 있어요. 오늘 우리가 다리를 버티고 서는 이 길이 꽤 버거울 만합니다.
모든 다 다른 날을 그저 다 다른 하루로 여기가부터 어려운 터라, ‘일어서다’보다는 ‘내려서다’나 ‘멈춰서다’에 맴돌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내려서고 멈춰서기에 더욱 느긋이 둘레를 봅니다. 주저앉고 자빠기니까 더더욱 밑바닥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봅니다.
섣달그림은 ‘잘한 모습’으로만 담지 않습니다. 굳이 ‘못한 모습’으로만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잘하건 못하건 ‘모든 모습’을 우리 손끝으로 그려서 담으면 됩니다. “난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숨을 쉬었어.” 한 마디만 적을 수 있습니다. “난 날마다 밤에 일찍 잤어.” 한 마디로도 한 해를 즐겁게 살았습니다. 걸어온 자취를 되새기면서 걸어갈 빛줄기를 차분하게 하나하나 그립니다.
ㅍㄹㄴ
《다가오는 거대 편지》(임고을 글·차상미 그림, 봄볕, 2025.8.11.)
《책, 읽는 재미 말고》(조경국, 유유, 2025.12.4.)
《나는 반딧불》(정중식 글·해랑혜란 그림, 책고래, 2025.11.20.)
《피터와 늑대》(프로코피예프 글·프란스 하켄 그림/유영미 옮김, 미래M&B, 2000.12.10.첫/2002.3.5.3벌)
#SergeiProkofiev #Peter und der Wolf
《우리 할머니가 이상해요》(울프 닐손 글·에바 에릭손 그림/박민수 옮김, 시공주니어, 2008.7.20.)
#Farmors Alla Pengar #UlfNilsson #EvaEriksson
《따귀는 왜 맞을까?》(페터 아브라함 글·게르트루드 쭉커 그림/강석란 옮김, 국민서관, 2002.5.15.)
#Weshalb Bekommt Man eine Ohrfeige #PeterAbraham #GertrudZucker
《걱정 유리병》(루 존 글·제니 블룸필드 그림/엄혜숙 옮김, 미래엔아이세움, 2023.1.5.첫/2023.5.30.2벌)
#The Worry Ja r#LouJohn #JennyBloomfield
《꼬마 요정 릴리 공주님》(폰 모니카 핀스터 부시/김양미 옮김, 사랑이, 2005.3.2.)
《여우를 골려준 들쥐》(비얀키 글·야마다 사부로 그림, 한림출판사, 1992.5.1.)
《소년 철도원》(니시모리 소/김창원 옮김, 진선출판사, 2005.10.2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